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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트 판 니스텔로이

last modified: 2015-03-08 16:44:29 Contributors


이름 뤼트 판 니스텔로이(Ruud van Nistelrooy)
생년월일 1976년 7월 1일
국적 네덜란드
출신지 오스(Oss)
포지션 포워드
프로입단 1993년 FC 덴 보스 입단
선수시절 소속팀 FC 덴 보스 (네덜란드)(1993 - 1997)
SC 헤이렌베인 (네덜란드)(1997 - 1998)
PSV 아인트호벤 (네덜란드)(1998 - 2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2001 - 2006)
레알 마드리드(스페인)(2006 - 2010)
함부르크 SV(독일) (2010 - 2011)
말라가 CF(스페인) (2011 - 2012)
국가대표 70경기 35골
스태프 커리어 PSV 아인트호벤 U-17 (2013, 코치)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2014 - ,수석코치)

Contents

1. 개요
2. 은퇴 이후


1. 개요

네덜란드의 득점기계

네덜란드의 前축구 선수. 모국어의 풀네임은 륏헤뤼스 요하너스 마르티뉘스 판 니스텔로이(Rutgerus Johannes Martinus van Nistelrooij)로 무지막지하게 길어서 영어식으로 줄여쓴 Ruud van Nistelrooy(발음도 영어식으로 루드 반 니스텔루이)로 알려져있다. 그것도 한국어 음절이 길어서인지 귀찮은 해축팬들은 '뤼트 판 니스텔로이'를 아예 '반 니'로 줄여쓰는 경우가 많았다. 여담이지만 8~90년대에 오리온제과에서 나온 초콜릿 캔디중에 반니라고 있다. OTL 지금도 팔리고 있는 제품.[1] 박지성의 팬들이 말장난을 이용해 정말로 박지성에게 이 캔디를 보냈다. 물론 박지성은 판 니스텔로이에게 보여줬겠지 현지에서도 이름이 길기때문에 줄여서 부르는데, 주로 부르는 별명은 van Gol(판 골), van the man(판 더 맨)이 유명하다. 유난히 긴 두상으로 인해 한국 한정으로 말 니스텔로이, 줄여서 '말니' 등도 있다.말디니?

과거에는 영어식 발음인 '루드 반 니스텔루이'로 적었으나, 2006년경에 표준 표기가 '뤼트 판 니스텔로이'로 바뀐 뒤로 언론이 바뀐 표기를 따랐기 때문에 현재는 바뀐 표기가 정착되었다.판니?

호사가들이 흔히들 일컫는 2000년대 4대 스트라이커의 한 축이었고, 또 그 네임밸류에 전혀 후달리지 않는 득점력을 지녔던, 또 지금도 충분한 힘을 지닌 선수.
동물적인 골 감각과 결정력, 퍼스트 터치, 그리고 몸싸움을 겸비하고 있으며, 양쪽 측면이나 미드필드를 꾸준히 지원하는 쉐도우의 능력도 겸비하고 있다. 위치 선정, 포스트 플레이, 테크닉, 기동력, 축구 IQ 등 공격수가 가질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사나이. 활동범위를 엄청나게 넓게 가져가고 수비수들과 끊임없이 경합하면서 더티 플레이를 일삼아 수비수들을 괴롭히는데도 정평이 났다. 보통 이런 선수는 다른 장점이 없어서 살아남기 위해서 이렇게 진화하는 경우가 많은데 니스텔로이는 발밑과 공중을 가리지 않는 무시무시한 결정력을 뿜어내는 선수였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레전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총 150골을 넣었으며, 역대 공동 9위에 랭크되어 있다. 참고로 2013-2014년 시즌 기준으로 공동 9위는 맨유에서 뛰고 있는 폴 스콜스이며, 라이언 긱스가 156골로 8위이고 웨인 루니는 133골로 13위이다. 한편 이 150골은 219경기에서 뽑아낸 골로, 맨유 사상 가장 높은 득점율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에는 박지성과의 친분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판 니스텔로이가 이적한 후 한동안 박지성 왕따설이라는 우스꽝스런 루머가 국내에 퍼지기도 했을 정도.

에레디비시에서 전전하던 시기에도 이름을 날렸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것은 2001년 맨유에 입단했을 시기였다. 데뷔 시즌부터 23골을 작렬한 판 니스텔로이는 다음 시즌에는 득점왕을 석권하고, 2001/02, 2002/03, 2004/05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까지 석권하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이 시기는 속히들 말하는 맨유의 암흑기였다. 아스날은 2003/04시즌 무패 우승이라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으며,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첼시는 2004/05, 2005/06시즌 리그를 재패했다. 허나 맨유는 로이 킨, 데이비드 베컴등 주축 선수들과 퍼거슨 감독간의 불화가 심화되는 등 갈등이 심각했다. 맨유에게 있어선 최악의 시즌이 계속되고 있었으니 판 니스텔로이의 이러한 득점력은 팬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이 시기 챔스에서 판 니스텔로이의 득점력은 매우 뛰어났다. 특히 그 절정이던 2002/03 시즌은 단순한 득점왕 정도가 아니었다. 9경기, 681분 출장, 12골을 기록했다. 이 시즌 챔스에서 필리포 인자기, 로이 마카이, 에르난 크레스포, 라울 곤살레스, 얀 콜레르 등이 각기 1,000분 전후로 뛰며 10골에서 8골을 기골했다. 요새로 바꾸면 10/11 시즌 득점왕인 리오넬 메시가 13경기 1050분 출전해서 12골을 넣었다. 아무리 반니에게 있어도 독보적인 '커리어 하이'라지만 이 정도면 거의 탈인간적 수준… 또한 04/05 시즌 조별 라운드 4차전에서는 스파르타 프라하를 상대로 혼자 4골을 득점하기도 했다. 참고로 한 경기에서 4골을 넣은 다른 선수는 다도 프르쇼, 마르코 판 바스턴, 모네 인자기, 안드리 셰브첸코가 있다. 5명이 공동 1등이었으나 2012년 리오넬 메시에 의해서 공동 콩등이 되었다. 판 니스텔로이 이후 빅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에레디비시 득점왕 출신 스트라이커가 없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이었지만, 루이스 수아레즈가 13-14시즌 EPL 득점순위 1위를 달리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2005/06 시즌에는 나이가 들어 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득점력은 죽지 않아 21골이나 집어넣어 클래스는 영원함을 보여주었다. 허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폼이 떨어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리 없었고, 결국 벤치를 달구는 일이 잦자 자연스레 불화 역시 생겨났다.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도 당시 감독인 판 바스텐과 자신의 주전 기용 문제로 불화를 겪었다. 결국 2005/06 시즌과 독일 월드컵이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로 훌쩍 이적.

