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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last modified: 2017-10-08 01:37:44 Contributors

KBO 리그 현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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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영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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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혁
(키움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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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NC 다이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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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중일
(LG 트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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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SK 와이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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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두산 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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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회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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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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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덕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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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철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No.75
류중일(柳仲逸)
생년월일 1963년 4월 28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상북도 영덕군[1]
학력 삼덕초[2]-대구중-경북고-한양대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7년 삼성 라이온즈 1차지명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1987~1999)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주루코치 (2000~2007)
삼성 라이온즈 수비코치 (2008~2010)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11~2016)
LG 트윈스 감독 (2018~)

지도자 커리어에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들어갈 수 있다.[3]

2011, 2012, 2013, 2014년 한국프로야구 우승 감독
김성근(SK 와이번스)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1987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김재박(MBC 청룡)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1991년 한국프로야구 유격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장종훈(빙그레 이글스) 류중일(삼성 라이온즈) 박계원(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번(1987 ~ 1999)
황규봉(1982 ~ 1986) 류중일(1987 ~ 1999) 강동우(2000 ~ 200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5번(2000 ~ )
최한경(1993 ~ 1995) 류중일(2000 ~ )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이종두 류중일(1997)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역대 주장
양준혁 류중일(1999) 김기태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
선동열 (2005~2010) 류중일(2011~2016) 김한수(2017~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김인식(2006,2009) 류중일(2013) 2016년 프로야구 우승팀 감독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조범현(2010) 류중일(2014) 2017년 프로야구 우승팀 감독

LG 트윈스 12대 감독
양상문(2014~2017) 류중일(2018~) 현직

역대 감독 전적
년도 소속팀 경기수 정규리그 포스트시즌
2011 시즌 삼성 라이온즈 133 79 50 4 1위 우승
2012 시즌 133 80 51 2 1위 우승
2013 시즌 128 75 51 2 1위 우승[4]
2014 시즌 128 78 47 3 1위 우승[5]
총계 522 312 199 11 ­

Contents

1. 소개
2. 아마추어 시절
3. 프로 생활
3.1. 연도별 성적
4. 은퇴 이후
4.1.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4.2.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4.2.1. 2011 시즌
4.2.2. 2012 시즌
4.2.3.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2.4. 2013 시즌
4.2.5. 2014 시즌
4.2.6. 2015 시즌
4.2.7. 2016 시즌
4.3. LG 트윈스 감독 시절
4.3.1. 2018 시즌
5. 감독 스타일
5.1. 긍정적인 면
5.1.1. 믿음의 야구
5.1.1.1.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는 리더
5.1.2. 관리 야구
5.1.3. 살구안
5.1.3.1. 준수한 트레이드 능력
5.1.4. 투타의 조화로운 운용
5.1.5. 팀에 대한 애정
5.1.6.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야구
5.1.7. 수비 지도
5.1.7.1. 유격수 절대 주의
5.1.8. 팀에 이득을 주는 주루 플레이 지향
5.1.9. 적을 만들지 않는 대인관계
5.2. 비판
5.2.1. 주전과 특정 선수 중심 기용
5.2.2. 투수교체 타이밍
5.2.3. 좌우놀이
5.2.4. 기묘한 작전야구
5.2.5. 투수 혹사
5.2.6. 선수 관리에 대한 의문점-믿음의 야구의 반면
5.2.7. 그 외
5.3. 종합
6. 기타

1. 소개

2010년대삼성의 시대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리더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아시아 시리즈 우승 감독
사상 첫 4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끈 명장

대한민국의 전 야구 선수, 현 야구 감독. 삼성 라이온즈프랜차이즈 선수[6] 출신이자 삼성의 1번 라인인 황규봉-류중일-강동우-윤성환 중 한 명. 삼성 라이온즈에서 원 클럽맨으로 활동한 선수 출신 중 최초로 감독이 되었다.[7] 선수 시절에는 등번호 1번을 달았으며(1987~1999) 선수 은퇴 후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1번 대신 코치 시절부터는 75번(2000년~현재)을 달아 현재도 이 번호를 쓴다. 현역 시절의 별명은 '천재 유격수', '그라운드의 살구꽃', '수비의 달인', '어벙이' 등이 있었으며 코치로서의 별명은 '류코치'로 유명하다.근데 이건 별명이 아니라 그냥 줄여부른거 뿐인데 감독부임후에는 2011년 우승 후에는 한 기자의 제안덕에 야구대통령의 줄임말 '야통'으로 불렸으나 그리 오래가진 못했고, 이 후로는 긍정적인 별명으로 ‘삼성밖에 모르는 야구광팬’, ‘살구아재’, ‘발전없는 감독’[8] 등으로 불리며 부정적인 별명으로는 '돌중일', '관중일', '운중일'[9]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번외로 류시퍼.[10]

2. 아마추어 시절

포항 중앙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야구를 시작했으며 5학년때 야구부가 해체되자 대구초등학교로 전학하였으나, 5학년이 끝나고 대구초등학교 야구부마저 해체되자 삼덕초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갔다. 참고로 초등학교 시절에는 강한 어깨를 살려서 포수를 봤었으나, 대구중학교로 진학하고 난 뒤에는 유격수로 전향하게 된다.

전국 무대에 이름을 알린 건 경북고등학교 시절부터이다. 특히, 박노준, 김건우라는 한국 야구 사상[11] 최고의 야구 아이돌 스타를 보유한 선린상고와의 청룡기, 봉황대기 두 대회에 걸친 처절한 결승 명승부에서 경북고의 1번타자를 맡은 2학년 유격수로서 우승에 공헌, 다음 해까지 이어진 3차 경북고 전성시대[12]를 이끌며, 1981년 봉황대기 미기상, 경북고 주장을 맡은 1982년 대통령배 감투상, 붕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했다. 특히 1982년 7월 17일, 잠실 야구장에서 개장 기념으로 열린 부산고와의 경기에서는 잠실 야구장 1호 홈런을 기록했다.기념품이라도 좀 주지..기사참조

당시에는 김재박을 존경했다고 한다. 이 당시 유격수를 보던 고교야구 선수면 당연하다. 이미 이 시절의 김재박은 정말 못 하는 것이 없는 만능선수였으며 대한민국의 유격수 그 자체였다.

경북고 졸업후 한양대[13][14][15]로 진학해 국가대표 붙박이 유격수로 활약. 1985년도와 1986년도에 대학 올스타 유격수로 뽑혔다.

3. 프로 생활

프로에 뛰어든 그는 198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입단 첫 해부터 오대석을 제치고 주전 유격수 자리를 꿰찼으며 11타수 연속 안타라는 진기록을 작성했으며, 1987년과 1991년 두 차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김재박을 제치고 유격수 부문 수상자 자리를 차지했다.

1989년부터는 2루수강기웅과 콤비를 이뤘다. 한국프로야구메이저리그에게 한참 무시당하는 일본프로야구보다도 몇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던 1990년 당시,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미국인 코치이던 마틴 고든 디메리트는 삼성을 떠나면서 작성한 보고서에서 류중일에 대해 "포지션을 2루수로 옮기면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내렸다. 다만, 선수생활 후반기에 찾아온 목 디스크 때문에 선수생활은 그렇게 길게 하지 못했다.

선수시절에는 한국시리즈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1987년 준우승, 1990년 준우승, 1993년 준우승. 게다가, 1993년 이후로 삼성은 3년 간 포스트시즌에 올라가지 못하는 암흑기를 겪었으며, 1997년 부터 은퇴 전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9년동안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하였다. 코치로 전향한 뒤에도 다시 한 번 준우승을 경험했지만(2001년), 드디어 자신의 소속 팀에서 우승을 거머쥐었다.(2002년, 2005년, 2006년)

은퇴할 때까지 삼성에서만 활약한 원클럽맨이며, 2000년 역대 현역 선수 중 처음으로 은퇴식을 치렀다. 삼성 구단 최초의 은퇴식이었다. 이후 김현욱, 김한수, 전병호, 김재걸, 양준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7번을 달던 팀 선배 김용국태평양 돌핀스트레이드되고 나서도 1번을 계속 달 정도로 1번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경북고등학교 시절에도 등번호가 1번인 줄 아는 사람이 많으나, 경북고 시절에는 16번을 달았었다.#

장타력이 약했던 선수라는 인식과 다르게 위의 잠실 1호 홈런과 더불어 포스트시즌 4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3.1. 연도별 성적

  • 한국야구위원회 기록실에 표기되는 리그 TOP 10위 이내 기록은 순위가 등재.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표시는 리그 5위내 입상성적.

역대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1987삼성 라이온즈 104 352 .287 101 17
(8위)
2 2 28 57
(5위)
8
1988 47 116 .302 35 3 2 0 11 18 5
1989 113 329 .246 81 15 3 5 38 39 14
1990 120 425 .311
(5위)
132
(3위)
22
(4위)
5
(6위)
6 45 70
(5위)
23
(4위)
1991 90 344 .285 98 14 4 5 45 59 19
1992 104 294 .211 62 12 1 5 27 43 8
1993 107 377 .281 106 13 1 8 45 58
(8위)
6
1994 36 131 .328 43 8 3 4 22 22 5
1995 64 155 .226 35 11 1 0 10 11 2
1996 111 355 .245 87 13 2 2 35 37 13
1997 79 215 .242 52 13 0 8 34 34 1
1998 64 140 .200 28 8 0 0 13 14 4
1999 56 60 .233 14 1 0 0 6 13 1
KBO 리그 통산
(13시즌)
1095 3293 .265 874 150 24 45 359 475 109

4. 은퇴 이후

현재까지도 삼성 라이온즈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현역시절부터 삼성을 지킨 두 명 중의 한 명이라고 볼 수 있다.(다른 한 명은 장태수) 삼성 입장에서는 꿩 대신 닭이라고나 할까. 꿩인 이만수를 반강제로 은퇴시키면서, 닭인 류중일에 대한 배려가 강한 것은 아이러니. 단, 이만수의 경우는 현역 말년에 현역 유지 여부를 놓고 구단과 마찰이 빚어 구단과의 결별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았던 반면 류중일은 은퇴 당시 구단과 큰 마찰이 없었다는 점은 감안하자. 만약 이만수가 현역생활에 대한 욕심을 조금 접고 삼성과 타협했더라면 이만수에 대한 대우는 크게 달라졌을 거다. 물론 원년멤버로서 끝까지 생존했다는 자존심과 현역시절 내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이만수가 그렇게 쉽게 타협을 할 리는 없었을 거고, 그게 현실이기는 했지만. 콩라인에 있는 기간은 2002년까지다.

4.1. 삼성 라이온즈 코치 시절

천하의 김응용에게 No를 외치던 유일한 코치

코치시절에는 수비와 주루 코치로 3루 코치박스를 맡았었다. 또한 김응용이 감독을 맡던 시절에는 기존 코치진 중 유일하게 김응용에게 인정받은 코치였다. 일화로 스프링 캠프에서 날씨 문제로 투수진 불펜피칭을 정시에 맞춰서 시키도록 코치들이 지시했는데 김응용이 소리를 지르며 불펜 투수들이 왜 미리 몸을 안푸냐고 화를 내자 다른 코치들이 허둥지둥대며 당장 준비시키겠다고 법석을 피우는 와중에 류중일이 혼자 김응용에게 가서 날씨 문제로 일부러 정시에 나오도록 지시했다고 이유를 설명했고 김응용 감독이 바로 화를 풀고는 대신 늦지 않게 준비시키라는 소리만 듣고 끝난 적도 있었으며, 뒤에서 설명하겠지만 김응용 감독이 수비훈련 방식을 뜯어고치라고 하자 한밤중에 김응용의 숙소에 직접 찾아서 1:1로 김응용과 말싸움을 벌인 끝에 김응용이 포기하고 류중일 감독에게 수비 훈련에 대한 전권을 맡긴 적도 있었다. 물론 류중일은 한때 최고의 유격수였던 만큼 수비코치로서 능력은 뛰어났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국가대표팀에서도 여러번 수비코치로 차출되기도 했다. 그 외에는 주루코치로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단, 주루코치로서는 팬들간 호불호가 갈렸다. 충분히 홈으로 선수를 돌릴 법도 했는데 3루에서 멈추게 하거나, 홈에서 횡사할 게 뻔한데도 홈으로 돌리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좋은 평가를 바탕으로 대표팀의 수비, 주루코치도 여러 번 맡았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 코치로도 뽑혔다.


작전코치로 있던 중,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SK에 팀이 시리즈 스윕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선동열 감독과 대조적으로 분노한 모습을 보였다. 이 후 이 사진은 감독 선임 이후 4년간 호성적을 거두면서 '진정한 삼빠 아재' '얼마나 답답했을까'등의 이야기와 함께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이 때 감독 선임을 예상하진 않았겠지만, 두 사람의 모습이 묘하게 대조적이다.

이 후 시리즈 스코어가 3-0이라 할지라도, 1경기만 더 지면 시리즈가 끝난다 할지라도 야구에서 지레 포기하고 저렇게 웃을 이유가 없다는 건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류중일 감독이 다시 증명했다. 1, 2차전을 다 날리고 시리즈 스코어 3-1까지 몰렸을 때, 선발이고 불펜이고 모조리 다 집어넣어 진정한 '벌떼야구'를 실현하면서 반전을 이뤄낸 것이다. 3대0이라도, '1경기만 잡자'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해 3대1을 만들면 실낱같은 희망이 생긴다. 거기서 쥐어짜서 3대2를 만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야구는 흐름의 스포츠이므로, 5차전까지 최선을 다해 3대2를 만들 수 있다면 '야구 몰라요'가 되는 것이다.[16] 선동열은 이걸 몰랐고, 그냥 일방적으로 경기를 '던졌다'. 삼성 팬들은 준우승해서 기분이 나쁜 게 결코 아니었다.

