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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영

last modified: 2014-04-26 18:45:38 Contributors




이름 마이클 영 (Michael Brian Young)
생년월일 1976년 10월 19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주 코비나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우타[1]
프로입단 1997년 드래프트 5라운드(전체 149번, TOR)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2000~2012)
필라델피아 필리스(2013)
로스앤젤레스 다저스(2013)

2006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미겔 테하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Contents

1. 개요
2. 레인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3. 필리스와 다저스에서의 2013시즌
4. 은퇴
5. 플레이 스타일
6. 이모저모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야구선수. 1990년대 말 잠깐의 전성기를 끝내고 다시 암흑기로 접어든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팀을 위해 묵묵히 뛰면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준 2000년대 접어들어 몇 안 남은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이었으나 2012년 12월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2013년 8월 고향팀인 LA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그해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레인저스 프랜차이즈 기록을 몇 가지 가지고 있다. 단일 시즌 최다 멀티 히트 기록(70회, 2004년), 최다 안타 기록(221개, 2005년), 2루타 기록(52개, 2006년)과 통산 최다 기록도 게임 출장, 안타, 2루타, 3루타, 득점에서 1위이다. 레인저스의 암흑기를 홀로 지탱하면서 거둔 성과. 굿바이 마이클 영

국내에선 이름을 줄여 마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분 아니다

2. 레인저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199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의해 지명되지만, 이 때는 지명을 거부하고 대학에 진학한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3년간 뛴 후, 1997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의해 지명받아 프로 무대로 뛰어들게 되었다. 토론토 마이너 시스템에서 꾸준히 활약하다가 2000년 5할 승률을 기록하면서 한 번 포스트시즌도 노려보던 팀 사정에 의해 선발투수 에스테반 로아이자와 교환되어 텍사스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와 함께 건너간 투수가 다윈 쿠비얀[2]이다.

2000년 텍사스 소속으로 처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이후, 마침내 2루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당시 팀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 행크 블레이락, 마크 테세이라 같은 거물급 선수 및 유망주들이 득실거리던 시기였지만, 마이클 영은 특유의 성실성을 바탕으로 2루수 주전 경쟁에서 승리했고, 그 뒤로 텍사스 내야의 축으로서 활약했다. 원래 포지션은 유격수지만, 당시 A-ROD가 있던 시절이라 2루로 컨버젼했고, 그 뒤 A-ROD ↔ 알폰소 소리아노 트레이드가 일어나자 팀의 요구에 따라 유격수로 활약했다가, 다시 마크 테셰이라의 유산 엘비스 앤드루스[3]의 유격수 자리 보장을 위해 3루로 갔다가[4] 2011년 아드리안 벨트레 영입 후에는 1루수와 지명타자로 자리를 옮겼다

수비는 2루수였던 시절에는 작은 기복은 있어도 그럭저럭 해 준다는 평가였으나, 유격수로 전환한 후 2년 동안은 거의 바닥을 기는 수비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그 이후에는 곧 죽어도 수비 잘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매해 기복도 있었지만 그럭저럭 리그 평균의 수비 정도는 해 주었다. [5] 하지만 커리어 말기의 3루수 전환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유격수로 전환할 때와 달리 영은 3루에 적응하지 못했다. 이 것이 벨트레 영입의 단초가 되었다. 2루수 로서의 수비력은 리그 평균 수준이며 유격수로서도 전환 후 삽질한 두 해를 제외하면 그럭저럭 봐 줄 만 하다.

오히려 공격력이 좋은 타자인데, 2003년 2루수로 뛰면서 첫 3할 타자가 된 이후, 2004년부터 유격수로 뛰면서 6년 연속 타격빨로 올스타에 뽑혔다.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의 풀타임 메이저리거 생활동안 3할을 총 6회 달성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방망이 실력을 자랑했다. 전성기 내내 큰 부상도 거의 없어서 2003년부터 5년 연속 200안타를 넘겼다. 파워 히터는 아니지만, 네 차례나 20홈런을 넘겼고 40개 내외의 2-3루타를 쳐낼 정도로 갭파워도 좋다. 전성기 그의 안타 생산 능력은 스즈키 이치로에 근접한 정도.[6] 2005년이 최고의 커리어 하이였는데, 당시 팀을 떠난 A-Rod 못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면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2010년에도 익숙하지 않은 3루에서 21홈런을 치면서 팀을 사상 첫 월드시리즈로 이끌었다.(다만 전체적인 성적은 다소 하락) 물론 주역은 클리프 리조시 해밀턴이기는 했지만, 마이클 영의 공로, 특히 팀을 위해 모든 수비 위치를 가리지 않고 뛴 것은 높게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2010년의 부진으로 인해 팀에서 그의 나이와 연봉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앞서 말했지만 3루수로서의 수비 실력은 아주 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타격으로 그를 메꾸는 모습이었는데, 2010년엔 타격이 생각보다 부진하며 7년만에 올스타에 탈락하는 부진을 겪었으며, 그의 연봉은 2013년까지 1,600만 달러였다. [7]

