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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틴즈

last modified: 2015-04-11 20:28:51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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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틴즈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상징적인 영국 왕실 근위대 자켓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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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재결합 당시 NME 프런트 커버 B컷.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근데 이 네 명이 합해서 해댄 마약의 양에 비하면 무척이나 동안들이다.가 아니라 멀쩡하다 해야겠지[1]

(첫째 사진 왼쪽부터 차례대로)
존 하살 - 베이스, 리듬 기타[2]
칼 바랏 - 보컬, 리드 기타
게리 파월 - 드럼
피트 도허티 - 보컬, 리듬 기타, 하모니카, 피아노

The Libertines Discography
Up the BracketBabyshambles SessionsDon't Look Back Into the Sun
The LibertinesTime For Heroes

Contents

1. 개요
2. 고난했던 무명 시절(1997~2002)
3.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과 스트록스, 그리고 런던의 대항마
4. 데뷔 이후 불거지는 물제들, 피트의 마약 의존도 증가와 베이비솀블즈 결성(2003)
5. 음악적 스타일
6. 라이브 퍼포먼스
7. 앨범/트랙 해설
7.1. What A Waster 싱글(2002.6)
7.2. Up The Bracket 싱글(2002.9)
7.3. 데뷔 Up The Bracket(2002.10)
7.4. Time For Heroes 싱글(2003.1)
7.5. Don't Look Back into the Sun 싱글(2003.8)
7.6. Can't Stand Me Now 싱글(2004.8.1)
7.7. 2집 The Libertines(2004.8.30)
7.8. What Became of the Likely Lads 싱글(2004.10)
7.9. Time for Heroes – The Best of The Libertines (2007.10)
8. 기타

1. 개요

"세상에는 훌륭한 밴드와 존나 훌륭한 밴드가 있다. 사람들이 옷입는 방식, 말하는 스타일을 바꾸고,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는 밴드는 후자의 경우다. 그런 의미에서 오아시스 세대가 물러간 후 공백기가 생겼을 때 리버틴즈가 나타났고,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우리보다 더 미친 놈들이었다. 우린 기껏해야 술담배에 코카인 좀 하면서 밤새 노는 정도였는데, 이 놈들은 헤로인과 크랙, 그리고 당신들도 알다시피, 자해를 했다."[3]
- 노엘 갤러거

"오아시스가 온 공영주택이[4] 열광적으로 합창하는 찬가라면, 리버틴즈는 그 뒷공단 쓰레기통에 처박혀 자다 느지막이 일어나선, 오늘이 무슨 요일인가하고 벙쪄있는 그런 류다."
- 피트 도허티, 위 갤러거의 발언에 대꾸하며[5]

"리버틴즈가 이런 지경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최고의 영국 밴드라고 생각해요. 리버틴즈는 영국 음악의 뛰어남을 선두에 앞서서 보여주고 있는 밴드이고, 우리 세대 최고의 밴드로 역사에 기록될 그런 밴드니까요. 피트가 어서 나아져서 다시 밴드와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범죄가 될거라고요!"
- 대니얼 래드클리프

"사상 최초로 팬과 뮤지션의 장르를 허물어버린 밴드이며, 사실상 밴드와 팬이 하나의 공동체였다. 리버틴즈에 속했든 아니든 누구든 자신이 오늘부로 리버틴이라고 선언하면 리버틴이 될 수 있다. 리버틴즈는 그런 밴드다."
- 코너 맥니콜라스


영국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인디 록 밴드

영국 록 역사 사상 가장 매스컴에 의해 과대평가 받은 동시에 음악적으로 가장 평가절하 된 밴드. 필요할 때 쓰고 소용없으면 버리는 영국 매스컴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영국 매스컴과 대중이 한 인간을 묻으려고 작정하면 얼마나 피를 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비참한 사례. 물론, 변명의 여지도 없다. 동시에 마약이 한 사람을 얼마나 나락으로 내몰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 증인과도 같은 밴드.

영국, 영국, 영국...영국의 영국을 위한 영국에 의한 정말 영국 색깔 진한 밴드.

2년 활동하며 앨범 2개 내고 10년간 장사하는 밴드

The Libertines.

피트 도허티칼 바랏이 중심이 되어 1997년도~2004년도에 활동했던 런던 출신 포스트 개러지 록 리바이벌/인디 록 밴드. 줄여서 립스(Libs)[6]라 한다.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의 주역 중 하나이나, 묘하게 리바이벌 씬에서 소외되는 경향이 있는데 리바이벌 씬의 밴드들이 전체적으로 뉴욕 출신에 인터내셔널 한 인지도를 자랑하는데 비해 리버틴즈는 팬베이스가 거의 영국에 집중되어 있다. 정확하게 따지자면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인디 락 밴드.
그리고 리바이벌 씬의 밴드들 중 가장 단명했다.
실질적으로 유명세를 탄 2002년도부터 약 2년 조금 넘게 활동했으며. 밴드는 포텐이 터지며 인기가 절정에 다다랐을 때 프론트맨 피트 도허티와 칼 바랏의 불화 및 피트 도허티의 과도한 마약 상용 등의 이유로 2004년 말 그대로 깨졌다.

현재는 2010년 8월 리딩/리즈 메인스테이지에서 공연한 후 다시 잠정적으로 해체된 상태이다(hiatus). 이 재결합 공연이 이루어지기까지 약 300여번의 재결합 루머가 돌았다.

