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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앙 정보국

last modified: 2015-04-10 14:46:44 Contributors

Central Intelligence Agency

공식 홈페이지 https://www.cia.gov/

Contents

1. 소개
2. 조직사
2.1. 냉전 시절
2.1.1. 라틴아메리카
2.1.1.1. 과테말라
2.1.1.2. 쿠바
2.1.1.3. 니카라과
2.1.1.4. 칠레
2.1.2. 중동
2.1.2.1. 이란
2.1.2.2. 이라크
2.2. 9.11 이후
3. 뒷이야기
3.1. 고문
3.2. 미국 정보기관간 암투와 견제
3.3. 삽질의 역사
3.4. 외국어 능력의 부재
4. 대중매체
5. 관련항목


1. 소개

미국 중앙정보부 미국정보기관중 하나로. 약칭인 CIA로 널리 알려져 있다. KGB MI6와 더불어 냉전을 상징하는 집단중 하나다

본부는 미국 버지니아주 랭글리(Langley)에 있다.[1] 이 때문에 냉전시절에 KGB가 '루뱐카'라고 불리는 것처럼 '랭글리'라고도 불린다. 물론 국가정보원처럼 회사(the firm)라고 불리기도.

표어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로 요한복음 8장 32절 구절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허구한 날 나오는 국가기관. 보통은 주인공 찾아가서 사정하는 역할이고, 대체로 무능하다(…). 옛날에는 주인공의 주적이었는데 요즘은 이놈저놈에게 물먹는 세금 도둑에 자국 타 기관(경찰이나 FBI 등)에서 치이고 악당 기관으로 취급.(...)[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를 마음대로 주물럭주물럭대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세계의 지배자인 양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인 면 또한 많으니 이는 밑에서 서술하도록 하겠다.

2. 조직사

한국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과 관련있는 2차대전 당시 전략사무국(OSS)에서 출발하였다

흔히 비밀공작이나 스파이 조직으로 생각이 많이들 되지만, 실제로는 정보수집, 통계, 분석 업무에 매우 능한 조직이고 그 분야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항목 안에서 병크가 많이 거론되지만 실제로 성공한 분야를 보면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지는 넘사벽 스케일을 자랑한다. 1960년대에는 아예 자체 공군을 지니고 공산권 영토를 횡단하며 각종 사진과 지형 데이터를 갖고 오기도 했고, U-2SR-71같은 넘사벽 정찰용 항공기를 개발하며, 최초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정보를 모은 단체이기도 하다.

심지어 냉전 시기에 소련의 국방비를 가늠하기 위해 입수 가능한 모든 소련군 사진과 자료를 모은 뒤 보병총검전투화부터 탱크, 전투기, 잠수함까지 하나 하나 세어가며 확인 가능한 모든 군사장비에 전부 예상 가격을 매기는(!) 식으로 소련의 국방비를 추산하는 위엄 넘치는 프로젝트를 몇 년에 걸쳐 진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끝나자 이번에는 바르샤바 조약군 전체를 대상으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미국과 소련 단독비교 시에는 소련이 미국보다 살짝 더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으나, NATO가 바르샤바 조약군 전체를 비교 할 경우 NATO가 바르샤바 조약군을 압도하는 국방비를 집행하고 있음을 결론 내기도 했다. 참고로 그로부터 2~3년 뒤에 소련이 붕괴하며 냉전이 끝났다(…).

2012년에 만들어진 영화 《아르고》를 보면, 란 혁명 이후 현지 요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할리우드 영화 특수효과 팀을 불러들여, 요원들을 영화배우로 변장시켜 무사히 도망시키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활약을 하기도 했다.

2.1. 냉전 시절

미국 정부는 나날이 생기는 공산정부를 억제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그러나 전면적인 침공을 통한 정권교체는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상당히 무리가 가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비밀 작전을 통한 정권교체를 위해 CIA에게 많은 법적 권한을 부여한다. 물론 국제법은 쌩깠다

CIA는 전세계에서 작전을 하고 있었다. 공산국가에서는 반체제인사를 지원하거나 피지배민족(일례로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다른곳에서는 공산정권의 창출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 중 많은 성과를 그리고 삽질을 올린 곳은 남아메리카와 중동이였다.

