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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 깁슨

last modified: 2015-01-19 14:40:33 Contributors

Contents

1. 소개
1.1. 출연작 (연도)


1. 소개


Mel Gibson

1956년 1월 3일 뉴욕시(뉴욕 시티) 출생인데 1968년에 집안 문제로 가족 모두 호주로 이주했다. 지금도 호주를 자기 고향으로 생각하는듯 하고 호주에 목장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키는 181cm. 1979년매드 맥스》로 호주영화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1980년대 호주 출신들의 할리우드 입성과 동시에 그도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됐다.[1]

이후 리쎌 웨폰 시리즈에서 흑인 배우인 대니 글로버와 형사 콤비를 이뤄 간지작열의 액션연기를 보여줘 실베스터 스탤론,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80년대를 주름잡는 액션스타로 한시대를 풍미했다.

다만 이후 이런 액션 배우에만 머물지 않고 감독이 되어 자기가 직접 영화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여 자신이 감독 주연을 겸한 브레이브 하트를 대히트시키고 아카데미상을 휩쓸어 감독으로서도 최고의 기량을 가졌음을 증명하였다.

이후 예수의 고난과 박해를 그린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제작, 감독해 역시 큰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 영화에서 유대인들을 잔인한 냉혈한으로 그렸다는 미국 유대인 단체들의 비난을 받았고[2] 그의 지나친 정치적 보수성, 독실한 가톨릭 교도로서[3] 유대인에다가 동성애자들을 배척하는 인종차별주의적인 마인드가 언론에 알려져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게 되었다.[4]

이후 아포칼립토란 영화를 제작하는데, 고증은 거의 완벽에 가까우나 남미 원주민들을 너무 심하게 미개인으로 묘사했다고 하여 비판을 많이 먹었다. 훗날 최종병기 활이 아포칼립토와 비슷하다고 국내에서 말이 많아졌다.최종병기 활을 미국에 수출했다는데 그럼?

이후로 계속 사생활에서도 치명적인 병크가 터져나오다 보니, 할리우드에서는 거의 밀려난 상태가 되었다.[5]

할리우드와의 소원해진 관계 때문에 영화일 역시 꽤 뜸한 편인데, 최근 술에 취해 유대인들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고, 자신의 여자친구를 땅에 파묻어 생매장시키겠단 협박을 했다고도 하는등 현재 상당히 이미지가 망가진 상태. 최신작인 비버(2011)도 흥행에서 참패했다. 조디 포스터[6] 연출로 21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었지만 미국 극장 수익이 총 97만 달러라고 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깁슨을 고용한 문제도 있지만, 연출도 포스터의 이전 작과 달리 상당히 미흡하다는 것이 정설. 이후 세티 킬즈와 악역으로 나온 익스펜더블 3까지 흥행에 실패하면서 연기 커리어가 망하기 생겼다.[7]

깁슨의 인종차별 행위는 꽤 다층적인 영향을 남겼다. 인종차별이 기본인 극우 스킨헤드들이 '중동에서 보기싫은 아랍놈들 잘죽이는 이스라엘 유대인을 까다니!'라면서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한듯한 비난을 하거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탄압하는 이스라엘의 나치 같은 모습에 염증을 느낀 일부 진보성향(자기 자신을 진보라 여기는 사람들)의 사람들이 깁슨의 인종차별스러운 발언에 일부 찬동하는 등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 하지만 까놓고 말해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좀 너무한다. 이 사람은 입으로 떠들 뿐이지만, 그 놈들은 진짜로 사람을 죽이고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에서도 출현했는데 완전 미치광이에 게이캐릭터로 나온다.
유대인인 카일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죄책감을 느껴 예수에게 사과를 하고싶다고 유대인들 앞에서 발표하질 않나 유대인을 엄청 싫어하는 카트맨이 우상으로 섬기고 방에는 멜 깁슨 포스터가 붙어있을정도.