2007년 오키나와에서 벌어진 연습경기에서 이만수 SK 와이번스 코치와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둘이 서로 우정을 나누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만수는 삼성 구단과의 사이가 껄끄러운 뿐이지 삼성 출신 옛 동료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운 건 아니었다. 같은 팀에 소속되어 있던 선후배로서 선수시절 웬만한 개인적인 원한이 없다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이만수의 경우 삼성에 더 이상 감정이 없던 탓인지 김재하 단장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또한 삼성이 2010 올스타전 레전드 올스타를 선정했을 때에는 올드 멤버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4.2.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4.2.1. 2011 시즌

선동열 감독이 물러나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이제 막 감독 생활을 시작하게 된 터라 많은 팬들이 걱정하였으나, 초보감독임에도 대단한 활약을 하고 성적을 시즌 1위까지 올려 SK 와이번스김성근 전 감독의 야신, 한화 이글스 한대화 전 감독의 야왕에 이어 야통(야구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자칭인 것은 안비밀 팬이 부르기 시작한 게 아니라 본인이 불러달라 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하여 야통왕까지 등극하였다. 이어서 아시아 시리즈까지 제패하는 등 취임 첫 해에 그 어떤 한국프로팀 감독도 달성하지 못한 우승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업적을 만들어냈다. 흠좀무...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4.2.2. 2012 시즌

감독으로 데뷔하자마자 3관왕을 석권한 임팩트 때문에 강력한 우승 후보팀을 이끄는 감독으로 찬양받았으나 초반에는 한동안 6~7위에서 놀 정도로 부진[17]하여 답 안 나오는 믿음야구, 신의 한 수라고도 불리는 병X같은 투수운용, 교체 & 컨디션 고려 전혀 안 한 것처럼 보일 만큼 이해하기 힘든 타순으로 팬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돌중일, 관중일(조금이라도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나와도 어필을 하지 않는데다 감독으로서 하는 것 없이 관중처럼 덕아웃에서 멍하니 경기만 쳐보다 한 박자, 아니 세 박자 늦은 대처로 모든걸 망친다고 해서), 관中一, 관중 1 등 모욕적인 별명이 무지막지하게 늘어난 상태. 또한 간디 중일, 류간디[18]로도 불린다. 그나마 2012년 여름에 삼성이 1위를 탈환하고 굳히자 이런 식의 조롱은 많이 줄어든 상태. 그러나 가끔 어이없는 경기 운영을 할때는 얄짤없이 돌중일, 관중일로 까인다(...)

2012년 10월 1일 2년 연속으로 페넌트레이스 우승을 차지하고, 11월 1일 역시 2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무능하다고 까이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아시아시리즈때 라미고 몽키스의 선발 로리의 자료만 구하지 못했다고 패장의 변을 했을 땐 까이긴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4.2.3.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2년 시즌 우승팀 감독 자격으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을 맡게 되었다. 류현진, 추신수 등이 메이저리그 팀 이적으로 적응기가 필요했던 상황이라 국대에서 빠지며 최약의 대표팀이라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일단은 나름대로 선수들을 강훈련시키며 대회를 준비했다.[19]

2013년 3월 2일 중화민국 타이중 국제야구장에서 열린 네덜란드와의 B조 본선 1라운드 경기에서 부적절한 투수운용과[20] [21] 미숙한 경기운영등의 이유로 충격의 0:5 영봉패를 당하면서, 감독 자질 논란에 또 불이 붙고 말았다.(...)

결국 타이중 참사라는 이름으로 1라운드 탈락을 당하면서 실컷 욕을 먹었다.

이미 다음 아고라에는 류중일 감독의 사퇴 청원이 올라와 있을 정도.[22] 거기다가 예전 나가기 전 인터뷰를 보여주며 그 말대로 돌아오지 말라고 하고 있다. 1라운드는 올라가지 않겠나 라는 생각을 한다. 2라운드 못 올라가면 한국에 못 들어온다

이미 대다수 야구팬들은 가루가 되도록 씹어대고 있고, 그를 옹호하는 것은 극히 일부 삼성 라이온즈 팬들 뿐이며 나머지 일부팬들도 비판과 실망이라는게 중론이다. 삼갤도 이번 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다 네이버 스포츠의 타이중 참사 관련 기사에도 베플은 대개 류중일 감독의 책임을 강조하는 글들이다.

김재박 감독과도 비교되었다. 공교롭게도 둘 모두 유격수 출신 감독에,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팀빨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며, 국제전에서 크게 죽을 쑨 이후 평가가 급락했다. 김재박:중일아 너도 LG와서 검증받아야 돼 나도 현대 있을 땐 우승 밥먹듯이 했어

이 타이중 참사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왔던 좋은 이미지를 다 깎아먹고 역적 취급을 받게 되었으며[23], 결과적으로 야구팬이나 본인 모두에게 2013 WBC 국대 감독 커리어는 흑역사로 남고 말았다.[24]

그나마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했을 때


이렇게 고개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서 어느 정도 까임은 덜해졌다. 그리고 김상수가 페북질을 하다가 된통 까이다 보니 류중일에게 몰리던 비난과 비판도 좀 줄어든 편.아버님, 제가 아버님 대신 모든 욕을 먹겠습니다![25] 하지만 여전히 류중일 책임론을 들먹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WBC 직후 박희수, 최정, 정대현, 강민호, 윤석민 같은 경쟁팀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소식이 전해져 오면서 팬들은 류중일 감독을 거의 원쑤 보듯이 하는 상태.[26]

4.2.4. 2013 시즌

시즌 초반부터 경북고 위주의믿음의 야구를 구사하느라 삼성팬들에게 엄청나게 까였으며, 지난 2년에 비해선 이래저래 미숙한 경기운영을 보여주기도 하였으나, 시즌을 마친 그의 자리는 사상 최초의 페넌트레이스, 한국시리즈 3연패 감독 등극이었다. 명실공히 삼성 왕조을 건국하였다.

다만 2013년 한국시리즈 초반에 보여주었던 불안한 경기 운영으로 인해 몇몇 팬들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의 국가대표 감독으로 활약하면 타이중 참사가 재현되는게 아닐지 걱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2013 아시아 시리즈 준결승에서 캔버라 캐벌리에게 패하면서 이러한 걱정은 점점 커지게 되었다. 근데 선수들이 실책을 네 개 하는데 이기길 바라면 그게 더 웃긴 일 아닌가

결국 야구 국가대표 감독 선임 방식, 원점부터 재검토라는 기사가 나왔지만 달라진 거 없이 결국 2013년 12월 KBO 이사회에서 2014 아시안 게임 국대 감독으로 류중일을 선임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4.2.5. 2014 시즌

해당 항목 참조.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페넌트레이스KBO 한국시리즈를 4년 연속 우승하는 통합 4연패을 이루어냈다! 1대 제국 건설 선수로서도 뛰어났지만, 감독으로서는 길이 남을 명장으로 기록될 듯... 했는데... 이래서 설레발은 필패의 주문

4.2.6. 2015 시즌

시즌 전, 꽃미남 외모삼적화로 주목을 받고 있는 구자욱에게 여자가 들러붙어서 야구에 집중하는 데 어려울까봐 구자욱에게 구수한 사투리로 니 여자조심 하래이라고 하였다.

시즌 초반에 야수들의 실책이 많은데 이에 대한 대책이 부족하다고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 등에서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5 패넌트레이스에서는 타 팀들에 비해 두터운 전력을 바탕으로 1위 순항을 무난하게 했으나,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의 도박 파문으로 인해 전력에 심각한 누수가 생겼고, 거기에다 정작 한국시리즈에서는 투수력보다 타자들이 찬스를 어김없이 말아먹는 조루 화력을 보여주어 결국 상대의 실책 덕에 이긴 1차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내리 지고 '한국시리즈 5연패 달성'이라는 대위업의 코앞에서 미끄러져 버렸다.

이 때문에 과거 타이중 참사 때와 마찬가지로 류중일 감독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품는 시선이 다시 늘어났다. 선동열 때와 마찬가지로 감독이 팀에 업혀있던 것 아니냐는 것.

4.2.7. 2016 시즌

선수들의 도박 파문과 모기업의 투자 축소 등의 여파였는지, 팀은 초반부터 미끄러지기 시작하여 마침내 창단 이래 첫 9위를 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이에 삼성은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결국 류중일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김한수 타격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임명한다. 류중일 감독은 당분간 '기술자문' 자격으로 팀에 잔류할 예정.

4.3. LG 트윈스 감독 시절

삼성 감독에서 물러난 뒤 이따금 몇몇 구단에게 오퍼가 들어왔다는 설이 돌기도 했으나(특히 김성근 감독 경질설이 파다했던 한화 이글스의 차기 감독설이 돌기도 했다), 2017시즌 마지막 날이 10월 3일에 LG 트윈스의 차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는 사실이 공식 발표되었다.양상문 전 감독은 단장으로 승격되었고, 송구홍 前 단장은 2군 감독으로 전보.

4.3.1. 2018 시즌


5. 감독 스타일

전체적으로는 제리 로이스터김성한 감독과 비슷한 면이 있다. 투수 길게 쓰고, 스탯 무시하고 감독 직감 따라 타자를 쓴다는 점에서 기아시절 김성한의 야구와 흡사했으며, 선수 관리의 측면에서는 로이스터의 야구와 유사한 편이다.둘 다의 상위호환 리더쉽이 해가 갈수록 변해가는데, 한 때 감독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친형 리더쉽"을 감독 첫 해에 보여줬지만 감독 경력이 가면 갈수록 경기중에도 무표정해지고[27], 카리스마 또한 많이 늘어난 편이다. 감독 경험이 점점 쌓이면서 리더쉽을 변화를 주는 모습이다.

다만, 좌우놀이 건으로 까이는 횟수도 많아졌다. 타순을 짤 때 2번 타자를 상대 선발이 좌완이면 강봉규나 조동찬, 우완이면 정형식이라는 공식이 변함이 없다. 부임 초기에는 배영섭이 대상이었지만 주전을 먹으면서 2-7번 타순으로 대상이 바뀌었다. 좌타자라고 제구도 안잡힌 상태의 권혁을 올려서 핵실험을 한다든가.

5.1. 긍정적인 면

5.1.1. 믿음의 야구

전임 감독인 선동열과는 다르게 기존 베테랑 주전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믿음의 야구 스타일로 일관하고 있다. 선동열은 대부분 선수들을 불신하는 태도로 일관했지만 투수들, 특히 불펜진에만큼은 엄청난 믿음을 고수했다. 불펜오타쿠라서 특히 타자들과 선발진을 별로 믿지 않고 불펜만 엄청 맹신했던 선동열과는 다르게 타자들의 역량과 선발 투수에게 좀 더 책임감을 부여하는 스타일이 대조적이다. 그리고 베테랑 타자나 투수들이 부진에 빠질 때도 되도록이면 2군으로 보내지 않고 스스로 감을 찾을 때까지 인내하는 경향도 있다.

또한 상하수직관계로 일관한 선동열과는 대조적으로 선수들 눈높이에서 대등하게 대해주는 형님 리더쉽까지 갖추고 있는게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어찌보면 믿음의 야구의 대명사인 김인식 감독이나 제리 로이스터 감독과 비슷한 스타일이라 볼 수 있겠다.

또한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들에게도 많은 믿음과 큰 권한을 준다. 다만 1년차에는 투수코치에게 큰 권한을 주었으나,[28] 2012년부터는 본인이 어느 정도 경험이 찼다고 판단했는지 투수교체 권한을 다시 뻇어갔다. 결국 전 감독 체제처럼 1군 투수코치는 불펜코치화.[29]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오치아이 코치를 박대한 것은 아니다. 2013년 오치아이 코치는 류중일과 관련해 야구 만화 같은 이야기를 트윗에 남겼다.


대단한 감독입니다. 작년 헤어질 때 들었던 말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내년에도 필사적으로 이기러 간다. 새로운 투수코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잊지 마라! 내년에도 우승을 한다면 에이지, 당신 덕분이다.
당신의 2년이 있었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런 스타일을 대표하는 단어로 나믿가믿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인천 아시안게임에도 나타났는데, 명단 발표후 귀신같이 부진한 투수들을 믿어준 결과, 본선에서는 이재학의 중국전 4이닝 2실점 이후, 모두 무실점을 기록했고, 결국 우승하였다.

5.1.1.1.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는 리더
이러한 믿음의 야구를 펼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는 선수단을 포용하는 화술이다. 이전의 믿음의 야구를 펼쳤던 여러 감독과는 달리, 선수단의 잘못을 최대한 덮어주고, 선수단의 사기를 최대한 북돋고 의욕이 생기도록 하는 화술과 행동이 돋보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오치아이가 퇴단할 때의 말. 새로운 투수코치를 위해서 다시 우승에 도전하지만,[30] 우승한다면 2년동안 투수코치로서 역할을 해준 오치아이 덕분이라는 말로 오치아이와 김태한을 모두 포용하는 자세를 보인 점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신용운에게 한 말도 삼성 팬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된다. 실제로 류중일 감독은 신용운이 등판하면 손가락으로 투구 수를 세면서 컨디션을 관리했다. 즉, 선수단에 대해 강한 믿음을 보이고, 그것을 표현함으로써, 선수단의 잘못은 자신이 최대한 짊어지고, 성과는 선수 및 코칭스태프에게 돌린다는 점이 가장 큰 관리자로써의 류중일의 장점이다. 이것은 삼성과 관련이 있는 선수나 스태프가 한 발언들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같은 지원시설과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상당 수의 삼성 소속 또는 출신 선수들과 마찰을 일으킨 기존 감독이라 쓰고 선동열이라 읽는다과 대비되게 그 선수들이 류중일 부임 이후 삼성 복귀에 우호적인 제스쳐를 보이거나[31] 자신도 그런 감독 밑에서 뛰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반응을 보이는 등 선수 포용력은 단연 돋보인다.

