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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last modified: 2015-04-15 09:29:0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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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have the watches, we have the time."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들에겐 시간이 있다."[1]
- 무자히드 라만(28). 탈레반 간부2012년 Newsweek와의 인터뷰

미국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9.11 테러 직후 벌어진 21세기 최초의 전쟁이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 테러와의 전쟁이란 원대한 계획의 첫단계로 펼쳐진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의 일부이다.그리고 제국의 무덤인 아프간 침략 막장 전설 중 하나

Contents

1. 배경
1.1. 전쟁 초기 : 2001.10~2002년
1.2. 전쟁 중기 : 2003~2009년
1.3. 전쟁 후기 : 2010년~2013년
1.4. 전쟁 말기 : 미국-탈레반 평화회담과 미군 철수 발표(2014년)
2. 미국이 패배한 이유
3. 끝나지 않은 전쟁
4. 기타
5. 사건 사고

1. 배경

9.11 테러. 이걸로 설명 끝. 더 이상의 설명이 必要韓紙?(…)

테러가 발생한 직후에 당시 탈레반 정부의 대변인이 뜬금없이 TV에 나와 "우리는 이 테러와 전혀 무관함."이라는 드립을 쳤으나...

자국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참사에 대해 분노한 미국이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어 개발살내고자 한다는 것은 테러 당일부터 이미 명백한 일이었다. 미국 여론은 일제히 복수를 외쳤고, 정치권도 전쟁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는 거의 없었다.[2] 오로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만이 천벌을 받았다고 고소해하고 있었고 사망 플래그 이란의 신정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는 테러는 나쁜 짓이지만 그렇다고 복수는 옳지 않다는 정도의 입장이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하여 이슬람권 국가의 대중은 "또 미국이 테러 핑계로 깡패짓을 하려는구나!"라고 반미 시위를 했지만 젊은 학생들이나 떠들었지 각국의 정부는 불길이 자신들에게 번질까 봐 벌벌 떨었다. 심지어 반미 테러조직들마저 CIA나 펜타곤에 앞다퉈 연락해서 자기들은 무고하며 다른 놈들이 수상하다고 밀고(...)를 할 정도였다.[3]

며칠 안에 이 테러가 오사마 빈 라덴이 거느리는 알 카에다가 저지른 것이라는 증거가 속속 나오자 미국은 복수전을 계획한다.

결국 테러의 배후에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 카에다가 있다는 게 밝혀지고 이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있다는 걸 알게 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집권세력인 탈레반에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엄청난 전력을 인근에 집결시켰다. 이미 테러 당일 미 항모 전단 하나가 인도양에 전개를 마쳤고, 뒤이어 수많은 해군 전력이 가세했다.

그러나 직접적 침공 루트가 없다는 것과 자신들의 후견국인 파키스탄을 믿은 탈레반은 이를 거절했다. 탈레반(그리고 아프간 부족회의)은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변을 인도하라는 미국의 요구는 거절하면서도 오사마에게는 아프가니스탄을 떠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애시당초 강제 추방도 아니고 그냥 권고인 점에서 보듯이 이 시점에 탈레반은 이미 미국의 공격을 자초한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믿고 있던 후견국 파키스탄도 "야 이 미친 자식들아, 알 카에다 내놓으면 되는 일에 왜 쓸데없이 버텨?"라고 필사적으로 탈레반을 설득하려 했지만 탈레반은 나치, 크메르 루주 이후의 최대의 또라이 광신도 집단이었고 파키스탄조차 겁쟁이라고 비난하면서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게 처맞는 건 무서웠는지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립 서비스를 했지만 미국의 분노는 그런 말장난으로 식을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자 미국은 아프간 반군세력인 북부동맹[4]에 엄청난 자금 및 무기지원을 해주고, 파키스탄에게는 "석기시대로 만들어버리겠다."며 협박,[5] 단박에 영공 사용권을 얻어냈다.(…) 파키스탄은 어차피 저항해봤자 아프간 탈레반 정권과 함께 싸잡혀서 박살날 것이 뻔하니 미국에게 길을 열어주고 돈이라도 받는게 차라리 나았다. 비록 파키스탄에 핵무기가 조금 있다고는 하지만 파키스탄의 핵전력은 도저히 미국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게다가 파키스탄이 미국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이전부터 적대관계에 있는 인도가 미국 측에 서서, 이 참에 눈에 가시인 파키스탄을 완전히 갈아엎어버렸을 것이다.

그리고 뒤이어 아프간 북쪽에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국가들도 미국에 영토 및 기지사용권한을 주면서 아프간은 졸지에 포위된 상황에 놓였다.

친파키스탄 정책을 취하던 미국이 1997년 북부동맹의 리더인 아흐마드 샤 마수드한테 탈레반에게 항복하라고까지 권유했던 것을 떠올려 본다면 엄청난 격세지감. 실제로 당시 미국은 탈레반이 소련 괴뢰정권 붕괴 이후 내전이 계속되던 아프가니스탄의 질서를 잡아줄 것으로 기대했으나(...) 질서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신정체제를 수립했다.

비슷한 정교일치 국가인 이웃나라인 이란마저도 탈레반을 비난하고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는데, 이는 이란은 독보적인 시아파 국가이며, 탈레반은 일단은 수니파로서 역사적으로 서로를 격렬하게 적대하였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도 소수 시아파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적 여건이 좋지 않다.

미국은 즉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결정한다. 탈레반 정권이 미군의 공습에 붕괴될 것은 확실시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새 정부수반들을 모색하는 한편, 이들을 지원해줄 국제안보지원군(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 ISAF) 창설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요구하여, 침공 2달 후 결성되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참가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다 답정너

그러나 미국은 을 잘못 건드렸다.

1.1. 전쟁 초기 : 2001.10~2002년

10월 7일, 수도 카불을 비롯한 주요 군사거점 및 대도시들이 미군의 대규모 공습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복수에 눈이 먼 미국의 대대적인 전면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단 하루만에, 아프간의 방공망과 통신망, 공군세력은 소멸되었다.[6]

(애당초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동시에 북부동맹도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하고, 미 항공세력이 북부동맹에 대한 대규모 근접항공지원에 나서며 탈레반 지상군은 순식간에 격멸당했다.[7]

결국 개전 한달여만인 11월 13일, 수도 카불이 북부동맹에게 함락되었으며 12월 7일에는 탈레반 세력의 최대거점인 남부의 칸다하르마저 함락되었다.[8] 알카에다와 탈레반 패잔병들이 국경도시인 토라 보라(Tora Bora)에서 재정비를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미군은 12월 12일부터 5일에 걸친 혈전끝에 도시를 점령하나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는데에는 실패했지만 이 시점에 이르러 사실상 전쟁은 끝이 났다. 탈레반 세력은 급격히 축소되고, 일부 잔존세력이 남부 산악지대로 은신해 들어가서 간신히 연명하는 수준이었다. 아프간의 미래를 결정하기 위해 소집된 본 회의에서 새 임시정부의 수립이 결의되고, 하미드 카르자이가 임시정부의 수반으로 지명되었다. 주요 도시 및 교통망은 미군이 완전히 장악했다.