해외 팬포럼이 비교적 활성화 돼있다. http://www.albionarks.com/index.php 는 다수의 리버틴즈 음원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이트.. 였지만 현재는 폐쇄된 상태이고, 대신에 새로운 팬포럼이 개설되었다. http://upthealbion.com/bands.php

2014년 7월 5일 Hyde Park BST에서 재결합 공연이 확정되었다![7]

단발성 재결합이 아닌 2015년에 리버틴즈 3집이 발매된다고 칼 바랏이 직접 밝혔다.
http://www.nme.com/news/the-libertines/78435?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utm_campaign=libs
근데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의외로 팬들은 14년말/15년에 발매될 도허티의 솔로 2집을 더 기대하는 중이다. 리버틴즈 팬들은 사실 거의 초연한 상태다. 앞서 재결합 루머만 300번이나 돌았던 밴드라 신보 발매는 1000번쯤의 루머가 돌아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중. 포기하면 편해

2014년 12월 새 앨범을 발매하기 위해 버진 레코드와 계약했다고 한다.인디탈출#

2. 고난했던 무명 시절(1997~2002)

1997년 브루넬 대학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있던 칼 바랏은 같은 학교 친구이자 플랫 메이트였던 에이미-조 도허티를 통해 피트 도허티를 처음 만나게 된다. 당시 칼은 학교에 환멸감을 느끼고 있었던 시절이었고, 스미스를 즐겨 듣던 어린 피트는 '모리세이-조니 마'처럼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찾아 음악을 하기를 꿈꿨다. 적절한 시기에 만난 둘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고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명은 마르키스 드 사드의 소설 <소돔 120일>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설의 다른 이름이 '난봉꾼들'의 욕망', Lusts of the Libertines이다. The Libertines라는 밴드명을 가지기 전, The Albion[8], 이라는 이름도 후보에 있었는데, 피트가 말하길 밴드명으로 하기엔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여 후보에서 탈락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스티븐 베들로(Steven Bedlow)가 보컬을 맡았었고 칼과 피트가 기타를 쳤다. 이외에 첼리스트,드럼,베이스(레이저라이트의 조니 보렐) 등 다양한 멤버들이 거쳐갔다. 밴드 초기에도 피트와 칼은 끓임없이 갈등을 빚으며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했고 이 와중에 베들로가 나가고 리버틴즈 역사에 빠놓을 수 없는 그 유명한 매니저 배니 푸치(Banny Poostchi)를 새로 들이면서 첼리스트와 드러머를 정리, 교체하고 밴드의 부진 때문에 탈퇴한 베이시스트 존 하셀도 다시 불러들이며 온전한 라인업을 구성하게된다.

3.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과 스트록스, 그리고 런던의 대항마


포텐 폭발하기 직전의 2001년경 리버틴즈. 이 때 벌써 둘은 4년지기 친구였다. [9]

데뷔 당시인 2001년에, 스트록스Is This It 발매를 기점으로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무브먼트가 시작됐다.
그와 발맞춰 호주의 바인스, 미국(디트로이트)의 화이트 스트라입스, 스웨덴의 하이브스라는 3개의 밴드가 나온다.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알아챘겠지만, 그 상황에서 소위 록 좀 한다는 나라인 영국이 새로운 이 록 무브먼트에 당당히 유니온 잭을 걸고 활동할만한 밴드를 단 하나도 배출시키지 못했고, 이는 당시 영국 음악계에 굉장히 자존심 상하는 쪽팔린 사건이었던 것이다. 뭐 포스트 브릿팝이 있었고, 콜드플레이란 2014년 현재 그 어느 밴드보다 인기가 많은 걸출한 밴드도 UK차트 1위를 찍으며 등장했던 시기지만.... 어쨋든 브릿팝이 망해버린 후 오아시스는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같은 앨범이나 내고 믿을만한 록 밴드는 라디오헤드와 트레비스, 콜드플레이같은 NME가 싫어할 만한 밴드밖에 없게 되었으니 대서양 건너에서 새로운 밴드들이 등장해 음악계의 정국을 주도하는 걸 죽치고 그저 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빠진 것이다. 당시 2001, 2002년 영국은 스트록스를 위시한 온갖 시시껄렁 카피캣 밴드들이 넘쳐났다.

보다 못한 NME에선 영국적인 음악 장르인 개러지 록[10] 을 스트록스나 화이트 스트라입스 같은 미국 밴드에게서 찾아내려고하는 억지스러운 상황까지 들고 나온다. 이 잡지는 스트록스를 완전히 무슨 자기네 영국 밴드라도 되는마냥 귀여워해주고 칭찬해주고해주는 등 온갖 억지를 다 부렸었다.
사실상 그만큼 영국 록계의 상황이 안습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드디어 영국에서 개러지 록을 하는 리버틴즈가 나타나자 영국의 언론은 벤드에게 엄청난 관심과 설레발을 보내게된다.

4. 데뷔 이후 불거지는 물제들, 피트의 마약 의존도 증가와 베이비솀블즈 결성(2003)

기본적으로 피트 도허티 항목 참고.

