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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진

last modified: 2019-08-16 23:18:12 Contributors

Contents

1. 개그맨
1.1. 소개
1.2. 박성광과의 인연
1.3. 역대 출연작 목록 (가나다순)
2. 전 야구선수, 야구지도자
2.1. 연도별 성적


1.1. 소개

KBS 22기 공채 개그맨.

주로 신랄한 독설 개그를 담당한다. 유행어는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그건 니 생각이고~' 등이 있고 두분토론에 나와서 히트친 대사로는 '뭐? XX? X~X?', '소는 누가 키워 소는~', '남자의 XX을(를) 매도하지 마!' 가 있다.[1]

멀쩡한 사람 바보로 만드는 데에는 도가 튼 사람. 이 점에서는 황현희와 비슷한데 황현희는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당황스러운 전개를 이끌어내는 반면 박영진은 상황 설정이나 도입부부터가 정상적이지 않다. 그래서 황현희의 개그는 웃어 넘겨도 박영진의 개그 스타일은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대표 코너는 집중토론과 본격적으로 날리기 시작한 박대박, 춘배야. 봉숭아 학당에서의 이수근의 궤변론자 은사역과 뿌레땅뿌르국으로 출연했다.

뿌레땅뿌르국의 경우 박영진이 짠 게 아니고 김기열과 다른 개그맨들이 짠 코너인데 제정신이 아닌 캐릭터가 필요해서 박영진과 함께 했다.

예능에 나가면 말이 없다. 2010년 2월 18일자 해피 투게더에서 보여준 바에 따르면 예능에 나가면 몹시 긴장을 하고 평소에도 조용한 성격이며 술도 혼자 거울 보며 마신다고 한다. 언제는 동기들한테 "지금 술 마시고 있으면 전화 줘라, 지금 지갑 들고 계산하러 간다" 라고 단체문자를 돌렸는데, 전부 그럴 리가 없다며 아무도 연락을 안했다.

자신이 짠 아이디어는 굉장히 잘 살리지만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는 가장 못 살리는 개그맨 1위라는 평을 들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로 코너를 만들었는데, 정작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주목을 못 받고 연기를 한 사람만 주목 받는 것에 대하여 굉장히 미안해 하기 때문이라고. 반면 아이디어는 안 내고 다른 사람들의 개그를 주워먹는 개그맨 1위로는 박성호가 뽑혔다.(다중이 역시 원래 김준호의 아이디어였다)

허경환이 봉숭아 학당에서 '있는데' 역할에서 퇴출당하자 조금씩 주춤했다. PD는 박휘순과 박영진을 연결시켜 재미를 보았다. 설상가상으로 허경환이 두캅스의 기믹으로 화려하게(?) 귀환해서 이때까지 허경환을 괴롭힌 업보를 톡톡히 받고 있는 상태이며 2010년 2월 18일자 해피 투게더에서는 박성광과는 달리 크게까지는 활약하지 못했다.

2010년 봉숭아 학당에서 엑스파일 요원으로 활동했는데 '엉뚱한 내용 트집 잡는' 기믹은 여전했다. 할 말 다 하고 "정말(정마알) 미스테리합니다" 를 말하는 게 포인트. 겨울에 들어서는 졸업생이라는 캐릭터를 들고 왔다. "후배들아, ~같은 전형적인 방법으로는 못 ~한다! 나는 ~해서 ~했다 (어이없는 예시, 태클 걸리면) 이렇게 세상을 모른다!" 라는 레파토리.

두분토론에서 '남하당' 의 대표로 나왔는데 역시나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었다. 여기선 구한말 사람 컨셉으로 나와 처음에는 욕을 엄청 먹었는데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면 소는 누가 키울 거야, 소는!" 이라고 했던 것이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계속 썼다.

2010년 12월 25일, KBS 연예대상 코미디부문 남자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본인이 개그콘서트에서 신나게 갈구던 허경환과 그 전해 황현희에 밀려 우수상을 놓쳤던 윤형빈이 상을 차지하여 1년을 더 기다린 끝의 결실. 확실히 두분토론의 화력이 강했다.

개그를 할 때의 목소리와 원래 목소리의 갭이 크며 안경 벗으면 의외로 괜찮게 생겼다.

2012년 1월 영남지역 600개 농가들과 협약을 맺고 소고기 쇼핑몰 (주)우하하하를 열었다.

교무회의에는 2012년 5월부터 학생주임으로 등장,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사람 바보 만들기 스킬을 시전했다.

SBS 공채 출신 개그맨 박은영과 7년간 교제를 했다가 결별했다. 공교롭게도 박은영은 2012년 SBS를 떠나 KBS 27기 공채로 들어와 박영진의 후배가 된다.

높으신 분들이나 어르신들이 입을 법한 옷들이 매우 잘 어울리며, 입으면 왠지 그렇게 보인다. 그냥 정장인데 박영진이 입으면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심사가 뒤틀린 것 같고, 점퍼를 입어도 뭔가 있어 보이고, 경찰복을 입으면 경찰서장급이 된다. 헤어스타일을 특유의 가르마 같은 이마가 드러나는 스타일로 세팅한다면 그 포스는 몇 배가 된다.

1.2. 박성광과의 인연

박대박, 집중토론 등을 같이 했던 박성광과는 동아방송예술대학시절 '중독자'라는 개그써클을 같이 했고 무려 11년을 동거했으며 개그맨 시험도 같이 보러 다닐 정도로 매우 친한 사이다. 변기수는 "신인인데 너무 잘해서 둘이 찢어놔야 선배들이 숨통이 좀 트일 것" 이라고 한 적도 있을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는다.

