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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만

last modified: 2015-01-08 22:50:44 Contributors



SK 와이번스 No.7
박진만(朴鎭萬)
생년월일 1976년 11월 30일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서화초-상인천중-인천고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6년 고졸우선 지명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1996~2004)
삼성 라이온즈(2005~2010)
SK 와이번스(2011~ )
응원가 비스트 - Beautiful[1]

2006년 한국시리즈 MVP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박진만(삼성 라이온즈) 김재현(SK 와이번스)

2000, 2001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유지현(LG 트윈스) 박진만(현대 유니콘스) 틸슨 브리또(삼성 라이온즈)
2004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홍세완(KIA 타이거즈) 박진만(삼성 라이온즈[2]) 손시헌(두산 베어스)
2006, 2007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손시헌(두산 베어스) 박진만(삼성 라이온즈) 박기혁(롯데 자이언츠)

2001년 한국프로야구 페어플레이상
첫 제정 박진만(현대 유니콘스) 김한수(삼성 라이온즈)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7번
유영환(1993~1995) 박진만(1996~2004) 차화준(2005~200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번
김재걸(1996~2004) 박진만(2005~2010) 김상수(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7번
김재현(2005~2010) 박진만(2011~ ) 현역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진갑용 박진만(2009) 강봉규
SK 와이번스 역대 주장
정근우 박진만(2014) 조동화

Contents

1. 소개
2. 프로 입단 전
3. 현대 유니콘스 시절
4. 삼성 라이온즈 시절 타향만두
5. SK 와이번스 시절 고향만두
5.1. 2011 시즌
5.2. 2012 시즌
5.3. 2013 시즌
5.4. 2014 시즌
6. 국제 대회
7. 연도별 성적
8. 기타

1. 소개


"박진만, 그가 있는 곳이 메이저리그다.(수비만)"
"만약 지명 수비 제도가 있다면, 박진만은 50이 넘어도 현역일 것이다."

SK 와이번스 선수로서 한국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유격수. 인천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 중 한 명. 등번호는 현대 유니콘스 데뷔 시절부터 7번.
별명은 찐만두, 만두, 만두신을 거쳐 SK와 계약으로 탄생한 고향만두 등. 한만두와는 관계없다.

수비 범위가 상당히 넓고, 어깨 또한 강한 편이라 신체적인 능력으로는 유격수에 딱 알맞는 조건. 그러나 2010년경부터는 글러브질에서 조금씩 노쇠화가 드러나고 있고 고질적인 무릎부상[3]때문에 포구할 때의 자세가 많이 불안해졌다. 2010년 잦은 수비 실책의 원인.

2.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에 입문, 고등학교 1학년 때 투수에서 유격수로 전환했다. 인천고 2학년 때는 경기 도중에 상대 선수와 충돌하여 무릎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해 결국 수술받고 재활로 1년 유급을 했다.근거 기사

3. 현대 유니콘스 시절


다시는 볼수 없을 현대 유니콘스 시절의 박진만

고교 졸업 후 고려대 진학이 결정되었으나 박진만이 병무청에서 신검을 받고 나오는 것을 현대 스카우트가 납치했다. 현대 스카우트의 설득 끝에 결국 현대에 입단하게 되었다. 업계에서는 유명한 일화인 모양.1 2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당시 체육특기자 대학 진학 기준인 수능 점수 40점(200점 만점)을 넘지 못해 입학하지 못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승엽과 비슷한 케이스.
하여튼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입단하면서 그의 커리어는 시작되었다.

처음 프로선수가 되었을 때는 0.286을 기록해 어느정도 쏠쏠했지만...[4] 이듬해 97년에는 풀타임 뛰어서 0.185의 타율[5], 98년에는 2할 초반 타율 기록…. 이렇게 부진했음에도 꾸준히 기용했던것은 기본적으로는 박진만의 수비 때문이었지만, 백업 유격수인 염경엽의 타격은 훨씬 더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염경엽은 1996, 1997년 백업으로 출장하면서 0안타라는 위업(?)을 달성했다.[6]

