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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이

last modified: 2019-05-28 02:31:2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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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1-1로 맞서던 9회초 한현희에게 결승 2점 홈런을 친 후 포효하는 모습.


미소가 상큼하다. 아이셔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2번
정경주(2000) 박한이(2001) 박봉수(200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이정호(2001) 박한이(2002~ ) 현역

Contents

1. 소개
2. 선수생활
2.1. 2010 시즌
2.2. 2011 시즌
2.3. 2012 시즌
2.4. 2013 시즌
2.5. 2014 시즌
2.6. 2015 시즌
2.7. 불미스러운 사고와 은퇴
3. 플레이 스타일
3.1. 버퍼링 타격 준비동작
4. FA 잔혹사
4.1. 2009년 첫 번째 FA
4.2. 2013년 두 번째 FA
5. 기타
6. 연도별 성적

1. 소개

송지만과 더불어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평가의 아이콘[3]이자 FA 계약으로 영원한 고통을 받는 선수
크보를 주름잡았던 좌타 선배들에게 묻힌 소리 없는 강자.

삼성 라이온즈 소속 정신병자 외야수. 언제나 묵묵히 삼성 외야진의 한 자리를 맡아주고 있는 또 다른 소리 없는 강자이자 꾸준함의 대명사 그리고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이면서 비운의 선수[4]. 프로 첫 시즌을 제외하면 팀과 국가대표를 막론하고 줄곧 등번호 33번을 달고 있다.

원래 박한이의 쌍두마차의 파트너는 강동우였지만 강동우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자 조동찬과 함께 쌍두마차를 결성하며 삼성을 이끌고 있다.

별명은 "카니", "바카닉", "바카니", "킁킁이", "정신병자", "하니",[5] "하마"[6] 등. 어째 삼성은 이렇게 모이는 건지 채태인이라든가 그리고 2013년 FA 계약 이후에는 시장에 거품이 잔뜩 낀 와중에 일찌감치 삼성과 비교적 싸게 재계약하면서 '착한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2014년 조동찬이 28억 윤성환이 80억 안지만이 65억에 계약하면서 착한이는 엄청난 애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시구는 박한이 짱이다 카더라

2. 선수생활

부산고 재학 시절 삼성의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다. 동국대 재학 시절에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드림팀 1기)에 뽑혀 병역특례를 받았다. 군면제 올레! 재미있는 것은 그 당시 대학야구 선수로 같이 면제를 받은 신명철강봉규와 같은 팀에서 뛰었던 바 있다.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삼성과 계약금 3억원에 연봉 2천만 원, 총 3억 2천만 원에 계약하며 입단했는데 당시 기준으로 삼성 신인 타자 중 최고액 계약이자, 투수까지 합쳐도 역대 두번째 금액의 계약으로서, 2014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박한이보다 많은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삼성 신인 타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신인 선수 계약금 순위에서도 두번째에 위치하고 있다. 당시 삼성이 박한이에게 얼마나 큰 기대감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7]

2001년 데뷔하자마자 바로 삼성의 1번타자 및 중견수로 낙점받아 활약하기 시작하였으며, 0.279의 타율 및 13홈런 17도루로 준수한 활약을 했으나, 당시 규정 타석은 못채웠지만 .335에 20홈런을 쳐낸 한화 이글스김태균에 밀려 신인왕이 되지 못한다. 참고로 2001년 사라진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마지막 홈런을 뽑아낸 선수도 박한이였다. 그것도 무등야구장의 장외로 사라지는 우익수쪽 비거리 125m짜리 홈런이었다. 이 정도의 타구는 같은 물리조건 하에 잠실 야구장의 중앙으로 뻗어나간다고 해도 넘어간다.

2003년에는 170안타로 최다안타 1위, 2004년과 2006년에는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등 당시 최고의 외야수로 손꼽혔다.

2007년에 워낙 죽을 쒀서 위태로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2008 시즌에 다시 부활해서 삼성 주전 타자 중 유일하게 3할 기록. 2008 시즌 시작 당시만 해도 팀의 가장 젊은 타자(…)였으나, 2008 시즌 이후론 순식간에 고참이 되었다. 2007 시즌까지 삼성의 타선이 막장 테크를 타면서 2008 시즌에 대량 물갈이 되었기 때문. 2008 개막전까지만 하더라도 한때는 위기가 있었고 신인 허승민이 그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으나 분발을 해서 크레이지 모드가 됐다는 일설이 있다.

2008시즌 시범적으로 3번에 기용된 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체구가 홈런타자답기도 우동균, 조동찬을 비롯하여 삼성의 신예 테이블 세터진이 안정된다면 클린업 트리오로 갈 수 있는 플래그 형성될 수도 있었지만, 그건 흑역사화.

