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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트웨인

last modified: 2016-06-07 20:26:44 Contributors


"모든 미국의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의 "클베리 핀"으로부터 나왔다. 그 전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었다."
헤밍웨이

(1835년 11월 30일 출생 – 1910년 3월 21일 사망)

Mark Twain.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필명으로 본명은 새뮤얼 랭혼 클레먼스(Samuel Langhorne Clemens)이다. 이 마크 트웨인이란 필명은 젊은 시절 증기선에서 일하면서 증기선이 항구로 도착할때 물속 깊이를 재던 말에선 따왔다고 한다.[1][2] 사실 이 필명 말고도 토머스 제퍼슨 스노디글래스라는 필명을 쓰기도 했지만 이 이름으로 낸 작품은 그다지 평이 좋지 않아서 쓰지 않게 되었다.[3] 위대하신 노턴 1세로부터 미국 황실 작가로 임명되기도 했다.

톰 소여의 모험같은 작품으로 한국에서 아동소설 작가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미국 풍자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분이다. 당장 왕자와 거지같은 작품도 굉장히 노골적인 풍자를 담아냈으며 허클베리 핀의 모험 또한 흑인인 짐이 상당한 비중으로 나온다.[4] 다만 톰 소여의 모험에서 아메리카 원주민인 조가 악역으로 나온 걸 두고 비난하는 분석도 있다.

1835년 미국 미주리 주 플로리다에서 태어났다. 4살때 가족이 미시시피 강변의 소도시 한니발로 이사를 갔는데, 후에 여기서 톰 소여의 모험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하지만 11살때 아버지를 폐렴으로 잃은 그는 인쇄소에서 수습공으로 일하게 되었다가 이게 인연이 되어 브라질을 탐험하고 미시시피강을 누비는 증기선 키잡이 일도 하였다.

1840년대 미국 서부에서 금이 발견되어 미국에서 골드 러시가 일어나자, 약간의 토지를 매입해 금을 찾았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덕분에 빚이 늘어나 신문사 일을 했는데 여기에 첫 단편들을 실은 것이 호평을 받아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핼리 혜성이 지나갈 때 태어나서 자신은 혜성이 다시 지나갈 때 죽을 거라고 말했는데 죽을 때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또한 자유주의자로 인종차별제국주의를 혐오했다. 조국인 미국이 필리핀으로 쳐들어갈 때 제국주의 국가 스페인에게서 필리핀을 독립시키려는 전쟁으로 여겨 처음에는 환영했지만 갈수록 미군이 필리핀인들을 마구 학살하는 것에 분노하여 <전쟁을 위한 기도>라는 책을 써서 미국을 호되게 학살자라고 분노어린 비난을 쏟아냈다. 덕분에 이 책은 미국에서 24년이나 출판이 금지되었다가 1923년에서야 나오게 된다. 당연히 필리핀 침공을 명령하고 하나님이 나와서 명령했다고 종교적 개드립으로 정당화하던 윌리엄 매킨리 당시 미국 대통령을 가리켜 "남북전쟁 이래 미국에 내린 최악의 재앙. 그 는 정치계의 톰 소여이며 무게 잡을 기회가 50%면 캐나다까지 가고, 그 기회가 100%면 지옥까지도 갈 작자이다."라는 증오어린 평가를 내렸다.

그밖에 아프리카와 아시아, 북중미에서 백인 제국주의자들의 학살과 지배를 지독하게 싫어해 이를 풍자하는 글도 많이 썼다. 덕분에 열등한 필리핀을 백인이 지배해야 한다며 필리핀 침략전쟁 및 학살을 옹호하고 또한 백인 우월주의 사상인 백인의 의무를 내세운 키플링을 극도로 혐오했다. 하지만 키플링의 문학적 재능은 칭찬하고 존경하는 의미를 담은 글도 쓴 것을 보면 단순 혐오보단 애증에 가까운 듯하다. 그밖에 레오폴드 2세를 악마라고 비난하며 그가 저지른 학살을 엄청 비난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또한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 졸라를 전적으로 지지하며 "나는 졸라를 향한 깊은 존경과 끝없는 찬사를 보낸다. 군인과 성직자 같은 겁쟁이 위선자 아첨꾼들은 한 해에도 백만 명씩 태어난다. 그러나 잔 다르크나 졸라 같은 인물이 태어나는 데는 5세기가 걸린다."라며 에밀 졸라를 옹호했으며 그가 알 수 없는 사고로 죽자 그를 추모하는 글도 남기면서 살해당한 게 아닐까 여기기도 했다.