5.1.2. 관리 야구

류중일 감독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부분 중 하나다.[32] 선수들이 몸 어디가 좀 안 좋다고 하면 바로 2군으로 보내 휴식을 준다. 간혹 그저 한두 경기 빠지기만 해도 될 정도의 부상에도 2군으로 내리기도 하는데, 장기적인 페넌트레이스에서 오버페이스하다가는 도리어 시즌 전체에 무리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뿐만 아니라 주전 선수들도 컨디션을 점검해 1, 2경기 빼거나 경기 후반에 교체해 휴식을 준다. 삼성의 선수층이 두터워 주전이 한둘 빠져도 크게 티가 안 난다는 점도 플러스 요소.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그깟 부상 따위라며 투지나 근성을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부상당한 선수를 기용하면 오히려 부상만 더 키울 뿐이다. 이는 비단 야구뿐만이 아닌 한국 스포츠 전반에 걸친 폐해라 할 수 있는데, 외국 스포츠에서는 선수가 부상을 숨기고 뛰다가 감독이나 코치들이 이를 알면 도리어 화를 내곤 한다.

이는 삼성 트레이닝 센터로 대표되는 상당히 선진적인 삼성의 의료진과 더불어 삼성의 장기 집권의 가장 큰 요소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부상관리를 잘 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례가 2건이 있다. 하나는 배영섭, 나머지 하나는 박석민. 배영섭의 경우 2011년 신인왕 경쟁 시즌에 골절을 입자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에 골절에 특화된 식사 메뉴를 배영섭 전용으로 준비하도록 하고 일본 요코하마까지 보내서 빨리 치료가 되게 했고, 고질적인 왼손 엄지 부상에 시달리던 박석민은 매 시즌마다 몇 경기씩을 빼 주는 등으로 관리하고 있다. 심지어 2014년 6월 18일 헤드샷을 맞은 박석민을 다음 날 경기에서 선발에서 빼려 했으나 본인이 자청하는 바람에 결국 선발로 보냈을 정도...

이토록 다른 감독들과 다르게 선수를 혹사시키지 않고 관리하면서 우승하는 명장인줄 알았는데...

2014년 들어 유독 차우찬마치 노예처럼 굴리고 있다. 10월 14일 현재 68경기에 등판하여 무려 82이닝을 투구했다. 순수 구원으로만. 이기고 있던 지고 있던 항상 차우찬을 소환한다. 그렇게 굴려서 결과가 좋으면 모를까 같은 날 현재 차우찬의 평균자책점은 5.60이다. 계속 굴리다 보니 지친건지 아니면 팔 상태도 안 좋아져 구위가 맛이 간 건지 성적 자체도 그리 좋지 못하다. 애초에 차우찬은 지난해에 선발로 나선 경기에서 3.3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처음부터 선발로 쓰지 않은게 잘못이다. 이 쯤 되면 권혁, 권오준 등의 선발 유망주를 불펜으로 혹사시킨 모 금지어보다 딱히 낫다고 하기도 뭣하다.

물론 차우찬을 제외한다면, 2014년에도 여전히 선수들의 부상을 꼼꼼히 관리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유독 차우찬만은 원수라도 졌는지 혹독하게 굴리고 있는데, 왜 차우찬만 이렇게 굴렸는지는 삼성팬들 사이에서도 미스테리. 그나마 가장 지지를 받는 의견은, '2014년 아시안 게임에서 차우찬을 군면제 시키고 싶은데, 선발은 경쟁이 심하니 상대적으로 널널한 좌완불펜 쪽을 노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차우찬 외엔 혹사 의혹이 나오는 선수도 사실상 없고 불화설 같은 이야기도 없는데다 결국 차우찬은 군면제를 받았으니, 2015 시즌이 되면 이 주장의 진위여부가 밝혀질 전망이다.

그리고 2015 시즌 차우찬이 5선발로 확정되면서 이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5.1.3. 살구안

선수를 보는 눈이 매우 뛰어난 감독 중 하나이다. 이런 류중일의 선수 보는 눈을 살구안이라는 드립으로 표현한다. 류중일이 밀어주는 선수는 그 해에는 욕을 가루가 되게 먹지만 길어도 2년 정도면 포텐셜이 폭발하는 면을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류중일이 뇌진탕 후유증으로 골골거리던 채태인을 밀어준다는 이유로 2년 동안 가루가 되게 까였지만, 2013년에 채태인은 완전히 회복하여 삼성 우승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또한 차우찬도 2012년 폭망하면서 차르봄바라는 욕을 먹었지만, 2013년에는 밸런스를 되찾아 전천후 좌완으로 큰 활약을 했다. 이외에도 2012년에 폭망한 최형우, 배영섭이 2013년에 매우 좋은 활약을 보였다거나, 2013년에 폭망한 이승엽이 2014년 4월 현재 리그 최고의 6번 타자 중 하나로 활약한다거나,[33]
트레이드 이후 못 던진다고 가루가 되던 김희걸을 살려내어 2014년 불펜진의 핵으로 성장시킨 점은 삼성 팬마저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 외에도 박근홍, 신용운 등 삼성 팬들조차 크게 기대하지 않던 선수를 체크하여 전력으로 만들어내는 수완을 보였다. 김희걸을 왜 줄창쓰셨나요? 내가 써먹으려고

덕분에 처음에는 류중일이 못하는 선수를 인맥으로 억지로 출장시킨다는 아랫쪽의 부정적인 평과 달리 비판받는 선수를 살리기 위한 출장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는 류중일의 지론인 클래스가 있는 선수는 아무리 바닥까지 떨어져도 스스로 바닥에서 올라올 수 있도록 출장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클래스를 만들어가는 선수는 보완점이 있다면 좀 기다리다가 2군으로 내려서 보완하도록 하는데, 2014년의 정형식은 2012년의 배영섭과는 달리 얼마 안 있어 2군으로 내린 점에서 차이점을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선수보는 눈은 코치 시절에도 드러나곤 했었는데, 김상수를 미래의 삼성 주전 유격수로 일찌감치 확신한 것이나, 겨우 중학생이었던 김인태의 가능성을 높게 샀다든가, 어설퍼 보이던 야마이코 나바로의 수비를 보고, 그 안에 기본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수비적인 면에서는 합격점을 줄만하다고 평가하는 기사가 등장하곤 했다.

또한 눈여겨 볼만한 점은 류중일이 단순히 본인의 감에 의존하여 특정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류중일이 밀어주는 대표적인 선수인 채태인, 차우찬, 이승엽은 기본적으로 모두 성실한 선수이다. 채태인은 암흑기때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엄청나게 노력했고, 차우찬도 초창기부터 투수진의 대표적인 노력파였다. 이승엽 역시 성실함에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수이다. 즉 류중일의 지론은 재능과 성실함을 모두 갖춘 선수라면 당장 부진하더라도 살아나게 되어있다는 쪽에 가깝다. 단순히 본인의 감에 의존하여 선수를 밀어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5.1.3.1. 준수한 트레이드 능력
비록 3년간 큰 데이터가 쌓일 정도의 트레이드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대중들의 인식과 다르게 나름 트레이드 성과가 좋은 감독 중 하나. 위의 살구안의 영향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최초의 트레이드였던 김희걸-조영훈 트레이드는 서로 이득을 못 본 편이긴 해도 굳이 따지면 삼성이 이득을 본 편이라는 평이었는데 김희걸이 비단甲으로 등극하면서 삼성의 압도적인 위닝 딜이었다는 평이다.[35]

길태곤-이상훈 트레이드는 2015년 현재까지는 이상훈 쪽이 많이 우세하다. 이상훈은 삼성 외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퓨처스리그와 1군을가뭄에 콩 나듯이오가며 삼성 팬들의 '수비만 더 좋아지면 외야 백업 및 대타 한 자리는 얻을 수 있다'는 기대라도 있는 반면에, 길태곤은 퓨처스에서 잠깐 던지다가 부상에 이어서 김응용의 퇴출과 함께 선수단에서 방출되었다.

2012년 말 현재윤, 손주인, 김효남을 주고 노진용, 정병곤, 김태완을 받아온 트레이드는 처음엔 LG 쪽에 매우 우세한 트레이드였으나, 시즌 막판 정병곤김태완의 백업 활약으로 인해, LG 약우세나 윈윈 정도로 평가가 변화하고 있다.그리고 김효남은 방출당했다 하지만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 정병곤과 김태완이 주전들 부상속에 전경기 출장에 맹활약을 하며 완벽한 윈윈 트레이드 성립.

특히 김인 프런트 체제에서 지역 선수 선호 현상의 증가와 더불어서 경북고 출신이면서 보여준 게 전혀 없는 정병곤, 이상훈을 굳이 트레이드를 해가면서 데려온 데에 대한 비판이 많았으나, 주전 유격수 김상수가 부상으로 한국시리즈 불참이 확정되면서 결과론적으로는 상당히 좋은 트레이드가 되었다. 그리고 정병곤은 7차전 결승 득점을 올리며 이에 응답하였다. 실책 있었지만 넘어가자

5.1.4. 투타의 조화로운 운용

이전 감독인 선동렬에 비해 상당히 타선을 강조하는 편이다. 불펜과 투수력을 굉장히 강조했던 선동렬과는 달리, 선발과 타선을 중시하는 야구를 펼친다. 특히 출루율에만 중점을 두던 기존 삼성 타격과 달리 어느 정도의 적극성 있는 플레이를 통한 장타율 증가에 초점을 맞춘다.[36] 또한, 선발에 초점을 맞추면서 불펜 혹사가 줄어들었고, 결론적으로 투수를 아낄 수 있기 때문에 점수차가 매우 크지 않는 이상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 특히 이전 감독이 점수차가 약간 나면 불펜 소모를 줄이기 위해 쉽게 경기를 포기해버리는 모습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 특히 이 점이 삼성 라이온즈의 역전승이 대폭 증가하게된 가장 큰 원인이다.

5.1.5. 팀에 대한 애정

사실 류중일 삼성감독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통합 4연패의 원동력

팀에 충성도가 매우 높은 감독으로 이는 데뷔 이래 한결같이 삼성 라이온즈를 지켜왔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야구 안 했으면 관중석에서 소리지르고 있었을 기세 이 팀에 대한 충성도가 팀을 아끼는데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이며, 특히 2010년대를 삼성 라이온즈의 시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힐 정도로 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감독이다.[37] 이는 팀 성적의 당장의 관리 뿐만 아니라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기여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팀에 대한 애정이 훗날을 내다보고 자신이 감독이 아닐 때에도 삼성 라이온즈가 지속가능한 강팀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확실히 구축하게 되는 원동력이다.

이는 삼성의 코치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류중일 감독 본인의 인터뷰에서, 팀의 코치들이 대부분 삼성 라이온즈의 OB이기 때문에 주인의식을 갖고 행동하기를 요구했으며, 실제로도 코치들이 삼성에 대해 주인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해 지도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화도 팀의 코치들이 한화 이글스의 OB인데 왜 그 모양이지

5.1.6.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야구

전술한 바와 같이, 선발을 길게 쓰기 때문에 불펜이 최대한 체력을 관리할 수 있고, 이것이 점수차에도 불구하고 포기를 하지 않는 원동력이 된다. 삼성 라이온즈의 야구를 보다보면 2, 3점차로 지고 있는데도 가끔 필승조의 투수가 등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투수 들을 무리하게 올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이런 상황을 자주 볼 수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도 시스템에 따른 투수 관리는 꾸준히 하고 있으며, 이기는 경기조차 역전을 쉽게 당해주지 않는다. 가장 투수 전력 누출이 심했던 2013년조차 7회 이후 리드시 전승했고, 2011, 2012년도 거의 비슷했다. 선동열이 만든 불펜의 장점을 보존하면서 또다른 장점을 보탠 좋은 예. 또한 타선에서도 강한 선발 투수가 등판하면 최대한 투구수를 늘려서 6,7회 정도에 선발 투수가 내려가게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그리고 이후에 올라오는 상대적으로 선발에 비해 능력이 떨어지는 불펜투수를 공략하는 경우가 많다. 약속의 7회나 8회라는 말이 삼팬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 이것은 이전 감독이 초반에 조금만 점수차가 벌어져도 포기하고 대패조패전조를 올려대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여기에 201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1승 3패로 상대전적이 기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5차전에서 다음날 선발 릭 밴덴헐크까지 끌어쓰며 승리를 따냈으며, 이어진 6차전에서는 헐크를 포함, 무려 9명의 투수에게 총동원령을 내리면서까지 경기를 잡아냈고, 결국 분위기를 반전시켜 7차전까지 잡고 삼성을 우승시켰다. 전임감독이 리빌딩 운운하며 포기해버렸던 2010년 한국시리즈와 완전히 대비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5.1.7. 수비 지도

삼성이 자랑하는 뛰어난 내야 수비의 적통 후계자답게 수비 지도에 굉장히 능하다. 80년대 다저스에서 전수받은 수비 시스템을 가장 먼저 체득한 사람 중 하나이며, 선수에서 은퇴한 뒤에도 수비 코치로써 최고의 명성을 얻었던 경력이 있다. 감독이 되기 이전에도 국제대회에서 수비코치로 상당히 자주 차출되어 간 것도 이런 평가 덕분이다. 특히 유명한 것은 박진만,[38] 최정도 나가떨어지게 할 정도의 내야 펑고와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볼줄이 살아있는 외야 펑고. 감독으로 올라가면서 수비 코치의 영역을 존중하여 펑고를 이전보다 덜 치긴하지만, 단기전의 경우에는 직접 펑고를 치는 경우가 많다. 2군에서의 콜업도 가장 우선적으로 보는 부분이 수비 능력일 정도. 그래서 삼팬들은 특정 선수가 수비가 안 되면 콜업을 반쯤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39] 꾸준히 삼성 내야진이 80년대 후반부터 최고의 수비 시스템을 자랑하는 이유가 바로 류중일로부터 시작된 삼성의 수비 매뉴얼 덕택이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류중일 본인 또한 이러한 수비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코치시절에는 메이저리그까지 챙겨보면서 수비 매뉴얼과 시스템을 보완할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김성근 감독이나 김응용 감독이 이런 수비 시스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갈아엎으려고 한 적이 있으나 결국 포기할 정도. [40]

5.1.7.1. 유격수 절대 주의
이 항목은 류중일식 수비 철학의 중요 골자 중 하나이며,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항목이다. 그러나 상위항목인 수비 지도와 연결된다고 판단하여 수비 지도 항목의 하위 항목으로 서술한다.