한편 일방적 침략이었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달리 이 전쟁은 해방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에 미군을 환영했다고 일부 보도가 있었지만 그건 '''서방측의 감정이입이었고 실제로 아프간 인들은 탈레반의 몰락이나 미국의 진주에 별로 소감이 없었다고 한다. 어차피 아프간인들은 국가보다는 부족에 더욱 큰 소속감을 느꼈기 때문에 중앙정권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도시에서와는 달리 향촌지역에서는 탈레반 이전부터 이슬람원리주의가 득세하고 있었기 때문에 탈레반의 막가파 정책도 조금 더 불편해졌을 뿐, 아프간인들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호의적으로 본 것은 아니었고, 실제로 이것이 탈레반이 몰락한 원인이기도 했다.

결국 (농촌) 아프간인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진주와 카르자이 정부수립은 그저 자신들과 별 상관 없는 중앙정부가 바뀐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농촌지역과는 달리 도시민들인 카불 시민들은 탈레반의 축출을 기뻐한 것은 사실이었다.[9] 탈레반이 쫓겨나자 즉각 시민들은 길거리로 쏟아져나와 북부동맹군을 환영하였고 남자들을 탈레반의 강요로 길렀던 수염을 밀어버렸으며 여자들은 부르카를 벗어던지고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간 금지되었던 각종 음악과 노래와 춤도 등장했다. 그간 탈레반에 당해왔던 시민들이 탈레반 병사들의 주검을 길거리로 끌고와서 모욕을 가하는 것이 우리나라 뉴스에 여과없이 방송되기도 했다.

1.2. 전쟁 중기 : 2003~2009년

2003년, 탈레반은 다시 중흥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굴부딘 헤크마티아르가 이끄는 헤즈비-이슬라미(Hezb-i-Islami)와 탈레반이 손을 잡은 것이다. 헤즈비 이슬라미는 90년대 아프가니스탄 내전 당시 미군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의 훈련도가 높고 무장 상태가 양호했었고, 이들의 가세는 탈레반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이외 파키스탄 등 여러 인접 지역에서 엄청난 규모의 무기와 전쟁 물자, 용병들이 쏟아져 들어옴으로써 초기 전쟁에서 입은 손실을 보충하는 건 물론 오히려 더 강력한 군사력을 갖추게 되었다. 물론 그 대가로 지나친 파슈툰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좀 희석됐지만 애시당초 파키스탄이나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오는 용병들의 수준도 탈레반보다 조금 낫다뿐 거기서 거기라...

설상가상으로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고 미군 전투병력 및 동맹국 병력 상당수가 이라크로 재배치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미국의 최우선관심사는 이라크로 옮겨갔으며 아프간은 이미 안정화되었다고 판단,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데 이 기간을 모른 척할 탈레반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전력을 증강하게 된다. 특히 이 시기에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면서 미국을 자극하는 대신 전력을 재건, 강화하고 각 지방의 실질적인 지배에 전념한 것은 (탈레반 입장으로 보면)굉장히 현명한 판단이었다. 게다가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통제력이 없고 답이 안 나오는 실패 국가였다.

그 뒤 미국이 이라크에 전념하느라 아프간 문제에 관심이 없는 틈을 타 수년에 걸친 전력 재건을 그럭저럭 끝마친 탈레반은 파키스탄 접경지대 등을 기반으로 삼아 세력을 빠르게 키우고 반격을 시작했다. 이들은 50명 이상의 규모로 미군과 아프가니스탄군을 습격하고 2~5명의 소규모로 뿔뿔이 흩어지는 게릴라 전법을 사용했는데, 이들을 잡기 위해서 병력을 증파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라크 전쟁으로 있던 병력마저 빼가니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루 주기로 마을의 주인이 미군과 탈레반을 왔다 갔다 하는것은 예삿일이고, 심심하면 탈레반의 습격을 받으니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미군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탈레반에 대한 지지가 강했던 남부 파슈툰족 지역은 어차피 미군은 떠날 테고 정부는 답이 없으니 그냥 탈레반에게 잘 보이도록 하자며 탈레반에 가담하거나 최소한 그들의 활동을 묵인하였다.[10] 결국 탈레반 세력은 다시 남부에 맹위를 펼치고 수도에서 게릴라 공격을 펼칠 정도로 부활했다.

게다가 도망치기 바빴던 알카에다[11]와 탈레반 잔존병들이 파키스탄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테러단체 하카니 네트워크가 이들과 협력하면서 상황은 점점 막장이 되어갔다. 그리고 이게 아니라도 아프간은 그 특성상 국경 통제가 힘들고 외부 지원이 용이하며 주변국들 대부분이 막장이었기에 처음부터 실패가 예고된 전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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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미군의 활동을 ISAF가 이어받아 약 8천명의 다국적군이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다. 이라크 전쟁으로 병력부족을 겪고 있는 미군은 이들을 적극 환영하며 여세를 몰아 손가락만 빨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탈레반을 타격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미 탈레반도 최소 수만에서 수십만의 대군을 확보한 상태라 이때부터 시작된 전투는 이전과 비교하면 상당한 대규모의 전투로서, 전투만 일어났다 하면 ISAF측도 백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탈레반은 많으면 2천명까지 죽어나갔다.[12] 가운데서 쥐어터지는 민간인 희생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탈레반은 이러한 사상자에 그리 크게 구애받지 않았는데 수천 명이 죽어나가도 각국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서민들이 용병이 되어 아프간으로 속속 들어오면서 얼마 가지 않아 보충되곤 했기 때문.

미국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ISAF병력 증파를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에서의 반전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랐기에 주춤하고 있는 상황.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에서의 철수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집중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여담으로 미국과 중국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아프간 자헤딘에게 미국/중국산 무기를 막 뿌렸는데, 이 무기들이 지금은 미군을 노리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 2001년 당시 러시아군 관계자들은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미군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때 소련군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미국은 보란듯이 탈레반 정부를 전복시키면서 코웃음 쳤으나, 결국 러시아의 경고는 맞아떨어졌다. 소련과 미국 모두 쉽게 이전 정부를 전복하고 괴뢰정권을 세우면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나 그 때부터 수렁에 빠져버렸다.

1.3. 전쟁 후기 : 2010년~2013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경제적으로 치명타를 입은 미국은 공화당을 버리고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오바마는 군비를 절약하기 위해 이라크를 과감히 포기하고[13]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소탕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라크에서 빠져나간 미군들이 줄줄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재투입되기 시작. 한 때 10만 명 이상에 이르게 된다.

2010년 2월 13일, 미군은 육, 해병대 6,000명 이상, UAV 다수, IED에 대응하기 위한 다수의 폭발물 제거차량, 아파치 헬기 등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Operation Moshtarak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서방 언론에서 'decisive'라는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작전으로, 아프간 전체 영토의 8할이 탈레반 통제하에 들어갔을 정도로 악화된 상황을 반전시킬 여지가 있는지를 시험할 겸 진행된 공세였다. 작전이 망할 경우에는 패전 수순을 밟을 수도 있을 정도라고 판단되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다.

