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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맥과이어

last modified: 2015-03-27 21:46:5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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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o.25
마크 데이비드 맥과이어 (Mark David McGwire)
생년월일 1963년 10월 1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 주 포모나
포지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4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0번, OAK)
소속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6~199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7~2001)
지도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격코치 (2010~201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타격코치 (2013~)

1987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호세 칸세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마크 맥과이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월트 와이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8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스미스 마크 맥과이어 & 새미 소사 국 여자축구 대표팀

1992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크 맥과이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Contents

1. 현역 시절
2. 홈런의 수상한 비결
3. 은퇴 이후
4. 이야기거리


한때 새미 소사, 그리고 뒤늦게 약빨고합류한(…) 배리 본즈와 더불어 메이저리그를 이끄는 약쟁이홈런왕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스테로이드의 이름과 함께 무참하게 무너졌고 결국은 그냥 약 빨고 홈런 많이 친 놈으로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테로이드 시대를 이끈 흑역사 중 한 명. 등번호는 커리어 내내 25번을 달았으며 별명은 빅맥. 약빨이지만 10.61타수에 1홈런을 쳐서 타수 대비 홈런율 1위이다. 2위는 베이브 루스(11.76타수), 3위는 배리 본즈(12.92타수)이다.

1. 현역 시절

USC 시절에는 투타를 병행하다가 랜디 존슨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4라운더 치고 당시로선 파격적인 5만불 계약금 제안을 거절하고 1년 후배로 들어온 뒤 타격에 전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행히 타격에도 자질은 충분해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1984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0순위로 지명했다. 그리고 그 해 미국 국가대표로 1984 LA 올림픽에 선발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1986년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맥과이어는 본격적인 풀타임 시즌인 1987년엔 MLB 역사상 신인 최다홈런인 49홈런을 기록하며 만장일치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이때 일화가 유명한데 49홈런을 친 뒤,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고 있어서 50홈런에도 도전할 수 있었지만 아내가 출산예정이어서 깨끗히 기록을 포기하고 구단의 양해를 얻어 출산하는 아내의 곁을 지켜주었다고 한다.[1]

그렇게 오클랜드에서 매년 수십 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극초반 호세 칸세코와 함께 '배시 브라더스(Bash Bros.)' 듀오로 오클랜드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이후 오클랜드 콜리시엄을 탈출한[2] 1990년대 후반에 홈런 수가 절정을 달하는 등 승승장구한 강타자로 군림했다. 박찬호가 활약하던 시절에 승승장구했으니 박찬호를 보며 자란 한국인들에게도 조금은 알려져 있는 선수. 대신 장타 위주로 스윙을 하다 보니 풍기질이 좀 심했지만 공갈포 소리 들을 정도로 막장은 아니었다. 통산타율은 2할 6푼대에 불과하지만[3] 통산출루율은 4할에 조금 모자랄 정도로 눈야구도 곧잘 했다.


마크 맥과이어 70홈런 기념 메이저리그 공식 기념주화.

그리고 1998년에는 농구의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의 활약과 선수노조의 계속되는 파업사태 때문에 과거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메이저리그의 흥행을 단숨에 되돌려놓은 전설적인 이벤트가 있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새미 소사와의 홈런 레이스[4]였다. 그 결과 과거 로저 매리스의 단일 시즌 61홈런 기록을 넘어서며 70홈런을 달성, MLB 단일시즌 홈런 기록을 깨버렸다.[5] 물론 본즈가 그걸 또 깨버렸다 그의 70호 홈런볼은 무려 300만 5000달러[6]라는 고가에 낙찰되어 현재까지 가장 비싸게 팔린 야구공으로 역사에 남았다.[7]