그가 쓴 글에 나온 분노를 보면 당시 기독교 사상에 대하여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우리들의 기독교에 대하여 크게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악랄하고 피를 흘리며 무자비하고 약탈하는 것. 이것이 참된 믿음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비기독교국에서 우리의 신앙이라면서 자행되는 일이다. 지옥을 들이대면서 벌이는 범죄를 성경이란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일이 오늘날 우리들의 기독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만일 예수가 지금 이 세상에 있다면 그는 절대 기독교 신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종교는 끔찍한 종교일 뿐이다.

마크 트웨인의 늘그막 글... 이 글은 100년이나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0년에서야 그의 사망 100주기 기념에서 비로소 공개됐다.

이렇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진화론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인 지지를 보였으며 YMCA 간사이던 앤서니 컴스탁(Anthony Comstock)[5]를 진화가 안 된 원숭이라고 호되게 깠다.

그가 살아있을 당시 유럽 각지에서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가 우리 교회에 있다는 헛소리를 하며 교회 홍보를 했었는데 그게 유럽 각지에서 너도나도 서로들 그런 홍보를 했기에 그는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그 십자가들을 죄다 모아서 배를 만들어서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들로 만든 배라는 이름을 지어서 전세계를 떠돌며 선교해봐라. 전세계에서 기독교에 대한 비웃음을 실컷 받을 거다.

앞서 에밀 졸라를 지지하는 문단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특이하게도 잔 다르크에 관심이 많아서, 그녀를 다룬 소설을 가명으로 쓰기도 했다. 왜 잔 다르크라는 인물에 그토록 관심이 많았는지는 의문. 어린 시절 우연히 바람에 날아가는 종이를 잡았는데 잔 다르크 위인전 중 일부였다는 전설이 있다. 아쉽게도 그녀의 시성(諡聖)[6]은 그의 사후 10년 뒤에 이루어졌다.

또한 과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며 니콜라 테슬라와 친한 친구 관계였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굉장히 냉소적이라서 도금 시대[7]라는 책에선 미국 정치인을 더럽다고 엄청나게 풍자했으며 정치적 비리와 선거에 대한 여러 가지를 콕 짚으며 독설을 퍼부었다. 때문에 실제로 미국 정치인들에게 비난도 많이 받았으며 교회에서도 그를 사탄이라며 비난을 많이 했다고 한다. 참고로 미국 교회들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가출을 유도하는 문제작이라고 아이들에게 읽지말라는 권고를 하기도 했다.

더불어 유명한 일화로 신문에 쓴 컬럼으로 모든 미국 정치가들은 개자식이다!라고 대놓고 썼다가 항의와 고소를 겪자 사과문으로 어떤 미국 정치가들은 개자식이 아니었다.(모든의 부정은 어떤, 개자식이다의 부정은 개자식이 아니다.) 라는 말로 고쳤던 적도 있다(...) 이는 논리야 놀자같은 주로 어린이용 논리학 서적에서 자주 써먹는 예문 중 하나이다.물론 아이들 도서니 멍텅구리라는 단어로 순화되었다. 문장의 뜻을 뜯어보면 알 수 있지만, 두 문장 모두 미국 정치가들 중에 개자식(...)이 포함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8]

이런 독설가적인 면과 대조적으로 가정적으로는 매우 자상하고 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아내를 매우 사랑하여 아내가 아프면 그는 이런 글을 나무에 걸어둘 정도였다.

새들아, 너희들이 우는 것은 본능이니 울지 말라곤 하지 않겠지만 되도록이면 좀 멀리서 울면 안되겠니? 지금 우리 아내가 잠을 자고 있단다.

다만 선량한 가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사는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가족들과의 사이는 평생 행복했으나 4명의 자녀 중 3명을 병으로 일찍 잃었기 때문. 첫째인 아들은 생후 19개월 만에 디프테리아로 사망했고[9] 3명의 딸 중 2명은 각각 뇌수막염과 간질 발작에 의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게다가 아내도 오랫동안 병에 시달리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헬렌 켈러와 만나서 그녀를 위대한 여성이 될 것이라고 칭송하기도 했다. 참고로 그녀와 만났을 당시 헬렌 켈러는 아직 17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앞을 못 보는 사람 같은 장애인을 가엾게 여긴단다.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은 몸이 멀쩡할지 모르지만 피부색이나 종교만으로 다른 이를 죽이고 차별한단다. 그런 건 과연 멀쩡한 걸까?