연합군은 3일만에 목표인 마르자 시내에 진주하였으나, 마르자 시를 제외한 헬만드 주 제압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작전을 지휘한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대통령 등 행정부와의 의견차이와 실언 논란, 그리고 작전 실패까지 겹쳐 교체되었다. 거기다가 원래 마르자 지역을 장악한 후 칸다하르를 칠 계획이었으나 후속작전은 무기한 연기되고 있으며 거기다 아프간 군대의 수준은 차라리 없는 게 도와주는 것일 정도로 형편없다.[14]

전쟁 첫 7년 미군 전사자는 700명으로 많지 않았으나 탈레반이 전력을 회복하고 각 지역의 통제권을 재장학한 상황에서 전면 충돌에 들어간 2009년 이후 증가하였다. 2010년 6월 연합군 103명이 전사하여 월간 단위로 개전 이래 최다 전사자가 나왔다.

2001년 침공 당시부터 2012년까지의 미군 전사자(사상자가 아니라 전사자만) 수는 총 2,174명.[15] 그외 영국과 캐나다 등 연합군 전사자까지 모두 합치면 3,249명에 이른다. 유럽국가들은 나도 할 만큼 했음 하고 철군할 기세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탈레반의 자폭테러와 도발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2011년 5월, 전쟁의 원인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 있다가 미군에게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미국은 전쟁의 명분이던 빈 라덴을 처단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아프간에서 발을 뺄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 아프간에서 철군한다면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소말리아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탈레반이 권력을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탈레반이 그나마 1996년에서 2001년 집권 당시의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상실한 집단임을 고려하면 그 여파는 이웃 국가들, 특히 을 보유한 파키스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이후에도 전투는 계속되어 2011년 8월 6일 새벽,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의 공격으로 미군 31명이 탄 치누크 헬리콥터가 격추되어 타고있던 38명(아프간 정부군 포함)이 몰살당했다. 이 31명 중 대다수가 네이비 씰 내에서도 최고의 정예인 DEVGRU 소속, 바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그 부대다. 하필이면 이런 기막힌 우연 때문에 빈 라덴의 복수라는 비유를 하기도 한다. 하루만에 31명이 사망한 것도 운이 없지만, 전쟁 중에 한 두 명 죽는 것도 드문 미군 최고의 특수전부대원 수십 명이 한번에 사라져버린 것. 일반 미군 사망 수백 명보다 훨씬 뼈아픈 손실이며 미 특수전 사상 최악의 대참사 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참가한 부대원은 한 명도 없다고 발표되었다.[16] 이 때문에 아프간 정부군에 슬슬 전쟁 주도권을 넘기려던 미국에서 아직 철군하기에 위험하다는 의견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이 있든 없든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은 없다. 2012년 4월에는 카불 곳곳에서 동시 다발 테러를 일으켜서 아프간 정부군은 29명의 사상자를 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긴급 피신했고 미군도 출동했지만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이 미군에게 돌을 던지는 통에 미군에 대한 인식만 최악이라는 게 다시 한번 드러났다. 알 카에다는 모두 36명이 전사했지만 충분히 효과를 거두었다는 분석이다. 반미의식이 확인되었고 정부군은 우왕좌왕했으며 미군은 사람들의 돌팔매질이나 당하는 바람에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1.4. 전쟁 말기 : 미국-탈레반 평화회담과 미군 철수 발표(2014년)

결국 미국은 발빼기를 위해 계속 탈레반과 협상을 타진했고, 탈레반은 이를 수락했다. 탈레반과 미국은 2013년 6월부터 전쟁 발발 12년만에 카타르에서 평화협상을 시작했다. 여기서 배제된 현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반발중이지만 이미 신뢰를 잃은 집단인데다 어차피 망할 자들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미국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탈레반과 협상을 하고 있다. 탈레반은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포로와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미군포로와의 교환을 주장한다고 한다.

어차피 현 상황에서 아쉬운 쪽은 미국이고 이런 경우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는 1973년과 1989년에 이미 증명된 만큼 탈레반이 정말로 답이 없는 수준의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17] 결국 탈레반에 유리한 방향으로 처리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처음에 양측 입장차이가 커서 협상은 얼마 안가 결렬되었지만, 미국도 어쩔 수 없기 때문에 다시 재개되었다.

2014년 6월 1일, 결국 2009년에 탈레반에 잡힌 유일한 미군 포로 보위 버그달(Bowe Bergdahl) 병장은 관타나모에 수감되어 있던 탈레반 간부 5명과 교환되어 풀려났다. 본격 홈랜드 실사판[18] 공화당은 의회 허가없이 테러리스트들을 풀어줬다며 난리지만, 일단 5년간 억류생활을 하던 자국 병사가 돌아온건 미국으로선 환영할만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후에 버그달 병장은 전투중 포로로 붙잡힌게 아니라 기지를 나섰다가 억류되었고, 그를 찾겠다고 나선 미군들이 몇 명이나 탈레반과 싸우다 죽었다는 게 뒤늦게 드러나는 반전이 있었다. 친지에 보낸 마지막 이메일에서 군생활에 대한 환멸감을 썼는데, 이때문에 탈영혐의를 받게 된 것. 그래서 환영행사가 취소되는 등 내부적인 분위기가 안 좋은 상태. 일단 미군측은 버그달 병장이 5년간이나 사실상의 감옥 생활을 한 만큼 그걸로 벌은 충분히 받았다며 환영은 안 하더라도 처벌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결국 조사 결과 버그달 병장은 단순 외출 중 피랍된 것으로 판단되어 탈영혐의에서 벗어났고, 2014년 8월 현재 다시 현역으로 복무하고 있다고 한다.


C-130 수송기로 철군하는 미군 병사들

한편 철군은 탈레반과의 협상과 무관하게 빠르게 진행되어 2014년 5월. 오바마는 결국 2016년까지 모든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하였다. # 철군안은 2014년까지 통상적인 임무 (순찰, 전투)등은 모두 종료하고 9800여명의 병력을 남겼다가 2년후인 2016년 이 병력도 모두 철군한다는 것이다. 이 협정을 양자 안보 협정(Bilateral Security Agreement)라고 한다. 물론 소수의 군사고문단은 남긴다지만 이게 얼마나 무의미한가는 한국전쟁 직전의 한반도. 그리고 1973년 이후의 남베트남으로 알 수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 들어서 미국도 국력의 한계를 느끼고 해외 개입은 적극 자제하고 있다. 당장 시리아 내전에서 개입을 최소화하고, 우크라이나2014년 크림 위기에도 그저 성명을 발표하는 것이 전부이며,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직접개입하는 대신 아베 신조의 보통국가화 추진을 묵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단 극우화에 대해서는 주변 동맹국들의 입장을 감안하여 반대한다.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철수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철수한다는 점에서 미국 입장에서는 명목상으로나마 평화협정을 맺고 철군한 베트남 전쟁보다도 더 굴욕적인 것이다. 사실상 쫓겨나듯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난 소련군의 철수를 그대로 반복했는데, 소련군(10년)보다 좀더 오래 버텼다는 것(2016년에 예정대로 철수한다면 15년)이나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미군은 처참한 결과를 얻었다.