멘도사 라인을 넘나드는 타격[7]에 수비는 어느 정도 하는 선수였지만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이던 김재박이 3년 동안 죽어라 훈련시킨 끝에 디펜딩 머신으로 탈바꿈, 90년대 후반부터 약 10년간은 KBO에서 수비만큼은 독보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 타격 또한 유격수로서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내주며 김재박 - 이종범의 뒤를 잇는 대형 유격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99년 타율이 0.263으로 오르면서 가능성을 보여주더니, 00년 시즌에 각성, 처음으로 골든글러브를 받았고, 01년도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는데 3할과 22홈런에 골든글러브를 받으며 유격수 계보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2002년에는 다시 멘도사 라인이 되었는데, 타율은 2할 초반으로 떨어졌고, 홈런도 12홈런으로 줄어들었다. 골든글러브는 외국인 용병이자 삼성의 우승 주역인 틸슨 브리또가 받았다. 2003년에는 부활에 성공하지만 골글은 유격수 최초의 100 타점을 기록한 홍세완이 받았다. 2004년에도 그 기세를 이어나가 맹활약.

신인 야수를 키워내는데 나름대로 뛰어난 현대 유니콘스[8]에서 육성한, 이택근과 함께 단 두명 뿐인 현대 순혈 A급 야수이며 이택근이 포수였다가 외야수로 전향한 케이스란 걸 감안하면 현대가 제대로 키워낸 유일한 톱 클래스 야수. 투수쪽으로는 김수경,조용준,송신영(그러나 이 투수들은 타자들의 비해 기복이 조금 높지만 현대에선 이 외에도 거의 있으나, 한 해 반짝하고 버로우 타는 몇 몇 선수들이 꽤나 많다.)이 있긴 하지만.

현대에서 4번 우승했으나 현대가 투수왕국이었던 탓인지 정민태, 조용준, 퀸란 셋의 네임벨류에 밀려 한국시리즈 MVP를 받지 못했고 삼성으로 건너가서 2005년에는 오승환이라는 대형 신인에 밀려 한국시리즈 MVP를 받지 못하다가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명품 수비를 보여주고 우승하고 나서야 한국시리즈 MVP를 받았다.

그리고 심정수와 함께 4년 연속 리그 팀 우승 선수. 현대(2003,04),삼성 (2005,06)시절로, 과거 해태처럼 같은팀 4년연속이 아니고 FA로 영입이나 혹은 트레이드로 건너와서 맹활약을 해서 붙인거지만 정작 모르는 팬들이 꽤나 있을정도다

2004년 대구구장에서 벌어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는 배영수퍼펙트 게임을 저지했다. 7회 2사 1,2루 상황에서 김한수가 친 중견수 앞 안타성타구를 그림같은수비로 잡아냈으며 8회에는 볼넷을 골라 그 게임에서 최초로 1루로 진루한 현대타자가 되었다. 배영수가 퍼펙트, 노히트노런은 커녕 승리투수조차 되지 못하게 막았다.그래서 삼성에서 39억까지 질렀는지도 모른다

4. 삼성 라이온즈 시절 타향만두


FA계약으로 이적한 삼성 라이온즈 시절

2004년 심정수와 함께 FA계약으로 삼성으로 이적했다. 근데 골든글러브 시상식 참여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다...

김재박이 직접 현역시절 달던 7번을 물려주면서 최고의 유격수로 키워 정상급의 선수로 만들어 놨건만 FA때 삼성으로 이적하여 팬들과 구단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9] 당시 언론들은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레알 마드리드 C.F.를 본뜬 "레알 삼성"으로 부를 정도였다. 한 마디로 삼성판 갈락티코 정책. 박종호에 이어 박진만까지 떠났기 때문에 현대 해체 이후 그대로 선수단을 물려받은 넥센은 강정호가 등장하기까지 내야 센터라인 암흑기를 거친다.

김재박이 삼성과 선동열을 더 싫어하게 된 원인 중 하나라는 이야기도 있다.[10]
그런데도 박진만 본인이 존경하는 유격수는 여전히 김재박이라고... 어이.[11]

인조잔디의 단단함이 탁구장 수준일 정도로 돈성에 걸맞지 않게 시설이 낙후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삼성으로 이적한 후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신음하였다. [12]

그럼에도 불구하도 수비력은 여전, 2007년에는 6년 만에 3할 타자로 복귀하기도 했다.이 카드때문에 수없이 현질을 한 마구마구유저가 많다 우승복은 타고났는지 2003~2006까지 주전으로 활동하면서 해태 타이거즈 선수가 아닌 4년연속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되었다. 더욱 흠좀무한건 4년연속 정규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었다는 점. 부상으로 2006년을 홀딱 말아버린 심정수는 잊자

2009년에는 진갑용에 이어서 삼성의 차기 리더가 되었다. 2009 시즌 종료 후 봉느님에게 넘어갔지만.

