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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소시아

last modified: 2015-04-10 12:12:25 Contributors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No.14
마이크 소시아 (Michael Lorri Scioscia)
생년월일 1958년 11월 27일
국적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 주 어퍼더비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1라운드 19순위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80~1992)
지도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배터리코치 (1997~1998)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감독 (2000~)

Contents

1. 개요
2. 선수 시절
3. 감독 시절
4. 감독 스타일
5. 이모저모


1. 개요


MLB를 대표하는 작전야구의 대가로 과거 박찬호와도 인연이 있던 LA 다저스 출신의 명포수 출신 감독이다.

2014년 8월 기준으로 2375게임 1297승 통산 .546의 승률로 MLB 통산 승수 31위, 승률 39위,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다출장, 최다승,최고 승률, 유일한 월드시리즈 반지까지 얻은 반론의 여지 없는 에인절스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다. 사실 반쯤 종신감독이나 마찬가지다.

2. 선수 시절

LA 다저스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선수였다. 다저스에서 허접한 포수였냐면 절대 아니다. 12년동안 뛰면서 1981년과 1988년 우승의 주역이었으며, 2번 올스타전에 출전한 명포수로 특히 수비와 게임콜이 돋보이는 포수였다. 현시대 팬들에게 알기 쉽게 말하면 거의 하얀 야디어 몰리나급의 수비와 게임콜링, 존재감으로 다저스 팬들과 선수들에게 사랑받았던 포수.


초년병이라 백업 포수였던 1981년에는 당시 팀 에이스였던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의 전담포수로 출전했다. 발렌수엘라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스페인어도 따로 배웠다고. 그리고 1988년에는 주전 포수로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를 4승 1패로 꺾고 7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 과정에서 한 몫했다. 선수시절 두 차례 노히터를 캐치한 포수기도 했으며, 1988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4차전에서는 극적인 동점홈런을 치기도 했다. 부상 때문에 12년만 뛰고 은퇴하기는 했지만, 선수시절 영리한 운영과 리더쉽을 인정받아 은퇴 후 다저스에서 배터리 코치로 뛰면서 일찍부터 차기 다저스의 감독 후보로 주목받았다.

원래는 박찬호가 있던 때부터 토미 라소다 은퇴 이후 차기 감독후보까지 거론되었으나, 모종의 이유로 다저스가 소시아 대신 빌 러셀을 감독으로 선임한다. 그리고 빌 러셀이 성적 부진으로 짤리자 이번에는 소시아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했는데, 새로 감독으로 임명된 사람은 일명 어메이징 메츠를 이끌었고 신시내티 레즈,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감독생활을 한 베테랑 데이비 존슨. 이 결정에 대한 반발이 많아지자 당시 단장인 케빈 말론은 이 결정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히려 소시아를 해임했다.

그 전까지는 꾹 참고 코치로 지내던 소시아였지만, 해임에는 크게 분노하며 팀을 옮기기로 마음먹는다. 마침 항명 사태가 터지면서 팀이 막장이 된 옆동네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강력하게 러브콜을 보내자, 결심을 굳히고 에인절스의 감독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3. 감독 시절

그렇게 해서 2000년 소시아는 에인절스 감독직을 맡는다. 이 전부터 감독 대행으로 팀을 수습한 조 매든[1]을 다시 팀의 수석코치로 임명하면서 팀을 장악하기 시작한 후,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명 투수 코치인 버드 블랙 現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감독, 벤치 코치 론 뢰니키(現 밀워키 브루어스 감독)등의 코치진을 구성해 한동안 별 볼일 없던 LA 에인절스의 중흥기를 이끈다.

2000년 이후 1번의 월드시리즈 우승과 5번의 지구 우승 등 LA 에인절스의 황금기를 만들어 냈다. 거기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누르고 차지한 2002년의 월드시리즈는 팀 역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이다.

