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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last modified: 2015-11-04 17:10:21 Contributors

Contents

1. 시계의 한 종류
2.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2.1. 개요
2.2. 엄청난 인기
2.3. 사회에 미친 영향
2.4. 기타
3. 일본만화
4. 가수
5. 노래이름
6. 비유적 표현


1. 시계의 한 종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시계 Time Wheel(시간의 바퀴). 모래가 모두 내려가는데 1이 걸린다고 한다. 같은 모델이 정동진역도 설치되어 있다. 밀레니엄 모래시계. 이건 운영비 부족으로 2011년부터 작동하지 않다가 다시 보수하여 재작동하고 있다.

가운데가 잘록한 유리 그릇에 마른 모래를 넣고 중력으로 서서히 모래가 떨어지면, 그 부피로 시간을 재는 장치. 시계라기보단 타이머에 가깝다.

8세기 경 프랑스의 성직자 라우트프랑이 고안한 것으로 해시계물시계가 가지는 단점을 개선하고자 물을 모래로 바꿔 만들어졌다. 과연 면장력이 제로에 가까워 안성맞춤이었다고. 휴대성이 좋고 해시계나 물시계보다 정확도가 높다.

국내에선 목욕탕 사우나에 들어가면 흔하게 볼 수 있다. 본연의 타이머 기능을 제대로 쓸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 일반 시계보다 고온 고습의 환경에서도 내구성이 매우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하기에 많이들 놓곤 한다. 일반 시계가 달려있는 사우나도 있지만, 전통적으로 모래시계를 배치해놓는다. 보통 한 두개 정도 놓기 때문에 사우나 이용객들끼리 이거 가지고서 싸울수도 있다고 하니, 매너있는 위키니트들이라면 사우나에서 모래가 떨어지고 있는 모래시계는 함부로 건들지 말고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도록 하자.

동명의 드라마인 2번 항목 덕분에 유명해진 정동진역에서 판매하는 기념품들은 거의 대부분 모래시계 관련된 제품들이다.

서양 서브컬쳐에서는 한번 내려간 모래는 뒤집지 않는한 다시 올라가지 않는다라는 특성때문인지 사람의 수명을 재는 도구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주로 사신이 모래가 다 내려간 이걸 들고 와서 너의 수명이 다 되었다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뒤집으면 어떨까?

헤르미온느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3편)에서 쓰는 Time Turner가 바로 모래시계의 형상으로 나온다.

디스크월드의 죽음도 디스크월드의 모든 생명들의 모래시계로 가득 찬 방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린스윈드의 모래시계는 모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서 꽤나 재미있다는듯.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아케미 호무라가 쓰는 마법도구이기도 하다.

Microsoft Windows에서 XP때까지 썼던, 작업 중일때의 마우스 커서 모양이기도 하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존야의 모래시계는 사용하면 2초간 시간이 멈추듯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무적 상태가 된다.

원피스크로커다일은 루피와 맨 처음 싸웠을 때 3분만 공격을 맞아주겠다며 코트에서 모래시계를 꺼내 루피 앞에 던졌다. 그걸로 3분을 재고 나서 루피를 탈탈 털어버린다... 이후 모래시계를 회수했는지는 불명.

유니코드에는 여러 가지 기술공학용 기호 영역(U+2300 ~ U+23FF)에 포함되어 있다. 포인터는 U+231B이며 문자 명칭은 그냥 그대로 HOURGLASS. 모래가 떨어지고 있는 형태의 포인터는 U+23F3이며 문자 명칭은 HOURGLASS WITH FLOWING 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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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BS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SBS 월화 드라마
작별 모래시계 장희빈

SBS 수목 드라마
랑은 없다 모래시계 시 만날 때까지



2.1. 개요

1995년 1월 10일부터 2월 16일까지 SBS에서 방영한 드라마. 개국 초창기에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있었던 SBS가 사활을 걸고 제작한 작품이다. 일단 MBC의 김종학 PD를 삼고초려끝에 스카웃했고, 여기에 여명의 눈동자에서 김종학 PD와 호흡을 맞췄던 송지나 작가까지 영입했다. 최민수, 박상원 등 경쟁사인 MBC의 간판 스타들을 통으로 빼오고 이정재, 이승연같은 신인들도 발굴하여 출연시켰다.[1]

여명의 눈동자와 함께 대한민국 드라마계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대작. 전 출연진을 탑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전두환 정권이 집권한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 삼청교육대, YH 사건 등 실제의 사건들을 드라마로 보여준 첫 드라마이며, 실제의 사건들과 등장인물들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대본과 거장의 연출력으로,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극적으로 그려냈다.