하지만 2010 시즌에는 돌글러브로 퇴화(?), 한달 반만에 실책 9개(!!!)를 저지르며 내야 불안정화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 하도 수비가 불안해지니 5월 17일, 결국 멘도사 라인 칠 때도 안 가봤던 2군을 가게 되었다. 당연히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서도 빠지면서 사실상 자동적으로 국가대표 유격수에서 은퇴[13]하였다. 아예 6월 15일 화요일(...)[14]최훈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물만두로 변신(..)하였다.

삼성으로 이적하고 나서 슬슬 문제시된 무릎부상 때문에 이제 유격수 수비가 예전만큼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고 박기혁, 강정호, 나주환, 손시헌같은 후배 유격수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앞선 2010년 10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2차전부터는 팀 내에서도 유격수 자리는 김상수에게 물려주고 2루수 겸 6번타자로 나오기도 했다. 2루수를 처음 해보는 것에도 불구하고 수비도 나름대로 괜찮았고 4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타석에서 활약을 했다. 하지만 팀은 스코어 4:3으로 패했다.

2010년 10월 1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선발 2루수 겸 6번타자로 출장하여 포스트시즌 최다 출장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팀이 스코어 1:0으로 앞선 1회말 1사 만루에서 2타점 적시 2루타도 쳐내는 등 5타수 1안타 1볼넷 2타점을 기록했다. 팀은 스코어 8:9로 재재역전패당했다.

박진만은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0타수 3안타 1볼넷 3타점, 타율 .300, 장타율 .400, 출루율 .364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박진만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7타수 무안타 2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0, 출루율 .222를 기록했고, 팀은 4연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진만은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17타수 3안타 2볼넷 3타점 1득점, 타율 .176, 장타율 .235, 출루율 .300을 기록했다.

2010 시즌 후 방출을 요청하여 삼성과 헤어지게 된다.

여담이지만 삼성 시절 받은 응원가는 용짜르트김용일명작망작으로 유명하다. 박진~만을~사랑~해요~삼성의 박~진만~사랑~해요를 반복하는데, 이 응원가는 정말 힘이 빠진다. 박재상 응원가와 원곡이 같은데, 그 응원가는 KBO 최고의 응원가 중 하나로 뽑힌다(…).

5. SK 와이번스 시절 고향만두


2010년 11월 11일. 선수의 요구로 삼성은 박진만을 자유계약 선수로 풀었다. 내년까지 남아있었다면 6억을 받을 수 있었지만 포기. 사유는 '더 많은 출장기회' #
그리고 국보급 유격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롯데와 삼성 빼고 나머지 구단에서 모두 영입 제의를 받다가, 이후 진행된 협상에서 연봉 2억5천만원, 옵션 5천만원에 1년 SK 와이번스행을 확정지었다. 등번호는 마침 7번을 쓰던 김재현이 은퇴해서 7번 그대로 이어간다.

인천 팬들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소식이 되었지만, 한편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예상보다 별로 깎이지 않은 연봉과 인천고 성골의 부활을 마뜩치 않아하는 갤러들의 불만이 새어 나오고 있는 상황. 이것은 일명 '인고팸'들이라 불리는, 인천고 출신을 인천 야구의 적장자들이라 여기고 지나치게 두둔하는 무리들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1 시즌 봇물 터지듯 터지는 프런트의 병크 중 하나로 박진만의 영입을 반대했다는 설이 나돌면서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좋아졌다.

SK로 이적한 후 응원가로 비스트의 Beautiful을 개사한 응원곡을 쓰고 있다. 이성열, 채태인의 2010년 응원가, 박용택, 고동진, 이상훈(타자, 한화 시절)의 응원가와 더불어 한국 가요를 개사한 응원가이다.