그래서 헬렌 켈러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지 않고 단지 몇 번 만났을 뿐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 사람 중 하나로 평가된다.

다소 뜬금없지만 율리시스 그랜트자서전을 완성하여 출판했다[10].

마크 트웨인의 큰 누나의 외손녀는 키다리 아저씨의 작가 진 웹스터이다. 진 웹스터의 아버지이자 마크 트웨인의 외조카 사위는 마크 트웨인 작품 출판사 사장이기도 했다. [11]

작품 목록


도금시대(1873)
톰 소여의 모험(1876)
왕자와 거지(1881)
허클베리 핀의 모험(1884)
아더왕 궁정의 코네티컷 양키(1889)
이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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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물 깊이를 패덤(fathom; 1패덤 = 2야드 = 182.88 cm)이라는 단위로 측정하는데 정확히 몇 패덤이라고 나오면 'By the mark~~'으로 알린다. 이때 2 패덤이 나올 경우 two 라고 하지 않고 twain이라고 한다. 즉 정확히 2패덤이 나온다면 "By the mark twain."이라고 말한다.
  • [2] 2패덤(약 3.66 m)은 강배가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평균 깊이다.
  • [3]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아이제이어 셀러라는 이름의 미시시피 강 수로 안내인이었는데, 그는 수로 안내인 생활에서 겪은 것을 토대로 잡다한 이야기를 지어내어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그런데 나중에 두 번째 마크 트웨인이 되는 새뮤얼 클레멘스가 그 이야기들을 신문에서 익살스럽게 흉내 냈다. 그 뒤로 첫 번째 마크 트웨인은 다시 글을 발표하지 않았고 새뮤얼 클레멘스가 마크 트웨인을 필명으로 썼다.
  • [4] 당시 흑인들의 인권을 생각해 보면 조연으로라도 큰 비중으로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혁신적인 요소다.
  • [5] 1844~1915. 미국의 목사로 대중문화가 사탄의 창조물이라는 근본주의자로 악명이 높았다. 마크 트웨인은 물론 조지 버나드 쇼, 리 제임스 같은 유명 작가들의 소설이나 글을 음란하다고 비난했기에 살아생전 미국 문인들, 예술가들에게 엄청난 비난과 풍자를 당했다. 어느 미국 시사만화가는 신문에서 컴스톡의 고소 이유라는 1컷만화를 연재했는데 알몸인 아기를 낳은 임신부가 저질이라고 고소한다는 컴스탁 목사라고 풍자를 담아 그렸을 정도이다. 하지만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그에게 존경을 내비쳐서 버나드 쇼는 윌슨을 비아냥거렸다. 그런데 컴스탁은 윌슨의 지지 속에 영국까지 연설하러 가던 길에 그만 배에서 급사하고 말았다. 여담으로 게임 바이오쇼크 인피니트의 악역 재커리 헤일 컴스탁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 [6] 기독교에서 특정 인물을 성인으로 선포하는 일
  • [7] 영어로는 Gilded Age. 그리고 이 명칭은 실제로 남북전쟁 이후 미국이 (겉으로는) 번영하고 있던 시절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겉보기만 번드르르하다 해서 도금한 것 같다는 뜻.
  • [8] 혹은 '대부분의 미국 정치가들은 개자식이다'라고 썼다가 항의를 받아 '일부 미국 정치가들은 개자식이 아니다'라고 했다는 버전도 있다. 이 경우에도 역시 그 말이 그 말.(...)
  • [9] 자서전에서 마크 트웨인은 추운 겨울 날씨에 아들을 바깥에 데리고 나간게 잘못이었다며 크게 자책한다.
  • [10] 율리시스 그랜트는 자신의 자서전을 완성하고 며칠 뒤에 후두암으로 죽었고, 마크 트웨인이 나머지를 맡았다. 이는 미국 군 역사상 가장 유명한 회고록 중 하나로 손꼽힌다.
  • [11] 허나 출판사가 파산하고 진 웹스터의 아버지가 약물 과용으로 자살하여 둘의 관계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