2009 시즌 후 FA 자격을 얻었고, 전 소속팀과의 협상 마지막 날인 1월 10일에 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옵션 5,000만 원에 삼성에 잔류했다. 2010 시즌에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박버퍼링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2.1. 2010 시즌

2010 시즌이 시작되자 마자 36안타 5홈런을 기록하며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또한 5월 5일 대구 롯데전에서 4타수 4안타를 뿜어내는 진가의 면모를 선보였다. 오오 바카닉 반면에 장스나는…

이영욱을 중용하며 대놓고 박한이를 디스하던 선동열 감독의 박대에도 불구하고 타율 0.302 출루율 0.408 장타율 0.437 7홈런 53타점을 기록하며 펄펄 날아다니다가 체력 탓인지 주춤한 모습을 모이고 있다. 그.. 그래!! 너는 4번 타자 감이었던거야!! 그 활약을 인정받아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 6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10년 연속 100안타를 달성했다..[8] 흠좀무

그런데 선동열은 이런 타자를 플래툰 돌리고 앉아 있다. 2할이 겨우 넘는 타자와…. 그런데, 박한이는 이 팀의 몇 안되는 프랜차이즈이고, 강봉규는 일년 반짝한 그냥 선수인데 주장. 리빌딩이라고 생각해도 나이가 강봉규 쪽이 더 많다. 21세기 첫 우승 시절부터 함께 해온 선수는 박대하고, 1년 반짝인 선수는 믿어준다라 삼성팬이 떠나갈만 하다.

여담으로 FA 때 한화한테 빼았겼으면 삼성팬은 하나도 안 남았을 지도…. 혹은 강동우와 다시 쌍두마차를 이뤘겠지….

그러나 시즌 초반의 기세는 온데간데 없고 체력적으로 점차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며 타율도 점점 떨어져 갔다.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8회말에 팀이 스코어 5:3으로 뒤진 2사 1, 2루 상황에서 역전 쓰리런 홈런을 쳐서 삼성의 스코어 5:6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박한이는 선발 1번타자이자 우익수로 출전하여 4타수 2안타 1홈런 1볼넷 3타점 1득점을 기록했다.

시리즈 전적 1승 1패인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2루타만 3번을 치는 대활약을 했는데, 특히 팀이 스코어 5:6으로 지던 8회초 2사 1루에서 동점 2루타를 쳤지만 팀은 연장 11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스코어 8:9로 패했다.
이날 박한이는 선발 1번타자이자 우익수로 출전하다 중견수로 수비 위치를 옮겼고, 타석에서는 6타수 3안타 1볼넷 1타점 2득점을 기록했다.

10월 1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4차전 스코어 7:7인 8회초 1사 2, 3루 상황에서 희생플라이를 쳤는데, 이날 팀이 8:7로 승리하여 이 타점이 이날의 결승타가 되었다.
이날 박한이는 선발 우익수 겸 3번타자로 출전하여 3타수 2안타 2희생플라이 2타점을 기록했다.

박한이는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21타수 8안타 1홈런 3볼넷 2희생플라이 3볼넷 1사구(死球) 2도루 6타점 4득점, 타율 .381, 장타율 .667, 출루율 .444를 기록하며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크게 공헌하였고, 결국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했다.

박한이는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14타수 2안타 3볼넷 1타점, 타율&장타율 .143, 출루율 .294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선동열 한국시리즈에서 스윕패를 당한 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박한이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35타수 10안타 1홈런 2희생플라이 6볼넷 1사구(死球) 2도루 7타점 4득점, 타율 .286, 장타율 .457, 출루율 .386을 기록했다.

2.2. 2011 시즌

류중일 감독이 강한 2번 타자론을 주장하며 2번타자로 꾸준히 기용되고 있지만 역대 최악으로 부진하며 다시 까이고 있다. 그 좋았던 선구안도 무너지고 타율도 2할 중반대를 겨우 유지하고 있는 등, 결국 역대 커리어 로우 시즌을 기록했다. 분유버프도 없나 또한 2011 시즌의 88삼진은 개인 한 시즌 최다 삼진.

덤으로 FA때 잡지 않은 한대화 감독은 재평가가 되고 있다. "예끼 니미 ㅆㅂ 박한이는 내가 더 잘안당께" 사실 안 잡은 게 아니고 짠돌이 구단이 돈 안 줘서 못 잡은 거 같지만[9]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류중일 감독의 양아들이라며 류한이라고 까이고 있다. 결국 8월 24일자로 2군행. 하지만 9월에 다시 1군 복귀했고 그 와중에 11년 연속 100안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역시 꾸준함은 여전하구나!

9월 20일 임태훈을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정의는 살아있다[10]

9월 21일 시즌 100안타를 쳐서 11년 연속 100안타를 쳤다[11]. 하지만 9회말 3:3 1사 만루 상황에서 1루수 땅볼 아웃으로 3루주자가 홈에서 아웃되고 이것이 연장전 패배의 씨앗이 되어서 삼갤 등에서는 시즌 100안타를 치고도 까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2타수 무안타 2볼넷 1사구(死球) 타율, 장타율 0, 출루율 .200을 기록하며 5경기에서 4삼진 포함 시리즈 9삼진을 기록한 채태인과 함께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하지만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하였다. 우승을 못했다면 채태인과 평생까임권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하지만 2년 뒤에는 이 둘이 영웅으로 탈바꿈하는데...

2.3. 2012 시즌

2011 시즌 워낙 부진했던 탓에 본인도 절치부심해 시즌을 준비해 왔으나, 4월 1일 두산과 시범경기 중 허벅지를 다쳤다. 햄스트링 진단을 받아 1달간 재활한 후 5월 1일 1군에 복귀했다. 5월 3일 두산전에서 임태훈을 상대로 권선징악포를 쳤다. 7월 18일 한화전에서 역대 18번째 개인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다.

9월 5일, LG 트윈스 전에서 레다메스 리즈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안타, 이로써 12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 기록을 만들어 냈다. 이는 양준혁의 16년 다음으로 오래 된 기록이다.

