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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

last modified: 2015-03-22 11:17:43 Contributors



통일신라 고려 조선 1896년~ 1897년~ 1910년~ 1914년~ 1949년~ 1969년~
무안군 물량군
무안군
무안현
무안군
무안현
무안부 목포부 목포부 목포시
무안군 무안군
압해군 장산현
육창현
임치현
압해현
나주목
광주목
지도군
영광군
해남현
지도군 신안군

목포는 항구다!![1] 목표로 잘못 쓰면 곤란하다. 격하게 쓰다보면 폭포시도 될 수 있다

mokpocitylogo.gif
[GIF image (Unknown)]
목포시
木浦市 / Mokpo City
국가 대한민국
면적 50.20㎢
광역시도 전라남도
하위 행정구역 23
시간대 UTC+9
인구 239,109명
(2014년 12월 기준 주민등록인구)
인구밀도 4784.14명/㎢
시장 박홍률
초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홈페이지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Contents

1. 개요
2. 종교
3. 역사
4. 행정
4.1. 원도심
4.2. 북항지구
4.3. 하당지구
4.4. 남악지구
5. 지리
6. 교통
7. 교육
7.1. 원도심
7.2. 북항지구
7.3. 남악지구
8. 문화
8.1. 관광
8.2. 대표 축제
9. 이야깃거리
10. 출신 인물


1. 개요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 인구 약 24만 명. 면적 50.20km2. 무안군과 접해 있으며 무안반도의 끝에 위치해 있다.

호남 3대 항구의 하나이며 호남선 철도의 종착역이자 서해안고속도로의 종점으로 개항 이후부터 항구 도시로 발전하였다. 일제강점기1940년대만 해도 인천, 부산과 함께 인구 7만으로 3대 항구, 남한 8대 도시(조선 16대 도시) 중 하나였고, 1950년대 10만을 훌쩍 넘는 인구 증가로 한 때 남한 6대 도시에 속했으나, 내해 수심이 얕아 무역항으로 쓰기에 입지가 나쁜 탓에 대도시로 성장하지 못했다.

개항 이후 무안군에 속했던 지역을 야금야금 편입시키기는 하였으나, 그나마도 1988년 옥암리와 대양리를 마지막으로 편입시킨 이후 1995년 지방자치제가 본격 실시 될 때 도농 통합을 이루지 못해 면적 확장이 끝나 버렸다. 면적이 서울특별시 서초구수원시 권선구와 엇비슷하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의 2/3 크기(...) 계룡시(60.68)을 제외하고는 비수도권에서 유일한 면적 두 자리 시이며, 비수도권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이다.[2] 심지어 목포시 2개를 붙여도 같은 전라남도의 보성군 벌교 면적(102.36km2)을 못 채울 정도이니 얼마나 좁은 도시인지 감이 오는가.저건 사실 목포가 좁은 게 아니라 벌교가 넓은 거지만



전설적인 노래 목포의 눈물이 이 지역을 소재로 해서 만들어졌다.

2. 종교

개신 교회가 매우 많은 지역이다. 많은 만큼 이단도 매우 많다. 목포에도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 날뛰고 있으니 주의 바람. 길거리에서 대놓고 천막 설치해서 신천지 홍보&신도 모집한다든가 전통시장 살리기 캠페인, 경로당에서 자원봉사 같은 것해서 사람들 환심사는 중. KT 목포지사와 교보생명 사이에 있는 목포시온교회(구 코렉스마트)가 신천지교회니 주의할 것. 참고로 산정초등학교 부근의 시온聖교회는 신천지와 아무 상관없는 교회다.[3]

남악신도시에도 구 시가지의 교회들이 이전하면서 교회의 세력권은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3. 역사

고려시대에 최초로 이름이 등장한다. 엄밀히는 태봉시대의 일인데 왕건이 수군을 끌고 목포라는 포구에 도착해 현재 전라남도 서남부 일대를 복속하여 현 광주광역시인 후백제의 거점도시 무진주를 위협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목포의 위치에 대해서는 나주시내라는 설도 있다. 이후 목포라는 이름이 영산강유역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 시작해 조선 태종 때 현재의 목포시 지역에 목포진(木浦鎭)을 설치하여 지명이 확정되었다. 역사적으로는 무안군의 일부였다.