16시즌 동안 583홈런을 기록하며 2012년 기준 통산홈런 10위에 랭크되어 있다. 여담으로 은퇴시즌인 2001년에 기록한 타율은 고작 0.187, 하지만 29홈런(…)을 쳐냈는데 계속되는 무릎부상으로 부진이 겹치자 다음 시즌에 보장되어 있는 1500만달러의 연봉을 포기하고 팀을 위해 은퇴를 선언하는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 홈런의 수상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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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
맥과이어는 시즌 홈런 기록을 경신한 1998년에 이미 남성호르몬의 일종인 '안드로스텐다이온(약칭 안드로)'을 복용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었다. '운동에 의한 부상에서 신속한 회복'을 목적으로 복용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부수적인 효과가 근육의 힘과 스피드의 증가인 이상 맥과이어의 이러한 행동은 사실상 약물 복용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때만 해도 맥과이어의 안드로 복용은 기록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1997년부터 안드로를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같은 계열로 분류해 금지약물로 지정했고, 미국 내에서도 NFL와 NCAA(전미대학스포츠협회)에서 금지약물로 규제하고 있었지만 MLB선 아무런 규제조치가 없었으므로, 맥과이어의 안드로 복용은 규정 내에서 합법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 호세 칸세코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맥과이어를 스테로이드 복용자로 지목했다. 당초 주장했던 안드로가 아닌 스테로이드를 투약했다고 칸세코가 폭로함에 따라 맥과이어의 입지는 매우 위태로워졌다.[8] 호색한 이놈


맥과이어는 이 해에 열린 청문회에서 "나는 과거에 대해 말하고자 이 자리에 온게 아니다"라는 말을 하며 당당하게 칸세코의 주장을 부정했으나, 2010년 결국 스스로 스테로이드 복용 사실을 시인했다.[9]

3. 은퇴 이후



그가 대체 뭘 가르칠 건가? 주사바늘 찌를때 참는 방법? 알약 목에 안걸리게 삼키는 방법? 크림 안뭉치게 바르는 방법?

위는 실제로 해외포럼에서 맥과이어가 카즈의 타격코치로 임명되었을때의 반응이다. 2009년 전격적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의 타격 코치로 임명된다. 위에서 말한 스테로이드 고백도 결국 카디널즈의 타격 코치로 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백한 것.

처음 카즈의 타격 코치로 부임했을 때에는 카즈 골수 팬들을 제외하면 반응이 싸했다. 위에서 말한 반응을 봐도 알 수 있듯이 통산 타율이 높지 않아 약먹고 붕붕질이나 한(...) 약쟁이가 타격을 가르치면 얼마나 가르치겠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약먹고 붕붕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자신이 가진 타격 기술을 카즈 선수들에게 전수하고 카즈의 타격 능력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킨다.

그의 코칭은 간단하다면 간단한데, 첫 번째는 선구안과 참을성을 기르고 두 번째는 그를 통해 각각의 타자가 선호하는 영역에 공이 들어올 때 까지 기다리며, 세 번째는 무리해서 어퍼 스윙과 당겨치기를 하지 말고 레벨 스윙과 밀어치기를 통해 의식적으로 장타율을 높이기 보다는 출루율에 집중하는 것이다. 출루에 집중하고 장타는 각각의 타자의 파워 포텐셜에 따라 얻어지는 어디까지나 플러스 알파로 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타자를 다각도에서 면밀히 분석하며 그의 재능과 타고난 능력에 가장 적합한 코칭을 하는 것이다.

홈런 타자의 코칭치고는 의외의 코칭이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이러한 코칭은 대단한 성과를 거둔다. 카즈 타선은 타율과 출루율이 메이저리그 전체 1위로 올라서며 공포의 똑딱이 타선이 되었다. 실제로 공격력이 부족하단 평이 많던 수비형 포수 야디어 몰리나를 2011 시즌 3할 타율에 올려놓기도 했으며 알버트 푸홀스가 이탈한 2012년 카디널스의 타선이 불을 뿜는데에 있어 일등공신으로 지목되는 이가 맥과이어다. 오오 약맥매직

