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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이 효순이 사건

last modified: 2015-09-24 17:14:2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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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발단
3. 전개
4. 판결 결과
5. 재확산
6. 사건과 관련된 의혹들
7. 사건이 남긴 것들
7.1. 한국의 반미감정
7.2. SOFA는 불평등 조약인가?
7.3. 인터넷의 파워
8. 트리비아


1. 개요

2002년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군이 운전하던 군용 차량에 의해 일어난 사건(혹은 사고) 및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일컫는다. 피해 학생들의 이름을 바꾸어 불러 효순이 미선이 사건 혹은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이라고도 한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라는 호칭은 반미노래인 Fucking USA로 유명한 앤라이프에서 자주 부르던 호칭. 해당 노래에서도 언급된다. 단 많이 알려진 Fucking USA 1편은 만들어진 시점이 여중생 압사 사건 이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안톤 오노와 그전까지의 미군 만행들만 언급되고 일반인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2편에서 언급된다. ("숏트랙 금메달도 훔쳐가고 / 효순이 미선이를 탱크로 죽이고 / 통일의 길목마다 훼방을 놓는 / 우리 민족의 적 양키들아")

이 사건의 명칭은 처음에 설명되었 듯 주한미군의 훈련 도중 군용 차량에 두 여중생이 압사당한 사고(혹은 사건)와 그에 대한 전국민적인 반미 시위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참고로, 심미선, 신효순 양은 1988년생으로 현재까지 살아 있다면 성인이므로, '미선이 효순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심미선, 신효순 양 장갑차 압사사건'으로 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피해자의 이름을 내 건 사건명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데다, 고인과 유족들에 대한 예가 아니기도 하기에[1] 이런 시각에서 한글 위키백과에서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중학생 압사 사건'이라 칭한다

후술하듯 사건의 고의성 여부를 놓고 정치적으로 매우 시끄러웠으나, 시간이 지나며 정치적 논란도 사그라들었으며 또한 고의성이 없는 단순 과실성 교통사고로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2. 발단


2002년 6월 13일, 즉 2002년 한일 월드컵에 국민들이 환호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 갓길에서 당시 조양 중학교 2학년이던 신효순, 심미선양이 주한 미군 2사단의 M60 AVLM[2]에 깔려 현장에서 숨졌다. 이 차량은 M60 패튼 전차의 차대에 미클릭을 탑재한 지뢰제거용 장갑차량이다. 전체적인 모양으로 봤을 때는 일종의 전차인 셈. 장갑차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장갑차와 이 차량은 조금 다르다.

이 사건에 대해 호소하는 사람들이 가족의 동의를 얻어 끔살당한 현장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3] 미군을 처벌하라는 서명을 받는 장소에서 지하철 역이나 좀 큰 거리 같은 곳이라면 흔히 걸려 있었다. 아무 여과없이 그대로 썼으나 이후 잔인함 등의 이유로 항의가 들어와 모자이크 처리를 했지만 이미 본 사람들이 많았다. [4]

3. 전개


사고 당일 미8군은 수습에 나섰다. 사건 당일인 6월 13일에는 미8군 사령관이 직접 유감 표명하였고 다음날인 6월 14일에는 미 보병 2사단 참모장 등이 분향소를 직접 방문해 문상하였다. 그리고 피해 유가족에게 각각 조의금 명목으로 100만 원씩을 전달하는 등 사고 수습에 나섰다. 보상금은 이후에 전달되었고 미 8군에서는 각각 2억원 정도의 금액을 보냈다.

그러나 당시 조의금을 보상금으로 해석한 유가족들이 부대장을 만나고자 항의를 계속하자 미군 측은 15일 장례식부터 먼저 치르면 사단장과 면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결국 장례식을 진행하였고 사단장과의 면담은 취소되었다. 이유는 번역상 실수였다.