9월 24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1:0으로 지던 9회말 무사 만루에서 극적인 역전 끝내기 2타점 2루타를 쳐내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9월 25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5:0으로 지던 9회말 1사 3루에서 김진우의 완봉을 막는 희생 플라이를 쳐냈으나 경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팀은 5:1로 패배. 9월 26일 이어진 경기에서도 9회말 윤석민노히트 노런을 저지하는 안타를 쳐내며 분투했으나 팀은 끝까지 점수를 내지 못하고 3: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본격 9회말의 사나이

2년 만에 다시 3할 타자(최종 타율 0.304)로 복귀하였으나 부족한 장타력(홈런 1개)와 초반 결장에 대한 공백 때문이었는지 골든글러브 투표에서는 아쉽게 4위에 그쳐 골든글러브 획득에는 실패하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2, 3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6번타자, 5, 6차전은 선발 우익수 겸 5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4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타점 3득점 1도루, 타율&장타율 .222, 출루율 .333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 2패로 우승하여 2년 연속 페넌트레이스&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4. 2013 시즌

해당 항목 참조.

2.5. 2014 시즌

해당 항목으로.

시즌초엔 상당히 부진해 정형식과 함께 상당히 많은 까임을 당했지만, 점차 베테랑의 클래스를 보여주며 14년 연속 세자릿수 안타와 함께 자신 타점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모범 FA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FA 인플레가 여지없이 나타나면서 고통받고 있다

2.6. 2015 시즌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서 5타석 4타수 3안타 1볼넷 1득점으로 활약했다. 팀은 1:6으로 승리.

그러나 4월 5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 수비 실책으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해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까였다.

2.7. 불미스러운 사고와 은퇴

2019 시즌에도 노장으로서 침체기에 빠진 팀을 위해 헌신하여 5월 26일 경기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는 등 활약했으나, 이튿날인 27일 아침 자녀 등교를 위해 차량을 운전해 등교시킨 뒤 귀가하다 오전 9시경 대구 수성구 범어동 인근에서 접촉사고가 났다.

현장 출동 경찰이 매뉴얼에 따라 음주측정을 실시한 결과 혈중알코올농도 0.065%로 면허정지 수준으로 측정됐다. 박한이는 앞서 26일 경기를 마친 뒤 자녀의 아이스하키 운동을 참관한 후 지인들과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고 밝혔다.

사건 경위를 전달받은 삼성은 이날 곧바로 KBO에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고, 박한이는 고심 끝에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베테랑 선수로서 음주운전 적발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 그는 "음주운전 적발은 어떠한 이유로도 내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은퇴하기로 했다. 징계, 봉사활동 등 어떠한 조치가 있더라도 성실히 이행하겠다. 무엇보다도 저를 아껴주시던 팬분들과 구단에 죄송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라이온즈를 위해 선수생활의 황혼기까지 아낌없이 헌신하던 노장의 어이없고도 안타까운 퇴장이었다.

3. 플레이 스타일

박한이의 선수 생활은 꾸준함 하나로 설명된다. 통산 타율이 2할 9푼을 넘길 정도로 높으나 최다안타 한 번만을 기록해 보았고 수위타자는 한 번도 차지한 적이 없다. 하지만 14년 연속 세 자릿수 안타[12]라는 대기록에서 박한이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20홈런은 한번도 못쳐봤고 15홈런을 넘긴 적도 딱 한 번 있을 정도로 장타와는 인연이 없는 선수지만, 통산 홈런은 100개를 넘었다는 점도 꾸준함을 증명하는 대목이다.

대학 때나 아시안게임 대표팀 때 뛰어난 타격 실력을 보여주며 입단 후부터 주전자리를 꿰차곤 1번타자로서 활약했다. 발이 느려 1번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실제로 수비할 때의 모습을 보면 박한이의 발은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었다.[13] 박한이는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번트안타로 출루했다. 상대 투수는 송진우. 송진우는 투구 후 수비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게다가 4할에 육박하는 출루율은 1번 타자의 기본 덕목. 다만 주루 센스가 부족해 도루의 시도 횟수는 물론 성공 횟수도 적다. 주루센스 부족은 대학 시절이나 프로 온 후나 여전했다. 하지만 볼을 잘 고르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걷어내며 살아나가려 하기 때문에 투수 입장에서는 굉장히 짜증나는 선수. 도루까지 마구 해댔으면 정말 엄청난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플레이 스타일은 레벨 스윙으로 공을 맞추는 데 집중하는 교타 스타일. 보통 거포들은 물론이고 교타자들도 축족 반대쪽 다리를 조금씩이나마 드는데, 박한이는 오른다리를 거의 들지 않고 타격한다. 때문에 스윙이 간결하고 빠르며 공을 끝까지 보기 때문에 출루율이 높지만, 큰 덩치에 비해 장타력이 부족하는 평을 듣는다. 선수생활 초기엔 1번 타자로 나서다 조동찬, 이영욱 등의 다른 1번 타자감이 등장하면서 선동열 감독하에서는 3번이나 5번 타자로도 가끔 나섰지만, 박석민 - 최형우 - 채태인이승엽까지 가세한 류중일 체제에서는 배영섭이나 정형식에 이어 2번으로 주로 나서고 중심타자 넷 중 한명이 빠질 때는 6번에 배치되는 경우가 대부분.

