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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브론 제임스

last modified: 2018-09-23 10:39:57 Contributors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No.23
르브론 제임스(LeBron Raymone James)
생년월일 1984년 12월 30일
203cm (6 ft 8 in)
체중 113kg (250 lb)
포지션 스몰/파워포워드
드래프트 2003년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
소속팀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2003~2010)
마이애미 히트(2010~2014)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4~)
등번호 23번(2003~2010, 2014),
6번(2010~2014)
수상내역 정규시즌 MVP 4회(2009,2010,2012,2013)
올해의 신인상(2004)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
2004 아테네 올림픽 동메달
NBA Finals MVP 2회(2012,2013)
All-NBA First Team 8회 (2006,2008-2014)
All-NBA Second Team 2회 (2005,2007)
NBA All-star 10회 (2005-2014)
All-Defensive First Team 5회 (2009-2013)
NBA All-Defensive Second Team (2014)
NBA All-Rookie First Team(2004)
NBA All-Star Game MVP(2006,2008)
Naismith Prep Player of the Year

2004년 올해의 신인상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르브론 제임스에메카 오카포

2009년~2010년 NBA 정규시즌 MVP
코비 브라이언트르브론 제임스데릭 로즈
2012년~2013년 NBA 정규시즌 MVP
데릭 로즈르브론 제임스케빈 듀란트

2012년~2013년 NBA 파이널 MVP
더크 노비츠키 르브론 제임스 카와이 레너드

2008년 NBA 올해의 득점왕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드웨인 웨이드

2006년 NBA 올스타 MVP
앨런 아이버슨 르브론 제임스코비 브라이언트
2008년 NBA 올스타 MVP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코비 브라이언트 & 샤킬 오닐


2012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팻 서미트 & 마이크 슈셉스키르브론 제임스페이튼 매닝

Contents

1. 개요
2. 성장기
3. 떠오르는 유망주
4. 클리블랜드에서의 커리어
5. The Decision
6. 마이애미 히트에서의 커리어
6.1. 2010-2011시즌 - 최악의 패배
6.2. 2011-2012시즌 - 화려한 부활
6.3. 2012/2013시즌 - 역사적인 플레이오프
6.4. 2013/2014시즌 - 허무한 실패
6.5. 2014 시즌 이후 : I'm coming home
7. 제2의 BIG 3 결성
8. 슈퍼파이브 결성
9. 클리블랜드 복귀후의 커리어
9.1. 2014-2015년 시즌
10. 플레이 스타일
11. 그 외 이야기
12. 기타


1. 개요

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의 주전 스몰포워드[1]

별칭은 "King" James

전국구 팬과 전국구 안티를 모두 가진 현재 리그의 핫아이콘이자 현역 최고의 선수. 미친듯한 페이스로 누적 스탯과 수상실적을 쌓아가는 중이고 기량이나 실력은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에게 남은 과제는 아직 2회에 불과한 파이널 트로피를 더 들어올리는 것. 그리고 마이클 조던에 근접하는 것.

2. 성장기


르브론 제임스는 오하이오 주 애크런에서 태어났다. 제임스의 어머니인 글로리아는 16살때 제임스를 낳았다. 글로리아는 아버지 없이 르브론을 키워야 했기에 집은 매우 가난했다.[2]

르브론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몇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르브론 본인은 "그런 사람 필요 없고 어머니만 있으면 되니 신경쓰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어머니 글로리아는 르브론을 아버지 없이 키워야 했고, 5살과 8살 정도의 시기에 집을 12번 가까이 옮기며 계속 전학을 하는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3] 르브론 말에 따르자면 어린 아이에게는 절대로 보이고 싶지 않은 그런것들 보면서 자랐다고 한다.

아버지가 없던 르브론에게 아버지나 다름 없는 사람은 에디 잭슨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르브론의 어머니 글로리아의 남자친구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무능했고 마약 거래로 감옥을 다녀오는등 르브론 모자에게 집안의 가장 같은 역할을 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잭슨은 르브론에게는 자상했고, 아버지가 없었던 르브론도 주위에서 나오는 말들은 무시하고 잘 지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 잭슨은 WWE를 보여주면서 르브론과 친목을 다졌는데, 르브론은 레슬러 중에 마초맨을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3. 떠오르는 유망주


Fab4+1.[4] 순서대로 시언 코튼, 르브론 제임스, 드류 조이스 3세, 로미오 트래비스, 윌리 맥기

그런 르브론의 딱한 사정을 눈여겨 본 것이 초등학교 미식축구부 동료의 아버지인 프랭크 워커였다. 애크런 주택관리국에서 일하던 워커는 글로리아가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동안 르브론을 키워주기로 했다. 르브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경험했고, 워커의 다른 세 자녀와 함께 엄격한 가정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 르브론은 개근상을 타는 모범생으로 바뀌게 되었다. 워커의 아내인 팸 워커는 글로리아에게 임대 주택을 마련해 주시도 했다.

그런데 르브론이 농구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워커는 그를 농구 스쿨에 보내 제대로 농구를 배우게 했고[5], 르브론은 여기서 시언 코튼, 드류 조이스 3세, 윌리 맥기 등의 친구들과 키스 댐브럿, 드류 조이스 2세 등 훗날 고등학교 은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Fab4라고 스스로를 부르던 르브론과 친구들은 점차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했고, AAU(Amateur Athletic Union) 8학년 이하 대회에서 결승까지 진출하는 활약을 했지만 결국 67-68로 아깝게 패배하고 말았다.

이후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르브론은 세인트 빈센트-세인트 메리(SVSM)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다른 애크런에서 농구 잘하는 흑인 학생은 부틀 고등학교에 가능 것이 관례였지만 부틀에서는 초단신이었던 드류 조이스 3세를 받는 것을 거절했고, 친구와 계속 농구를 하고 싶었던 르브론은 조이스 3세가 SVSM 입학을 결정하자 미련없이 부틀 입학을 포기했다. 주로 가톨릭계 백인들이 다니던 SVSM은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학교였지만 농구에서는 완전히 무명이었다.[6]

그러나 Fab4는 빈센트-세인트 메리를 1984년 이후 처음으로 주 챔피언으로 이끄는 것을 시작으로 엄청난 활약을 하며 지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점점 몸이 자라던 르브론의 기량은 이미 고등학생을 초월한 수준이었고, 시합 중에 비트윈더렉 덩크를 작렬시킬 정도였다. 그는 3년이나 연속으로 오하이오 주의 미스터 바스켓 볼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싹수가 보였다. NBA의 전설 중 하나인 빌 월튼은 르브론 제임스가 한창 고등학교에서 뛸 시기때(졸업시즌이 아닌) 그의 경기를 보고 "저 아이는 지금 당장 NBA에 가도 주전으로 뛸수 있다." 라고 칭찬했다. 실제로 슬램매거진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고 고등학교때 받을수 있는 상이란 상을 다 휩쓸었다.


이렇게 르브론은 고등학생 때부터 어지간한 프로선수들 정도의 관심을 받았다. 코비 브라이언트마이클 조던도 르브론에 관한 코멘트를 했으며, 오크힐 학교와 치룬 경기는 13년만에 고등학생 농구 시합이 미전역으로 방송될 정도였다.

워낙 매스컴의 관심이 폭발하다보니 위기도 있었다. 2003년 제임스의 어머니 글로리아가 제임스의 18번째 생일때 Hummer H2를 선물로 주었고,[7] 제임스 자신도 고가의 져지를 선물로 받아서 제명당할 위기에 처하긴 했지만, 다행히 2게임 결장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화려한 고교시절을 보낸 제임스는 졸업할 시간이 되었다. 그동안 함께 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하기로 했지만, 워낙에 초월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던 르브론은 더이상 어머니를 고생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해서 2003년 드래프트에 참가신청을 내게 된다.

4. 클리블랜드에서의 커리어


2003년 드래프트 유망주 중 제임스는 단연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했다. 1순위 지명권을 얻기위해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와 덴버 너겟츠가 꼴지하기(탱킹)를 시전할 정도. 심지어 덴버는 미리 제임스를 지명하기도 전에 제임스의 이름이 들어간 유니폼을 제작하는 등 열의를 보였으나, 결국 1순위 지명권은 클리블랜드 차지가 되었다.[8]

클리블랜드는 오랜만에 찾아온 오하이오 주 출생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제임스를 애지중지 아꼈다. 팀 로스터 구성도 제임스의 입맛에 맞게 구성해주었고, 제임스가 언론에 공격을 받는다 싶으면 아낌없이 실드를 쳐주었다. 제임스도 이런 구단의 배려에 좋은 플레이로 보답했고, 지역봉사를 통해 팬들과 호흡했다.


특히 경기전 파우더를 손에 바르고 이를 허공에 뿌리는 퍼포먼스로 팬들의 환호를 유도하는 장면은 일종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클리블랜드 팬들 역시 제임스에게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었다.

또 팀은 르브론 제임스가 프로에 잘 적응하게 하기 위해 03-04시즌. 인성을 중시하는 폴 사일러스를 감독으로 선임했고, 제임스를 위주로 팀이 돌아가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리키 데이비스[9]를 트레이드 시키기도 했다.

팀의 이런 지원에 르브론도 성적으로 보답했다. 르브론은 03-04 시즌 신인상을 받았으며.[10]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 진출도 잘 하지 못하던 팀을 이후 일약 우승 후보 팀으로 만들었다.

이런 르브론을 앞세워 클리블랜드는 급기야 06-07 시즌엔 동부 컨퍼런스 우승을 경험하게 된다. 당시 동부 컨퍼런스의 상대는 이제 내리막길이긴 했지만 막강한 수비력으로 2000년대를 지배하던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였는데, 반면에 클리블랜드는 르브론을 제외하고는 어정쩡한 멤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 당시 르브론은 경이적인 수준의 활약으로 당대 최강팀의 수비를 완전히 찢어버렸고, 팀을 파이널로 인도하였다. 이 당시 르브론의 퍼포먼스에 대해 디트로이트 침공 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


엄청난 활약을 하며 파이널로 팀을 인도한 르브론 제임스였지만, 파이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대는 왕조를 이룬 최강의 팀 샌안토니오 스퍼스였고 스퍼스의 인사이드에는 NBA 역사상 최고의 파워포워드 팀 던컨이 있었다. 그리고 앞선에서는 토니 파커가 클리블랜드의 수비를 그야말로 농락하면서 완벽하게 관광당하고 말았다. 클리블랜드가 믿을 수 있는건 르브론 밖에 없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돌파 외에는 별다른 공격 수단이 없었던 르브론은 샌안토니오의 수비에 막히자 별다른 수도 써보지 못했다. 르브론을 공격에서 도우려고 데려온 래리 휴즈는 뭐……

일단 스퍼스는 역대급 수비수인 브루스 보웬[11]이 있었고, 보웬이 1선에서 압박하고 르브론이 돌파하는 순간 스피드가 아직 살아있던 던컨이 순식간에 리커버리 하면서 샷을 컨테스트 하면서 르브론을 압박했다. 파이널에서 르브론은 스텟상으로는 22득점 7리바 6.2어시 1스틸 0.5블락으로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게임당 평균 턴오버가 5.8개에 야투율이 35.5%(32/90)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이 파이널은 가장 원사이드하게 끝난 시리즈 중 하나가 되었으며,[12] 클리블랜드도 르브론도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0:4로 박살이 나버렸다. 그렇지만 던컨은 처참하게 무너진 르브론을 위로하면서 "앞으로 이 리그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시대가 간다고는 말 안했다."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8년 뒤 던컨은 4-1로 르브론의 스리핏을 제지하여 자신의 말이 구라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르브론은 하드캐리하며 고군분투한 8년전에 비해 더 심하게 까이고 있다. 안습

던컨의 말처럼 르브론은 시즌이 지날수록 기량을 향상시켰지만, 전체적인 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 당시는 레이커스가 트레이드 데드라인에 파우 가솔을 희대의 사기 트레이드로 데려왔고, 이에 자극을 받은 다른 강팀들이 전력보강을 위해 파닥파닥하고 있을때였다. 이에 클리블랜드도 트레이드를 통해 벤 월라스, 월리 저비악, 딜론테 웨스트 등을 받아왔지만 실제로는 큰 도움은 주지 못했다. 르브론은 이 멤버들로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보스턴을 7차전까지 물고 늘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보스턴을 넘지는 못했다.

다음 시즌인 08-09시즌, 클리블랜드는 모 윌리엄스를 받아와 전력을 강화했다. 르브론 제임스을 골자로 하여 롤플레이어들이 갖추어지면서 정규시즌에서 클리블랜드는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르브론 역시 정규시즌 MVP를 차지하는 등 잘 나갔지만, 문제는 플레이오프였다.