5.1. 2011 시즌

2011시즌에 늘 수비가 불안불안 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다 9일나주환이 보고있는 가운데 문학 삼성전에서 9회에만 연속으로 2개의 실책을 범했다. 그리고 만두는 2군으로….

4월 27일 1군으로 올라와서 지명타자 이호준의 대타로 투입 되어서 첫 타석 번트 그리고 다음 타석에 안타를 기록 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4월 28일 대타로 나왔으나 서재응에게 헤드샷을 맞고 교체되었다(...) 일단 CT 검사 결과로는 이상은 없다는데 맞았을 당시 사진 보면 맞은 부위의 혹이 눈에 확 뜨일 정도로 났다.

그래도 정밀검사 결과가 나쁘지 않았는지 계속 1군 잔류중. 올릴 선수도 별로 없긴 하지만 사실은 데드볼을 맞았을때 뇌를 반대편으로 이동시켰기때문에 멀쩡할수 있었다고 불암콩콩코믹스 에서 밝히기도 했다. 뭔가 이상한데?

2011년 6월 30일 한화 이글스와의 홈 경기에서 1회 2실책대한민국 최고 유격수라더니?, 뇌주루, 견제사 의 쓰리런을 달성하여 팀의 패배에 일조하였다. 덕분에 솩갤에서는 돈성에서 보낸 첩자라고 까이고 있다. 나는 전직 삼성맨이다!

그리고 전반기 마지막 경기인 7월 21일 삼성과의 3차전에서 선발 1루수로 출장 이게다 박정권이 좌상바라서 그런거야 1:1 상황이던 9회초 2스트 3볼 상황에서 안지만의 공을 제대로 맞춘 결승 솔로 홈런으로 팀의 역스윔에 공헌하며 그날 mvp에 등극. 덕분에 요번엔 솩갤에서 칭송하고, 돈갤에서 패드립까지 해대며 까대고 있다. 카도쿠라 방출건 때문에 더욱 열이 받아 있었으니.... 나는 영원한 인고인이다!

2011년 시즌 전반기 3할의 타율로 SK의 타선을 이끌었다. 아마 전직 삼성맨이라서 여름되면 미치는 모양이다#


그의 앙증맞은 발놀림

문학에서 스코어 8:2로 어이없게 무너졌던 두산전에서는 그날의 유일한 타점(2점 홈런)과 끝내기 뜬공을 모두 기록했다.

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 2, 3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6번타자,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15타수 무안타 2볼넷으로 타율, 장타율 0, 출루율 .118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 2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 3,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8번타자, 5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17타수 3안타 1희생플라이 2타점 타율 .176, 장타율 .235, 출루율 .167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1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8번타자, 3, 4, 5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11타수 2안타 1볼넷 1득점 타율 .182, 장타율 .182, 출루율 .250을 기록하였는데, 특히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몰린 10월 3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그는 완전 X맨으로 활약, 두 번에 만루 기회에서 모두 삼진(2회, 4회), 그리고 7회 1사 1, 2루 상황에서 병살쓰리런병살타(…)를 쳐 팀이 스코어 0:1로 지는데 아주 단단한 한 몫을 하였다.누가 전직 삼성맨 아니랄까봐 그래서 솩갤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또 까였다(…).

2011년 포스트시즌 성적은 43타수 5안타 3볼넷 1희생플라이 2타점 1득점 타율 .116, 장타율 .140, 출루율 .170으로 공격면에서는 아주 처참한 모습을 보였다. 포스트 시즌 내내 풋워크가 시즌 중에 비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가 달고 있는 고질적 부상 중 하나인 무릎에 물이 찬 때문인 듯했다.

5.2. 2012 시즌

노쇠화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장하지는 못했으나 나올 때마다 영양가 있는 플레이를 하였고, 수비에서만큼은 여전히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다운 활약을 해 주었다.

2012년 시즌 성적은 57경기 138타수 타율 .210 29안타 5홈런 19타점 12득점 3도루 14볼넷 27삼진 무실책.