본래는 뛰어난 선구안을 바탕으로 한 출루율이 강점이었으나 FA시장에서 찬밥 신세를 당한 후로는 좀더 컨택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구단 수뇌부에 박한이 때문에 이긴 경기를 못봤다라는 말을 한 인사모지리가 있었다고도.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박한이가 저평가되는 가장 큰 원인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꾸준하지만, 뭔가 두드러지는 임팩트는 없는 타자라는것. 아무리 그래도 삼성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선수에게 너무 박한 게 아닌가 싶다. 사실 콩단장이 출루율이 뛰어난 타자를 수집했던 건 몸값에 비해 효율이 좋았기 때문인데, 이 말을 돌려 말하면 '저평가 받고 있다' 라는 뜻이 된다. 즉 박한이 처럼 출루율이 뛰어난 타자들은 저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예로 장성호도 출중한 실력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출루율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부터 평가가 올라갔다. 재밌는 점은 장성호와 박한이 출루율이 뛰어난 타자면서 커리어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는 타자들인데, 장성호는 전성기 시절이 기아의 암흑기라 묻힌 감이 있다면 박한이는 같이 활동했던 팀 동료들이 너무 임팩트가 강렬하여 묻힌 감이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문제는 컨택에 집중하면서 기복이 심해진 것. 바깥쪽 볼을 골라 나가기보다 쳐서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컨디션이 좋을 때는 4할타자지만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으면 폭삭 망해 버린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다보니 기록상의 성적은 결국 비슷하다(...)

그래도 박한이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외야수비 실력으론 크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스피드는 빠른 편이라고 할수 없지만, 빠른 타구판단 능력과 예측수비등으로 어려운 타구도 쉽게 잡아낸다. 게다가 3루에서 언더베이스하는 정수빈을 잡아낼 정도로 어깨도 준수한 편. 공격도 폭망한 1,2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2할 후반대 이상의 성적을 찍고 있으며, 통산 출루율도 3할 8푼 이상이다. 심지어 아무리 폭망한 해라도 출루율이 .35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또한 데뷔 이후 지금까지 계속 100안타 이상을 치고 있고, 이대로라면 (2014시즌 종료기준) 2시즌 후엔 2000안타도 가능하다. 뭔가 확 튀는게 없어서 그렇지 누적성적으로 보자면 KBO 역대급 외야수 중 한명에 꼽혀도 무리가 없는 수준.

또한 박한이가 입단한 이후 삼성은 단 1년을 제외하곤 모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커리어 14년 중 한국시리즈 10회 출장, 7회 우승. 후에 왕조라 불릴만한 이 삼성 라이온즈 최대 황금기동안 꾸준히 외야 한자리를 지켜왔다. 그의 능력이 절대적이라 할 순 없지만, 그의 꾸준함과 출루능력도 삼성의 호성적에 한몫했다고 볼수 있다.

3.1. 버퍼링 타격 준비동작

타격 시 준비자세가 유난히 긴 선수로 유명하며 모 스포츠신문에 따르면 평균 준비시간이 24초라는(요즘에는 15~20초 정도 걸리는 듯하다) 소리가 있으며 그 준비동작은 다음과 같다.

양 손 장갑 고쳐끼면서 동시에 발 밑 고르기 → 오른쪽 소매로 땀닦기 → 헬멧 벗어서 앞머리 쓸어올리기[14] → 헬멧 다시 고쳐 쓴 다음 방망이로 홈플레이트 앞에 밑줄긋기 → 한두번 휘두르기 → 방망이를 어깨 위에 올렸다가 본격적인 준비자세를 잡으며 마무리 → 그리고 타격

여기에 타석에 들어왔을 때 배트를 수직으로 들고 점프하며 두 발을 부딪혀 신발의 흙 털기가 추가될 때가 있다.


잘 보면 마지막에는 투수가 성질나서 박한이가 준비도 하기 전에 공을 던졌다(…)

이 동작을 매 투구마다 행하며 그 때문에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다 하여 버퍼링박, 헬멧을 벗어서 다시 쓰는 동작이 헬멧 냄새 맡는다고 하여 박킁킁이라는 별명도 있다. 셋팅의 달인이었던 박태민을 떠올리게 한다.[15] 게다가 2아웃 상태인데 3아웃인 줄 알고 내려오다가 다시 돌아가거나 공을 못 잡고 자빠지거나 뜬금없이 견제사를 당하는 등 각종 기행이 더해져 예전 김응용 감독이 한 '박한이는 정신병자다' 라는 말이 다시금 주목받기도 하여, '정신병자'란 별명이 추가되기도 했다.

실제로 저 준비 동작을 생략해 본 적이 있으나 단 한번도 안타를 치지 못해서 옛날 동작으로 돌아갔다. 요새는 준비동작으로 옛날처럼 까이지는 않는 모양이다. 익숙해져서 그런가 팬들도 포기했다

여담이지만 그 터무니없는 버퍼링 때문에 성준과 엮여서 개그가 된 적도 있다.#

2010시즌부터는 그의 버퍼링을 제대로 못 보게 되었다. 프로야구의 룰이 바뀌어서 타자가 준비하는 시간은 이제 12초 리미트가 걸려버렸다. 전지훈련 가서 홈플레이트만 방망이로 긋고 시작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일단 본인 왈 15초까지 줄였다곤 하고 이후로는 6-7초 걸린다고. 2010년 신 버퍼링 풀버전(…)은 다음과 같다.