같은 달 19일에는 미2사단 측의 한미 합동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미군 측의 조사 결과는 '이번 사고는 결코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것이 아닌 비극적인 사고'였다. 즉 과실사고라는 것. 장갑차 조종수인 마크 워커 병장이 두 명의 여학생을 확인하지 못하였고 전차장이었던 페르난도 니노 병장의 통신 장애까지 겹쳐서 피치 못하게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 것이었다.[5] 페르난도 니노 병장은 여중생들을 보긴 봤지만 당황하여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미군이 정신질환자 집단도 아닌 이상 고의로 그것도 전시도 아니고 훈련 이후 복귀 중인 대낮에 우방국에서 그런 끔찍한 사고를 냈을 가능성은 없다.[6] 아무리 회의적으로 접근해도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미군 병사들이 현지인들의 생명이나 인권을 '가지고 노는' 사례가 일부 있긴 했지만 그건 사건이 드러나기 힘든 데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곳이라 누적된 정신적 스트레스에 의해 피폐해진 끝에 정신 상태 자체가 정상이 아닌 상태라 벌어진 것이고,[7] 치안 및 사법체계가 제대로 확립되어 범죄은폐가 힘들고 대규모 전면전이라도 터지지 않는 한 죽을 일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백주대낮에, 그것도 주거지 인근에서 사람을 죽이겠다고 작정하고 장갑차를 몰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게다가 한국사법체계에서의 처벌은 피한다고 해도 남은 군 경력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길 것임을 생각하면 고의로 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다. 당연히 이런 사고를 치면 바로 군에서 쫓겨나진 않는다하더라도 진급이나 장기복무는 꿈도 못 꾸며 최소복무기간이 되기 무섭게 전역해야 한다.[8]

사고 당일만 해도 속보 형식으로 짤막하게 '여중생 2명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으로 보도되기만 했고 거의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당시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이 한창 진행중이어서, 한국 국민들의 관심은 모두 사고 다음 날에 치러진 한국 대 포르투갈 전에 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하고 16강에 진출하면서 사고 자체가 완전히 묻혔다.[9]

2002년 6월 하순부터 사고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였던 의정부 일대에서는 모자이크를 하지 않은 사고 사진을 의정부역이나 시내 광장에서 볼 수 있었고 일부 대학교의 벽보에 사진과 함께 내걸리거나 의정부와 양주의 중고등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사고를 낸 장병들이 소속된 부대인 미군 제2사단 본부가 위치한 의정부시 가능동 '캠프 레드클라우드'에서 산발적으로 집회를 벌이는 데 그쳤다. 사실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사고는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지는 못했다.

4. 판결 결과


미군 측과 유족들간의 공방은 계속되었고 검찰 측 수사도 시원치 못하자 비판 여론이 점점 확대되자 법무부는 7월 10일에 미측에 재판권 포기 요청을 한다. SOFA 규정상 대한민국 내 미합중국 병사들의 훈련 중 사고. 즉 공무집행과 관련된 범죄는 미측이 그 재판권을 가지는 일종의 치외법권의 형태를 보이는데 그 재판권을 한국 측이 가지겠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8월 7일 미군 당국은 그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며 재판권 포기를 거부. [10]

이후 11월 동두천 미군 기지인 캠프 케이시 내 군사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배심원단은 미군 2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다만 무죄 취지는 서로 달랐는데 우선 페르난도 니노에 대해서는 여중생들을 본 적이 맞는 만큼 사고를 막지 못한 죄가 성립하지만 무전기 고장으로 그 사실을 운전병에게 알릴 방법이 없었으니 처벌할 근거가 없고(쉽게 말하자면 불가항력이었기에 처벌할 수 없다는 말), 마크 워커는 여중생들을 볼 수 없었고 관측병의 통보를 받아 움직이기에 처음부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미 형법상 검찰이 무죄에 대해서는 항소할 수 없기 때문에 판결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5일 후 한국으로부터 일본을 경유하여 미국 캘리포니아로 안전하게 출국하였다. 그러나 유가족의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마크 워커의 변호사인 가이 워맥은 여중생들을 보지 못한 마크 워커야 무죄가 맞지만 막판이라도 여중생들을 보긴 봤었던 페르난도 니노는 처벌을 받아 마땅했다고 판결을 비난했다.

이들은 출국과 동시에 '본의 아닌 사고'에 유감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마크 워커 조종수는 그때의 충격으로 PTSD를 앓다가 2004년 허리 통증을 이유로 군대를 나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MBC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자세한 것은 맨 밑 단락 참조.

