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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와 미츠하루

last modified: 2015-02-13 19:27:17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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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봐도 힘들어 보이는 미사장... 하늘에서는 편히 쉬기를...



三沢光晴
일본의 프로레슬러.

1990년대 전일본 프로레슬링(全日本プロレス)의 사천왕[1]이자 일인자로 활약했으며, 자이언트 바바 사후 단체를 떠나 2000년 프로레슬링 NOAH를 창단했다. 이후 사장겸 선수로서 프로레슬링계를 장악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레전드.
2009년 6월 시합 도중 부상-경추골절-을 당해 사망했다.

생몰 : 1962년 6월 18일 - 2009년 6월 13일
키/몸무게 : 185cm, 110kg
출신지 : 일본 사이타마현 코시가야시
피니쉬 무브 : 에메랄드 플로전, 타이거 드라이버 91
별명 : 초세대의 기수, 미스터 삼관, 엘보우의 귀공자[2], 방주의 맹주, 에로 사장[3], 언터쳐블, 좀비 미사와

Contents

1. 학창시절
2. 전일본 프로레슬링 입단
3. 사천왕 시대
4. NOAH 시대
5. 사망
6. 기술


1. 학창시절

중학생 때 프로레슬링 중계를 보고는 "내가 하면 더 짱일 듯"하며 장차 프로레슬러가 되는 꿈을 품었다.
중3때 담임이 '고교원서 어디로 써줌?'했더니 '닥치고 프로레슬러' '너님 좀 맞을래요?' '레알, 프로레슬러'해서 담임이 항복하고(?) 아마레슬링 명문고에 넣어줬다나 뭐라나.
어릴 적부터 운동신경이 탁월해서, 중학 시절엔 체조부에서 활동했다. 덕분에 약간 후덕(?)한 몸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고등학교에선 레슬링부에 가입했고, 아마레슬링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당시 "올림픽 출전도 가능하다"는 평가를 들었지만 거부하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입단한다. 여담으로 레슬링부 1년 후배가 바로 훗날 최고의 라이벌이자 싸우는 연인이란 애칭이 붙을 정도로 숱한 명시합을 벌인 "데인져러스 K" 와다 토시아키였다.
고교 2년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전일본에 입단할 각오로 찾아갔으나, 마침 보 츠루타를 만나 '고등학교 졸업하고 와도 충분하다'는 소리를 듣고 단념했다. 점보 츠루타는 당시 전일본의 에이스인데다 대학물까지 먹은 사람이었으니...

2. 전일본 프로레슬링 입단

고교 졸업후 입단한 미사와는 뛰어난 레슬링 실력과 체조를 기반으로 하는 유연성, 천부적인 센스 등으로 사장 자이언트 바바의 눈에 들었다. 당시 연습생 급료는 5만엔이었는데 특별히 미사와만 7만엔을 준다거나, 멕시코 해외 원정이 걸려 있던 루 테즈배 쟁탈 리그전에서 부상으로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자이언트 바바의 백줄 특별 후원으로 멕시코 원정을 간다거나...

멕시코에서 한창 경험을 쌓던 미사와는, 돌연 자이언트 바바의 호출을 받고 몰래 귀국해서 동료인 카와다 토시아키와 함께 훈련을 받았다.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新日本プロレス)에서 199승 2무 1패를 기록한 주니어 헤비급의 전설 타이거 마스크가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한 뒤 판권[4]을 전일본 측에서 사들였고, 미사와에게 타이거 마스크 2세라는 엄청난 기믹을 부여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킥 기술은 미사와보다 오히려 연습상대였던 카와다가 크게 늘었고, 이후 카와다의 스타일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주니어 헤비급의 본좌로 군림한 타이거 마스크처럼 미사와도 타이거 마스크 2세 초반에는 주니어 헤비급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별 재미를 보지 못했고, 결국 부상으로 결장한 사이 체중을 대폭 늘려 헤비급으로 전향한다. 그제야 비로서 '전투기'라는 평가를 받았던 타이거 마스크와 달리 '중폭기'라는 별명을 얻으며 타이거 마스크 2세가 나름대로 히트를 치게 된다.