발 모았다 떼는 뜀뛰기 한번 → 타석에 진입 → 홈플레이트 긋기 → 배트 한번 휘두르기 → 허리 양쪽으로 톡톡 튕기기.

아무래도 12초룰을 의식하기 때문인지, 뜀뛰기 혹은 허리 튕기기를 가끔 스킵하는 경향을 보이며, 스킵할때보다 버퍼링이 풀버전일때 안타가 잘 난다(…). 그리고 파울볼이 나거나 볼이 나거나 기회만 되면 모자 냄새를 맡는다!

원체 버퍼링으로 유명하다보니 2015년 스피드업 조항이 신설되었을 때 제일 먼저 팬들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나 사실 박한이는 신설 & 강화되는 규정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데, 저 버퍼링이 죄다 타격 박스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 기사에 의하면 배트박스를 벗어나는 것이 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다고 한다. 일단 본인은 규정에 위배되진 않으나 그 취지를 존중하여 스피드를 올리는 연습을 하겠다고 밝혔다. 앞의 기사에선 H 구단의 K 선수가 박한이보다 더 긴 시간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댓글은 이 선수가 김태균이란 것을 다 알고 있다.

실제로 2014시즌 각 팀당 가장 많은 타석에 들어선 타자 9명씩 뽑아 총 81명의 투수의 공을 맞이한 뒤 다시금타격자세를 취하는데 걸리는 시간 평균을 구했을 때 박한이는 놀랍게도 15.7초81명중 59위를 차지했다. 앞서 말했듯이 과정은 번거롭지만 타석을 벗어나는 일이 없어서 오히려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출처 하지만 아직까지도 스피드업 하면 박한이를 이야기하며 매도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 글을 본 위키러들은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된 점을 바로 잡아주도록 하자.

사실 박한이에게 이런 버릇이 생긴건 2003시즌 초반부터로 타석에서 자신감이 떨어져 죽을 쑤고 있었는데 당시 코치였던 류중일 감독이 베이스에 선도 그려보고 차분하게 하라는 조언을 한 이후부터라고, 근데 정작 류감독은 그 일을 잊어먹고 있었단다.(...)

4. FA 잔혹사

아마도 FA 제도의 가장 큰 희생자 또는 보살(…).

4.1. 2009년 첫 번째 FA

2009 시즌 후 첫 번째 FA 자격을 얻었지만, 당시 감독이던 선동열은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박한이를 내칠 작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 구단과의 협상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시장으로 나왔다. 하지만 그 해 FA 시장은 유난히 차가웠으며, 한화 이글스에서 영입을 시도하고자 했지만 당시 한화 감독이자 전 삼성 수석코치인 한대화"박한이는 내가 잘 안다"라는 희대의 명언을 남김에 따라(…) 시장에서의 협상도 실패했다.

결국 FA 미아가 되기 직전에 전 소속팀과의 협상 마지막 날인 1월 10일에 2년 총액 10억원(계약금 3억원, 연봉 3억원, 옵션 5,000만 원)이라는 FA 치고는 적은 돈으로 삼성에 잔류했다.

4.2. 2013년 두 번째 FA

4년이 지난 2013년 시즌 후 두 번째 FA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이번에는 아예 금액 논의도 하지 않고, 아시안 시리즈에 따라가더니 이후 11월 15일 계약금 10억 원 및 연봉 4억 5천만 원등 4년간 총액 28억 원을 받는 계약으로 삼성에 잔류하였다.[16] 일단 같은 날 계약이 발표된 장원삼이 4년 총액 60억 원이었던지라 장원삼에 비해 비교적 짠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기는 많았다. 하지만 나이와 포지션을 감안했을때 장원삼과 박한이를 비교하면 분명 양쪽의 상품가치가 꽤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17], 1979년생, 2014년이면 한국나이로 36세가 되는 노장에게 4년 계약에 옵션 없는 순수 보장금액으로만 28억인 점을 감안하면 마냥 짜게 굴었다고 보기도 뭣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다들 4년 보장에도 성공하고, 금액 면에서도 1차 FA에서의 굴욕을 어느 정도 만회한, 그런대로 괜찮은 FA계약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적어도 원소속구단 우선협상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진짜 그랬다. 그리고 여기까지였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분명히 막 계약 할 때만 해도 이랬다. 그런데

말도 안되는 계약으로 대검 수사를 앞두게 된 바콰니 선수 기자회견
어ㅗㅓ인ㅁㄹㄹ아이 이게뭐여ㅏ아아 ㅠㅠㅠ 쌤숭 푸런트 나와앙ㄴ밈ㄴ;ㅇㄴㅁ;ㅇㄴ

안타깝게도 2013년 FA 시장은 역대 FA 사상 유례가 없었던 희대의 인플레이션이었고, 그 뒤에 계약한 선수들의 계약 규모는 다음과 같다.