박성광과 박영진은 개그 코드가 너무 맞아서 그다지 싸운 적이 없었다고 하는데, MBC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볼 당시 최종시험에 박성광만 붙고 박영진은 떨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러자 박성광은 시험을 포기. 그리고 그 다음해에 KBS 공채 개그맨 시험을 볼 때 반대로 박영진만 붙고 박성광은 떨어졌다. 그런데 박영진은 그냥 혼자서 봤다.

여기까지는 박성광의 주장. 박영진의 주장은 좀 다르다.

최종시험까지 "둘이서 하는 개그" 를 짜놨는데 최종시험에 혼자서 남게 되자 박영진은 박성광이 자기랑 같이 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2] 그런데 박성광은 자기가 떨어지자 잠적했다. 그래서 박영진은 삐져서 하루만에 코너를 만들어서 시험을 봐버렸고 당연히 떨어졌다.

그 뒤에는 우리 이러지 말자고 어떻게 화해했다고. 하지만 집중토론으로 시작된 박성광의 코너 내 처량함은 발레리NO까지 계속 유지되었고, 박성광이 위기탈출 넘버원 고정 MC가 된 뒤에도 처량함이 유지되었다. 결국 2012년 2월 5일 이기적인 특허소에서 박성광을 괴롭힌 업보(?)를 톡톡히 받았다.

1.3. 역대 출연작 목록 (가나다순)

2. 전 야구선수, 야구지도자


이름 박영진(朴英辰)
생년월일 1958년 7월 27일
출신지 대구광역시
학력 대구상고-성균관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1982~198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1982~1983)
팀 창단 박영진(1982~1983) 정성룡(1984)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1984)
허규옥(1983) 박영진(1984) 김순철(1985)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멤버.

대구상고 재학시절인 1977년 청룡기에서 팀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성균관대 진학 후에도 뛰어난 활약으로 이미 대학 3학년 때부터 실업팀 농협에서 스카우트 받았을 정도.[3] 대학 졸업 즈음에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연고팀인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그러나 대구상고 시절 때부터 혹사를 당했던 박영진의 어깨는 망가진 상태였다. 참고로 1977년 청룡기 대회 우승 당시에는 5일 연속으로 등판, 팀의 모든 경기를 책임졌다[4]

당시 대구상고에는 이만수, 오대석, 홍승규 등 야수 자원은 좋았으나 투수로는 박영진을 포함해 양일환, 권기홍[5]까지 겨우 3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동진 당시 대구상고 감독은 박영진을 유급까지 시켰다.[6]

이듬해 청룡기 대회 때도 거의 모든 경기를 혼자 책임졌는데 이때는 코피를 흘리면서 공을 던졌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를 떠맡았다.

결국 그러한 혹사 때문에 프로에서는 존재감이 없었고 3년간의 짧은 프로생활 끝에 은퇴했다. 은퇴 후 군 전역 후인 1987년부터 삼성 구단 직원이 되어 1998년까지는 2군 매니저를, 1993년까지는 1군 매니저를 맡았다. 이후 김성근 감독에게서 코치 제의를 받았으나 고사하고 영어학원 사업을 했다고. 아무래도 프로선수로서는 이룬 공로가 없음에도 코치를 하는 게 멋쩍었던 모양.

2000년 오대석 감독이 이끄는 모교 대구상고에 코치로 부임했고 2007년 10월 감독으로 부임했다. 아마추어 시절 뛰어난 투수였던 것만큼 투수들을 잘 키우는 한편 투수들을 혹사시키지 않는 투수 조련사로 유명하다. 하지만 2013년 5월 19일 북일고와의 경기에서 이수민이 178구를 던지는 등, 1경기 평균 139구를 던지게 하면서 혹사 논란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된 이수민의 계약에 직접 관여해 계약을 질질 끌면서, 이수민은 다른 신인들과 달리 팀에 합류하지 못하고 한동안 개인 훈련을 했다.

2.1. 연도별 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82삼성 라이온즈 6 8⅓ 0 0 1 8.64 16 5 3
1983 1군 기록 없음
1984 1 1 0 0 0 18.00 3 1 0
통산 7 9⅓ 0 0 1 9.64 19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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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두분토론 이전의 컨셉으로는 광고에 나오지 못했다. 상대를 비난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었다고.
  • [2] 개그맨 시험에서 '준비물' 로 사람을 데려가도 된다.
  • [3] 당시 3학년 때부터 장학금 형식으로 농협에서 급여를 받았고 대학 4학년 때는 계약금 500만원을 이미 받은 상태. 하지만 삼성에 입단하며 계약금을 반납했다고.
  • [4] 이는 당시 청룡기 대회에 패자부활전이 있었기 때문. 이 청룡기 대회에서 대구상고는 첫째날 승자준결승(승리), 둘째날 승자결승(패배), 셋째날 패자결승(승리), 넷째날 결승(승리), 그리고 다섯째날 최종결승(승리) 등 5일 연속으로 5번의 경기를 치렀다.
  • [5] 1984년에 삼성에 입단해 5년간 활동하고 은퇴했다. 현재 경주고 체육교사로 재직 중.
  • [6] 은퇴 후 대구상고 졸업생들과 같이 정동진 내외를 초빙해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박영진이 정동진에게 그때 왜 자신을 혹사시켰는지 물으니 "야, 이놈아! 우승하려고 그랬지!" 하고 대답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