여담으로 하필 미사와를 타이거 마스크 2세로 선정한 이유가 재미있다.

멕시코에서 활동할 당시 선배가 택시를 드롭킥으로 세워라하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드롭킥을 날렸는데 택시를 뛰어넘어 버렸다. 그 말을 들은 바바가 뽑았다 카더라.
혹은 멕시코에서 국제전화로 바바와 대화하던 도중 바바가 너 탑 로프에 올라갈 수 있냐?하고 묻자 하고 답했더니 바로 뽑았다 카더라.

미사와는 자기 취향 스타일에 맞지도 않는 타이거 마스크 2세로 계속 활동하다가 결혼을 하면서 정체를 슬쩍 밝혔고, 결국 1990년 선수들이 대규모로 탈단하던 상황에서 태그 경기를 벌이는 도중 갑작스레 카와다의 도움을 받아 마스크를 벗어던지면서 만천하에 자신의 정체 '미사와 미츠하루'를 까발렸다.[5]

마스크를 벗은 이후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미사와 이름으로 활동한 직후 지금도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나이'로 회자되는 점보 츠루타한테 핀폴승을 거두는 이변을 일으킨다. 비록 롤업으로 따낸 승리였지만 당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에이스이자 당대 최강의 외국인 용병들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글자 그대로 천하무적 점보 츠루타를 상대로 풋사과 아직은 신인에 불과한 미사와가 승리를 거뒀다는 것에서 엄청난 일이었다.

당시 시대상황은 '신인류'라고 표현되던 개성넘치고 자기 할말은 확실히하는 일본의 신세대들이 문화적 아이콘으로 대두되어 신인류 붐이 폭발하던 시기였고, 타이거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당당히 톱을 노리겠다고 선언하던 미사와의 모습에 신인류들이 그야말로 엄청난 지지를 보냈다. 이러한 분위기는 경기 전부터 열광적인 미사와 콜과 함께, 전일본의 에이스, 80년대를 상징하는 기성세대 최강의 레슬러 점보 츠루타보다, 미사와의 입장에 더 많은 환호성을 보낸 것에서도 당시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다.

결국 미사와의 승리라는 대이변 후, 카와다의 코바시의 무등을 타고 현장 관중들의 그야말로 광적인 환호와 지지를 받는 모습은, 기성세대에 도전하는 신인류의 대표로 그의 위치를 각인시켰으며, 시류에 맞춰 '초세대군'이라는 스테이블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그 이후 초세대군(超世代軍)이라는 당시 최고 신인들로 구성된 스테이블을 결성하여 리더로 활동한다. '점보를 이긴 사나이'라는 칭호는 타이거마스크 시절 미들카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미사와에게, 단체의 에이스로 거듭날 수 있는 바탕을 깔아주었고, 3년 뒤 점보 츠루타와 대등하게 싸울 정도로 강력했던 외국인 선수 '불침함' 턴 한센을 꺾고 생애 처음으로 전일본의 정점인 삼관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한다.

3. 사천왕 시대

1990년대 전일본은 미사와의 시대였다. 당시 전일본 사천왕 가운데 일인자는 자타공인 미사와 미츠하루였다.
라이벌로 꼽힌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등은 미사와에게 승리를 거두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카와다가 미사와한테 싱글전에서 첫 승리한건 데뷔 15년만인(...) 97년 4월 19일 그나마 미사와가 전에 코바시와의 30분 무승부경기를 치루고 나서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거둔 승리였다.[6] 코바시는 그래도 전일본시절에 미사와에게 승리한 적이 있었던 카와다와는 달리 미사와한테서 챔피언십에서 승리를 거둔건 2003년, 프로레슬링 NOAH가 설립이 된 이후였다(...)[7] 뭐 역대 상대전적에서 미사와에게 상대가 되지않는다는건 둘다 마찬가지이긴 했다.