클리블랜드는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복병 올랜도 매직을 상대로 경기를 치렀고, 초월적인 활약을 하는 드와이트 하워드를 상대로 르브론은 WS/48 3.99, PER 37.4 라는 경이적인 활약을 하며 맞섰지만 올랜도의 양궁이 미친듯이 터지면서 경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또한 정규시즌 르브론을 잘 도왔던 롤플레이어들은 슈퍼스타의 오버롤 싸움이 되는 플레이오프에서는 제대로 된 조력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르브론의 필사적인 활약에도 불구하고 클리블랜드는 침몰하고 말았다.

09-10시즌 클리블랜드는 샤킬 오닐을 데려오고,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맞추어서 앤트완 재미슨까지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하는 등 우승을 위해 사활을 걸었으나, 2라운드에서 보스턴 셀틱스에게 2년전과는 달리 너무 무기력하게 탈락하고 말았다.


르브론이 클리블랜드에서 뛸 당시, 팀의 지원에 대해서 말하자면 분명 팀은 르브론을 지원하려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당시 클리블랜드는 스몰마켓임에도 불구하고 리그 최상위권의 페이롤을 지불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몰마켓의 클리블랜드는 한계가 있었다. 레이커스같은 빅마켓에 매력적인 도시를 연고지로 하는 팀들이 슈퍼스타를 비교적 수월하게 데려오는 반면에, 매력 없는 스몰마켓 팀들은 리그 최고의 슈퍼스타나, 정말 가치 있는 롤플레이어들은 데려올 수 없었고, 거품이 낀 선수들이나 과거의 S급인 노장들에게 실력 이상의 돈을 줘야 간신히 데려올 수 있는 편이다. 그렇다고 클리블랜드가 같은 상황인 07년 파이널상대 스퍼스만큼 스카우팅 능력이 뛰어났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게 데려온 래리 휴즈,월리 저비악,벤 월러스등의 퇴물들은 결정적인 순간 르브론을 도울 능력이 되지 못했다. 르브론이 이들을 이끌려 꾸역꾸역 좋은 팀을 꾸렸지만, 어중간한 A급 세명 보다 S급 선수들의 조합으로 씹어먹는 플레이오프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조력자를 한명 구해야 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식으로 나이 많거나 어중간한 선수들에게 거액을 주고 영입하다 보니, 르브론의 클리블랜드 시절 말년에는 샐러리 유동성은 엉망이 되고 팀은 악성계약으로 가득차 답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슈퍼스타로서 팀의 선수 영입에도 입김을 불어넣고 있던 르브론의 책임이 없지도 않았겠지만, 일단 다 떠나서 스몰마켓의 문제가 가장 컸다.[13]

꼬일대로 꼬인 상황에서 경쟁팀인 셀틱스 등은 여전히 강력하고, 반면에 르브론은 "르브론이 너무 많은 걸 하려고 하니 팀원들이 제 능력을 발휘 못한다." 는 역버프설까지 듣는 지경이었다. 이때 고평가를 받었던 모월, 웨스트 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정작 르브론이 팀을 떠나고 망했지만 여하간 이런 상황에서 르브론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었고, 모든 팀들의 눈은 클리블랜드로 향했다.

5. The Decision


당시 이적시장에는 르브론 제임스 외에도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등 한 팀의 주축이 될 수 있는 슈퍼스타 선수들이 한꺼번에 자유 이적생이 되어 열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이에 클리블랜드, 시카고, 뉴욕, 마이애미 등이 르브론의 가능 이적지로 거론되었다. 그리고 과연 웨이드나 보쉬 중 한 명이 르브론과 같이 뛰게 될 지도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제임스 본인의 경우. 자유계약 신분이 되기 전까지 이러한 질문에 확답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임스는 이런 언론의 움직임을 잘 이용했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뉴욕을 사랑한다" 라고 발언하면서 뉴욕팬들의 애간장을 태웠고, 또 어느 인터뷰에서는 "고향 클리블랜드는 내 마음의 안식처" 라고 해 고향팬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그의 영입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팀은 오래전부터 르브론 ㅎㅇㅎㅇ을 외치고 다니던 뉴욕 닉스와 최근에 미하일 프로호로프가 팀을 인수하면서 자금력이 빵빵해진 뉴저지 넷츠, 명가재건을 노린 시카고 불스. 좀 뜬금없긴 하지만 LA 클리퍼스에 원 소속팀인 클리블랜드도 나섰다. 문제의 마이애미도 이때 제임스 영입전쟁에 뛰어들었다.

보통 FA협상때는 보통 선수가 구단을 찾아가는 게 통상적인 일이지만 제임스는 반대로 구단관계자들이 제임스의 에이전시 사무실을 찾아와 프리젠테이션을 받는 등 다른 FA와는 차별된 모습이었다.

이렇게 경쟁이 심한 만큼, 많은 팀들은 르브론을 영입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뉴저지 넷츠의 경우 제임스의 절친한 친구이자 뉴저지 넷츠의 주주인 Jay-Z를 데리고 와 제임스를 설득했고, 뉴욕은 앨런 휴스턴까지 데리고 와 자체제작 영상까지 들고와 르브론을 설득했다. 특히 이때 뉴욕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와 계약을 확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던 듯 했다.


클리블랜드는 이들보다 더 했다. 이른바 애향심을 통해 제임스를 설득했고 자체제작 UCC를 통해 We are the World를 페러디한 "We We are Lebron" 를 보여주었다. 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오하이오주 지역 소방관 부터 주지사까지 동원되었다. 이렇게 프리젠테이션을 마무리 되었지만 그때까지 제임스는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후 2010년 7월, 이적 시장의 한 축인 크리스 보쉬가 웨이드가 뛰는 마이애미 히트와 계약을 했다고 발표가 났다. 이에 따라 수많은 미국의 스포츠 기자들은 르브론까지 마이애미로 갈 지에 대해 신나게 기사를 써내고 있다. 유력한 목적지는 소속팀인 클리블랜드, 시카고 불스, 뉴욕 닉스가 거론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루머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르브론 영입 쟁탈전에서 본래라면 보쉬 영입으로 이제 빠져야 할 마이애미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었던것. 많은 사람들은 설마 르브론 - 보쉬 - 웨이드라는 꿈의 조합이 이루어질지 경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7월 9일, 르브론 제임스는 The Decision이라는 쇼를 통해 "나의 재능을 사우스비치로 가져간다(take my talents to South Beach)" 라는 말을 남기고 마이애미로 이적함을 전국에 알렸다.

이는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고, 이에 대해서 온갖 이야기가 터져나왔다. 대체로는 부정적인 이야기였다. 우선 빅쓰리 결성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었는데, 이것이 리그의 밸런스를 붕괴시키는것은 물론이고 이에 르브론이 무임승차를 하여 거저먹으려고 한다는 식이었다. 르브론의 비교 대상이 바로 저 마이클 조던이고, 조던이 약체였던 팀을 자기를 중심으로 구성하여 결국 전설을 만들었던것과 대조되어 "이제 르브론은 조던과 비교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찰스 바클리는 "우리 때는 하다하다 안 되어서 은퇴 직전에 뭉쳤는데 요즘 것들은 편하게 우승 트로피 가져가려고 한다."고 르브론의 이적을 비꼬았다.

두번째는 더 디시전이라는 이적 방식이었다. 조던의 옆에 있던 올타임 스몰 포워드 피펜급은 커녕 확실한 2옵션 하나 없었던 클리블랜드 였기에 팀을 떠나는건 이해한다는 사람들도, 굳이 떠나려면 조용히 떠날 것이지 디시전이라는 방식으로 홈 팬들의 속을 긁어놓고 갈 필요가 있냐는 비난이었다. 이에 가장 불쌍하게 된건 물론 클리블랜드의 팬들이었다.

프로스포츠에 있어서는 정말 불쌍할 정도로 패배의 역사만 있는 클리블랜드에서 르브론은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이렇게 르브론은 팀을 떠나고 말았다. 클리브랜드 구단주는 편지로 배신감을 나타났으며, 르브론을 가장 열렬하게 응원하던 그 팬들은 이제 르브론 관련 상품과 사진들을 내다 버리고 찢어버렸다.


대략 이런 분위기. 이 때만 해도 몰랐지...

물론 르브론이 자기가 뛰고 싶은 팀을 찾아 가는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대중들은 스타의 쉬워보이는 선택보다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영웅을 원했다. 그리고 이때까지 르브론은 역대급 "선수"가 아니라 "영웅"이 되기에 충분한 선수였다. 그렇지만 '온리 원' 이 아닌 '빅쓰리' 라는 조합을 구성하면서 이는 부서져버린것.

그냥 어지간한 선수들하고 조합을 이루었으면 모르지만 르브론이 마이애미로 이적할 당시 크리스 보쉬는 24득점에 11리바운드를 기록하는 엄청난 성적을 거둔 엘리트 빅맨이었고, 드웨인 웨이드는 커리어를 제외한 당시의 기량만 보자면 코비 브라이언트에도 전혀 밀릴 것 없는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였다. 여기에 MVP 급 선수인 르브론 본인까지 합류하니 우승은 너무나도 쉬워보인 것이다.

보쉬 역시 대단한 파워포워드였다. 토론토에서 더블더블을 밥먹듯 하는 선수였다. 농구에는 종합 비율 스탯인 PER이라는 스탯이 있는데, 빅3가 합치기 전에 리그 PER 수치에서 1,2,4위를 차지했다고 하면 이 세명의 결합이 당시 어떠했는지 쉽게 짐작이 가리라.

그리고 조용히 홈팬들에게 사과를 하며 떠나도 될 상황에서 온갖 야단법썩을 떨며 어그로를 한껏 끌고 떠났기에 비난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문제는 빅쓰리를 결성한 르브론이 압도적인 활약으로 이를 조용히 시키느냐, 아니면 망신을 당하여 온갖 비난을 받거나 하는 문제였다.

6. 마이애미 히트에서의 커리어

6.1. 2010-2011시즌 - 최악의 패배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

리그의 엘리트 빅맨, 리그 최고의 슈팅가드, 그리고 리그 최고의 선수. 이 셋이 뭉쳤으니 우승은 당연할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전망했지만, 게중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슈퍼스타 이 뭉친다고 해도 롤이 겹치면 생각보다 시너지는 안날 수가 있고, 무엇보다 세 선수의 스타일은 조화되기 어려운 편이었다. 웨이드는 슈팅 가드지만 캐치 앤 슈터가 아닌 자기가 볼을 잡고 있어야 힘을 발휘하는 선수였고, 보쉬는 빅맨이지만 점퍼를 주무기로 삼았다. 그리고 르브론은 흡사 포인트 가드처럼 볼을 잡고 탑에서부터 움직이는 일이 많은 선수였다.

그렇긴 해도, 이들이 한 팀에서 뛸때의 효과는 이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리딤팀을 통해 증명되었기 때문에 2008년 올림픽의 성공으로 인해 이들의 결합은 이때 처음으로 시작된 아이디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의 조직력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 사람들도 많았다. 문제는 농구는 5명이 하고, 크리스 폴,드와이트 하워드가 섰던 미국 대표팀과 달리 마리오 찰머스,지드루나스 일가우스카스가 서는 1,5번 약점과 빅3에 쏠린 페이롤때문에 백업멤버가 충실하지 못하다는 전략적인 약점 역시 존재했다.

결국 시즌 초에 이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빅3는 생각만큼 시너지를 발휘하지 못했고, 야심차게 영입한 마이크 밀러나 나머지 벤치멤버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를 빅3의 개인기로 억지스럽게 메꾸려다보니 강팀에게는 맥을 추지 못했고, 이 과정에서 서로의 역할에 대한 불만들이 터져나오면서 내외적으로 분위기도 좋지 않았다.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 는 식으로 깔거리만 찾고 있던 언론이나 안티팬들은 신이 나서 물어 뜯었고, 여러가지로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성적이 안 좋다보니 온갖 내분설, 갈등설도 터져 나왔다.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경기에서 마이애미가 3쿼터 13-0run을 당하자, 히트의 감독 릭 스포엘스트라는 타임아웃을 불렀다. 그런데 벤치로 들어오던 르브론이 서있던 스포엘스트라의 어깨를 치고 들어갔고, 이 장면이 구설수에 오르게 되어 르브론은 큰 비난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어느정도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 무렵부터 마이애미는 승수를 쌓기 시작했다. 사실 이 무렵에도 '팀' 의 부분보다는 빅쓰리의 재능으로 어찌어찌 커버하는 형국이었지만, 워낙 대단한 선수들이 뭉친 탓에 그것만으로도 강력했다. 마이애미는 정규시즌을 58승 24패로 마쳐 동부컨퍼런스 2위로 플레이오프에 안착했다. 다만 르브론은 떠오르는 신성 데릭 로즈에 밀려 MVP를 타지 못했지만 성적으로는 MVP를 수상해도 전혀 문제가 될 것 없는 수준이었다.