이렇게 미군이 철수 움직임과 결정이 되자 한국군 역시 01~07년 12월까지 동의-다산부대 활동과 더불어서 2차 파병이었던 오쉬노 부대 역시 10~14년 6월을 끝으로 모두 철수하여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다만 현재 주 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 경비로 한국군 경비인력이 남아서 활동중이다.


사망한 미육군 해럴드 그린 소장.

한편 2014년 8월 6일, 카불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위장입대한 과격분자에 의해 미군 해럴드 그린 소장이 피격되어 사망했다. 범인은 그린 소장뿐만 아니라 여러명의 ISAF 인사들을 저격, 사망케 했으며, 현장에서 사살되었다고 한다. 소장이 분쟁지역에서 사망한 것은 베트남 전쟁 이래 처음있는 일이라서 미국에서도 꽤 충격적인듯. 나름 정부군에서 가려뽑은 고위인사 호위병력이 저런식이라면 미군이 진짜 떠나면 현재의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얼마나 버틸지 답은 뻔한 상황이다.

2014년 10월 27일, 이 전쟁에서 미국의 최우방국이었던 영국이 13년간 453명의 전사자와 190억 파운드의 전비지출을 기록하고 헬만드주 마지막 기지였던 Bastion에서 최종 철수했다. 이로써 미군의 철수 또한 가시화되었으며 영국내에선 이 전쟁에 대한 정당성과 토니 블레어 전총리의 참전 결정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있다. 단 아프간 정부군을 위한 훈련교관과 기타 비전투요원들은 시간을 두고 철수 할 듯 하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오면서 미국은 한숨만 쉬고 있다. 2014년 11월 중국은 무려 1000조원이 넘는 경제협력을 아프가니스탄 측과 맺기로 하며 접근중인데 증오로 남겨진 미국과 달리 중국은 반응이 좋은 편. 결국 미국은 중국이 좋아할 일을 만들어준 셈이다. article|default 중앙일보 기사

결국 미국 현지시각으로 28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공식적으로 끝이 났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4/12/29/0200000000AKR20141229136900077.HTML?input=1179m
다만 나토측에서는 1만 5천명 가량을 아프간에 2016년까지 주둔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그러나 10만이 넘는 병력도 아프가니스탄 평정에 실패한 상황에서, 게다가 상설이 아닌 한시적 주둔인 점에서 사실상 의미는 없어 보인다. 아마 2016년이 지나고 난 뒤 결국 탈레반이 재집권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

미국에서도 이라크 전쟁에 이어 미국이 이기지못하고 돌아간 ,베트남 전쟁을 이은 전쟁이라고 인정하고 있다...미국 극우들은 미국이 진게 아니라고 해도 그들도 그럼 우리가 이겼냐? 라는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2. 미국이 패배한 이유

미군과 ISAF는 벌어지는 전투마다 압도적인 교환비를 자랑하며 승리를 거두고 있다. 탈레반 수백명이 사상당하면서도 미군 병력의 손실이 전무했던 전투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19] 사실 미군은 전사자는 적어도 돈은 펑펑 든다. IED같은 폭탄만 해도 100달러도 안되어 만드는 무기가 100만 달러를 넘는 장비를 타격을 입히기 때문. 전사자는 없어도 부상자 및 전쟁 후유증으로 평생 그들을 돌볼 막대한 돈이 들기에 이라크 전쟁과 더불어 미국 경제에 수렁을 선사했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오랜 기간동안 내전을 치뤘고, 1996년부터는 시대착오적인 ''탈레반"이 국가를 중세로 되돌렸고, 2001년부터는 또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실패국가가 되었다.

정치적으로는 고대부터 이어져 왔던 부족갈등, ISAF의 병력부족으로 인한 치안의 악화, 탈레반의 과격화, 아프간 신생정부의 무능과 부패, 미군의 삽질과 수많은 오인사격/폭격, 경제적으로는 오랜 전쟁으로 개판이 된 민생경제, 마약재배, 관료들의 부패 등 열거하기도 힘든 수많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차라리 소련 괴뢰정권은 그나마 이념적 동조자를 모을 수가 있었고, 괴뢰정부군도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소련군과 연합작전도 가능했지만, 미국이 조직한 카르자이 정부는 이념적 동조자도 모을 수 없고, 정부군은 말할 수 없이 개판이라서 미군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있으니 미국이야말로 더욱 진퇴양난이다.

아프간 정부의 부패를 보여주는 사례의 하나로 부통령이 아랍에미리트두바이를 국빈방문했는데 짐!속에서 현금으로 3천만 달러가 들어있는 트렁크가 발견되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국빈방문으로 외교관 면책특권이 적용되는 데다, 에미리트는 친서방국가로 어찌되었든 아프간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이라 그대로 묻혀버렸는데, 나중에 위키리크스의 기밀문서 공개로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3천만 달러 밀반출 정도는 얘기거리도 안되는 게, 카불 공항을 통해 공식적으로 신고하고 반출되는 금액만 한달에 2억달러라고. 내전 중인 나라에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아프간 침공 이후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경제재건과 민심안정 등의 명목으로 지원한 금액이 총 700억 달러를 넘는다. 군사부분은 제외한 순수 민간분야 원조만 해서 이 정도인데, 그 중 절반 이상이 이런저런 루트로 유출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야말로 달러셔틀 미국. 경제는 망해가는데.. 그놈의 부시가 웬수

부족 간에 강약은 다르지만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원래가 이슬람 원리주의자[20]이고, 적어도 탈레반을 호의적으로도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나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자 미군에 대한 지지세가 감소하고 있다. 미군은 2014년이면 떠나지만, 탈레반은 끝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민중들 입장에서는 더러워도 탈레반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고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탈레반이 미군보다는 훨씬 아프간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저렇게 활개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갈 길이 멀어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대충 손을 떼고 나갈 수 없다. 이라크와는 달리 아프간 전쟁은 전쟁의 명분이 서있고 아프가니스탄이 우라늄을 비롯한 막대한 광물자원을 비롯한 가득 가지고 있기에 이 점으로 핵개발에 빼놓을 수 없는 요충지이자 아예 이웃 파키스탄이 핵 보유국이라는 점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승리할 경우, 인접한 파키스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21] 만일 핵 무기의 통제권이 붕 뜨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따라서 미국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결국 GG치고 옛 소련과 같은 꼴로 물러나야 했다. 어잌후 이거 잘 하면 파키스탄/아프간/이란을 이어주는 메갈로폴리스 헬게이트 열리겠네~

현재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Covert Operation(비밀작전)의 횟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도 정치적 생명을 걸고 아프간전을 끝내려고 하는 민주당 행정부의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태스크 포스 373의 존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일선 장병들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도 심각해지고 있으며 별의별 인간들이 병력 부족으로 군에 들어오게 되면서 전쟁 범죄도 늘어나고 있다.어디선가 많이 본 데자뷰.. 또한 전쟁터에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장병들이 본토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건 이라크에 파병되었던 장병들도 마찬가지. 미군 실전부대는 1년간 순환근무를 하는데, 전쟁이 길어지면서 웬만한 병사는 서너 번씩 이라크나 아프간을 다녀오면서 지옥을 경험하다보니 맛이 간 사람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22]

