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살해 사건

last modified: 2015-10-23 10:55:37 Contributors

실제로 일어난 사건! HELP!

이 문서가 다루는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것이며, 열람 및 수정 시 주의해야 합니다.
서술에 문제가 있을 경우 [http]위키워크샵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1990년대 한국에서 발생한 유괴 살인 사건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 희생 아동의 독특한 이름과 범인의 특이한 상태(임신부) 때문에 더욱 사회에 깊이 각인된 사건. 공중파에서는 거의 '박나리'라고 줄여 불렀다.

1997년 8월 30일 범인 전현주(당시 27세, 여성)는 서울 잠원동에서 영어학원을 나서던 박초롱초롱빛나리(당시 초등학교 2학년, 여아)를 전현주가 소품제작실 겸 창고로 사용하던 사당동 지하창고로 유인, 유괴하는 데 성공하고 당일 저녁 총 3차례에 걸쳐 박양의 부모에게 공중전화를 통해 2천만원을 요구했다. 전현주는 박양의 집에 첫 번째 협박전화를 한 후 박 양에게 수면제를 먹였으며 집에 보내줄 것을 울면서 애원하는 박양을 목 졸라 살해했다.

전현주는 유괴 다음날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박양의 부모에게 돈을 준비해 갖고 나오라는 내용의 전화를 하던 중 발신지 추적을 하고 나서 커피숍에 들이닥친 경찰의 검문에 걸렸다. 경찰은 전화가 걸린지 9분만에 신속하게 전현주를 포위망에 넣는데 성공했지만 커피숍에 있던 13명의 사람(여자 12명, 남자 1명)을 허술하게 검문하다가 임신 8개월인 그녀가 설마 범인이겠느냐는 안일한 판단으로 그녀를 보내주고 만다.

하태신 서장 (서초 경찰서): 임산부라는 말도 듣지 못했고 또, 같이 동행한 사람들이 신원을 확인하면서 항의를 하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전부다 돌려보냈습니다.

그녀는 이미 용의선상에 있었기에 경찰은 그녀의 자택 주변을 수사중이었는데, 이를 지켜보며 의아해한 전씨의 아버지가 9월 11일 경찰에 자신의 딸(전현주)이 범행 직후인 9월 1일부터 가출 상태임을 알렸다. 결국 통화 내역으로 꼬리를 밟힌 전씨는 9월 12일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검거되었다.

검거 당시 전현주는 임신 상태였으며 그 해 2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본래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본인의 의지와 달리 모 대학 무역학과를 거쳐 응급구조학으로 전공을 바꾸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는가 하면 사건 2년 전인 25세 때 다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총학생회 간부였다고 한다.[1] 하지만 낭비벽이 심했던 그녀는 결혼 후 3천만원의 빚을 진 상태였고 유괴를 생각한 이유도 2천만원의 빚을 변제하기 위함이었다.

박초롱초롱빛나리의 어머니 한영희 씨는 범인의 검거 소식에 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고 경찰서로 달려가 취재진들 앞에서 기도까지 했지만 머지 않아 딸의 시체가 발견됐단 소식에 넋을 잃고 말았고 그 충격에 빠진 모습이 공중파로 전국에 방영되었다.

유괴 소식에 PC통신을 중심으로 나리양 찾기 운동이 벌어졌고 공중파 뉴스에서도 범인의 육성을 들려주며 캠페인에 동참했다.

당연히 단독 범죄였기에 남편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그녀가 잡혀갈 때 남편은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 주저앉았다고 한다. 나중에 사건 재연을 할 때 "현주야! 아니지? 네가 그런 끔찍한 일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니잖아! 아니라고 말 좀 해줘!" 라고 울부짖는 남편의 절규가 공중파를 타기도 했다.

검거 후 범인은 자술서에서 검찰에 검거되기 전 부모가 자신에게 다섯 번이나 자살을 권유했다고 썼다. 속죄하는 길은 자살 뿐이며 부모도 곧 따라갈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약국에서 살충제까지 구입했다고. 경찰 조사 도중 전현주는 그런 부모가 걱정되었는지 동생에게 부모님을 잘 보살펴드리고 자살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당부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

범인은 전문가들에 의해 연극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았다.[2] 진술 도중에도 증언을 번복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공범의 존재를 주장하는 등 동정심에 호소하고 자신의 죄질을 낮추고자 온갖 이유를 동원해 변명하려 애썼다. 이 때 공범이 있다는 진술이 언론을 타면서 뉴스에서 공범에 의한 2차 피해를 경고하기도 했으며 모두 당연히 이런 끔찍한 범죄를 도와준 공범들의 존재를 믿었으나 얼마후 임산부의 단독범행이라는게 다시 밝혀지며 사회는 더욱 충격에 빠졌다.

검찰은 진술조차 거짓을 반복하는 그녀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해 사형을 구형했지만 결국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현재도 교도소 복역 중. 수감된 지 몇달 안 되어 딸을 낳았으며 남편이 아이를 데려갔다고 한다.[3]

또한 이 사건 이후로 길거나 눈에 잘 띄게 아이의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한동안 상당히 줄어들기도 했다.[4] 아이의 이름과 범죄 피해가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긴 하지만 아무래도 부모님들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 이때문에 한때 이름이 길면 단명한다는 속설이 돌기도 했었다.

----
  • [1] 위에서 언급했듯 커피숍에서 검문에 걸린 상태에서 그녀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 서울예술대학 후배들이 전현주의 본성을 모른 채 경찰에게 임산부를 거칠게 대하지 말라며 항의하는 통에 경찰이 그녀를 풀어줬다고 한다.
  • [2] 연극성 성격장애와 반사회성 성격장애는 같은 범주에 속한다(B군 성격장애 : 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운 유형).
  • [3] 범죄자가 임산부일 경우 교도소에서 출산을 하는데 이렇게 되면 가족이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아이는 교도소에서 키우게 된다. 한마디로 아이의 교육상 엄청나게 나쁜 환경이 되는 셈. 이 때문에 죄수가 출산하게 되면 다른 가족이 아이를 부양하도록 하며 가족이 없다고 해도 18개월이 지나면 보육원으로 보내 키운다.
  • [4] 다만 1993년 개정된 호적법 시행 규칙에 따라 이름의 글자 수가 성을 포함하여 5글자로 제한(즉 성이 한 글자면 이름은 네 글자 이하로, 성이 두 글자면 이름은 세 글자 이하로 지어야 한다)되었기 때문에 '박 초롱초롱빛나리'처럼 긴 이름으로 짓는 사례는 사건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도 이미 없어졌다. 긴 이름 자체가 없진 않으나 서류상 등록이 안 되므로, 이 경우는 가족이나 친구 등이 부르는 이름과 서류상 이름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