일부 다저스 팬들은 지난 20년간 다저스 최대의 실수가 이 마이크 소시아를 에인절스에 내준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것이 2002년과 2009년 올해의 감독에 선정된 이 명장을 그냥 눈뜨고 버렸기 때문. 거기다 원래는 라소다의 후임 감독 후보로 제대로 교육을 받던 중 프런트의 헛발질로 다 키워놨던 감독 인재를 동네 라이벌에 갖다바친 꼴이 되어버린지리 더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다저스는 소시아가 B급 프랜차이즈였던 에인절스를 월드시리즈 우승팀으로 키우는 동안 토미 라소다가 은퇴한 1998년 시즌 이후 2004년까지 7년동안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라이벌로 생각조차 안 하던 LA 에인절스에게 거의 동급의 인기를 허용하고 말았으니... 그리고 결국 2011년 사상 처음으로 에인절스에게 시즌 총 관중수 추월을 허용했다.

2011년 5월 8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통산 1000승을 달성했다. 이 페이스대로 꾸준히 간다면, 아마 훗날 명예의 전당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물론 LA 다저스 팬들은 그 때도 땅을 치고 통곡할 것이고. 사랑해요 다저스

그런데 2012년에는 리그 5위에 해당하는 1억 5천만달러의 연봉을 지불하면서 알버트 푸홀스,C.J. 윌슨,잭 그레인키같은 선수를 영입했음에도 2012년 시즌에는 기어이 총 연봉이 에인절스의 절반정도밖에 안되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도 순위에서 밀리며 지구 3위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입지도 슬슬 불안해졌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2013년에는 전력보강으로 FA 외야수 조시 해밀턴과 계약을 맺어 메이저 최강의 타선을 구축했다고 하지만, 해밀턴이 푸홀스와 함께 먹튀계의 쌍두마차로 팀을 말아 먹고, 팀 투수진 역시 막장이라 같은 지구 시애틀, 휴스턴이 있어 그나마 꼴찌를 면하지만 실질적 꼴찌라 2013년이 소시아의 에인절스에서의 마지막 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이미 시즌 후반부터 세간에서 제리 디포토 단장과 소시아 감독 중 하나는 잘릴 것이라 보는 기자들이 늘었는데, 팬들은 둘 다 갈아치우면 안되냐는 의견을 내면서도 둘 중 하나를 지켜야 한다면 계약기간과 연봉이 많이 남아있는 소시아를 냅두고 자를 때 돈 조금만 줘도 되는 디포토부터 해고하는 것이 최악이 아닌 차악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이미 10년 넘게 에인절스를 지휘하면서 MLB의 감독치고는 단장 못지 않게 팀 운영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한 실세 감독이었다보니 자르고 나서의 뒷감당도 부담됐고, 막상 감독이나 지도자들 중 소시아보다 커리어라든지 능력 면에서 괜찮은 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라 다른 팀 팬들 중 자기 팀의 막장 감독에 치를 떠는 팀의 팬들이 소시아가 에인절스에서 쫓겨나면 우리 팀이 꼬셔보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소시아가 몇 년간 영 좋지 않은 운영을 해온 것은 사실이나 바비 발렌타인 같은 전대미문의 막장 감독은 아닌 데다가 나이 역시 50대 중반이라서 우승을 이끈 경력도 있으며, 나이도 짬밥에 비하면 많은 편이 아니라 다른 팀 입장에서도 10년을 맡길 감독으로 손색이 없기에 에인절스에서 해고되어도 많은 팀들이 달려들 것이란 예상이 있었지만, 일단 에인절스는 2014시즌에도 디포토 & 소시아 체제로 가기로 공표했다. 그리고 2014년 승률 6할대로 복귀, 메이저리그 전체 1위 승률과 득점으로 지구 우승을 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해임이야기가 쏙 들어가는가 싶었지만 오클랜드와 연장 혈투 와일드 카드 경기를 치르며 올라온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3-0 시리즈 스윕으로 무기력하게 패하자 다시금 소시아에 대한 안 좋은 목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변명거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전에 총명함이 노쇠하며 상실된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다.