미국 국방부의 의회 공개보고서인 2010년 10월~2011년 3월 분 1230 리포트에 따르면 현재 전반적인 치안이나 경제사정이 미약하게나마 좋아지고 친정부세력이나 아프간 군경의 규모가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헬만드 지역과 칸다하르 지역은 여전히 유혈사태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11년 7월 7일 캐나다군이 모든 활동을 중지하고 철군하였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슬슬 발을 빼려 하는 분위기니 미국만 환장할 듯.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미국은 한국에게도 전투병 파병을 요청한 바 있다. 물론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난지 몇년 지나서 미군이 고달퍼하던 시기였기에 부정적인 반응도 많았고 이라크 전쟁 때와 달리 국내 언론에서도 몇몇 언론이나 작게 언급할뿐 흐지부지 넘어가버렸다. 일부 파병 지지자들은 산악전이 많은 북한에 대비하고자 산악전 실전 경험을 위하여 전투병을 투입하자는 의견도 냈으나 무시당했다.[23] 그도 그럴 만한게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온 채수문 중령은 전투병 파병은 너무나도 한국군에게 도움이 안된다. 탈레반이 숨어서 활약하는 산지는 오로지 헬리콥터나 의존해야 하는데[24] 한국으로서는 미군처럼 종일 헬리콥터만 타고 순찰,전투를 하기도 벅차다며 수렁같은 전쟁에 빠져들기에 전투병 파병은 어리석다는 뜻을 보였을 정도였다.[25]

3. 끝나지 않은 전쟁

미국이 세운 신정권인 현 아프간 정부는 부정부패와 무능력 때문에 완전히 민심이 떠났고, 날이 갈수록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현 아프간 정부가 무능하다고는 해도 구 탈레반 치하보다 객관적인 은 전쟁을 제외하면 상당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 아프간 정부가 민심을 얻지 못하는 것은 서방의 지원액의 대부분이 아프간 민중보다는 정부인사들의 호주머니로 간다는것. 당연히 민생이 조금 나아져도 민심의 불만은 억누를 길이 없다.

미국도 민심을 얻는게 승리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민생 지원책으로 뿌린 돈만 천억달러(무려 100조!) 이지만, 이 돈은 대부분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아니라 부패한 아프간 관리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그러니 미국은 돈은 돈대로 쓰고 욕만 먹는 셈. 차라리 그 돈으로 탈레반을 달랬으면 더 효과가 있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다만 탈레반은 종교적 광신주의자들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부패행위와는 거리가 멀고, 이렇기 때문에 부패한 아프간정부에 대한 불만이 탈레반에 대한 호의 및 간접적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이전버전에서는 꼴통이 많아서 탈레반의 지지율이 높다고 하는데, 어차피 아프간인들 대부분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다. 아프간 정부는 스스로 이슬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아프간 정식국호가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이다.) 실제로는 미국의 눈치를 보는 어정쩡한 정책[26]만을 취하고 있으며, 만연한 부정부패에다가 미국의 괴뢰정부이기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차라리 탈레반을 더 낫게 본다고 한다. 결국 현 아프간 정부 역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여론에 동조하여 잔인한 투석형을 부활시키는 등의 종교적 극단화가 계속되고 있다.

탈레반 자체도 자신들의 첫번째 실패를 거울삼아 예전에는 엄격한 이슬람 법률을 어느 정도 완화하고 예전에는 율법에 따라 돌팔매질 처형으로 다스렸을 일들을 그냥 훈계만 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등, 아프간 인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일시적으로나마 변한 척을 하고 있다니 미국은 이래저래 낭패. 다만 최근에는 전쟁의 승리가 가까워지자 다시 막장질을 재개했다. 정부 협력자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어린아이까지 살해한다던가.

탈레반이 저렇게 세력을 확장하여 막강한 미군을 물고 늘어질 수 있는 것도 종교적 광신이든 일시적으로 변한 척하는 사기극이든지간에 아프간인들의 지지가 있기 때문이며, 적어도 아프간 정부군보다는 훨씬 민심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총칼로만 민중을 위협했다면 탈레반이 저렇게 세력을 떨칠 수는 없다. 결국 탈레반을 근절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탈레반보다 아프간인들의 지지를 더 받는 세력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지만, 부정부패에 찌든 비탈레반 군벌들이 난립하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2012년에 탈레반은 수도 카불 인근을 제외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자체 주지사를 임명하고 정부 행세를 할 정도로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동안 인도주의적인 구호를 해온 NGO 단체마저도 아프간 정부가 아니라 탈레반과 손을 잡고 구호활동을 한다고. 탈레반 몰락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동 통신 회사마저도 미군 스파이의 활동을 막기 위해 탈레반의 명령에 따라 밤에는 서비스를 중지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통역요원 중 많은 수가 탈레반이라고 한다. 2011년 8월에 벌어진 헬기 추락으로 인한 네이비 씰 몰살 사건도 헬기에 함께 타고 있던 통역요원이 정보를 누설하여 계곡에서 매복하고 하던 탈레반들이 쏜 RPG-7 공격을 받고 추락했다.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로 미군은 발을 뺄 명분을 얻게 되었다. 미국은 2014년 아프가니스탄 완전철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전황은 도저히 나아질 기미가 안보이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탈레반과 협상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즉 탈레반의 지배를 용인하는 대신 탈레반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완화하켜 미국이 발을 뺄 명분을 얻으려는 속셈인데, 문제는 탈레반이 전략적으로 유리한데 굳이 발빼려는 미국과 협상할 가능성이 전무한 실정이다.

2011년 9월 13일에는 수도 카불에선 4곳 동시다발 테러를 당했고 속수무책인 현 정부군과 경찰 대응 속에 앞으로도 이럴 일이 계속 터질 듯 싶음에도 결국 미군은 2016년 철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결국 미군은 25년 전 소련군의 전철을 밟게 되었고, 현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이 얼마나 개념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결국 과거 무자헤딘에 전복된 친소 나지불라 정권의 말로를 반복할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에 뒤이은 두번째 굴욕적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듯. 다만 아프간 구 북부동맹 인사들 상당수가 탈레반의 재집권에 맞서 무장을 재개하기 시작했기에 카르자이의 파멸과는 별도로 탈레반이 Again 1996을 이룰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들 상당수가 여론 조사에서도 이 전쟁은 무익하고 미군이 철군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다. 이에 존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 우익파들은 2014년 이후에도 미군이 주둔해야 한다는 주장을 버리고 있지 않지만 기사 사실 미국이 아프간을 지금 와서 떠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시기는 이미 지났다. 미군이 철군하든 안하든 미국은 아프간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미국 논객 토마스 프리드먼은 컬럼에서 어차피 전쟁은 탈레반의 승리로 끝날 테니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우호관계를 맺어 지금의 미국과 베트남의 관계와 같은 사이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즉 베트남 전쟁 재현이라는 현실이 다가온 셈. 사실 아프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하면 반미 세력이 장악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긴 막아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냥 극단주의만 외치면 그나마 다행인데 중앙아시아 진출을 추진중인 중국과 손잡을 수도 있기 때문.