오늘날과 같은 항구도시로서의 시작은 1897년 10월 1일 대한제국의 목포항 개항에 따른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무안군이 무안부로 승격되었다. 형식적으로는 외국과의 조약에 의한 개항이 아닌 정부의 자발적인 개항으로는 첫번째였다. 유달동, 만호동에 해당하는 목포의 구도심은 일본 등 외국자본에 의해서 간척된 계획도시이기에 도로가 둑판처럼 잘 형성이 되어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무안부가 목포부로 개칭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개항장(현 유달동, 만호동, 대성동, 목원동)을 제외한 목포부의 나머지 지역을 무안군으로 분리하였다. 무안군청은 목포부 내에 두었다. 1932년에는 무안군 이로면의 죽교리(유달산과 뒷개라 불리는 해안지역 모두 포함), 산정리(산정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목포에서 남으로 북까지 쭉 뻗은 목포 구도심의 1/3을 차지하는 법정동), 용당리(목포시청과 목포상고 인근)를 목포부에 편입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인구가 불어났으나, 이후 중국 및 일본과의 교역이 단절된 목포는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이 당시 전국(남한) 6대 도시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영산강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토사에 의해 목포항의 수심이 얕아지는 것은 목포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고 있었다. 이에 목포시는 1962년 현 동명동사거리에서 대삼학도 서측을 잇는 방조제 공사를 시작으로 하여, 삼학도 전체를 육지화시켜 외항을 건설하였다. 또한 대삼학도 북측에서 현재 제일중학교까지를 방조제로 연결하여 생긴 땅에 차관을 빌려 4차주택단지를 건설하였다. 이로 인해 삼학도는 현재까지도 공원화가 되어 있긴하나 완전 복원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삼학도의 흑역사

1963년 무안군 이로면(석현리, 대양리, 옥암리 제외)[4]이 목포시에 편입되어, 목포시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부산이 동래군의 면을 몇 개씩 편입하고, 인천이 천군의 면을 몇 개씩 편입하는 동안, 목포시는 무안군의 1개 면을 그것도 완전히 편입한 것도 아니었다. 이로면의 잔여지역은 삼향면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에 석현리를, 1987년에서야 대양리와 옥암리를 편입하게 된다.

1969년 무안군에서 신안군이 분군되면서, 목포시 내에 있던 기존 무안군청은 신안군청으로 전환되고(이후 압해도로 이전), 새 무안군청은 무안군 무안면(이후 무안읍)에 설치되었다.

1970년대 목포는 나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1호광장-2호광장-3호광장으로 이어지는 광로가 이 때 개통된 것이다. 이전에는 대성동-산정초등학교-전남제일고앞 작은 길-이로시장-굴다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목포의 간선도로였다. 1972년에는 상동에 최초의 현대적인 공업단지가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규모는 매우 작았고 그나마 호남고무나 행남자기와 같은 경공업 위주로 구성되었다. 1974년에는 옛 일본영사관에 있던 목포시청이 현 용당동 청사로 옮겨가고, 그 옆에는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가 개교하였다. 현 초원관광호텔 자리에 있던 경찰서, 소방서와 기업은행 맞은편 교회자리에 있던 법원 등도 이 시기에 용당동 청사로 이전하였으며, 현 유달산우체국 자리에 있던 목포우체국과 유달산 기슭에 있던 MBC가 각각 1987년, 1989년에 용당동으로 이전을 완료한다. 비슷한 시기에 시역을 넓혀나간 다른 경쟁도시들이 이미 1970년대 중반에 이러한 변화를 마친 반면, 목포는 이러한 변화를 1980년대 말에서야 마무리를 한 것이다.