결국 벨트레의 영입으로 자리가 애매해지고 앤젤스의 버논 웰스 트레이드에서 토론토로 간 포수/1루수/DH 마이크 나폴리를 데려오자 마이클 영은 골드글러브를 딴 바로 다음 해에 3루로 옮긴 09년 이후 참아온 서운함이 폭발하였다. 결국 팀에 트레이드를 요구[8]했는데, 이에 대한 세살배기 꼬마팬의 반응이 걸작이다.

엄마 : 마이클 영은 이제 레인저스 10번이 아니야
개빈 : 5번이야?
엄마 : 아니. 팀 떠난대.
개빈 : 2번?
엄마 : 아무 번호도 아니야. 이젠 레인저가 아니야.
개빈 : (...)

이 영상을 본 일반인들, 특히 여성들은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 하면서 그냥 지나갔다.
하지만 텍빠들은 모자를 벗어던지고 피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다.
이 영상이 유명세를 타며 마이클 영에게도 알려지자, 영은 스프링 트레이닝을 떠나기 전에 개빈과 만나 하룻동안 놀아주며 야구용품을 선물해줬다고 한다. 그 이후로 몇 달간 엄마한테 맨날맨날 마이클 영의 트레이드 소식을 물어보며 전전긍긍했지만, 막상 지명타자 롤을 받아들인 영이 맹활약하자 그런 걱정은 쏙 들어갔다는 듯.

결국 트레이드는 아무리 연봉보조를 해줘도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고, 영은 2011년 팀에 남았다. 그리고 개빈을 비롯한 수많은 레인저스 팬들을 위해 DH/유틸리티의 임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만약 그를 정말 팔았다면, 레인저스는 망할 뻔했다. 상반기까지 0.323의 타율에 59타점을 기록하고, 수비 면에서도 평소엔 지명타자로 나오면서도 1루수(치 모어랜드, 마이크 나폴리)와 2루수(이안 킨슬러), 3루수(아드리안 벨트레)까지 모두 커버해주면서 주전들의 휴식일을 보장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그리고 상반기의 페이스를 꾸준히 유지하면서 0.338 11홈런 106타점을 기록했고, 213안타로 최다안타 1위를 차지했다. 선수 개인 통산 두 번째 최다안타 1위이자, 6번째 200안타 시즌, 두 번째 100타점 시즌을 기록하며 커리어에 길이 남을만한 시즌을 보냈다. 2011년 현지 시각으로 8월 7일엔 클리블랜드 전에서 4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2000안타를 달성했다.

그러나 2012년에는 출루율도 폭망, 장타력도 폭망한 개인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비율스탯이 .277 .312 .370에 불과하고 156경기에 붙박이 중심타선에 배치되고도 8홈런 67타점에 그쳤다. 때문에 마이클 영을 주구장창 중심타선에 기용한 워싱턴 감독과 함께 텍사스 지구제패 실패의 원흉[9]으로 꼽혔고, 레인저스 현지 팬덤에서는 성적 때문에 허구헌날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을 할것이냐 말것이냐로 키배가 벌어졌다.

거기다 특급 유망주들인 주릭슨 프로파, 이크 올트의 기용문제까지 겹쳐 존 대니얼스 단장은 2012년 오프시즌에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마이클 영의 트레이드를 또다시 논의했다. 설령 트레이드가 성사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의 입지는 예년에 비해 많이 축소될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영이 트레이드 거부권을 포기하면서 필라델피아로의 트레이드가 확정[10]되었고 개빈의 가슴은 무너져내렸다.