이제 문제는 플레이오프가 되었다.강력한 동료들을 옆에 거느린 르브론은 필라델피아를 물리쳤고, 무엇보다 그동안 자신을 번번히 가로막던 보스턴 셀틱스를 무너뜨리는데 성공했다.[14] 이어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는 4쿼터 승부처에서 상대 에이스 데릭 로즈를 완전히 수비로 무너뜨리는 위력까지 발휘했다. 이런 활약 끝에 마침내 생애 2번째로 파이널에 진출했고, 상대는 '독일병정' 덕 노비츠키가 버티는 댈러스 매버릭스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빅쓰리가 버티는 마이애미 히트의 우세를 점쳤다. 그리고 히트는 1차전을 잡아내며 그 기대에 부응을 하는 듯했고, 르브론 역시 파이널 무대에서 처음으로 승리를 하는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2차전에서 댈러스는 승리를 거두어 넘어갈 수도 있었던 분위기를 다시 가져오는데 성공했다.

이에 히트는 3차전 승리로 반격했으나 댈러스는 4차전을 잡아내며 또다시 반격을 가했다. 이 경기에서 르브론을 놀랍게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멘붕 상태로 엄청난 부진 끝에 8득점밖에 못하는 최악의 경기력을 보였는데 승부처에서 소극적인 모습을보여 현지 히트팬들에게 거센 질타를 받았다.[15] 이어진 5차전에서는 17득점 10리바운드 10어시스트의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지만 낮은 야투율과 결정적이라고 볼수있는 4쿼터에서의 연이은 미스로 팀의 패배에 일조했다.참고로 르브론은 파이널 5차전까지의 4쿼터 평균득점이 2.2득점에 불과했는데 왜 이토록 결정적인 상황에서 침묵하는것인지에 관해 얘기가 오고가다 새가슴 논란에 다시 불을 지폈다(...).[16]거기다 독감에 걸린 노비츠키를 조롱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언론과 팬의 집중포화를 맞게되었으니...

그리고 홈에서 6차전, 이 경기에서도 르브론은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21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했지만 2쿼터이후 거의 실종되다시피한 활약을 보이며 댈러스에게 우승을 내주고만다.[17][18]경기는 6차전까지 갔지만 4,5,6차전을 내리 내주면서 완전히 무너진 시리즈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리고 그 여파는 경기 후에도 이어지게 되는데...#

파이널 6차전 직후 인터뷰에서 르브론은 자신을 비난하는 안티팬들에게 "너희들이 비난하건 말건 나는 잘먹고 잘살테니, 너희들은 realworld로 돌아가라" 라는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이 되었다.

물론 개념없는 안티팬들은 욕을 먹어도 싸지만 어찌되었건 팬들은 프로선수들이 큰 돈을 받고 살수 있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르브론이 말한 realworld에서 하루를 근근히 지내며 열심히 일하며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안티 팬뿐만 아니라 모든 팬들이 포함되는 것이다. 이는 프로스포츠 선수가 해서는 안되는 발언이었다.

르브론의 이 발언이 있던 직후 안티 팬들은 당연히 르브론을 더욱 비난하고 조롱했으며, 그나마 남아 있던 팬들도 "오만 정이 떨어졌다" 며 안티가 되기도 하였다. 언론이건 팬들이건 르브론을 조롱하기 바빴으며, 패배자인 르브론은 변명할 수 있는 처지도 되지 못했다. 그야말로 생애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된 것이다.

6.2. 2011-2012시즌 - 화려한 부활

온갖 비난과 조롱 끝에 르브론과 마이애미 히트는 새 시즌을 시작했다. 르브론으로서도 마이애미로서도 물러날 수 없었던 시즌이었기에 마이애미 히트의 사장, 팻 라일리는 셰인 베티에를 데려와 빅쓰리를 구축한 대신 엶어진 롤 플레이어의 보강에도 힘을 쏟았다.

여기에 지난 시즌만 해도 서로 공격하려고 안달이 난 상황에서 팀은 르브론을 중심으로 확실하게 재편되었다. 엄청난 득점력을 가지고 있었던 크리스 보쉬는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해서 가자미 역할을 자청했으며, 히트의 터줏대감이던 드웨인 웨이드는 르브론이 팀의 중심이라고 인정하였다. 여기에 한시즌을 거치면서 팀의 조직력도 크게 향상되어 수비력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고, 마이애미는 이전 시즌보다 더 강력한 팀이 되어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마이애미는 르브론의 활약을 앞세워 뉴욕 닉스를 간단하게 격파했고, 이어 인디애나 페이서스와 격돌하였다. 양팀의 전력차가 꽤 나기에 시리지는 싱겁게 끝날 것으로 여겨졌고 실제로도 그러려는 상황이었으나, 갑자기 변수가 발생핬다. 크리스 보쉬가 부상 당한것.

갑작스런 보쉬의 부상으로 인디애나는 반격에 나섰고, 히트의 분위기도 이상해졌다. 마이애미의 전술에서 보쉬의 중요성은 대단한 편인데, 무엇보다 보쉬가 빠지면 당시 마이애미는 빅맨이 너무나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인디애나와의 시리즈는 드웨인 웨이드가 폭발하면서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다음 상대가 노련한 관록의 팀인 보스턴 셀틱스 였고, 한층 성장한 라존 론도가 있었다.


론도는 본래 다른 장점에 비해 슛이 안좋기로 유명한 선수였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슛이 대폭발하며 히트를 거침없이 무너뜨렸다. 보스턴의 빅쓰리 중 레이 알렌은 최악의 몸 상태 때문에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지만 케빈 가넷은 브랜든 배스와 함께 보쉬가 빠진 히트의 연약한 골밑을 미친듯이 유린했다. 거기다 폴 피어스까지 투혼을 불사르자 마이애미는 큰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반면 히트에서는 웨이드가 최악의 난조에 빠지면서 빅쓰리가 무색한 상황이 되었고, 르브론은 가넷, 피어스, 론도를 막고 공격에서도 혼자 해결해야 되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어찌어찌 시리즈를 끌고가긴 했지만 제대로 상대가 될리 만무했고, 결국 히트는 5차전까지 내주며 단 한번만 패배하면 그대로 시즌이 종료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고 르브론은 이런 엘리미네이션 매치에서 당시 전패 중이었다.

빅쓰리 결성 첫번째 시즌에도 패배하여 엄청난 조롱을 받았지만, 이 경우에는 '슈퍼스타들이 처음 뭉쳐 호흡이 맞지 않았다' 는 구실이 있었다. 하지만 이때는 두번째 시즌이었고, 두번 도전해서도 실패한다면 이후 날아온 비난들은 가히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르브론으로서는 선수 커리어가 완전히 망가지기 직전으로 몰리고 말았다.

그러나……

6차전 당시 독기를 품고 카메라를 노려보는 르브론 제임스의 표정.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드웨인 웨이드와 함께 더크 노비츠키를 조롱하는 시늉으로 경기 내외적인 부분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던 제임스였지지만 이날 르브론은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보이면서 처음부터 맹공을 퍼부어 셀틱스를 격침시키는데 성공했다. 이 당시 임팩트가 정말 강렬해 "르브론을 다시 봤다"는 팬들도 있었으며, 마이애미는 침몰 직전에서 간신히 수렁을 빠져나오는데 성공했다.


이후 7차전에서는 부상으로 파이널에서나 복귀가 가능할것 같던 보쉬가 맹활약을 하며 팀을 도왔고, 르브론 역시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셀틱스를 결국 물리치는데 성공했다. 이제 파이널의 상대는 당대 최고의 선수 중 한명인 케빈 듀란트제임스 하든, 러셀 웨스트브룩 삼총사가 있는 오클라호마였다.

1차전에서 오클라호마는 듀란트의 맹활약을 앞세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2차전부터 마이애미는 경기를 잡아내기 시작했는데, 외곽이 가능한 빅맨인 보쉬에게 오클라호마의 빅맨, 이바카와 퍼킨스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점이 컸다. 그리고 르브론을 매치업하던 제임스 하든은 공수에서 완전히 무너지며 박살이 나버렸고, 그대로 경기는 2,3,4차전까지 마이애미가 잡아내게 되었다.

그리고 대망의 5차전. 르브론은 26득점 11리바운드 13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을 찍고 팀의 통산 2번째 우승이자 자신의 첫 우승을 일궈냈다. 경기 내내 맹활약을 펼치면서 동료들의 실수까지 다독이는 모습이 인상적. 28.6점 10.2리바운드 7.4어시스트로 시즌 MVP에 이어 파이널 MVP까지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로서 르브론은 자신에 대한 비난 일색의 여론을 어느정도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이후 르브론은 런던 올림픽에서 드림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드와이트 하워드와 크리스 보쉬가 부상으로 빠지고, 블레이크 그리핀 마저 중간에 부상으로 이탈하며 팀의 빅맨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었지만 르브론은 여기서도 맹활약을 벌여 파우 가솔이 버티는 스페인을 물리치고 조국에 금메달을 선사했다. 이렇게 르브론의 2012시즌은 화려하게 마무리 되었다.


6.3. 2012/2013시즌 - 역사적인 플레이오프

우승팀인 히트는 시즌을 시작하기에 앞서 레이 알렌과 라샤드 루이스을 영입하며 전력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이 선수들은 나이 탓에 수비에서 문제가 있는 편이라 시즌 초반의 히트는 대량 실점을 연거푸 하며 경기를 어렵게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웨이드는 전체적으로는 준수했지만 기복이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르브론은 꾸준한 경기력을 보였으나 카멜로 앤써니가 심기일전한 활약을 하고 케빈 듀란트가 한층 발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당초에는 MVP 3순위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그러나 카멜로 앤써니는 특유의 기복으로 시즌 초반의 활약을 다 말아먹었고, 반면에 듀란트는 여전히 강력했으나 후반기가 되자 조금 폼이 떨어졌다. 그런데 이 무렵, 마이애미는 '버드맨' 크리스 앤더슨을 영입했고 이는 블루워커가 부족한 마이애미의 약점을 완벽하게 메워주며 팀은 27연승을 내달렸다. 이 기간동안 르브론도 어마어마한 활약을 보였는데, 2월에는 야투율이 무려 64%를 넘겼을 정도였다. 게다가 오클라호마와의 경기에서 듀란트를 상대로 우위에 있는 모습을 보이며 MVP 경쟁에서 1순위로 뛰어오르는것은 물론, 아예 수상을 당연시하게 되는 분위기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만장일치 MVP 수상 이야기도 나왔으나 거의 모든 기자가 르브론에게 표를 행사한 것과 달리 단 한명의 기자가 듀란트도 아닌 카멜로 앤써니에게 표를 주며 물건너가게 되었다. 르브론은 수비왕을 더 노리는 모습도 보였는데, 마크 가솔이 수상하자 "역사상 나처럼 많은 포지션을 막은 선수가 있었나?" 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정규시즌 이 끝난후 르브론에 대한 평가는 말 그대로 흠좀무가 되었다. 경기 내내 슬금슬금 체력관리를 하고 있는게 확연한데 대책없는 스탯과 per을 찍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MVP를 가져가고 우승을 향해 나아갔다 처음 마이애미에 왔을 때만해도 웨이드에 이은 2인자에 머물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고 볼 소유권의 문제도 있으니 MVP나 스탯은 포기하고 우승이나 해라는 시선도 있었지만 정규시즌이 끝난 시점에서는 그냥 압도적인 리그의 지배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르브론이 마이애미의 백투백 우승을 이끌어 낼 수 있을까가 되었다. 르브론은 "마이애미는 내가 잡겠다." 고 호언장담을 한 브랜든 제닝스를 격침시키며 밀워키 벅스를 상대로 간단하게 승리를 거두었고, 데릭 로즈가 빠진 시카고 불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물리쳤다.

그런데 문제는 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시리즈였다. 지난 시즌에 보쉬도 없이 이겨버렸던 인디애나 였지만, '진격의 히버트' 라 불릴 정도로 시리즈 내내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쉬를 짓밞아 버린 로이 히버트와 르브론만 만나면 박살나던 대니 그레인저 대신 활활 타오르던 폴 조지가 있는 인디애나는 작년과 전혀 다른 팀이었다. 결국 양 팀은 1차전부터 엄청난 명승부를 펼쳤다.


1경기 마지막, 경기 내내 엄청난 활약을 한 폴 조지는 웨이드로부터 얻은 자유투 세개를 모조리 집어 넣는 엄청난 침착성을 보였다. 이렇게 인디애나의 승리가 거의 확정적일 무렵, 르브론은 종료 2초를 남기고 돌파에 이은 엄청난 버저비터를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19] 이후 양팀의 혈전을 생각하면 이는 대단히 중요한 득점이었다.