카와다는 미사와를 꺾기 위해 삼관 파워밤[8][9]이라는 극악한 기술을 썼고, 코바시는 궁극 오의(...) 버닝 해머[10]를 미사와에게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과 미사와의 상대전적은 압도적으로 미사와가 높다.[11] 과연 독좀비

미사와를 필두로 한 사천왕 - 아키야마 준의 성장으로 훗날 5강 - 레슬링의 경기력은 당대 전세계 최고였으며, 상대의 위험천만한 기술을 끝까지 받아내는 '접수의 미학'을 극대화시킨 시대이기도 했다. 이 중에서도 정점은 단연 미사와로, 보기만해도 죽는게 아닐까 싶은 수직낙하식 필살기를 극적효과를 최대한 높이며 받아내는 것은 물론, 모든 기술을 가장 완벽하고 깔끔하게 접수하는 레슬러로 명성을 떨쳤다.

전성기 시절 '상대가 기술을 쓰면, 매트에 닿을 때 탕! 하는 소리가 완벽하게 하나로 모여지는건 미사와 뿐'이라는 평은 덤.

단순한 한 단체의 일인자일 뿐만 아니라, 경기 내용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경기를 선보였다.[12] 1998년 코바시 켄타와의 삼관전에서는 자이언트 바바가 눈물을 흘릴 정도로 [13] 격렬한 시합을 선보였고, 1999년 카와다와 벌인 삼관 타이틀전은 9일 뒤 세상을 떴을 정도로 건강이 나빴던 자이언트 바바가 생애 마지막으로 관람했을 정도.
이런 일화에서 보듯 '미스터 삼관' '왕도의 상징'이라 불리며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했다. 그리고 자이언트 바바가 세상을 뜨고 나서 자연스럽게 전일본의 사장이 된다.

4. NOAH 시대

하지만 고(故) 자이언트 바바의 부인 바바 모토코와 갈등이 불거진다. 개혁을 꿈꿨던 미사와는 보수적인 바바 모토코와 사이가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벌어졌다.[14] 우수한 외국인 선수를 끌어들이기 위해 무리하게 큰 비용을 지불했지만 정작 일본인 선수는 푸대접하는등 전일본의 문제점[15] 을 자이언트 바바의 수완으로 애써 억눌렀지만[16], 바바가 사망하고 미사와와 모토코가 반목하면서 결국 터져나왔다.
결국 미사와는 2000년 6월 전일본을 떠났다. 처음에는 그냥 작은 단체를 만들까 생각했는데, 바바와 점보 츠루타 사망 이후 전일본 선수들 사이에서 정신적 지주였던 미사와가 탈단을 결심하자 수많은 선수들이 뒤따라와 결국 프로레슬링 NOAH(プロレスリング・ノア)라는 새로운 단체를 창단한다.
여담으로 절친한 후배였던 카와다는 미사와를 따라 전일본을 탈단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불화설부터 시작해서, 카와다가 바바 모토코 부인의 편이였다거나 2인자를 탈피하기 위해서라는 등 온갖 카더라가 많지만 그 속사정은 불명.
훗날 카와다가 2005년 노아에서 다시 한번 미사와와 경기를 벌이지만, 이 한번을 제외하고는 미사와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카와다는 단 한번도 노아의 링에 오르지 못했다. 때문에 여러 가지 추측이 떠돈다. 경기 이후 카와다가 미사와에게 어필을 하는 마이크웍을 했는데, 평상시 미사와가 이런 것을 대단히 싫어하는지라 결국 폭발했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카와다는 미사와를 대단히 존경했다고 한다.