5. 재확산


이 사건이 확대된 것은 2002년 11월이었다. 6, 7월의 월드컵 4강 열기가 이제 막 식고 있을 즈음 미군 2명이 운전하는 장갑차에 여중생이 깔려 죽었다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알려지자 월드컵의 열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번져나갔다. 11월 26일 드디어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추모를 하기 시작했다. 특정 단체의 주도 없이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촛불집회의 양식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한창 메신저들이 자리잡아가던 시절인 만큼 넷상에서도 이 문제가 뜨거웠고 온 네티즌이 지못미의 전신격인 이모티콘 ▶◀을 자기 아이디 앞에 붙이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져갔다. 일부에서는 리본이 서양의 문물인데 여중생들을 죽인 미군들은 놈들(..)이므로 우리 고유의 삼베 상복을 본따 ▶◀ 대신 ▦을 쓰자는 극렬 민족주의적인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넥슨에서는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자는 취지로 무료 이벤트 아이템을 배부하였는데, 크레이지 아케이드에서는 캐릭터 선택 창에서 효순이 미선이의 빈소가 나오는 스킨과, 추모국화를 매달은 깃발을 무료 이벤트 아이템으로 배포했다. 바람의 나라에서는 ["채희네상점에서 추모망또, 추모깃발, 추모국화를 개당 100원에 판매했다."] 크레이지 아케이드는 무료배포, 바람의 나라는 개당 게임 머니인 100전으로 구입이 가능해 사실상 무료였다. 이건 뭐[11]

11월 27일에는 미 대사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과를 간접적으로 전하고 12월에는 직접 전화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유감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미국 측의 사과는 '미안함'이라기보다는 우리 잘못은 아닌데 아무튼 애들이 죽었다니 유감임라는 입장이었는데 이런 표현을 받아들이지 못한 국민들에게 반발을 사 반미감정을 더 확산시켰다. 미국 입장에서야 정부 명령으로 죽인 것도 아니니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여겼겠지만 어린 학생들이 죽은 사건에 대한 국민감정이 격앙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주둔 지역의 문화와 국민감정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일을 키운 셈이다. [12]

여기에 이전에 계속되던 주한 미군의 문제점들이 드러나면서 사건은 더욱더 확대되고 안톤 오노 사건이 다시 급부상 함으로써 반미감정은 극에 이르게 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톤 오노사건은 전혀 연관도 없고 억지 엮음에 지나친 자의적 해석이었지만 당시 국민 감정은 금메달 하나에 나타난 반미감정이 엄청났고 몇몇 반미단체는 이를 이용해서 노골적인 빈미감정 확산을 조장했다.

안톤 오노 사건은 2002년 2월에 일어났었다. 그 당시 송앤라이프에서는 Fucking USA기특한 과자, 또라이 부시 등의 수많은 반미 노래를 만들어 인터넷에 반미 정서를 불어넣으며 인기몰이를 했다. 물론 이 단체는 이 사건 뒤에도 한 달에 몇 번 꼴로 정치 사건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었는데, 사건 당시에 이 사건을 주제로 노래를 만들며 월드컵에만 정신이 팔려 이 참극을 외면하는 국민정서를 질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 쯤에는 반미감정도 어느정도 가라앉은데다 노골적인 NL성향을 보이는게 너무 확연했기에 송앤라이프는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져 있었다.

6. 사건과 관련된 의혹들


이 사건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 미군 차량이 왜 여중생을 발견하지 못했나?

이런 주장을 하는 측에서는 우선 장갑차가 여중생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에 의혹을 제기한다. 상식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데 보고서도 피하지 않았으니 사고가 아니라 의도적인 살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M60 AVLM은 원본인 M60 AVLB[13]보다는 낫다지만 조종수는 전방확인이 가능할 것이라는 일반인의 생각과는 날리 생각보다 더 시야가 제한되는 차종이다. 당장 안전상의 문제로 부대 이동간 도로상 밀폐조종을 하지 않는 대한민국 국군 궤도차량들도 가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물체인 전봇대를 들이받거나 갓길에 주차된 승용차를 깔아뭉개는 사고를 낸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전차보다도 시야가 제한되는 AVLM이 도로변에서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는 상황 자체는 개연성이 있다. AVLM의 경우 원 M60조종석이 아닌 포탑을 제거한 위치의 왼쪽에 조종석이 있다. 그리고 우측전방으로는 차체 전방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구조물 때문에 아예 보이질 않는다. 때문에 일반전차 이상으로 전차장이 통제관으로서 시야확보와 지시가 중요한데 통신기가 고장이 났다는게 비극의 원인이었던 셈이다. 따지고 보면 고의성을 주장하기 보단 이를 미리 인지하고 교체하지 않았던 것에대해 더 강하게 책임을 물어야 했을 것이다.

