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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태

last modified: 2015-04-12 22:39:4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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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No.97
박영태(朴榮泰)
생년월일 1959년 8월 25일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시
학력 마산상고-동아대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3년 롯데 자이언츠 1차 지명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1983~1992)
지도자경력
롯데 자이언츠 수비코치 (1993~2003)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04~2005)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2006)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2007~2010)
NC 다이노스 2군 수비코치 (2011~2012)
한화 이글스 2군 수비코치 (2015~ )

Contents

1. 개요
2. 불사조

1. 개요

롯데 자이언츠의 내야수. 前 1군 수석코치. 前 NC 다이노스 수비코치이자 現 한화 이글스 3군 수비 및 작전코치. 등번호는 16번(선수) - 86번(코치)

마산상고, 동아대학교를 거쳐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이후 1992년까지 선수로 생활하다 1993년부터 코치로 변신.

통산 포지션은 우익수2루수.[1]
통산 기록은 10시즌 동안 총 677경기에 나와서 타율 0.227, 홈런 2, 타점 106, OPS 0.567 을 기록. 커리어 하이는 1985 시즌으로 타율 0.269, 2홈런, 24타점, OPS 0.685를 기록.

저 포지션 중 경기당 통산 실책율 0.121을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진기록의 소유자다. 김주찬손아섭의 수비를 보면 이해가 간다. [2][3]

선수 시절의 기록을 보면 알겠지만 공/수/주 모두 좋은 선수였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다만 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결정적인 호수비(2루수 플라이 직후 홈송구)를 하며 우승에 나름(...)대로 기여를 하긴했다.공수주가 좋은 선수는아니었으나 박정태가 등장하기 전까진 롯데의 2루수자리를 차지하며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이기도했다.

1984년, 1992년 롯데의 2번밖에 없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경험했다. 그리고 1992년 우승 후 바로 은퇴. 그 이후 우승을 못하는 롯데 자이언츠. 박영태 매직!!!

여담으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었던 한일전의 마지막 아웃카운트 포구자다. 정확히는 내야플라이 아웃.

2. 불사조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이 사람이 왜 코치를 계속 하냐고 물으면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양상문과 더불어 롯데 자이언츠 팬들에게 악의 축 취급을 받고 있는 코치로 1993년부터 코치로 있으면서 롯데 자이언츠8888577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여러번 코치진이 교체되는 중에도 뛰어난 코칭스킬 없이 굳건히 자리를 지킨 진정한 철밥통의 귀감이다. 오오 박공무원심지어 2010 시즌 들어서 죽어라 까이다 못해 분해되는 양상문도 중간에 한 번 나갔다가 왔지만 박영태의 경우 1983년에 입단해서 코치로 전업한 1993년 이후 2010년까지 코치를 맡았다. 1982년에 입단했으면 한국프로야구 시작부터 롯데랑 함께한 건데 OTL[4]

부산고, 경남고와 함께 막강한 학벌을 구성하고 있는 마산용마고 라인의 핵심으로 역시 무능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공필성이 아직까지 쫒겨나지 않고 수비코치를 하고있는 것도 이 사람의 자기 라인 지키기라는 말이 많다.

박영태 현 수석 코치가 걸어온길
1993 ~ 2000 - 수비코치[5]
2001 ~ 2003 - 1군 수비코치
2004 ~ 2005 - 1군 수석코치
2006 - 2군 감독
2007 ~ 2010 - 1군 수석코치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롯데 자이언츠의 암흑기였던 8888577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최강의 코치다. 2010 시즌 야구 관련 사이트에 뜬 인터뷰에 보면 자기도 능력이 없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나갈 생각은 없다고...인터뷰 전문.