2.1.1. 라틴아메리카

CIA는 세계 여러곳에서 다양한 공작을 벌이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남미 지부는 그 중에서도 한층 '더러운' 공작을 벌인 것로 알려져 있다. #

2.1.1.1. 과테말라

1951년 과테말라의 대통령이었던 하코보 아르벤스 구스만은 대지주와 미국기업이 소유하였던 토지들을 유화하여 빈민들에게 분배하고, 그 외에 바나나 산업같은 외국기업이 침탈하고 있었던 산업들을 국유화하였다.

처음에 미국정부는 아르벤스가 과격한 회주의자는 아니었기에 방관하였으나, 미국 기업의 이권을 뺏기자 이는 결과적으로 과테말라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소련의 영향력이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고 생각했다.[3] 이에 아이젠하워 정부는 1953년 8월 과테말라 쿠데타 지원을 승인하게 된다.

CIA는 1954년 과테말라의 우익세력을 훈련시켜 아르벤즈 정부를 전복시킨 후, 육군 대령이었던 카를로스 카스티요 아르마스(Carlos Castillo Armas)를 앉힌다.

2.1.1.2. 쿠바

쿠바는 미국의 앞마당에 있었던 만큼 미국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쿠바의 공산정권을 전복시키려고 했다. 피그스만 침공 작전이 실패한 이후에도, 몽구스 작전이나 노스우드 작전을 통해 쿠바의 공산정권을 전복하려는 작전은 많이 있었다.

이 경향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심화되었다. 쿠바가 미국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똑똑히 확인하였고, 미국은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내쫒기 위해 많은 계획을 짰지만, 피그스만 침공 이후 전면적인 작전은 시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침공을 했다간 제2의 미사일 위기를 불러올 수 있었고, 미국은 피그스만 침공이 자신들의 짓임이 만천하에 알려지자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반체제 인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방법책을 모색했다. 거기다, 당시 이들은 피그스만 침공 실패의 원인을 작전 자체의 허술함이 아닌 '내부의 적'으로만 보고 내부 스파이 색출에 골몰한 나머지 팀킬하던 중이기도 했다.[4]

2.1.1.3. 니카라과

1980년대 CIA는 니카라과에 들어선 좌파정부인 산디니스타 정권을 뒤집기 위해 다양한 공작활동을 펼친다. 항구에 기뢰를 뿌려 수송함을 격침시키고, 우익 성향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하였다. 콘트라 반군은 온두라스에 기지를 두고 CIA로부터 훈련을 받고 무기를 지원받고 있었다. 콘트라 반군은 그 잔악함이 극에 달해 일부러 병원을 비롯한 민간시설을 테러하는 등 욕도 많이 먹었고, 그 와중에 이란-콘트라 사건 같은 병크가 터지기도 해서 남미에서 미국은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5]

산디니스타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야당지지자들을 잡아들이고 언론검열을 하는 등 민주주의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CIA는 콘트라반군을 이용해 무력적으로 정권전복을 하려고 했으나 1990년 선거에서 산디니스타가 패하면서 계획은 중지되었다. 뱀발이지만 1986년 니카라과가 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국제사법재판소는 미국이 니카라과에 대한 주권침해에 대한 보상으로 120억 달러를 지불해야한다고 판결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부정하고 소련이 산디니스타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군인들을 훈련시켰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2.1.1.4. 칠레

1970년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된다. 사회주의 성향인 아옌데는 구리 광산과 은행을 국유화하고 대규모 토지개혁을 밀어붙였다. 또한 이전 정부가 다국적 기업에 주던 여러가지 특혜를 더이상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마찰을 유발시켰다.

새로운 사회주의 정권 출현에 당황한 미국은 칠레와 소련이 가까운 관계를 갖고 있는것을 두려워하여[6] 1970년 'Project FUBELT'를 발동시키고 정부전복을 승인한다.

아옌데가 당시 무리한 개혁으로 인해 처한 경제위기를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쿠데타가 발생할 배경을 조성하고, 온갖 사보타주 공작과 선동을 통해 아옌데 정부에 대한 반감을 끌어올렸다. 이후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위시로 한 군부가 칠레를 장악하고 아옌데는 자살한다. 이후 피노체트 군부는 약 17년동안 막장통치를 펼쳤다.