사실 생각해보면 의외의 코칭도 아니다. 전성기 홈런 머신이었기에 상대 투수들이 의도적으로 볼넷을 내 준 경우도 많았겠지만 기본적으로 통산 2할 후반대 타율에 비해 출루율은 4할에 육박할 정도로 눈야구와 인내심이 좋았던 타자가 맥과이어다. 거기에 본인이 약쟁이였기에 역설적으로(...) 타자의 장타력이라는 게 단순히 코칭이나 스윙법 등을 통해서 본인의 자연스러운 파워 포텐셜 이상을 뽑아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을 테고. [10]


2012년 시즌 종료 후, 고향팀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타격코치로 옮겼다. 카디널즈의 타격코치로써 인정을 받고 있었고 카디널즈 또한 맥과이어를 잡고 싶었지만 가족이 캘리포니아에 사는 맥과이어가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했으므로 어쩔 수가 없었다. 이로써 류현진과도 한솥밥을 먹으며 타격을 지도하게 되었다.

한동안 다저스의 타격이 죽을 쑤며 약맥도 이 팀은 어쩌지 못하는 건가 싶었지만 시즌 중반이 넘어가며 타자들을 대거 부활시켰다. 어째 부활시켰다기엔 그냥 잘놈잘 될놈될인 선수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무리하게 풍기 스윙을 가져가던 후안 유리베를 똑딱이로 변신시키며 참으로 오랜만에 밥값을 하게 만들었고, 야시엘 푸이그를 빠른 속도로 MLB 에 적응시키며 지도하고 있다. 물론 그 짧은 기간 안에 지도를 흡수하고 따라가는 푸이그의 학습 능력도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거긴 하지만. 또 핸리 라미레즈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야 신나서 잘하는 초딩멘탈 심리를 일찌감찌 파악하고 별도의 지도를 하기보다 '넌 최고야. 네 스윙은 완벽해.' 등의 칭찬을 하며 그를 다시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으로 되살려 놓았다. 잘놈잘도 아무나 시전하는 게 아닌가 보다 다저스는 8월 29일 기준으로 팀 타율 4위, 팀 출루율 6위를 기록중이다. 아메리칸 리그와의 비교는 불공평한 감이 있으므로 내셔널리그로 한정지으면 팀 타율 2위, 팀 출루율 2위다. 초반의 삽질을 생각하면 비약적인 반등인데, 1위는 맥과이어가 지도한 카디널즈.

이렇게 타격코치로선 30개 구단 타격코치 가운데에서도 손에 꼽힐만한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더더욱 안타까워지는 인물이기도 한데, 이로써 그가 단순히 약물에만 의지했던 타자가 아니라 뛰어난 기술과 재능을 갖춘 타자였다는 점이 간접적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 만약 약물에 손을 대지만 앉았어도 존경받는 선수로 남으며 선수로써나 지도자로써나 성공한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고, 결국 선수로써는 약쟁이에 불과할 뿐. 명예의 전당에도 오르지 못하고 MLB 의 흑역사로 남는 운명밖에 남지 않았다. 뭐 결국 본인 잘못이니 누굴 욕할 수도 없다.

2013년에 일어난 약물 파동에 대해서 '나는 아마 명예의 전당에 못 갈 거고, 이해한다. 하지만 다시는 약물 파동 같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4. 이야기거리

  • 안드로 문제만 불거졌을 때에도 여러가지로 말이 많았다. 당시 지역 내 초등학생들이 과학탐구 과제로 안드로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해서 조사한 다음에 결론 부분에 빅맥은 안드로 안 끊으면 나중에 발기부전으로 고생할 듯(…)이라고 적어냈다고 한다.[11]

  • 은퇴 이후 골프 시즌에도 몇번 나가봤고, 대부분의 야구 선수들이 그렇듯 수준급의 골프 실력을 가지고 있다.

  • 엔하위키에서 새미 소사, 배리 본즈와 더불어 약쟁이라고 계속 까이고 있는데 정작 이 항목은 다른 약쟁이들에 비해 꽤 늦게 생성되었다.

