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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기

last modified: 2020-03-06 13:08:17 Contributors

:대한민국 국군의 현직 대장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박한기(朴漢基)
[[]]
복무 대한민국 육군
기간 1983년 ~ 현재
임관 학군 21기[1]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
합동참모의장겸통합방위본부장[2]
주요 경력 육군 제99보병연대장
육군 제53보병사단장
육군 제8군단장
육군 제2작전사령관

Contents

1. 개요
2. 생애
2.1. 합동참모의장
3. 경력


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계급은 대장이며, 최종보직 동참모의장. 국군 역사상 6번째 군사관 출신 대장[3]이며, 국군 역사상 2번째 학군사관 출신 합동참모의장[4]이다.

2. 생애

1960년 2월 25일생이며 충남 부여군 출신이다. 울대신고등학교(27회)를 졸업하고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 79학번으로 입학했다. 1983년, ROTC 21기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5]

소위 임관 후 육군 제3보병사단 제23연대 제3대대 제11중대 소대장으로 군생활을 시작했다. 중위로 진급하여 동대대 훈련 및 작전항공장교, 동대대 정보장교를 지냈다. 대위로 진급하여 제22보병사단 제56연대에서 1차, 2차 중대장을 모두 지냈다. 이후 동연대에서 작전항공장교와 작전장교를 지냈고, 보병학교로 자리를 옮겨 전술학처 중대공격교관을 지냈다.

소령으로 진급하여 제17보병사단 제101연대 정보과장과 작전과장을, 동사단 작전처 훈련계획통제장교를 지냈다. 중령진급 후 제17보병사단 제102연대 제1대대장과 동사단 교육훈련처 교육훈련참모를, 합참 전투준비태세검열실 검열계획담당관을 지냈다. 이후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검열계획담당관, 제8군단 작전처 작전과장, 제23보병사단 작전참모를 지냈다. 대령 진급 후 제102보병여단 참모장, 제8군단 교육훈련참모, 제32보병사단 제99연대장, 제9군단 교육훈련참모, 제2작전사령부 교육훈련처 부대훈련과장과 계획편성과장을 지냈다.

2009년 준장으로 진급하여 제22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 제1군단 참모장, 제1야전군 관리처장, 학군교 교수부장을 지냈다. 2012년 5월, 소장진급 후 제53보병사단장과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을 지냈다. 2015년 10월,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8군단장을 지냈다. 중장 2차 직위를 맡지 않고 1차 직위를 맡고있던 2017년 8월, 대장으로 진급하여 육군 제2작전사령관이 되었다. 제2작전사령관으로 재임중이던 2018년 9월, 동참모의장으로 내정되었다.

상술했듯이 2작사와 2작사 예하부대에서 다수의 보직을 역임하여 후방 지역방위부대 근무 경험이 풍부한 인물이다. 이 점에서 최근 물의를 빚고 경질된 전임 박찬주 사령관의 공백을 수습하고, 2작사를 정상 궤도에 올릴 적임자로 평가된 듯.

이러한 사정[6]을 반영한 탓인지 취임식을 간소하게 거행했고, 날짜도 박종진 1군 사령관과 김운용 3군 사령관보다 하루 먼저 취임했다. 이유는 전임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되면서 경질형태로 이임했기 때문이고 본인이 8군단장 부임이전 직전보직이 2작사 참모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임식은 일체 없었다.

2.1. 합동참모의장

2018년 9월 17일, 신임 동참모의장에 내정되었다. 합동참모의장이 되기 위해선 국회 국방위원회의 청문회를 거처야 하기 때문에 전임자의 청문보고서가 통과되어야 비로소 본인의 청문 일정을 진행할 수 있다.

위의 경력에도 나오듯이 그동안의 주요 보직은 모두 육군 부대들만을 거쳤으며, 합참 본부를 비롯한 합동부대 근무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비육군 출신도 아니라서, 3군 전체에 대한 작전권을 책임지는 합참의장으로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여지가 있다. 현재로서는 지휘 역량보다는 국방개혁의 동력 유지를 위해 비육사 출신을 군 지도부에 중용한다는 정부의 정책 의지가 더 강조된 것으로 풀이된다.

10월 10일,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다.

10월 11일, 정식 취임했다. 박 의장은 취임식에서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그래서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멈춰서는 안 되는 길이 될 것”이라며 “우리 군은 국가와 국민이 이 길을 안심하고 담대히 걸어갈 수 있도록 힘으로 든든하게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합참의장에 취임한 이후 '선승구전'(先勝求戰)[7]을 자주 강조하고 있다. 사실상 그의 지휘 철학이라고 할수 있을 듯.

2019년 6월 강원도 척항 목선 귀순 사건에서 군의 경계 실패와 해명 과정에서의 미숙 등을 들어서 남영신 지상작전사령관 등과 함께 경고 조치를 받았다. 군 경력의 대부분을 후방 지역 부대에서 역임한 입장에서, 후방에서의 경계 문제가 부각된 이번 사건은 그에게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다.