그렇기에 목포시는 1990년대 초반까지 별 다른 변화없이 전혀 발전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지시에 의해 목포와 마주한 영암군 삼호에 불공단이 세워지고, 1995년 한라조선소가 건설되면서 도시의 정체된 발전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1993년에는 20년이상 끌어오던 하당지구 개발이 완료되었고, 하당지구는 목포의 대표적인 신도심으로 성장하였다. 2001년에는 서해안고속도로 전면개통 2004년에는 KTX가 목포까지 운행을 시작함으로써 수도권과의 이동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2006년에는 인접한 무안군 삼향면 남악신도시에 전남도청이 개청하고 2007년에는 영암에 있던 목포공항을 폐쇄하고 무안국제공항이 개항하게 되었다.

항구도시답게 대한민국 해군의 주요 기지 가운데 하나였고, 한국전쟁 초반에 대통령이었던 이승만과 정부 인원들이 이 곳을 통해 해군 함정을 타고 부산으로 철수했다. 휴전 이후에도 해군이 계속 주둔해 목포해역방어사령부를 해군 제3함대사령부 휘하로 두고 있다가, 2008년 3함대 사령부가 지은지 1년도 안 된 부산의 사령부 시설들을 작사한테 뺏기고 쫓겨나 목포(행정구역상으로는 삼호)로 옮겨 오면서 목방사를 해체했다.

4. 행정

4.1. 원도심

만호동, 동명동, 삼학동, 이로동, 용당동, 목원동, 대성동 등 목포역 및 목포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4.2. 북항지구

죽교동, 북항동, 원산동, 연산동, 산정동, 용해동 등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었고, 현 목포시청 및 북항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압해대교 개통으로 신안군 압해도와, 목포대교 개통으로 영암군 삼호읍과 연결되며 혜택을 보고 있다. 장차 화원-압해간 연륙 연도 사업으로 해남군 화원면과 연결 및 새천년대교(2018년 예정. 압해-암태)를 통해 신안군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암태도 등이 연륙될 예정이다.

4.3. 하당지구

상동, 하당동, 부흥동, 신흥동 등으로 2000년대부터 개발된 지역으로 목포종합버스터미널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목포시의 실질적인 도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산강하구둑을 통해 영암군 삼호읍으로 연결되어 있다.

4.4. 남악지구

옥암동, 부주동 등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남악신도시개발의 일환으로 개발되었다. 무안군 삼향읍 남악리과 인접하고 있다. 남해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와 인접하고 있다.

5. 지리

한반도 서남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동북쪽으로 무안군 삼향읍과 경계하고 서쪽으로는 서해와 그 건너 신안군 압해읍 압해도와 인접하고 남쪽으로는 하구둑 건너로 영암군과 경계하며 본토에서 떨어진 직할 섬지역으로 율도, 달리도, 장좌도, 외달도, 고하도, 허사도가 있다. 이중 고하도와 허사도는 신외항 조성으로 인해 두 섬 사이를 매립하여 하나의 섬이 되었고, 고하도 바로 밑에 장구도라는 섬이 있었으나 매립으로 사라졌다.

무안반도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는 반도(半島) 지역으로 경계 대부분이 무안군에 인접해있고 하구둑 건너로 영암군과 인접해있기 때문에 군(郡) 지역 사이에 끼어있는 중소도시이기도 하다.