톱스타들을 오랜 기간 계약할 수 없어서인지 경쟁 방송사를 완전히 압도하기 위해서인지, 실제로 MBC에서 창사 특집으로 까레이스키를 월화극에 편성했는데 이 때문에 월,화,수,목이라는 주 4회 편성을 하게 되었고 그것은 까레이스키가 2.4% 라는 굴욕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게 되면서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주 4회 방송(거기다 금, 토요일은 재방송이었다...)이라는 살인적인 스케줄로 제작되어서 촬영 장소가 정동진이나 광주 등 지방 로케를 제외하면 힐튼호텔 등 몇몇 장소로 한정된게 보인다. 하지만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일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2.2. 엄청난 인기

흥행 드라마를 표현하는 '귀가시계'라는 표현이 이 드라마로 인해 처음 등장하였다. 드라마를 가장 잘 보지 않는다는 20~30대 남성이 모래시계를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두르는 통에 "귀가시계"라고 불린 것. 직장에서도 모래시계가 방영하는 날에는 야근, 회식이 중지되었다고.

평균 시청률은 46%로, SBS가 개국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터라 난시청 지역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더욱 의미있는 기록이다. 최종회 전설의 명대사인 박태수의 "나, 지금 떨고 있냐?"[2] 당시는 64.5%를 기록. 역대 최고 시청률 4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래시계를 방영했을 당시 TV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소문도 있다. 설마 집에 TV가 없어서 모래시계 하나 보려고 TV를 샀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모래시계가 방영되던 시간대에 밤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유흥업소는 장사가 되지 않는다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래서 술집에서도 TV를 사다 놓고 입구에 '모래시계 방송 중'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가게에 TV가 없으면 일찍 가게 문을 닫아야 했는데, 주인도 모래시계를 보러 가야 했기 때문이다.(장사도 안 되고)

신이 난 SBS는 기자를 모래시계 방송 시간에 서울 거리에 내보내 거리 모습을 보여주면서 '모래시계 보려고 다 집에 가서 서울 시내가 한산합니다' 식의 화자찬 뉴스를 내보내기도 했다.기자曰:아놔, 나도 봐야되는데.촬영 마치고 방송국으로 가서 녹화된 테이프 틀어달라 하면 되는 거지[3]

동 시간대의 KBSMBC에 방영했던 드라마도 당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수작들이지만, 모래시계 탓에 시청률은 좋지 않았다. 당시 경쟁작 아들의 여자에서는 여주인공인 채시라에게 나이트클럽 댄스까지 시켰지만, 모래시계의 독주 체제를 깨트리지는 못하였다. 모래시계가 끝나고 시청률이 대폭 오르긴 했지만.... 그러므로 드라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방영시기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방증한 케이스. 장녹수의 경우엔 비교적 성공했으나 25%. 나름 문제작과 명작의 시대였다.. 모래시계는 둘 다, 장녹수는 명작, 아들의 여자는 그냥 문제작

SBS 개국 초기라서 수도권에서만 방영된 것이 그나마 다행. 사실 모래시계가 수도권 한정 방송이었음에도 당시 시청률이 60% 이상 나온 건 당시 시청률 조사기관인 미디어 리서치 코리아사(現AGB 닐슨 미디어리서치)가 서울지역 300가구에서만 시청률을 집계했고 지방에선 시청률 집계가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 지방이라도 위성방송, 케이블방송 같은 거에 가입하면 볼 수 있었다. 이런 위성방송 가입 지원으로 구독 가구를 확보하는 신문사도 있었다. 덕분에 지방에서의 케이블방송 가입률을 높여 주는데 공헌하기도 했다.

입소문으로만 들려오는 SBS의 모래시계에 대한 전설을 들은 지방 비디오 대여점들이 불법녹화 비디오테이프를 들여오기도 했다고 한다.

1997년~1998년 사이에 SBS의 지역민방들이 신설된 후 수도권에 있지 않아 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모래시계를 재방영하기도 했다. 당시에 SBS는 이를 위해 별도의 시사회를 가지기도 했다.

특히 SBS라는 신생 듣보잡 지방방송사를 KBS, MBC에 이은 대한민국 제3방송사로 키워 준 1등 공신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2.3. 사회에 미친 영향

극중 출연자인 이정재 덕에 검도 도장은 때 아닌 전성기를 맞았다. 미팅에 나온 남학생들이 벙어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일명 "모래시계 역"이라고 불리는 정동진역 때문에 강원도에 엄청난 관광 수익을 가져 오기도 했다. 그 당시 아무 것도 없었던 정동진에 카페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모래시계 때문. 정동진 근처 땅값이 몇십배 올랐다는 소문도 있다.

