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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카낭의 비극

last modified: 2015-04-13 15:25:45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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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비극 이전
2.1. 폭풍전야
2.2. 사실상의 결승전
3. 비극
4. 비극 이후
5. 마라카낭 대첩의 영웅
6. 유사 사례

1. 개요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의 결승전에서 일어난 사건. 설레발 치다 망했어요가 된 대표적인 케이스. 하지만, 우루과이 입장에서는 매우 영광스러운 승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브라질 축구팬들에겐 실로 잊을 수 없는 비극적인 경기이다.

2. 비극 이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2년이 지나서야 다시 열리게 된 FIFA 월드컵에서 개최권을 따 낸 브라질은 첫 우승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지역 예선이 시작되기 전 아르헨티나가 기권하는 일이 일어났다. 당시 아르헨티나코파 아메리카에서 3연패(1945년~1947년)를 했을 정도로 대단히 강팀이었기 때문에 그런 아르헨티나가 기권했다는 것은 난적이 하나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승을 노리는 브라질에게 있어서는 호재였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1946 FIFA 월드컵의 개최국이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너무 심각했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는 전후 복구에 전념하느라 아무도 월드컵에 나서질 않았다. 이 때문에 1946 FIFA 월드컵 개최는 전면 취소되었으며 그 다음 월드컵인 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는 다시 개최를 희망했으나 브라질이 개최국으로 선정되면서 이에 불만을 품고 이 월드컵과 그 다음 월드컵인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까지 기권해 버렸다.[1]

그렇게 아르헨티나가 빠진 상태에서 시작된 월드컵 본선은 좀 특이한 방식으로 치렀다. 브라질 월드컵 조직 위원회는 경기수익을 한 푼이라도 더 뽑아먹기 위해, 모든 경기를 조별 리그로 바꿨으며 그 조별 리그에는 총 4개 조 16개 팀이 참가하는 걸로 했다. 하지만 우루과이가 속한 조를 비롯한 두 개의 조에서 기권팀이 연거푸 발생하는 바람에 실제로는 13개 팀이 조별 리그를 치루었다. 이 4개 조에서 1위 팀만 올라가는데 그 올라간 4팀이 마지막으로 또 리그를 치러서 우승 팀을 가리는 방식이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1조에 배정된 브라질은 개막전을 멕시코와 치르고 그 다음은 스위스, 마지막으로 유고슬라비아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멕시코를 4:0으로 크게 꺾고 스위스와는 2:2로 비겼지만 유고슬라비아를 2:0으로 꺾으며 조 1위로 당당하게 최종 리그에 진출하였다.

옆의 2조는 껄끄러운 상대로 여겨졌던 잉글랜드미국에게 0:1로 덜미를 잡히는 이변이 일어났고[2] 그 여파로 스페인에게도 털리며 최종 리그 진출권을 스페인에게 내줘야만 했으며, 3조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이탈리아가 1949년에 있었던 수페르가의 비극으로 인해 국대 전력에 매우 크게 악영향을 미친 탓에 스웨덴에게 2:3으로 덜미를 잡혀 광탈해 버렸다. 단지 4조의 우루과이가 볼리비아를 8:0으로 개관광시키고 올라갔을 뿐이다. 물론 우루과이에게 조별 리그는 이게 다였다. 왜냐하면 스코틀랜드, 터키가 일찌감치 기권했고 바통을 넘겨받은 프랑스, 포르투갈까지 또다시 전부 기권했기 때문이었다. 조별 리그 3경기에서 넣을 골을 한 큐에 다 때려 넣은 우루과이의 위엄

남아 있는 난적이라고는 우루과이 하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자 브라질에선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고조되기 시작한다. 최종 리그 첫 경기는 스웨덴과 치르고 그 다음은 스페인, 마지막으로 우루과이와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브라질은 스웨덴을 상대로 7:1 대승을 거두고 스페인을 상대로 역시 6:1 대승을 거둔다. 그러는 동안 우루과이는 스페인을 상대로 2:2로 무재배를 하더니 스웨덴을 상대로는 선제골을 얻어맞고 엄청나게 고전하다가 3:2로 겨우 역전승을 거둔다.