밴드가 1집 녹음 기간 동시에 투어롤 하는 동안 피트의 약물 사용이 과다하게 늘어난다. 본격적으로 방구석 생활에서 나오면서 돈을 벌기 시작하자 전부터 문제가 있었던 약물 중독 증상이 심히 악화된 것(이 기간 동안 피트는 노엘이 말한것처럼 드디어 크랙 코카인과 헤로인을 동시에 쓰기 시작한다.). 이 때의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피트는 (후에 정식으로 출판될) 일기장과 그보다 자주 인터넷을 이용하여 밴드 팬포럼에 적기도 하였다. 팬포럼에 들어가서 글을 올릴 때 거의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시도때도 없이 아무때나 글을 남기곤 했는데, 어쩔 때는 굉장히 의기소침해하고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쩔때는 얌전하고 행복해 보이는 등 팬들한테 걱정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동시에 이 때쯤 밴드 내부에 분열이 생기고 피트와 칼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투어하는 동안 생기고, 당시 투어를 관람한 팬들이 그 미묘한 분위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2003년 5월 쯤 밴드는 다음 앨범 작업의 초고를 진행함과 동시에 밴드를 프로모트하고자 미국 뉴욕으로 가는데, 거기서 Babyshambles Sessions라는 유명한 밴드 세션을 녹음한다. 그 때 즈음 피트와 칼이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고 우정을 계속 유지하자는 다짐아래 서로의 팔등(피트는 칼의 팔을, 칼은 피트의 팔을)에 Libertine이란 문신을 새긴다. 하지만, 뉴욕에서 투어를 하면서(뉴욕의 그 유명한 CBGB에 들러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칼은 중독 증상이 심각해지는 피트를 목격하게되는데, 나중에 피트가 대놓고 마약 딜러들을 숙소에까지 합숙시키자 칼은 크게 화를 낸다. 잔뜩 성질 뻗친 칼은 먼저 런던으로 도중에 떠나고, 아직 미처 다 녹음하지 못한 Babyshambles Sessions을 피트가 베이시스트 존과 함께 녹음을 끝마친다. 그리고 다 끝난 녹음집을 뉴욕의 한 리버틴즈 팬한테 넘겨주고, 피트가 꼭 무료로 인터넷에 배포하고, 원본 CD만 소장하라는 부탁을 남긴 후 급히 칼을 따라 런던으로 밴드를 데리고 떠났다. 이후 이 팬은 인터넷에 이 세션을 풀었고, 이 세션으로 리버틴즈는 대중들에게 새로운 앨범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피트 도허티/칼 배럿의 작곡 능력은 다시 한 번 인정받게 된다.

돌아온 피트는 한 동안 칼 없이 공연을 계속 돌았고, 밴드의 새로운 싱글인 Don't Look Back Into The Sun이 버나드 버틀러[11] 아래 프로듀스 되고 있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 당시 피트와 칼의 관계를 보여주는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꼼꼼한 성격의 버나드 버틀러와 해픈 스타일의 피트는 죽이 잘 맞진 않았지만 버틀러는 이 노래의 엄청난 대박 조짐을 본 후 참아주며 같이 일했다.[12]

이 때 피트가 칼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다가오는 칼의 생일에 맞춰 스페셜 공연을 준비한다. 근데 칼은 이미 자신의 몇몇 친구들에 의해 주최된 파티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고, 소식을 받은 칼을 보자 파티를 주최한 친구들이 떠나지 말 것을 충고한다. 칼은 피트의 진심을 오해한채 또 마약딜러들 잔뜩 모아놓고 밤새 크랙, 해로인으로 찌들 것 같은 피트의 사적파티에 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결국 피트는 혼자서 그 공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피트는 이 때 칼에 대해서 엄청난 배신감을 느낀다. 팬들과 진행된 그 파티에서 피트는 술과 약에 쩔도록 새벽내내 공연하다가 동이 틀 때 쯤 그루피들[13]과 함께 숙소로 돌아간다. 다음 날 리버틴즈는 유럽 투어의 시작으로 독일로 가는 기차에 타기로 되었는데, 여기에 피트가 오지 않는다.

문제는 밴드가 스케쥴 및 레코드사의 압박 때문에 피트를 찾아가지 않고, 밴드도 피트에 대해 굉장히 화가 나있던 터라 피트의 기타 파트를 맡을 사람인 앤소니 로사몬도[14]와 합의를 본 후에 피트 없이 공연을 하기로 결정해버린 것이다.
칼은 밴드가 자기 중심의 원톱체제인 것마냥 행동하며 피트가 마약에서 깔끔하게 손 씻지 않는 이상 밴드에 다시 못 오도록 못을 박는다. 그리고 며칠 후 도허티 없이 리버틴즈가 유럽 투어를 끝내고 일본 투어까지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피트가 접한다.

배신감에 화난 피트는 밴드가 자신을 쫓아내고 뻔뻔하게 공연을 돈다고 생각했고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자신의 음악 프로젝트이자 리버틴즈가 뉴욕에서 녹음한 Babyshambles Sessions의 이름을 딴 베이비솀블즈란 밴드명으로 활동하면서 몇몇 아는 측근들과 함께 공연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포스트 리버틴즈 밴드 베이비솀블즈의 실질적인 탄생이었다(2003년).
이 때 공연이 유난히 막장이 많았고, 피트는 내내 약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중독자의 길을 걷는다. 약>공연>술>담배>약의 악순환적인 패턴에 빠져 생활을 하는 자기 자신이 점점 한심해지고 그에 대해 점점 더 화가 나자 마약을 더하게 되었고, 당장 약할 돈이 떨어져서 팬들하테 몇 파운드 급히 얻어 약을 살 정도까지 간다.