2.1.2. 중동

중동의 경우에는 남미와는 다른 점이 있다. 남아메리카의 경우에는 CIA가 쿠데타를 각본부터 실행까지 완전히 주도하였다면, 중동과 아프리카의 경우는 쿠데타를 묵인하거나 정보를 제공하는 정도의 조연역할을 했다.[7]

2.1.2.1. 이란

이란은 소련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란은 그렇기에 소련과 미국의 암투의 장이 되어왔다.

1951년 민족주의 성향의 모하메드 모사데그(Mohammad Mosaddegh)가 총리로 당선된다. 이란의 석유산업은 영국이 1900년대 초에 개발하여 영국 기업인 앵글로-이란 석유회사(AIOC, Anglo-Iranian Oil Company,)가 막대한 이득을 얻고 있었는데, 모사데그는 이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국영기업인 NIOC(National Iranian Oil Company)를 만들어 대항하였다. 영국은 석유산업에 이권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미국은 모사데그가 소련과 가까이 지낼 것을 두려워해[8] MI6와 합작하여 모사데그를 몰아냈고 팔레비 왕조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전제군주정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 쿠데타 이후로 이란의 반서구감정은 극에 이르렀고 결국 1979년 슬람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가 된다.

2.1.2.2. 이라크

이라크의 경우는 논란이 있다. CIA가 이라크에서 정권전복을 시도했다는 증거가 부족해서, CIA가 쿠데타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았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많다. 애초부터 나세르가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기도 하거니와, 범아랍주의는 미국의 아랍 내 영향력을 감소시켰기에 바트당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우선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래와 같으니 판단은 각자 알아서 하길 바란다.

1958년 7월, 육군 장군이었던 압드 알카림 콰심(Abd al-Karim Qasim)이 쿠데타를 일으켜 이라크 군주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선포한 뒤 본인은 총리에 오른다. 초기엔 쿠르드족의 자치를 인정하고 교육을 진흥하고, 여성인권을 확대하는 등 개혁정책을 펼쳐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영국의 석유기업을 국유화하고 영미와의 관계를 멀리했으며, 소련과 친하게 지내 서방과의 관계는 악화되었다.

콰심정권의 위기는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아랍끼리 뭉치자'는 이름 아래 만든 아랍연방공화국에 가입하길 거부한 데서 시작했고, 이는 범아랍민족주의자인 바트당(Ba'ath Party)의 분노를 일으켰다. 바트당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공산당의 충돌은 심각해져 내전까지 터지게 되는데, 결국 콰심정권은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1963년 CIA의 협력 아래 이루어진 바트당의 쿠데타에 실각하게 된다.

1966년 이라크의 지도자였던 살람 아리프(Salam Arif)가 죽고, 그의 동생인 압둘 라흐만 아리프(Abdul Rahman Arif)가 정권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라흐만 아리프는 반(反)바트당 주의자였기 때문에 바트당은 실각하고, 다시 이라크는 소련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바트당은 석유와 황 개발권을 미국에게 넘겨주는 대신 쿠데타를 도와주고 묵인해줄 것을 CIA에 요청하였으며, CIA는 받아들인다.

1968년 바트당 지지자인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Ahmed Hassan Al-Bakr)[9]가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고, 이는 사담 후세인이 권력에 다가가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2.2. 9.11 이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CIA가 직접 산악지방에 정보 수집기지를 차려두고 이 정보를 기반으로 프레데터, 리퍼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때려잡다가 탈레반의 자살공격으로 8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10] 참고로 이 때 사망한 요원들 중에는 용역을 받는 용병회사 직원도 있는데, 대부분 CIA 비밀공작 경험자, 특히 상당수 실제 CIA 출신자들이 CIA의 비밀공작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구조조정으로 퇴직한 이들이 설립한 회사이다. CIA의 자체 특수공작 및 준군사작전 보조요원들은 이런 식으로 용역 직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으로 미 연방정부는 계약 형식의 노동력이 필요하면 계속 회사에 용역을 주는 식으로 노동력을 충당해왔다. 타국 정보기관은 연방 공무원에 비해 보안기준이 좀더 느슨한 이 용역 노동력을 매수해 미 정부기관에 침투하곤 했다.#

