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HRSS

무슬림 형제단

last modified: 2015-06-14 13:01:55 Contributors

Muslim Brotherhood

Contents

1. 개요
2. 이념
3. 역사
3.1. 집권
3.2. 탄압
3.3. 몰락
3.4. 한계
4. 해외 전개
5. 테러 단체 지정국


1. 개요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는 범 아랍권의 이슬람주의 정치 조직, 정당 단체. 무려 500만~1000만 명에 이르는 회원 수[1]를 가진, 세계 최대이자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이슬람주의 단체이다. 또한 모든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들의 모태라고 볼 수도있다.

2. 이념

"이슬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이념은 일단 민주주의 매커니즘과 이슬람의 권위를 동시에 내걸고 있다. 민주주의 제도를 견지하면서, 궁극적으로 샤리아의 전면적인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샤리아의 형태에 반하지 않는 형태로 삼권분립, 의회민주주의, 평화적 정권 교체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샤리아를 견지한다."는 주장, 나아가 민주주의적인 수단을 이용해서 궁극적으로는 이슬람 샤리아에 의해 통치되는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것은 창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달라지지 않았다.또한 이러한 극단적인 사상 때문에 종교차별적, 성차별적 요소가 심각하며, 의회민주주의를 이용하기만 할 뿐. 실제로는 민주주의에 어긋나는 반인권적, 전체주의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3. 역사

1928년 서구로부터의 독립과 이슬람 문화의 부흥을 내걸고, 하산 알 반나(Hassan al-Banna, 1906 - 1949)가 이집트에서 결성하였다. 1940년대 이슬람주의 운동이 성장하면서 요르단, 팔레스타인 등 주변 여러 지역으로 진출하였으며, 현재는 수많은 아랍 국가에서 폭넓게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원리주의 조직인 하마스의 모체가 되었다.

1952년 왕정 타도에 참가하였으나, 이집트 대통령 나세르의 암살을 꾀하다가 탄압되었다. 1970년 사다트 대통령 정권 아래에서 조직을 재편하여 테러 위주의 극단주의를 배제하고 국회를 통한 정치 활동을 시도하는 등 합법적인 이슬람주의 운동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극단주의적 사상과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 목표를 포기한건 아니었다.

무슬림 형제단은 대중을 대상으로 다양한 사회 활동을 전개하는 방식으로 이슬람주의의 성장을 도모하였는데, 종교 활동은 물론, 의료, 교육, 상호부조 등의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실시하였으며, 이러한 빈곤층 구제 활동을 통하여 굳건한 지지를 모으게 되었고, 이슬람주의 조직이나 단체들 중에서 가장 지지 기반과 조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도 받았다.

2010년 말부터 2011년에 걸쳐서 일어난 아랍의 봄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3.1. 집권

2011년 이집트 민주화 운동 이후 무슬림 형제단은 정당 "자유공정당"을 결성하여, 무함마드 무르시가 당수로 취임하였다. 자유공정당은 의회 선거에서 약진하고,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르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2013년 3월, 무슬림 형제단은 공식적으로 NGO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2013년 중반 엘시시 장군의 쿠데타 이후 수립된 이집트의 신군부 정권 하에서 NGO자격을 도로 박탈당했다.

3.2. 탄압

2013년 쿠데타로 무르시는 대통령 권한을 잃고 이집트 군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2013년 12월 25일, 차량폭탄을 사용한 테러가 발생하여 이집트 임시 정권에게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었다.

2014년, 무려 683명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지고, 지도부에게 사형, 종신형을 수없이 겹쳐서 날리고 있다. 현재 지도부는 망명하여 외국을 전전하는 등. 이집트의 형제단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기사

무슬림 형제단에 우호적이던 카타르가 형제단 지도부의 망명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집트로부터 송환 요구가 반복되고 사우디, UAE, 바레인 등에서 압력이 가중되자 결국 형제단은 재망명을 떠나기로 했다. 마찬가지로 군부독재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문민독재자인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기사

3.3. 몰락

무슬림 형제단의 이집트 통치는 이슬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는 과격하고 성급한 시도 때문에 이집트 민중의 반발을 불러오면서 파탄을 맞이했다. 현재 이집트 국민들은, 이전과는 달리 무슬림 형제단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형제단에 대한 지지도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기사 다만, 이것이 이집트의 민주화, 자유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사회 전반적으로는 오히려 보수화, 종교화가 강화되고 있어 형제단과 같은 조직이 부흥할 여지는 아직 적지 않다.