4. 감독 스타일

메이저리그와 크보를 동시에 보는 팬들은 마이크 소시아를 대체로 김경문과 많이 비교한다. 현역시절 수비형 포수로 이름을 날렸으며, 리더쉽과 스몰볼 수행능력, 발야구와 수비중심의 세밀한 야구에서 국내 최상급 운영을 보여주는 점에서 닮았다. 그리고 공통의 흑역사로 두 감독 모두 특정 팀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호구를 심하게 잡혔다는 것. 그리고 후덕한 모습도 닮았다. 하지만 이 양반은 콩라인은 아닌 것이 반전.[2]

다만, 2009년 이후로 LA 에인절스가 계속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면서 점차 소시아의 매니징에 대한 불만이 나왔다. 특히 심각한 것이 포수 문제인데, 팀내 포수 플래툰 대상이던 공격형 포수인 마이크 나폴리를 지나칠정도로 불신임하고 타격이 멘도사 라인이던 수비형 포수이지만 수비평가도 잘봐줘야 평균인제프 매티스를 억지로 기용하다가 결국엔 마이크 나폴리를 먹튀 버논 웰스와 트레이드 했는데, 그 나폴리가 텍사스 레인저스로 재트레이드 되어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안방을 책임지며 LA 에인절스 상대로 맹타를 휘두르며(상대타율이 4할이 넘는다.) LA 에인절스 탈락의 결정타를 먹이자 팬들의 여론도 나빠지기 시작했다. 2013년 이후로 행크 콩거 또한 크리스 아이아네타에 밀려 충분한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이아네타가 매티스보다 타격이 훨씬 나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수비력 차이도 별로 안 나는데......[3]

5. 이모저모

  •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심판과 말싸움을 자주하는 감독중 하나다. 조금만 애매하거나 불리한 콜이 나올경우 여지없이 달려나와서 어필을 한다. 예끼 니미 심판! 그러다보니 퇴장도 자주 당하는 편. 통산 20회가 넘는다.


  • 심슨 가족에도 두번씩이나 출연했다. 시즌 3에서 번즈가 다른 발전소와의 내기 야구 시합을 위해 프로 선수를 고용할 때 다른 선수들과 같이 출연. 거대한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다며 밤마다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방사능에 감염되어 야구 시합에서 리타이어. 근데 방사능 덕분에 슈퍼 매니징 파워를 얻었다며 절대반지 3개를 획득한 채[4] 시즌 22에서 2번째로 출연했다. 세이버메트릭스로 리틀리그 팀을 우승으로 이끈 명감독 리사가 볼을 골라서 출루하라는 지시를 무시하고 끝내기 쓰리런을 날렸다가 팀에서 쫓겨난 바트에게 선수는 감독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조언을 한다. 그런데 롤러코스터에서 반지 하나를 날려먹었다, 하나 더 얻을거니 괜찮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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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 매든은 소시아의 전임이자 항명파동으로 해임되었던 테리 콜린스(現 뉴욕 메츠 감독)밑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했고, 소시아 이후에도 계속 수석코치를 맡다가 2006년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진전이 없던 리빌딩이라는 암흑기를 뚫고 만년 꼴찌를 우승후보로 변신시켰다.
  • [2]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은 프로야구 원년 OB우승시 주전포수였다. 사실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만 못해서 그렇지 절대 콩라인은 아니다; 82년 원년 OB베어스 우승 당시 주전 포수 - 선수시절 우승 & 01년 두산베어스 한국시리즈 우승당시 코치 - 코치시절 우승 & 08년 베이징올림픽 감독으로 금메달! - 감독으로 국제대회 우승. 한국시리즈만 우승하면 오히려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이다. 근데 그게 엄청 힘들어 다만 소시아는 감독으로써 월드시리즈를 우승시킨 적이 있으니 한 수 위인 셈.
  • [3] 콩거는 결국 2014 시즌 후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 됐다.
  • [4] 2개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 시절 다저스에서 차지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