6. 교통

7. 교육

7.1. 원도심

초등학교 : 광주교육대학교목포부설초등학교, 목포남초등학교, 목포대연초등학교, 목포북교초등학교, 목포산정초등학교, 목포삼학초등학교, 목포이로초등학교, 목포용해초등학교, 목포용호초등학교, 목포유달초등학교, 목포중앙초등학교, 목포미항초등학교,목포신흥초등학교, 목포한빛초등학교, 목포상동초등학교 , 목포청호초등학교 [[추가바람]
중학교 : 목포덕인중학교, 목포유달중학교, 목포정명여자중학교, 목포제일중학교, 목포청호중학교, 목포혜인여자중학교, 문태중학교, 영흥중학교 추가바람
고등학교 : 목상고등학교(일반계), 목포공업고등학교(전문(실업)계), 목포덕인고등학교(일반계), 목포마리아회고등학교(일반계), 목포정명여자고등학교(일반계), 목포혜인여자고등학교(일반계), 문태고등학교(일반계), 영흥고등학교(일반계)추가바람
대학교 : 목포대학교 목포캠퍼스, 추가바람

7.2. 북항지구

초등학교 : 목포동초등학교, 목포서부초등학교, 목포연산초등학교, 목포서해초등학교추가바람
중학교 : 목포홍일중학교, 목포덕인중학교추가바람
고등학교 : 포고등학교(일반계), 목포홍일고등학교(일반계), 추가바람
대학교 : 추가바람

7.3. 하당지구

초등학교 : 목포부영초등학교, 목포상동초등학교, 목포석현초등학교, 목포신흥초등학교, 목포미항초등학교, 목포하당초등학교, 목포한빛초등학교, 목포항도초등학교, 추가바람
중학교 : 목포영화중학교, 목포중앙여자중학교, 목포하당중학교, 목포항도여자중학교, 영흥중학교, 추가바람
고등학교 : 목포제일여자고등학교(일반계), 목포성신고등학교(전문(실업)계), 영흥고등학교(일반계), 추가바람
대학교 : 포카톨릭대학교, 목포과학대학교, 목포해양대학교, 추가바람

7.4. 남악지구

초등학교 : 남악초등학교, 목포애향초등학교, 목포영산초등학교, 목포옥암초등학교, 오룡초등학교 추가바람
중학교 : 남악중학교, 목포옥암중학교, 오룡중학교추가바람
고등학교 : 남악고등학교추가바람
대학교 : 추가바람
4년제 대학교는 목포대학교(솔직히 말하면 이름만 목포대학교다)[5], 목포해양대학교, 목포가톨릭대학교가 있고, 2년제 전문대는 목포과학대학[6]이 있다.

고등학생들의 수준은 대체로 타지방 중소도시의 평균 만큼은 한다. 그런데 인근에 있는 광주광역시가 전국 1위라서 목포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의 고등학교로 유학가는 학생도 있고, 전남외고 등으로 가버리는 학생들도 많다. 때문에 사실상 인문계 고등학교의 실력은 목포의 진짜 실력이라고 볼 수 없다. 그래도 시에서 서울대학교 입학생은 꾸준히 20~30명 정도는 나오는 듯 하다. 그런데도 의치간 계열은 서울권에 입학하는 사람이 1년에 한두명 나올까 말까다. 서울대는 거의 다 수시 지역균형으로 들어가기 때문. 지역버프.

이지역 중고등학교는 평준화 이후로 사립이 강세고, 공립은 굉장히 약하다. 비평준화 시절에는 거꾸로 공립이 강세, 사립이 약세였다.

2005년 이전 고교 비평준화 시기만 해도 공립고등학교인 목포고등학교가 제일 위에서 군림하고 역시 공립고등학교인 목포여자고등학교, 사립 학교들인 영흥고등학교, 문태고등학교 및 전남제일고등학교가 그 뒤를 따르는 형세였고 목포고등학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었으나 대학들이 수시를 통해 내신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뽑기 시작하면서 영흥고등학교와 문태고등학교를 필두로 하는 사립 고등학교들이 같은 재단의 사립중학교에서 우수학생들을 유치하여서 좋은 내신점수를 만들어주어 수시로 대학들을 보내기 시작하자 목포고등학교의 위상이 흔들리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대다수의 학생들을 정시로 뽑던 시기에는 정시를 통해 명문대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며, 위세를 유지하다가 2005년 고교 입학생부터 평준화로 학생들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 망했어요. 결국 비평준화 마지막 세대인 2007년 수능의 응시생인 2004년 입학생에서 인문계 광주전남 수석 및 자연계 광주전남 수석을 배출한것을 마지막으로 망했어요..

