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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벌부

last modified: 2016-06-23 11:50:38 Contributors

이 문서는 면죄부로 검색해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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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라틴어 Indulgentia
영어 (Letter of) Indulgence
독일어 Ablass(Brief)
한문 免罰符, 大赦

Contents

1. 개요
2. 의미와 존재의의
3. 종교개혁과 면벌부
4. 현대의 면벌부?


1. 개요


역사적으로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물건(?)이자, 그 시대 가톨릭의 부패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이라고 알려져 있다. 마녀사냥과 더불어 가톨릭 최대의 흑역사.[1]

종전에는 면죄부(免罪符)로 쓰였고 실제로 이쪽이 익숙하나, 자체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면벌부가 더 올바른 번역이라는 주장이 있다. 예를 들면, 2003년 8월 7차 교육과정 개편 때 내놓은 편수자료에는 면벌부로 표현하게 되어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근대 국어의 용법에서 '죄'라는 단어가 '벌'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있기 때문. 아직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은 너 그러다 죄받는다라는 말을 쓰고, "죄를 준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텍스트도 이따금씩 보이는데 바로 이 경우다. 서구의 단어에 대한 번역이 필요했던 구한말, 강점기에 이루어진 번역이라면 이 자체를 덜 올바르다고 하기 어렵다. 다만 현대 국어에서는 차이가 확연하다. 이는 언어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또한 사(赦)와 면(免)의 뜻에 차이가 있음을 감안하면, 면벌부가 단순히 면죄부보다 옳은 번역이라 할 수 없다. 사(赦)는 크게 보아 면(免)을 포함할 때도 있으나 정확한 뜻은 지은 죄를 없었던 것으로 해준다는 뜻이다. 면(免)은 지은 죄의 벌을 면제해 준다는 뜻이다. 따라서 '면죄'라고 하면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에 따른 벌을 없이 해준다는 뜻이다. 당장 보아도 죄를 없이하여 용서해준다고 하는 표현으로 "네 죄를 사하노라"라고 하지 "네 죄를 면하노라"라고 하지 않는다.

또 "부"자를 붙이는 것도 무조건 올바르다 할 수는 없는데, 이게 '문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부(符)가 문서만을 뜻한다고 할 수 없고, 표식이나 명령, 법이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다. 신자들이 교회가 정한 조건을 채운 뒤 '난 대사를 받았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라, 애당초 문서로 줄 이유가 없다. 교회 입장에서도 번거롭기도 하고.

중세 신학에서 이 증서는 죄를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죄에 따르는 벌을 면해주는 효능을 갖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면벌부가 맞다고 하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면죄부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이기는 하지만, 언중이 거의 면죄부라는 표현만 쓴다는 이유로 이를 지지하기도 한다. 당장 2003년 부터 교육과정으로 용어를 개정했지만, 2014년 현재도 면죄부라는 표현을 압도적으로 많이 쓴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 천주교에서는 대사(大赦) 혹은 대사령으로 번역한다. 그 형태는 초대 교회 당시 속죄의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것에서 찾아 볼 수 있으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대사는 십자군 전쟁흑사병 당시의 교황청의 대규모 대사가 발행의 시초로 추정된다.

물론 면죄부라는 표현이 버림 된 것은 아니다. 국립국어원은 면벌부와 면죄부 모두 표제어로 인정하고 있다. 이 문서에서는 교육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면벌부라는 표제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2. 의미와 존재의의

가톨릭은 구원을 은총으로 받는다고 가르치며, 신앙과 행동이 일치된 삶으로써 은총을 보존할 것을 요구한다. 즉 신앙을 가진 자라도 죄를 지으면 은총을 잃게 되며, 참으로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신앙에 걸맞에 올바른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동시에 지상에서 사는 동안 짓는 죄는 꾸준히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 화해[2]해야 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큰 죄일 경우에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가톨릭에서는 지상에서는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교회가 그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이러한 특별한 권한은 사제만이 행사할 수 있다고 유보해두는데, 이 권한 행사가 바로 고해성사이며, 이를 통해 명시적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