  • 이대수 : 4년 총액 20억 원(한화 잔류)
  • 정근우 : 4년 총액 70억 원(SK → 한화)
  • 이용규 : 4년 총액 67억 원(KIA → 한화)
  • 이종욱 : 4년 총액 50억 원(두산 → NC)
  • 손시헌 : 4년 총액 30억 원(두산 → NC)
  • 이대형 : 4년 총액 24억 원(LG → KIA)
  • 최준석 : 4년 총액 35억 원(두산 → 롯데)

1주일 정도만 시간을 가지고 지켜봤더라면 최소 3~5억원의 연봉이 더 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이 중 정근우와 이용규는 강민호, 장원삼과 함께 2013년 FA Big 4로 꼽히는 상황이었고[18] 나이도 아직 젊은 편인데다가 노리는 팀들이 많았기 때문에, 당연히 박한이와 어느 정도는 금액이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대수나 손시헌은 뭐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대수와 손시헌은 일단 유격수라는 수비 부담이 매우 큰 포지션이고, 계약한 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정도 비싼 가격을 감수하고라도 계약할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 두 선수들의 운이 좋은 것이지 박한이가 불운한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거기에, 이대수의 경우 외부 FA로 인한 팀 케미스트리의 손상을 막고 짠돌이 구단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답이 나오지 않는 암흑기에 그나마 좀 사람같이 야구했던 선수 [19] 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으며, 손시헌과 이종욱은 신생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멘토가 될 수 있을 만한 베테랑[20] 구하는 동시에, 취약 포지션에 대한 보강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

최준석까지만 해도 수긍은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올 정도로 망가진 타선에서 홀로 사람역할을 하던 손아섭의 뒤를 받쳐줄 사람[21]이 필요했던 걸, 그리고 올해 포스트 시즌에서 우즈가 생각 날 정도로 미친 활약을 보여준 걸 감안하면, 부상위험이 좀 크고 올 페넌트레이스에서 보여준게 그렇게 크지 않을 지라도,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계약이다. 그것을 감안해도 가격이 비싸지 않나 의문이 들긴 하지만, 최준석의 영입 자체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대형까지 오면 이미 시장이 미쳤다는 사실이 보인다. 순수 보장액만 22억. 박한이의 나이를 거론하면서 충분한 계약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당장 이대수가 1981년생, 손시헌이 1980년생 이대형은 1983년생이긴 하지만 나이고 뭐고 이다. 딱히 나이를 따지기도 애매하다. 게다가 최근 3년간의 타율을 보면 오히려 가장 나이 많은 박한이가 제일 양호하다. 박한이는 2011년에 주춤했다가 2012년부터 다시 반등하고 있는데, 나머지 둘은 2011년 이후로 하락세가 뚜렷한 상황. 급기야 이런 기사들까지 나와버리고 말았다.

이전의 FA와 비교했을 때 참고할 만한 선례로는 LG의 박용택, 이진영, 정성훈의 직전 FA 계약이 있을 것이다. 나이도 비슷한 이 셋이 모두 4년 34억이라는 금액에 LG와 사인한 전력이 있는데, 통산 성적이 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박한이가 4년 계약에 순수 보장금액 28억이면 충분히 좋은 계약이 맞다고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거품이 잔뜩 낀 FA 시장에 박한이가 동참을 하지 않은 것일 뿐. 그러니까 계약 자체만 따졌을때는, 이전까지의 선례와 비교해봤을때 적정한 보장금액에 4년 계약까지 합의한, 이전 FA에서 홀대받았던 프랜차이즈를 예우해준 계약이 맞는데, 단지 며칠 뒤에 KBO 역사상 유례가 없는 역대급 거품시장이 열린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건 그냥 FA에 있어서만큼은 박한이가 운이 너무도 지독하게 없었고 영원히 고통을 받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음해인 2014년 FA 시장에서 통산 성적으로 비교도 안되는 조동찬이 박한이와 동일한 금액인 4년 28억에 잔류함에 따라 일격을 날렸고, 동갑내기인 박용택이 4년 50억을 받으며 또 한번 결정타를 맞았다(...)이쯤되면 착한게 아니라 그냥 바보멍청이(...)가 따로없다ㅠㅠ 급기야 화폐단위가 된 꽃미남 선수의 뒤를 이어 하니 지수라는 말까지 나왔을 지경. 그리고 지난 2년간 방어율 7점대를 찍으며 완전히 폭망한 송은범도 4년 34억을 받으며 쐐기를 박았다.

여기에다가, 통산 성적이 자신의 1/10도 안되는 차일목이 2년 4억 5천에 계약을 하면서 박한이는 더더욱 고통을 받게 되었다.

5. 기타

2005년 서부정류장 한 막걸리집을 찾은 박한이는 일행과 함께 7,000원치를 먹고[22] 자신을 알아보는 사장한테 서비스를 요구하나 막걸리집 사장은 머 먹은게 있어야 주지 라고 하면서 민망함을 줌.