1경기 이후로도 양 팀은 명경기를 펼치며 승부를 7차전까지 끌고왔다. 특히 폴 조지와 르브론의 맞대결이 볼만했는데, 보란듯이 불타오르는 폴 조지와 질 수 없다는듯 복수를 하는 르브론의 퍼포먼스가 대단했다. 양 선수는 대결 중 이런 멋진 모습도 만들어냈다.


폴 조지의 엄청난 덩크 후 바로 3점으로 응수하는 르브론. 르브론은 이후 폴 조지에게 손을 내밀어 멋진 모습을 연출했다. 결국 이 시리즈는 7차전에 가서야 승부가 갈렸고, 마이애미는 파이널에 진출했다.

2013년 NBA 파이널의 상대는 2007년에 자신을 무참하게 짓눌렀던 샌안토니오 스퍼스였고, 팀의 상징은 여전히 팀 던컨 이었다. 2007년에 "너의 시대가 될 것이다." 라고 했던 던컨은 여전히 엄청난 존재감을 보였다.

게다가 스퍼스는 던컨 외에 대니 그린, 토니 파커, 카와이 레너드 등이 엄청난 활약을 하며 히트를 침몰 직전까지 몰아버렸다. 이에 비해 르브론은 체력이 바닥났는지 상당히 심각한 기복과 야투율 저하를 보이며 고전을 금치 못했다. 여러가지로 좋지 못한 상황끝에 간신히 경기를 6차전까지 끌고 왔으나, 이날 경기에서 르브론은 3쿼터까지 전혀 힘을 쓰지 못했고, 팀은 완벽하게 흐름을 내준채 스퍼스에 끌려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그대로 우승을 스퍼스에 넘겨줄 참이었다.


그런데 4쿼터 9분쯤 팔로우업 덩크와 동시에 항상 차던 헤어밴드가 벗겨졌는데. 벗으면서 다음 플레이에 미친 클러치 블록슛을 성공하더니 미칠듯한 플레이로 3쿼터에 10점차까지 지던 경기를 따라잡았다.

이렇게 간신히 경기의 흐름을 맞춘 르브론은 그러나 마무리 40초 남기고 치명적인 턴오버를 저질렀고, 이 시점에서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스퍼스의 우승을 점쳤다. 그러나 마지막 포제션에서 종료 11초 남기고 던진 3점 슛이 실패한걸 보쉬가 리바운드해 다시 던진 레이 알렌의 3점으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고 연장에서 승리, 결국 시리즈를 7차전까지 끌고 갔다. 이 경기에서 최종 31득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트리플 더블을 달성했지만 공격에서는 낮은 야투율로 아쉬움이 남는 편이었다.


한국시간으로 6월 21일에 열린 7차전, 양팀은 그야말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불태우며 사나이의 대혈전을 벌였다. 샌안토니오의 포포비치 감독은 르브론의 야투감이 그동안 좋지 못한것을 이용해서 일부러 르브론을 비워두는 새깅디펜스를 시전했으나, 르브론은 마침내 이날 야투감을 되찾았다. 그야말로 넣는 족족 꽂아버리며 이날 37득점 12리바운드 3점슛 5개를 성공하는 기록을 세우며 막판에는 점수차를 4점으로 벌리는 빅샷까지 적중시켰다. 그리고 감격의 우승 끝에 다시 한번 파이널 MVP 등극에 성공했다.


여담으로 경기 끝나고, 던컨과의 이 포옹에서 감동을 느낀 사람들이 많은듯.

6.4. 2013/2014시즌 - 허무한 실패

2014년 3월 3일 마이애미 홈에서 열린 샬럿 밥캣츠와의 경기에서 61득점을 기록, 56점이었던 자신의 통산 최고 득점 기록을 경신했으며 마이애미 히트 1경기 역대 최고 득점도 갈아치웠다.[20] 그러나 이 경기 이후 어쩐지 부진하기 시작하면서 이번 MVP는 케빈 듀란트에게 넘어갈 거 같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MVP는 예상대로 듀란트에게 돌아갔지만, 르브론과 히트는 샬럿, 브루클린, 인디애나를 순서대로 짓밟으며 4번 연속 파이널 진출에 성공한다. 상대는 도대체 언제 늙는 건지 감도 안 잡히는 던컨의 스퍼스.

그리고 6월 6일(한국시간 기준)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파이널 1차전에서 25득점, 6리바운드, 3어시스트, 3스틸이라는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4쿼터 중반에 다리에 가 나는 바람에(...) 더는 뛰지 못하고 벤치로 돌아갔다.[22] 그리고 팀 동료들은 갑작스런 르브론의 부재에 체력방전까지 겹치면서 멘붕. 결국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15점차로 역전패를 허용했다. 4쿼터 초반까지만 해도 히트가 충분히 리드하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쉬운 패배. 마이애미 히트에게는 다행히도 르브론 제임스의 2차전 출장은 문제가 없었다.

6월 9일(한국시간 기준) 샌안토니오 스퍼스와의 파이널 2차전에서 35점(14/22 63.6%), 10리바운드, 3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샌안토니오를 폭격했고, 마이애미 히트는 프랜차이즈 스타인 드웨인 웨이드가 부진한 가운데 르브론의 맹활약을 앞세워 2점차 신승을 거두었다. 이로서 샌안토니오의 홈에서 1경기를 잡아내었고 홈 어드밴티지를 가져오면서 시리즈를 유리하게 가져가는가 했으나.

6월 11일(한국시간 기준) NBA 파이널 3차전에서 카와이 레너드의 맹활약을 앞세운 샌안토니오에게 전반에만 71점을 빼앗기면서 파이널 전반전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시켜주었고(...)[23] 르브론 제임스는 전반전에만 16득점을 기록했으나 정작 후반전에는 6득점에 그쳤고 또한 전반전에는 2개의 턴오버를 범했지만, 후반전에만 5개의 턴오버를 범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24]

6월 13일(한국시간 기준) NBA 파이널 4차전에서 샌안토니오 스퍼스에게 107 - 86로 또 털렸다(...).[25] 르브론 제임스는 3쿼터에만 19점을 기록하는 등 분전했으나 다른 팀원들의 부진으로 패배를 막을 수 없었다.[26] 결국 이렇게 돼서 마이애미 히트는 홈 2경기에서 충격적인 대패를 당하면서 3-Peat이라는 대업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대신 다른 의미의 3연는 해냈다. 조던을 향한 눈빛과 함께 슬램덩크를 작렬하던 샬럿 밥캐츠와의 시리즈에서의 위풍당당했던 모습과는 달리 파이널에서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

그리고 2011년 이후 또다시 최악의 패배가 찾아왔다.

샌안토니오에게 공수양면으로 철저히 압도당한 마이애미에서 홀로 분전한 르브론 제임스의 1쿼터 맹활약에도 불구, 마지막까지 마이애미 선수들의 기세는 살아나지 못했고 샌안토니오 거의 모든 선수들의 폭발[27]로 점수차가 20점차 이상 벌어지며 결국 그 점수차를 크게 좁히지 못했다.[28]

거의 풀 경기에 가까운 시간을 출장하며 31득점(3점슛 3개), 10리바운드, 5어시스트, 2블락이라는 걸출한 기록을 남긴 르브론이었지만 동료들의 침묵에 이은 자신의 체력방전과 멘붕으로 결국 씁쓸하게 마이애미 히트의 3-Peat이 좌절되는 걸 자신의 눈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이번 파이널에서 르브론이 스탯상으로는 홀로 대활약한 것처럼 보이지만 공을 지나치게 오래 소유하면서 죽은 패스를 뿌리는 경우가 많았고 중요한 순간에는 경기장에서 빠지거나 침묵하면서 잘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예를 들면 1차전에서는 4쿼터 막판에 가 나(...) 팀이 15점차로 패배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3차전에서는 3쿼터 들어 웨이드가 살아나면서 추격하는 흐름이 올 때마다 귀신같이 턴오버 작렬.(...) 4차전에서는 2쿼터에서 영양가 없는 패스 남발로 점수차가 벌어지는데 기여했으며 이미 10점차 이상 벌어진 3쿼터에서 따라잡아 봐야 승부의 결과는 떠난 배나 마찬가지였다. 4쿼터 무득점이기도 했고. 5차전에서는 완급 조절 실패로 1쿼터에만 17점을 넣었지만, 그 이후 체력 방전으로 사실상 아무것도 못 하고 샌안토니오 팀 선수들의 대활약 속에 패배를 바라봐야 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르브론은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마이애미 공격의 선봉은 보통 르브론이나 찰머스, 웨이드에서 시작되는데 웨이드는 기복이 심했고 찰머스의 엄청난 부진[29]으로 공격을 르브론 홀로 주도하다 보니 본래 리딩이 매우 뛰어난 선수이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동 포지션에 해당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을 끌다가 뒤늦게 패스가 나가는 경우가 많았으며 체력적인 부담도 더 심해져 한쿼터 폭발하면 다음 쿼터는 버로우타는 경향이 심했다. [30] 샌안토니오의 새로운 더 맨으로 각광받고 있는 이번 시즌 파이널 MVP 카와이 레너드가 에이스 스토퍼로 나와 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르브론을 전담 마크했던 것도 컸고.[31] 다른것들을 다 떠나서 매치업 상대인 (올nba팀은 커녕 올스타 경력조차 없던) 카와이 레너드에게 파이널mvp를 헌납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줄어드는건 부정하기 힘들다


6.5. 2014 시즌 이후 : I'm coming home


의외로 그에게 가장 열렬히 구애하고 영입 가능성이 높은 구단은 친정팀인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다. 그가 떠날 때에는 저주를 퍼부었던 구단주가 그를 설득하기 위해 마이애미 행 비행기를 비밀리에 탔다는 보도도 나왔고, 비록 루머로 판명났지만 나이키가 클리브랜드 홈 경기장의 모든 광고판을 샀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다. 그리고 클리브랜드는 전력보강 없이 오로지 재럿 잭의 연봉만 덜어내는 트레이드로 재럿 잭과 작별하며 노골적으로 르브론 영입을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르브론 입장에서도 나쁘지만은 않은 선택인게 이미지 개선은 차치하고서라도 캐벌리어스는 리빌딩이 거의 완료되어 카이리 어빙 등 1픽 유망주들이 포텐을 터뜨릴 만반의 준비가 끝나있다. 또한 2014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얻어 2014년 6월 27일에 열린 NBA 드래프트에서 '제2의 르브론 제임스'로 기대를 모은 SG/SF 드류 위긴스 를 지명했다. 그리고 2014년 7월 12일부로 친정팀으로의 컴백을 선언했다. I'm coming home.

다음은 2014년 7월 11일자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Sports Illustrated)에 실린 르브론 제임스의 편지 전문 해석본. (르브론 구술, SI기자 리 젠킨스 정리) 마이애미팬들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향인 오하이오주에 대한 그리움과 과거의 반성, 새로운 팀에서의 도전정신을 잘 묘사했다. 내용 자체는 흠잡을것이 없는 매우 잘 쓰여진 글로 볼 수 있다. 다만 이 편지를 두고 NBA팬들의 의견은 분분한데 일단 대필한것도 그렇고 마치 영웅의 귀환과 선역으로의 복귀로 드라마틱한 시선을 보내는 이들이 있는 반면 굉장히 계산적이고 정치적이라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조던은 I'm back이라고만하고도 충분했는데 너무 길다고 뭐라하는 사람도있다.[32] [33]