사실 CIA가 저지른 일들이나 각종 권한들, 그리고 아직도 기밀로 부쳐진 각종 자료들을 생각해보면 좀 너무 무시당하는 감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냉전소련KGB에게 첩보전에서 열세였던 점은 분명한 까임거리이며 생각 외로 CIA가 냉전 시기나 현재 해외 정보 입수에서 저지른 뻘짓들이 좀 많은 편이다.[11]

즉, CIA는 셔츠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채로 출근한 근로자고, 역대 행정부는 지금 직장이라는 이유로 맨 윗단추부터 다시 채울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계속 일하라고 시키면서 복장불량으로 매 시간마다 벌점을 주었던 사장인 셈.

하지만 CIA는 자유사회였던 미국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에 그렇기도 했다. KGB야 여론이 어떻든 무시할 수 있었지만 CIA는 일단 의회와 행정부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물론 여론도 무시할 수 없었고.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미국에 있는 KGB 첩보원이 러시아의 CIA 첩보원보다 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고 따라서 더 쉽게 정보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따라서 CIA와 KGB를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CIA의 삽질은 당연히 냉전 이후 만천하에 까발려지게 되며[12], 이후 점점 위상이 줄어 들더니 급기야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보공동체(U.S. Intelligence Community)의 내부 정보 공유 부재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보공동체의 좌장 역할을 CIA의 수장인 중앙정보장(DCI;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이 맡다보니 다른 기관들이 CIA의 밥그릇 챙기기에 희생될 것을 우려해 협조를 꺼렸다는 것. 결국 중앙정보장은 그 명칭이 중앙정보장(DCIA; 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 Agency)으로 변경되고 정보공동체의 수장 역할 역시 신설된 DNI(Director of National Intelligence, 국가정보장)에 빼앗겨

DHS[13]: "정보 내놔!"
CIA: "드... 드리겠습니다!"
DHS: "필요 없어!"||

이런 신세[14]… 라지만 사실 ODNI란 조직 자체가 그 위치가 애매하다. 뭐 여튼 DNI를 주도하는 것도 사실상 CIA니까[15]. 게다가 CIA의 수난사는 ODNI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CIA를 비판하고 감시해 온 의회 및 행정부에 의해 가속화된 것이므로, 오히려 상황에 따라서는 DNI의 존재를 통해 CIA가 그간의 형편없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견실한 정보기관으로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여전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걸 보면 아직은 요원한 것 같지만.

근데 사실, 부시 시절에는 국방장관이라는 도널드 럼즈펠드가 "CIA가 거두는 성공 하나하나가 바로 우리 국방성의 실패요!" 라고 말할 정도로 쓸데없이 견제를 하기도 했었다. 어떻게 국방장관이란 사람이 자기 나라 정보기관을 자기 나라 국방성의 주적으로 놓지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넵튠 스피어 작전에서 CIA가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듯한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CIA를 다시 밀어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2011 이집트 민주화 운동에서는 호스니 무바라크가 2월 10일 하야 발표를 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그날 무바라크는 안 물러날 거라고 뻗대는 발표를 해 돈값 못한다고 까였다. 거기에 무바라크는 그 발표를 한 지 하루 만에 하야하면서 더욱 자존심을 구기게 되었다. 딱 하루 틀렸을 뿐인데

2011년 11월 21일 미국 언론들의 보도에 의하면 중동에서 첩보활동을 하던 CIA 현지 요원들이 헤즈볼라의 치밀한 추격에 그만 발각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들의 운명이 어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헤즈볼라의 성향상 즉결 처형했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헤즈볼라는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서 CIA 요원들을 추적한 반면, CIA 요원들은 암호명을 'Pizza'로 하고 접선장소를 피자헛으로 몇 달째 고정하다가 잡혀버렸다고 한다.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은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지만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CIA 실패 잔혹사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팀 와이너가 쓴 《잿더미의 유산(Legacy of Ashes)》을 읽어보자. 다만 저 책은 작가의 성향상 사건의 역사적 배경이나 상황, 맥락을 배제하고 팩트만 자세하게 늘어놓았기 때문에 CIA라는 조직에 대해 편견을 가지게 되기 쉽다.