2.1. 폭풍전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브라질 2 2 0 0 13 2 11 4 ?
2 우루과이 2 1 1 0 5 4 1 3 ?
3 스페인 2 0 1 1 3 8 -5 1 우승 실패
4 스웨덴 2 0 0 2 3 10 -7 0 우승 실패

마지막 경기를 남겨 두고 이렇게 되자, 아예 브라질에서는 아직 경기도 치르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우승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경기가 사실상의 결승전이 된 모양새인데, 무만 재배해도 우승컵은 브라질의 손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페인과 스웨덴을 상대로 고전했던 우루과이가 그 두 팀을 압살한 브라질을 이기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브라질 전역에선 모두가 브라질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였고, 브라질 바깥의 축구 팬들 가운데서도 어느 누구 하나 농담으로라도 우루과이의 우승을 점치지 않았다. 그저 우루과이의 축구 팬들이 '기적이 일어나길 바란다'며 격려를 해 줄 뿐이었다. 이미 우승컵의 주인공은 브라질로 정해져 있고 우루과이는 들러리일 뿐이라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57년 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어느 국가에서 나온 설레발과 비슷하다?

게다가 브라질 월드컵 조직 위원회조차 아예 월드컵 우승 메달에 1950 FIFA 월드컵 우승국 브라질이라고 굵직하게 글귀를 새겨 넣기까지 했으며 브라질은 월드컵 우승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모두 완료했다.

언론사 역시 이 설레발에 동참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마치 우승 팀이 브라질로 미리 정해져 있다는 뉘앙스의 기사를 내보냈다. 숙소에서 이 신문을 본 우루과이 팀의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는 "우리가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자"며 팀 동료들과 함께 문제의 신문에 오줌을 누는 퍼포먼스를 했다.

드디어 7월 16일, 운명의 그 날이 왔다.

2.2. 사실상의 결승전

킥오프 전부터 리우데자네이루마라카낭 경기장 관중석에는 조국 브라질이 우승하는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려는 브라질 관중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이러니 아직 킥오프도 안 했는데 우루과이 선수들이 분위기에 눌려 버리기는 당연지사. 게다가 결승전에 킥오프 직전 연설위원으로 초대된 당시 상파울루 시장이었던 안젤루 멘데스 지 모라이스조차 미리 브라질의 우승을 예언하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우루과이의 입장에선 꽤나 기분나쁜 연설이었지만 다들 브라질의 우승을 확신하는 분위기였는지라 이해했다. 게다가 FIFA 측도 브라질의 우승을 예상했는지 당시 우승 트로피로 사용했던 쥘 리메 컵을 미리 브라질 월드컵 조직 위원회 측에 넘겨줬을 정도.브라질 선수단도 그걸 들고 우승 기념 사진부터 미리 찍어 두었을 텐데 그러나 그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브라질 전역에서는 이미 경기 시작 전부터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다. 국가적 설레발류 甲.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는 시작되었다. 초반부터 당연히 압도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브라질도 우루과이도 골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어? 이게 아닌데(...) 그래도 지지만 않는다면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이기 때문에 브라질의 우승을 굳게 믿는 분위기는 여전했다. 그리고 후반 2분,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브라질의 프리아카가 선제골을 터뜨린 것. 그 순간 마라카낭은 물론이고 브라질 전체가 광란의 도가니였고 축제 분위기도 한껏 달아올랐다. 이제 브라질의 우승이 확실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할 우루과이가 아니었다. 선제 골을 허용하고는 더 악착같이 맹공을 퍼붓더니 후반 21분 후안 스키아피노가 동점골을 성공시켜 1:1로 만든다. 순간 우루과이 벤치에서는 화색이 돌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브라질 선수들과 관중들의 얼굴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중계 방송으로 경기를 시청하고 있던 브라질 국민들도 "이거 정말로 역전골 먹어서 지면 어쩌지?" 하면서 순간적으로 초조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브라질 선수들은 어떻게든 추가 실점을 막으려고 했지만 점점 막강해지는 우루과이 선수들의 화력을 견뎌내지 못하고 후반 34분 우루과이의 알시데스 기지아에게 역전 결승골을 허용하고 만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어 하는 사이 역전을 당하면서 뜨거운 함성이 가득하던 마라카낭 관중석은 완전 침묵 속에 빠져들었으며 다급해진 브라질 선수들은 계속해서 우루과이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터지라는 만회골은 터지지 않고 시간만 하릴없이 흘러가며 속을 태웠다.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우루과이에게 지고 우승을 놓친다는 그 시나리오가 진짜로 펼쳐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지아가 역전 결승골을 넣은지 10분 남짓 지나자 주심은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주심의 휘슬 소리가 마라카낭에 울려퍼지는 순간 브라질의 첫 우승 꿈도 잔인하게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아. 브라질, 망했어요. 본격적인 마라카낭의 비극을 알리는 신호음이었다. 우루과이는 이 우승으로 인하여 기록을 하나 세우게 되었는데 그것이 '최소한의 경기로 FIFA 월드컵 우승을 이룩한 팀'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우루과이가 정확하게 60년 후에는 오히려 정 반대로 'FIFA 월드컵 한 대회 최다 경기팀'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우루과이는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륙간 플레이오프 코스타리카전과 3, 4위전 독일전까지 총 27경기를 뛰었다. 총전적 10승 9무 8패를 기록했다.