2012년 9월 힐만드 주에서 탈레반이 각종 관공서를 보란듯이 대낮에 공격하여 공무원 4명을 비롯한 다수 사상자를 냈으나 정부군은 우왕좌왕하며 1명도 잡지 못했다. 미군으로선 지금도 이런데 미군 철수한 다음에는 뻔할 노릇일테니 답답할 것이다.

카르자이 임기 말기가 되면서 다음과 같은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이 발 뺀 뒤 탈레반이 카르자이 정부를 전복한다. 하지만 구 북부동맹 출신 군벌들의 재무장과 외부의 간섭, 파키스탄의 애매한 태도[27] 등으로 인해 아프간 전체를 재장악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카르자이는 이제와서 미국을 비판하고 탈레반과 협상을 하는 등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으나, 탈레반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결국 무하마드 나지불라 꼴로 고자가 되서 조리돌림 당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28]

일부 국제 전문가들은 1970년 론놀 장군의 군사 쿠데타로 왕정 폐지 후 피비린내 나는 유혈내전을 겪으며 1975년 론놀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크메르 루주 세력들의 폭정으로 자국민 백수십만 명이 학살당하다 1979년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크메르 루주 정권이 붕괴되고 198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한 직후 UN의 개입으로 1993년 입헌군주제로 왕정복고가 이루어진 캄보디아처럼 미군 철수후 아프가니스탄이 캄보디아처럼 옛 왕정으로 복고될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물론 2014년 투표율이 탈레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50% 이상에 이르는 등 아프간인들이 탈레반을 그다지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입증됐다. 그러나 그것은 적극적인 반대가 아니라 소극적인 지지 철회일 뿐이며, 이들이 본질적인 측면에서 탈레반과 목숨 걸고 싸울 각오가 되어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단지 탈레반이 다시 복귀한다고 쳐도 이전처럼 날뛰기가 좀 더 어려워질 거라고 기대하는 정도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결국 공은 출범하는 아슈라프 가니 행정부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친서방 주의자로 알려진 그가, 산적한 내부 정치 현안을 잘 극복하고[29] 탈레반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 나갈지가 가장 큰 문제이다. 일단 BSA에 가니 신임 대통령이 서명하기로 함에 따라, 2016년까지 단계적으로 미군 철수는 이루어질 예정이다.

최근 미국이 이란과 어느 정도 화해-협력의 의사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이슬람 수니파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존재를 통해 답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으며 그렇다고 이스라엘[30]이나 터키[31]를 이용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란에게 메소포타미아 일대와 양 스탄 모두를 맡기는 대신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관철시킬 경우 미국으로서는 그나마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를 두어 중동을 안정은 시킬 수 있는 셈이다.[32]

4. 기타

메달 오브 아너(2010 리부트)는 아프간 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서 탈레반을 선택해 플레이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비난을 받았고 결국 탈레반이라는 명칭은 못쓰게 되었다.

탈레반이 이기건 현 아프간 정부군이 승리하건, 아프가니스탄은 장기적으로는 탈레반 통치 시기와 비슷하거나 그와 거의 같은 수준의 꽉 막힌 원리주의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원리주의와 파슈툰 족의 인습에 깊이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젠 미국에서도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계속해야한다는 주장은 나날이 힘을 잃고 있다. 되려 오사마 빈 라덴이 죽자 미국에서 이제 전쟁은 끝난 셈이다, 더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파병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라는 의견이 많이 늘어났으니 말 다했다.

5. 사건 사고

여느 전장이 그렇듯이 미군들이 민간인에게 가한 가혹행위와 학살 사건이 터졌는데, 2010년에는 미군이 그룹을 이루어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고 다닌 킬 팀 사건이 벌어져 미군 최악의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2012년 1월에는 네 명의 미국 해병대원들이 전사한 탈레반 병사 세 명의 시체에 소변을 갈기는 동영상이 폭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 일로 중동권을 비롯해 미국을 비난하는 여론이 매우 커졌는데, 사실 미국인들조차도 "명예를 중요시 한다는 미 해병대가 적군 시체를 모독하다니!" 하고 굉장한 충격에 빠진 반응이었다. 결국 해당 해병대원들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1년 금고 또는 이등병 강등 후 불명예 전역과 같은 처분을 받고 군대에서 쫓겨났다.

2012년 2월, 미군이 "실수로"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을 쓰레기장에서 소각한 것을 아프가니스탄 측이 발견, 안그래도 어려운 상황을 더욱 꼬아 놓았다. 초반에는 미군의 반응이 '이슬람 과격 저서들을 불태웠더니만 코란이 있더라... 그래서 뭐 대수냐?' 이랬다가 반발과 시위가 넘치고 미군 2명이 사살당하자 부랴부랴 책임자인 장교를 미국으로 전출시켰다. 소잃고 고치는 거 없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는 미군에 대한 항의시위가 벌어지고, 미군은 베트남전에서 빚은 현지 주민과의 마찰을 다시 걱정해야 할 지경. 오바마까지 나서서 사과했으나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걸 고려하면. 이런 종류의 전쟁이 대체로 그렇듯이, 외국군이 현지민과 사이가 나빠지면 거의 전쟁은 끝난 셈이다.[33] 미군으로서는 결정적 실책을 범한 셈으로, 안 그래도 미움 받는 아프간의 미군은 이것으로 거의 패착을 확정한 것 같다.

2012년 3월 11일에는 미군 병사가 아프간 마을을 돌며 비무장 민간인 열여섯 명을 사살한 칸다하르 학살 사건이 벌어져 반미감정이 더 거세졌다. 피해자 중에는 두 살짜리 아기까지 있어서, 아기 부모가 '우리 아기가 탈레반이냐?'라며 울부짖으며 분노하는 인터뷰 영상이 전 세계에 퍼졌다. 원래는 성실하고 바른 병사였다는데 때문에 이 소식을 전해들은 주변인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 병사는 이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아 사회와 영구 격리. 미국 측은 피해 보상금을 내놓고 민심 달래기를 하고 있지만 별 효과는 없다.

그리고 위에 나온 2012년 4월 카불 동시 테러에 미군들은 아프간 시민들의 돌팔매질을 피해야하는 상황에 처하여 미국 극우파들도 민심이 떠난 자리에 아무리 미국이 열심히 해봐야 반미만 거세지는 현실에 고민 중이다. 존 매케인이 철군 반대를 인터뷰했지만 기자에게 "그럼 철군 말고 대체 뭐 뾰족한 방법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명확하게 답변을 못했다. 아니 그 방법이라는 게 없을 테니까.