  • 미군이 의도적으로 살인을 한 것인가?

여중생들이 속도가 느리고 소음을 발생시키는 장갑차를 미리 피하지 못하고 압사당한 것에도 의혹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대해서 미군의 행동을 비판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피하는 여중생들을 일부러 쫓아가서 죽였다'는... 그러니까 '고의적인 살인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박으로는 제한된 도로에서 쫓아가서 궤도로 찍을 정도로 순간적인 기동성이 좋지 않다는 점이 있으며 위에서 어떻게 여중생들을 보지 못했는가에서 언급되었듯이 AVLM 조종수는 애초 보이지도 않는데 피하는 여중생을 쫓아서 일부러 죽이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통신장치가 고장난 전차장이 지시하기도 불가능했으며 설령 고장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서있는 거면 몰라도 피해 도망가는 대상을 조종수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통신만으로 방향을 지정해서 일부러 친다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 때문에 반대측에서는 여중생들이 미처 피하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AVLM이 자신들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여학생들이 '알아서 비켜 가겠거니'[14]하고 생각했을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평소 군사장비 이동이 대단히 잦은 지역에 살고 있어 장갑차에 대한 경계심이 낮아 그냥 지나가겠거니[15] 하고 관심을 두지 않다가 사고가 발생했다는 의견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종의 안전불감증이라는 이야기.

실제로 동두천이나 포천 일대의 주민들을 살펴보면 군 궤도차량이 바로 옆에서 기동해도 그냥 무심한 듯 시크하게 신경쓰지 않고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기동훈련이 아니라 군부대 주위에서 사격훈련을 할 때 경고방송을 해도 주민들은 신경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이를 종합해 우연히 벌어진 비극적 사고를 여중생 2명을 고의적으로 장갑차로 짓뭉개 살해한 살인자 미군으로 포장한 민족주의적 감정이 폭발하면서 빚어진 일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특히 여중생들의 처참한 시신 사진을 곳곳에 뿌리고 다니면서 대중의 분노를 자극한 데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특히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한 일부 단체들은 피해자를 앞세우며 반미를 외쳐댔지만 실제론 유가족의 입장따윈 전혀 배려하지 않았으며 이를 점잖게 비판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폭언을 퍼부은 것은 더더욱 변명할 가치가 없다.

  • 제2연평해전과의 형평성 문제 제기

월드컵이 열리던 당시에는 독일전 패배와 연이은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그리고 폐막식까지 월드컵만 보면서 조용하게 보내고 싶어하던 분위기가 강해서 당시 미선이, 효순이 관련 행사들도 월드컵이 열리던 시기에는 묻혔던 상태였다. 그런 변명을 하려면 왜 월드컵이 끝나고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불이 붙었는데 제2연평해전은 완전히 묻혔는지에 대한 변명도 준비해오는 편이 좋겠다.

굳이 반미감정과 정치적 이용등의 사정을 빼고 이유를 들자면 제2 연평해전의 피해자들은 사건 순간의 직위가 '군인'이었고 이 건의 피해자들은 '민간인'이라는 차이가 있다. 두 경우 다 애석한 경우지만, 군대 교전으로 인한 피해와 평시상태 우군에 의한 민간인의 피해를 같은 범주에서 논하는 경우가 맞냐에 대한 의문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싸운 군인들의 비극은 묻혀야한다는걸 정당화한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단 명심할 것은 제2연평해전을 결부시켜 장갑차 사고(또는 사건)을 폄하하는 것은 피장파장의 오류다. 애초에 제2연평해전이 주목받지 못한 건 문제지만, 그렇다고 미선이 효순이 사건이 주목받은게 문제는 아니며 이 둘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로 뭉쳐서 따지기보다는 개개별로 각기 따로 문제점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 특정 정치세력의 악용