여담으로 이전 대회에서 이탈리아도 최소 경기 우승을 이룩해냈다. 하지만 그 당시는 올 토너먼트였고 이 대회부터 본선에서도 조별 예선이 치러졌다. 우루과이는 이 대회에서 단 4경기만 치르고 3승 1무로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한편, 같은 시각 상파울루에서 벌어진 스웨덴과 스페인의 마지막 경기는 스웨덴이 3:1로 승리하였다. 아래는 최종 순위표.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우루과이 3 2 1 0 7 5 2 5 우승
2 브라질 3 2 0 1 14 4 10 4 준우승
3 스웨덴 3 1 0 2 6 11 -5 2 3위
4 스페인 3 0 1 2 4 11 -7 1 4위

3. 비극

주심이 경기 종료를 선언하기 위해 휘슬을 분 순간, 헬게이트가 열렸다.

브라질은 무재배만 해도 우승할 수 있었는데 선제골을 넣고도 역전패했으니 그 충격이 어떠했을까? 관중석을 콩나물 시루처럼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채워서 응원 열기가 대단했던 마라카낭 스타디움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브라질 관중들에 의해 경기 직후 갑자기 유령같은 적막이 흐르고 순간적으로 권총 자살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이 때의 적막감을 당시 줄 리메 피파 회장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온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의 적막감"이라고 표현했다. 어느 한 브라질 관중의 목격담에 의하면 "경기장 안에 파리 날라다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라고 증언했다(...). ㅎㄷㄷ.

당시 마라카낭 스타디움에 입장한 공식 관중 수는 무려 17만 3850명으로 앞으로도 절대 깨질 수 없는 월드컵 불멸의 기록 중 하나이다. 다른 기록으로는 19만 8854명. 비공식 기록으로는 20만 명도 훨씬 넘었을 거라고도 한다. 최대 추정치는 25만 명.

이 경기가 끝난 직후 4명의 관중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는데 2명은 심장마비, 2명은 권총 자살이었다. 이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성난 브라질 관중들에게 무슨 짓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였기 때문에 우승 시상식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우루과이로 줄행랑을 쳐야만 했다. 과연 17만 3850명만 있었을까? 돌아가는 길에서 만날 브라질 축구 팬들은? 거기에서 우승 세레모니를 진짜 했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참고로 우루과이는 일찍이 브라질잡아먹힐 뻔하다 독립한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치면 도쿄 대첩에 맞먹는 승리였다. 당시 브라질의 우승이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기 때문에 우승기념 메달은 브라질만 만들고 다른 국가의 메달은 만들지도 않은 상태였다. 당시 FIFA는 월드컵 우승 메달을 따로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브라질이 아닌 다른 나라가 우승했으니 이 메달들은 당연히 폐기처분 확정. 게다가 줄 리메 회장도 포르투갈어로 된 우승 축사만 만들어 왔었다.[3]

그리고 브라질의 첫 월드컵 우승을 기념하기 위한 노래인 "Brasil os vencedores"(Brazil The Victors)도 미리 만들어졌지만 브라질의 우승이 좌절되면서 그냥 묻혔다. 그 외에도 브라질의 우승 기념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는 등 미리 터뜨려 놓은 샴페인이 한순간에 김칫국으로 변했다. 우승 기념 떡을 만들어 왔는데 왜 우승을 못하누! 왜 떡을 먹지를 못하누! 괴상하게도 이번 월드컵은 운수가 좋더니만(...)