3. 필리스와 다저스에서의 2013시즌

필리스에서는 주전 3루수로 뛰면서 베테랑으로서 젊은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수행하며, 본인도 연봉에 비하면 좀 아쉽긴 하지만 그럭저럭 봐줄만한 활약을 펼쳤다. 다만 WAR로 보면 전년도에 이어 여전히 마이너스. 그래도 스프링 트레이닝 때부터 영의 튜터링을 받은 도모닉 브라운이 거포의 면모를 보여줬으니 조금이나마 역할을 한 셈...일까? 어쨌든 텍사스 레인저스 팬들도 인터리그에서 만날 기회가 없는게 아쉽다며 조시 해밀턴에게 끔찍한 야유를 보낸 것과 상반되게 꽤 흐뭇해한 듯. 필리스에서 126경기 동안 .276 .336 .395 8홈런 42타점으로 연봉에 비하면 당연히 실망스럽지만 어떻게 관록으로 숨이 끊어지지 않고 붙어있던 와중에 8월 31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다저스에서는 레인저스나 필리스에서와 다르게 주전으로 뛰진 못했다. 12시즌과 13시즌 마이클 영의 타석에서의 성적은 다저스의 주전 2루수 크 엘리스보다는 근소하게 좋지만 3루수 후안 유리베와 떨어진다. 그에 반해 저 두 선수는 마이클 영에 비해 월등한 수비 실력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후안 유리베는 현지에서 골드글러브 후보 이야기가 솔솔 나왔을 정도. 영은 다저스에서 그 동안 제리 헤어스톤 주니어가 해 왔던 내야 유틸 및 대타의 역할을 맏게 되었다.

아무리 실력이 쇠퇴했어도 같은 시즌 필리스에서는 주전으로 뛰었던 걸 생각하면, 그리고 영의 전성기 텍사스에서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고작 헤어스톤머릿돌 주니어의 상위 호환 취급을 받는 게 서러울 수도 있으나, 영은 이런 대접을 감수하고 월드 시리즈 반지를 위해 다저스로 왔다. 콜로라도 원정 경기에서 다저스 선수단에 합류했는데, 스킵 슈마커가 2011년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영 얼굴에 들이밀며 환영해 줬다고. [11] (...)

다저스 저지를 입은 데뷔는 콜로라도 로키스 전에 대타로 출전으로 했다. 폭삼을 당하며 체면을 좀 구기긴 했지만. (...) 이적 초기에는 아직 적응을 못 했는지 좀 지지부진한 면을 보여줬지만, 이후에는 베테랑의 위용을 보여주며 대타와 백업 멤버로서 활약하며 21경기에서 .314의 타율로 다저스가 기대하던 바로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NLCS 1차전 9회에 대주자로 교체되느라 빠진 아드리안 곤잘레스를 대신해 4번 타자와 1루수를 맡았다. 하지만 이는 결국 다저스의 시리즈 1차전을 내주는 원인이 되었다. 카디널스는 득점권 기회 때마다 라미레즈를 의도적으로 두 번이나 걸렀고, 마이클 영은 계산대로 두 번이나 더블플레이를 하며 득점 기회를 신나게 말아먹었다.[12] 많은 연봉을 부담하며 영을 데려온 이유가 바로 결정적인 상황에서 베테랑 대타로 활약해주는 것이었는데, 진작에 끝낼 수 있는 찬스에서 대타랍시고 어정쩡한 타격으로 결정적인 병살을 2개나 치니 다저스팬들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2차전에도 7회초 잘던지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를 대신하여 대타로 나왔지만 범타로 물러났다. 마이클 영은 이틀 연속 네이버 검색어 1위에 올랐다.

결국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진출 실패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하며 그의 염원인 반지 획득은 또 나중을 기약해야만 하게 됐는데, 문제는 마이클 영이 다저스에 와서 도움이 된 것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민폐만 끼쳐서 다저스에서 입지가 어중간했던 그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졌다. 팀의 온갖 무리한 요구에도 묵묵히 팀이 요구하는 역할을 하고자 최선을 다하며 텍사스 레인저스의 10년을 책임진 프랜차이즈 스타가 급격히 찾아온 노쇠화와 유망주 러시를 이겨내지 못하고 팽당해서(물론 자신이 못한 것도 있지만 프런트가 유망주 키운답시고 푸대접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모습에 많은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4. 은퇴

2014년 1월 기준, 4군데 정도 팀에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 중 확실하게 알려진 팀은 그를 내야 백업 멤버로 영입하려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다만 마이클 영은 현역 생활 연장과 은퇴의 기로에서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은퇴를 해서 가족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도 강하다고 밝혔다. 거기에 영의 커리어를 보면 선수로서 몸도 마음도 모두 지칠 수 밖에 없는 커리어다. 백업 멤버라는 역할 역시 2011년에도 .338 이라는 고타율과 2013년 전반기까기 주전으로 뛴 영의 자존심을 매우 상하게 하는 일인데다가 커리어 통산 3할 타율이라는 금자탑 역시 깨질 확률이 높았다. 2013시즌까지 영의 통산 타율은 정확히 3할. 2012년, 2013년의 폼으로 보아 현역 생활은 연장한다면 커리어 3할은 필히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

결국 고민 끝에 은퇴로 결정을 내리면서 그의 선수 경력은 쓸쓸하게 끝난다. 은퇴 인터뷰에서 비록 씁쓸하게 팽 당했지만 자신은 영원히 레인저스 선수라며 존 대니얼스 단장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해 레인저스에 악감정은 없다고 언급했다.