2007년 4월 초에 대구 북구 칠성동2가 홈플러스대구점 앞에서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차를 몰아서 벌금을 문 적이 있다. 그런데 스티커 끊은 의경은 그가 박한이인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지만 2007 올스타전에서 열린 인사이드 파크 호텔의 조연이기도 하다. 이택근이 친 타구가 당시 우익수였던 박한이 쪽으로 갔었는데 시야에 라이트(조명)이 들어왔는지 박한이는 그 공을 잡지 못하고 엉거주춤해버린 사이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후 2013년 9월 21일 인사이드 파크 모텔로 복수하는 데 성공했다. 넥센이 5-4로 앞선 6회초 2사 1·2루에서 이택근이 박한이가 날린 중전안타 타구를 앞으로 달려오면서 잡으려다 그만 공을 뒤로 흘린 것, 전진 수비 시프트라 좌익수와 우익수는 인플레이와 동시에 내야 쪽으로 대시한 상황이었고 따라서 이택근이 알을 깐 순간 수습하러 올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타자 주자 박한이까지 홈으로 들어오면서 삼성은 순식간에 3점을 추가했고 이날 경기의 흐름은 인사이드 파크 모텔 랜드마크가 세워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놀랄 만한 기록으로, 한국시리즈 최다 안타, 최다 타점, 최다 득점, 최다 루타, 최다 사사구의 기록 보유자이다.[23] 홈런도 이승엽, 우즈에 이어 3위. 덤으로 포스트시즌 통틀어서도 최다 득점, 최다 사사구라는 기록을 보유중이다. 한국시리즈를 10회나 밟고도 2013년에야 처음으로 MVP를 받은 한편 온갖 누적 기록을 죄다 휩쓰는 것이 꼭 팀 선배인 양준혁을 닮았다. 역시 소리없는 강자 오오. 그러고 보니 타이틀 복 없는 것도 그렇고 연속 100안타 기록도 그렇고 양준혁과 굉장히 유사한 커리어를 걷고 있다! 하지만 여자복이 넘사벽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2013년 한국시리즈 6차전을 관람 중인 아내와 딸

동갑내기 부인 명진 씨는 탤런트로 대단한 미인이다. 오오 인생의 승리자. 사극 주몽에서 무덕이 역할로 출현한 적이 있어 팬들 사이에선 무덕여신으로 불린다. 참고로 양준혁이 소개시켜 줬다고 한다. 자기 코가 석자일텐데 연애 중이던 시절 야구도 잘하는데 여자친구도 예쁘다면서 야갤러들의 질투를 받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명진 씨가 야구장을 찾을 때마다 박한이는 떡실신을 당하는 새로운 징크스가 생기기도 했다. 결혼 후에는 깨진 듯 싶으며 2013년 한국시리즈 6~7차전 때 부인 명진과 딸 박수영 양이 직관을 와 열심히 응원했고 박한이는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하며 대활약했다.

여담으로 조명진과 연애하던 초반 두 달간 매일 통화하면서 전화통화로 딱 세 마디만 했다고 한다.
(조)"여보세요? → (박)"어데고?" → (조)"집" → (박)"밥은?" → (조)"먹었는데?" → (박)"알았다 쉬고 내일 얘기하자…" → 통화 끝
하도 짜증나서 이후론 조명진이 전화 받자마자,
(조)"집인데 밥은 먹었고 이제는 쉴려고" → (박)"그거 물어보려고 전화한거 아니고" → (조)"그럼 뭔데?" → (박)"뭐 먹었는데?" → (조)"김치찌개" → (박)"알았다. 그만 쉬고 내일 통화하자." → 통화 끝
그야말로 전형적이며 편견 속의 경상도 남자의 표본 그대로다.(…)

2011년 4월 17일에 득녀. 딸 이름은 박수영이다.억센 사투리 쓰는 어떤 부산 여자와 본명이 같다 갓 태어났을 때는 누가 봐도 딱 박한이의 딸인 걸 알 수 있었으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미인인 엄마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 참 다행이다 그리고 딸이 태어난 이후 3년 연속 삼성이 페넌트레이스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면서 3살 난 수영이 응원팀 우승횟수 >> 21살 어느 팀 팬 응원팀 우승횟수라는 드립도 나왔다. 베댓 2위 참조. 1위는 한화가 우승하면 배당이 높아서(...), 3위는 초등학교 때 마지막 우승 봤는데 지금은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단다.(...) 누구는 아빠 잘 만나서 해마다 우승하는데 왜 누구는 스무살 넘도록 우승을 못하니 ㅠㅠ 심지어 원년부터 롯데 응원하는 아재도 수영이보다 팀 우승횟수가 적다 그리고 2014년, 삼성이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달성하면서 4살 난 수영이 응원팀 우승횟수 >> 33살 어느 팀 팬이 지켜 본 우승 횟수가 되고 말았다.

2013년 양준혁 자선경기 때도 가족이 경기장에 왔었다. 그런데 유희관이 장난삼아 수영 양이 아끼는 삼성 어린이 회원용 배트를 타석에 들고 나가 휘둘렀다가 부러져버렸다.(…)[24]. 참고로 저때 유희관은 원래 배트도 들고 갔었다. 즉 이도류 이 후 해설과의 인터뷰에서 해설자들이 수영 양의 방망이는 어쩔꺼냐고 묻자 "두산걸로 새로 사주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가관이다. 물론 농담반 진담반삼아 한 소리고 애초에 수영 양의 방망이를 들고 간 것도 박한이에게 허락을 맡은 부분이다.

프로야구 드림나인 트레일러 영상에서 5성 박한이가 나오면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으나... 결국 출시될때는 5성 카드로 나오지 못했다.

지금은 은퇴한 프로농구 선수 김승현과 동국대 동기이며 김승현이 출연하는 아프리카 KBL 개인 해설방송에서 대학시절 박한이가 자신들이 놀고있는 노래방에 조용히 찾아와 말없이 술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데 음치중에서도 음치였다고..