노아는 코바시, 타우에, 미사와 등 거물급과 아키야마 준을 비롯한 신예 에이스, 그리고 마루후지 나오미치와 KENTA 등 젊은 주니어 헤비급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이들이 수많은 명경기를 만들어내면서 급속도로 성장하여 최단시간(4년) 도쿄 돔 흥행 기록을 달성했다. 별점 짜게 주기로 악명높은 레슬링 칼럼니스트 데이브 멜쳐에게 별 5개를 받는 등 양질의 시합을 선보였고, 미사와 역시 두번 GHC 헤비급 챔피언을 지내면서 수많은 명경기들을 뽑아냈다. 가장 유명한 경기는 2003년 3월 1일 일본 무도관에서 펼친 GHC 헤비급 타이틀 매치 對 코바시 켄타전.

하지만 몇몇 유명한 선수들이 장기간 정상에 군림하며 팬들은 식상했고, 코바시의 부상과 새롭게 밀어주던 리키오 타케시가 막장행보를 걸으면서 차츰 기세가 수그러든다.
이미 골병 몸 상태가 상당히 나빴던 미사와는 결국 2006년 말 자신이 다시한번 나서서 챔피언에 오르지만,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진 기량을 보였다.[17] 그럼에도 상대 피니쉬를 모조리 씹고 승리를 따내는 모습에 팬들은 질타를 쏟아내며 급기야 독좀비라고 농담처럼 비꼴 정도였다.
이후 1년 넘게 GHC 헤비급 챔피언으로 활동했지만, 이미 2007년 친구에게 "이제 은퇴를 하는 게 어떠냐"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럼에도 악착같이 버텨서 당시 미국 RoH에서 10개월 이상 승승 장구하던 모리시마 타케시한테 GHC 헤비급 벨트를 넘겨주고 다시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런데 모리시마 타케시 역시 기대 이하의 기량을 펼친데다 뜬금없이 WWE에 진출한다는 말을 꺼내고는 진짜로 WWE에서 다크매치를 치루는 등 계속 상황이 꼬인다. 결국 GHC 헤비급 챔피언 벨트는 무소속-엄밀히 말하면 켄스케 오피스[18] - 선수인 사사키 켄스케한테 넘어가고, 노아H는 2007~2008년 내내 난항을 겪는다.

5. 사망

2009년 시오자키 고가 RoH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일본으로 복귀하고 나서도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하자, 미사와는 좋지 않은 몸을 무릅쓰고 시오자키 고와 태그팀을 맺고 밀어주기 시작한다. 하지만 신체상태가 매우 나빠진 상태에서 강행군을 지속하다보니 결국 시합중 최악의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2009년 6월 13일, GHC 헤비급 태그팀 챔피언십을 치르던 도중 사이토 아키토시의 고각도 백드롭을 맞는다. 컨디션이 안 좋았던 미사와는 낙법에 실패하여 신경 절단을 당한다.

백드롭을 맞은 직후 미사와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경기를 관람하던 수많은 팬들이 경악에 빠졌고, 많은 팬들이 미사와 콜을 외쳤으며, 당시 경기장에 있던 모든 선수가 뛰쳐나와 그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10분간 응급처치를 받았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사실 거의 에 가까운 상황.

평상시 무척 활달한 사람이었고,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거물이자 여러 프로레슬링 선수들에게 영감을 준 인물이었고, 북미나 멕시코 등지에서도 유명한 레슬러여서 그의 죽음은 프로레슬링계에 충격을 주었다. WWE, TNA, ROH등 미국 유명 프로레슬링 단체에서 유감을 표명했고, 당시 거의 모든 일본 프로레슬링 단체가 흥행을 시작하기 전에 미사와 미츠하루 추모식을 거행했다.

미사와 사후 그의 '고별식'에 추모행렬이 2km 넘게 이어졌으며# , 추모흥행 당시 꽃다발이 산처럼 쌓였고, 미국 일본 등지의 수많은 레슬러들이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미사와의 죽음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CM 펑크의 경우 손목 보호대에 'MISAWA'라는 이름을 써서 경기를 뛰기도 했다.[19]

이후 원래 미사와는 2009년에 은퇴할 예정이었고, 1990년대 경쟁단체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에이스였던 무토 케이지와 두 번째로 태그 매치[20]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얘기는 수많은 팬들을 다시 한번 안타깝게 했다.
카와다 역시 그를 추모하기 위해 다시 한번 NOAH의 링에 섰다.