사람들이 내가 어느 곳에서 뛸지 신경 쓰기에 앞서, 나는 오하이오주 북동부에서 자랐다. 그곳에서 나는 걸었고, 뛰었으며, 울었고, 피흘렸다. 때문에 그곳은 언제나 내 심장에 자리한 특별한 장소다. 오하이오 사람들은 내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고, 때때로 나는 오하이오 사람들 모두의 아들이라고 느꼈다. 오하이오 사람들의 열정은 엄청났으며 나를 흥분시키기도 했다. 그만큼 나는 오하이오 사람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 오하이오와 나의 관계는 농구 그 이상이다. 그러나 4년 전에 나는 이를 알지 못했다. 지금은 잘 알고 있다.
2010년 오하이오를 떠난다고 발표했을 때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정말로 힘들었다. 오래 머물고 있었던 곳에서 떠난다면, 분명히 무언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오하이오는 내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내게 있어 마이애미는 대학교와 같은 곳이었다. 마이애미는 지난 4년 동안 나를 성장시키고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줬다. 마이애미서 더 나은 농구선수가 됐고, 더 나은 사람이 됐다. 내가 가기를 원했던 프랜차이즈에서 많은걸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마이애미를 내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할 것이다. 마이애미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마이애미로 간 것은 드웨인 웨이드와 크리스 보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도니스 하슬렘과 함께하기 위해 희생했다. 마리오 찰머스와 형제처럼 지냈던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 모두가 함께한다면, 마술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 믿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마이애미를 떠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은 이들과 함께 쌓아올린 경험들을 이제는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마이애미 동료들과 이야기해왔고, 내가 내린 결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어쨌든 그동안 우리가 이룩한 것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평생을 함께할 형제들이다. 구단주 미키 애리슨과 팻 라일리 사장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이들은 내게 정말 엄청난 4년을 선물해줬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내 자신에 대해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릭 스포엘스트라 감독과의 관계, 라일리 사장과에 관계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마이애미 히트가 하나되지 못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공식기자 회견이나 파티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남기고 난 후에 나는 내년 시즌을 위해 연습할 것이다.
클리블랜드를 떠날 때, 나 스스로에게 미션을 부과했다. 챔피언십을 따내는 것이었고, 두 번 달성했다. 그러나 마이애미는 내가 오기에 앞서 이미 챔피언십을 따낸 팀이다. 그런데 클리블랜드는 정말 긴 시간 동안 우승하지 못했다. 클리블랜드서도 내 목표는 변함이 없다. 최대한 많은 챔피언십을 차지하는 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하이오에 트로피를 선물하는 일이다.
나는 언제나 클리블랜드로 돌아갈 것을, 그리고 클리블랜드서 내 커리어를 마칠 것을 생각했었다. 단지 그게 언제가 될지를 몰랐을 뿐이다. 올 시즌이 끝나고 FA가 됐을 때도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두 아들과 딸을 임신하고 있는 아내와 함께하고 있다. 우리 가족이 내 고향에서 함께 긴 시간을 함께하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다른 팀에 갈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마이애미를 떠난다면, 클리블랜드 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고, 내 생각이 옮다는 느낌을 받았다. 클리블랜드로 돌아와 행복하다.
클리블랜드 복귀에는 아내와 어머니의 지지가 필요했다. 이들 역시 결정을 내리기 힘들었다. 댄 길버트 클리블랜드 구단주의 편지와, 클리블랜드 팬들의 야유, 그리고 그들이 내 유니폼을 불태운 일들 모두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다. 내 감정 역시 복잡했었다. 당시에는 “그래, 다시는 저 사람들은 신경 쓰지도 않겠다”고 쉽게 말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봤다. “만일 내가 한 운동선수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보고, 그 운동선수가 내 인생에 기쁨을 선사했다면? 그런데 그 운동선수가 갑자기 떠났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행동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댄과 꾸준히 만났고,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놨다. 모두가 실수했고, 나 또한 실수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서로에게 원한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챔피언십을 약속하지는 않겠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당장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나는 내년에 우리가 승리하기를 바란다. 냉정히 보면, 긴 여정이 될 것이다. 2010년 당시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린 선수들, 그리고 새로운 감독과 함께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클리블랜드서 나는 베테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과 하나 되는 것에 쾌감을 느낀다. 이들이 아직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도록 도울 것이다. 내가 어린 선수들의 멘토가 되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선수들을 이끌게 되어 굉장히 신난다. 나는 카이리 어빙이 리그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되도록 도울 수 있다. 트리스티안 톰슨과 디온 웨이터스가 성장하도록 도울 수도 있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동료 중 한 명이었던 앤더슨 바레장과 다시 뭉치게 된 것도 기분이 좋다.
하지만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농구를 하기위해 클리블랜드로 다시 왔다. 그러나 농구 외에도 다양하게 클리블랜드를 이끌어야할 책임 역시 있다. 이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마이애미와는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다. 오하이오 아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다. 아이들이 대학을 마치고 이곳으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고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런 모습이 내게 미소를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이제는 우리의 재능을 하나로 모을 때다.
오하이오에서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쟁취해야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위해 우린 뛴다.
나는 이러한 도전에 응할 준비가 됐다. 난 집에 돌아간다.

7. 제2의 BIG 3 결성


르브론의 클리블랜드 복귀후부터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간에 케빈 러브를 두고 트레이드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르브론 역시 케빈 러브와 함께 뛰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고 러브 역시 구단에 클리블랜드로의 트레이드를 요청했다는 루머가 나오면서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상황. ESPN에 의하면 현재 케빈 러브 - 앤드류 위긴스의 트레이드는 시간문제라 하고사실 여기에 NBA 역사에서도 손 꼽힌다는 폭망 픽인 2013년 1픽인 앤써니 버넷도 꼽사리로 껴있다. 팀버울브스는 8월 23일경 러브를 트레이드할 것이라는 기사까지 나오면서 팬들 사이에서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만약 이 트레이드가 성사된다면 클리블랜드는 '현역 최고의 선수 - 리그 최고의 파워포워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선수 - 올스타 가드'라는 라인업을 앞세워 일약에 우승 후보로 떠오를 수 있다.

한국시간 기준 2014년 8월 7일, 클리블랜드와 케빈 러브가 5년 계약을 맺었음이 알려졌고 8월 23일에 클리블랜드-미네소타-필라델피아 간 3각 트레이드가 성사되었음을 발표했다. 마침내 르브론 제임스 - 케빈 러브 - 카이리 어빙의 클리블랜드 BIG 3가 탄생했다.

8. 슈퍼파이브 결성

르브론은 15-16시즌 역사적인 리버스 스윕으로 우승을 차지했으나 이후 판타스틱4를 결성한 골든 스테이트에게 2년간 8패 1승을 당하며 처참하게 패배한다.
게다가 르브론의 주무기 카이리 어빙마저 르브론과의 불화로 셀틱스로 떠난 마당에 캐벌리어스는 말 그대로 미래가 불투명했다.
르브론은 18시즌 후 차기 행선지로 LA레이커스를 선택하였고 이번에는 클리블랜드도 르브론이 1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가져다준데 대해 감사를 표했다.
이번의 르브론은 과거와 달리 이름만 높은 스탯 고평가 저효율 선수 대신 탁월한 플옵 청부사에 실속있는 선수들을 데려가고, 시장에 풀린 커즌스, 카와이, 버틀러 같은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 이는 르브론의 선수를 보는 눈이 많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먼저 뉴올리언스를 2라운드로 올린 라존 론도, 워리어스의 핵심 센터 자베일 맥기, 멘탈을 무너뜨리는 수비왕 랜스 스티븐슨, 잘하는 날은 듀란트인 마이클 비즐리를 영입한다. 모두 르브론 제임스를 괴롭혔던 선수들로 이들과 르브론까지 슈퍼 파이브를 결성하는데 성공하여 다시 우승에 도전할 준비를 마쳤다.

9. 클리블랜드 복귀후의 커리어

9.1. 2014-2015년 시즌


고향팀 복귀 이후 첫 시즌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10. 플레이 스타일


역대 최고를 논할만큼 사기적인 신체 조건 및 운동 능력과 엄청난 센스를 바탕으로 드리블, 볼핸들링, 파워, 스피드, 높이, 슈팅, 패싱, 리바운드, 수비, 체력, 내구성, 페이스업, 포스트업 등 어떤 파라미터를 들이대도 다 잘하는 탈지구인급 만능 선수다. 203cm의 키(라고 하지만 같은 6'8인 파워포워드들 보다도 크다.) [34]을 가지고 있는데, 스피드도 엄청나고 윙스팬도 7풋가량 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칼 말론의 몸뚱아리를 가지고 가드처럼 움직이는 선수

이는 농담이 아닌데, 센터와 파워포워드를 "날려버리고" 리바운드를 잡는가 하면 포인트가드를 코스트 투 코스트로 블락 해버리고, 패싱레인으로 날아들어 스틸도 한다... 내구성도 역대급으로 거의 부상을 당하지 않고 부상을 당해도 좀 벤치 앉아있으면 낫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다. 심지어 파워포워드가 파울을 했는데 파울한 선수가 오히려 튕겨나가는 모습도 보여줬다. 신체스펙이 거의 인류 최종병기 수준.

2010-2011 시즌까지는 중요한 고비에서 부진한 모습을 간혹 보여주었고 그 결과 팀을 우승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승부 근성, 터프함, 결정력에 대한 의문 부호가 따라다녔으나 우승 이후 그러한 비판도 많이 희석되었다. 그나마 약점은 자유투 성공률 정도인데 이게 자유투 성공율이 일류급 스윙맨이 아니라는 거지 파울작전이 효과적인 수준은 절대 아니다. 자유투가 강점 취급을 받는 코비브라이언트, 마이클 조던이 80%초반의 성공율을 보여주는 데 비해 르브론은 이보단 떨어지는 70%중반 수준을 찍고 있다. 커리어 평균은 74.7%, 커리어 하이는 클리블랜드에서의 08/09시즌때 78.0%이며 당장 팀 동료인 드웨인 웨이드의 커리어 자유투 성공율이 76.7%로 조금 나은 정도.

고등학교 때부터 페이스업 무브는 정평이 나 있었고, 드라이브인도 훌륭하다. 골대 밑 페인트존에 아주 잠깐이라도 길이 열리면 눈 깜짝할 사이에 침투해 들어가 킬 패스를 받고 화려한 레이업이나 덩크로 득점을 성공시키고, 그게 막히면 포스트업해서 훅슛이나 골밑슛, 미들레인지 점프슛이나 3점슛도 아주 훌륭하다. 거기에 킬 패스와 경기 운영능력도 리그 A급 포인트가드 수준.

일단 플레이의 기본에 있어서 슬램덩크의 이정환과 실제로 동일하다. 물론 포인트가드가 아니기때문에 시작점은 탑이 아니라 엘보(45도 각도)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단 선돌파 후패스 마인드가 잡혀있고 그의 돌파로 수비를 벗겨내고 돌파해 들어가 상대 센터와 맞부딪혀서 득점하거나 파울을 따내거나, 킥아웃 패스로 외각의 동료들에게 3점 슛을 어시스트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게임 운영방식. 만약 이게 안될때는 중거리에서 포스트업으로 시간과 공간을 마구 잡아먹으며 패스를 뿌리는 타입으로 전환하는데 유독 플레이오프에서 이런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패싱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고 이타적인 플레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히려 욕을 먹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다. 마이클 조던이나 코비 브라이언트 같은 기본적으로 슛퍼스트 마인드가 잡힌 스코어러가 더블팀, 트리플팀을 당하는 가운데 기적같은 위닝샷을 날리는 장면에 익숙해진 팬들은 경기를 결정지을만한 순간 자신이 결정짓는 슛을 날리지 않고 "더 확률 높은 플레이를 위해 오픈된 선수에게 패스를 하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을 하고 있다. 위에 언급했지만, 르브론은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그렇지 못하다.

안타까운 점은 실제로 패스를 했을 때 패스를 받은 선수가 슛을 실패하는 장면이 꽤 많았다는 것. 르브론의 안티들과 히트 이적 후 르브론으로 이슈몰이하기를 좋아하는 언론은 이런 장면이 나올 때마다 "르브론 새가슴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게다 현실에 신준섭같은 선수가 없어서다.

한마디로 슬램덩크에서 스피드넘버원 가드인 송태섭을 스피드로 제치고 파워넘버원 센터인 채치수에게 힘으로 지지 않는 이정환의 최종진화형태 플레이를 현실에서 보여주고 있다. 거기에 노안 또한 리그 최고를 자랑하는점도 똑같다!! 현실 세계에선 그렉 오든의 등장으로 많이 순화되었지만...

나이도 아직 젊어 계속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무섭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리그에 진출한 만큼 성장의 가능성이 더 남아있는 것이다. 자유투만 개선한다면..

애정을 담아 '발못쓰'(발전 못 하는 쓰레기), '트못쓰'(트리플더블도 못하는 쓰레기)라 부르기도. 그의 트리플-더블 기록 소식은 이제 덤덤하기까지 한다. NBA팬들에게는 슬슬 느바계의 그 분 취급을 받는 듯 하다.

2011-2012 정규 시즌 및 포스트시즌에서 이거 좀 너무하는 게 아니냐 싶을 정도로 꾸준하게 보여준 압도적인 플레이와 대망의 첫 우승 이후로는 적어도 농구 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까고 싶어도 깔 수가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전히 안티가 많은 선수긴 하지만 농구 실력 가지고는 도무지 깔 수가 없는 관계로 '실력이 최고인 건 인정하지만 XXXX한 게 싫다' 라는 투로 까인다.[35]

다만 이제는 농담으로라도 '발못쓰'(발전 못 하는 쓰레기)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많이 없어졌는데 이유는 마이애미 이적 전후 보여준 무지막지한 발전 덕분이다. 처음 MVP를 탔던 08-09시즌 이후로 12-13시즌에 이르기까지 야투율은 0.489에서 0.563으로 3점슛 성공률은 0.344에서 0.403으로 무지막지하게 상승했다. 특히나 야투율 0.563은 충격과 공포의 수치로[36] 지켜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에 득점은 08-09시즌에 비해 약 2점 정도 줄었는데 시즌 평균 1600개 정도 던지던 야투를 1200개 대로 줄인 영향일뿐 기량의 저하라 보기는 어렵다.