타 문화권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군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34] 미군은 자기들이랑 다른 문화권에서는 대민정책을 끝내 주게 못하는 걸로 유명하니(당장 위에서만 봐도 알수 있듯이 코란을 태우고도 그게 왜 잘못된 건지 전혀 모른다.) 미군에 대한 현지 주민들의 반감은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사람들은 모두 다르며, 개인 문제는 개인 문제'라는 미국식 사고에 있다. 예를 들어, 미군 한 명이 민간인에게 잘못하면 이 일이 오직 그 미군 한 명에 국한된 문제라 생각하고 처리해버리는데, 문제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단순한 개개인의 차이가 아니라 '미군들' 이 저지른 만행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군의 공식 대응이 '한 개인이 저지른 사건' 수준에 머무르고, 이게 피해자 측에서는 점령군의 오만한 행위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미군의 대민정책 실패의 사례로 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모두 초기에 미군 병사들이 일으킨 문제들을 미군 당국이 '한 병사가 사고친 것으로 '미군의 이름과는 무관한 개인 단위의 사고'로 취급하다 반미감정이 엄청나게 거세진 케이스다. 단순한 사고로만 치부하다가 엄청난 후폭풍을 맞은 우리나라의 '여중생 장갑차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군이나 미국만 이런다고도 할 수도 없다. 과거 영국이나 소련군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점령을 했을지언정 비슷한 문제로 반감을 얻어 게릴라전으로 시달리던 문제를 겪었으며 이런 사고에 대하여 미국처럼 한 개인이 저지른 일 수준으로 우습게 보며 대하다가 똑같은 분노와 저항을 얻었다. 그리고 과거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들 대다수가 자국 문화 위주로 다른 나라들을 다스리려다가 나중에 된통당하고 반감을 얻었던 것처럼 강자라서 남을 이해할 거 없다는 사고방식은 어디서건 흔하다. 굳이 식민지가 아니라도 더 잘 사는 나라가 조금이라도 못 사는 나라를 어찌 대하는지 봐도 알텐데?