또 다른 공립고등학교인 목포상고는 인문계인 전남제일고등학교[7]로 바뀐뒤 더 망했어요..[8]이고, 목포고 역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최근 하향세. 평준화 이후 영흥고, 문태고, 덕인고나루히토, 홍일고 등의 사립고들이 잘 나가고 있다. 평준화 후부터 2012년 즈음까진 영흥고가 홍일고와 함께 명문대 배출자를 두고 우위를 겨누다 교내에서 안 좋은 일(?)로 인하여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은 상태고 그 틈을 타서 홍일고가 성장하여 14년 현재 가장 명문고로 언급되고 있다. 13년에 수능 자연계 만점을 맞 고 서울대 의대를 지원했다 떨어진 모 학생도 이 홍일고 출신이다. 목포 지역 중학생들은 학교를 잘 생각하자. 참고로 고교평준화 지역이므로 뺑뺑이다. 물론 일부 사립중학교에서 자교의 성적 중하위권 학생들은 절대로 같은 재단 고등학교를 못 쓰게 하고, 공립고등학교인 목포고나 목상고(구, 전남제일고)에다가 다 몰아줘 버린 다음에 일부러 미달 혹은 정원에 가까운 인원정도만 지원하도록 만든 후 타 중학교 상위권 학생들에게도 이러한 점을 어필해서 상위권 학생들을 끌어모으는 식의 '장난질'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또한 목포에서 우수한 인재들이 광주로 올라가기 때문에 이를 잡아두기 위하여 목포시에서는 목포시내 고등학교 출신자가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면 4년 전액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실력이 있는 학생은 노려볼 만하다!

목포 근처의 타 지역에서 목포로 유학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목포 근처의 지역이 대부분 섬과 같은 지역이라 섬 내에 고등학교가 없어서 아예 목포로 오는 경우도 있고, 질 좋은 교육이나 체육특기생 등의 이유로 목포로 오기도 한다. 목포가 죽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전남 서남부에서는 목포만한 도시가 없기 때문. 이렇게 시내로 들어오는 많은 학생들이 목포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숙사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애초에 시내로 유학오는 이유가 잘 나가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함이었으니, 하지만 평준화 이후 망했어요 평준화 이후 목포고등학교는 기숙사 방이 남아돌아 4인실을 3인실로 바꿨다.

남예고남체고가 근처에 있기는 하지만, 남외고남과학고 등 특목고를 노리는 중딩들은 무조건 나주시로 유학가셔야 하겠다.

목포시+남악신도시의 인구는 하당신도심을 거쳐 남악신도시까지 지속적으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를 못 따라가고 있어서 원도심 학교들의 학생수 감소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원도심이야 이미 심각한지 한참 되었지만 남악신도시가 개발된 2010년대에 들어서는 여파가 퍼지고 있다. 유달, 산정, 연동, 남, 중앙, 북교 등등 원도심 초등학교는 학년 당 한 두학급 겨우 유지하는 수준이고, 서산초등학교는 한 학년 당 인원이 10명 이내로 거의 섬 초등학교 수준이고,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미어터지는 수준으로 열심히 교사(校舍)를 층축하고 신설학교를 추가로 개교시키던 하당신도심이나 북항지역 초등학교들 마저 교실이 남아돌고 있다. 게다가 단순히 신도시 개발 뿐만이 아니라 출산률까지 떨어지며 남악신도시를 개발하는 동안 초등학교 신입생수가 1천여명 이상 감소해서 더더욱 학생수 감소현상은 심화될 전망이다.[9]