그러던 중 8월 11일, 내내 화가 난 피트가 또 다시 돈이 떨어져 약을 구할 수 없자, 마침 혼자 밴드를 데리고 떠난 칼이 생각나 홧김에 칼의 저택에 무단침입하는 큰 실수를 저지른다. 200파운드 정도 되는 돈을 챙기던 피트는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 감방으로 가게 된다. 소식을 듣고 급히 일본에서 돌아온 칼이 감방에서 피트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감옥을 향한다. 피트는 칼의 면회요청을 거절하며 얼굴 한 번 보지 않은 채 감방에 남는다. 하지만 이번에 화가 난건 피트만이 아니었다. 칼 역시 이 사건으로 적잖이 놀라고 화난 것이다. 칼도 면회요청을 거절 당하자 꽤씸한 마음에 피트를 두고 일단 혼자 돌아간다. 하지만 칼은 이후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피트를 감옥에 두고 온 후 계속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피트가 감옥에서 지내는 동안 동료 죄수들에게 집단 폭행 당하여 얻어터지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자[15] 독방에 갇히게 되고 마약 없이 버텨야 하는 피트는 생지옥을 경험한다. 며칠 동안 온갖 자해를 하는 등 버텨보지만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피트가 결국 칼하고 면회를 요청한다. 면회나온 칼에게 감옥에서 제발 빨리 풀어달라는 부탁만 후딱 남긴 후 피트는 다시 돌아갔고 칼이 보석비를 잔뜩 물어줘서 판사가 2개월로 감형시켜준다. 9월 7일에 일어난 일이다. 감옥에서 지내면서 피트는 이 때의 심정을 고스란히 일기에 적는다.

8월 18일, 리버틴즈의 새싱글 Don't Look Back Into The Sun이 발매된다. 싱글은 대히트를 쳤고 영국 언론은 또 다시 이 엄청난 싱글에 설레발을 친다. 다만 이 싱글이 그렇게 설레발을 받을만큼 훌륭했던 것도 사실이고, 아직까지 리버틴즈 최고의 명곡으로 남는다. 딱잘라 말해서 객관적으로 이 곡은 명곡인게 사실. 팬들은 이 노래의 가사[16]를 통해서 피트와 칼의 관계를 짐작해 볼 수 있었고 이 때부터 리버틴즈가 얼마 못 가 해체할 분위기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리버틴즈가 점점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얼마 못 갈 밴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러 온 것. 더군다나 감옥에 있는 피트와 밴드 투어를 돌고 있는 칼의 관계가 바깥에 알려지면서 밴드는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이 때 아직 피트가 감옥에 있었으므로 밴드는 계속 앤소니 로사몬도와 공연을 돌고 있었다.

하지만 알게모르게 칼은 밴드가 인기가 치솟음에도 불구하고 피트의 팬덤과 밴드의 팬덤이 미묘하게 나뉘는걸 느낀다. 칼 역시 이 시기 팬포럼에 많은 글을 남기면서 자신의 심정을 남기면서까지 계속 무리한 스케줄의 투어를 진행한다. 칼 역시 기분이 안 좋은건 매한가지라 술과 담배를 끼고 살면서 밴드 생활을 계속해나간다. 시간이 흘러 10월이 되었고 피트의 출소일이 몇 일 안 남았다는 소식을 칼이 접한다.

5. 음악적 스타일

기본적으로 비틀즈로부터 시작한 정통 영국 로큰롤 계승하였으며, 이후 80년대 펑크 록과 모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영국 인디 록밴드의 필요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는 더 스미스의 중독성 강한 멜로디에 마찬가지로 멜로디도 강하지만 그보다 조금 음악적 폭이 넓었던 선배 더 클래시 이 둘을 잘 버무렸다는 평을 받는다. 저 둘을 정말 세련되게 혼합한 느낌.

도허티는 더 스미스의 'Still Ill'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큰 의미를 갖는 노래라고 밝혔고[17], 더 잼, 섹스 피스톨즈, 버즈콕스, 스 앤 데이브즈를 들으며 자랐다. 칼 배럿은 인디에 입문하기 전까지 너바나스매싱 펌킨스를 비롯한 그런지얼터너티브 록 밴드에 빠졌었고 더 도어즈, 벨벳 언더그라운드 및 기타 거장 고 라인하르트 등을 좋아한다고 한다. 성향차에서 나타나듯 기타 실력은 칼이 압도적으로 좋으며 실제로 피트 도허티에게 기타를 가르친 것도 그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 다 자국의 국민밴드가 뜨는 것부터 슬슬 전성기가 질 때까지 가장 감성이 풍부할 사춘기 시절 때 직접 보고 들으며 자랐다.] [18]