3. 뒷이야기

3.1. 고문

KGB와 함께 고문을 한것으로 거의 암묵적으로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관타나모 수용소와 연관되어 화자되기도 했는데,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에서 포로들을 잡아들이는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마인드 컨트롤을 실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MK울트라 항목 참고.

물고문, 성고문도 일삼았다고.

3.2. 미국 정보기관간 암투와 견제

정보기관이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으면 임무 중복때문에 비효율적일 것 같지만, 막강한 정보력과 권력을 가진 이런 정보기관이 폭주하거나 아니면 비리를 저지르는 것들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해도 보안사령부(현 기무사)와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경쟁을 했었는데, 그 균형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10.26 사건을 일으켜 대통령 박정희를 암살했고 그로 인하여 중앙정보부가 보안사령부 즉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의 수사와 감찰을 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깨졌다. 그 결과 벌어진게 12.12 군사반란이다. 사실상 중앙정보부가 보안사령부의 하위조직화 되어버리면서 장태완, 정병주를 위시한 군사반란 방어세력의 눈과 귀가 다 막혀버렸다. 실제의 사례가 있느니만큼 정보기관간의 균형과 견제는 국가의 안전을 위해선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정보기관은 아니지만) FBI가 유일한 정보-사찰 기관으로 있었을 당시, 존 에드거 후버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나, 대항할 기관들은 없었거나 미약했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견제할 수 없었고, 그는 유명인사를 불법적으로 사찰하거나 민주국가인 미국에서 종신국장을 하는 등의 권력남용을 저질렀다.

이후에 FBI 국장의 권한은 매우 축소되었으며, CIA, DIA, NSA등의 다른 정보기관들도 자리를 잡고 성장하여 이제는 어떤 한 정보기관이 종횡을 할수도 없다. 이런 것들이 꼭 낭비라고 볼수도 없으니, 한국에서 국정원을 해외정보처와 국내방첩부로 나눠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비슷하게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연방이 되면서 KGB는 대외정보국(SVR)과 연방보안국(FSB)로 나뉘어졌다.

2012년 11월에 물러난 CIA국장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는 바로 이런 정보기관간 견제에서 바람피운 것이 감지되어 물러난 경우이다. FBI는 퍼트레이어스의 애인 라 브로드웰이 어떤 여인(다른 애인)[16]을 협박한다는 사실을 신고받고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이러한 사실중에 퍼트레이어스와 브로드웰간의 이멜을 수사해서 이들이 내연관계임을 확인했다. 그것뿐이면 사실 사생활이니 그다지 문제가 안되는데 퍼트레이어스가 군사기밀을 작가인 브로드웰에게 누출했다는 혐의를 찾아냈고[17], FBI가 CIA국장을 직접 조사하자 이에 부담을 느낀 퍼트레이어스는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이 FBI는 CIA의 불법활동을 감시하며, CIA가 감지하지 못했던 CIA요원으로 가장한 이중간첩들을 잡아낸 적이 있으므로, CIA가 국내에서 불법적인 활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만약 미국도 CIA가 한국처럼 유일한 정보기관으로 있었다면 이렇게 CIA국장의 정보유출 혐의를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 정보기관간의 암투나 견제가 꼭 중복되거나 낭비적인 것만은 아니다.

3.3. 삽질의 역사

과거 공산권과의 냉전 당시 동구와 남아메리카에만 역량을 집중하느라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능 그 자체였다.[18] 소련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를 비롯한 제3세계 여러 군데에서 보여준 모습은 세금 도둑이란 말도 아까울 정도... 일례로 소련에 실질적으로 위협이 된 게릴라들에게는 지원 안하고 영어가 되는 게릴라 지도자들에게만 지원을 해주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그 중 하나가 오사마 빈 라덴.

반 공산주의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조금이라도 비자본주의적인 정책을 실시하면(특히 국유화) 경기를 일으켰다. 이러한 이유로 진짜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실리를 위해 소련과 친하게 지냈음에도[19] 공산주의자라 가정하고 그냥 뒤집어버렸다(...)

이러한 이유로 반미주의가 횡행하게 되어 결국 해당 피해국(?)이 레알 공산화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이는 미국에 역풍을 가져와 오히려 영향력이 감소하게 되었다.