  •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홈런왕이니까" 몇 년은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버텨주리라 믿고 있지만 점차 득표율이 떨어지고 있다. 사실상 명예의 전당 탈락은 당연한 귀결일 듯.(2014년 11%, 2015년 10% 득표함.)

  • 이러니 저러니해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선수들한텐 존경의 대상인 듯 하다. 알버트 푸홀스약물복용을 털어놓고 타격코치로 돌아온 맥과이어에 지지를 보냈으며 아담 웨인라이트는 심지어 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맷 홀리데이와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한다. [12]

  • 아들내미바보로 상당히 유명하다. 빅 맥은 선수생활 초기인 1988년에 이혼을 해 갈라섰는데, 당시 갓난쟁이었던 아들 매트를 홀로 키워내 홈런레이스 당시 미국 전역에 감동을 줬다. 선수생활 말년에 인터뷰에서 은퇴를 하면 아들의 양육을 위해 헌신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 전성기 때 그렉 매덕스톰 글래빈과 함께 나이키 CF를 찍고, 이 둘이 부러워하는 선수로 나왔으나 지금은 평가가 180도 역전되었다. Hey, where's the Mark?

  • 2014년 5월 28일 다저스의 코리안 데이를 맞아 박찬호가 다저 스타디움에서 시구를 했는데 15년전 있었던 당시 맥과이어의 소속팀 카디널스와 다저스의 경기에 있던 역사적인 사건(...)을 인터뷰에서 언급하였다.

  • 사우스파크 시즌 8 에피소드 3 Up the down steroid 에서 '존나 뚱뚱한 계집애 같은 새끼'라고 까였다.(...)

  • 비디오 기록이 남아있는 선수 중에서 가장 비거리가 큰 홈런(538피트, 164m)을 날렸다. 상대 투수는 흔한 좌완투수. 비공인 기록으로는 미키 맨틀이 한 수 위이지만 이 쪽은 기록 측정 방법과 기록 부족으로 논란의 여지가 다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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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88년 이혼했지만 맥과이어는 재혼할 때까지 아들 매튜를 혼자서 키웠다.
  • [2] 그의 공백은 제이슨 지암비에 의해 완벽히 메워졌다.
  • [3] 3할을 제대로 넘긴 시즌이 1시즌밖에 없다. 그 1996 시즌도 겨우 130경기 출장에 그쳤다.
  • [4] 시카고 컵스-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라이벌리 때문에 이 열기는 극에 달했다.
  • [5] 소사는 대신 이 해 내셔널리그 MVP를 가져갔다.
  • [6] 270만달러+경매수수료 30만 5000달러
  • [7] 행크 아론을 넘어선 배리 본즈의 756호 홈런볼의 경우, 맥과이어 홈런볼의 4분의 1도 채 미치지 못하는 75만달러에 낙찰되었다.
  • [8] 라파엘 팔메이로이반 로드리게스, 제이슨 지암비, 후안 곤잘레스도 약물 복용자라고 지목했다. 특히 칸세코는 얘네들에게 자기가 직접 주사까지 놔줬다고 말했고, 이들 중 퍼지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미첼 리포트와 도핑 테스트 등에서 실제로 약물 복용자로 밝혀졌다. 퍼지도 약쟁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고.
  • [9] 다만 자신은 오클랜드 시절의 성적은 약빨이 아니라고 말했긴 했는데.. 믿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지.
  • [10] 타격폼의 교정으로 장타력이 크게 상승한 경우는 교정이 타자가 가지고 있는 파워 이상의 장타력을 낼 수 있게 해준 게 아니라 종래의 타격폼이 타자의 선천적인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교정을 통해 바로잡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예가 크리스 데이비스, 호세 바티스타.
  • [11]빅맥의 뒷통수를 친 호색한 그 분섹느님은 절대, 절대 약을 빨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는지 생각해보자. 오오오! 뉴욕의 황제!
  • [12] 게다가 맷 홀리데이는 약물 문제에 대해 강경하기로 유명한 선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