이들 무슬림 형제단은 권력을 잡자 이슬람 샤리아를 이집트헌법보다 우위에 두었고 샤리아 기준으로 한 언론탄압,여성차별,현대식 교육 제재,타종교 차별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정작 아랍의 봄을 일으킨 경제적 어려움은 해결하기는 커녕 해외자본 추방, 이슬람문화가 아닌 타학문과 기술 탄압등 문제해결은 커녕 시대의 변화를 거슬러 오르는 정책을 실시하였다.

게다가 오랜시간동안 이슬람과 공존해왔고, 이집트 혁명에서도 이슬람 세력과 연대하고 함께 시위에 나섯던 트교 등 이집트 토착 기독교인을 뒷통수치고 노골적인 탄압 정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결국 서구권에서 군부 쿠테타를 지지할 정도로 반감을 사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가까운 시리아, 이라크에서 테러조직 이슬람 국가의 발호가 무슬림 형제단의 이미지도 함께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기사
예비역 장성으로 보안전문가인 사예드 알 가브리는 중국의 신화통신에 "다수의 사람들이 IS와 무슬림형제단 및 기타의 살라피스트 성전주의자들을 동류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IS의 테러활동으로 무슬림형제단의 세력이 위축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무슬림형제단에 동조했던 일부 국민들도 IS가 이슬람의 이미지를 어떻게 왜곡시켰는가를 깨닫자 등을 돌렸다", 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집트 혁명으로 호스니 무바라크가 실각한 후 2013년 1년간 들어선 무르시 문민정부를 뒤집고 재집권한 무바라크의 후계자격 군사독재자 압델 파타 엘 시시 전 장군, 현 이집트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IS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면서 IS와 무슬림형제단을 묶어 "극단주의적 어두움"의 세력이라고 주장하며 무슬림 형제단을 IS와 연결시키려 하였다. 시시 장군의 쿠데타로 축출되었을 당시 여당이어었던 형제단을 수백명 이상 사형시킨 이집트 군부의 가혹한 조치 때문에 무슬림 형제단은 서구나 이집트에서 어느 정도는 동정을 받고 있었지만, IS가 악명을 떨치자 무슬림 형제단도 이들과 똑같은 부류로 묶이면서 동정의 시선이 증발했다. 심지어 이집트 인들 마저 무슬림 형제단을 이집트를 시리아나 이라크처럼 지옥으로 만들 테러단체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집트의 정치평론가이며, 중동정치연구소 소장, 암마르 알리 하산은 "IS의 출현으로 서방은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고 이집트의 신정부(압델 파타 엘 시시)에 미국 주도의 대IS 연합전선에 참가하도록 요청함으로써 무슬림형제단은 큰 손해를 보았다"고 진단했다.

결국 군부가 장악한 이집트 의회는 2015년 4월 11일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 지도자 모하메드 바디Mohamed Badie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3.4. 한계

내정 측면에서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은 무슬림 형제단은 야권 가운데서는 가장 큰 세력으로 상당한 시민 운동 경험이 있었지만, 행정 경험은 부족한 인사들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능력보다는 형제단에 충성하는 인물들만 발탁하다보니 친목질 논란이 일어났고, 형제단 내부에서도 분열이 일어났다. 그 반면에 미숙한 형제단의 행정 때문에 다양한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즉, 혁명으로 집권한 탓에 전형적인 '준비되지 않은 정권'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또한 이집트의 군부 독재는 오랜 세월동안 견고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고, 형제단의 급격한 이슬람화 움직임은 세속주의 야권 세력을 자극해서 이들이 성급한 민주화를 포기하고 군부와 결탁하게 만들었다. 형제단 내부 역시 분열되면서 극단주의자들이 내부의 실권을 장악하여 악화되는 여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4. 해외 전개

무슬림 형제단은 주로 범 아랍주의 정당인 바트당과 마찰을 빚었다. 극단적 살라피스트들은 서구적 민주주의를 인정하는 무슬림 형제단은 '반 이슬람적'요소가 많으며 순수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걸프 왕정 국가들은 무슬림 형제단을 좋게 보지 않는다.

  • 시리아 : 시리아의 무슬림 형제단은 아사드 정권과 첨예하게 대립하였다. 1982년 무슬림 형제단의 거점인 하마가 공격당하여 하마 학살이 일어났다.
  • 카타르 : 무슬림 형제단의 강력한 지원자로 알려져 있다.

5. 테러 단체 지정국

무슬림 형제단은 러시아, 시리아, 이집트, 사우디 아라비아,아랍 에미리트에서 테러 단체로 지정되어 있다.
----
  • [1] 대표적인 이슬람과격주의단체들도 많아봐야 10만단위 규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