어찌되었든, 이 사건을 일부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했으며 이는 반미감정이 거세던 당시에도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기도 했다. '깃발논쟁'으로 구글링 해 보면 당시 분위기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사고 이후 미군은 매년 피해자의 유족과 추모 행사를 치르지만 정작 촛불시위를 주도했던 세력들은 유족을 찾아 위로하거나 하기는 커녕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피해자들의 시신이 찍힌 자극적인 사진을 게시하는 등 피해자 유족들의 심기가 불편해질 만한 행동만 반복하고 있다. 그것도 그나마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아지자 그만뒀다가, 미국 소 수입파장 때 반미감정이 고조되자 다시 나타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한편 유족인 미선양의 부친 심씨는 "미군이 남겨두고 간 조화를 누군가 매번 짓밟고 간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7. 사건이 남긴 것들


사건 자체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미국과 미군 당국의 한국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 사건의 후폭풍을 제대로 겪은 미국은 이후 미군 관련 사건, 사고에 있어 '대체적으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게 되었고 미국 정계에서도 한국의 반미감정을 재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이다.

7.1. 한국의 반미감정


한국의 반미감정은 이전에도 계속 존재해왔다. 특히 주한미군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기본적으로 미군이라는 집단이 우수인력도 있지만 낮은 계급의 사병들의 경우 '할 일 없는 잉여'가 적지 않으며 범죄경력 등이 많은 사람이 일종의 도피책으로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고는 항상 끊이지 않았다. 참고로 이 문제는 이라크 전쟁 이후 인력부족으로 인한 모병 기준의 완화로 인해 더욱 심해지고 있다.

7.2. SOFA는 불평등 조약인가?


이 사건 이후 SOFA 규정 개정 논의가 빈번히 진행되었지만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 이 규정은 파병국가인 미군 측에 상당히 유리하게 쓰여져있는데 그 중 가장 치명적으로 한국측에 불리한 조항이 바로 이 치외법권이다. 국내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건 매우 불평등한 일이지만 문제는 동시에 대한민국도 파병국가에 이 치외법권을 미국처럼 똑같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16]

이런 조항이 21세기에도 세계 10대 경제 강국을 내세우는 한국에 있어야 하는가 하는 비판적 목소리가 일부에서 적지 않지만 또 다른 일부에서는 한 나라에 다른 나라의 군대가 파견되어 활동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할 필요가 있고 북한과 대치하는 한국에게 없어서는 안될 동맹국인 미국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등가교환의 법칙. 막대한 운영비가 드는 군대를 배치하는데 당연히 공짜일 리가 없다. 전작권 환수와 이러한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도 관심이다.

앞의 SOFA협정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자면 우리나라도 중동으로 파견을 보내고 있으며 SOFA 규약은 반드시 맺고 보낸다. 아니면 절대 가지 않으며 당연히 국군이 뭔가 대민피해를 입힐 시 그 재판은 한국에서 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중동에서 어떤 잘못을 했을 때 그쪽 재판정에 서도록 하면 태형 혹은 거세, 사형, 돌팔매질 등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그 중 상당수는 우리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는 죄목으로. 그런 측면에서 미국 뿐 아니라 어느 나라도 그렇게 적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면 한국의 사법체계는 미군을 판결하기에 부족한가?"란 반론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지 모르나 사실 이 정도의 반론은 "저 항목의 기능 중 하나가 형편없는 현지 사법체계를 막기도 할 뿐이다."라는 정도로 간단히 재반박할 수 있다. 쉽게 말해 SOFA가 도입된 이유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지, 주둔국의 형편 없는 사법체계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며 논점일탈의 오류란 것이다. 아무리 잘 짜여진 사법체계를 가진 국가간이라도 법체계는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으며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저 조항의 근본적인 이유는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국과 관련된 예를 들자면 실제로 자이툰에 한국군이 파병되던 시절 한국군 상병 1명이 보초를 서는 중 실수로 쿠르드 민병대원 헤멘 바카르를 코 앞에서 죽여버리는 사건이 있었다. 기사

어쩌다가 그랬냐고? 서로 총 쏘는 시늉을 하며 툭툭 치며 친근하게 장난을 치다가 오발사고로 선량한 쿠르드 민병대원의 배에 총알을 박아버렸다...사망한 쿠르드 민병대원 헤멘 바카르는 서로 장난치다 그랬으므로 웃고 있다가 총을 맞고 울면서 병원으로 실려가서 4일만에 죽었다.