초등학교야 통학거리 등의 문제로 소규모 학교라도 유지시켜야겠지만 중, 고등학교는 신도심이 생길 때마다 새로운 학교 신설만 하고, 기존 학교 정리나 이전 등의 대책은 세우지 않아서 원도심 학교 진학 기피 현상으로 인해 구도심 학교들이 여파를 입고 있다. 게다가 고교평준화의 영향으로 사립중학교들이 새로이 명문고가 된 사립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위한 발판 등으로 인식되면서 지원률도 떨어져 애꿏은 공립중학교들만 미니학교가 되가고 있다. 목포 버스 13-1번이라는 전용 통학 노선까지 만들어가며 목포여중의 2014년 신입생수는 특수학급 제외 2학급 54명이다. 거기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원도심 공립 3개 남학교(제일, 유달, 청호)들도 학급감소가 심각하다. 목포 지역 현직 초등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신도심 학생을 원도심 학교에 배정했다간 학부모들이 교육지원청에 칼 들고 쫒아온다 카더라 목포제일중학교의 경우 한 때 목포시 인구 1/4가 하당지역에 있던 유일한 남중이었던 영흥중학교가 1999년부터 남녀공학이 되면서 하당중학교가 개교한 2005년까지 남학생이 갈 수 있는 학교가 0.5개 뿐이라 신도심 근처에 위치한 관개로 미어터졌지만 이마저도 이제는 학급이 줄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수요 불균형에도 일단 원도심 학교들이 학급수를 줄여서라도 유지는 되고 있는데 뺑뺑이 추첨에서 운 나쁘면 누군가는 신도심에서 원치 않은 원도심 중학교로 진학하게되니 이에 대한 신도심이나 남악신도시 옥암지구 주민들의 불만도 많고, 해마다 구도심으로 진학하게된 학생들이 대량으로 위장 전입을 써서 무안군 관내인 남악신도시 남악지구의 남악중학교로 전학신청을 하는 사태도 발생하였다. 이에 또 2013년에는 남악중학교 교사들이 과밀학급으로 교육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며 관할 교육청에 배정중지 요청을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기사참조 거기에 원도심 고등학교들도 평준화로 인한 사립학교로의 학생 쏠림 및 도심 공동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결국 학생 수 감소를 버티다 못한 목포청호중학교는 용해지구의 새로운 택지개발지구를 따라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기사참조 위에서 언급한 목상고등학교(구 전남제일고등학교) 역시 옥암지구로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기사참조 ~그런데 옥암지구의 학교 부지들이 워낙 콩알 만해서 옥암지구로 가면 교지 면적이 1/4~5로 줄어든다(...).~

전라남도의 22개 시군 중 유일하게 과 면 지역 및 도서와 벽지지역 교육진흥법의 적용이 되지 않는 지역이다. 동부권의 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등이 인구도 소득수준도 목포시보다 높음에도 위 법의 적용을 받고 있는데 반해, 상대적으로 인구도 적고 경제수준이 낮은 목포시가 혜택을 받고 있지 못한 것은 어른의 사정이 아닐까? 애초에 목포시에는 읍이랑 면이 없으니 당연한 거 아닌가

8. 문화

개발도 많이 안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꽤 잘나가던 항구(쌀 수출항이었다.)[10]라서, 일제강점기에 지은 건물이 많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의 건축물+근대건축물의 산실로 일본인 구역이었던 유달산 아래 목포여자중학교 근방과 구시가지에는 눈에 띄는 건물들이 다 준문화재급이다. 그러나 이는 보존하려고 해서 보존한 것이 아니라 이 지역이 그 이후로 거의 개발되지 않아서이다. (다행인지, 안습인지) [11]

또 일제의 잔재로는 목포해양대학교 근처의 해안가에서 볼 수 있는 건너편 섬들에 웬 동굴들이 여러개 뚫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이 미군을 막겠다며 군수물자나 군인들을 폭격등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현재까지도 슬픈 역사의 상징이 그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목포문화원이 됐지만 2002년 5월 등록문화재 제29호로 등록된 근대 은행 건축물이 2006년까지 신한(조흥)은행건물로 실제 사용되고 있었다. 이는 백년 가까이 은행으로 실사용한 것.