2012년 10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타격에서는 3타수 무안타 2피삼진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대신 스코어 1:1로 팽팽했던 6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대타 박준서의 안타성 타구를 호수비로 잡아내고 1루 송구로 병살로 연결시키며[15] 철벽 수비를 해냈다.
이 수비 덕분에 롯데는 역전에 실패했고, 팀은 스코어 1:2로 승리했다. 이날 박진만은 김광현의 부활투에 묻히긴 했지만 팬들로부터 숨은 MVP로 칭송받았다.

박진만은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 5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 2,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8번타자, 3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13타수 3안타 2득점, 타율&장타율&출루율 .231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1패로 지던 2012년 10월 25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3:8로 지던 9회초 2사 1루에서 7번타자 임훈의 대타로 나와 포스트시즌 통산 최초 100경기 출장의 대기록을 달성하였지만 2구만에 좌익수 플라이로 아웃되었다.

10월 2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2012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6:3으로 지던 4회말에 선두 타자로 나와서 상대 선발 투수차우찬에게 솔로홈런을 쳐서 팀의 스코어 8:12 역전승에 공헌했다.
이날 박진만은 선발 유격수 겸 8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3안타(2루타 1) 1홈런 1타점 2득점을 기록하였다.

박진만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1, 3, 6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8번타자, 2차전은 대타, 4, 5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17타수 5안타 1홈런 1타점 2득점, 타율&출루율 .294, 장타율 .529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진만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0타수 8안타 1홈런 1타점 4득점, 타율&출루율 .267, 장타율 .400을 기록했다.

5.3. 2013 시즌

나주환이 돌아오고, 최윤석김성현이 있기 때문에 출전 기회가 줄어들 것으로 보였으나, 이 셋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주전 유격수로 출전하였다. 6월 20일 기준 성적은 0.281, 2홈런, 10타점으로 좀 모자라긴 하나 SK의 하위타선이 망해버렸기 때문에 하위타선의 핵이 되었다. 그리고 순수하게 유격수로 뛰면서 통산 150홈런을 쳤고, 동시에 통산 1,500안타를 달성했다.

5.4. 2014 시즌

FA로 이적한 정근우의 뒤를 이어 2014년 SK 와이번스의 새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이만수 감독이 선임하는 대신 선수단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는데 조인성을 단 2표 차이로 간신히 누르고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년 시무식에서 "프로는 2등은 필요 없다."란 말로 2014년 각오를 밝혔다. 삼성 시절 감독양반한테 배웠나

김성현이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출장 기회가 별로 없다가 4월 11일 삼성전에서 선발로 출전해서 4타수 3안타를 때리면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며 특히 2대2 동점이던 9회초 안지만을 상대로 팬스를 맞추는 2루타를 치면서 역전에 기여했다.

다음날인 12일에는 수비를 하다 무릎부상을 입었다. 그대로 들것에 실려갔으며 이후 단순 타박상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하지만 아직 며칠뒤에 정밀검진이 남아있는 상황. 결국 휴식기를 감안해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다만 주장이라는 점 때문인지 선수단과는 동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 타박상이라는 기존의 진단과 달리 정밀검진 결과 전방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올 시즌은 사실상 스톱이 될것으로 보인다. 타격감도 좋았는데 팀이나 본인이나 팬들이나 서로 너무너무 아쉬운 상황이다. 일단 재활판정이 나왔고 4월 넷째주는 거르고선 그 다음주부터 선수단과 계속 동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 이 망할 야구장

당초 큰 부상이라 시즌 아웃을 예상했지만 회복속도가 빨라 8월 15일부터 2군경기에 출전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9월 확대 엔트리 5인에 포함되어 1군에 합류하였다!

당초 시즌 끝나고 FA 신분 자격 요건을 충족했지만 군에 입대하는 이원석과 함께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본인은 고향팀인 SK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6. 국제 대회

WBC 때와 베이징 올림픽 때 국가대표로 계속 뽑혀 군 미필자 유격수를 보유하는 타팀 팬들에게 까이기도 했는데 특히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일부 두산 베어스 팬들이 손시헌이 박진만에게 밀려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며 'Why not 손시?' 이라는 플래카드를 걸기도 했다.[16]