6. 라이브 퍼포먼스

리버틴즈가 (수량적으로는)팬층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팬심이 두터운 이유 중 하나는 다른 밴드와는 차별화된 라이브 공연을 가졌기 때문이다.
많은 음악 잡지들의 유명한 긱(공연)100위 목록이나 리스트에서 항상 5,6개씩은 꾸준히 뽑힐 정도로 라이브 퍼포먼스가 대단했는데, 이는 리버틴즈의 퍼포먼스는 단순히 멋지고 화려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팬들과의 소통이였다고 볼 수 있었단 점이 바로 저러한 리스트에 올라간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인디 밴드들이 지금 상당히 팬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졌지만 이들 전성기만 하지 못하며(예내들은 한창 때 해체했기 때문에 전성기밖엔 없다. 물론 2004년은 여러모로 찝찝하고 어두웠지만;;..)그 전의 인디 밴드들에겐 기대조차 하기 힘들었다. 최근 영국 인디 및 언더 그룹이나 밴드들은 리버틴즈 전후로 공연 스타일 애티튜드가 나뉜다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가수들이나 뮤지션들이 관객 앞에 서서, 큰 공연 같은 경우는 거리를 수십미터씩 유지하고 중간에 안전요원까지 배치한 채 윙크하고, 립 서비스를 해주고, 열창을 하고 인사를 하고 무대뒤로 사라지는 래퍼토리였다면(큰 공연이든 작은 공연이든) 리버틴즈는 즉석으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게릴라 공연을 몇 시간전 공지하고 팬들과 후딱 합의 본 후에 공연 장소로 직행, 심지어 팬들의 집으로도 이동하여 팬들 중 생일이나 기념일이 있으면 기념공연 차 2차 공연을 펼쳤고 그러한 이유 없이도 항상 연달아 공연하는 경우가 많았다. 무료로. 그러고도 그 공연이 끝나면 2차, 3차로 자신들의 숙소까지 팬들을 데리고 가서 계속 공연을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특히 큰 공연이 끝나면 자기네 숙소에서 바로 2차 공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간 그러한 공연들 와중에 스테이지 인베이전(관객들의 무대난입으로 인한 공연 중단)이 많이 일어났지만 어떤 물건 하나 부수거나 하지 않는 등 통상 헤비메탈이나 하드 락 공연에서 일어나는 난폭한 상황 없이 수백명의 팬들이 흥에 겨워 뛰어다니고, 서로 껴안는 등 하였다(마릴린 맨슨 라이브 공연 같은걸 생각하면 매우 곤란하다.). 그런 와중에 피트와 칼은 팬들에게 둘러싸여 좁혀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자연스럽게 기타까지 치기 힘들 정도의 거리로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리버틴즈의 라이브 공연은 매우 인티밋한 마이크 셰어링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사연들로부터 중요한 점은 단순히 하나하나의 이벤트보다는 이전까지의 인디 밴드들과는 그 애티튜나 스타일에 차이를 보임으로써 후배 밴드나 뮤지션들의 퍼포먼스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공연을 관람하는 관객 입장에서도 이렇게 밴드와 깊게 엮인적인 전에도 없었던 경험이었기에 신선했고, 정말 몇몇 팬들은 밴드와 진짜 친해지기도 했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유튜브를 통해 이런 자료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으며 그 중에는 피트도허티와 같이 작업했던 뮤지션이(추측) 올린 동영상도 있다.
<iframe width="640" height="480" src="http://www.youtube.com/embed/_jscTzCHXi8"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베이비 샘블스 3집에 수록될 곡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조지마이클의 라스트 크리스마스 커버등 수 많은 동영상이 있다.

"지금까지 리버틴즈만큼 팬덤과 깊게 소통하고 교류한 밴드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리버틴즈는 팬들이 가장 가까이서, 마치 친구처럼 그들과 어울릴 수 있게 해주었다. 리버틴즈는 심지어 그들 팬들 중 여러 사람들과 친구 관계로 지냈고,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 Q magazine

7. 앨범/트랙 해설


1집 반사회적, 데모적 분위기에 비해 2집 분위기는 아예 밴드 내부 사정이 중요 모티프가 되어서 그런지 거의 다 피트와 칼에 대한 관계를 노래로 한 곡들이 많다. 애초에 앨범명이 The Libertines(셀프 타이틀드)로, 앨범 커버의 인상적인 피트와 칼이 서로 함께 있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미묘한 분위기의 사진은 록 앨범 역사상 가장 인상적인 앨범 슬리브 중 하나로 평가받게 되었으며, 아직도 후배 뮤지션들이나 배우, 코미디언들이 종종 패러디하기도 한다.

총 싱글 6개, EP 4개, 정규 앨범 2개(정확히는 베스트 앨범 때문에 3개), 21개의 데모/세션/부틀렉을 가지고 있다.

이쯤되면 당연히 명곡들이 무지하게 많다. 원히트 밴드가 절대 아닌 셈.
참고로 모든 곡이 도허티/배럿 작사, 작곡이다. 물론 세션까지 포함할 경우 경우 베이시스트 존 해샐이 작곡한 Sister, Sister같은 노래도 있다.

7.1. What A Waster 싱글(2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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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데뷔 싱글. 정규 1집에는 실리지 않았으나 Mocking Bird와 함께 미국판/일본판과 이후 리패키지 버전에선 보너스 트랙으로 실렸다. Mayday같은 경우 What A Waster와 함께 호주판으로 실렸다.

리버틴즈 데뷔 음반이기도 하고 아직까지 팬 훼이보릿이며, 당시 어려웠던 차트 진출에도 불구하고 #37을 기록했다. 차트 Top40을 깨는게 상당히 의미가 있는 일인데, 설명을 하자면, 영국 싱글차트는 본디 200위까지 기록이 된다. 하지만 당연히 뒤로 갈수록 거의 관심을 못 받게 된다(돈도 거의 용돈벌이 수준밖에 되지도 않고). 거기서 메인스트림에 진출할 수 있느냐 없느냐 기준선이 되는 중요한 성적이 바로 BBC에서 주관하는 라디오에서 에어를 탈 수 있는 40위 컷트라인인 것이다. 거기에서 간신히 37위로 차트에 진입한 것이다. 더군다나 데뷔 당시 영국 음악 차트는 온갖 미국 펑크락/팝락/뉴메탈 밴드들이[19]대거 인기몰이했던 때이기 때문에 영국냄새 지인하게 풍기는 자국 밴드인 리버틴즈가 차트에 진입한건 영국 음악계의 굉장한 자부심이 되는 사건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브릿팝 씬까지 좆망이었던 때였다.[20]