공산권에 대해 엄청난 정보력을 기울였으면서도 막 개발된 소련의 신형전차였던 T-72의 성능도 끝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20] 결국은 SIS에게 정보요청을 했으며[21] 소련 붕괴 직전인 1990년에 나온 보고서에 소련 체제에 아무런 이상 없음이라는 말 그대로 병신인증을 벌였다.[22] 심지어 SIS의 케임브리지 5인조 사건에 충격을 먹고 내부 첩자들을 단속하라는 명령을 내린 국장조차도 알고보니 KGB 첩자였다는 주장이 CIA 내부에서 나올 정도.[23] 그 외에도 동구권의 정보전문가가 목숨을 걸고 망명해왔는데 안가에 몇 년간 처박아두고 잊어버리고 있다가 그냥 석방해버린다든지[24], 군부에서 멋지게 인질 구출 작전 한번 펼치려는데 정비소요량도 감안 안 하고 끼어들어서 대참사를 만든다든지 한 소소한(?) 모습들을 보면...

이게 끝이 아니고,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직전까지도 이란의 팔레비 정권 안정적. 체제 변화 가능성 전무따위의 정보보고를 상부에 제출했다.[25] 막상 민중혁명이 발발하자 군대에서 갓 제대해서 CIA 에 들어온지 1년도 안되는 현지어도 못하는 요원에게 이란 내부의 사정파악과 가급적이면 이란을 친미세력으로 묶어두라는 임무를 줘서 파견했다가 그 요원이 붙잡혀서 이란인들을 극도로 분노케 한 것을 보면 정말 한숨이 나온다.[26] 이 사건 때는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이런 초짜에게 그런 큰 임무를 부여해서 보냈냐" 며 이란인들이 길길이 날뛰었고, 이 때문에 혁명이 조금 더 거칠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뭐 하긴 이 사건은 발생 직전 이란 주재 CIA 주요 요원들의 신분이 모조리 노출되고, 덤으로 행정부가 바뀌면서 실시한 구세대 인원 교체계획 실행이 겹쳐 물갈이를 서두른 탓에 벌어진 사건이기도 하긴 했다. 그러나 어쨌든 삽질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냉전시절, 희대의 삽질 겸 생체실험MK울트라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다. 이쯤되면 삽질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부서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CIA의 찬란한 삽질 연대기#

3.4. 외국어 능력의 부재

CIA뿐만 아니라 미국 국가기관 전체가 이런 약점을 안고 있다.

1950년 시점에 한국어중국어를 제대로 구사 가능한 미국 국적 CIA 요원이 거의 없었던 것을 시작으로 해서, 1990년대 후반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될 무렵에는 CIA 내에서 흥분한 아랍인들이 아랍어 방언으로 고래고래 떠드는 소리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통역관이 전체를 통틀어 단 3명뿐이기도 했다.

외국어 능력이 없기 때문에 CIA는 현지에서 고용한 요원들이나 동맹국 정보기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컸고, 자연스레 2중 간첩에게 놀아나거나 아니면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 독재정권의 후견인으로 자리잡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4. 대중매체

좀 리얼한 CIA 물을 보고 싶다면, 그런 거 없다라고 말해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꼭 보고 싶다면 제이슨 본 시리즈의 CIA가 자금난에 시달리는 CIA의 모습을 알게 모르게 보여주고, 그 외에는 영화 《굿 셰퍼드》나 알 파치노 주연의 《리크루트》가 괜찮다. 벤 애플렉의 영화 《아르고》가 CIA가 성공시킨 실제 구출작전을 잘 다루고 있으며 《제로 다크 서티》는 911테러 이후 넵튠 스피어 작전으로 빈 라덴을 사살하기까지 10년 가까이 뒤쫓던 내용으로 CIA가 얼마나 집요하게 추적했는지를스토커 잘 보여주고 있다.도대체 어디가 그런 거 없다인거지

드라마 쪽에서는 《퍼니》가 CIA의 성공과 실패 등 팩트를 기반으로 가상의 인물들을 넣어 잘 표현하고 있다. 《앨리어스》는 여주인공이 먼치킨으로 나오지만, 기본적인 정보기관의 운영방식을 잘 묘사하고 있다.

