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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석

last modified: 2015-03-09 19:31:59 Contributors

박영석, 朴英碩, Young Seok-Park
1963년 11월 2일 ~ 2011년 10월
한국의 산악인.

Contents

1. 어린 시절
2. 산악인으로서 삶
3. 사망
4. 그 밖에

탐험가 그랜드슬램(Explorers Grand Slam)을 세계 최초로 달성한 전설.

1. 어린 시절

그가 산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친구 때문이었다. 어릴 때 친구 집이 설악산에서 산나물과 기념품을 파는 가게를 했는데 그 친구 따라 우연히 대청봉에 올랐다가 산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회고했다. 그는 방학 때마다 설악산을 찾았다.

2. 산악인으로서 삶

그러다가 1980년 동국대 마나슬루 원정대가 등정에 성공하는 장면을 보고 산악인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다. 1983년 동국대 체육학과에 진학, 산악부에 들어갔다.

1993년 아시아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한 것을 시작으로 온갖 각종 기록을 세우며 기네스북에도 올랐다. 1993~2001년까지 세계 최단기간(8년 2개월) 히말라야 14좌 등정 기록을 세웠고, 2004년 세계 최단 기록으로 무보급 남극점 도달에 성공, 이듬해 북극점에 도달해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가 거둔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세계 최단기간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세계 최단기간 등정 (8년 2개월)
  • 세계 최초 6개월간 최단등정 히말라야 8,000m급 5개봉 등정
  • 세계 최초 1년간 히말라야 8,000m급 최다등정 (6개봉) 달성 (기네스북 등재)
  • 아시아 최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 (1993년 달성)
  • 동계 랑탕리 세계초등 (1989년 등정)
  • 세계 최단기간 무보급 남극점 도달 (2004.1.12.)
  • 북극점 도달 (2005.4.30.)
  • 인류최초 산악 그랜드 슬램 달성 (2005.4.30.) (기네스북 등재)
  • 단일팀 세계최초 에베레스트 횡단 등반 성공 (2006.5.11.)
  • 2007 중국사천성 희조피크 세계초등
  • 2009 에베레스트 남서벽 코리안 루트(새로운 등반길로) 등정

게다가 그는 등정주의가 아닌 등로주의, 즉 새로운 산악길을 만들고 그만큼 험하디 험한 산길로 가며 도전하던 사람이었다. 그러기에 몇번이고 죽을 고비를 겪었는데 1994년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 도중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떨어졌지만 몸에 묶은 로프 덕에 살아났다. 1995년에는 눈사태로 파묻혔다가 살아났고, 1997년 다울라기리에서는 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졌다가 겨우 나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방침을 가장 중요시하던 그는 선배 엄홍길과 더불어 전설적인 산악인으로서 이름을 날렸다.

3. 사망

2011년 10월, 후배인 강기석(33)·신동민(37)과 같이 안나푸르나 새로운 등반길에 오르는 등반 중 연락이 두절[1]되어 수색대가 실종 예상지역을 수색했으나 흔적을 찾지 못했고, 결국 행방불명됐다. 이에 따라 대한산악연맹은 10월 30일 위령제를 지냈다.

KBS에서 당시 동행취재하여 출국[2]부터 실종상황까지 함께 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박영석 대장, 마지막 10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송했다.

4. 그 밖에

허영만과 매우 친해서 허영만 만화 식객이나 부자사전에서도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허영만과 친구들이 추진한 바다여행을 그린 책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2010)에서도 나왔는데 이 책에선 8천미터 산도 여러번 자유롭게 오고간 자신이 바다에서 배멀미하던 것에 기겁하던 이야기를 담기도 했다. 허영만과 함께 한 힐링 캠핑 -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에도 일행의 한 명으로 나오며, 허영만 원작의 영화 타짜에도 허영만 본인과 함께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만큼 허영만과 형님아우하며 친하게 지냈기에 그의 실종 및 사망 보도에 허영만이 안타까워하며 명복을 빌었다.

선배인 엄홍길도 명복을 빌면서 산악인으로서 언젠가 맞이할 일이자 각오할 일(엄홍길 항목만 봐도 그도 몇번이고 죽을 고비를 하여 아예 한국을 나갈때 유서를 쓰고 간다고 할 정도)이지만 어린 녀석이 먼저 가다니...라고 회고했다.

그의 죽음에 대하여 등산업계의 무리한 마케팅 경영이 죽게 만들었다는 주장도 나오기도 했다. 다만 두사람이 인터뷰를 했었다는데 후배 산악인은 쏙 빼고 박기성 산안평론클럽 대표를 내세웠다는 점이 나중에 동국산악회 자게에서 박대표가 쓴 사죄글에서 밝혀졌다. 신뢰성 있는 기사가 아니니 걸러서 볼것. 그의 사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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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눈사태 추정
  • [2] 출국장에서 걱정에 눈물을 쏟는 아내에게 '울지마라. 내가 뭐 죽으러 가는거냐'라며 짐짓 큰 소리를 치는 장면이 나온다. 가족들을 안심시키려했던 말이 현실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