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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last modified: 2016-08-26 21:07:00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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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지역별 인식차이
3. 사료적 가치
4. 문서가 존재하는 무덤
5. 관련 문서
6. 기타


1. 개요

죽은 사람이 묻히는 장소.

한자로는 묘(墓), 묘지(墓地), 또는 분묘(墳墓, 이쪽은 법률 용어)라 한다.
묘가 대량으로 모여 있는 지역을 공동묘지라 부른다.

근대기에는 무덤이 아닌 묻엄으로 쓰였다. [1] 그래서 죽은 사람을 묻음>묻었다의 줄임말인 묻엄>무덤이 된것이다.
자세한 사료를 아시는 분들은 추가바람

2. 지역별 인식차이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문화권에서 죽음, 혹은 시신을 상징하는 무덤은 영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죽은 조상을 추모하고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조상의 무덤이 가까이 있는 것을 선호하는 문화권도 종종 있다. 심시티 4에서는 도시가 어느 정도 커지면 공동묘지를 지을 수 있는데, 한국인들은 당연히 주택가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무덤을 건설했지만 나중에 공략에 따르면 주택 가까이 있는 곳에 지어야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수많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사실 요즘도 우리 나라 농촌에 있는 주택들을 차 타고 지나가다 보면 아예 묘지가 집 바로 뒷쪽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걸 가끔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이나 유럽, 미국에도 주택가 옆에 떡하니 공동묘지가 있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 경우는 무엇인가 하면 먼 과거에 마을이 작았던 시절에는 이 공동묘지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거리에 있었는데, 마을이 커지면서 나중에는 마을이 공동묘지를 감싸버린 형태가 된 것이다. 좀비물에서 공동묘지에서 좀비가 깨어나면 얼마 뒤 도심 한복판이 좀비로 가득 차는 게 이상한 게 아닌 것(…). 프랑스의 경우 더 심해서 파리의 몽파르니스 지역을 비롯해 여러곳이 공동묘지를 공원 비슷하게 운용한다.(…) 역병이 창궐하던 시절 죽은 선인들의 뼈를 깨끗하게 씻은 뒤 본래 로마시대에 탄광으로 사용됐던 지하 통로를 공동묘지로 용도변경하여 차곡차곡 쌓아뒀는데, 이게 현대 시점에서 상당히 그로테스크 하다. 카타콤 항목을 참고.

호주 사람들도 묘지를 혐오시설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유인즉슨 묻힌 사람들은 자기 조상들인데, 유령이 되더라도 도움을 줬지 해를 끼치진 않을 거라는 이유란다. 하지만 이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무덤을 완전히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무덤은 기본적으로 죽음과 맞닿아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관련된 괴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다만 워낙 오랜 기간 동안 무덤이 마을과 주변에 형성된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분위기가 있는 것. (+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특별히 비참한 죽음이 아닌 이상 '죽음 자체'가 무서운 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도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천수를 다 누리고 연사하는 비율이 오히려 적었고, 더 이전엔 맹수의 습격이나 당시 기준의 불치병 등 끔찍한 죽음이 자연사보다 오히려 더 흔했음을 생각하면.)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흔히 모스크 옆에 위치한 무덤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이쪽 동네에서는 왕이나 성자, 고위 성직자의 무덤을 아예 집처럼 지어서 그 안에 관을 안치하는 식으로 만들기도 하며 여기에서 기도하려는 방문객으로 붐비기도 한다.[2] 예언자 무함마드는 죽은 이에 대한 기도를 우상숭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했지만 시아파가 성자 숭배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영향을 깊게 받은 터키, 이집트쪽은 그냥 신경 안 쓰는 중. 터키에서는 오히려 죽은 이를 참배하기 편하다며 모스크 안에 공동묘지를 만들기도 하고, 지금도 고인이 죽은 날에는 고인의 무덤을 찾아서 꽃다발을 바치고 짤막한 기도를 올리는 풍습이 있다.

반대로 유대인들은 무덤이 가까이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전통적으로 동굴에 넣고 바위로 막아서 부정타지 않게 했을 정도며, 현재도 이스라엘의 공동묘지는 외딴 사막지역에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

한국의 경우에는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매장을 했지만, 불교의 영향력이 강력해진 고려시대에는 주로 화장을 많이 하였다. 그러던 것이 유교의 영향이 강해진 조선시대에는 다시 매장으로 바뀌고, 풍수지리의 영향 역시 강하게 받으면서 무덤의 위치가 산으로 올라가게 된다. 무덤의 위치 자체가 으슥한 곳으로 바뀌고 일상 공간에서 먼 곳으로 변경된 점이 무덤에 대한 공포심을 증가시켰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한국 불교에서는 아직도 승려가 죽으면 화장을 한 후 부도(승탑)를 만들어 절의 입구 같은 곳에 안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대해 대중들이 별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 것을 보면 역시 인식에 달린 문제라고 할 수 있겠다. 무덤이 무서워서 멀리 떨어진 건지, 무덤이 멀리 떨어지다 보니 무섭게 된 것인지는 연구해봐야 할 일.

한국에서 무덤이 영 좋지 않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것 중 하나가 경부고속도로영락IC. 영락공원 설립당시 지역주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경부고속도로로 직접 연결되는 도로를 냈다. 이에 따라 영락공원으로 들어가는 차량진입로도 자동차전용도로 취급을 받는 편. 보행자와 이륜자동차는 팔송에서 금정도서관로를 통해 들어갈 수 있지만, 장례 관련 차량들은 무조건 고속도로를 타고 들어가야된다.

3. 사료적 가치

고대사에서는 오래된 무덤인 고분(古墳)이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각종 권력자들이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의 소지품 혹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까지 같이 묻었기 때문이다. 중, 고등학교 국사시간에 고구려, 백제, 신라의 시대 변화에 따른 무덤 양식(묘제)의 변화를 지겹게 외웠던 것도 사실 다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연히 이런 무덤엔 각종 비싸고 희귀한 물건도 많이 묻혀있고, 무덤을 파서 이런 물건을 훔치는 사람을 도굴꾼이라고 한다. 특히 묘제는 그 문화권의 사후 세계관을 보여 주는 것으로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3] 무덤의 양식과 그 부장품은 고고학적으로도 그 문화의 계통을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6. 기타

  • 스포츠에서 홈 텃세가 심하거나 홈에서 펄펄나는 팀의 연고지는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리기도 한다.
  • 특정 분야 혹은 (이미 고인이 된) 사람에 대하여 터무니없는 소리를 할 경우 이미 고인이 된 그 분야의 관계자 혹은 이미 고인이 된 당사자의 이름을 넣어서 "XXX가 무덤에서 튀어나올 소리!"혹은 "XXX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소리"라고 하기도 한다.
    • ex) 다윈이 죽기전에 진화론이 틀렸다고 고백했다고? 다윈 선생이 무덤에서 튀어나올 소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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