명경기를 많이 배출한 위대한 레슬러이고 링 위에서 웃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에로한 농담을 엄청 잘한다고 한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에로사장'. 얼마나 심했으면 섭외부장 나카타 류가 이미지 버린다고 버라이어티 쇼 등에 출연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한다.

또 만화를 아주 좋아해서 심부름꾼 출신이었던 마루후지 나오미치는 한때 그를 위해서 편의점에서 만화를 사오는 것이 일과 중 하나였다고. 그런데 본인은 자신이 오덕임을 강력히 부정했다고 한다.

인덕이 많아서 전일본을 탈퇴할 때 많은 전일본 소속 레슬러들이 그를 따라 나와서 노아를 창단하기도 하고, 프로레슬링의 제왕이라 불리는 카야마 요시히로가 잠시 이종격투기로 외도하기 위해 노아 탈단을 요청했을 때에는 노아에 몸을 담으면서 이종격투기에 나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주어서 지금도 타카야마가 노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적도 있다.
그 외에도 사키 켄스케의 켄스케 오피스 소속 선수들이 노아에 출전하는 것도 그의 인덕과 무관하지 않다.

6. 기술


다양한 엘보 기술

미사와의 엘보는 그의 상징과도 같은 기술이다. 간혹 미사와처럼 엘보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다른 선수와 대전하는 경우, 그 타격음만 들어봐도 격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아래에 타이거 드라이버니, 에머랄드 플로전이니, 91식이니 어쩌니 써 있지만 이걸 다 쏟아붓고도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그냥 엘보 한방으로 끝내버리시는 경우도 많았다.

엘보 ###
원투 엘보
엘보 스이시더##
러닝 엘보
스피닝 엘보
롤링 엘보##
파이널 롤링 엘보












엘보 드롭과 스톰핑 콤보(/w 오가와 요시나리)


타이거 드라이버 ##

미사와 미츠하루가 개발한 기술로 워밤의 변형기. 파워밤의 기본 자세에서 허리가 아닌 양 팔을 잡고 하는 변형 파워봄.


타이거 스플렉스 ##

저먼 스플렉스를 변형한 기술로 뒤에서 허리가 아닌 양 팔을 잡아 던지는 기술.



타이거 스플렉스의 변형기로 한 팔로 상대의 목을 조르고 다른 팔로 상대방의 겨드랑이 밑을 통해 목을 조르는 팔을 고정한 뒤 던지는 변형, 복합 스플렉스.


타이거 스플렉스 2003
절대 따라하지 마세요

희대의 살인기. 이 기술은 2003년 3월 1일 오직 코바시 켄타와의 대전에서 단 한번만 나온 기술로 이 경기가 있기 전에 코바시 켄타는 자기 어머니에게 미사와가 자신을 죽이더라도 원망하지 말아달라고 말할 정도. 그 정체는 사실 보통 타이거 스플렉스와 다르지 않지만 하나미치(레슬러들이 입장문에서 링으로 들어가는 통로. 미국과는 다르게, 링과 같은 높이로 설치된다.)에서 장외쪽으로 구사하기 때문에 엄청난 낙차가 존재한다. 거기다 밑은 거의 매트리스 하나만 깔아놓은 맨땅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


에메랄드 플로전 ##

미사와 미츠하루의 주력 피니시. 상대방을 보디 슬램의 자세로 들어올려 어깨에 맨 뒤 수직으로 떨어뜨리는 기술. 변형 기술도 존재하는데 이 경우는 일반적인 스플렉스로 들어올린 뒤 떨어뜨린다. 또, 2단 링포스트에서 떨어뜨리는 설붕식 에메랄드 플로전도 존재. 원래는 피니시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력한 기술이었으나 미사와가 나이를 먹고 힘이 많이 떨어져서 각도가 많이 무뎌져서 그 강력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된 이후로 욕을 꽤 먹었다.