경기 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이미 클리블랜드 시절부터 완전체라고 불리던 선수가 10-11시즌 파이널에서 댈러스에게 패배하더니 뜬금없이 각성. 오프시즌에 하킴스쿨에서 포스트업을 배워 장착해 11-12시즌을 우승하더니[37] 12-13 시즌에는 3점슛 성공률을 단번에 4%나 끌어올리면서 A급 외곽슛터의 기준인 4할대의 3점슛 성공률을 충족시켰다. 이러한 르브론의 상식을 무시한발전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실제 선수가 아니라 게임 캐릭터 같다는 평을 내놓기도 한다.3점슛 성공률이 별론데요? 라고 스퍼스가 방심했다가 7차전때 탈탈 털렸다. ~~그 다음해 파이널에서 7차전까지 가기 전에 시리즈 내내 샌안토니오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리긴 했지만.(...)

이제 남은 것은 자유투 성공률 뿐이지만 국내 커뮤니티에서는 그래도 사람인데 자유투는 좀 남겨둬야 인간미가 있지 않냐는 말이 나올 정도. 기량적인 측면에서는 억지로 흠을 잡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효율적으로 플레이하는 선수라 Player Efficiency Rating은 역대 2위이다.[38] 더불어 6년연속 PER 1위를 차지하고 있고 올해도 1위를 한다면 7년연속 1위로 마이클 조던과는 타이기록이다.

13-14시즌 파이널에서 르브론의 약점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포스트 업을 장착했다고는 하지만, 기술적인 완성도가 뛰어나다고 보기 힘들고, 미드레인지 능력은 원래 별로이고, 스크린을 타는 능력도, 팀에 스크린을 잘 서는 선수도 없다보니 결국 제일 많이 하는 것은 피지컬을 이용한 닥돌인데, 닥돌을 하다보면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 사실 이건 히트의 전술과도 관련이 있는데, 르브론의 돌파 후 패스로 거의 모든 공격이 시작되는 히트의 특성상 체력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 예전엔 아예 체력방전이란 말을 모르는 듯한 르브론이었지만 압박과 장거리를 오가며 치르는 플레이 오프에서 이 부담이 나타난 것. 특히 작년과 달리 스퍼스의 포포비치 감독은 르브론의 돌파를 막는 수비 방식을 버리고, 오히려 르브론의 돌파 후 패스를 받을 선수들을 묶는 전략을 세웠다. 르브론에게 먹는 점수는 내주지만 팀플레이를 어긋나게 하겠다는 이 전략은 르브론의 득점력을 생각했을 때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파이널 MVP를 수상한 카와이 레너드가 생각보다 르브론을 잘 막으면서 파이널 시리즈 전체를 스퍼스가 압도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나이를 먹다보면 피지컬은 점점 떨어지기 마련이니, 코비 브라이언트나 마이클 조던처럼 30대 중반 이후에도 정상급 기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슈팅능력 향상이 필요해 보인다.

11. 그 외 이야기

워낙 엄청난 기량 향상을 하는 선수라, 과거에는 그저 가능성이 있다 수준으로 머물렀던 조던과의 비교가 슬금슬금 나타나기 시작했고 각종 농구 관련 커뮤니티에 떡밥이 되고 있다. (물론 업적이나 스탯은 비교가 되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은 조던과 비교할 때 포지션도 같고 플레이스타일마저 똑같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더 자주 비교를 하고 있다.)
워낙 많은 자칭 타칭 전문가들이 이야기를 꺼내는 주제고 르브론의 현역으로 타이틀을 계속 수집하고 있는 상황이라 지금까지는 뭐라고 대체적인 여론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은 의견은 정규시즌의 기량으로 따지자면 조던과 비교할만 하지만 우승 횟수가 많이 차이가 나니 우승 개수 채우는게 먼저라는 정도. 마이애미로 이적한 시점부터 조던을 넘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만만찮지만 일단 우승만 하면 장땡이라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2014년, 쓰리핏에 실패한 이후로 조던과의 비교는 당분간 사그라들것으로 보인다. 조던은 르브론이 빅 3를 결성했음에도 달성하지 못한 쓰리핏을 두번이나 달성했다. 그것도 야구하다 와서 한번(...).
사실 르브론이 워낙 일찍 데뷔해 "같은 나이 대비 비교"에서 조던보다도 앞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이가 점점 들면서 "같은 나이로 비교하면 르브론이 더 뛰어나다"고 하기도 애매해지고 있다.(물론 평균이 아닌 통산 기록은 조던보다 르브론이 훨씬 높을 확률이 매우 유력하다)[39] 현재 르브론(만30세)와 대략 비슷한 나이대의 조던은 1992-93시즌이었는데 이때와 비교하면 MVP갯수는 르브론이 하나 더 많지만, 우승과 파이널 MVP는 조던이 하나 더 많다.(물론 이번 시즌이 아직 안 끝났지만 시즌 절반이 지난 현재로 보면 르브론이 Mvp를 탈 확률은 희박하다. 팀성적도 기대이하고...물론 갑자기 우승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인데 조던은 데뷔 후 거의 매년 플옵에서 괴물같은 기록을 내다가 팀이 전력보강을 한 이후 세번 파이널에 진출해(93기준) 매년 역대급 활약을 하며 3연속 우승을 했다. 그러나 르브론은 두번이나 더 파이널에 진출했고 팀동 료들의 수준도 조던보다 월등했음에도(피펜은 91시즌엔 올스타에 선발못됐고, 3옵션인 호레이스 그랜트도 조던과 뛸 당시엔 한번도 올스타가 아니었다) 조던만큼 엄청난 활약을 한 적도 없다.

* 르브론 제임스와 마이클 조던의 30살까지 파이널 기록 비교 (2015년 1월 기준. 만약 캐벌리어스가 2015파이널에 진출한다면 당연히 달라진다)

마이클 조던

31.2점 6.6리바운드 11.4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55.8% 삼점슛 성공률 50% 자유투 성공률 84.8% (91년) - 우승
35.8점 4.8리바운드 6.5어시스트 필드골 52.6% 삼점슛 성공률 42.9% 자유투 성공률 89.1% (92년) - 우승
41점 8.5리바운드 6.3어시스트 필드골 50.8% 삼점슛 40% 자유투 69.% (93년) - 우승
총 17 경기 평균 36.3점 6.64리바운드 7.88 어시스트

르브론 제임스

22점 7리바운드 6.8어시스트 필드골 35.6% 삼점슛 20% 자유투 69% (2007년) - 준우승
17.8점 7.2리바운드 6.8어시스트 필드골 47.8% 삼점슛 32.1% 자유투 60% (2011년) - 준우승 (팀내 득점 3위)
28.6점 10.2리바운드 7.4 어시스트 필드골 47.2% 삼점슛 18.8% 자유투 82.6% (2012년) - 우승
25.3점 10.9리바운드 7어시스트 필드골 44.7% 삼점슛 35.3% 자유투 79.5% (2013년) - 우승
28.2점 7.8리바운드 4어시스트 필드골 57.1% 삼점슛 51.9% 자유투 79.3% (2014년) - 준우승
총 28경기 24.2 점 8.71 리바운드 6.46 어시스트

2011년을 제외하곤 두 선수가 각 팀의 득점 1위를 기록.
수비력에서는 아무래도 조던에 비하면 한참 뒤떨어진다. 빠른 스피드를 이용한 도움수비및 트랜지션상황에서의 디펜스는 스몰포워드중에서 상위권이고 그로인해 09년부터 5년연속 디펜시브퍼스트팀에 올랐으나 데뷔시기부터 지금까지 맨투맨및 대인수비영역에서는 브루스 보웬이나 안드레 이궈달라같은 동시대 스몰포워드에비해 많이 쳐지는편이다. 또한 나이가들면서 점점 스피드가떨어지며 강점이었던 헬핑및 도움수비에서조차 폴 죠지같은 젊은 포워드들에게 밀리고있으며 이로인해 2014년에 디펜시브 세컨드팀으로 밀려났고, 세컨드수상조차 미국현지에서도 많지는않지만 몇몇전문가들사이에서 일부 논란이 있었다. 물론 09년부터 수상했던 5년연속 디펜시브퍼스트팀조차 안드레 이궈달라, 타보 세폴로샤 같은 선수들이 최소 2~3차례는 받아야했는데 르브론 제임스의 몇몇 전국중계경기때의 활약으로인해 꾸준히 수비에서 존재감을 나타낸 다른선수들이 알게모르게 수상에서 피해를 본점도 크다. 득점/리바운드/어시스트의 평균을 내보면 리바운드에서 2.1개 앞서지만 조던이 어시스트에서 1.4개 정도 앞선다.
문제는 그 이상으로 득점에서 넘사벽이 느껴진다는 것. 두 사람간의 득점차이는 평균 12점에 달한다. (...) 르브론은 가장 높은 기록이 28점대인데 조던은 가장 낮은 기록이 31점대다. 2007 파이널 당시 클리블랜드가 르브론의 원맨팀이라고들 하는데, 참고로 이때 르브론과 팀내 득점 2위 드류 구든의 격차가 9.2점이었다.[40]
슛 성공률로 따져보면 2014년의 57.1%를 제외하면 르브론은 5할을 넘긴적이 없는데 조던은 세번 다 5할을 넘겼다. 르브론의 최고기록은 조던의 최고기록인 55.8%보다 1.3%가 높지만, 평균을 내보면 큰 격차가 난다. 일단 2007년의 35.6%가 평균을 쭉 끌어내리기도 하고.
르브론의 몇 안되는 약점으로 꼽히는 자유투 역시 조던이 크게 앞서며 (93년의 69%가 흠이지만 르브론은 이보다 낮은 성공률을 두번이나 기록했다) 심지어 조던보다 확실히 르브론이 뛰어난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인 삼점슛조차 전체적으로 조던이 앞선다.
물론 성공갯수로 따지면 조던이 훨씬 적지만 92시즌에는 경기당 4.6개를 던져 2개를 성공시키면서 42.9%를 기록했으니 단순히 "안던져서 성공률이 높은 것"이라고 할수도 없다.

추가로 93년 파이널 4차전에 조던이 기록한 55점은 역대 파이널 한 경기 득점 기록 중 2위이며 (릭 베리와 타이. 1위는 엘진 베일러의 61점) 이 때 기록한 시리즈 평균 41점은 역대 파이널 평균 중 가장 높다.

종합해보면 리바운드를 제외한 사실상 전 분야에서 조던의 우세다. 특히 득점은 근접하지도 못한 수준. [41]

기록에서 뒤지는 것도 크지만, 가장 큰 건 역시 우승 기록. 르브론은 조던보다 훨씬 어린 나이부터 파이널 무대를 밟기 시작했으나 조던만큼 파이널에서 큰 임팩트를 남긴 적은 한번도 없다. 오히려 첫 두번의 준우승동안 엄청난 부진으로 욕을 먹었다. 2007년에는 팀동료들이 안습이고 본인도 어렸다는 핑계거리라도 있었지만, 슈퍼스타 동료들과 함께 한 2011년에는 2007년보다 더 심각하게 부진하며 팀내 득점이 웨이드는 물론이고 크리스 보쉬한테도 밀렸다. 두 선수의 실력차이를 생각하면 이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부진. 조던의 경우 가장 부진한게 96년(33세)의 27점인데 이때 팀내 득점 2위인 피펜과 득점차이는 12점에 달했으며, 경기에 대한 공헌도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Game score도 조던이 가장 높았다. 즉, 조던치고 부진한거지 실제로 부진한 건 아니었다.

ESPN의 Skip Bayless는 이와 같은 부진을 거론하며 르브론이 조던은 말할 것고 없고 래리 버드와 비교해도 우위를 점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실상 현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조던을 뛰어넘긴 어려우니, 르브론은 그 자체로서 평가하자"란 분위기가 슬슬 대세가 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이 점은 이전에 조던과 비교된 코비도 마찬가지였는데, 커리어 초반엔 "지금 나이에 조던은 ~~했는데 코비는 반지가 세개다!" 이러다가 막판엔 "그래도 조던은 못 넘겠네"로 넘어간 것.