심지어는 이 총 맞은 양반 헤멘 바카르는 죽기 전에도 실수로 자신을 쏜 병사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했고 그의 친형도 처벌하지 말라고 탄원서를 냈다고 한다. 사고를 낸 상병은 한국으로 재빨리 송환되어 일단 구속되는 것부터 시작했다. 실제로 SOFA라든가 이와 비슷한 규약이 없었다면 해당 사건을 일으킨 상병의 미래는 암울했을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이 민병대원 헤멘 바카르는 이렇게 사고사로 죽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종교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총을 맞았음에도 처벌하지 말라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일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을 해보건대 SOFA 따위의 규약이 없었다면 해당 사고를 낸 한국군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최소한 몇 년 뒤로 계산해야 했을 수도 있다. 거기다 해당 지역이 중동이었다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법정에 끌려가서 이슬람의 율법으로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았을지 모른다. 행여나 정부에서 떼를 써서 데려오려고 해도 그건 전적으로 해당 국가 맘대로다.

국가에서 파병한 군대 소속 인간이 사고를 낸 경우 데려오려고 규정을 만들어 뻘뻘거리며 노력을 하려는 것도 자국민 보호라는 차원에서 사실 가능한 논리이다. 민간인이 다른 나라에 관광 가서 사고치는 거랑 다른 나라에 파병된 군인이 사고치는 거랑은 문제가 같지 않다. 민간인이면 몰라도 군인이 낸 사고라면 자칫하다간 '그 나라 군대가 시킨 일'로 와전될 수 있으며 이는 곧바로 외교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이 모든 일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된 그 피의자의 신분은 당연히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이번처럼 국민감정으로 번질 경우는 더욱 그렇다.[17]

문제는 이게 의도적으로 저지른 사고라거나 죄가 심각한 경우에 본국 송환을 안하겠다는 케이스를 고려할 필요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죄가 엄청나게 크다고 본국 송환을 포기하는 경우를 용인하겠다고 하면 송환에 대한 변별력이 엷어진다는 문제가 생긴다. 애초에 군대를 파병한 나라가 뭣하러 본국 송환에 있어 자국민을 외국의 법정에서 빼올 기회가 있음에도 그 기회를 쓰지 않는 경우와 같은 예외 케이스를 앞장서서 주장하겠는가?

애꿎은 우리나라 여성 2명이 깔려 죽은 것에 대해 분통이 터지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이에 대해 개정을 논하자고 할 수 있다. 분통이 터지고 억울하다면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어느 한쪽의 편을 들어주기가 힘든 형편이다. 폐지를 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당장 우리도 파병국가인 입장에서 폐지를 논하는 것은 끝나지 않는 토론이 될것이 뻔한 데다가 또한 SOFA 규정의 본국 송환에 관한 것은 가루가 되도록 욕을 먹어도 어쨌든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파병하는 국가의 입장이 될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를 보호하는 규정의 존재여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무척이나 많이 남아있다.

이 사건과 관련한 SOFA 규정이 불평등조약인가에 대한 단락의 결론은 파병한 국가의 입장에서는 필요한 혹은 유리한 조약이라고 하겠다. 미국이나 대한민국이나 다 적용하고 있고 (타 파병국가들도) 거절할 이유가 없는 사항이다.다 집어치우고 애초에 파병한 국가가 본국의 이익에 반하는 불리한 조건을 조약서에 남겨놓을 이유가 없지 않나? 덧붙여 SOFA 규정이 미국에 유리하고 대한민국에 악랄하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대한민국 정부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달라고 호소하는 국민들의 의견을 들어줄 수가 없다.

대한민국 정부도 미국처럼 파병국가이고 대한민국에 유리하고 파병지역국가에 악랄하다는 SOFA 규정을 활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이 점에서 일단 도의적으로 주장하기가 좀 힘든 부분은 있다. 당장 해외파병을 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이 조약이 불평등하고 악랄하다는 점 때문에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된다는 점을 포기할 가능성은 그야말로 없다.