브레인 버스터(=수플렉스)로 들어올린 다음 떨어트리는 개량형 에메랄드 플로젼.



미사와 미츠하루의 봉인기, 타우에 아키라를 상대로 처음 공개되었을때의 충격과 공포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그 위상은 코바시 켄타의 버닝 해머나 카와다의 삼관 파워봄, 아키야마 준의 스타네스 더스트 시리즈와 함께 프로레슬링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중 하나로 여겨질 정도. 기술 자체는 타이거 드라이버와 비슷하지만 들어올린 자세에서 수직으로 떨어뜨린다. 양팔이 봉쇄된 상태에서 뒷목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는 기술이니...알고 대비한다고 해서 받아낼만한 사이즈의 기술이 아니다(...)

사천왕 이외에 사용된 적은 전일본의 코지마 사토시 정도로 사용 빈도가 적은 기술. 그야말로 타이거 드라이버 91을 받아낼 정도라면 미사와가 그 실력을 제대로 인정한 경우 뿐이라는 말도 있다.

그리고 코지마에게 사용하기 전까지는 설정상으로는 에메랄드 플로전보다 약한 기술이었다고 한다.
기술만큼이나 탄생비화도 살벌무식한데, 타우에와 링 위에서 한창 싸우는 중에 아 이렇게 쓰면 더 아프겠넹ㅋ이라고 작심한 다음 그대로 날려버렸다고 카더라(...). 정확히는 '스모를 통해 단련해서 유연한 타우에의 몸은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당시 전일본이 흉기만 안 들었다뿐이지 링 위는 수직낙하 기술의 전성시대라 불렸던만큼인간의 육체로 벌어지는 하드코어 경기라 할 만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플용이 아닌 진실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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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 훗날 아키야마 준을 포함해 오강(五強)으로 불린다.
  • [2] 엘보우로 스탄 한센이나 점보 츠루타, 타카야마 요시히로같이 자신보다 훨씬 덩치 큰 레슬러들을 쓰러뜨렸다.
  • [3] 링 위에서의 과묵한 모습과는 다르게 의외로 말빨이 좋고 특히 야한 농담을 자주 했었다. 그것도 TV에서. 자신의 첫경험이라든지 아내와의 부부생활 등을 신나게 얘기했다. 그리고 노총각(지금은 결혼했지만)이었던 후배 코바시 켄타에게 이런 야한 농담으로 괴롭혔다고 한다.
  • [4] 원래 타이거 마스크는 1960년대 만화인데, 많은 인기를 얻어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했다. 1981년 '타이거 마스크 2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실제 프로레슬러 타이거 마스크도 등장시킨 일종의 콜라보레이션이었다. 신일본의 타이거 마스크(사야마 사토루)는 탁월한 실력을 발휘해 애니메이션 홍보를 뛰어넘어 프로레슬링계에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5] 결혼식 때 밝혔다지만 알 만한 소수 사람들이나 사전에 알았을 뿐 어디까지나 정체는 비밀이었다. 일반 팬에겐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으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돌아보면 이 시합 때 입고 온 팬츠만으로 약간 이상하다는 눈치가 있기도 했다. 원조 타이거 마스크를 잇는 설정이라 계속 파란색이 주가 되는 팬츠를 입었는데 이 날 에메랄드색 팬츠를 입고 경기를 뛰었다.
  • [6] 이 시합은 미사와에게 너무 기울어져있던 두 사람의 대결의 무게추를 중간쪽으로 혹은 카와다쪽으로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후에도 카와다는 98년 5월 1일 도쿄돔이나 99년 1월 22일의 삼관챔피언십에서도 미사와에게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하는데, 97년이전까지의 미사와 vs 카와다 경기에서의 경기의 주도권이 미사와 55 : 카와다 45정도의 백중세였다면(물론 모든 경기가 미사와의 승리) 98년 5월 1일과 99년 1월 22일의 시합에서의 경기의 주도권의 비중은 미사와 40 : 카와다 60 정도라는 느낌. 이전까지의 시합에 비해 상대적으로 카와다가 주도적으로 경기를 이끌어나갔다는 느낌이 드는 시합이었다.