조던이야 워낙 넘사벽이니 논외로 친다 하여도 현역 선수중 포지션별 올타임 넘버원에 들어갈만한 유이한 선수로 평가받는다.[42] 2013년에 MVP와 파이널 MVP를 모두 차지한 후에는 역대 최고의 스몰포워드였던 래리 버드와 비교해도 꿇릴게 없다는 의견이 대세다. 버드는 커리어가 짧은 편이었던 반면 르브론은 아직 전성기가 끝나지 않은걸로 보이고. 다만 위에 언급된 것처럼 몇번의 파이널에서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인 것 때문에 큰 경기에서 역대 가장 강한 선수중 하나였던 버드와 비교하며 쓴소리를 하는 전문가들도 있지만, 워낙 화려한 커리어를 쌓는중이라 지금처럼 커리어를 잘 마무리만 한다면 은퇴 쯤 수상실적이건, 통산기록이건 버드를 훌쩍 뛰어넘을게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미 우승은 1개 차이로 따라잡았고 파이널MVP 갯수는 같으며, MVP갯수는 오히려 하나가 더 많다.

거친 플레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선수지만 이에 비해서 플라핑을 은근히 지적받는 편이다. 제임스 본인은 인터뷰에서 "플라핑도 일종의 전술이다."라고 한 바 있는데,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나는 플라핑을 하지 않는다."라고 쓸데없이 덧붙여서 또 까였다.




2016년은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아니 그보다도 헤어밴드를 저렇게 쓰고 고개를 제대로 움직일 수가 있나? 아직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탈모가 거의 완전히 진행되었고, 그때마다 점점 헤어밴드가 올라가고 있다……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간판타자인 미겔 카브레라가 디트로이트와 역대급 재계약을 맺자 그것이 부럽다고 발언했다. 샐러리캡과 맥시멈제도가 있는 NBA와는 달리 MLB는 그런게 없기 때문에 스타급 선수의 연봉의 차이는 좀 나는 편이긴 하지만(르브론의 13/14시즌 연봉은 19M정도고 연장계약을 한 미겔 카브레라의 평균 연봉은 30M) 문제는 르브론은 몸값을 제외하고 광고라던가 여러 수입으로 미겔 카브레라보다 더 많이 벌어들이고 있다는 거라 배부른 사람의 투정으로 보인다는 점.

최근 부정적인 의견이 하나 더 늘었는데 요즘 르브론의 행보가 너무 계산적이고 정치적이지 아니냐는 것이다. 클리블랜드 복귀 후 미네소타와의 비즈니스로 케빈 러브를 데려오고 또다른 Big 3를 결성한 점을 들어 이런 이야기가 종종 언급되고 있다. 마이애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발언해 놓고[43] 쓰리핏이라는 대업에 실패한 후 주축 선수들의 노화로 한계를 보이기 시작한 마이애미 히트에서 드래프트에서 재미를 본 클리블랜드로 노선을 바꾼 점, 사정이 나아진 클리블랜드에서 이번에도 어김없이 빅네임 선수들과 함께 Big3를 결성했다는 점 등.[44]
하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한쪽의 의견과 시선일 뿐. 르브론 제임스가 NBA에서 정한 법을 어긴것도 아니기에 크게 문제될건 없나 했지만 며칠 후 케빈 러브가 최근 인터뷰에서 클리블랜드와 계약하기 전 르브론과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자백밝히면서 벌금형이 내려질 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그걸 또 말하냐 NBA에서 템퍼링[45] 사실이 밝혀질 경우 최대 5만불의 벌금형을 물린다고 한다. 사실 벌금형은 그렇다 치더라도 르브론 입장에서 이 사건은 본인의 이미지에 타격이 상당히 클 듯.

12. 기타


조던하고 비교가 많이 되지만 르브론 본인은 조던빠에 가깝다. 본인이 조던하고 맞붙는 장면을 휴대폰 배경화면을 쓰고 있다고 한다. '조던 막고 르브론 뚫고' 누구의 배경화면일까 2009년 11월 경에는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였던 23번을 NBA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코비를 필두로 한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반 슈팅 가드들이 조던의 거대한 그늘에 시달리며 "존경은 하지만 난 조던이 아니다." 는 식으로 조던과 매칭이 되는것에 대해 상당히 진저리를 치는것에 비하면, 아무래도 세대가 다르고 스타일도 상당히 다르다보니 그런 압박은 잘 안받는 편인듯.

가끔 새가슴 논쟁에 시달리는편인데 2010~2011시즌 피크에 달했던 시기에 하필이면 늘 비교대상일수밖에없는 클러치에 강한 조던과 비교되면서 조롱을 받아야했다.[46] 하지만 바로 다음시즌인 2011~2012시즌을 거점으로 플레이오프와 파이널에서 이런 논란을 일축할만한 대활약을 선보이며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 가라앉았지만, 2014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살짝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47][48] 특히, 파이널 내내(2차전 제외) 전반에 비해 후반에서 힘을 못쓰고 팀이 완패당하는 것을 막지 못한 모습은 타격이 컸다.

NBA가 사무국과 선수노조 간 의견차를 좁히지 못해 2011 시즌 일부를 쉬게 되자 부업을 찾고 있는 걸로 보였다.(...) 난데없이 10월 초에 트위터를 통해 프로미식축구 리그인 NFL의 FA계약 마감일을 물어보면서 뉴스거리를 만들더니, 1주일 후엔 시애틀 시혹스의 피트 캐롤 감독과 대화를 주고받았다.[49] 물론 진짜 미식축구로 전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런 격렬한 스포츠를 하다 다치기라도 하면 NBA 커리어는...그래도 사람들은 인류최종병기 수준 피지컬의 타이트엔드를 보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이유로, NFL의 캘빈 존슨, NBA의 드와이트 하워드 등과 함께 다음 이종까페나 격갤같은 이종격투기 커뮤니티에서 가끔 발생하는 피지컬 괴물(격투기능력이 아니라 순수한 운동능력을 말한다) vs놀이 떡밥에 고정 등판하는 선수.

2010년 개막전 경기의 어느 도시전설급 녹화분은 루프물 세계라서, 그 비디오속 세계에 존재하는 르브론은 다른 관중 및 선수, 코칭스태프, 중계진들과 루프속에 살다가 봉변을 당했다 카더라.

MLB 뉴욕 양키스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2007년 뉴욕 양키스와 고향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아메리칸리그 디비전시리즈가 열렸을 때, 클리블랜드의 홈구장 제이콥스 필드(2008년부터 프로그레시브 필드로 개명)에 양키스 모자를 쓰고 나타나서 양키스를 응원해 클리블랜드팬에게 욕을 왕창 먹었다. 절친한 관계인 CC 사바시아밀워키 브루어스에서 FA로 풀리자 양키스로 가라고 권유한 것도 바로 르브론. 비슷하게 사바시아도 르브론한테 뉴욕 닉스로 가라고 권유한 적이 있다.

미국시간 2013년 8월 18일 트윗을 올렸는데, 이때 상황이 마이애미 지역 경찰이 3개 블록의 신호등을 멈추고 한 개 차선을 막아 도로를 역주행하는 르브론 제임스의 차량을 에스코트했다. 덕분에 제임스는 친구 Jay-Z와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하는 콘서트에 늦지 않을 수 있었다. 르브론은 "경찰들이 우리를 너무 잘 대해줬다.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서 필요한 조치였다."고 말하여 인터넷에서 또다시 극딜을 당했다.

그러나 이후 발표된 조사 진행과정에서는, 이날 플로리다마이애미 선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저스틴 팀버레이크제이지의 합동공연 시작 전,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청한 르브론 제임스가 현장에 도착하지 않자 제이지가 "르브론 제임스가 없으면 공연 안한다!"라고 선언해 마이애미 경찰이 르브론을 빨리 불러오는 것이 'everyone's best interest'라는 결정을 내리고 허겁지겁 르브론 제임스의 차량을 도로 역주행까지 시켜가며 데려왔다고 한다. 제이지와 르브론 제임스가 가진 마이애미 지역내 영향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왜 굳이 제이지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고 경찰이 받아들였는지는 알 수 없다. 미국 현지 기사 내용 보기. 르브론 제임스가 잘못을 한건 아니지만 쓸데없이 트윗해 구설수에 올랐다는 점에서 트인낭의 사례라고 할 수도 있을듯...
더불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Whenever you’re happy and in a great place in anything, someone or something will try to put a virus in it to make it all unravel,”
라는 문구를 찍어 올리고, 태그는 #HatersBreedEnvy.....

2013년 9월 14일 오랫동안 사귀던 여자친구 사반나 브린슨과 결혼했다. 사실 진작에 자식도 둘 있는 사이.

