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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관

last modified: 2015-11-29 18:33:34 Contributors

Contents

1. 일본의 건물
1.1. 공연장으로서의 무도관
1.2. 무도관에 얽힌 여담
2. 동명의 게임


1. 일본의 건물

무도관은 무술 경기장으로 일본 각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도쿄치요다구에 있는 일본무도관을 지칭하며 본 항목에서는 이 일본무도관에 대해서 기술한다.


일본무도관(日本武道館). 일본어로 닛폰부도칸(Nippon Budokan)이라고 읽는다. 일본 도쿄에 있는 대형 유도 경기장이다. 최대 1만 4천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1] 본 목적은 1964 도쿄 올림픽 유도 경기 개최를 위해서였지만 당시에는 이곳만한 대규모 공연장이 없었기에 점점 음악계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 되었다.

1.1. 공연장으로서의 무도관

공연장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라이브 하우스 무도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듯 하며, 무수히 많이 피고 지는 일본 록 밴드들의 염원은 바로 언젠가는 이곳에 서서 공연을 하는 것이다.

일본의 공연장 규모
라이브 하우스 1000~2000석 ZEPP, BLITZ
1500~10000석 시민회관, 국제회의장
무도관 7000~8000석 메이저 진입
아레나 6000~30000석 요코하마 아리나, 사이타마 수퍼 아리나, 세이부 돔
30000~50000석 5대 돔
스타디움 30000~72000석 닛산, 아지노모토

사실 무도관의 객석 규모는 7~8000석으로, 절대로 큰 규모의 공연장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하의 신인들이 공연하는 라이브 하우스나 홀에 비하면 훨씬 큰데다가 지명도도 높기 때문에, 여기서 공연한다는 것은 '이제부터 우리도 메이저 가수다!'임을 선언하는 상징적 행위인 것이다. 스포츠로 치자면 올림픽 출전 정도 느낌. LIVE AT BUDOKAN 의 이름을 한 라이브 비디오가 많다는 것이 이 곳이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가지는 위치를 상징한다.

락밴드 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 뮤지션들에게도 일종의 '통과의례'나 자신들의 입지를 알리는 축포같은 위치를 지니는 공연장인데, 퍼퓸(일본)이나 동방신기도 이 곳에서 콘서트를 가졌던 적이 있다. 도쿄돔[2]이나 닛산 스타디움[3]처럼 더 큰 규모의 공연장이 생긴 지금도 무도관 단독 공연의 상징적 의미는 크다. 물론 일본 대중음악계의 성지이기 때문에 외국 뮤지션들도 이곳에서 공연을 하면 제대로 일본에서 공연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한류가 커진 지금은 꽤 많은 가수들이 이 곳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현상 이전에 이 곳에서 공연했던 한국인 가수는 딱 둘 뿐이다. 가왕 조용필과 신바람 이박사.

근래 들어서는 대중적 인지도가 떨어지는 매니악한 분야의 가수나 밴드들도 무도관에 서기 때문에 그 위엄이 예전만 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무도관은 자신들의 이름이 높아졌다는 사실의 반증이며, 반대로 말하면 매니악한 분야만으로도 1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는 일본 대중음악계의 넓은 시장성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닛산 스타디움 72,000명
도쿄돔 55,000명
도쿄 국립경기장 50,000명
지노모토 스타디움 50,000명
삿포로 돔 50,000명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 50,000명
미야기 스타디움 49,000명
나고야돔 40,000명
후쿠오카 야후 옥션 돔 40,000명
교세라 돔 오사카 40,000명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37,000명
메이지진구 야구장 36,000명
세이부 돔 33,000명
요코하마 스타디움 30,000명
요코하마 아레나 17,000명
오사카성 홀 16,000명
요요기 제1체육관 13,000명
나고야 가이시홀 10,000명
후쿠오카 국제센터 10,000명
무도관 8,000명
도쿄 국제포럼 5,000명
파시피코 요코하마 5,000명
NHK홀 도쿄 3,500명
나카노 선플라자 2,200명
시민회관, 현민회관 등 1,500~2,500명
라이브하우스 1,000~2,000명

공연장으로서의 기능은 솔직히 좋지는 않다. 아리나가 푹 꺼진 상태이기 때문에 2층 스탠드로 올라가게 된다면 밴드의 정수리만 구경하게 되며 의도한 무대와 조명 연출도 제대로 보기 어렵다. 제대로 된 소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

공연을 하지 않을때는 이름답게 각종 무도대회가 열리거나, 대학교의 입학/졸업식이 치뤄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도쿄대학이 일본무도관에서 입학식을 치룬다. 모 입시물을 빙자한 하렘물에서도 나온다. 주인공은 평생 쓸 운을 도쿄대 입학에 써버린 탓에 무도관 지붕에서 떨어진 빛나는 만두지붕 꼭대기에 있는 그거에 깔려 다리가 부러지는 참사를 겪는다.