유격수 성애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격수를 중요하게 여긴다. 드래프트 때도 류중일의 지론은 '유격수는 다른 포지션으로 컨버전이 쉽고 운동 능력이 뛰어난 편인 경우가 많으므로 야수를 뽑을 때 유격수를 우선적으로 뽑아야 한다.'가 핵심이다. 감독 첫 해였던 2011년에 시행된 2012년 드래프트 때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으나,[41]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에서는 정현을 필두로, 김영환, 성표, 대경까지 10라운드 중 총 4명의 유격수를 지명했다. 한국프로야구/2014년/신인드래프트에서도 계범, 김재현같은 유격수를 드래프트 했다.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에서는 유격수 팜이 썩 좋지 않다는 평이었지만 해외 진출이 확정된 박효준을 제외한 유격수 최대어인 최정용을 2라운드에 드래프트하며, 유격수 덕후가 어디가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줬다. 덕분에 내야 타 포지션은 지명에서 찬밥 신세에 가까운데 2015년 현재까지 류중일 부임후 4년 간 뽑은 내야 타 포지션 선수는 3루수 구자욱, 2루수 준성, 영수, 진호 1루수 승민 총 5명 뿐이다. 게다가 지역 최고 유망주 중 하나였던 구자욱과 유격수와 2루수 두 포지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 동국대 주장 출신 윤영수를 제외하면 라준성, 백승민, 배진호는 10라운드에서 뽑을 정도로 기대치가 낮았으며, 그 구자욱 또한 외야수로 컨버전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42]

본인이 유격수 본좌라인에 있었던 탓에 유격수 수비에 대한 눈이 꽤 높은 편이며, 유격수 수비에 대해서는 포수 수비만큼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유틸리티 플레이어도 가능하면 유격수로는 활동시키지 않는 편이다. 즉, 유격수는 오로지 전문 유격수에게만 맡기는 것이 류중일 특유의 수비 전술이다. 유틸리티로 활동하면 유격수 수비에 대한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무래도 전문 유격수만큼은 못하다고 보는 듯. 이에 따라 삼성 라이온즈 수비의 키맨은 언제나 김상수이다. 김상수의 수비 시 플레이를 살펴보면 내외야의 수비라인을 조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류중일이 유격수에게, 자신의 판단에 따라 수비 라인의 미세한 부분을 조정하는 야전 사령관 역할을 맡기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능력과 주루 뿐만 아니라 높은 야구 이해도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선수를 주전 유격수로 활용하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혹사라고 평가할 정도로 김상수를 라인업에서 빼지않고 꾸준히 기용하며,[43] 김상수가 부상일 경우에는 정병곤같은 유격수 전문 플레이어를 기용하려고 하는 편이다.[44][45]이는 똑같이 유격수 출신이었던 염경엽 감독과 대비가 되는 측면이 있는데, 류중일 감독이 유격수 수비는 전문 유격수를 두고 맡기는 반면, 염경엽 감독은 멀티 포지션을 강조하여 강정호가 빠지면 타 포지션에서 활동하던 선수를 유격수 자리에 넣는 장면이 자주 나온다. 이는 감독 본인들의 경험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이는데, 류중일이 은퇴할 때까지 유격수 자리를 지킨 반면, 염경엽은 말년에는 박진만에게 밀려 내야 유틸리티로 활동했던 것이 크다는 분석 또한 존재한다.

또한 마음에 드는 수준의 수비 향상을 보이지 못하는 선수는 가차없이 컨버전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코치일 때에도 유격수로 지명되어 한국시리즈에서도 뛰었던 박석민을 3루수로 컨버전시켰고, 조동찬 또한 일정 시점 이후에는 유격수로는 거의 기용하지 않고 있다. 김상수의 부상 이후 1군에 올라 주목 받았던 정현 또한 3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2013년에 뽑은 선수들 중 현재도 전문 유격수로 남아있는 선수는 김성표뿐. [46] 또한 유격수 유망주로 촉망받던 백상원 또한 스텝이 좋지 않기 때문에 2루수로 밀려나는 등 유격수로 드래프트해서 포지션을 변경하는 사례가 잦은 편이다.

이에 대해서 수비코치 시절 김재걸을 유격수까지 커버하는 전천후 유틸리티로 활용하던 류중일 감독의 수비 철학의 변화를 볼 수 있는데, 김재걸을 유격수로 활용한 이후 비슷한 롤의 조동찬이 다른 수비 지역에서 주로 플레이하다가 유격수 수비가 약해지는 것을 보면서 유격수 수비는 오로지 유격수 수비만 하는 선수가 봐야한다는 수비철학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류중일의 유격수 중심의 수비 철학은 1980년대 이래로 현재까지 거의 매년 최고의 내야 수비진 중 하나라고 불리는 삼성 라이온즈 내야 수비진을 구성했던 류중일의 본인의 고집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며, 그 결과 또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유격수 위주의 드래프트가 향후 삼성 라이온즈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에 대해서는 드래프트된 선수들의 미래 발전 상황을 지켜볼 여지가 있다. 또한, 전문 유격수를 활용하는 것이 좋은지, 유틸리티 유격수를 활용하여 엔트리 활용의 폭을 넓히는 것이 좋은지 또한 향후 야구 팬들의 논란이 될 수 있다. 특히 아시안 게임 때

5.1.8. 팀에 이득을 주는 주루 플레이 지향

본인이 시원하게 말아먹었지만 주루 코치를 했던 경험도 있고, 주자로써도 좋은 편이었다. 또한, 감독으로써의 지향점이 김경문이라고 처음부터 말해왔던 만큼 주루 플레이를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성공률 감안 안 하고 주자로 투수를 흔드는데만 신경쓰다가 기대득점을 깎아먹기만 하는 타 팀과 달리 주루로 기대득점을 늘리는 능력이 뛰어난 편이다. 이는 류중일의 공로일 뿐만 아니라 김평호 주루 코치의 능력이기도 한데, 2014년 비약적으로 상승한 주루 기대 득점이 이를 증명한다.

류중일 본인도 상당히 빠른 선수들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것이 발빠른 외야 쌕쌕이만 줄창 뽑아댔던 선동열 시절의 드래프트 기조와 시너지를 내어 주루가 좋으면서 성공률까지 높은 선수가 상당히 늘었다. 특히 김상수는 삼성 역사상 최초의 도루왕이 되었고, 이외에도 배영섭[47], 조동찬, 이영욱, 박해민[48], 김헌곤, 야마이코 나바로 등의 선수가 주루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5.1.9. 적을 만들지 않는 대인관계

별로 티가 나지는 않지만 이 역시도 장점 중 하나이다. 류중일은 구단 내 선수, 코치, 언론, 타 팀의 감독, 타 팀의 선수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과 인간관계가 좋은 편인데 덕분에 적을 만들지 않는 성격이다. 나쁘지 않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선수나 프런트와 불화가 일어나서 큰 일을 치르는 감독이 많고,[49] 이것이 팀의 전력 약화로 직결되는 사태가 많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이러한 원만한 대인관계는 류중일 체제의 안정성을 상승시키는 요인 중 하나이다.

5.2. 비판

5.2.1. 주전과 특정 선수 중심 기용

주전 선수들을 너무 믿는 스타일이라 신인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잘 주지 않는다는 게 단점으로, 이 역시 김인식 감독과 비슷한 맥락이다. 선수에게 거는 믿음이 얼마나 강하면 그 유명한 나믿가믿이란 유행어를 만들어낸 바 있고[50], 2011년에 부진했던 박한이를 끝까지 기용한 바 있을 정도로 주전 선수들에 대해서는 믿음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때문에 시즌 초반부터 압도적으로 선두 자리를 잡기 어렵다는 게 문제. 2012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찬사에 어울리지 않게 부진으로 일관하고 있는 주전 선수들에 대해 원칙 없는 무한 신뢰로 일관하여 팀 성적은 물론이고 팀의 분위기까지 가라앉는데 큰 일조(?)를 했다. 작년에 최고 타자로 성장했으나 시즌 초 타율이 1할대로 기회를 수도 없이 끊어먹는 최잉여최형우와, 하라는 야구는 안하고 온갖 개그나 부상을 만들어내며 거포로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채태인, 그리고 포텐 터졌으나 다시 쩌리 시절로 되돌아가는 듯한 차우찬 등 전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주전 선수들을 미련스럽다시피한 맹신으로 일관하고 있어 삼팬들에게 엄청난 까임과 욕을 얻어먹었다. 차우찬은 2012년 4월 27일 SK전에서도 엄청나게 털리고 나서야 2군으로 갔다. [51]

그리고 2013년 가장 지적받는 믿음의 야구는 이승엽의 기용이었다. 이승엽은 6월 26일 경기까지 기준으로 타율 2할 2푼에 OPS가 6할 초반의 선수다. 그나마 7월 들어 버닝해서 스탯을 좀 끌어올리긴 했어도, 9번 치는 김상수보다도 한 때는 못 쳤다. 스윙 밸런스도 완전히 무너져 있고, 떨어지는 공에는 대처가 아예 안 되는 수준임에도 감독은 49%가 반대한다고 해도 이승엽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51%를 위해 이승엽을 끝까지 밀고 갈 것이다. 이승엽만큼 무게감 있는 타자가 또 있나며 끊임없이 이승엽을 밀었다. 계속되는 지독한 부진에 대한 대처라고는 이승엽을 4번으로 내리고 최형우를 3번으로 당긴 것이지만, 상대 팀들은 최형우를 사실상 거르고 이승엽과 상대했다. 그리고 이 기용으로 팀이 잘 나가고 있을 때 2위와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찬스를 다 까먹었고, 시즌 후반이 되어서는 1위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성적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이승엽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극도의 삽질만 하여 류중일에 대한 이런 비판을 더욱 거세게 만들고 있다.

거기다 주전 외의 선수 기용시에 특정 선수들의 기용도 지적받고 있다. 전반적으로 기록보다는 직감에 의존하는 야구를 하는데, 이 부분서 절정을 이루는 편. 2013 시즌 대타자원으로 우동균을 1순위로 기용했데, 워낙 부진해서 우동균이 6월에 2군 내려갔을 때 10일간 2군서 보여준 타율은 .190이었다. 그리고 우동균은 그동안 1군 통산 타율이 2할 2푼대로, 입단 당시 평가에 비해서 딱히 보여준 게 없다시피 한 선수다. 반면 우동균을 대체해 1군에 올라온 이상훈, 박찬도는 당시 2군서 2할 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면 상식적으로 우동균이 아니라 다른 선수를 기용하는 게 옳지만 류 감독의 2013년 대타선택은 주구장창 우동균이었다. 이러한 기용에 대표적인 실패로 9월 4일 경기를 꼽을 수 있는데, 당시 우동균은 5경기 연속 무안타, 13타수 연속 무안타였다. 그런 선수를 류감독은 김태완 대신 대타로 올렸고, 이 기용은 단순히 해당 타석에서의 실패를 넘어 9회말 2점차 주자 1, 3루의 찬스에서 또다시 실패하며 2위 추락의 결정타가 되었다. 그리고 본인이 트레이드해온 김희걸의 기용도 문제가 되는데, 김희걸은 입단하여 상무 복무 시절인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2군 기록은 준수한 선수였으나 그 이후로 쭉 부진한 선수다. 1군 기록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선수를 트레이드해온 거야 투수자원이 부족한 현실 탓으로 삼을 수 있었으나, 그런 선수를 기회만 되면 1군 패전조로 써보려고 밀어주는 게 문제. 원래 패전처리 역할을 했던 이우선이 허리 부상을 당했던 탓에 그 대신 1군에 올라왔으나, 방어율 11점을 찍을 정도로 부진하면 2군으로 보내는 게 정석이다. 롱맨이 필요하면 2군 선발자원 중 한 명을 올리면 되는 일이고. 하지만 다른 선수들, 예를 들어 최원제는 부진해서 2군서도 가끔 등판할 정도로 밀려난 반면에 더 부진한 김희걸은 8월 말까지 1군에 출첵했다. 8월 23일 1/3이닝 2실점으로 방어율 12.56을 달성하면서 마침내 2군으로 내려갔다지만 원래는 11점대를 찍은 시점에서 1군에 올라온다는 게 이상할 정도. 그런데 그 김희걸이 2014년에 터졌습니다!!

반면 이런 선수들 외의 선수들의 기용에는 무관심한 편. 선수들이 좋을 때는 안 올리다가 타격감이 처진 상황에서 포지션만 보고 1군에 올리고, 2군서도 떨어진 타격감으로 1군서 승부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상황에서 기용해 그 선수만 2군용 선수라고 낙인이 찍힌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모상기가 있는데, 2011년 1군서 엄청난 장타력을 선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그 이후 분석된 탓인지 부진했다.
그런데 그 이후 2012년, 2013년의 기용을 보면 타격감이 떨어진 상황서 '어 타자가 필요하네', '어 1루수가 필요하네'하고 컨디션도 안 좋은 상태서 1군에 올라왔고 그 결과는...

전반적으로 이러한 선수 기용은 감독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기록보다는 감에 의존한 야구가 나은 부작용이라 할 수 있다. 2군의 2012년 이후 지속적인 부진을 여기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2군서도 2할도 못 치는 잉여타자, 2군서도 미친듯이 털리는 투수. 저런 선수들이 1군에 출첵하는 반면 2군서 아무리 좋은 성적을 내도 1군에 코빼기도 못 내미는 상황에서 2군 선수들에게 무슨 동기부여가 되겠냐는 평.

이러한 기용은 결국 류중일 감독이 비난을 받는 주 요인이다. 2011년 강한 2번타자란 말에 거포스윙 장착하고 폭망한 박한이[52], 2012년 둘기게이트를 선보였던 손주인, 2013년 9번 유격수보다 못한 성적을 찍었던 4번타자 이승엽[53], 한계 투구수는 많지만 피안타와 피출루가 너무 높아 긴 이닝을 던지지도 못하고 게임의 흐름을 끊어버리는 김희걸, 대타로 나와서 한 결과물이 없음에도 대타로 정착한 우동균 등은 팬들에게 있어 비난의 주요 대상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동안 내야 유망주 소리 들었지만 외야수로 전향한 김경모, 패전조 역할을 충실히 한 이우선의 허리부상, 2군 선발 부족 등 나름의 이유가 있지만 팬들의 경우 그 자리를 유망주에게 주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승엽의 경우 2군을 못 내리겠다면 상위타순서 망칠 게 아니라 하위타순으로 내리라는 지적을 하기도 했지만.