장군의 아들종로를 목포에서 찍었다. 또한 부산과 더불어 옛 목포 미 문화원 건물을 목포 근대역사관으로 리모델링하여 개관하기도 했다. 가보면 별다른 유물은 없지만 당시의 서류자료나 사진 등을 주로 전시해 놓았고 일제강점기의 목포 거리를 일부 재현해 놓기도 했다. 단, 독립군을 처형하는 사진의 경우 정말 적나라하게 시체가 드러나는 사진이 일부 있기 때문에 관람에 주의를 필요하다.

쌀수출항에 일본인 거주구역이 많았던지라, 일제강점기에 젊은시절을 보내신 구시가지 지역의 어르신들은 거의가 다 일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하는 특이한 동네이다.

다우지 치즈코라는 일본 여성이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남편과 함께 공생원이라는 고아원을 세우고, 해방후를 거쳐 1968년 타계할 때까지 평생 고아들을 돌보며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통영과 함께 최고의 다도해 경치를 자랑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저녁에 유달산에 올라 석양에 붉게 물든 다도해의 바다는 정말 천하일품.

8.1. 관광

광주처럼 빛의 도시를 목표로 한다고해서 불꽃놀이를 자주 한다든지, 달산가로등 설치 같은 삽질을 하고 있다... 있는 길 버리고 대교를 건설하고 길이란 길은 다 뚫는다. 그래서 시장 별명이 오직하면 '길 시장'이겠는가. 축제 한답시고 불꽃놀이는 새벽까지 터트리는터라 인근 주민에게는 죽을 맛에다, 멀쩡한 산을 가로등으로 발라놓는 건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다.(…) 게다가 바닷물을 끌어와서 해상분수를 만든다는 프로젝트를 시에서 세웠는데 문제는 물을 높이 뿜을수록 소금물이 주변으로 퍼져서 주변 토양에 염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때문에 시민단체들에서도 염해피해 대책을 이유로 해상분수를 반대하고 있고 목포대학교의 실험결과에서도 염해피해가 우려되었으나 시에서는 무슨일인지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다. 때문에 추적60분에서도 격하게 까였다.
그런데 2010년 여름 실제로 해상분수가 완공되어 해양문화축제 때 선보이자, 까던 말들이 사라져 버렸다. 예상 외로 이쁘다외모지상주의의 승리는 것. 해양분수는 "춤추는 바다분수"로 명명되었고, 3~11월 동안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부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공연을 한다. 중간 중간 쉬는 타이밍에 사연과 신청곡도 들려준다. 흠좀무 인근 주민들은 몇 번 보니까 식상해하기도 하는데, 외지에서 오는 사람은 보고 뻑 가는 듯. 실제로 목포에 방문하는 내일러들에게도 필수 방문코스.

주요 관광지로 유달산이 있으며 바다를 면한 박물관 밀집지역인 문화의 거리가 있다. 국립해양유물전시관[12], 목포자연사박물관, 남농[13]기념관 등이 가깝게 붙어 있으며 목포문화예술회관도 그 근처에 있다. 이 근처에 있는 갓바위는 2009년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특별히 볼 것은 없지만 유달산과 가까운 국제여객선 터미널을 통해 흑산도홍도와 같이 관광지로 유명한 섬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인근 횟집들에서 서울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다.

8.2. 대표 축제

  • 유달산 꽃 축제 (매년 4월 초 개최 /유달산 일원)
  • 목포해양문화축제 (매년 7월 말 또는 8월 초 개최 / 삼학도, 평화광장 일원)
  • 목포시민의날 (목포 덕인고 출신 개그맨 배동성이 지상파에서 개그 소재로 활용한 적이 있다.
    그때 불꽃놀이도 해요.)