데스노트 최강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먼치킨 스테판 제반니가 바로 여기 출신이었다. 뭐 하는 집단이냐!

마약왕 시드 마이어가 만든 코버트 액션에서 플레이어가 소속된 집단이며, 남미와 유럽 등을 돌며 활동하게 되는데 실제 CIA에 관한 묘사는 거의 없기에 크게 의미는 없다.

배틀필드 시리즈에서 이곳 소속인 라즐로 W. 코빅이 등장한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는 블랙 옵스블랙 옵스 2에서 주인공 일행 소속/관련 세력으로 등장한다. 역시 성공한 작전만 비밀이 되는 거다

트랜스포머 실사영화 시리즈 2편에선 샘 윗위키를 발견했다는 걸로 간접등장 이때까진 오토봇과 나란히 싸우지만 4편에선 시카고 전투 이후 오토봇 제거에 나선다. 여기선 악의 조직으로 묘사된다.

시드노벨더&스파이의 등장인물인 ...스카이 프라그란스...라는 소녀가, CIA요원이다. 문제는 스카이의 나이가, 17살이라는 것(우리나라로 치면 18살로 고등학교 2학년 즉 미성년자인데, 진짜로 정보기관에서 미성년자를 요원으로 둘지는.........).

랜드(미드)역시 CIA가 나오는 유명한 미드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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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국 TV 애니메이션 《아메리칸 대드》의 배경이기도 하다. 랭글리와 CIA 둘 다.
  • [2] 이런 탓인지 몇 년전부터 CIA가 관련된 영화, 드라마라면 아에 특수 요원을 할리우드나 각국 촬영 장소에 파견하여 홍보하고 출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아진 것도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 [3] 쿠데타 후에 CIA가 조사한 결과 아르벤스는 공산주의나 소련과 아무 관련도 없음이 드러났다. 이처럼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는것을 매우 두려워하여 미국에게 반대하는 정권은 모두 공산정부라고 생각하고 죄다 뒤집어버렸다.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남미의 공산화를 초래하게 된다
  • [4] 영화 《굿 셰퍼드》에서 이 당시 CIA의 혼란을 잘 보여주고 있다.
  • [5] CIA의 남미간섭은 이전에도 활발했지만 비교적 이와 관련하여 상세한 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한것은 이때부터이다.
  • [6] 아옌데가 정말로 소련과 가까운 관계를 가졌는지는 논란이 있다. KGB가 피노체트의 쿠데타 이후 공작을 펼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으나 쿠데타 이전 아옌데가 KGB와 친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 [7] 사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의 뒷공작은 KGB가 더 심각하여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소련이 천하의 개쌍놈 취급을 받는다(...).
  • [8] 미국은 소련에 대해서 광적인 집착정신병을 하였고 반자본주의적 경제정책만 펼쳐도 공산주의라 간주하고 몰아낸 경우가 적지 않다. 모사데그도 민족주의자였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쫒겨났다.
  • [9] 알 바크르는 미국에 적대적이었고 CIA가 알바크르를 실각하게 하려고 했다는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1968년에 미국이 이라크의 쿠데타를 지원했다는것에는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 [10]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 주인공의 선배가 죽는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다.
  • [11] 전신인 OSS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콘플레이크 작전이란 뻘짓을 했던 걸 보면 어쩌면 전통일지도(…).
  • [12] 사실 CIA는 이미 1960년대(예: U-2기 격추사건, 피그스만 사건, 쿠바 미사일 위기 등), 70년대(예: 워터게이트 사건, 전 국민에 대한 CIA의 불법 사찰 사실 폭로, 중남미 쿠데타의 미국 연루 문제 등), 80년대(예: 이란-콘트라 사건 외 다수) 등 10년 주기로 잘못된 공작이나 불법행위가 미국 국내에서 노출되어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다. CIA가 현재와 같은 위상추락을 겪은 것은 저런 CIA의 치부가 지속적으로 노출된 끝에 냉전 종식을 기점으로 해서 제대로 폭발한 결과다.
  • [13] 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 즉 국토안보부. 9.11 테러이후에 테러 방지 목적으로 새로 만들어진 강력한 권한의 행정부이다.