이 말은 오직 고해성사를 통해서만 죄를 용서받는다는 개념은 아니다. 하느님은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으므로 고해성사라는 '도구'를 통하지 않고서도 용서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다만 혼자 속죄를 해도 하느님이 용서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니, 고해성사를 통하면 확실하게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 때 올바로 죄를 고백하지 않음을 하느님의 자비를 우롱한 대죄로 여긴다. 특히 사제에게 이야기하기 부끄러운 죄를 지은 사람이 고해성사 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경우는 모고해라 하여 역시 대죄에 속한다. 고해소에서 사제는 그저 인간의 오감을 위한 대리자일 뿐이며 그곳에 있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로 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있는데, 이 마지막 순간조차도 모독하는 것은 살인 등과도 같은 대죄라고 여겨 모고해는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개신교에서는 사제에게 면죄의 권한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반면,[3]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를 포함한 7성사를 집전할 권리가 사제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한 은 그대로 남는데, 이 벌을 죽은 후 연옥에서 몸으로 때워야 한다(…). 편의상 벌이라고 표현하긴 하지만 단순히 고통을 가함으로써 끝나는 장소는 아니며, 자기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면 좀 더 하느님을 뵙기에 합당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죄로 인한 오점을 씻어낸다는 점에서 연옥을 '정화하는 장소(purgatorium)'라고 한다. 물론 성인과 같은 삶으로 현세에서 지극히 고통을 받으면서도 정의와 선을 위해 노력했다면 연옥에 가지 않거나, 연옥에 아주 조금만 있고 바로 하느님을 뵐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신자들 절대다수는 결코 성인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고해성사를 보면 사제보속(satisfactio)이라는 것을 준다. 이것은 "앞으로는 죄 안 짓고 좀 조심하시며 사셔야죠? 자, 그걸 몸과 마음에 새기고자 이렇게 하도록 합시다" 하는 교육적 의미, 그리고 사람의 죄로 인해 생긴 상처나 피해를 '최소한 보속을 하는 정도까지는' 회복시킨다는 의미가 있다.[4]

요즘이야 "로마서 몇 장 읽으세요" 혹은 "묵주기도 몇 단 바치세요" 하고 끝나는 게 보속이지만, 과거에는 "닥치고 바르셀로나까지 논스탑으로 주님의 기도 외우면서 뛰어갔다 오세요" 하는 식의 무지막지한 보속이 대부분이었다. 서유럽에서 전해지는 옛 이야기에 따르면, 양말에 을 넣고 순례 갔다 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마저 있을 정도니, 이야기가 과장되었다 해도 대충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모래알이든 바위든 가라앉는 건 마찬가지다[5]." 하는 식의 논리로 모든 죄는 그에 무거운 대가를 치러야 다시는 안 짓는다는 논리였다. 당연히 이러한 보속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였다. 영주나 기사 계급이 아닌 일반 농노성지까지 갈 재력이 어딨으며, 어디 감히 영주에게 "성지순례해야 하니까 영지를 잠깐 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요청할 수 있었을까?

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별 거 아닌 죄에 대해서도 혹독한 보속을 내리는 풍조는 점점 줄어들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사라진다. 실제로 19세기 말에 태어난 카푸친 프란치스코회 수사 신부 성 '레오폴도 만딕(Saint Leopold Bogdan Mandić, 축일 7월 30일)'[6]는, "어릴 때 별 거 아닌 죄를 동네 성당의 신부에게 고해했더니, 보속으로 성당에서 몇 시간 동안이고 서 있게 했다"고 회고했다. 성 레오폴도 만딕은 당시 어린 마음에도 "이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다 하며, 훗날 카푸친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수도사제로서 수도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때 늘 온화하고 따뜻하게 대했다고 한다. 원래 카푸친 프란치스코회는 분위기가 엄격한 곳이기 때문에, 성 레오폴도 만딕의 행동이 잘못이라고 비판한 같은 수도회 회원들도 제법 있었다고 한다.

이 보속은 고해성사의 유효성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7] 고해성사의 본 목적 중 하나인 '죄를 짓지 않게끔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교정적 행동'인 만큼, 이를 하지 않는다면 고해성사를 온전히 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기가 지은 죄를 끊고자 한다는 의지가 결여되었다는 뜻도 될 수 있다. 보속도 제대로 안 하는 사람이 현세에서 지극한 용기와 덕행으로 성인처럼 살 리도 만무하고.