곡에 욕이 하도 많이 들어가서 라디오에 에어될 때 엄청나게 편집했어야 했다. two bob cunt, fucking waster, div 등등 엄청나게 많이 들어간다. [21]

1. What a Waster
약간은 피트 도허티한테 쏠린 리버틴즈스러운 곡이다. 워낙 위에 다 설명해놓았으니 참고.
2. I Get Along
3. Mayday
1분 2초짜리 괴성과 함성, 그리고 칼 바랏의 기타가 독주하는 곡. 초기에 종종 라이브에서 불렀다. B-sides곡치고 좋은 퀄리티의 곡이라는게 중론.

7.2. Up The Bracket 싱글(2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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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싱글이자 1집 첫번째 싱글로 컷트된 곡. 리버틴즈 대표곡 중 하나이다.[22]

CDS 1

1. Up the Bracket

2. Boys in the Band

3. Skag & Bone Man

CDS 2

1. Up the Bracket

2. The Delaney

3. Plan A

7"

1. Up the Bracket

2. Boys in the Band

7.3. 데뷔 Up The Bracket(2002.10)

Up the Bracket 항목 참고.

7.4. Time For Heroes 싱글(2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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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Don't Look Back into the Sun 싱글(2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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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Can't Stand Me Now 싱글(2004.8.1)


7.7. 2집 The Libertines(2004.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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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피트의 감옥 출소 당일날 찍은 사진으로, 칼과 피트가 불과 몇 시간전에 만나 바로 재결합 공연을 하러가기 직전 공연장 백스테이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은 Roger Sargent도 이 사진 한 장으로 엄청나게 유명해졌고(후에도 양질의 사진을 계속 찍게 된다.), 이 사진 자체가 굉장히 유명한 앨범자켓이 되기도 한다. 롤링 스톤지에서 뽑은 최근 10년간 가장 중요한 록 앨범 사진 선정 앨범자켓이기도 하다.

1. Can't Stand Me Now
2집 첫번째 싱글이자 싱글 차트 2위 곡으로 리버틴즈 곡 중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이다.[23]
서로에게 질타를 보내면서도 아직까지 서로의 우정을 상기시키는 대화형식의 인상적인 가사와 굉장히 슬픈 단조스러운(minor)리프와 코드 등이 후반으로 치달을 수록 점점 격렬해지는 가장 인상적인 곡 중 하나.

이 한 곡으로 당시 피트와 칼의 관계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24]

2. Last Post on the Bugle

3. Don't Be Shy

4. The Man Who Would Be King
피트 도허티가 앨범의 베스트 트랙으로 뽑은 곡.

5. Music When the Lights Go Out

6. Narcissist

칼이 대놓고 피트를 디스한 곡이다. 2집 앨범은 1번 트랙부터 순차적으로 녹음되었는데[25] 해당 트랙의 보컬을 녹음할 때 피트가 아무 생각없이 칼이 부르는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다가 내용을 듣고 화가나서 녹음이 끝나자마자 녹음실 부스에서 칼을 넘어트려서 팼다고 한다.

7. The Ha Ha Wall

8. Arbeit Macht Frei
아우슈비츠 수용소 표제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노동이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뜻이다. 짧지만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 밴드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곡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가사를 보면 홀로코스트의 정치적 탄압과 현실 상황을 연계시키는 쪽에 가깝다.
칠드런 오브 맨에서 외국인 이민자 수용소 들어가기 전에 이민자들을 겁주기 위해 틀어놓는 음악으로 쓰였다.

9. Campaign of Hate

10. What Katie Did
동명의 동화소설 속의 소녀에 대한 송가냐, 케이트 모스에 대한 찬가[26]냐, 이도저도 아니면 마약 사용에 관한 비유냐(가사를 보면 굉장히 마약에 대한 암시가 많다.) 등등 온갖 떡밥을 불러일으켰던 곡으로, 가사는 사실상 앞에 서술된 모든 것들을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11. Tomblands

12. The Saga

13. Road to Ruin

14. What Became of the Likely Lads

7.8. What Became of the Likely Lads 싱글(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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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Time for Heroes – The Best of The Libertines (2007.10)


메인 항목: Time For Heroes

관심이 있거나 처음 접한다면 꼴랑 앨범 2개만 냈기에 공식적인 앨범 곡들을 다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8. 기타



더군다나 세션들이나 데모들을 굉장히 많이 웹상에 굉장히 많이 푼 밴드이기도 한데, 그런 곡들을 찾다보면(팬이라면 필수적으로 다 들어보게 되는 Babyshambles Sessions라든지) 아예 완전히 다른 느낌의 같은 곡이나 (후에 다른 앨범에 실릴) 새로운 곡들을 들어 볼 수 있는 등 여러모로 자료량이 많은 편.