텍사스는 그와 1일 계약을 맺어 레인저스의 홈구장에서 가족들과 함께 은퇴식을 치를 수 있게 해줬다.


2014년 1월 31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가족들, 존 대니얼스 단장, 워싱턴 감독과 함께.

론 워싱턴 감독은 언젠간 영을 특별 코치로라도 영입하겠다고 의견을 밝혔다.

5. 플레이 스타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메이저리그 칼럼에서 그를 두고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위대한 선수' 라는 평을 내린 적이 있는데, 그가 위대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났다는 것 만큼은 다들 동의한다. 세이버메트릭스가 메이저리그 운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대표적인 세이버메트리션 단장 존 대니얼스 밑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낸 그는 선수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지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선수 생활을 해야 했다. 존 대니얼스와의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가 마이클 영에게 팀을 운영하며 한 대접을 보면 곧 죽어도 존 대니얼스가 마이클 영을 선수로써 높게 평가했다고 보긴 힘들다.

서러운 건 그런 존 다니엘스의 평가가 맞다는 점이다.

통산 3할의 고타율을 기록했지만 통산 출루율은 .346 밖에 되지 않는데에서 알 수 있듯이, 마이클 영은 타율은 높지만 출루율은 낮은, 세이버메트리션이 딱 싫어할 선수의 교과서적인 유형이었다. 영의 출루는 대부분 안타로만 이루어졌으며, 볼을 보고 기다리는 능력이 극히 부족한,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했던 배드볼 히터였다. 하지만 최상급 배드볼 히터들은 볼넷도 적게 얻지만 삼진도 적게 당하는 반면, 영은 볼넷은 적게 얻되 삼진 자체는 결코 적은 편이 아니었다.

갭 파워는 어느 정도 있었지만, 결코 파워 히터는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한 타자 구장이었던 알링턴을 홈 구장으로 쓰는 선수 치고는 조금 아쉬웠던 게 그의 장타력. ISO,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그의 순장타율은 커리어 평균 .141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정도면 준수한 중장거리 히터 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만, 그의 낮은 출루율을 충분히 상쇄할 만한 생산력까지는 아니었다.

수비는 커리어 내내 팀과 존 대니얼스에게 시달리며 이리저리 왔다갔다한 것을 감안하면 뛰어나지 못한 것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수비가 좋았던 타자라고 말해 줄 수도 없는 노릇. 영의 팬그래프 통산 수비 지수는 -79.4 로 누적 59.8 인 공격 지수보다도 더 많은 점수를 까먹었다. 물론 저 마이너스 점수의 대부분이 그의 커리어 말년 3루수 시절에 쌓은 불명예스러운 누적이기 때문에 전성기의 그는 그럭저럭 평균정도는 해 주는 수비수였다는 것은 맞지만 좋은 수비수도 아니었다.

주루도 수비처럼 평균보다 살짝 위 정도는 해 주지만 그렇다고 주루나 도루에 특출난 강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마이클 영이 선수로서 가진 장점은 단 하나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높은 타율과 안타 생산 능력. 때문에 마이클 영이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세이버메트릭스가 활개를 치기 전, 이 삼십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통산 타율이 3할을 넘어가는 위대한 타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 테지만 현실은 세이버메트리션 단장 밑에서 (인격적으로는 몰라도 선수로써는) 푸대접을 받으며 선수 생활을 했고 세이버메트리션들은 그를 높게 치지 않는다. 출루율도 낮고, 수비는 그럭저럭 평균 정도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커리어 말년 3루수로서는 리그 최악의 3루수 중 한명, 주루도 나쁘진 않지만 평균 수준. 도대체 좋은 점수를 줄 구석이 없다.

그의 누적 f-WAR 는 26.9 로 풀타임 13년 동안 연평균 2.0 정도의 WAR 를 찍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WAR 항목에 들어가면 알겠지만 저 정도의 성적은 그럭저럭 주전으로써 경쟁력은 있어도 마이클 영이 텍사스에서 누렸던 지위처럼 확고부동한 주전에 걸맞는 성적은 아니다.

물론 텍사스 팬들에게야 마이클 영은 잊을 수 없는 프랜차이즈 스타겠지만 세이버메트리션의 기준에서 본다면 그는 그런 위치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올린 것은 사실이다. 기존 올드 스쿨 적인 시각과 세이버메트리션의 시각이 가장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수 중 하나다.