만화 케이온!에서도 방과후 티타임으로서 이곳을 목표로 하자는 드립을 친다. 적어도 일본에서 밴드를 꾸민다면 누구나 하는 말이다.[4]

1.2. 무도관에 얽힌 여담

사례가 더 있다면 다른 가수나 이벤트의 여담도 추가바람

1. 사잔 올 스타즈의 멤버인 쿠와타 케이스케와 하라 유코는 1982년 전국투어 마지막 공연이였던 무도관 공연 도중에 이곳에서 결혼을 선언하였다. 현재는 소속사의 요청으로 해당 영상이 차단된 상황. 그리고 2015년에 22년만에 무도관에서 다시 공연을 할 것으로 발표하였다.

2. 가수 자와 에이키치는 2007년에 가진 전국투어 「THE REAL」 중에서 투어 파이널이였던 무도관 공연 중 3일째인 12월 16일 공연을 통해 무도관에서 공연횟수 100회를 달성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때의 무도관 공연은 5일 공연이여서 2007년에만 무도관 공연 102회를 달성하였다. 이후로도 무도관 공연을 계속 가져서 2014년까지 132회 공연을 가졌다. 이를 기념하여 과거 26차례의 투어 영상 중 무도관 공연을 모은 영상을 발매하기도 했다.

2. 동명의 게임

budokan.jpg
[JPG image (Unknown)]



1989년에 EA에서 나온 동명의 게임. 1:1 대련 구도지만, 플레이해보면 격투액션이라기 보다는 스포츠 게임에 가깝다. 간단하게 말해서 89년에는 격투게임이라는 장르 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 카라테카[5]스트리트 파이터 1편이 겨우 나왔던 시절이다. 즉, 이 게임을 대전 격투라고 보자면 할아버지뻘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라데,봉술,검도 등 일본의 무술을 소재로 진행하는데 수련이 끝나면 실제로 무도관에 가서 정규시합을 치룬다. 상대는 사슬낫이나 인술[6] 등 플레이어가 선택 불가능한 유파에서도 나오며, 각각의 상대에게는 프로필이 있었다.[7] 전후 이동과 점프, 상중하단 공격과 그에 맞는 방어 시스템도 있었다.[8]

당시 PC통신, 특히 게임 프로그래밍 계에서 페르시아의 왕자와 견줄 수 있는 몇 안되는 걸작으로 손꼽혔다. 간단한 조작감과 타격감이 좋아[9] 당시 제법 인기를 끌었다. 물론 복사본으로...
게다가 당시 최고 사양인 VGA급 그래픽[10]에 움직임도 부드럽고, 심지어 PCM으로도 음성 지원이 되는 게임이었다.[11] 무술 도장에서는 배경에 학이 느릿느릿 걸어다니기도 했고, 시간이 가면 태양의 위치에 따라 그림자가 움직인다. 이스터 에그고질라가 출연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있을 건 다 있는 토탈 패키지.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가진 게임이 2HD 디스켓 1장에 딱 들어갔다는 점이다. 이것은 극한의 코딩으로 자체 압축률을 높인 결과로,[12] 90년대 당시 최고 수준의 압축률을 자랑한 RAR로 압축해도 용량을 거의 줄이지 못했다. 요즈음은 게임 데이터를 압축해서 패키지 파일에 넣는 것이 기본사양인데, 이 게임이 바로 그 선구자뻘 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고작 2명이서 만든 게임이 이 정도 수준이니 충공깽. EA는 제작사가 아니고 판매원이다.

얼핏 일본 무술을 소재로 한다고 해서 와패니즈 성향이 있다고 착각할 수 있으나, 89년 당시에는 와패니즈라는 개념조차 확립되지 못한 시기다. 당연히 와패니즈라는 용어 조차 없었다. 게다가 제작진 2명 중에 1명은 일본인이다. 오히려 미국에서 일본문화를 다룬 거의 최초의 PC게임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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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단, 공연장으로 쓰일 경우에는 무대장치등 여러 문제로 1만명 남짓한 정도 관객석(2층 이상 관객석과 1층 스탠딩석 정도)만 설치하는 듯.
  • [2] 기본으로 4만 명 ~ 5만 명
  • [3] 기본으로 7만 명 ~ 8만 명
  • [4] 다만 실제로 진지하게 목표를 잡은 게 아니다. 자세한 건 방과후 티타임 항목 참조.
  • [5] 유명한 페르시아의 왕자의 모태가 된 작품.
  • [6] 수리검을 날린다.
  • [7] 창을 들고 나온 적의 유파가 '보장원류'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유파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 [8] 물론 스트리트 파이터 2가 나오기 전이라 상중하단은 가드 상성을 말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의 상중하단이다.
  • [9] 당시 기준. 21세기 기준으로는 움직임이 굼뜨고 빡빡하게 느껴진다.
  • [10] 320x200 해상도에 256색
  • [11] 피씨 스피커로 기합소리가 나왔다. 당시 대부분의 게임 사운드는 뿅뿅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 [12] 당시 컴퓨터 사양이 낮아서 하드 디스크도 없었고, 640KB 기본 메모리로 게임이 돌아갔기 때문에 따로 압축을 풀어둘 데가 없었다. 오로지 코딩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