참고로 1, 2집 모두 더 클래시의 믹 존스가 프로듀싱해줬다. 사실 더 클래시한테 많은 영향을 받은 밴드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어느 정도 팬층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개러지 밴드 중에서도 인지도 제일 낮은 편. 팬들이 있더라도 거의 얼빠다.. 일단 스트록스는 Is This It이라는 '최초'타이틀이 있고 인터폴이 피치포크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현대적인 감성을 잘 살렸고, 악틱 몽키즈가 이제는 인디라고 부르기에는 미안할 거인이 된 반면 리버틴즈는 지극히 영국적인 은유와 시적 가사 및 현지에서나 쓰이는 욕설이 많다. 음악은 멜로디라인은 뜯어보면 상당히 달달한데 의도적으로 거친 사운드를 내려해서 귀가 듣기 아프다. 그리고...피트 도허티가 마약을 해도 해도 정말 너무 많이했다. 그가 리버틴즈를 파멸시켰다고 밖엔 볼 수 없다. 말 그대로 자승자박이라 본인들도 할 말은 없는 셈.
그러나 이 모든 구구절절한 변명에도 주지할 사실은, 어쨌거나 겨우 앨범 2개 내고 2년 조금 넘게 활동한 (액면적인 활동시기상으론) 밴드라는 것이다. 데뷔와 2번째 앨범에서 이렇듯 영국을 흔들었다... 기 보다는 NME를 흔든 밴드는 이들이 유일하지 않을까.

피트 도허티는 영국과 프랑스에 한정[27]해서 연예인급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정도다.[28] 당연하지만 미국에서도 그게 누구세요?취급이다. 리버틴즈가 데뷔 초기에 뉴욕까지 날아가서 데이빗 레터맨 쇼까지 나왔단 걸 감안하면... 지나온 그 막장의 역사가 무상할 따름.
팬층이 확실해 내일 공연까지 가졌던 일본과는 달리 국내 같은 경우 앨범도 라이센스되지도 않았다.(베이비솀블즈나 더티 프리티 씽은 라이센스되었다.) 다만 이쪽은 베이비솀블즈는 EMI(현재는 워너뮤직 소속)의 팔로폰(Parlophone)에 소속되어있고 더티 프리티 씽은 유니버셜 뮤직 그룹의 버티고(Vertigo)에 소속되어있어 라이센스가 쉬웠을 듯 하다. 이 둘은 모두 한국에도 지사를 두고있는 거대 음반사이기 때문.


러프 트레이드[29]라는 인제는 메이저인 인디 레이블에 계약해서 모든 앨범들을 발매했다.
우여곡절 끝에 힘들게 따낸 계약이고,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초기 매니저 배니 스푸치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High Society에 갔어도(언더 인디 라벨) 1집은 명음반이 되었을 거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믹 존스, 버나드 버틀러같은 거물들과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게 점들이 바로 메이저 레코드 라벨과 계약하여 얻게 되는 굉장한 어드밴티지이다. 물론 더욱 거칠었을지는 모른다