그런데 이런 것이 누적되면 신자들은 점차 고해성사도 보지 않게 되고 신앙에도 멀어진다. 그래서 "지금 대사를 받으면 보속이 면제 되게 해주겠음! 당연히 잠벌도 면제 된단다!" 하면서 신자들을 독려하게 되었다.[8]

이에 교회는 성경에 의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천국문의 열쇠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의 권한으로 천국의 곳간을 열어 성인들의 공로를 나누어 베풂으로써 일정한 전체 보속을 바치면 연옥의 잠벌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선포하기에 이른다. 이는 연옥 벌을 모두 면제받을 수 있는 전대사와 일부를 면제받을 수 있는 한대사로 나누어진다.

3. 종교개혁과 면벌부

대사는 기도와 성지순례, 십자군에 참여(!), 봉헌 등의 형태로 다양하게 여러 차례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이 이후 교황의 대리인 주교의 권한으로도 선포되기 시작하고, 당시 절대 권력이었던 교회가 부패하면서 점차 성직매매가 성행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대사 제도는 지역 교회의 사적인 유용금을 마련하는 목적으로 악용되기 시작하였다. 즉 돈으로 대사를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하고 다녔던 것이다(…).

이는 15~16세기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당시 성 베드로 대성당 축조 등으로 인해 재정이 부족했던 교황청의 주력상품(…)으로서 주로 신성로마제국, 지금의 독일 지방에 강매(…)되었다. 독일에서 가장 먼저 팔린 이유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사실상 수백 개의 영방 국가로 갈라져 이들 군주의 세력이 미약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당시 독일의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9]추기경 자리를 사면서 쓴 돈의 원금을 회수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초기에는 기존 면벌부에서 헌금개념을 강화하는 식으로 시작되었던 것이, 수십년이 지나고 이게 일종의 재원화되면서 지지부진한 대성당 이곳저곳을 축조할 급전이 필요한 곳에 모조리 이걸 늘려서 대응하는 정책이 계속되다 보니, 가면 갈수록 마케팅 강도(?)가 강화 일변도를 걸었다. 이 시기 면벌부의 광고문구는 요즘식으로 하자면 "면벌부를 산 은화 한 닢이 통 안에 떨어지면서 쨍그랑 소리가 남과 동시에, 연옥에 있던 여러분 가족들의 영혼은 닥치고 천국행 급행열차!!" 정도였다(…). 결국 이로 인해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이 촉발되었다.

면벌부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때는 대사령과 관련된 증명서를 발부하기도 했다. 마르틴 루터 당시 독일에서 발매된 증명증서는 이러한 것이다. 대사를 받으려면 채워야 하는 몇 가지 조건은 매 대사 때마다 교황이 정하는데, 마르틴 루터 당시의 알브레히트에 의해 독일 지방에 발표된 조건은 다음과 같다. 이 세가지 조건을 모두 완수해야 대사가 주어졌다.