그러나 한미행정협정은 한국의 SOFA와는 한 차원 다른 문제도 갖고 있다. 그것은 미군 뿐만 아니라 미군에 관계되는 대부분의 민간인들도 치외법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군속과 미군 가족은 군인이 아니다. 본 사건은 미군에 의해서 저질러졌기 때문에 변명할 여지라도 있지만, 만약 민간인인 군속이나 미군 가족이 그랬다면 어땠을까? 이들이 범죄를 절대로 저지르지 않는 점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문제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단 이 부분은 이 사고와 큰 연관은 없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일련의 사건들로 SOFA조항이 재조명되게 되었고 이로인해 이부분도 문제제기가 된 것.

7.3. 인터넷의 파워


이전만 해도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라고 불리우며 단순히 정보를 교류하는 것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통해 인터넷의 엄청난 정치적 힘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인터넷은 야동을 다운 받고 스타 배틀넷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도구라고만 생각했던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이 더 이상 단순한 오락/정보 도구가 아니라 정치적 이슈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주목되게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도 있는데, 인터넷이 한편으로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집단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맞게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거나 조작하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불과 2주 간격을 두고 터진 제2연평해전은 정부로부터도 여론으로부터도 외면받아 그대로 묻혀버린 반면, 미선이 효순이 사건은 반미 단체나 반전 단체[18] 등에서 인터넷을 이용하여 적극적인 홍보와 댓글 공세로 인해 월드컵이 끝난 직후의 그 해 여름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되었다는 데서 이를 알 수 있다는 점이 요지이다.
정리하자면 인터넷을 통한 정치적 활동이 크게 부각되었다는 것이며 기존의 매스미디어 만큼 광역적이면서도 오프라인 정치활동만큼이나 인터랙티브한 점을 통해 기존의 정치적 활동보다 장단점이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두 사건 모두 월드컵 기간 중에 일어난 사건이라, 처음 터졌을 때에는 뉴스에 보도가 되어도 여론이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선이 효순이 사건의 경우 월드컵이 끝난 뒤 온갖 커뮤니티, 포털 및 뉴스 게시판에서 (아직 미군의 고의적인 살인인지, 과실치사인지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여중생들을 살해한 미군에 대해 많이 퍼뜨려주세요."라는 식으로 여론의 관심을 호소하는 글이 많이 올라왔고 이 사건이 조명 받으면서 시사고발 프로에서도 방송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8. 트리비아


  • 사건이 일어난지 10년 후 미선 양의 아버지는 "사고를 낸 미군도 이젠 편히 지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당시 사고를 '미군의 살인'이라고 규정하는 반미단체와 다른 견해도 밝혔다. 미선 양의 아버지 심씨는 "단순한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미군이) 애들이 미워서 낸 게 아니지 않나."라며 "얼굴도 모르지만 그 미군들도 이젠 마음의 짐을 덜고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효순 양의 부친 신현수 씨(58)도 마찬가지 생각일 것이라고 전했다.# 2005년 MBC에서 마크 워커를 찾아가 인터뷰한 바가 있는데 여중생들을 치여 죽였단 죄책감에 PTSD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일 잠을 이루지 못하고 허리 통증과 설사에 시달리고 있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었다 한다.

  • 경기도지사[19]는 ["미선·효순양 사고는 길이 좁은 게 원인"][20]이라 했다.그래노코 길은 그대로다

  • 사건 발생 이듬해인 2003년 4월 북한 평양의 모란봉 제1중학교에서는 두 학생을 6학년 9반 명예학생으로 제멋대로 등록시킨 후 2005년 3월에는 졸업장을 줬다.(...) 한마디로 반미감정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한 조선노동당프로파간다.12 이게 뭐하는 짓꺼리야

  • 카투사로 복무중인 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를 낸 해당 장갑차는 여전히 부대에서 사용중이라고 한다. 기체의 이상으로 인한 사고가 아니었던 만큼 사용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지만... 찝찝할듯