어쨌건, 굵고 짧게 활동한 밴드인만큼 열성 팬들이 많다(현지에서 'Hard Libertinees'라 불린다.). 비록 해체했으나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오히려 미련을 두지도 않고(사실 유지 자체가 불가능한 게 사실이지만) 알아서 물러선 점, 어찌됐든 영국 락밴드들의 고질병인 마약 문제로 끝나게 되버린 안타까운 사연으로 인해 열성적인 립빠들에겐 애증의 대상이지만 결국은 피트 도허티와 칼 바랏이 순수하게 다시 합치기만을 바랄 뿐. 영국 음악 평론가들도 리버틴즈가 평탄하게 활동을 이어갔다면 인디 락의 판도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하는 심심한 의문을 던지기도 했다.
10년전에 때려치운 밴드로 이렇듯 과한 사랑을 받는 두 프론트맨이 그에 보답하는 길은 단 하나, 급전성 추억팔이(라고는 하지만 팬들은 그마저도 너무나 아쉬운거고..)를 지양하고 신보를 발매해 제대로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아닐까.[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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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피트 도허티가 온갖 어그로를 다 끌어서 그렇지, 칼과 존도 사실상 마약 중독자들이었다. 뭐 한 끗발 날렸던 여느 영국 밴드가 안 그렇겠냐만..킹 크림슨이 있다 드러머 개리는 유일하게 마약에 자유로운 멤버. 옆의 친구들이 말 그대로 몰락하는 걸 보고 손도 안 댔다고 한다. 사실상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네 명 중 제일 건강한 것 같다.피트 도허티는 좀 보고 배워라
  • [2] 피트 도허티 부재시(..)
  • [3] 도허티는 노엘을 좋은 형 정도로 생각한다. "울집에서 기타잡고 노래나 쳐줬으면...까칠해서 그럴 리는 없겠지만 ㅋ"라는 둥. Seven Ages Of Rock 다큐 中
  • [4] 우리나라의 주공 아파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영국 서민층을 말한다.
  • [5] 서민층 그 이하, 노동층을 위한 밴드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방향은 반대로 갔다. 보통 중산층인 힙스터들이 리버틴즈를 좋아했고, 오아시스는 Working Class Hero란 칭호를 얻으며 노동자 계층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물론 오아시스는 노동층 뿐만 아니라 영국의 전 계층의 호의를 얻었다.
  • [6] Lips라 하면 플레이밍 립스이다.
  • [7] 재결합의 이유는 피트의 재정적문제때문. 2012년에 딸내미가 하나 더 태어나는 바람에. Hyde Park 공연에선 리버틴즈 공연답게 관객들이 밀려 펜스밖으로 튕겨져나가거나, 관객의 무대난입, 더 잘보기위해 사운드타워에 오르는등 안전성 문제로 공연도중 여러번 중단되었다.
  • [8] 영국의 고대 그리스어 이름이며 Babyshambles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알비온은 리버틴즈 멤버들에게는 아르카디아라는 유토피아로 향하는 배를 가르키는 이름이다. "The good ship Albion to Arcadia" 이것은 피트가 어릴 때 시를 쓰면서 직접 지어낸 것으로, 멤버들과 립스의 팬들에게 의미가 크다.
  • [9] 피트와 칼의 찌뿌둥한 표정에 대해 칼 바랏은 "아직 레코드 계약을 못 딴 우리를 따라주는 옆의 두 친구에게 미안했다"고 대답했다.
  • [10] 개러지 록의 기원은 미국이다. 기원 뿐만 아니라 장르 자체가 미국에서 발전하고 미국밴드가 주도했으며 미국에서 끝났다. 따라서 영국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개러지 록의 정확한 의미 추가바람.
  • [11] 스웨이드의 기타리스트. 버나드는 이들의 데뷔 싱글 <What a Waster>역시 프로듀스 하였다.
  • [12] 이 후 영국의 기자가 스웨이드를 틸퇴할 시의 자신과 브렛과의 관계를 리버틴스의 피트와 칼의 관계와 비교하면서 질문하자 크게 화를내며 자신이 밴드를 떠났을 때 상황은 리버틴스와 비교하면 세발의 피도 안된다고 답했다.
  • [13] 남자 락밴드 그룹에 따라다니는 10대~20대 여자들. 목표는 짧게는 밴드와 검열삭제하고 크게는 여친이 되어서 들러붙는 것. 막장 인생.
  • [14] 칼이 뉴욕에서 만난 기타리스트. 후에 더티 프리티 띵스의 기타리스트가 된다.
  • [15] 원래 유명 연예인들이 감방가면 자주 일어난다.
  • [16] 가사 전문과 뜻은 아래 앨범/트랙 해설에 Don't Look Back Into The Sun 싱글 참고
  • [17] 사실상 많은 영국 인디 뮤지션이 그렇듯 스미스로 본격적으로 인디에 입문했다고 보면 될 듯 하다.
  • [18] 노엘 본인이 인정하듯 리버틴즈는 오아시스스의 바로 다음 세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오아시스라는 밴드 등장 이후 영국에서 기타 잡고 음악하는 이상,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봐도 될 듯. 참고로 피트 도허티는 오아시스 3집 발매 당시 줄 서서 기다리다 티비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피트 도허티 항목 참고.
  • [19] 대한민국 중고생들이 좋아하는 밴드들 거의 모두라고 보면 된다. 뮤즈의 전성기 때이기도 하고 린킨파크, 림프 비즈킷, 섬41, 에이브릴 라빈, 슬립놋, 에반에센스 등등 한창 앨범내고 날리고 있던 시기이다. 완전 미국 팝펑크 밴드들이 차트를 정ㅋ벅ㅋ
  • [20] 블러는 브릿팝에서 벗어나 이즈 록이나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한 앨범을 발매하고 이후 데이먼은 고릴라즈 활동을 시작했으며, 오아시스는 망작 5집을 발매하던 시기이다. 당연히 펄프도 해체했고. 사실상 브릿팝이란 장르가 무너지던 시기이다.
  • [21] 하지만 보기와 달리 내용에 관해선 찬사를 듣기도 했다. 폴 웰러의 경우 '천재적이다. 순수한 서정시와 같은 가사다'라 평가.
  • [22] Indie Anthem Top50에 드는 곡이기도 하다.
  • [23] 미국 차트 진입 싱글이기도 하다. 참고로 그 당시 영국 싱글 1위가 BabyCakes라는 듣도보도 못한 원히트 원더 그룹의 팝송인데 이후로 활동이 없다. 찾아 들으면 알겠지만 노래 퀄리티는...시망. 리버틴즈 팬들이 기가 막혀 하는 부분.그렇게 피트 도허티는 캐리어의 유일한 염원인 UK 싱글 #1 달성의 기회를 영영 잃어버린다
  • [24] 하지만 도허티가 인터뷰 중에 밝혔듯이 일종의 "단막극" 개념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한다.
  • [25] 이 때 둘의 관계가 엄청 험악해서 둘의 싸움을 막기위한 보디가드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 [26] 이 노래는 케이티라는 애칭과 케이트 모스가 등장하는 유투브 영상 때문에 케이트 모스에 관한 노래라 알려져있으나, 사실 이 노래는 피트 도하티가 케이트 모스를 만나기 전에 이미 쓰여졌던 것이기 때문에 케이트 모스에 대한 노래라 볼 순 없다. 이외에도 이전 여자친구였던 케이트 루이스에 대한 내용이란 떡밥이 있긴하지만, 피트 본인이 묘하게 부정한 것도 있기도 해서 팬들 사이에선 헤로인에 관한 내용이란 추측이 우세한 편이다
  • [27] 요즘은 모국보다 프랑스에서 더 알아준다.
  • [28] 영국 인디 록 바닥에서는 피트 도허티를 모르면 간첩이다.
  • [29] 더 스미스, 스트록스의 음반을 내놓았던 레이블이기도 하다.
  • [30] 2010년, 2014년 재결합으로 받은 돈이 총합 20억원에 달한다. 물론 적당한 주기를 두고 재결합하는 타이밍 하나만큼은 능수능란한 사업가 수준이다. 음악은 골수 인디지만 이제는 명실상부한 기업형 거물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