...그리고 2011년 박영태의 친아들인 경성대학교 3루수 기민신고선수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그랬다가 롯데에서 방출된 후 이듬해 NC 다이노스로 아버지를 따라갔다.[6] 말 그대로 충공깽. 부산고등학교 동창인 손아섭은 예전에 박기민의 싸이에 차기 감독 아들이라고 남겼을 정도. 대를 이어 충성하라우야

...그런데 드디어 잘렸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 양상문 투수코치, 한문연 배터리코치 등과 함께 우수수 썰려나간 것. 이것으로 박영태의 시대는 과연 종언을 고할 것인가? 800만 롯빠들의 환호가 들린다

그래도 떠나갈 때의 인터뷰는 상당히 개념있었다. 후회는 없고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이 롯데 자이언츠에서 경험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며 담담하게 소회를 밝히고 쿨하게 떠났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징징거리는 양상문 코치보다는 나은 모습이였다.#관련기사

롯데 자이언츠에 있었을 때에는 정말 그 기나긴 비밀번호 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무능하다며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의 불화설도 있었으나 이후 밝혀지기로는 오히려 로이스터와 함께했고 그러다가 코치진 정리때 썰려나갔다고 한다. 심지어 3년 연속 4강 진출에 박영태 코치의 공도 있다는 로이스터 감독의 말도 있었던 걸 보면 뭔가 능력이 있기는 있는 듯[7][8]. 실제로 손아섭이 1할대 타율로 빌빌대 2군에 강등되어 장기간 숙성되고 있었을 때도 박영태는 손아섭이 언젠가 롯데의 핵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고 이는 그대로 적중했다.

2011년부터 KNN TV의 해설위원을 맡고 있다가 같은 해 6월 29일 NC 다이노스에 영입되었다. 보직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선수 선발을 위한 2군 선수 파악 업무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오옷 역시 불사조!

NC 다이노스, 박영태 코치 영입
이후 코치진이 개편되면서 수비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2012년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했다. 2013년부터는 MBC경남NC 다이노스 프로야구 중계에 해설자로 출연하였다.

2015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의 3군 수비 및 작전코치를 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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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박영태가 외야수로 활동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마구마구에서는 한장의 카드를 제외하고는 모두 우익수로 나와 있다. 스탯티즈도 정확히 나와있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2루수유격수가 맞는 포지션. 1984, 1985년 연감을 참고해도 박영태는 외야수로 한 경기도 나오지 않았다.
  • [2] 물론 중간에 2루수도 몇 경기 출장했지만 2루수로 출장했을 때도 절대 좋은 수비를 보여주지 못했다.
  • [3] 2010 시즌 롯데 외야수 중 수비가 불안하다는 손아섭의 경기당 통산 실책율도 0.027밖엔 안 된다. 그보다 역대 경기당 통산 실책율 100위 안에 드는 선수 중 유일한 외야수다. 나머지는 3루수 아니면 유격수.
  • [4] 어떤 의미로 보자면 현역시절부터 롯데를 지켰던 인물이라 할 수 있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 장태수와 유격수 류중일을 생각하면 이해할 듯 싶다. 하지만 장태수류중일은 박영태에 비해 코치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으며, 그 시기에 팀을 우승시켰지만 박영태는...
  • [5] 1군, 2군 구분은 표기가 되어있지 않음. 아시는 분 수정바랍니다.
  • [6] 2012 시즌이 끝난 뒤 경찰 야구단에 입대. 그러나 같이 입대했던 박세웅, 윤호와 달리 전역하자마자 NC에서 방출당했다. 이후 두산에 육성선수로 입단해 다시 기회를 얻었다.
  • [7] 다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인터뷰 스킬이 워낙에 모두에게 립서비스를 해주는 스타일이라서, 같이 일했던 코치에게 나쁜 소리할 위인이 못된다. 모르긴해도 양상문의 능력에 대해서 물어봤어도 싫은 소리 한 마디 안했을 것이다.
  • [8] 그런데 의외로 김성근도 은근히 박영태를 높이 평가하는지 LG시절 영입시도를 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