  • 사고가 난 이듬해에 주한미군에 이상하게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해서 사망자가 여럿 나오자 억울하게 죽은 두 원혼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돌았고 주한미군 측에서 찜찜했는지 위령제까지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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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보통 피해자 이름을 사건 사고에 붙이면 유족들의 고통이 더 심하다는 인식이 있다.
  • [2] Armored Vehicle, Launched MICLIC.
  • [3] 가족의 동의를 얻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양쪽 주장중 어디가 맞는지 이부분에 대해 정확한 출처 확인 바람.
  • [4] 시신상태가 매우 처참하므로 절대 링크걸지 말 것.
  • [5] 이에 대해선 후술.
  • [6] 물론 사건 당시에는 본 사건의 사고자들이 그런 싸이코패스 집단이라는 마타도어가 운동권을 중심으로 돌기는 했지만..
  • [7] 애초 저런 사건의 경우 작전 중에 일어났거나 부대를 몰래 빠져나가(AWOL) 벌인 사건들이다. 대대급 이상 지휘관의 제대로된 감독하에 벌어진 사건은 사실상 없다.
  • [8] 실제로 마크 워커 병장은 불과 2년 후인 2004년에 전역했다.
  • [9] 이런 상황은 터키와 월드컵 3, 4위전을 하던 날 오전에 벌어진 제2연평해전 때도 되풀이되으나 그래도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는 달리 제2연평해전 때에는 출전한 한국 선수들은 제2연평해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뛰었으며 경기 시작 전 잠깐의 애도시간을 가지고 시작했다. 참고로 이때 한국선수 뿐만 아니라 타 선수들 역시 같이 묵념했다. 하지만 이 경기를 관람중이였던 일반인들은 '지금 저게 뭐하는 거지?'라는 반응에다가 시작하자마자 1분만에 터키에게 골을 먹히는 바람에 시작 전 행동에 대해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 [10] 이걸 가지고 살인이 맞으니 은폐 혹은 미군병사를 실드치려고 그랬다는 운동권의 주장도 있는데 그냥 헛소리다. 애초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도 SOFA협정상 미국이 재판권을 우선 가지고 있다. 특히나 이 경우엔 미국입장에선 훈련중에 생긴 교통사고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재판권을 포기할 경우 이후 벌어지는 모든 단순 사고에도 재판권 포기가 가능한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거부는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 [11] 그리고 이 이후로 포탈은 물론 각종 게임 등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가진 사망사고에 추모 관련 행사나 문구등을 포함하는게 크게 유행하게 된다.
  • [12] 이와 비슷하게 아프가니스탄에서 주둔하던 미군이 실수로 쿠란을 소각해 분노한 군중에게 미군이 죽는 사건이 있었다.
  • [13] AVLB는 AVLM과 차량 자체의 시야는 큰 차이가 없으나 커다란 가교가 얹혀있기에 더욱 시야가 제한된다.
  • [14] 해당 사고지역은 인도가 없기 때문에 사람을 발견했으면 회피하여 중앙선 너머로 기동했어야 했다.
  • [15] 그리고 실제로도 옆으로 피해가고 여의치 않거나 대열이 많아서 기동에 문제가 있으면 차량을 급히 세우는 경우도 있고 경로상에 있는 사람에게 비키라고 외친다.
  • [16] 이부분을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외교에서 외교분쟁을 최소화하기 윟해 일관적인 정책을 세우고 이를 활용하는 사실과 그 이유에 대한 부분은 애초 논리학이 들어올 부분도 아니며 피장파장의 오류 자체에 대해서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피장파장의 오류가 된다면 형평성은 그 자체가 논리적 오류란 주장이나 마찬가지다.
  • [17] 참고로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판결에 국민의 법 감정을 어느정도 반영하는 나라다.
  • [18] 제 2 연평해전은 철저히 무시하고 사고일 가능성이 더 높은 미군 장갑차 사건은 물고늘어지는 단체가 과연 자신들이 주장하는대로 진정한 반전 단체인가는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자.
  • [19] 도지삽니다의 그 양반 맞다.
  • [20]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인도라고 할 수 있는 여유공간이 거의 없었으며 사실 그런 공간만 있었어도 두 여중생이 위험한 위치에서 걸어갈 일도 없었을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