다만 신인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아예 안 주는 건 아니다. 2011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2군 선수였던 배영섭을 붙박이 1번으로 기용했고 2012년에는 심창민이 1군 불펜으로, 정형식은 백업 외야수로 자리잡았다. 2013년에는 백정현정현, 김현우를 1군에서 기용하는 등 팬들의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매년 2군 선수들을 기용하고는 있다. 2014년에는 김헌곤, 박해민, 박찬도, 이흥련 넷이 1군 무대에 혜성같이 등장했으며 앞의 셋은 백업급 외야수로, 이흥련은 이지영이 없던 동안 삼성 안방을 정말 잘 지켜주고 1군 무대에 적응하더니 타점 적립도 생각보다는 꽤 해줬다. 그리고 삼성 팜이 육성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실제로는 거품이 많이 낀 상황으로 두텁다는 외야조차 2군을 씹어먹는 선수가 안 나오는 상황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54]. 또한, 1군의 벽이 매우 두터워진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2군급 타자를 집어넣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류중일 감독이 항상 하는 말이 신인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야 한다'고 늘 역설하는 것.

또한, 위에 류중일이 밀어준다고 나온 선수들은 대부분 2013년 혹은 2014년에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2012 시즌 후반에 부활하여 병살타만 빼면 그럭저럭 성적을 거두고 2013년 리그 최정상급 타자로 복귀한 최형우, 한국시리즈에 불방망이를 휘두른 배영섭, 2013 시즌 장외 타격왕으로 부활한 채태인, 2014 시즌 타격폼을 줄이고 교타자로 변신했더니 장타가 보너스로 따라와서 전성기 포스로 복귀한 이승엽 등 굳건하게 밀어붙인 선수들은 대부분 성과를 거뒀다. 그 김희걸마저도 2014년 패전 & 추격조로서 괜찮은 성적을 올려주고 있다. 류중일이 슬럼프에 빠진 좋은 선수를 살리기 위해 밀어준 것이라는 의견이 더 많아지면서 이 비판론은 상당히 빛을 잃어가고 있는 중. 삼성 라이온즈 말고 경산 라이온즈 사랑하는 모 카페에서만 이 의견을 밀고 있다.

사실 2014년 이후부터는 슬슬 투수진들의 리빌딩이 필요한 시기가 오긴 했다. 누적된 혹사 때문에 선발진 중 제일 스탯이 좋다는 배영수는 사실 내일 당장 나 은퇴할래염 해도 전혀 이상한 상황이 아닐 정도다.[55] 즉, 당장에 선발 한 자리가 이 시즌 끝나고 없어진다 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 그 외 복귀해서 6월부터 블론세이브를 누적하고 있는 임창용이미 폭탄이다. 나이가 많다는 시한 폭탄을 안고 있어서 임창용의 백업 마무리도 실험을 해야 할 상황이다. 사실 오승환이 돌아올 때 까지 집단 마무리로 버티면 되지만 이게 쉬운 일이 아니지

그래도 야수진의 경우는 2012년부터 정형식, 박찬도, 박해민, 김헌곤, 정병곤, 백상원 등을 기용하여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왔고, 그 취약하다는 포수마저도 이지영이 죽을 쑤긴 했지만 2014년엔 상당히 발전된 기량을 보여주었고 이흥련 역시 이지영의 공백을 슈퍼세이브로 막아냈다. 다만 투수진은 심창민과 갓 1군 구경온 이수민, 백정현을 제외하면 그렇다 할 영건이 보이지 않는 부분은 어쨌든 해결을 해야 할 문제. 물론, 하루아침에 주전들을 싸악 신인으로 물갈이하는 것이 진정한 리빌딩이라고는 할 수 없다. 90년대 삼성이나 00년대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가 이런 식의 리빌딩을 하다가 성적이 완전히 떡실신한 것을 생각해 보자.

5.2.2. 투수교체 타이밍

투수교체 타이밍도 상당히 아쉬움을 주는데, 기존의 불펜야구에서 선발 투수 중심 야구로 전환한 것은 긍정적인 일면이지만, 선발승을 너무 챙겨주려는 모습 때문에 투수 교체 타이밍이 반박자 내지 두, 세박자 어긋나는 운용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쉽게 이길 경기도 어렵게 끌고 가서 겨우 이기는 모습도 수차례 나왔으며, 특히 2012 시즌 초반 삼성이 부진했을 때도 다소 아쉬운 투수교체 타이밍이 한 몫 했다. 물론 삼성이 본격적으로 치고 올라온 뒤로는 다소 나아졌다고는 하나 최근 경기에도 가끔 그런 아쉬운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죽하면 삼팬들은 류중일이 투수교체 삽질만 안하면 다행이라고 한숨을 내쉴 정도. 이에 대해 복기해 보면, 근본적으로 점수차가 있다고 배짱을 부리거나 우완 투수진에 비해 좌완 투수들이 상태가 심각함에도 좌우놀이를 하다가 위기를 맞는 편.

이게 단순한 지적이 아닌 것이 큰 경기, 즉 포스트시즌에서는 한 박자 빠른 절묘한 투수교체 타이밍이 승패와 시리즈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도 롱릴리프였던 정인욱을 좀 더 오래 끌려다가 불의의 3점포를 맞고 위기 상황을 자초하기도 했다. 다행히 그 경기는 팀 타선 폭발 덕분에 이겨서 망정이었지, 결과가 나빴으면 SK 와이번스에게 반격의 빌미를 제공할 뻔 했다.

2013년에도 선발승을 챙겨주려다 교체 타이밍을 놓쳐 선발투수들 평균자책점도 올라가고 이길 수 있는 경기도 놓칠 뿐더러, 불펜 교체에서는 좌우놀이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거기다 전반적으로 투수교체를 미루다가 대량실점을 하면 그제서야 부랴부랴 투수교체를 하고, 이게 대량실점, 나아가 게임의 패배로 나아가는 단점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13년 들어 드러나는 안지만에 대한 의존도도 지적받고 있다. 심창민이 기대만큼 못 커주면서 팀 내 유일한 셋업맨이 안지만 뿐이라지만, 팔꿈치 뼛조각 제거수술을 한 선수를 무리하게 땡겨쓰면서 투구폼이 변하고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투구수도 예전에 비해 길게 가져가는 점도 불안요소. 게다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는 방망이가 한심할 정도로 부진했다지만 오승환을 9회부터 13회 원아웃까지 50개 넘게 던지게하고, 오재일에게 솔로 홈런을 맞으며 패배 단초를 제공해 까였다. 오승환이 한국시리즈에서 선발로 전향했냐면서. 그 뒤로 나온 투수야 멘붕한 상황에서 기세가 오른 두산 타선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건 덤.

이러한 투수교체의 문제에 대해 2013년 메인 투수코치가 된 김태한에 대한 성토와 함께 오치아이 에이지의 복귀를 바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미 오치아이는 2012년 시즌 중반부터 투수 교체는 류중일 감독이 직접 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56] 1군 투수코치는 불펜코치라고 봐도 무관한 상황.

2014년에 이러한 부분은 더욱 두드러져, 차우찬의 혹사와 함께 삼팬들을 암 걸리게 하고 있다.

5.2.3. 좌우놀이

2011년에만 해도 '좌타자가 우완 투수만 상대하다 보면 반쪽짜리 선수가 된다'고 인터뷰를 하던 감독이었지만, 경력이 쌓여감에 따라 좌우놀이를 하는 빈도가 늘어났다. 그 예로 조동찬이나 김상수를 상대 선발이 좌완이면 2번에 올려 쓴다거나, 상대 선발이 사이드암이다 싶으면 정형식-박한이-이승엽-최형우-채태인의 극단적인 좌타 라인업을 꾸린다거나, 2013년 기준으로 삼성 1군에 좌완이라고는 원포인트형 계투보다는 릴리프형 계투만 있음에도 권혁, 백정현 등을 원포인트로 기용한다거나, 2군 투수들이 죽쑤는 편이지만 그래도 우완 투수들이 그나마 괜찮은 편임에도 좌완을 자꾸 엔트리에 갖춰놓고 싶어한다거나.

기록을 무시하는 플래툰식 기용도 문제가 되는데, 김정준 해설이 경기 해설서 언급했듯 강봉규는 커리어 통산 좌타자에 더 약한 선수다.[57] 그런데 그런 선수를 상대 선발이 좌투라고 올리고, 권혁이 극심한 부진에 빠졌을 때도 좌타자가 나오면 권혁부터 올리는 등의 기용을 했다. 그나마 2012년까지는 정현욱, 권오준, 안지만 등이 그 똥을 치워줬지만 그들이 빠지고 부진하니 권혁의 방어율은 폭등.

특히 2014 시즌 들어서 그야말로 답이 없는 좌우놀이에 중독된 상황. 우타자란 이유로 방어율 0점대를 찍고 있는 권혁을 내리고 김희걸을 올려서 점수를 퍼주고, 점수차가 여유로운 상황에서도 상대 타자가 좌타라는 이유로 차우찬을 끌어내서 홈런까지 허용하는 데다, 1군에 올라온지 딱 이틀 된 선발투수 노진용을 우타자 상대 원포인트 릴리프란 명목으로 투입하여 홈런까지 맞는 등 오승환이 떠난 이후 출첵야구에 맛이 들렸다. 데이터를 개무시하니까 까이는거다.[58]

5.2.4. 기묘한 작전야구

취임 초기 공격 중심의 야구를 하겠다는 말과 달리 해가 더해갈수록 번트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있다. 감독 첫해인 2011년에는 8개 구단 중 번트가 최소였으나, 2012년에는 20개가 더 늘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더욱 심해졌는데 6월까지 팀 번트가 9개 구단 중 2위다. 2011년의 강공 야구 대신 전임감독 시절의 스몰볼로 회귀하고 만 셈. 거기다 2할을 간신히 찍는 우동균을 주구장창 대타로 내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59][60]

5.2.5. 투수 혹사

2014년 류중일이 저지른 최악의 실책

2014 시즌 들어 불펜투수 차우찬을 심하게 혹사하고 있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2014 시즌 차우찬은 선발등판 없이 순수하게 불펜으로만 자그마치 69경기 82이닝을 소화했다. 후반 연투로 구위가 뚝 떨어져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10월 9일 경기에 등판하여 4연투를 했고, 이로서 차우찬은 선발 등판 단 한번도 없이 계투로만 나와서 80이닝을 넘겨버렸다. 삼성 팬덤의 금지어권혁,권오준,안지만,정현욱을 굴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엄청난 혹사다. 그 상황에서 성적이라도 좋은가? 아무리 투고타저라지만 평균자책점이 5.60인 선수[61]를 불펜전환이 성공한 선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미 시즌 전부터 차우찬의 보직을 "조커"라고 말하며 시즌 중 원 포인트 릴리프, 셋업맨, 롱맨, 추격조, 승리조 거의 모든 보직에서 과도하게 혹사중이다. 지금 삼성의 토종 선발진인 윤성환,배영수,장원삼은 나이도 30줄을 넘긴데다, 노쇠화로 실력도 예전같지 않다. 사실상의 1선발이 밴덴헐크인걸 감안하면... (물론 헐크가 2014 시즌 특급으로 각성한 것도 있지만) 이렇게 선발진 교체 시기가 다가왔는데도 오승환이 떠났다는 이유로 불펜을 강화하기 위하여 가장 유력한 젊은 선발자원인 차우찬을 불펜으로 돌려 살인적으로 혹사해 저런 성적을 내게 만드는 게 팀의 미래에 도움이 될까?

이전 시즌보다 불펜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노쇠화, 타고투저등의 이유를 들 수도 있지만, 불펜 관리는 이전 시즌들에 비해 2014 시즌 확실하게 악화되었다. 2013 시즌 삼성 투수들은 전원 투수 혹사지수 20위 안에도 들지 않은데 비해[62] 2014 시즌 삼성 투수 중에는 차우찬이 혹사지수 최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63][64] 더 큰 문제는, 차우찬, 안지만, 임창용 이외에도 삼성 불펜에 충분한 대안들이 있는데 그들을 중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 당장 선발에서 불펜으로 보직을 바꾼후 방어율을 2점 이상 떨어트린 백정현, 망해가는 삼성 불펜에 난세영웅으로 등극한 김현우, 오랜 암흑기를 뚫고 다시 구위를 회복하기 시작한 권혁등, 혹사에 고통받는 현 필승조들을 구원할 선수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피칭 성적이 괜찮은데도 불구하고 박빙 상황에서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고 않고 있다.[65][66] 기존에 선수 혹사 이미지를 쌓아 온데다 올 시즌에도 선수를 혹사하고 있는 모 감독 덕분에 차우찬 1명에게 혹사가 집중 되는 류중일 감독의 혹사가 비교적 부각되진 않았지만, 기존 관리야구 방침을 져버린 2014 시즌 투수 혹사는 확실하게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다.

다만 차우찬이 올 시즌 들어서 급격한 혹사를 당한 이유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아시안 게임 진출을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차우찬이 2014 시즌에 선발로 들어갈 시 '양현종, 김광현등의 대한민국 넘버 원,투를 다투는 좌완선발들과 비교를 당하며 아시안게임 후보로 저울질을 하게 되었을텐데 그렇게 되었다면 과연 차우찬이 그 선발진을 제치고 아시안게임을 나갈 수 있었을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면 올 시즌 차우찬이 왜 불펜에서 마당쇠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답이 어느정도 나올 수 있을것이다. 류감독도 시즌초중반부터 끊임없이 아시안게임에서 좌완롱릴리프가 필요하다는 언플을 계속 했던것을 감안한다면 그저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었다고 욕하는 팬들보다는 좀 더 멀리 내다보고있었다고 할 수 있다.[67] 그게 아니라면 당연히 시즌초반 백정현과 차우찬의 위치가 바뀌었을것이다.