또한, 브라질 전국에 조기가 게양되었고 울분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는가 하면, 전국적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나라 망할 기세

4. 비극 이후

열받은 브라질 축구 협회는 그 당시 결승전에서 선수들이 입었던 유니폼들을 죄다 수거해서 모조리 소각 처리한 후, 유니폼의 색깔을 새로 정했다. 1914년 브라질 축구 협회의 창립 이후 상/하의 모두 흰색 유니폼을 입어왔는데, 이를 버리고 새로 디자인한 유니폼은 노란색 유니폼, 카나리냐이다.[4] 이 유니폼이 세계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현재 유니폼이며 앞으로 브라질 국가대표팀이 1950년 이전과 같은 흰색의 유니폼을 착용하는 꼴을 볼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브라질의 축구 팬들은 아직도 그 당시 입었던 흰색 유니폼은 항복과도 같은 상징이며 수치라고 생각한다.[5] 브라질 국적의 축구 팬들에게 이 경기 이야기를 하면 표정이 싹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라질 사람과 싸우고 싶을 때 쓰는 마법의 주문

1945년경의 브라질 유니폼

1950년 월드컵 결승전의 브라질 멤버.

그 결승전의 결과 브라질의 유니폼이 이렇게 바뀌었다. 원정 유니폼은 파란색.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브라질 유니폼.

한편, 결승전 패배의 주범으로 지목된 선수들은 그 충격과 공포의 마라카낭의 비극 이후 다시는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6] 특히, 브라질의 골키퍼로 뛰었던 모아시르 바르보사는 더욱 심했는데 일례로 바르보사가 은퇴 이후 길을 가고 있는 도중 한 아이가 바르보사를 보고 엄마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 엄마의 대답이 "브라질 국민을 절망과 좌절감에 빠뜨린 인물이란다"(...) 그야말로 천하의 개쌍놈, 역적 취급. 실제로는 자국 축구 사상 최초로 세계 2위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그는 2000년에 79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브라질에서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지른 범인도 43년 이상 형을 선고받지 않는데 나는 그 경기에서 패배했다는 이유만으로 50년을 죄인처럼 지내야만 했다."는 넋두리를 유언으로 남겼다. 그러니까 바르보사는 이 비극 때문에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고통받았다. 정말로 안습. 이 일이 터지기 전만 해도 르보사는 남미에서 가장 잘 나가던 골키퍼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이 일로 인해 그는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실제로 그는 은퇴하고 꽤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브라질 국가대표팀의 골키퍼 코치 자리에 지원했지만 브라질 축구 협회로부터 패배의 징크스를 가진 선수를 쓸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1993년에는 라디오 중계도 브라질 축구 협회에서 막았다고 한다. 아, 눈물 좀 닦고.

그나마 참화를 비껴간 선수들도 편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월드컵 골든 볼 수상자 지지뉴는 7월 16일, 그러니까 마라카낭의 비극이 있던 그 날만 되면 어김없이 전화선을 끊어 놓았는데 50년 동안이나 그리 해 왔다고 한다. 이유는 그러지 않으면 브라질 전역에서 그때 왜 졌냐는 전화가 하루 종일 울려댔기 때문이다. 지지뉴는 선수 시절의 수많은 영광보다 그 한 경기의 상처에 평생 가슴 아파했다고 한다.