박상원이 연기한 강우석 검사의 모델로 알려졌던 홍준표[4]는 이 드라마의 후광으로 정계에 진출하였고, 박상원도 이 드라마 이후 정계 진출 루머가 끊이지 않는 연예인이 되었다.[5]

청소년에게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된 이 드라마를 본 일부 국딩들이 '우왕ㅋ굳ㅋ'하며 조폭 흉내를 내고 장래희망이 조폭이라고 말해서, 조폭미화물이라는 물의가 일기도 했다.

2.4. 기타

전작이라고 할수 있는 여명의 눈동자에 출연한 배우들 중에 김종학 감독이 가능성을 봤거나 작품에 꼭 필요한 배우들을 읍소해서 모셔왔다. 박근형, 정성모, 박상원이 그런 배우들. 여명의 눈동자 당시 고현정은 경악의 발연기를 선보였었으나, 모래시계 캐스팅시에는 작별, 두려움 없는 사랑, 엄마의 바다 등으로 메인 여주급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모래시계로 전설이 되…려는 순간 충격의 은퇴. 심은하, 이영애의 신비주의는 까놓고 보면 이것이 시초라 보는 기자들이 많다.

최재성의 경우는 태수 역으로 물망에 올랐고 감독도 출연제의를 강력하게 했지만 이미 권투에 푹 빠져 있던 본인이 거절했다.

나름 연기력이 있던 최민수가 이미지와 연기력이 한동안 고정된 것이 바로 이 작품 때문이기도 하다. 최민수에게는 양날의 칼인 셈. 최민수의 터프가이 이미지를 굳혀버린 것이 이 작품으로, 이 이미지는 노인 폭행 의혹으로 구설수에 올라 한동안 활동을 중단한 후의 복귀작인 단편 드라마 <아버지의 집>에서야 비로소 간신히 떨쳐버릴 수 있었다. 정체되어 있던 연기력도 그제서야 다시 빛을 발하게 되었다.]

배경음악으로 쓰인 러시아의 유명 가수 오시프 코프존이 부른 백학 역시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매우 유명해졌다. 그런데, 모래시계 OST 모음집에는 이연이라고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마지막회에서 태수가 사형을 받으러 집행장으로 걸어가던 중,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던 장면의 영상미도 압권이다.

일본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는 듯 하며, 꽤 좋은 평가를 받은 듯 하다.

2002년에 비트원에서 DVD가 발매되었지만, 절판된 뒤 중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3. 일본만화

아시하라 히나코가 베츠코미에서 연재했다. 전 10권.

4. 가수

정연준, 천성일로 구성된 남성 듀엣. '혼자 걷는 거리'라는 곡이 다소 알려졌다. 뒤에 정연준은 드라마 '파일럿'의 주제가를 거쳐 그룹 업타운을 결성하며, 천성일은 그룹 노이즈의 멤버가 된다.

5. 노래이름

다시 활동을 재개한 엠씨더맥스의 5집 "RETURNS"의 노래제목. 이수가 애착이 가는 노래라고도 했으며 팬들 사이에서도 감성적인 노래로 잘 알려져있다. 혹여 one love만 들어본 위키러엠멕팬들은 한번 들어보길 권한다.

6. 비유적 표현

허리가 잘록하고 볼륨감 있는 여성의 몸매를 '모래시계 몸매'(hourglass figure)라고 부른다. 모양이 마치 1의 모래시계와 비슷하다고 하여.

한국에선 잘 안 쓰이는 표현이다. 이미 '개미허리'라는 단어가 비슷한 의미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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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김종학 감독은 3년 뒤 송지나 작가 없이 '백야 3.98'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으나 최민수, 이병헌, 심은하, 이정재란 초호화 캐스팅임에도 불구하고 처절하게 망했다. 시청률이 3.98이라는 농담이 회자됐을 만큼...
  • [2] 실제로 한 대사가 저거다. 근데 후에 각종 패러디가 생기면서 정확한 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 없는 듯. 당시 한 개그프로에서는 "내가 지금 떨고 있나?", "아니 아주 잘하고 있어.." 이런 식으로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원작에서는 박상원은 "너.. 괜찮아.." 라고 짧게 말했을 뿐이다.
  • [3] 이 땐 VOD 서비스는 고사하고 국내에 인터넷도 제대로 보급이 안되던 시절이지만, SBS 기자 신분이면 SBS 방송국 내에서 해당 방영분의 영상자료를 구해서 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 [4] 2014년 현 경상남도지사.
  • [5] 참고로 박상원새누리당 지지자로 2011 서울특별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 무상급식 반대 1인 시위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