6.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2001삼성 라이온즈 130 420 .279 117 25 3 13 61 77 17
2002 133 504 .272 137 24 2 10 47 89 13
2003 133 528 .322 170
(1위)
34
(4위)
1 12 59 113
(2위)
17
2004 132 503 .310 156
(4위)
26 2 16 63 81 13
2005 123 471 .295 139
(3위)
21 0 9 59 62 12
2006 126 471 .285 134 21 2 6 43 89
(1위)
15
2007 123 479 .267 128 12 1 2 27 68 10
2008 104 370 .316 117 17 2 4 41 57 5
2009 110 334 .311 104 29 2 2 36 48 7
2010 128 379 .301 114 21 2 11 63 64 5
2011 121 429 .256 110 19 2 4 30 77 8
2012 111 388 .304 118 19 4
(4위)
1 51 61 4
2013 112 394 .284 112 12 3 6 55 56 4
2014 125 472 .331 156 22 2 9 80 83 7
통산 1711 6142 .295 1812 302 28 105 715 1025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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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안타 안!타! 안타 안!타! 헤이 헤이 헤이~ 박한이.
  • [2] 이병규와 박한이가 공동 3위 138표 동률로 2004 외야수 골든글러브는 총 네명이다.
  • [3] 정확히 말하자면 현장에서의 평가가 박한 것. 장타력과 빠른 발, 고타율만 선호하는 현장의 눈 밖에 나기 쉬운 유형의 선수다. 출루율의 중요성이 재조명되면서 세이버메트릭스를 조금이라도 아는 팬이라면 누구도 박한이를 박한 이로박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이는 장성호도 마찬가지. 그리고 FA 계약으로 결정타를 먹고 말았다.
  • [4] 물론 강동우와 달리 팀에서 영광은 많이 누렸다. 왜 비운의 선수이냐면 FA 잔혹사 항목 참고.
  • [5] 달려라 하니의 그 하니 맞다.(...) 이우의 야구수첩에서 하니로 나온다.
  • [6] 큰 엉덩이 때문에 류중일 감독이 붙여준 별명(…)
  • [7] 참고로 삼성 신인 선수 중 가장 많은 계약금을 받은 선수는 바로 프로통산 1승을 위해 5억 3천을 갖다 부은 이분. 박한이와 마찬가지로 2014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삼성 신인 선수 계약금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삼성의 흑역사 중 하나.
  • [8] 10년 연속 100안타는 박한이가 한국프로야구 사상 네 번째로 달성한 기록. 그 전에는 어느 타격의 신(무려 16년 연속), 마해영, 장성호 셋 뿐이었다.
  • [9] 하지만 정작 한화의 외야진은 강동우, 최진행을 더해도 8개구단 중 최약체이다
  • [10] 시즌 4호이자 마지막 홈런이었다.
  • [11] 11년 연속 100안타는 이전에 한국 프로야구에서 양준혁(이 분은 16시즌 연속이다!!!)만이 기록하였다.
  • [12] KBO 통산 2위. 참고로 1위는 양준혁(16년), 3위는 이승엽(12년). 캬 삼뽕
  • [13] 박한이의 발이 느리다는 평가는 주루에서 나오는데, 주루에서 정신병자본헤드 플레이가 자주 나오고 쓸데없는 기습번트라던가, 본인이 호타준족이라는 평가를 듣고싶어하는 탓인지 무리한 도루를 하다가 도루사 당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 [14] 속칭 냄새 맡는다라고 표현하는, 킁킁이라는 별명의 원천이 되는 그 동작.
  • [15] 이것은 후에 난데없이 MSL 데스크 에서 까이게 되는 계기가 된다.
  • [16] 이 중간에 OSEN의 삼성 출입 기자인 손찬익 기자의 계약 오보 사건이 있었다.
  • [17] 박한이와 장원삼은 나이도 네 살 차이로 꽤 차이가 있고, 또한 박한이는 두 번째 FA물론 첫 번째 FA에서 홀대를 받은 것은 감안해야 하지만, 장원삼은 첫 번째 FA라는 차이 역시 존재한다. 포지션으로 봐도 박한이는 외야수지만 장원삼은 리그에 얼마 없는 검증된 선발, 그것도 좌완투수이다.
  • [18] 여기에 간혹 이종욱을 껴서 Big 5로 부르기도 했다.
  • [19] 한화에서 있었던 4시즌 동안 이대수는 연평균 128경기, 377타수 정도를 소화하면서 0.267의 타율과 5.75개 정도의 뜬금포를(경기수와 타수는 소수 첫자리, 타율은 소수 넷째자리에서 반올림) 쳐줬는데, 이 정도면 최소한 타격에서는 충분히 한 사람 역할을 해줬다고 볼 수 있다.
  • [20] 이들은 한 명은 처음부터 신고선수로 시작해서, 다른 한 명은 지명은 받았지만 군 복무중에 방출을 겪고 나서 신고선수로 다시 시작해 국대까지 승선했던 KBO의 대표적인 근성가이들이다.
  • [21] 용병타자로 충분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확실한 클린업 트리오를 꾸린다는 것과 한 자리가 비어 있다는 것은 무게가 많이 차이 나는지라... 강민호로 채우자는 생각도 있지만, 올해 강민호가 4번에서 보여준 모습을 감안하면 그건 무리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 [22] 전하나 막걸리하나
  • [23] 51안타, 27타점, 36득점, 72루타, 39사사구
  • [24] 애초에 어린이용 장난감 수준이라 실제 경기용 공보다 강도가 약한 건 당연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