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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역사

last modified: 2015-08-29 21:00:02 Contributors


Contents

1. 고대사
2. 몽골 제국
3. 북원 멸망 이후
4. 독립과 공산주의 시절
5. 민주화 이후


1. 고대사

근대 이전에는 유목민족이 다들 그렇듯이 명확하게 혈통을 구분하기 어려우며, 이런저런 민족이 뒤섞여 있었다.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흉노, 선비, 돌궐, 거란족 등 무수한 유목민족이 명멸하였으며 그나마 명확하게 기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당대 이후 등장한 '몽올실위'라는 부족명 정도. 역사의 전환점이 없었다면 몽골은 지금의 몽골이 아니었을지도,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2. 몽골 제국

하지만 칭기즈 칸이 등장하면서 몽골의 역사, 아니 세계의 역사를 뒤바꿔 놓는다. 13세기 몽골은 온 아시아를 뒤엎고 유럽까지도 뒤흔들어 놓는 등 당시 제일 잘나가는 이른바 리즈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이 당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몽골 제국 항목을 참조하기 바란다. 단순히 군사적인 업적뿐만 아니라, 몽골이라는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이 본격적으로 구체화된 것이 바로 이 시기였으며 아래에 서술하겠지만 지금의 몽골인 또한 이 시기에 대한 각별한 존경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폭발적인 활력이 쿠빌라이 칸 시대 이후 무리하게 소진되면서 몽골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분할되어 나간 칸국은 점차 현지인의 반발로 그 입지가 축소되어 가거나 현지화되어 사실상 몽골사로 다루기 어려워졌으며, 원나라1368년 만리장성 밖으로 쫓겨나 북원으로 잔존하였다. 이후 영락제가 북방을 토벌하면서 유목민족의 입김은 다시 한 번 약해졌다.

3. 북원 멸망 이후

그러나 15세기 후반부터 명나라의 입김이 약해지면서 몽골은 다시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오이라트를 중심으로 뭉친 몽골족들은 토목의 변도 일으키고 얀 칸은 다시 한 번 몽골 세력을 규합해 명을 압박하였고, 16세기 중반 몽골 부족의 칸 중 한 명인 탄 칸은 명의 수도인 베이징을 포위하기도 했다.

하지만 1635년 후금태종에게 정복당하고, 대칸의 지위도 그에게 넘어간다. 이후 후금은 청나라로 변모하였고 나라가 망할 때까지 몽골의 대칸을 겸했다. 청나라는 자신들의 선조였던 금나라가 몽골에게 망한 것을 상기하여, 몽골이 흥할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몽골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으며, 그리하여 행사에 돈이 많이 들고 비폭력적인 티베트 불교를 몽골인에 장려하였다. 몽골인의 첫째 아들은 마승으로 출가해야 했으며, 라마승이 행사하는 초야권 때문에 몽골에 매독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래서 한때 몽골 하면 매독의 나라로 알려지기도 했다.[1]

이후 러시아가 남하해 오면서 잦은 전투가 벌어졌으나 옹정제 시기 캬흐타 조약으로 이 지역의 국경선이 정해졌으며, 이는 현대 몽골의 국경선으로 이어졌다.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자치권을 얻었지만, 러시아가 다시 한번 남하정책을 펴자 중국이 자치권을 철회하는 등 이권 싸움에 휘말려 고생했다. 그러다 1921년, 10월 혁명 직후 거듭된 적백내전 기간과 중국의 혼란 속에서 양측의 침략을 받으며 어렵게 살다가 독립하게 되었다.

4. 독립과 공산주의 시절

독립 당시, 몽골 지역은 극동 러시아의 백군 세력에 의해 점령된 상태였는데, 그 지휘관인 운게른 슈테른베르크 소장진성 미치광이였다. 자신이 부처님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고 백성들을 죽여서 더 나은 삶으로 환생시켜 주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어?! 생각한 운게른은 정말 사소한 일로도 몽골 주민들을 학살했는데 심지어는 날마다 비뽑기를 해서 걸린 마을이나 버스 정류장, 소위 오늘의 환생 정류장을 선정해서 어린아이까지 죽여 사람 씨를 말릴 정도였다.궁예 또는 피콜로 대마왕이 생각난다.

그런 와중에 마침내 모스크바의 볼셰비키가 극동 방면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운게른의 악정을 견디다 못한 시민들 역시 담딘 수흐바타르라는 젊은 청년을 지휘관으로 독립군을 결성하여 봉기하기에 이르렀다. 몽골의 현 수도인 울란바토르는 그 수흐바타르를 기념하여 이름 붙인 도시다. 그리고 1924년 공산당이 집권하여 소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몽골 영토를 침범하기도 했으나 이외에는 큰 사건 없이 1990년대 냉전이 끝날 때까지 공산진영의 위성국으로 남았다. 이 시기에 몽골은 일단 독립을 유지했지만 국부 칭기즈 칸에 대한 찬사가 전면 금지되고 성씨 사용도 금지, 몽골 전통의 근간인 유목마저 금지되는 등 많은 간섭을 받았다.

5. 민주화 이후

아시아의 공산 국가들의 체제 전환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손꼽힌다. 페레스트로이카를 본받아 80년대 후반부터 개혁, 개방 정책을 실시했고 소련의 붕괴와 발맞춰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 하면서 피한방울 흘리지 않않고 체제 전환에 성공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자원을 개발하는 중이다. 몽골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국내언론이 몽골의 발전상을 객관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도 그런 것이 텔레비전에서 몽골 이야기가 나오면 열에 아홉은 초원에서 양 치고 염소 젖 짜먹고 '게르'에서 거주하는 장면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무리 발달한 나라라도 시골은 있다. 외국에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내보내면서 밭 갈고 소 몰고 돼지 키우는 장면만 줄창 틀어준다고 생각해보자, 모르는 사람은 한국이 아직도 농사만으로 밥 먹고 사는 나라인 줄 알 것이다. 몽골도 마찬가지다. 거기도 도시가 있고, 상대적으로 '촌'이 있을 뿐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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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덕분에 근현대 시기 몽골에서 의료활동을 한 이태준 선생이 가장 활약한 분야라고….
  • [2] 한국의 남매 가수인 악동뮤지션의 사례에서 이러한 편견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악동뮤지션은 부모님이 선교사라 어렸을 때부터 몽골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처음에 몽골에 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소위 몽골의 스테레오 타입, 즉 게르와 초원, 양과 함께하는 생활(...)을 상상했으나 현실은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