기억력이 대단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관적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관련 링크 근데 가끔 불리한건 까먹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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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하지만 실제 플레이를 보면 포인트 가드에서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에서 파워 포워드를 끊임없이 오가고 있다.
  • [2] 미용실을 하던 홀어머니 프레다 제임스와 함께 살 때는 생활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르브론의 세 살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프레다가 세상을 뜨자 금방 가세가 기울었다. 스무 살 남짓한 미혼모가 친척도 없이 하이를 키우기는 힘들었던 것.
  • [3] 글로리아가 거의 삶을 놓아 버리는 바람에 르브론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1년에 80~100일씩 결석하곤 했다.
  • [4] Fab4는 크리스 웨버 등이 포함된 90년대 초반 미시건 주립대 1학년 군단 Fab5에서 따온 이름이다. AAU 시절에는 르브론과 드류 조이스, 윌리 맥기, 시안 코튼 4명이 한 팀이었으므로 자칭 Fab4라 했다. 로미오 트래비스는 어린 시절 알고 지내기는 했지만 AAU를 함께 뛰지는 않았고(미식축구는 팀메이트 경험 있음), 트래비스가 고등학교때 르브론의 학교로 전학오면서 한 팀이 됐다.
  • [5] 여담으로 조던이 르브론을 막는 방법에 대해 "르브론은 왼쪽으로는 돌파 안하니까 나는 르브론을 왼쪽으로 몰아서 슛하게 만들겠음." 이라고 말했는데, 르브론은 여기에 대해 "워커 선생님이 나에게 왼손 레이업을 가르쳐 주었다." 고 대답했다. 그리고 며칠 후 올랜도 원정 경기에서 깨끗하게 왼쪽 돌파로 위닝샷 성공.
  • [6] 여담으로 이때 SVSM 농구부 주장을 맡고 있던 사람이 현재 르브론의 매니지먼트 회사 CEO인 매버릭 카터다. 카터는 어린 시절 르브론의 이웃집에 살면서 서로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은 적도 있었다.
  • [7] 자동차를 사준 것 자체는 문제가 없었지만 당시 글로리아의 신용등급으로는 받을 수 없는 액수의 대출을 받아 차를 구입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은행으로서는 머지 않아 백만장자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한 르브론의 미래 가치를 고려해 대출을 해준 것. 하지만 이는 선수가 100달러 이상의 선물을 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는 규정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있었다.
  • [8] 여담으로 당시 멤피스는 수년 전의 트레이드를 통해 그 해 지명권을 디트로이트에 보낸 상태였고, 이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추첨에서 1순위를 뽑는 것 뿐이었다. 그런데 확률 대로라면 6순위에 불과했던 멤피스의 추첨 순위가 점점 올라가면서 마지막 두 팀에 들게 되었다. 여기서 1순위에 뽑히면 기적적으로 르브론을 지명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멤피스는 2순위에 그쳤고, 제리 웨스트 단장이 머리를 감싸쥔 가운데 지명권을 디트로이트에 넘겨야 했다. 한편 희희낙락한 디트로이트가 그 2순위 지명권으로 뽑은 것이 다르코 밀리시치... 아직 카멜로 앤써니, 크리스 보쉬, 드웨인 웨이드가 남아 있었다.
  • [9] 르브론 제임스 이전 클리블랜드의 주축 득점원이었지만, 멘탈 문제가 심각했고 트리플 더블하려고 자기 골대에 자살골을 던지려는 미친 짓을 저지른 선수다. 쫓겨날만도 하다.
  • [10] 다만 신인왕을 두고 경쟁했던 카멜로 앤써니가 받았어야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때의 성적으로 보면 앤써니는 르브론에 전혀 밀리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좀 차이가 벌어진 상태
  • [11] 2001년부터 2008년까지 All-Defensive Team 8년 연속 수상
  • [12] 본래 두 팀 다 스몰마켓이기도 하고 경기 자체도 너무 일방적이라 스포츠 기자들도 NBA 파이널을 안 보고 소프라노스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보려고 했다고 한다.
  • [13] 물론 스몰마켓 팀인데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보이는 오클라호마 시티나 샌안토니오도 있지만, 클리블랜드 프런트는 명백히 능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리그에서 가장 완벽한 프런트를 가진 샌안토니오도 팀 던컨이라는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뽑고 나서야 우승 할 수 있었다.
  • [14] 클리블랜드 시절부터 그의 앞길을 가로막던 팀인 보스턴 셀틱스를 비로소 이긴 르브론은 5차전 종료후 코트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세레머니로 홈팬들을 숙연하게했다. 먼저 떠난 친구에 대한 묵념, 클리블랜드 팬들에 대한 사과의 메세지였기에...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었다.
  • [15] 이때 이전부터 줄곧 논란이었던 새가슴얘기가 다시 나오기 시작했었다.
  • [16] 근데 이런 반응도 나올만 했었던게 시카고와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르브론의 4쿼터 평균득점은 8.2득점이었다. 그 기록에 살인적인 수비까지 보여줬던 르브론이었으니 경기를 보는 팬들은 그 선수가 맞나 싶을정도로 르브론이 결정적인 순간에 유독 고개숙였던건 사실.
  • [17] 같은 21득점을 기록한 댈러스의 에이스 노비츠키가 경기초반 부진하다 후반들어 팀의 리더이자 해결사답게 승부처를 접수했으니 더욱 비교되었다.
  • [18] 한편 2쿼터 초반 댈러스가 10여점차로 앞선상황에서 마이애미는 웨이드를 앞세워 추격을 시도했지만 댈러스의 전략적인 수비를 읽지 못한 채 마음 급한 공격만 펼치다 범실을 범하기도했다. 흐름을 가져오며 댈러스가 분위기를 타기 시작한것도있지만 당시 마이애미에서 마땅한 해결사가 없었다는걸 나타내기도 하는 대목.
  • [19] 당시 인디애나는 외곽 슛 방어를 위해 센터인 로이 히버트를 빼놓고 있어 일격에 당해버렸다.
  • [20] 히트의 종전 최고 기록은 글렌 라이스의 56득점.
  • [21] 그런데 이건 르브론으로선 억울할수도 있는 것이 이 경기는 오심 혹은 편파판정이 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르브론 제임스는 이때 28분 내 5파울을 범해사실 28분이 채 되기도 전에 이미 폭풍 4파울을 당했다. 일찍이 파울트러블에 걸렸고 경기가 어느정도 진행되었음에도 르브론의 득점이 1쿼터에 쌓은 불과 2득점뿐이어서1쿼터 야투가 1/5이기도 했지만... 이날 경기내용에 관해 수상쩍다는 반응이 꽤 있었다.
  • [22] 당시 샌안토니오 구장에 에어컨이 고장 나 가히 찜통과 같은 더위에서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당시 온도가 구장 밖보다 더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온도 때문에 탈수현상이 일어나 엎친 데 덮친격으로 이런 부상이 일어났다고 하는데 마이애미 히트 선수들도 굳이 에어컨 때문에 피해 본 건 아니라는 반응보쉬는 크게 상관없다고 했다.과 고연령층의 샌안토니오 스퍼스팀이 승리를 이끌면서 현재는 꼭 에어컨 탓만은 아닌 걸로 얘기된다. 하지만 혹자들은 그날의 진정한 MVP는 에어컨 엔지니어라고 한다.(...) 1~3쿼터는 해고였는데 4쿼터에 승진...응?...
  • [23] 당시 경기의 야투율기록도 상당하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소속선수 보리스 디아우도 경기가 너무 물흐르듯 지나갔다 말했을정도.
  • [24] 카와이 레너드의 수비에 말린 게 컸다. 파이널 내내 르브론도 그의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지만 뚫고 나면 던컨이 골밑에 버티고 있으니...
  • [25] 말 그대로 정말 털렸다. 사실 마이애미가 이긴 한 경기를 제외하고 이번 파이널에서 샌안토니오가 승리한 4경기는 전부 가비지타임(...)을 불렀을 정도. 이번 파이널을 아예 통틀어서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 [26] 그러나 이는 동료들만을 탓할 수는 없는 것이 이 날 경기에서 르브론 제임스의 온코트 마진은 팀원들 중 꼴찌다(...). 결국 본인이 그렇게나 많은 포지션을 가져가고도 팀의 패배를 막지 못한 것은 비판을 받아야 할 점이다. 무작정 팀원들의 부진을 탓할 수는 없다는 것. 게다가 3쿼터는 잘했지만 2쿼터에서 공을 질질 끌다가 공격 흐름을 끊은 것도 르브론이고 정작 4쿼터에서는 체력방전 및 멘탈문제로 귀신같이 무득점을 했으니...
  • [27] 특히 파이널 MVP를 수상한 카와이 레너드와 3점을 융단폭격한 패트릭 밀스를 꼽을수있는데 사실 누군가를 꼽기보단 대니 그린을 빼놓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전 선수가 모두 고루 잘했다. 이타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안정적으로 이끈 보리스 디아우와 작년 파이널 부진했던 스플리터가 더 강해진 정신력으로 제 몫을 든든히 해주었고 전시즌 폭풍 턴오버(...)를 저지르며 비난을 받은 바 있는 마누 지노빌리의 활약으로 다시금 파이널 마지막 경기를 수놓았으며 전시즌 부진하던 토니 파커가 후반에 들어서 갑자기 살아난 것도 컸다. 전반은 버린거냐?.(...) 그리고 그 중심엔 올타임 No.1 파워포워드 팀 던컨이 있었고.
  • [28] 4쿼터 가비지타임에 들어가기 전까지도 20점차 안팎이었던걸 생각하면..
  • [29] 5차전에서 뒤늦은 활약이 있었지만 말 그대로 이미 늦었었다.
  • [30] 이같은 일과 13~14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서의 패스가 다시 거론되며 지긋지긋한 르브론의 새가슴론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 [31] 전 시즌에서도 르브론은 카와이 레너드의 수비력과 강심장에 고생했었으나 기어코 우승을 일군 것과는 달리 이번 시즌 들어 카와이 레너드의 기량이 탄력을 받으면서 르브론은 내내 맘 같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야만 했다.
  • [32] 각각 농구잡지 점프볼과 루키에서 편집장을 맡고있는 손대범 편집장과 조현일 기자, 해설위원들은 이 편지는 르브론이 전부 쓴게 아닐거라는 의견을 내며 중의적인 반응을 보였고 NBA잡지 루키의 기자 이승기의 경우는 해당 편지로 르브론 제임스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어 극과극의 반응을 끌어냈다. "속 시원하다." 혹은 "넌 기자도 아니다."(...) 정도면 극과극 맞지뭐...
  • [33] 사실 편지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클블행을 "도전"으로 보기도 뭐하다. 르브론이 클블과 계약하기 전부터 피터 벡시같은 베테랑 기자들이 "르브론이 케빈 러브 합류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런 보도가 나온 직후 캐브수가 "위긴스 못준다"던 기존의 태도를 바꿔 "위긴스도 줄수 있다"고 나섰기에 "어빙-러브와 새로운 빅3 결성을 보장받고 클블 이적하는것 아니냐"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이애미 빅3는 슈퍼스타들이었으나 13,14시즌을 기점으로 웨이드의 기량이 크게 하락하기 시작한 만큼, "이미 늙어가고 있는 빅3를 버리고 더 젊고 성장하고 있는 빅3를 택했다"는 비판도 있는 상황이다.
  • [34] 이건 신발신고 재는 키로 프로필을 적는 선수와 맨발키로 적는 선수가 나뉘기때문에 생긴일이다.
  • [35] 심지어 머리가 벗겨졌다던지, 못생겼다던지 같은 걸로도 까인다(...)
  • [36] 그 마이클 조던 조차 야투율 커리어 하이는 0.539다. 커리어 평균은 0.497. 다만 이건 당시 조던의 평균점수가 32점으로 지금 르브론보다 5~6점 정도 높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보통 야투를 많이 던질수록, 팀동료들의 기량이 약할수록 야투율은 떨어지는데 조던은 지금 르브론만큼 득점력이 뛰어난 동료들과 뛴 적이 없다. (피펜은 준수한 득점원이었지만 커리어내내 점프슛 정확도가 약점으로 지적받았다) 실제로 르브론이 클리블랜드에서 29.7점, 30점을 기록했던 10시즌, 08시즌에는 야투율이 50.3%,48.4였다. 물론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금 르브론의 야투율은 충분히 대굇수급이다. 또한 조던이 활약했던 시기의 야투성공률이 지금보다 전체적으로 높기도 했다.
  • [37] 상기에 서술되어있는 보스턴과의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대부분의 골을 포스트업으로 만들어 냈다.
  • [38] 1위는 바로 마이클 조던이다.
  • [39] 이런 '같은 나이' 기준 비교는 허점이 하나 있는데, 고졸과 대졸의 경우 쌓이는 마일리지로 인한 신체소모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팀 던컨과 케빈 가넷은 동갑이지만 데뷔를 2년이나 먼저 한 가넷이 노쇠화가 훨씬 빨리 왔다. NBA는 82경기나 치르는데다 훈련도 빡세기 때문에 30경기 정도 뛰는 대학과 체력 및 신체소모가 훨씬 심하다. 또한 조던은 NBA 역사상 유례가 드물 정도로 높은 기량을 늦은 나이까지 유지한 철인이란 점도 있다.(35세 때 역대 두번째로 나이많은 MVP-원래 최고령이었으나 칼 말론이 몇 개월차이로 경신-,이자 역대 최고령 득점왕이 되었다.) 르브론이 이 나이까지 정상급 기량을 유지한단 보장이 없다. 코비만 해도 34세던 2012~13시즌 초반엔 잘 나갔으나 큰 부상을 입고 시즌아웃됐다.
  • [40] 사족이지만 조던은 91~93년까지 팀내 득점 2위인 피펜과의 차이가 각각 10.4점, 15점, 19.8점이었다. 특히 93시즌엔 거의 두배
  • [41] 만약 극악으로 부진한 2011년을 뺀다면 평균이 25.95까지 올라가지만, 동일한 논리로 조던이 득점에서 가장 부진한 (...) 31.2점을 빼면 조던은 평균이 38.41까지 올라간다.
  • [42] 나머지 한명인 이미 파워포워드 넘버원이 확정된 팀 던컨.
  • [43] 루머가 아닌 실제 본인의 SNS에서 나온 발언
  • [44] 이런 면에서 많은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케빈 러브 등 수준급 선수들과 함께 또다시 게임에서나 나올 법한 사기팀을 결성했기 때문.
  • [45] NBA에서는 구단과 선수가 트레이드에 관련한 협의가 가능한 기간이 정해져 있다. 그 기간 이전에 계약 합의를 하는 것을 템퍼링이라고 하며 이는 NBA에서 불법이다.
  • [46] 당시 꼭 조던이 아니더라도 상대했던 팀의 에이스가 클러치에 강한 일명 사기츠키. 더크 노비츠키였기에 이런식의 비교는 피할수 없었겠지만...
  • [47] 2013~2014시즌 인디애나와의 컨퍼런스 파이널 5차전에서 결정적인 순간 마지막 패스로 다시금 새가슴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의가 아닌 단순히 감독의 전술이었다는 설과 본인이 파울 트러블로 묶인 상황에서 연장에 돌입하는 것은 무모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보쉬의 석점으로 단번에 역전을 노렸다는 설도 있다. 당시 경기의 판정이 꽤나 편파적이어서 르브론이 순식간에 5파울이 되었던걸 생각하면 일리있는 설. 어디까지나 팬들의 입장에선 경기의 향방을 스스로 결정짓는 에이스의 모습을 원하는 경향이 짙어 해결사기질을 발휘못해 그 기회를 동료에게 미뤘다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그런데 누구도 알수없는 르브론의 속셈임에도 결국 어느한편의 반응에 편중된 기사와 짤방들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왔다.~~
  • [48] 일단 새가슴 논란은 제껴두고라도 다섯번이나 파이널을 치른 시점에서 이미 그가 큰 무대에서 딱히 활약이 올라가는 선수는 아니라고 결론내도 무방해보인다. 조던만 해도 첫 세번의 파이널에서 각각 정규시즌과 차별되는 역대급 활약을 보였다.(무려 11개의 어시스트와 평균 30점 이상, 폭풍 삼점슛과 평균 35점, 평균 41점과 한 경기 55점) 그런데 르브론의 활약은 정규시즌과 비슷하거나, 약간 낫거나 아니면 크게 못한 적이 두번이나 있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르브론이 그렇게까지 파이널에서 삽질한 건 아니지만, 비교대상인 조던에 비해 초라해보이는 건 어쩔수 없다. 심지어 조던은 약점인 삼점조차 매 파이널때마다 확률이 급상승했고 한 경기 역대 최다 삼점슛 타이기록까지 세웠다!
  • [49] 캐롤 감독은 곧바로 "르브론"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제작하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