  1. 지은 죄를 회개하고 다시 죄짓지 않기로 마음먹은 뒤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2. 적어도 지정된 일곱 개 성당을 순례하여야 하며, 순례할 때마다 우리 죄를 대신 속죄하여 주신 주 예수의 오상(양손,양발,옆구리)을 기념하고 공경하는 뜻으로 주의 기도와 성모송을 다섯 번씩 열심으로 바치거나 또는 "하느님, 자비하시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시편 50)을 바쳐야 한다.
  3. 성 베드로 성당 건축비로 응분의 헌금을 바치는 것이 좋다. 그러나 하늘 나라는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다 같이 갈 수 있도록 열려 있으므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헌금 대신 기도와 대재로 대사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3번 항목을 먼저 이행한 자는, 어느 사제에게나 고해성사를 볼 수 있다는 증명문구가 라틴어로 씐 증서를 나누어 주었다. 이 증서가 속칭 면벌부이다. 이는 옛 사람들은 흔히 자기 사는 동네를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 때문인데, 신부들과 계속 얼굴을 맞대다 보면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고, 아무리 신부가 비밀을 지킨다고 해도 고해성사를 하기 싫어진다. 게다가 다른 신부가 자기 동네에 온다고 해도 주교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합법적으로 고해성사를 줄 수 없다. 또한 아주 심각한 대죄(낙태를 공공연히 행한다거나)일 경우 일반 사제에게 고해성사할 권한이 없었다. 이런 죄들은 고등 성직자에게만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이 증서가 있으면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아무 사제에게나 가서 고해성사를 볼 수 있는 것이다.[10]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3번이다. 분명히 돈이 없는 사람은 헌금 대신 기도와 대재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명시했고, 교황의 교서에도 "헌납자는 각자의 형편에 따라 헌납해야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고해성사를 통해서 진정으로 죄를 참회하고 뉘우치지 않으면 전대사는 받을 수 없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가톨릭에 딱히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은 FM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당연히 자신이 헌금을 냈다고 목에 힘을 주는 신자와, 대사의 조건에 개인 의견을 붙여서 선동하는 판매원이 등장한 것이다. 현실은 시궁창 또한 헌금은 종교적 관점에서는 그렇다쳐도[11], 종교적 관점을 배제한다면 자칫 유전무벌 무전유벌로 보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이를 비판하기 위해 쓴 95개조 반박문에서도 '교회에게 그럴 권한이 어디있느냐'가 아니라 '그러한 절차가 과연 옳은가, 죄를 용서할 권한은 누구에게서 나오는 것인가'를 지적하고 있다. 애시당초 95개조는 가톨릭 교리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부패한 가톨릭 성직자들을 비판하고 모든 권한은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는 논조에 가까웠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이상한 대사 판매원들은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대사에 대한 폐단과, 이 폐단이 빌미가 되어 이단자들로부터 대사의 명칭까지가 모독되는 불행한 사태를 바로잡기 위하여, 이 결의문을 전 교회에 공포한다. 대사를 얻기 위한 모든 부정 행위는 절대로 폐기되어야한다"라고 명시함으로서 근절되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4. 현대의 면벌부?

당연한 소리지만 루터에게 디스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요즘은 '헌금내고 대사받기'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본래의 대사 제도와 고해성사는 엄연히 존재하며 대부분은 '기도', '성지순례' 등의 형태이다.

21세기 들어 교황청 차원에서 선포되었던 전대사로는 2008년 사도 바오로 탄생 2000주년 전대사와 2009년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 선종 150주년을 맞이해 선포한 사제의 해 전대사, 2012년 신앙의 해 전대사 등이 있다. 매년 부활 · 성탄 때 교황의 담화를 발표하거나 교황 선출 후 첫인사를 하는 행사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로마 시와 전 세계에)' 때 교황의 장엄 강복을 직접, 혹은 라디오나 TV 생중계로 받아도 전대사를 얻는다. 2013년에는 새 교황의 첫 강복#, 부활, 성탄 대축일 총 3번이 있었다. 전대사도 위키질처럼 쉽고 빠르게 이 전대사들은 대략 참회하는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하며 교황의 지향에 따라 기도하면(이 세 조건을 전대사 통상 조건이라 함) 받을 수 있는 것들로 헌금봉헌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2014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시복식을 맞아 한국의 16개 교구(군종교구 포함)에서 교구별로 전대사를 주고 있다. 성지순례를 포함하여 교구별로 조건이 조금씩 다르니 미리 알아볼 것. 잠깐 군종교구가 무슨 성지를 갖고 있어?[12]

참고로, 위에서 말한 전대사 통상조건을 이행하며, 미사 중 거양 성체 · 성혈 중 성체께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Dominus meus et Deus meus)'[13]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해도 얻을 수 있다. 옛 신자들 중 성체신심이 과해서 성체를 쳐다볼 수도 없다고 생각한 이들이 많아서 생긴 규정이라고 한다.