6. 이모저모

  • 어머니가 멕시코 혈통이라고 한다.
  •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랐고 주변 사람들은 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응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영 본인은 어메이징뉴욕 메츠를 응원했다고 한다. 다저스와 메츠는 브루클린 다저스와 역사적인 접점이 있는 팀이니 아주 이상한 것까진 아닐듯. 메츠도 영이 어릴 적에는 어메이징 메츠로서 보스턴 레드삭스의 알까기에 힘입어 우승을 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 부인과 함께 지역사회에 다양한 자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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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대학 1학년 때까진 스위치 히터였는데 포기했다고 한다.
  • [2] SK 와이번스 팬이라면 잠깐 왔다가 간 투수라고 기억할 것이다.
  • [3] 당시 FA가 1년 반 남아있어서 07년 데드라인에 애틀랜타에 팔았던 테셰이라 트레이드는 당시에는 무지무지 욕을 먹었지만 현재는 "철저하게 처절하게 흠많무스럽게 사기친" 트레이드로 꼽힌다. 이 당시 테셰이라와 좌완 릴리프 하나 내주고 얻어온 유망주들이, 엘비스 앤드루스 + 네프탈리 펠리즈 + 해리슨 + 제로드 살탈라마키아(...) 참고로 앤드루스는 2009 RoY 2위, 펠리즈는 2010 RoY 1위이고, 그간 가끔씩만 나오던 맷 해리슨이 2011년 3점대 ERA에다 14승을 찍었다. 이건 뭐(...) 뭐 잘 쓰고 있던 살탈라마키아를 보스턴에 사기당한 것 정도야 그냥 무시해도 될 수준. 텍사스에서 살탈라마키아가 워낙 부진하기도 했다.
  • [4] 그런데 이게 텍사스 팬들에게도 욕을 먹은 것이, 영이 2008년 유격수 골드글러브 위너인데 바로 다음 해에 루키한테 그 자릴 내주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영과 앤드루스의 수비부문 기여도인 dWAR심형래 감독의 영화가 아니다에서 측정한 점수에서는 영이 5년간 평균 -1.0인 반면 앤드루스는 평균 0.4를 찍고 있어서 지금 보면 수긍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 할 수 있다.
  • [5] 물론 절대 탑 수비수는 아니어서, 2008년 골드글러브 수상 당시에도 좀 말이 있었다. 골드글러브는 투표로 이루어지기에, 국내의 몇몇 사람들은 공로상으로 받은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 [6] 데릭 지터, 스즈키 이치로와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던 안타 제조기였지만, 결정적으로 위의 두 선수와 WAR상에선 생각 외로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이, 영은 초창기부터 수비력이나 베이스 러닝이 뛰어난 선수는 아닌 데다가 대표적 타자 구장인 레인저스 볼파크를 쓴 선수치고는 실질적인 생산력이 두드러진 타자는 아니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2001~2010시즌까지 영의 WAR는 25.2승, 지터의 WAR는 41.2승, 이치로의 WAR는 54.6승. 물론 영이 팀의 요구에 따라 이리저리 포지션을 옮기며 고생하느라 한 포지션에서의 전문성을 기르지는 못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 [7] 다만 마이클 영은 커리어 하이를 찍기 전에 팀과 저렴한 장기계약노예계약을 맺어서 2009년 이후 그의 연봉이 높아진 후에도 팬들의 지지를 받았다.
  • [8] 더욱 슬픈 것은, 그렇게 트레이드를 요구하면서도 1루 미트를 구입했다는 것이다. 팬들은 아예 포수 장비랑 외야 글러브까지 사라고 할 정도(...)
  • [9] 물론 조시 해밀턴히 드랍 더 볼이 크지만 말이다(...)
  • [10] 텍사스가 필라델피아에게 기존 1600만불 잔여연봉 중 1000만불에 달하는 연봉보조를 한다. 필리스는 주세 제도의 차이로 인한 손실액 보상 차원에서 필리스가 지급하는 120만불의 보너스까지 포함 720만불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영을 1년간 쓰게 되었다.
  • [11] 2011년 월드시리즈는 텍사스 레인저스가 우승까지 스트라이크 하나를 남기고 두 번이나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 슈마커는 텍사스 상대로 우승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이었다. 니가 가진 그 반지 그 반지가 내것이었어야 해
  • [12] 첫 번째는 짧은 외야 플라이에 3루 주자 마크 엘리스가 무리하게 홈대쉬를 하다가 아웃당한 거라 병살타를 친 건 아니다. 두 번째는 깔끔한 6-4-3 병살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