  • [7] 여담으로 그 경기는 2003년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선정 2003년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 [8] 파워밤이지만 등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정수리로 바닥을 찍는다. 목이 안 부러진 게 신기할 정도. 언더테이커의 툼스톤을 반대 방향으로 쓰는 것과 비슷하다? 피해자의 얼굴이 시전자의 다리쪽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이건 반대방향. 즉, 뒤통수가 시전자의 다리쪽으로 향해 있다. 루 테즈가 사용했던 초창기 파워밤과 비슷하여 간소밤(원조파워밤)이라고도 한다
  • [9] 당시 상황은 이렇다. 카와다가 자신의 필살기인 파워봄을 시도했고, 이에 미사와는 프랑켄 슈타이너 내지 우라칸 라나로 반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카와다는 놀랍게도 허리힘으로 이것을 버텼고, 미사와는 그 상태에서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린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카와다가 점프를 하며 무릎을 꿇는데...
  • [10] 프로레슬링 기술 가운데 최강(극악)이란 타이틀을 붙여도 아깝지 않을 만큼 살벌무식하다
  • [11] 뭐 거의 모든 경기가 격렬한 접전에 명경기이긴 했다.
  • [12] 저명한 프로레슬링 평론가 데이브 멜쳐가 선정한 별 5개 경기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레슬러이다.총 71경기 중 24경기로, 별 5개 경기 3개 중 하나를 만든 셈...ㅎㄷㄷ
  • [13] 자이언트 바바는 드라마 '오싱'을 볼 때와 그 경기 때 딱 두번 울었다고(...)
  • [14] 미사와의 죽음 이후 전일본의 유명한 레프리이자 미사와의 둘도 없는 지인인 와다 쿄헤이는 "모토코씨는 미사와씨가 경영에 미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영의 부분은 본인이 맡으려 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미사와의 NOAH는 시대의 흐름을 개척하며 진짜 순항했다. 도쿄돔 단독흥행을 단체 개양 4년만에 그것도 무토 케이지 불러가면서 할 수 있는 단체는 절대 다시 안 나올것이다.
  • [15] 당시 미사와의 탈단을 배신으로 보던 점보 츠루타도 사정을 듣고나서 "미사와군의 심정을 알겠구만."이라고 할 정도다. 점보 츠루타는 미사와와 전일본을 굉장히 아끼는 것으로 유명했다.(지금은 고인인 관계로 과거형으로 서술) 당시 신일본의 톱 무토 케이지의 1/3도 안되는 대전료를 받으며 온갖 살인기는 다 맞고 다니던 미사와니... 본인의 자리를 물려받다시피한 미사와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더 이상 말이 필요한가?
  • [16] 억눌렀다는 표현을 썼지만, 실은 자이언트 바바 본인이 전일본의 톱일때부터 있었던 일이다. 바바의 인망과 카리스마를 믿고 젊은 선수들이 따라왔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다.
  • [17] 그래도 챔피언에 등극한 경기인 마루후지와의 경기는 상당한 명경기였다.
  • [18] 원래 프로레슬링 단체라기보다는 선수 육성 도장으로 사사키 켄스케의 부인인 호쿠토 아키라가 사장으로 있다. 현재는 다이아몬드 링으로 개칭하고 규모는 작지만 자체 흥행도 하고 있다.(흥행 자체는 켄스케 오피스 시절부터지만)
  • [19] 사실 CM펑크가 일본 프로레스를 자주 보는 것은 유명하다. 피니셔를 봐도 KENTA의 오리지널 기술인 GTS(Go To Sleep)이다.
  • [20] 2004년 도쿄돔 시합에서 처음 태그 매치로 싸웠다. 이후 무토 데뷔 20주년 기념 시합에선 같이 태그팀을 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