한편, 이 경기에서 역전 결승골을 넣은 주인공 알시데스 기지아. 그는 50년 정도 지나서 브라질에 여행을 갔다가 정말 기가 막힌 일을 겪었다. 어떻게 봐도 20대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여성 세관원이 기지아를 알아본 것. 기지아가 놀라서 "그건 50년 전의 일이다."라고 대답하자 세관원은 "브라질의 우리들은 아직도 그때의 일을 오늘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낀다."고 했다고(...) 이쯤 되면 무섭다.얀데레 스토커 그 여자가 셍제르망이나 뱀파이어일수도

이 비극으로부터 64년이 지나고 2014년, 알시데스 기지아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본선 조추첨을 직접 하게 된다. 브라질에서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초청한 것. 그런데 이렇게 전의를 불태웠던 자국의 두번째 월드컵에서 새 역사를 창조할 것이라 기대했는데, 따지고 보면 새 역사를 창조한 게 맞기는 하다. 다만, 새로운 흑역사라서 문제였지.(...)

국제적으로는 안 그래도 브라질은 우루과이와는 사이가 나빴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서 우루과이에 대한 브라질의 분노와 증오가 증폭되었다. 원래부터 사이가 나쁜 두 나라가 이 사건으로 더 사이가 나빠졌다.

그리고, 이 경기의 패배를 라디오로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 한 축구 팬이 있었다. 그의 곁에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 소년은 아버지의 눈물을 보면서 브라질을 반드시 세계 최강의 팀으로 만들겠다고 맹세했다. 그의 이름은 에지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후에 축구의 황제가 되는 펠레였다.[7]

그 날 안타깝게 우루과이의 벽에 막혀 물거품이 되었던 브라질의 첫 우승 꿈은 그 바로 다음 월드컵인 1954 FIFA 월드컵 스위스에서는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과 단체 현피를 뜨는 등 개판을 치다가 망했지만 그 직후 8년 만인 1958년에 이르러서야 펠레의 활약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후 브라질은 1970년 월드컵 4강에서 우루과이를 만나 3:1로 복날 개패듯이 패 버리고 우루과이를 4등으로 떨어뜨린 뒤 우승을 차지했으며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이 비극이 일어났던 마라카낭에서 또 다시 우루과이를 꺾으며 마라카낭의 복수를 했다. 우루과이 : 고마해라, 마이 무읏따 아이가(...) 그리고 지금도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은 남미 지역 예선이나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만나면 이를 악문다. 브라질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우루과이와 맞붙게 되면 실력차 여부를 떠나서 "늬들에게만큼은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보여준다.

여담으로 이 사건을 나타내는 포르투갈어인 마라카나수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브라질 대표팀 또는 그 곳을 쓰는 프로 팀인 플라멩구, 바스쿠 다 가마, 플루미넨시, 보타포구 등의 팀에게 이길 가망이 없이 작살난 팀을 조롱하는 뜻의 일종의 으로 쓰인다.

이 비극을 씻고자 브라질은 64년 만에 자국에서 열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 통산 6회 우승에 도전했지만(...)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서쪽에 있는 벨루오리존치에서 열렸던 4강전에서 독일에게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7:1로 완패했다. 그와 동시에 다양하고 화려한 기록들을 안 좋은 쪽으로 갈아치우는 굴욕의 역사를 새로 써야 했다. 브라질 언론 및 펠레를 비롯한 축구인들은 대회 전부터 '마라카낭의 비극을 잊지 말라'라고 외쳤고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또한 "마라카낭의 비극은 없다"라고 하는 등, 64년 전의 비극을 씻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그 때와 비견될, 아니 더 심한 정도의 대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마라카낭에서 열리는 결승전엔 가지도 못 했으니 마라카낭의 비극은 없는 거 맞다. 아니, 그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최악의 참패다. 경기 직후 모 기사의 내용처럼 유니폼을 또 바꾸지 않을까하는 호사가들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브라질 축구 협회에선 바꿀 생각이 없는 듯.... 벨루오리존치 대참사를 겪은 브라질 대표팀리우데자네이루 대신 브라질리아로 이동하여 네덜란드와 3,4위전에서 맞붙었지만,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네덜란드에게 3:0으로 완패하면서 4위에 그쳤다.