5.2.6. 선수 관리에 대한 의문점-믿음의 야구의 반면

형님 리더쉽에 대해서도 지적을 받고 있는데, 그 부작용으로 선수단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 예로 5월 5일 팀이 연패중인데 불펜 선수들은 다음날 새벽 네 시까지 술을 마시고 있다거나 이래서야 되겠나? 정현욱은 5월 6일 경기에서 팀에게 패전을 안겨줬다.[68]외부에서 기강이 풀어졌다는 비판을 받는 등...채태인의 희대의 본헤드 플레이에 대해 문책하지 않고 감싸려고만 든다거나 2012년 삼성 2군 타자들이 단체로 부진했는데, 이에 대해서도 주전만을 신뢰하는 작금의 현실이 2군 선수들의 의욕상실을 불러왔다는 분석도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고 장효조 2군 감독의 부재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장감독이 특히 신경썼던 배영섭의 2012년 부진도 이를 통해 설명 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팀 케미를 잘못잡는다는건 류중일 감독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다. 위에도 적혀있지만 그 김응용 감독에게도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정면에서 반박하는 유일한 코치였으며 그 훈련량 역시 김응용 감독에게 어마무시하다고 인정 받은 사람이다. 거기에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노장진과의 일화를 생각할때 단지 언론상의 이미지 만으로 류중일 감독이 강단없고 선수들에게 휘둘린다고 판단하는건 큰 오산이다. 애초에 사람이 좋은 것과 팀 케미를 잡는건 다른 문제고 류중일 감독의 코치 시절을 안다면 이런 비판을 할 수가 없다. 저 패전날 회식의 경우에도 만약에 선수들 멘탈에 문제가 될 지경이었다면 류중일이 제재를 했을 것이다.

또한 학연·지연야구를 한다는 비판도 있다. 2012년 KIA와의 트레이드로 데려온 김희걸은 류중일 감독과 동향인 포항 출신이고, 2013년 시즌을 앞두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선수 중 정병곤이상훈은 류중일 감독의 모교인 경북고 출신이기 때문. 더불어 2013 시즌 초반에는 경북고 출신인 이승엽김상수가 부진함에도 그대로 각각 3번 타자, 9번 타자로 출전시킨다는 이유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 학연야구를 한다고 비판받았다. 그나마 김상수는 대체자원이 없는데다 일찍 자기 페이스를 찾았지만, 채태인이라는 훌륭한 대체자원이 있음에도 부진도 길어지는 이승엽의 기용은 그저 까이고 또 까일 뿐.[69] 게다가 6월 4일부터 6일까지 있었던 넥센 히어로즈와의 3연전에서 안이한 경기운용과 투수교체 미스로 1무 2패를 기록하여서 류중일에 대한 성토가 심해졌다. 606 대첩 항목 참조. 이 점에는 정상적으로만 운용했어도 2위와의 격차를 벌릴 기회가 무척 많았음에도 선수기용의 실수로 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8월 26일 기준 0.5게임차 승률 1위까지 쫓기는 상황이 한 몫 했다. 그리하여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포항 출신을 포슬아치, 경북고 출신을 경슬아치라고 깐다.[70]

또, 양아들 소리를 듣는 류상수 김상수의 경우는 SNS 등의 사생활에서 많이 까이는것도 모자라 선수로서도 게으름이 많은등 기대이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생활문제의 경우타이중때 크게 한건 한 이후로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평가이다. 이제는 한 술 더떠서 팀이 패배하고 있는 와중에 여자끼고 여전히 나이트 가거나 비공개 SNS에서도 전혀 반성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믿음의 야구 탓에 위기 상황에 대한 피드백이 너무 늦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2011년 시즌 중후반에 잠깐 위기가 찾아왔는데 미련하게 가다가 시즌 첫 4연패까지 몰리고 나서야 겨우 피드백하여 타순 변경 및 분위기 쇄신을 꾀해 겨우 위기에서 넘어간 적이 있었고, 2012년 시즌에도 시범 경기부터 팀 상태가 썩 좋지 않았음에도 개막전 2연패, 그리고 시즌 첫 4연패까지 몰리고 나서야 다시 한 번 타선 변경 등으로 연패에서 겨우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5.2.7. 그 외

  • 2012년 9월에 제3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을 앞두고 대표팀 감독으로 김인식 감독을 추천한다는 인터뷰를 하여 야구팬들의 비난을 받았다.류중일 감독, "WBC 사령탑, 김인식 감독님이 적절" 대회로 인해 소속팀의 훈련 등 시즌을 준비하기 어려운 현역감독의 고충과 능력있는 전임감독감의 인물들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있으나 2011년 WBC 감독으로 출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여러번 밝힌 바 있어서# WBC 감독으로 선임될 확률이 현실적으로 높아지자 원칙을 무시한 말바꾸기이자 2회 WBC와 같은 폭탄돌리기를 되풀이한다고 비난받았다. WBC 성적이 좋지 않으면 소속팀에서 바로 잘릴 수 있는 감독의 입장도 있지만 타 종목들의 대표팀 감독의 경우 애국심을 강조하며 대표팀 선임의 트러블이 적은 것과 비교되고, 모범을 보여야할 감독이 실리적인 이유로 피해 간다면 시즌보다 실리가 적은 대회에 출전하는 대표 선수들 또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잘못된 처신이라는 평. 쏟아지는 기사 중 구단 고위층에서 감독의 국제대회 참가를 거부한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게 삼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나왔다. 갑작스러운 말 바꾸기도 그렇고.. / 타이중 참사 후 모 삼성팬 曰 : 차라리 김인식을 보냈다면...

  • 투수의 구속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특히 용병투수의 경우에 그러한 경향을 보이는데 구속을 믿고 데려온 아네우리 로드리게스, 에스마일린 카리대 등은 모두 폭망해 버렸으며 강속구 계열 용병 중 그나마 성공한 투수는 릭 밴덴헐크가 유일하다. 다만 이러한 경향은 삼성의 토종 선발 3인방 윤성환, 장원삼, 배영수 모두 강속구로 압도하는 피칭과는 거리가 먼 투수인지라 선발진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는 변호도 존재한다. 실제로 밴덴헐크가 성공하자 다른 투수 용병으로 제구형 투수인 J.D. 마틴을 데려왔다.

    그리고 그 파이어볼러 용병의 중요성은 현 2014년 릭 밴덴헐크의 부상복귀이후 1선발급 활약을 통해 삼성팬 모두가 수긍을 했다. 역시 현장의 이야기엔 다 이유가 있는거다. 좆문가들이 괜히 좆문가들이 아니지. 파이어볼러 찾기가 어렵다는 건 잠시 접어두자. 이닝이팅 되는 파이어볼러면 메쟈 가지 왜 크보에 오냐. 헐크같이 미완성이거나 아니면 제구가 안 되거나 멘탈이 새가슴이거나 이닝을 못 먹거나 해야 한국에 올 마음이 들지. 파이어볼러 찾다가 데려온 게 A-Rod와 카리대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파이어볼러 좋은 거 누가 모르나.

5.3. 종합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해나가는 스타일로, 삼성이라는 시스템에 최적화된, 그러니까 삼적화된 매니저형 감독.[71]

번트를 많이 대는 편이지만, 가장 정석에 가까운 야구를 구사하는 빅볼 스타일을 주로 구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2년 동안 류중일의 삼성 라이온즈가 보여준 모습은 말 그대로 슬로 스타터. 비록 초반에는 삽질을 하더라도 주전 선수들을 향한 끊임없는 믿음과 안정된 선수층 그리고 여름에 전투력이 올라가는 삼성 종특 버프에 힘입어 꾸준히 승수를 쌓아 올리며 선두 자리를 차지하는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다. 단, 2013 시즌에는 오히려 여름에 삼성이 그다지 박차고 나가지 못하였고, 시즌 초반에 승리를 많이 챙겨두기도 했다. 팀원의 체력관리와 부상관리에도 한선수 빼고 상당히 신경을 쓰는 한국 야구에서 보기 드문 유형의 감독이기도 하다.[72][73] 게다가 지속적인 기용으로 비록 양아들이라고 까이지만 부진에 빠진 선수들을 1군 전력으로 다시 복귀시키는데는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KBO의 화타, 류크로멘서 한국야구 사상 혹사가 없는 상태로 단시일 내에 4회 통합우승한 팀은 류중일의 삼성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그야말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시리즈 4회 우승 감독이자 한국에서 유일하게 아시아 시리즈를 우승해본 적이 있는, 의외로 단기전 능력에 준수한 면을 갖고 있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 중 특유의 1+1선발이나, 단기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한 작전이나 시프트는 꽤 호평받는 편이다. 단기전 능력을 비판받았지만, 한국시리즈를 4연패한 감독에게 단기전 능력을 의문시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며 김응룡을 제외한 모든 감독의 단기전 능력을 디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론 또한 존재한다. 사실 콕 집어말할 정도의 흠이라면 그저 매 경기 작두를 타지 못한다는 것 뿐이다. WBC도 사실 전적은 2승 1패이다. 1패를 너무 털려서 그렇지...4연패를 달성한 뒤에는 경기 운영 스타일에 대한 비난은 적어도 삼성 팬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줄어서 현재는 사사방 정도에서나 이런 의견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시즌이 아니라 매 경기 레벨에서는 늘 까인다. 바로 아래 문단에서부터 까인다(...) 작두를 못 타는 게 죄다.

다만 승부사형 기질은 좀 부족한 편이라 빠른 선수단 파악, 장악 능력과 단기전 운영 능력이 중요한 상황에서는 4년째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그래서 통합 4연패 했다. 발전이 없어서. 예컨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제대로 힘을 못 쓰는 모습이라든가, 승부처라고 나선 경기를 줄줄이 말아먹는다든가,[74] 포스트시즌에서 배짱을 부리다가 상대에게 분위기를 내준다든가. 그리고 끝내는 이겨버린다는 점에서 훌륭한 희망고문가의 자질을 갖고 있다. 또한 심한 부진에도 아랑곳 않는 양아들 기용[75]과 타이밍을 일방적으로 내주는 늦은 투수교체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2014 시즌에 들어서도 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그러하여 류중일 본인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삼성빨"이다, 다른 팀 가면 팀 말아먹을 감독이다 등의 능력을 의심받는 비판에 자주 직면하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참패 이후 그러한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할건 실제로 게임에서 감독의 전술, 타순배치, 투수교체, 수비시프트 등으로 이기는 경우는 삼성 뿐만 아니라 그 어느팀이라도 매우 적다는 것이다. 심지어 단기전 운용능력이 좋은 감독으로 잘 언급되는 김성근만 하더라도, 그가 SK를 강팀으로 만든 주된 요인은 '선수단 분위기 개선', '선수 육성' 등이였지, 감독의 전술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오히려 김성근 감독은 SK감독시절 쓴 자서전에서 "우리팀은 다른팀보다 게임에서 사인을 적게내는 편이다"라고 저술했을 정도이다. 당장 세이버매트릭스적으로 생각하더라도 MVP급 선수가 풀시즌을 소화해도 WAR가 6승~9승 정도를 오가는데, 감독의 전술로 승리하는 경우는 그보다 훨씬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수비 스프트, 투수교체, 타선배치 등의 '게임 운용 능력'이 아니라 선수단 관리 등의 '시즌 운용'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봤을때 류중일에게 승부사기질이 없다고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평가이다. 애초에 현 프로야구 감독중에서 단기전을 귀신같이 잘 운용한다는 평가를 받는 감독도 없다. 김성근을 제외하면 그 이전에 단기전을 귀신같이 운용한다던 평을 받던 감독 중 현재 감독하고 있는 사람은 선동열, 김응용 정도인데, 선동열의 단기전 능력은 2010년에 여실히 드러났고, 현재의 김응용 스타일로는 단기전에 돌입하기조차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세 명 다 모두 삼성을 거쳐갔던 감독이고.

그래서 류중일 감독에 비판적인 삼성팬이라도 전임 감독보다 낫다는 데는 동의한다. 경기 스타일도 그렇고, 성적도 과정이 좀 그래서 그렇지 한국야구 최초로 4년째 통합 1위를 기록한 감독이다. 이것은 김응용, 김성근도 못 해본 결과물이다. 결론적으로 커리어로만 보면 역대 삼성 감독 중 최고의 감독이다. 삼성팬들에게는 멍게강점기의 잔재를 말끔히 씻어낸 삼전드 영웅[76]

또한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소속팀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다. 삼갤의 모 갤러의 표현을 빌리자면 '프야매 하는 삼빠아재' MLB파크 유저들 사이에서는 '시즌권 끊고 덕아웃 난입한 삼빠아재'본인 스스로가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삼성구단과 역사를 같이 해 왔다는 자부심, 그리고 구단의 상황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파악이 가능하다는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의 최고덕목을 하나도 놓치지않고 다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명한 2010 한국시리즈 4차전 짤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인 스스로가 개인커리어도 커리어지만 그 것보다 삼성이라는 팀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앞서말한 혹사가 없는 관리야구로 KBO 유일무이의 통합4연패가 가능했고 2014년 우승 이후 2015년 시즌에도 여전히 우승을 넘볼 수 있는 것이다.

2014년에 4연속 통합우승에 성공하면서 감독으로서의 능력검증이 문제가 아니라 역대 프로야구 감독 원탑 자리를 노려볼 만한 실적이다. 80년대~90년대 해태 타이거즈, 90년대 말~2000년대 초 현대 유니콘스, 2000년대 후반 SK 와이번스같은 역대 기라성같은 왕조들도 4연패는 커녕 3연패도 못 해봤다. 이 성적이 외국인선수를 잘 뽑고 굴려서 낸 것도 아니고 오히려 라이언 가코에스마일린 카리대같은 너프 밸런스 패치 외국인선수들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만들어낸 성적이라 더 돋보인다. 묻히는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대단한 점이 김성근 감독도 일전에 말했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용병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고 용병을 얼마나 잘뽑았는지가 한해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물론 이건 바다건너 리그도 마찬가지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용병들이 이렇게 널뛰기를 하는 상황에서도 통합우승 4연패를 이룬 것만으로도 그의 능력은 충분히 입증된다.