2006년 1회 WBC때도 인상적인 활약으로 상대팀들의 칭찬을 받기도 했다.#

7.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현대 유니콘스 115 361 .283 102 21 2 6 38 49 11 27 .402 .332
1997 112 351 .185 65 11 0 5 29 29 7 28 .259 .245
1998 123 330 .203 67 17 0 4 33 36 8 24 .291 .257
1999 128 395 .263 104 21 2 3 42 50 5 43 .349 .334
2000 129 420 .288 121 30 4
(5위)
15 58 67 0 42 .486 .350
2001 122 383 .300 115 13 0 22 63 72 9 51 .507 .380
2002 126 401 .219 88 24 0 12 57 47 2 52 .369 .306
2003 129 421 .283 119 26 0 16 48 68 6 68 .458 .379
2004 129 434 .286 124 18 0 17 69 65 5 57 .445 .365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5삼성 라이온즈 85 281 .249 70 16 0 7 44 34 5 41 .381 .343
2006 115 382 .283 108 22 1 11 65 54 10 63 .432 .380
2007 100 333 .312 104 25 0 7 56 34 5 57 .450 .408
2008 104 332 .244 81 12 3 5 38 28 5 47 .343 .335
2009 76 223 .256 57 11 0 6 29 22 2 28 .386 .333
2010 46 131 .237 31 5 1 1 14 14 1 25 .313 .354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1SK 와이번스 100 282 .280 79 18 0 6 39 42 6 39 .408 .363
2012 57 138 .210 29 7 1 5 19 12 3 14 .384 .281
2013 100 276 .250 69 14 1 3 24 25 3 42 .341 .346
2014 19 32 .250 8 1 0 0 2 3 0 2 .281 .294
통산 1915 5906 .261 1541 312 15 151 767 751 94 750 .396 .342

8. 기타

현대와 삼성에서 우승반지를 6개[17]나 먹은 반지캡터. 특히 2003~2004년에 현대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경험하고 삼성으로 이적해 2005~2006년에 또 다시 우승반지를 가져갔다.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8개 1명, 7개 3명, 6개 2명(박진만 포함) 뿐이라 6개만 되어도 충분히 반지캡터라 부를 수 있었지만, 2011~2014년 삼성이 4연패를 하면서 삼성의 고참 선수들이 대거 6~7개의 반지를 갖게 되면서 다소 밀린 감이 있다. 그래도 서로 다른 팀 소속으로서 우승반지를 획득한 선수로는 최다이다.

군 문제와 관련하여 2000년에 아버지가 병역 브로커에게 면제청탁을 부탁하며 뇌물을 건네 구속되었다는 흑역사가 존재한다. 그 해 시드니올림픽 동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아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는 한다.[18]

탤런트 박민영이 시구할 때 2010년 10월 18일 삼성 라이온즈-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3차전, 2011년 10월 19일 SK 와이번스-롯데 자이언츠의 플레이오프 3차전 두 번 모두 박진만의 소속팀 유니폼, 그것도 박진만의 등번호인 7번을 달고 시구를 했다.