거기에다 2014년 들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발흥하면서 이슬람교무슬림의 근본적인 문제점들도 본격적으로 짚어지기 시작하는 바, 제대로 처신안한 미군도 미군이지만 아랍세계 또한 약간의 관용만 있었다면 어렵지 않게 해결됐을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공격적으로 나온다거나 반미의식을 의도적으로 키우는데 써먹었다는 비난을 듣고있고, ISIL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찬동하는 무슬림의 숫자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인권의식이 옅다는 비난을 듣고있다. 이로 말미암아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아랍측도 잘한것은 없다는 관점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중. 그러나 병크로는 의미도 없는 이라크 전쟁 일으켜서 탈레반만 더 부흥시키고 IS 결집[35]에 기여한 미국도 마찬가지. 결국 피장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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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너희들은 결국 떠날 자들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버티면 그만이다'라는 의미. 섬멸전을 수행하지 못하는 점령전에서 무기와 화력, 기술력의 우세가 정신력과 지구전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희극적인 모순이 드러난다.
  • [2] 북한 등 대표적인 반미국가들도 이 시기에는 그저 깨갱하고 있었다.
  • [3] 보통 이런 테러 조직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 위해 무슨 사건이 터졌다 하면 자기들이 저질렀다고 주장하기 일쑤인데, 9.11은 정반대 상황이 되었다.
  • [4] 탈레반, 또는 이들의 지지세력인 파슈툰족에 반대하는 부족들이 결성하여 세운 단체다.
  • [5] 리그베다 위키가 공인한 석기시대 드립 전문가인 커티스 르메이 전 미국 공참총장이 한 말은 매우 유감스럽게도 아니고, 리처드 아미티지 당시 국무부 부장관이 파키스탄 고위 정보 당국자에게 건넨 말이라고 한다. #기사. 참고로 '부장관(Deputy Secretary of State)'은 미 국무부 직제 상 장관과 차관 사이에 있는 직책이다.
  • [6] 얼마나 미국이 복수에 미쳐 날뛰었는지, 개전 전부터 전술핵 사용까지 언급하고 있었고 나머지 핵강국들조차 찍소리도 못하고 있었는데 정작 핵으로 때릴 고가치 표적이 없었다.(…)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 [7] 단 이 시기까지 미군은 아프간에 직접 투입되지는 않고 북부동맹을 지원하여 특수전부대 위주로만 작전을 벌였다. 산악 지대에서 탈레반의 게릴라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다.
  • [8] 나중에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 되는 하미드 카르자이는 왕정복고파로서 게릴라부대를 이끌고 있었고, 칸다하르 점령에 큰 역할을 했다.
  • [9] 사실 도시 지역은 왕정과 공산정부 시절에 매우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탈레반의 정책은 말할 수 없는 불편을 야기했다.
  • [10] 사실 탈레반 측도 몇몇 열성분자들을 빼면 주민들이 실질적으로는 자기들을 적극 지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지,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 [11] 알카에다는 테러집단과 무자헤딘 집단 두 종류로 나뉘는데 테러집단은 9.11 이후 미국의 지독한 추적으로 결국 와해되거나 지하로 숨어들었지만 무자헤딘 집단은 건재했다. 나중에 알카에다는 아예 테러는 서방 내 무슬림 출신 불만분자들에게 테러 수법을 가르쳐 주고, 결정은 알아서 하게 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무자헤딘 사업에 전념하게 된다.
  • [12] 대표적인 전투로는 Mountain Thrust, Mountain Fury 작전이 있다.
  • [13] 말은 안정화됐으니 발 뺀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냥 포기였다. 물론 예상치 못한 옆동네 시리아의 내전이 이라크의 혼돈을 더 부추긴 측면은 있다.
  • [14] 애당초 제대로 된 군 조직이 없던 나라에 이 정도 기간만으로 군대가 자리 잡을 수 있을리가 없다. 당장 이라크도 군대 해체 후 후유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 [15] 이 수치는 5만명이 전사한 월남전에 비해서는 적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미군의 방탄복과 방탄장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음을 생각할때 결코 무시못할 수치이다. 게다가 현재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중인 미군 숫자 자체가 2010년대 초 10만 명이던 시기를 제외하면 대체로 6-7만명. 이라크전 종결 덕분에 병력이 늘어나기 전에는 3-4만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베트남에서 미군은 54만명이 주둔했고 그 중 다수가 오합지졸이라고는 해도 어쨌거나 전투병력이었는데, 현재 미군은 전투병력이 오히려 소수이므로 비율로 따지면 베트남보다 낫다고 하기도 뭐한 상황. 또한 전쟁의 규모 자체가 달랐다. 게다가 미군의 발달된 "의술" 로 예전이면 전사였겠지만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식물인간 상태로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중상자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소련군은 10년간 15,000명이 전사했으나 후반에야 수만~10만 명대의 군대를 동원한 미군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10만 명 안팎의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으므로 실제 전장에서의 위험도나 인명 손실의 차이는 베트남 전쟁과 크지 않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의외로 당시 소련군은 현재 미군과 비슷한 특수부대 중심의 작전으로 현재 탈레반보다 훨씬 강력했던 무자헤딘에 잘 맞서 싸운 셈. 현재 미군의 고전으로 소련군의 삽질마저도 재평가되고 있다.
  • [16] 다만 이는 미군의 사기를 고려한 페이크일 수도 있다. 이런류의 의도적인 발표는 군사관련 발표에서 흔한 것이다.
  • [17] 반서방 테러 집단과 손을 잡고 전면적인 협조를 했다가 발각된다던가. 하지만 이럴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게 이전 전쟁으로 인해 기존 탈레반의 인적 기반은 붕괴되었고 현재는 과격주의자만이 아니라 그냥 무자헤딘들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이건 빈라덴 사후 알카에다도 마찬가지지만.
  • [18] 그런데 탈레반 포로 다섯명과 교환되는 내용은 2014년 말에 방송되었다(...)
  • [19] 사실 아프간 전쟁처럼 전략 자체가 잘못된 상황에서 아무리 압도적인 전술적 승리를 거두어도 이를 뒤집을 수 없다. 베트남 전에서 베트콩이 미군을 상대로 전술적 승리를 거둔 전투는 거의 없다. 미군은 전투마다 압도적인 승리를 했으나 결국 베트남에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전술적 승리는 전략적 실책을 만회하지 못한다는 극명한 예다.
  • [20] 역사 및 지리적인 요건도 큰 몫을 차지했다. 아프가니스탄 항목만 봐도 척박한 산지이기에 이동도 어려운 터에 꽉 막힌 이슬람 골수파로 대대로 살아오던 결과가 컸다. 그나마 이동이 편한 대도시는 소련의 지배 및 이전 서구권 영향을 받아 좀 개방이 된 편이지만 다수 지역이 이렇다. 김혜자가 쓴 <꽃으로 때리지마라>를 보면 미군이 아프간 산지를 둘러보다가 정말로 오랫동안 이방인이 오지 않은 마을까지 발견했는데 명예살인은 기본이고 그야말로 꽉 막힌 지역이라서 이방인이 그 마을 여자에게 말만 걸었다하면 즉시 여자나 이방인인 미군이 돌팔매질을 당할 정도였다고...
  • [21] 아프간 최다 종족인 파슈툰족은 파키스탄 서북부에도 많이 살고 있다. 더욱이 파키스탄은 전세계에서 북한 등과 더불어 답이 거의 없는 막장 국가 중 하나다.
  • [22] 그래서 미국 내에서도 이런 대규모 전쟁을 치를 때는 징병제 부활이 일시적으로나마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럴 경우 베트남 전쟁 당시 반전 시위와 조국을 위한 것도 아닌데 죽으러 못가겠다며 징병 거부가 엄청났고 여당이 선거에서 참패한 경험이 있는지라 정계가 시도를 하지도 못한다.
  • [23] 다만 아프가니스탄 자체가 4계절을 빼면 북한과 비슷한 자연조건을 가진 건 사실이다.
  • [24]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의사이자 만화가인 프랑스인 에마뉘엘 기베르와 프레데릭 르메르시에가 1980년대 소련과 전쟁중이던 아프가니스탄 산악을 의료차 들렀을 때를 그린 평화의 사진가(한국에서는 세미콜론을 통해 정발되었다)를 보면 산을 1주일은 계속 걷고 걷어서 다리에 물집 생기고 신발이 구멍나고 몸도 지쳐버렸다고 한다. 오죽하면 물품을 나르던 말이나 당나귀가 지쳐 쓰러져 죽은 것도 여러번. 현지인들은 하두 많이 겪어서 남자들도 대충 신발을 꿰맬 바늘과 실을 준비하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그렇게 어렵게 마을로 가면서 의료 봉사를 하고 뭐 그랬는데 더 선배인 이들이 말하길 '그래도 이번은 가까운 편이야. 더한 곳에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많아.' 아프가니스탄 산악지대가 이런 곳이다.
  • [25] 다만 채중령은 평화유지군 자체는 필요하다고 인터뷰했다. 그러나 전투병 파병은 무척 부정적으로 봤다.
  • [26] 예를 들어 법률로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를 포교하는 것은 금지지만, 미국의 눈치를 봐서 기독교 선교사들의 입국을 눈감아주고 있다. 또한 기독교로 개종하면 사형이지만, 역시 미국의 눈치를 봐서 정신병자라는 핑계를 대며 국외 추방하고(물론 진짜 정신병자는 아니었으니 당연히 미국에서도 숨어 지낸다) 이러다가 결국 한국에서 현지사정을 전혀 모르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가서 샘물교회 사건이 터진 것이다.
  • [27] 2009년 파키스탄에서 벌어진 탈레반의 난동으로 인해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아프간 탈레반도 이 사실을 잘 아는지 자신들은 파키스탄 탈레반과는 다르다는 주장을 늘어놓고 있다.
  • [28] 다만 이 사람이 미국의 원조금액을 엄청나게 빼돌렸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에, 해외도피에 성공한다면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매우 잘먹고 잘살 것이다. 나지불라 같은 경우는 종주국 소련이 망해버렸고 대부분의 국제사회의 나라들이 소련군, 친소련 정부군과의 전쟁, 내전에서 승기를 잡은 무자헤딘 반정부군 세력들을 정식 정부로 승인하고 소련이 세운 카르말 정권과 그 뒤를 이은 나지불라 정권을 자주성, 정통성이 없는 괴뢰정권, 속국으로 취급하는 바람에 망명을 할 나라가 없었다는 불운이 있었다.
  • [29] 2014년 아프가니스탄 대선은 부정선거 시비에 휩쓸려 개표 연기와 재검표가 반복되었다.
  • [30] 개입시켰다는 진짜로 헬게이트가 열린다. 아랍인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는 서방인들에 대한 것처럼 단순한 종교적 증오가 아니라 인간적 증오다. 그리고 설사 이 모든것을 무시한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인들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현 영토보다 넓은 지역을 원활하게 통치할수가 없다. 현상유지는 매우 잘할수 있겠으나 그 이상의 팽창은 절대적으로 무리라는 말.
  • [31] 최근 유럽 쪽으로 다시 관심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 [32] 물론 인도의 반발이라는 변수가 있긴 하나, 인도 입장에서도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과 말이 세속정부지 사실상 탈레반과 사고방식에 차이가 거의 없는 파키스탄을 그냥 놔두느니 이란이 장악하게 하는 것이 이익이다. 핵무기가 미치광이 수니파 무슬림들에게 넘어가는 건 막아야 하니까.
  • [33] 모택동이 남긴 유명한 말이 한가지 있는데 "게릴라는 민중이라는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다" 라는 거다. 즉, 민중이 어느 편이냐에 따라서 게릴라도 힘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이미 민중의 마음이 미군을 떠난 상황이다.
  • [34] 물론 이해도가 다른군대에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거지 절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거는 아니다. 일단 미군의 활동영역을 보면 전세계에 광범위 하게 걸쳐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파병을 잘 하지 않는 다른 군대에 비해 무개념부족해 보여도 다른 군에에 비해 눈에 띄이는 막장이 아니란 것. 당장봐도 북한군이 미군보다 이해도가 떨어져 보인다.
  • [35] 사실 IS가 나타난데에는 사담 후세인을 없애서 이라크를 약화시킨 미국의 역활도 컸다.(...) 사담 후세인이 있었다고 무조건 IS가 봉인되었을거라는건 아니지만, 그 출현이 앞당겨졌다는것은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게다가 탈레반을 몰아내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미국이 매달렸더라면 적어도 아프가니스탄 역사는 달라졌으리라 보는 시각이 크다.괜히 이라크 전쟁 가서 미국도 경제적 타격 받고 탈레반 부활하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두 전쟁을 패하며 물러난 미국에게 굴욕을 자업자득으로 얻게했으니 말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