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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

last modified: 2015-01-30 05:51:51 Contributors

Contents

1. 승려
2. 불교 계위
3. 기업
4. 학력


1. 승려

無學大師
(1327 ~ 1405)

무학대사라고도 알려진 승려인데 속명은 박자초(朴自超)이다.

귀주성 전투의 영웅인 박서의 5세손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설이 있긴 하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후 한양 천도를 도왔다고 한다.

무학과 이성계의 인연은 그가 33세되 던 해인 1360년(공민왕 7)에 스승인 나옹 혜근과 더불어 함주로 가서 이성계 의 부친 이자춘의 묘자리를 잡아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두 사람이 사제 지간을 맺을만큼 본격적으로 친밀한 사이가 된 것은 1384년(우왕 10)부터였다.

야사가 상당히 많은데 세간에 알려진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인다는 얘기와 전어도 관련,도읍지 위치 배정 및 이자춘,이성계의 묏자리도 그가 봐주었다고 하며, 심지어는 종묘의 칸 수를 결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한 야사들을 볼 때 상당한 명풍수이자 예언자였다고 봐야 할 듯. 단, 고우영 화백의 수레바퀴에서는 재상과 장군이 나오는 묫자리를 왕이 나올 자리라고 했다가 틀렸다고 스승 나옹의 꾸지람을 받거나 왕십리의 유래에도 나오듯이 처음부터 잘못된 위치 선정으로 도선 국사의 가르침을 받는 장면을 보면 무학이란 법명 그대로 빼어난 고승은 아니였을거다고 서술했다.

1392년 10월 9일에 왕사가 되었고 10월 11일은 이성계의 탄신일인지라 깨달음에 대해 강의했는데 종교의 취지에 대해 능히 해설하지 못해 중들 가운데 탄식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1393년 2월 11일에는 한양의 중심인 높은 언덕에 올라가 땅의 형세를 관람하면서 이성계가 묻자 능히 알 수 없다고 했으며, 1402년 7월 13일에는 회암사의 감주가 되었다.

1402년 11월 9일에는 이성계가 함주에 있을 때 이방원의 명으로 이성계에게 가서 이방원이 속히 돌아오기를 청한다는 것을 전했으며, 1405년 9월 20일에 사망했고 그 뼈는 회암사 부도에 안치되었다. 1410년에 시호를 받았고 조선왕조실록에서 무학이라는 호보다는 자초라는 본명으로 더 많이 나온다.

사극에서는 한 시대를 풍미한 1996년작 용의 눈물KBS 대하드라마의 부활을 알린 2014년작 정도전에서 출연하였는데, 두 드라마 모두 박병호씨가 배역을 맡았다. 이처럼 동일 배역을 다른 사극에서 두 번 연기한 다른 경우로는 원경왕후 역의 최명길(용의 눈물, 대왕 세종), 단종 역의 정태우(한명회, 왕과 비), 소혜왕후(인수대비) 역의 채시라(왕과 비, 인수대비) 등이 있다.

2. 불교 계위

無學 수행을 계속하여 더 배울것이 없는 아라한에 도달한 상태를 말한다.

3. 기업

소주를 주로 판매하는 주류업체로 울산경남을 연고로 한다.

4. 학력

無學 아무런 학교도 다니지 않은 상태로 초졸 중졸 보다 낮은 상태이다. 법정스님의 수필집 <무소유>에서는 '배웠으나 배운 자취가 없는 사람', 즉 배우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으로도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