거기에 정작 자기네들이 가고 싶어했던 마라카낭에서 열린 독일과의 결승전 상대는 철천지 앙숙인 아르헨티나가 올라가 버렸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신이 이건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는지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독일이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마리오 괴체의 골로 1:0으로 이기고 우승을 차지했다. 독일은 1950년의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 기념곡, 우승 메달을 미리 제작해 놓았었던 것처럼 월드컵 우승 기념 우표를 결승전이 끝나기 전에 미리 인쇄해 놓는 패기를 보였으며, 브라질과는 달리 괴체의 골로 독일의 우승이 확정됨으로서 우표가 폐기되는 일도 없게 되었다.#

5. 마라카낭 대첩의 영웅

브라질에서 우루과이로 입장을 바꾸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마라카낭 대첩'의 중심에는 당시 우루과이의 주장 옵둘리오 바렐라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 경기 전날 숙소에 브라질의 우승을 미리 기사로 내보낸 신문이 투척되자 그 신문지에다가 오줌을 누는 퍼포먼스를 한 그 선수 맞다. 경기 당일 당시 우루과이의 감독이었던 후안 로페스조차 홈 어드밴티지를 등에 업은 브라질의 막강한 화력을 의식하여 수비적인 플레이를 주문했는데 후안 로페스가 나가자마자 옵둘리오 바렐라가 말하기를

후안 로페스는 좋은 감독이야. 하지만 오늘은 그의 판단이 틀렸어. 만약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온다면 우리도 스페인이나 스웨덴과 같은 꼴을 당할 것이야.

그리고 세계 최고의 팀과 그 팬들을 두려워하지 마라는 식으로 감동적인 연설을 하다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경기를 하는 것은 제3자가 아니야. 쇼를 보여주자.

이 말에 선수들이 감동을 받아 킥오프를 하자마자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수비적인 플레이로 일관할 것이라던 예상을 완벽히 깨는 플레이였기 때문에 처음 브라질 선수들은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마...마이 당황하셨어요? 하지만 브라질의 화력은 막강했다. 어쩔 수 없이 브라질의 화력에 밀려 전반에만 17개의 슈팅을 허용하고 말았고, 골키퍼 로케 마스폴리의 선방으로 전반을 동점으로 마무리하였다. 후반 2분, 브라질이 선제골을 넣자마자 우루과이 선수들이고 코치진이고 완전 멘붕에 빠졌는데 유독 바렐라만이 평정심을 전혀 잃지 않고 공을 하프 라인에 가져다 놓으며

이제 우리가 본때를 보여줄 때가 왔다!

이렇게 외쳤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투지를 잃지 않은 진정한 멘탈갑이었다. 이 말에 우루과이 선수들은 더 맹렬하게 브라질의 골문을 두드렸다. 한 골 먹으면 모든게 끝이야라고 할 줄 알았는데 더 거세게 나오니 브라질 선수들은 당연히 더 당황해서 연신 허점을 드러냈다. 결국 브라질 선수들도 20만명이 들어찬 경기장과 국가적인 우승분위기에 압박을 받는 보통 사람이었던 것.바렐라 "계획대로야..." 우루과이 선수들이 그 허점을 잘 파고들어 동점 골과 역전골을 만들어 낸 것. 우리가 선제골을 허용했던 건 득점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바렐라가 마라카낭 대첩의 진정한 영웅인 셈. 그가 우루과이 선수들의 투지를 북돋워주지 않았다면 스키아피노의 동점골도, 기지아의 역전골도 없었을 테니까. 여담이지만 옵둘리오 바렐라는 경기가 끝난뒤, 그에게 달려들어 승리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순전히 우연이었지. 실로 천행이었다.

그리고 64년 후, 당시 우루과이의 영웅 기지아 옹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조 추첨식에 참석하였다! 물론 각오를 다지는 의미에서 일부러 초청한 것이다. 나이 탓인지 지팡이를 딛고 등장. 64년 전의 일을 생각하면 오묘한 상황일 듯.

이 경기에서 승리한 우루과이는 월드컵 역사상 최소경기 우승팀이라는 이색적인 기록(조별리그 포함해서 4전 3승 1무 0패)을 달성했으며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월드컵 역사상 최다경기를 치른 팀이라는 또다른 이색적인 기록(총 26경기, 지역예선 18경기 + 플레이오프 1경기 + 조별리그 3경기 + 토너먼트 3경기 + 3/4위전.)을 갖게 된다.