사족으로 프로야구매니저의 SK, 삼성 듀얼팀컬러로 타향만두라는 팀컬러가 업데이트되었는데 이건 아무리봐도...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인천 출신의 모 투수와 함께 "서울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배신만두그런데 무려 14년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를 기념한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진만은 "당시 수원으로 가면서 한편으론 상당히 아쉬웠다"며 "인천에서 경기하면 편안했는데 고향을 떠나 선수 생활을 하며 안정감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인천 토박이로서 인천을 위해 꾸준히 야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포부까지 전하면서 오랜 루머의 종지부를 찍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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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와이번스의 박진만~ 박진만~ 시간이 지나도~ 대한민국 최고 유격수 SK와이번스 박진만 최고의 박진만~
  • [2] 2004년의 성적은 현대에서 기록했지만,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에 삼성으로 FA 이적하는 바람에 공식 기록에는 삼성으로 되어 있다.
  • [3] 앞에서 말했듯이 고교시절 무릎인대 부상도 한 원인이다.
  • [4] 그러나 타점 영양가가 매우 떨어졌기에 잘 쳤는지조차 기억이 가물…헌데 당시 현대 창단 원년인 1996년에는 박재홍을 빼면 타선이 너무나도 빈약했던지라 입단 첫 해 박진만의 성적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 [5] 이 기록은 규정타석을 넘겨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는 시즌 타율 기록으로는 한국 프로야구 역대 통산 최저 타율이다. 한마디로 1982년 백인천이 기록한 0.412의 정반대에 위치하고 있다.
  • [6] 참고로 염경엽 항목에도 있지만 염경엽 커리어 하이가 1994년의 0.212였다. 진짜 커리어 하이다!!
  • [7] 인천고 시절 봉황기 타격왕을 차지한 적이 있다. 유격수지만 평타는 꾸준히 쳐주는 선수. 2012년 시즌까지 평균 타율이 0.262이다. 단, 기복은 있는 편.
  • [8] 이는 검증된 선수가 아니면 안쓰는 김재박 감독의 성향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 [9] 당시 현대팬들은 물론이요 구단 역시 굉장히 충격이 컸었다. 2004년 시즌이 끝나고 FA 풀리면 당연히 구단에 남았을 거라고 누구나 믿었었다. 그만큼 박진만이 팬들로부터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였는지 짐작하게 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재정이 열악했던 현대 구단도 심정수는 그렇다 쳐도 박진만은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까지 했었다.(…)
  • [10] 이 당시 나온 김재박의 명언(?)으로 "돈으로 선수 모으면 우승 못할 팀이 어디 있나?"가 있다. 관련 기사 왠지 찔린다 선동열은 이 말에 열받은 후 FA 영입보다는 내부 육성을 통해 성적을 내는 쪽으로 스타일을 바꿔버렸다. 장원삼을 2009년 말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했지만
  • [11] 이건 당연한 말이다. 박진만은 1996년 현대 원년멤버요, 창단 첫 해부터 입단한 '창단둥이'였다. 그렇게 구단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으니, 자신에게 있어 여전히 애착이 강한 건 당연하다. FA로 삼성으로 이적했을 때 현대 구단 홈피에 가서 '죄송합니다'라고 글을 남겼더니 수많은 팬들이 욕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사랑을 받았고, 팬들이 남아주기를 바랐던 마음이 강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 [12] 더구나 직전까지 현대에서 뛰던 홈구장이 당시까지 경기장 펜스 안쪽만큼은 국내 최고 시설이었던 올타리 밖의 시설이 엉망이어서 그렇지 수원구장이었던걸 생각하면, 한마디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옮긴거였다. 인천 시절에도 인조잔디 아니었냐고 할 수 있지만 인천구장은 외야에만 인조잔디만 깔려있었고, 내야는 전 구역이 흙이었으므로 박진만이 경기 중 인조잔디를 밟을 일은 별로 없었다.
  • [13] 박진만은 1976년생이다. 다음 국가대표 선발 기회인 3회 WBC는 2013년에야 열리는데, 그때쯤 되면 나이가 서른 여덟이다.
  • [14] 2011년 기준, 화요일은 최훈 카툰이 나오지 않는 날이다.
  • [15] 박준서의 타구는 유격수 플라이 아웃으로 기록되었고, 2루로 뛰었던 홍성흔이 미처 1루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아웃되었다.
  • [16] 사족으로 이 사건의 웃음포인트는 자기 팀 선수 이름도 제대로 몰라서 손시을 손시으로 적은 두산 팬. 이 플래카드는 한국어 발음이 능숙하지 않은 리오스가 손시헌의 대표팀 탈락을 두고 한 말을 기자가 그대로 기사화하자 리오스의 발언을 인용한다는 의미에서 의도적인 오기를 한 것이다. 그런데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국대로 선발된 손시헌의 영문 표기는 정말로 SON Sihyun이 되어 있는 상태다. 뭐지?
  • [17] 권혁, 선동열, 조동찬과 우승반지 개수가 동일. 참고로 이 분야 최강은 해태의 김정수로 해태에서 8번 진출하여 8번 우승반지를 꼈다. 그 다음으로 역시 해태의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그리고 삼성의 진갑용, 박한이, 배영수의 7개다.
  • [18] 박진만 외에 이 때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손민한, 정수근, 장성호, 이승호(SK)가 있다.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였던 정대현은 이미 면제를 받았기 때문에 병역특례와는 무관하다. 당시의 몇몇 기사에서는 정대현이 병역특례를 받았다고 나온 것도 있으나 이후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기사가 전혀 없다는 점을 봤을 때 당시 기자들이 미처 파악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