6. 기타

  • 별명은 그라운드의 살구꽃(…). 류중일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얼굴에 여드름이 많아서 멍게라 불렸는데, 이미 선동열 전 감독이 그 별명을 갖고 있었는지라 그와 비슷한 살구꽃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한 마디로 피부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 다시 태어나면 야구가 아닌 골프 선수를 할 것이라고 말하는 골프 매니아로 야구계 골프 최고수로 알려져 있다. 1991년 선수 시절 골프를 처음 접했는데 골프와 야구 스윙이 달라 골프가 타자에게 독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골프에 푹 빠졌다고 한다.

  • 한대화 감독이 야왕이란 별명을 얻자 1위 하면 야통이라 불러달라고 하였다.# 그리고 2011년 6월 2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4:3으로 역전승! 같은 날 0.5게임차 앞서 있던 SK한화에 1:5로 패하면서 순위가 바뀌어, 삼성 1위 등극과 함께 야통 등극. 하지만 어찌 된 게 야통이라는 별명은 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야왕 때문인가 사실 대부분 돌중일, 관중일이라고 부른다

  • 2013 시즌에 당시 2위였던 LG 트윈스가 1위, 3위, 4위와 3연전을 앞두고 있을 때 이를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에 빗댄 도원결의 짤이 돌면서 1위였던 삼성이 유비 포지션을 맡았고, 이 때 류비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혼자 졌다 혼자 지고 최종 승자가 되는게 정말 유비같다

  • 2011년 7월 15일 기아와의 경기에서 윤석민에게 타선이 압도당하자 이를 흔들기 위해 김평호 코치와 함께 마운드에 난입하였다. 삼갤러들은 투수 교체하기 위해 올라갔다 카더라

  •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교복 캐릭터로 나온다(…). 이름이 중일(中1)인데서 착안한듯 하다.

  • 2012년 초에는 시즌 전 터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에 대해 가벼이 여기는 것 같은 발언을 하여 논란이 있었고,[77] 시즌 초에는 야통, 류승사자 등 그런 거 없고 돌중일, 관중일, 류정일[78]로 진득하게 씹히기도 했으나 다행히 여름에 1위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여서 악질 까들의 입을 잠잠하게 했다. 재미있는 점은 2012년 시즌 초반에 삼성이 한참 삽을 풀 때도 "선동열 감독님을 자르고 류중일을 앉힌게 화근이다"라는 의견은 삼성 팬덤에서 매우 드물었다는 점. 왜냐하면 류감독이 6위에서 삽을 푸던 무렵 선감독도 7위에서 사이좋게 삽을 펐었기 때문.

  • 삼양사의 '니코스탑' 금연보조제 가상광고[79]에 대해 사전 동의 없이 광고를 내보냈다며 항의했다. 기사

  • 모 인천야구 수치이자 팀 선배에게 본의아니게 수모당했다. 그 선배는 '초보감독이 첫해에 한국시리즈에 간 적이 있는가? 선수들은 나만 믿고 따라왔으면 한다.' 라고 말했는데, 이는 2011년 처음 감독으로 부임해 정규시즌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류중일을 까맣게 망각하고 한 이야기다.

  • 감독으로써는 표정이 상당히 다채로운 편이며, 삼성과 관련있는 경기에서 자주 기습적으로 엠팍이나 야갤에 다양한 얼굴 표정이 짤방으로 올라오는 편이다.

  • 덕장으로 유명하지만 야구계에 몸담으면서 딱 3명에게 손찌검을 한적이 있다고 한다. 이 3명은 바로 노장진, 김진웅, 양용모. 세명 다 사생활 관리가 개판으로 유명한 선수였고[80], 류중일이 손댄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81]

  • 평소 선수를 칭찬하기로 유명하지만 윤성환이 라디오 볼에서 인터뷰를 하던 도중 류중일 감독이 맨날 구속이 느리다고 구박하고 김태한오치아이 전 투수코치가 윤성환을 달래는 일이 종종 있었다고(...)