  • [14] 근데 ODNI는 CIA를 비롯한 각종 정보기관을 통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CIA가 정보를 가져와도 다른 정보부서에서 이미 ODNI에게 정보를 주었을 경우가 많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악명을 얻어버린 CIA와 달리 국방정보국(DIA)이나 국가안보국(NSA)은 그런 악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운영 역시 여전히 순조로운 편이라, 분야에 따라서는 정보 수집 및 분석 능력에서 DIA나 NSA가 CIA보다 나은 경우 역시 매우 많은 편이다.
  • [15] 원래 CIA는 오래 전부터 ODNI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해 왔고, 실제 지금 역시도 ODNI에게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분야의 첩보를 수집하고 공작을 해 온 CIA일 수밖에 없다.
  • [16] 그런데 이 여인 질 켈리는 ISAF 사령관을 지낸 퍼트레이어스의 후임인 ISAF 사령관 존 앨런 해병대장과도 이중으로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대한민국 명예 영사 자리를 얻어내는 등 여러 기업들의 로비스트 노릇을 했다는 사실이 수사 결과 발각되었다. 즉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었다.
  • [17] 브로드웰은 퍼트레이어스와 마찬가지로 미국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소령으로 제대한 인물이라 군사기밀을 누설하면서도 심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느끼지 못했다고...
  • [18] 동구 집중 역시 그다지 성과는 없었다. 특히 아래에 소개된 제임스 앵글턴 문제, 그리고 행정부가 품은 소련의 역량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으로 CIA는 거의 10여 년 이상 대소 첩보전에서 믿을 수 있는 정보 원천마저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 [19] 미국이 조금만 더 다가갔다면 충분히 우방으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호치민이 그 대표적인 예.
  • [20] 진짜 황당한게 프랑스 대사관 주재무관이 신형전차를 보여달라 하자 소련군부는 그대로 T-72를 보여줬다. 뭘 한거냐, CIA?
  • [21] 영국은 신형전차 매뉴얼을 보내주며 복사비를 청구했다. 비웃은 거다.
  • [22] 소련 붕괴를 멀쩡히 예상한 분석가들이 서방엔 전무하다시피 했다는 것을 기억하고서 이 부분을 봐야 한다. CIA가 이 문제에서 욕을 먹어야 하는 건 '체제 이상 없음'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분석가들과 차원이 다른 정보수집수단을 가지고 있었고 그 능력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 [23] 그래도 첩자가 나온 집단이라는 것은 중간에 삽질이 좀 많긴 해도 어떻게든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도 없는 국정원을 오히려 의심하는 이들도 있으니... 라지만, 실제로 미국 정보/공안기관 내부에 침투한 첩자는 모두 6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 사이에 소련에 줄을 댔다. 그리고 단속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 KGB라는 소리는 그 주장을 꺼낸 당사자인 제임스 앵글턴의 오랜 친구가 하필이면 그 유명한 케임브리지 5인조 중 하나인 킴 필비라는 것에서 나온 일종의 루머다. 오히려 앵글턴은 이 사건으로 이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편집적으로 CIA 내부 방첩을 다졌고, 사실상 침투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자기 상관들 모두가 실은 KGB의 이중간첩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지나치게 두더지(이중첩자) 사냥에 편집적으로 집착한 나머지 조직은 엉망진창이 되었고, 이 때문에 그 자신이 되려 KGB의 이중첩자가 아니었냐는 의혹을 산 것이었다.
  • [24] 그 사람은 미국의 대우에 삐져서 석방되자마자 소련 대사관으로 들어가버렸다!
  • [25] 당시 CIA는 이란 현지에 제대로된 정보망이 없었다. 팔레비 정권 비밀경찰의 정보보고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준. CIA뿐 아니라 미 국무부와 국방부도 상황은 비슷해서 팔레비 정권에 대한 이란인들의 반감, 현지 상황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팔레비만 옹호하다가 극단적인 반미 정권의 성립을 초래하였다.
  • [26] 이것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CIA 국장을 지냈던 스탠스필드 터너(조지 부시 후임)의 책임이 크다. 터너 국장은 인간정보(HUMINT)에서 신호정보(SIGINT)로 CIA의 포커스를 전환하면서 무려 800명이나 되는 작전관들을 짤라버렸다. 이 사건은 핼러윈 대학살이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