TV프로 중에서도 이미지가 안 좋거나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연예인토크쇼 TV프로에 출연하여 자신이 받는 오해나 사연이라든가 상황을 구구절절 말 하고 난 뒤 까임이 평소보다 확실히 줄고, 몇몇 연예인은 이것을 발판으로 다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보고 이 프로는 잘못이 있는 연예인에게 면죄부를 준다고 일부 네티즌들이 TV프로 이름을 면죄부도사, 면죄부캠프, 병심장이라고 비꼬기도 한다.

돈많고 빽좋은 누군가의 악행 및 비행들을 미화하려고 하거나, 혹은 가벼운 솜방망이식 처벌만 내리려고 하면 면죄부를 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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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엄밀히 말하면 이것 자체가 흑역사는 아니고, 이것과 헌금을 연관시켰던 과거의 뻘짓이 흑역사이다. 왜 그런지는 항목을 읽어보자.
  • [2] 죄를 지음은 하느님의 은총을 버린 행위이므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진다는 것이 가톨릭의 관점이다.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서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받음은, 하느님과 화해하고 다시 관계를 가깝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고해성사를 화해성사라고도 부르는데, 하느님과 화해한다는 의미이다.
  • [3] 정확히는 루터교는 면죄의 권한, 즉 고해성사는 인정한다. 하지만 다른 개신교는 다 부정.
  • [4] 이 부분에서 나오는 가장 큰 오해는 보속을 하면 연옥에서 받을 벌이 사라진다는 것. 이런 생각대로라면 평범하게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모든 신자들은 고백성사 후 보속을 할 때마다 전대사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대사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 보속을 하면 물론 연옥에서 받을 벌이 '그만큼은' 면해진다. 그러나, 자기가 한 보속이 '연옥에서 받을 벌을 완전히 면하게' 할 정도인 사람은 아마 성인(聖人)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신자들 대부분은 아마도 그 정도가 실로 미미할 것이다.
  • [5] 이 대사는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된 알레고리로 나오기도 한다.
  • [6] 이 성인의 이름은 한국어로 여러 가지로 음역된다. 보통은 '레오폴도 만딕', 혹은 '레오폴드 만딕'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 카푸친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이를 '레오폴도 만디츠'라고 음역한다. 하지만 이 성인의 모국어인 세르보-크로아티아어 표기법에 따라 음역하면 만디치라고 해야 옳다. 세르보-크로아트어에서 'ć'는 치경구개음으로 발음되기 때문.
  • [7] 사제가 사죄경을 내리면 고해성사는 유효하다.
  • [8] 실제로 효과가 있다. 2008년에도 베네딕토 16세가 내린 전대사 기간 중에 미국유럽 등지에서 여러 냉담자들이 용기를 얻고 다시 성당에 돌아온 사례가 보고되었다.
  • [9] 이 사람은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에서 파문되어 루터교회로 개종했다. 근데 애초에 루터교회가 이 사람 디스하느라 생긴거다
  • [10] 이 증서의 라틴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Potestatem habet eligendi sibi confessorem presbyterum idoneum religiosum vel saecularem, qui audita diligenter eius confessione, absolvere eum possit auctoritate predicta (Papa) ab omnibus peccatis ac semel in vita et in mortis articulo plenariam omnium peccatorum suorum indulgentiam et remissionem impendere. 해석은 이러하다. 즉 이(증서를 가진 자)는 뜻에 맞는 죄의 고백을 들어줄 사제를 선택할 특전이 있으니, 이 사제는 수도 사제이거나 세속 사제이거나 그 고백을 유심히 들은 뒤, 위에서 말한 (교황의) 권능으로 모든 죄를 사할 수 있다. 또 일생에 한 번과 임종의 위험이 있을 때 그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하여 주고, 또 전대사를 베풀 수 있다. 출처는 H.C. Lea의 <고해와 대사>
  • [11] 모세도 성소를 짓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헌금을 요구했다(...)
  • [12] 용산 국군중앙주교좌성당(왜고개성지)가 있다. 이곳도 전대사 지정 순례지에 포함. 국방부 근무지원단만 전대사 가능
  • [13] 예수부활을 의심하던 토마스 사도가, 예수의 손과 발과 옆구리의 상처를 직접 보고 만져본 후 했던 신앙고백. 자세한 이야기는 토마스 항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