  • 선수시절에는 삼성 시절 김성근 감독과 마찰이 있던 선수 중 한명이다. 나머지는 이만수, 김성래, 강기웅 등이 있다.[82] 네이버 라디오볼에서 9개 구단 중 사람 좋기로 유명한 모 감독이 김성근 감독에 대해서 정색하면서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서 놀랐다고 하는 언급이 있었는데, 엠팍에서는 이 인물을 류중일 아니면 김시진으로 보는 이유도 여기 있다. 딱히 김시진과 김성근의 접점이 거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류중일일 확률이 더 높은 편.[8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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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처음에는 대구광역시포항시 출신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경북 영덕군 태생. 영덕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야구를 시작해 대구에서 꽃을 피웠다. 어쨌든 경북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됐다
  • [2] 단 야구를 시작한 곳은 포항 중앙초등학교이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아마추어 시절 참조.
  • [3] 2012 시즌 올스타전이 롯데 선수들로 채워지면서 졸지에 일일 감독을 하게 되었다. 비슷하게 2013년 선동열 감독도 올스타전 때 일일 LG 감독을 하게 되었다.
  • [4] 통합우승으로는 KBO 신기록이며 이 후로도 연속 통합우승이 이어지면 기록이 갱신 된다.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 [5] 기존 해태 타이거즈와에 이은 한국시리즈 최다 연속우승 타이기록
  • [6] 프랜차이즈의 기준에 있어서 완벽하다.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으로 삼성에서만 선수로 뛴 원클럽맨이며, 은퇴 후 코치로 있었고, 2011년부터 삼성 감독을 맡고 있는 진정한 성골 삼성맨이다.
  • [7] 서정환이 삼성 선수 최초의 감독이긴 하지만, 프로 원년 다음 시즌부터 은퇴할 때까지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었기 때문에 원 클럽맨은 아니다.
  • [8] 늘 그랬듯 발전 없이 1등만 하는 감독.
  • [9] 특히 호랑이 사랑방을 필두로 한 KIA 팬들이 선동렬이 잘린 이후 이 같은 폄하성 별명으로 부르며 베다 위키내에서도 악질반달이 수차례 있었다.
  • [10] 감독생활 4년간 나머지 12명의 감독이 재계약 포기 내지는 사퇴했다. 한명은 두번짤렸다.
  • [11] 프로야구 사상이 아니다, 전체 한국 야구 사상이다! 이 시절 박노준은 정말로 여고생을 몰고 다니는 아이돌이었다. 봉황대기 결승전 다음날 박노준이 입원한 병원에 당시 서울 시내 여고생들이 병원 앞에서 진을 치고 울먹이더라는 얘기는 아직도 고참 스포츠 기자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 [12] 1차 전성기는 남우식, 임신근이 이끈 1970년대 초반, 2차 전성기는 황규봉, 이선희의 1970년대 중반. 그리고 이 때를 마지막으로 경북고 야구부는 기나긴 침체기에 접어들게 된다. 1981년 이후 경북고의 메이저 전국대회 우승은 이승엽이 2학년이었던 1993년에 거둔 청룡기 우승이 유일하다. 그럼에도 전국대회 통산 우승 회수는 여전히 1위이다.
  • [13]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들 중 대졸 출신은 한양대학교 출신이 많다. 장효조, 이만수, 김시진, 류중일, 성준 등. 이승엽도 한양대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 [14] 사실 2010년대 프로야구 감독들은 고려대-OB 테크를 탔거나 그 둘 중 한 발짝이라도 걸친 경우가 대부분이며, 거기 속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다 한양대-삼성 테크를 탔다.
  • [15] 경북고 유격수로서 이미 스타 반열로 올라온 류중일에게 대학교의 러브콜이 쏟아진 것은 당연한 일로서, 본인은 연세대에는 이순철(참고로 이순철은 대학교 및 프로 1년차까지만 하더라도 내야수였다)이, 고려대에는 민경삼(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 SK와이번스 단장 민경삼이 맞다)이 있어서 한양대로 진학했다고 한다 기사참조
  • [16]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핵폭발 위험이 있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김희걸, 각각 전날 선발과 다음 날 선발로 예정된 윤성환, 장원삼을 제외한 9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한마디로 최소 인원만 남기고 모두 투입한 셈이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다음날 선발인 장원삼도 올리지 않았다는 점인데 이는 마지막 발악이 아니라, 못해도 다음경기까지는 갈것을 생각하고 투수를 투입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 [17] 그런데 1위와의 게임 차는 얼마 나지 않는 치열한 페넌트레이스였기 때문에 중반 이후 1위로 올라서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 [18] 심판에게 어필을 잘 안 해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 [19] 류현진이 빠지게 되는 과정에서 은근슬쩍 류현진에게 참가하라는 것 같은 압박성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 한동안 오갔다. 추신수는 필요이상으로 괘씸죄로 불참한 것을 엄청 까였다. 정작 일본 메이저리거들의 불참에 대해서는 관대한 여론이 있었다는 것이 아이러니.
  • [20] 특히 양상문박희수를 올리자고 했으나 선수빨 소리를 듣기 싫어한 류중일은 이를 무시하고 노경은을 올렸다가 퐈이아... 이상의 내용은 '현장의 지인으로부터 문자로 전해들은 소식' 이라는 WBC 뒷담화란 아프리카 개인 방송에서 나온 내용으로 엄밀히 이야기하면 사실 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글전문 당시 주전이었던 김태균이 경기 전까지 자신이 주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상식 밖의 이야기나, 실제로 네덜란드 전 이후 연습을 가진 대표팀이 호텔이 틀어박혀 있었다는 등의 사실관계가 어긋난 이야기도 있는 걸 봐서는 이 방송을 완전한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 [21] 일단 오피셜 기사에 따르면 기사참조 노경은의 전천후 투수로서의 역할을 분배한 것은 양상문 코치이다. 물론 실제로 투수 교체를 한 것이 누구이든 그 책임을 감독이 져야 한다는 점에서 류중일 감독의 운영은 비판 받아 마땅하나 '선수빨 소리 듣기 싫어서 독단적으로 교체했다.' 라는 앞 각주의 이야기는 제대로 된 사실 관계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루머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 [22] 사실 다음 야구 게시판이나 아고라 쪽에 올라오는 야구 관련 의견은 특정 팀의 의견을 참고한다면 모를까, 전체 네티즌의 의견을 대변하는 용도로서는 바람직 하지 않다. 일단 아고라 자체가 아무나 기분내키는 대로 청원을 남발하는 곳인데다가 미디어다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음 관련 커뮤니티는 선동열 경질을 이유로 호랑이 사랑방 네티즌들이 친 삼성 라이온즈 성향 네티즌들을 축출하다시피한 상황이다. 따라서 다음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의견 대부분은 야구팬들의 의견이라 보기엔 무리가 많고, 별 의미 없다고 보는것이 맞다.
  • [23] 2012 시즌에서도 초반에 삼성이 부진했을 때, 돌중일, 관중일이라 부르며 이미지를 점점 깎아먹일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어찌됐건 우승을 거두며 이런 조롱은 줄어들었다. 이 때는 설령 비난이 쏟아진다 해도 류중일을 실드쳐줄 팀팬들이 있었고, 그저 삼성의 막강 전력을 질투하는 이들의 징징거림으로 치부하면 그만이었다.
  • [24] 실제로 2012년 시즌과 2013년 시즌 두 시즌 모두 통합 우승을 달성 했으나 2012년에 비해 2013년의 류중일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해졌다. 김성근도, 김응용도 달성하지 못한 3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이 타이중 참사 한방으로 인해 명장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
  • [25] 이 드립은 실제로 불암콩콩코믹스에서 약간 바꿔서 써먹는다.
  • [26] 불행하게도 여기에 언급된 은 2013 시즌에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 [27] 2011년의 경기 중 모습과 2013년의 경기 중 모습을 보면 많이 다르다. 특히 홈런을 쳤을 때의 표정을 주목하면 좋다.
  • [28] 오치아이 에이지 투수코치는 트위터에서 "2010년때는 자신이 코치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지켜보는 것밖에 하지 않았으나, 2011년에는 감독이 자신을 믿고 모든 권한을 주어서 감사하다"라고 하였다. 오치아이 코치는 2011년에 6선발체제로 삼성의 투수진을 안정시키고, 다른 구단들과는 달리 불펜투수를 혹사시키지 않으면서도 필요할 때 쓰며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 [29] 단, 이것은 오치아이 코치가 2012시즌을 마지막으로 퇴단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오치아이에게만 맡겨둘 수 없었다는 속사정이 있었다. 또한 2013년의 김태한은 경험이 일천했고, 결국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한 점을 보면 이 점을 무조건적으로 깔 수는 없다.
  • [30] 투수코치가 바뀌었을 때 우승하지 못하면, 새로 투수 코치가 된 김태한이 그 비난을 상당수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위해서라도 우승해야한다는 말. 코치 경험이 길었던 류중일 또한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 우승은 했지만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 [31] 임창용은 2005년 초 FA 계약을 하면서 해외진출을 요구하면 허락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일본에 진출할 수 있었는데, 규정상 임의탈퇴로 묶여 국내 복귀시 무조건 삼성에서 복귀해야 했음에도 인터뷰 중 은퇴는 고향팀에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다. 다만 임창용 본인은 선동열이 싫은 거지 삼성 팀 자체가 싫은 것이 아니었다. 2012년 선동열이 KIA 감독으로 부임하자 일본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 [32] 2014년 들어 아니란 사람도 있는데 어디 과부하 걸려 문제 일어난 선수도 없는데 너무 단정짓는 경향이 있다.
  • [33] 전성기 시절에 비교하면 안 된다. 나이가 이미 40인 노장 중 노장을 리그 최고의 6번 타자 중 하나로 복귀시킨 것은 그야말로 류중일의 선수 보는 눈의 승리.
  • [34] 이 기사에서 언급된 외야수 정형식은 2014년 9월 음주운전이 적발되어 임의탈퇴 처리되었다. 원래 의도한 바가 아니라 다른 의미라서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진짜로 정수근같은 선수가 되어버린 것(...).
  • [35] 조영훈은 그럼에도 빈공에 시달리다가 NC로 2차 드래프트로 이동했고, 김희걸은 삼성에서 2012년엔 ERA 3점대 후반으로 그럭저럭 잘 던졌다. 다만 2013년엔 1군 12점대, 2군 7점대로 폭망. 하지만 2014년 초반에는 안지만보다 낫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발전했고, 2015년에는 필승조까지 등극했다.
  • [36] 단, 2013년에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배팅을 강조하다가 출루율이 나락까지 떨어질 위기에 놓일뻔 했다. 예를 들어 박한이는 평균적인 타율을 보여줬지만, 출루율은 폭망했던 시즌 수준으로 떨어져버렸다
  • [37] 이 말을 곱씹어보면 의미가 깊은데, '나의 임기를 삼성의 시대로 만들겠다'나 '나의 야구를 펼치겠다' 류의 인터뷰가 아닌, 2010년대를 삼성의 시대로 선언했다는 것이다. 감독이 10년간 한 팀에 눌러앉는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을 생각한다면, 자신의 임기 이후도 약속의 범위에 넣은 셈이다. 실제로 류중일의 인터뷰 스타일을 자세히 보면, '류중일식 야구', '자신의 야구관' 등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삼성의 야구', '삼성의 시스템' 등을 압도적으로 많이 언급한다.
  • [38] 이쪽은 선수생활의 전성기때 김재박과 류중일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야말로 유격수가 모실 수 있는 최고의 스승라인을 모신 셈.
  • [39] 물론 예외도 있다. 바로 모상기. 모상기의 경우에는 1루수비조차 안돼서 1군에서도 지명타자로 뛰었지만 2군에서의 타격 스탯이 압도적이어서 채태인의 대타로 콜업 되었다. 다만 2011년의 콜업 이후에는 2군에서 조차 덩치 큰 똑딱이로 전락해버리면서 그 후의 콜업기간은 길지도 않았고 성적도 그리 좋지 못했다.
  • [40] 단, 김성근은 감독 자리에서 밀려나면서, 김응용은 류중일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인해서 포기했다.
  • [41] 애시당초 투수진의 노쇠화를 우려하여 투수 위주로 드래프트 했다. 내야수는 한 명 뿐이었는데, 한겸 또한 유격수였다.
  • [42] 이 드래프트 통계는 정식 드래프트에 한해서이며, 신고선수로는 몇 명 더 있다.
  • [43] 대구구장의 그라운드 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박진만이나 류중일 본인이 겪었던 무릎이나 허리, 목 등의 부상 위험도가 상당히 높다는 우려를 사고 있다. 류중일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체력 보존을 위해 되도록이면 김상수를 9번 타순에 넣곤 한다.
  • [44] 어디까지나 유격수 수비를 인정받는 선수가 있을 때이다. 없으면 그냥 유틸리티 쓴다. 대표적인 것이 2루수 백업하던 손주인을 어쩔 수 없이 유격수로 기용했던 전례. 이외에는 신인급 선수들을 가비지 이닝에 시험삼아 올린 수준이며, 2014년에는 가비지 이닝에 야마이코 나바로를 유격수로 돌리기도 한다. 김상수의 부상 때 올라와서 활약했던 정현의 경우는 처음부터 확정적으로 3루수 전향하려던 상태가 아니라 2군에서 유격수로 수업을 받고 있었으며, 가비지 이닝에 3루수로도 병행하여 훈련을 받았다. 1군에서 김상수 대신 유격수를 하는 동안 뻣뻣한 몸이 류중일에게 지적되어 3루수로 전향하려고 시도했던 것. 타격이 더 좋다고 해서 전문 유격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틸리티 선수를 기용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엔트리를 예상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은 주전 강정호에 백업 전문 유격수 한 명을 반드시 둘 것이며, 내야 유틸리티 백업을 별개로 한 명 둘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류중일의 이러한 수비 철학이 뚜렷하기 때문에 김민성을 유격수 백업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넥센 팬들이 아무리 주장해봤자 류중일의 눈에는 전문 유격수가 아니기 때문에 배제될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론 김민성도 내야백업롤을 부여받아 국대에 승선했지만.
  • [45] 인천 아시안게임 2차 엔트리 발표 때 안치홍이 뽑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아 팬들의 주장인 '안치홍이 엔트리에 없는 것과 김상수를 뽑아 가는 것에 대해 자기 선수 챙기기'라는 비판에 대한 답도 동일하다. 애시당초 안치홍은 2루 주전 롤을 맡지 못하면 유격수 백업이나 유틸 백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엔트리에서 탈락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김상수는 강정호의 유격수 백업 롤로 선발된 것이기 때문에 엔트리에서의 롤 자체가 다르다. 오지환이 뽑히지 않은 것과 김상수가 뽑힌 것을 동렬에 두는 것은 옳은 비판이나 안치홍과 김상수를 비교하는 것은 류중일과 역대 기술위원회의 성향을 모르고 하는 올바르지 못한 비판이다. 다만, 2루수 주전롤로도 부족함이 없는 성적을 기록하던 안치홍이 2루수 엔트리 경쟁에서도 탈락한 것은 의문이 남는 결정이라는 점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있다.
  • [46] 김영환은 KT 행, 윤대경은 투수전향.
  • [47] 2011 도루 3위
  • [48] 2014 도루 5위
  • [49] 대표적인 예로는 호성적에도 불구하고 구단과의 관계가 파탄난 2011년의 김성근이 있다.
  • [50] '나는 믿을거야 가코 믿을거야'의 약자. 하지만 엉뚱하게도 이 단어가 실력과 적절하게 매치되는 예는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가빈 슈미트(...).
  • [51] 그러나 2013년에는 이 세 선수가 모두 관뚜껑을 박차고 나오며 화타나 네크로멘서 취급받고 있다.
  • [52] 근데 그 폭망했다는 성적이 타율 2할 5푼에 세 자릿수 안타다. 타율은 다소 아쉽지만 어쨌든 꾸준하다는 것은 증명했다.
  • [53] 사실 김상수보다 이승엽의 성적이 홈런이나 타점 면에선 훨씬 낫긴 하지만... 타율과 도루는 김상수가 이겨버렸다. 뭐 근데 도루는 원래 이기는 거잖아 그리고 이승엽은 그렇게 부진하고도 크보 홈런 신기록을 포함해 10발 이상의 홈런과 100개 이상의 안타를 쳐냈다.
  • [54] 하지만 2013년의 경우 2군에서도 유례없이 주전 중에서 부상자가 속출하는 바람에, 시즌 막판에는 라인업 절반을 신인이나 신고선수로 채울 정도였다.
  • [55] 물론 배영수선수 본인 입으로 40세까지 야구하고 싶다고 말을 했지만.
  • [56] 이 점은 어쩔수 없는게 오치아이 코치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코치직을 사임하려고 했던 것을 류중일이 1년 더 붙잡았던 것이기 때문에 어차피 2012년 시즌 중반부터는 누군가는 오치아이를 대신했었어야 했다.
  • [57] 단, 강동우와 트레이드 될 당시에는 선동열 감독 시절이었고 강봉규를 좌완 킬러라면서 데려왔다. 나이먹고 시간이 흐르면서 좌타 상대 경쟁력이 떨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 [58] 특히 6월 13일-14일 경기에서 데이터 상으로 좌투에 더 약한 호르헤 칸투를 상대로 좌우놀이를 시전해 심창민, 안지만, 임창용까지 투입하고도 2경기 동안 홈런 포함 7점을 퍼준건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바보짓.
  • [59] 우동균의 매 시즌 출루율은 타율 대비 1할 가량 높은 편이다. 장타율이 형편없는 것이 문제지만 선구안으로 볼 때 대타로 내는 것이 그리 잘못 되었다고 볼 수 없다. 게다가 대타의 타율이 높으면 주전을 시키지 왜 계속 대타를 시키겠는가.
  • [60] 삼성에는 우타 대타자원은 상대적으로 넉넉하지만 좌타 대타자원은 우동균과 이영욱이 유일한 상황. 게다가 이영욱은 1군에 올라오지를 못하는 중이다. 이게 모두 정형식 때문이다
  • [61] 2014 시즌 리그 평균자책점 5.21보다 나쁜 수치다
  • [62] http://folderfile.net/2013kbo.htm 참조
  • [63]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637240&cpage=&mbsW=search&select=swt&opt=1&keyword=pitcher
  • [64] 이전 문서에서는 삼성 불펜들 전반적인 혹사지수가 늘어난 것으로 서술되었지만, 차우찬과 전반기 집중 등판으로 누적/등판 수치가 높은 김건한 외에는 작년과 비슷한 수치를 기록 중이다.
  • [65] 백정현은 선발로는 평균자책점 7점대 후반으로 부진했지만 불펜으로는 평균자책점 2.74의 준수한 투구내용을 보여주고 있으며. 권혁과 김현우도 각각 평균자책점 2.86, 2.32로 활약중이다.
  • [66] 다만 평균 자책점이 낫다고 무조건 필승조보다 나은 선수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12년 전반기 박빙 상황에서 등판시 부진했던 정현욱도 후반기 패전조로 밀려난 뒤 가비지 이닝을 먹으면서 21경기 24⅔이닝 ERA 1.46의 굉장히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처럼 박빙상황이 아닐 때 기록한 성적은 박빙 상황에서 기록한 성적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는 점을 어느정도 감안할 필요는 있다.
  • [67] 물론 그것이 정당한가 아닌가는 둘째치더라도.
  • [68] 다만 새벽 네 시까지 술 마신것으로 까는 것은 너무하다는 의견도 있다. 프로야구선수는 주로 저녁에 벌어지는 경기 시간에 맞춰 대부분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을 한다. 정현욱과 오승환이 평소에 성실함으로 극찬을 받는 선수임을 감안해보면 꽤나 가혹한 비판이다. 그리고 5월 6일 경기에서 패한 원인은 정현욱이라기보단 채태인의 산책수비라는 편이 옳다.
  • [69] 다만, 2013년 시즌 채태인이 부상으로 2군에 있던 기간이 상당히 길어서 이승엽을 1루수로 쓸 수 밖에 없었던 때도 많았다.
  • [70] 그러나 정병곤은 시즌 말미에 이전에 아무도 해결하지 못했던 김상수의 백업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한 선수가 되었고, 이상훈은 시즌 막판 결정적인 8연승의 선봉장으로써 큰 활약을 했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절대 안 터진다고 장담했던 김희걸마저 2014 시즌 초반 불펜의 좋은 미들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즉, 오히려 류중일의 선수보는 눈이 통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 [71] 문제는 이런 유형의 감독은 이기면 별말이 없지만 지면 바로 무능이나 돌 칭호가 붙어버린다. 장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스타일이 아니다.
  • [72] 넥센 히어로즈염경엽이 비슷한 관리성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쪽은 돈성만큼 좋은 병원이 없는 게 약점이다.
  • [73] 메이저리그에서도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런트단이나 빌리 빈 등이 세이버메트릭스 이후에 구단에서 필수로 연구해야 할 부분을 메디컬 볼(선수 부상관리)과 사이코메트릭스(선수 심리 관리)로 보고 있는데 이 점에서 선진적인 감독으로 매우 높게 평가할 수 있다.
  • [74] 삼성팬들은 류중일이 '오늘이 승부처' 혹은 '오늘은 총력전'이라고 말한 경기는 졌다고 생각하고 경기를 지켜본다. (...) 승부처, 총력전 발언만 하면 승률이 형편없기 때문에 이럴거면 왜 승부처 운운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수준이다. 단, 그렇게 강력한 징크스는 아닌지 다른 승리 징크스와 겹치는 날은 이긴다. 이재용이 왔다든가
  • [75] 단, 류중일의 양아들은 그해 후반기나 늦어도 다음해에는 되살아났다는 점을 들어 이를 비판받고 있다. 이승엽만 살아나면 된다! 근데 이승엽도 살아났고 덤으로 김희걸마저 관뚜껑에서 탈출했다!
  • [76] 선동열이 삼성 최초의 2연속 우승을 달성했는데 류중일의 4연속 통합우승 기록에 완벽히 묻혀버렸다.
  • [77] 기사는 다음과 같다.
  • [78] 최형우라늄, 차르봄바, 채르노빌 등과 함께 핵실험을 한다는 이유로
  • [79] 감독이 난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한 대 피우고 싶으시죠?' 카피다. 잠실야구장 3루측 흡연구역에도 니코스탑 광고가 있다.
  • [80] 특히 노장진은 이 부문에 있어서는 그 정수근이 양반으로 보일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막장이었다. 자세한건 항목 참고.
  • [81]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노장진은 덕 아웃에 들어와 김응용 감독이 보는 앞에서 글러브를 집어던지고 쓰레기통을 걷어차는 난동을 부렸으며, 김진웅은 신인시절이었던 2000년 스토브리그때 친구랑 놀러간다는 이유로 선수단 소집을 무시했으며, 양용모는 새벽 4시까지 술먹고 오다 때마침 골프치러 나가던 백골퍼백인천에게 딱걸렸다고 한다. 따라서 정확히는 때려가며 가르쳤다기보단 저 선수들이 당시의 삼성 감독에게 사생활 문제로 질책받고 팀에서 쫒겨나는 걸 막기 위해 먼저 선수를 친 셈이다. 출처는 마해영과의 인터뷰.
  • [82] 이만수, 김성래는 상당히 김성근에게 홀대받은 선수였으며, 강기웅, 류중일은 삼성 수비 시스템 수정에 대한 김성근과의 마찰이 컸다. 결론적으로는 삼성의 수비 스타일의 확립에는 류중일의 방식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전 항목에는 김태한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김태한은 당시 1군에 갓 들어온 신인이라 김성근 감독에게 덤비는데 앞장설 여건이 되지 못하였다. 다른 모 좌완투수를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 [83] 감독 취임 당시 감독으로써의 지향점이 당시 1위 팀 감독이던 김성근이 아니라 전년도에 치열하게 플레이오프를 치렀던 김경문이었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 [84] 다만 김시진도 넥센 감독 시절부터 김성근에 강하게 비토하던 감독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