9. 이야깃거리

도시가 면적이 매우 좁아서 택시를 탈때 굳이 동 단위를 말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목포시민들은 택시 탈 때 목적지 주변 건물 이름으로 말한다.

2010년에 목포 여대생 살인사건이 발생했으나, 근방 CCTV가 고장나 제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점, 발견된 피해자의 유류품들이 바닷물에 젖어(하지만 사건현장은 바닷가와 꽤 거리가 있다.) 국립과학수사대도 감정불가능한 점, 목격자의 제보가 전무한 점 등 때문에 2010년부터 계속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도서관은 목포시립도서관과 목포공공도서관, 목포어린이도서관, 전라남도립도서관[14]이 있다. 다만, 목포시립도서관을 이용할 때 주의할 점이 있는데 사서들이 상당히 억지를 부리거나 엉뚱한 걸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책 읽으러 가다가 뻗는 학생들이 부지기수. 책도 읽고 운동도 하면서 문무겸비를 하고 싶다면 자전거 타고 올라가보길 추천한다.

10. 출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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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해수욕장은 배 타고 외달도 고고씽. 유달해수욕장은 2006년에 기능 상실로 인해 폐쇄되고, 유달유원지로 개명함.
  • [2] 전국적으로는 경기도 구리시, 과천시, 군포시, 광명시, 오산시에 이은 전국에서 6번째로 좁은 시. 게다가 과천과 계룡 등이 특수 목적시인 걸 감안하면(...)
  • [3] 원래는 시온교회였으나 신천지가 이름을 가로채가고, 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시온聖교회로 개명했다. 시온교회는 얄짤없이 신천지
  • [4] 당시 이로면사무소는 현재 목포의료원 자리
  • [5] 대학본부가 무안군에 있다.
  • [6] 처음 명칭은 목포전문대학이었다. 얼마 후 전문이라는 이름 삭제하고 목포과학대학으로 개명. 최근 전문대의 대학교 명칭 허용하는 법이 개정되자마자 바로 목포과학대학로 개명
  • [7] 2014학년도부터 장사 상(商)자를 으뜸 상으로 재해석(?)한 목상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 [8] 명색이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지만 목포에서의 인식은 실업계와 동급 내지 그 이하이다. 인문계로 전환한 이후 명문대 합격생을 단 2명 배출하였는데 서울대학교 합격생은 아직 한명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 [9] 목포MBC보도에 따르면 2007년 3,729명이던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2013년 2,623명 까지 감소하였다.
  • [10] 지금의 목포를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광복당시만해도 전국 10대 도시중 하나로 뽑힐 정도였다. 1966년 당시만 해도 인구 순위는 전국 8위였다!! 10대 도시는 서울 - 부산 - 대구 - 인천 - 광주 - 대전 - 전주 - 목포 - 마산 - 수원 순이었다. 대전까지 끊어서 직할시 승격 테크를 타고 전주, 목포 등 호남권 도시들이 정체 내지 몰락해가는 동안 마산은 통합을 통해 100만급의 창원으로, 수원은 통합 없이 100만급으로 커져 광역시드립을 날리는 것과 비교하면 불균형개발의 큰 피해자 중 하나라 볼 수 있다.
  • [11] 하당과 남악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이 지역은 더더욱 재개발의 꿈도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그나마 유달산 근방은 나름의 정취라도 있지만 7-80년대 주택들과 점포들이 위치한 삼학도 일대는 그저 안습
  • [12] 국립해양박물관 승격을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어영구영 시간만 보내던 도중 부산에 국립해양박물관을 떡하니 지어버렸다.
  • [13] 남농 허건(1907~1987) : 한국화가. 한국화에서 남화를 잇는 중요한 화가로 꼽힌다.
  • [14] 행정상으로는 무안군. 하지만 바로 길 건너가 목포다. 진짜다 전남도립도서관에서 정확히 횡단보도 3개만 건너면 목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