다른 사람들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보고 감동하지만 스탠케니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다며 환불을 받으려고 멜 깁슨을 찾아가지만 멜 깁슨이 돈을 순순히 주질 않자 둘이서 지갑에서 강제로 두명의 영화표값 18달러를 빼가는데 멜 깁슨이 빼간 돈 돌려달라면서 총을 쏴대질않나 트럭으로 추격하질 않나...

카일은 멜 깁슨이 미친놈이란걸 알고 자기가 저 미친 사람의 영화를 보고 죄책감에 빠졌다는걸 어이없어하고 예수한테 있던 죄책감이 사라진다.

자고로 여기선 천주교인마저 패션이 유대인 깔려는 영화라고 비난한다.




1.1. 출연작 (연도)

썸머 시티 (1977)
로즈 가든 (1977)
매드 맥스 (1979)
팀 (1979)
필사의 사투 (1980)
드 맥스2 (1981)
갈리폴리 (1981)
Z 특공대 (1982)
가장 위험한 해 (1983)
바운티호의 반란 (1984)
소펠 부인 (1984)
살아가는 나날들 (1984)
매드 맥스3 (1985)
리쎌 웨폰 (1987)
불타는 태양 (1988)
리쎌 웨폰 2 (1989)
햄릿 (1990)
전선 위의 참새 (1990)
에어 아메리카 (1990)
리쎌 웨폰 3 (1992)
사랑 이야기 (1992)
어스 앤 더 아메리칸 드림 (1992)
더 페이스 (1993)
매버릭 (1994)
브레이브 하트 (1995)
포카혼타스 (1995)
꼬마 유령 캐스퍼 (1995)
랜섬 (1996)
컨스피러시 (1997)
리쎌 웨폰 4 (1998)
페이백 (1999)
패트리어트 - 늪 속의 여우 (2000)
치킨 런 (2000)
밀리언 달러 호텔 (2000)
왓 위민 원트 (2000)
인빈서블 (2001)
위 워 솔저스 (2002)
싸인 (2002)
노래하는 탐정 (2003)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2004)
아포칼립토 (2006)
지 오브 다크니스 (2010)
더 비버 (2011)
마세티 킬즈 (2013)
익스펜더블 3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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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식으로 출세한 배우들이 깁슨 말고도 , 니콜 키드먼 등이 있고 감독으로는 갈리폴리의 터 위어 감독도 있다. 상당히 많은 인력들이 할리우드 시스템에 회의를 느껴 호주로 돌아간 반면 위의 사람들은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안정효는 샘 닐은 실패했다고 하지만
  • [2] 다만 악명높은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부분은 빼버렸다. 이것까지 했으면 사망 확정.
  • [3] 단, 멜깁슨의 가톨릭은 타 종교와의 화합을 강조한 1964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자체를 부정하는 극보수적인 교단으로서 현재 정통 가톨릭과도 등을 돌린 상태이다.
  • [4] 사실 이건 아버지의 영향이 무척큰데 성 비오 10세회 관련 인사이면서 작가인 아버지 휴튼 깁슨은 미국의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이다. 멜 깁슨 자신도 아버지의 이론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이쯤 되면 헐리웃에서 성공한 것도 꽤 이상할 정도
  • [5]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때 욕을 많이 먹기는 했으나 저놈의 사생활이 결정타였다. 그 예로, 이 영화에서 예수 역을 맡은 배우인 커비즐 역시 할리우드에서 밀려난 감이 있었으나 감독과 반대로(...) 상당히 사생활 깨끗하기로 유명한 배우였고, 이후로도 드라마와 영화에서 준수한 활동을 보였다. 특히 2011년에 미드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의 주역을 맡으면서 다시 상승세로 떠오른 상황.
  • [6] 여담으로 아버지가 알려지지 않은 조디 포스터의 아들들의 친아버지라는 의혹이 있다.
  • [7]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해당 영화들에서 보여준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조연에 악역이었지만 마세티 킬즈에서의 존재감은 대단했다는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