3. 경력

  • 1983.06.∼1984.09. : 육군 제3보병사단 제23보병연대 제3대대 제11중대 소대장(소위)
  • 1984.09.∼1985.09. : 육군 제3보병사단 제23보병연대 제3대대 훈련 및 작전항공장교(중위)
  • 1985.09.∼1986.03. : 육군 제3보병사단 제23연대 제3대대 보장교
  • 1986.03.∼1986.09. : 육군보병학교 고군반(대위)
  • 1986.09.∼1987.10. : 육군 제22보병사단 제56보병연대 제2대대 제8중대장
  • 1987.10.∼1989.04. : 육군 제22보병사단 제56보병연대 제2대대 제5중대장
  • 1989.04.∼1990.04. : 육군 제22보병사단 제56보병연대 작전항공장교
  • 1990.04.∼1991.04. : 육군 제22보병사단 제56보병연대 작전장교
  • 1991.04.∼1993.11. : 육군보병학교 전술학처 중대공격교관
  • 1993.11.∼1995.08. : 육군 제17보병사단 제101보병연대 정보과장(소령)
  • 1995.09.∼1996.08. : 육군 제17보병사단 제101보병연대 작전과장
  • 1996.09.∼1997.06. : 육군 제17보병사단 작전처 훈련계획/통제장교
  • 1997.04.∼1997.05. : 국방정신교육원 대대장반
  • 1997.06.∼2000.04. : 육군 제17보병사단 제102보병연대 제1대대장(중령)
  • 2000.04.∼2001.05. : 육군 제17보병사단 교육훈련처 교육훈련참모
  • 2001.05.∼2002.11. : 전비태세검열실 검열계획담당
  • 2002.11.∼2003.11. : 육군 제8군단 작전처 작전과장
  • 2003.11.∼2004.11. : 육군 제23보병사단 작전처 작전참모
  • 2004.11.∼2005.12. : 육군 제102보병여단 참모장(대령)
  • 2005.12.∼2006.02. : 육군 제8군단 교육훈련처 교육훈련참모
  • 2006.02.∼2007.05. : 육군 32보병사단 제99보병연대장
  • 2007.05.∼2007.11. : 육군 9군단 교육훈련처 교육훈련참모
  • 2007.11.∼2007.11. : 육군 제2작전사령부 연구관[8]
  • 2007.11.∼2008.11. : 육군 제2작전사령부 교훈참모처 부대훈련과장
  • 2008.11.∼2009.12. : 육군 제2작전사령부 교훈참모처 계획편성과장
  • 2009.11.∼2009.11. : 행정안전부 중앙공무원교육원 제17기 고위정책과정
  • 2009.12.∼2010.06. : 육군 제22보병사단 작전부사단장(준장)
  • 2010.06.∼2011.05. : 육군 제1군단 참모장
  • 2011.05.∼2011.11. : 육군 제1야전군사령부 관리처장
  • 2011.11.∼2012.05. : 육군학생군사학교 교수부장
  • 2012.05.∼2014.04. : 육군 제53보병사단(소장)
  • 2014.04.∼2015.10. : 육군 제2작전사령부 참모장
  • 2015.10.∼2017.08. : 육군 제8군단장(중장)
  • 2017.08.∼2018.10. : 육군 제2작전사령관(대장)
  • 2018.10.~현  재 : 동참모본부 동참모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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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서울시립대 '79학번
  • [2] 통합방위란 적의 침투·도발이나 그 위협에 대하여 국군·향토예비군·민방위대 등의 각종 국가방위요소를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하여 국가를 방위하는 것을 말하며(네이버 사전 인용), 통합방위본부장은 중앙통합방위위원회(국무총리가 수장) 소속으로 군사조언을 한다.
  • [3] "국군 6번째"라고 쓰여있는데, "육군 6번째"이기도 하다. 육군의 주 병과인 보병/포병/기갑은 육사 출신만 맡는게 아니기 때문에 비육사 출신도 이론상 대장진급이 가능하지만, 해군은 기술군 특성이 강해서 사관학교가 주 병과인 항해를 전담하기 때문에, 공군도 기술군인 데다 학군 출신이 조종 특기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이론상으로는 나올 수 있지만 (사회에서 비행교육을 받고 임관하는 학군 출신들의 고등비행교육 통과율이 70 ~ 100%에 상당할 정도로 높고, 공사 출신은 50%대 안팎이다. 게다가 대령부터는 조종 + 공사 출신도 진급을 장담할 수 없다), 공사 출신과는 달리 학군 출신들은 대부분 민항 진출을 하기 때문에 (= 군에 남는 인원이 별로 없다), 그리고 육군 ROTC와는 달리 공군 ROTC는 항공대, 한서대와 교통대에서만 배출하여 인원이 적어서 학군사관 출신 대장은 절대로 나올 수가 없다. 또한 공군대장은 공군참모총장이 유일한데, 학군 출신들이 사관학교에 비해 1~2년 정도 진급이 더디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비행단장(준장), 사령관 (소장 ~ 중장) 정도까지는 가능할지 몰라도 참모총장은 파격적 인사를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즉, "국군 n번째 학군출신 대장"은 사실상 "육군 n번째 학군출신 대장"과 같은 말이라고 봐도 좋다.
  • [4] 첫 번째 학군 출신 합참의장은 김진호 육군 대장이다.
  • [5] 육사 39기, 3사 20기와 임관동기다. 용우 군참모총장이 육사 39기, 황인권 제2작전사령관이 3사 20기다.
  • [6] 박찬주 갑질
  • [7] 손자병법의 제4편인 '군형'(軍形)에서 유래한 내용으로, 원문은 "勝兵(승병) 先勝而後求戰(선승이후구전)"인 것을 4글자로 줄인 것이다. 쉽게 말해서 "싸우기 전에 미리 승기를 잡는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 [8] 육군 제2야전군사령부가 동년 동월 육군 제2작전사령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