또한 첫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이기고 우승한 데에 이어 이 월드컵에서는 브라질을 이기고 우승한 우루과이는 당시 기준으로 남미최강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물론 이 수식어는 1970년대 이후 빛이 바래버리고 말았지만...

그리고 64년 후인 2014 브라질 월드컵,우루과이는 64년전 브라질을 초상집으로 만든 업보인지,이탈리아/잉글랜드/코스타리카와 한데 묶이는 월드컵 역사에 남을 죽음의 조에 걸려버렸다.그리고 1차전에서 코스타리카에게 사상 첫 패배를 당하며 불안한 출발을 했으나,이후 잉글랜드와 이탈리아를 잡으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의 심장, 수지는 핵이빨로 16강전 직전에 시즌 아웃당했고,결국 16강에서 64년 만에 다시 찾은 마라카낭에서 샤키라의 동네 팀에게 2:0으로 무너졌다.브라질 사람들은 우루과이가 마라카낭에서 발리는 모습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꼈을 듯...그 다음에 자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대참사가 터졌지만

6. 유사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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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리고 아르헨티나가 다시 참가한 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서 아르헨티나는 1라운드도 통과를 못했다. 그리고 그 월드컵은 브라질 우ㅋ승ㅋ.
  • [2] 미국의 원래 팀은 1930 FIFA 월드컵 우루과이에서 준결승에 진출할 정도로 실력이 있는 팀이였지만 이 월드컵에서의 미국 팀은 그딴 거 없다. 이 월드컵에서 미국 팀은 한국전쟁 때문에 원래 참가하기로 되어 있던 선수들이 떼거지로 징발당해 버려서 그 빈 자리를 불법 체류자, 유학생들로 대충 메워서 급히 만든 팀이였는데 그런 팀한테 세계 최정예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었던 잉글랜드가 일격을 먹은 것이다. 결승골을 넣은 게티엔즈는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되었다. 참고로 경기가 끝나고 한 잉글랜드 신문사는 현지에서 날아온 '잉글랜드 0:1 미국' 메세지를 '탈자가 났군?' 하고는 신문에 <잉글랜드 10:1 미국>으로 발표했다가 망신을 산 헤프닝까지 있었다.
  • [3] 우루과이는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 [4] 또 다른 별명으로는 베르데-아마렐라. 우리말로 하면 초록-노랑이다. 이 둘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별명이기도 한데 유니폼 색깔에서 따온 것이다.
  • [5] 그 이후 흰색 유니폼이 등장한 적은 있다. 2004년 FIFA 100주년 기념 친선 경기에서 100년 전 유니폼을 재현했을 때 브라질이 입고 뛴 것이 바로 이 흰색 유니폼. 참고로 경기는 0:0 무승부.
  • [6] 사실, 골키퍼 바르보사와 수비진 모두가 이 책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을 보면 그렇게 골문을 두드리고도 골을 뽑아내지 못한 공격진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는게 맞았다. 수비진의 잘못은 브라질에 비하면 훨씬 적었던 우루과이의 몇 번의 공격에서 골을 내줬다는 것. 그것 뿐이다.
  • [7] 실제로 1970년 월드컵에서 브라질의 4강 상대가 우루과이였는데 그것을 알게 되었을 때 누구보다도 기뻐했다고 한다. 나이대가 비슷한 동료들은 물론이고 당시 아기였던 젊은 선수들까지 4강전이 끝날 때까지 틈만 나면 모두 불러 모아서 이 시합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왜 반드시 이겨야 하는지를 역설하고 다녔고 당시 해설자로 멕시코에 와 있던 지지뉴와 아데미르도 브라질 선수들에게 우승을 못해도 좋으니 반드시 우루과이만큼은 꺾어달라고 이야기 하고 다녔다. 결국 자신이 선두에 나서 우루과이에 승리를 거두며 어릴 적 아버지와 예수상 앞에서 했던 맹세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