레알 마드리도 이적 초기에는 떨어진 폼 때문에 엄청나게 욕을 먹었으나, 이적 첫 시즌부터 25골을 터트리며 데뷔 시즌 피치치(득점왕)라는 말도 안되는 득점력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팬들이 자신의 플레이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리그 31라운드부터 최종전까지 8경기 10골을 때려박으며 최종전까지 승점이 동일했던 FC 바르셀로나와의 승부에 결정타를 꽂은 것이 바로 판 니스텔로이였으니. 특히 판 니스텔로이는 해당시즌 엘 클라시코에서만 1차전 1골, 2차전 2골을 꽂아넣으며 팀에게 승리에 이어 우승을 안겨주었다. 레알에서 다시 만난 베컴과 찰떡 윈윈 효과를 달성했다. 베컴은 호나우두 대신 포스트 플레이와 뻥 걷어찬 공중볼 경합에 능한 장신 스트라이커가 와서, 판 니스텔로이 택배 배달부가 있어서. 사실 베컴과의 찰떡 궁합은 주목할 만한 것으로, 판 니스텔로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을 차지한 것도 베컴이 발롱도르 득표에서 가장 높이까지 올라갔던 것도 그 둘이 함께한 시기. 결국 3시즌 동안 총 64골을 터뜨려, 팀의 2시즌 연속 우승에 기여했다.

네덜란드 에레디비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까지 3개 리그 득점왕을 석권한 것만으로도 후덜덜한데,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로 이적한 후에도 데뷔전 2분만에 2골 작렬 등… 이른바 적응을 모르는 사나이.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는 유로 2008 이후 은퇴했으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하고 싶다는 이유로 2009/10 겨울 이적시장 때 주전 보장이 되는 함부르크 SV 로 이적했다. 하지만 결국 2010년 월드컵에는 불참.

클럽 뿐만 아니라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상당하다. 사실 놓고보면 괜찮지만 뭔가 영 아닌 현재 네덜란드 선수들, 디르크 카윗로빈 판 페르시, 그리고 클라스 얀 훈텔라르(…) 등의 스트라이커들과 비교해보면 클럽에서나 국대에서나 그들이 명함도 못내밀 정도로 활약상이 좋다. 판 니스텔로이와 같은 시대에 활약했던 선수들과 비교해봐도 현재는 반니가 더 우위라는게 중론. 주워먹기우수사원이었던 로이 마카이나 너무 빨리 좆망(…)한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에 비하여도 꿇리지 않는다.[2]

재밌는 점은 클루이베르트와 판 니스텔로이는 1976년 7월 1일로 둘다 생년월일이 같다! 그런데 판 니스텔로이에 비하여 젊을때부터 천재로 불렸던 클루이베르트가 너무 빨리 몰락하고 반대로 클루이베르트가 국대에 뽑힐 98년도 월드컵에는 한참 멀었던 판 니스텔로이가 클루이베르트보다 더 성장한 것은 아이러니.

최근 함부르크에 속해있는 한국산 신성 손흥민과 친밀한 관계 튜터 를 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여러가지로 손흥민에게 영향을 주는게 많은 것 같다.
그가 말하길, "나는 과거 현재의 손흥민이 받고 있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도움을 손흥민에게는 전해주고 싶다"라나… 이로서 한국인 한정 까방권 획득…

박지성 및 한국 선수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좋은 이미지로 각인된 선수인데 사실 심판 안보는 데서 지저분한 파울을 서슴없이 하며 다이빙, 오버액션에도 능한 치터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것도 어지간한 치터 수준이 아니라 내추럴 본 치터라고 까이기도 한다. 파트리크 비에이라는 자서전에서 전성기 때 앙숙인 로이 킨도 별로 까지 않았지만 판 니스텔로이만큼은 원자가 되도록 깠다. 박지성을 위해 반칙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져 더욱 호감도가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박지성을 위해서 했다기 보다도 가격을 당한 일본선수가 판 니스텔로이와 경합중에 목쪽을 긁어 이에 대해 복수를 한것이다. 영상은 이경규가 등장하는 MBC 예능프로그램인데 의도적으로 편집자가 판 니스텔로이가 박지성을 위해 복수극을 했다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위해 편집한 것인지, 아니면 판 니스텔로이가 일본선수와 벌인 경합 장면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것인지는 알수가 없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반칙을 저지른 일본선수에 대한 복수이다.

2011년 함부르크 SV와 계약이 해지되어 자유계약선수가 된 그를 말라가 C.F.가 영입했다. 밥장군이 드디어 적토마에 버금가는 애마를 얻으셨다 오오 2012년 여름에 조용형과 같이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을듯. 했지만 현역 은퇴 선언을 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판 니스텔로이는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와 많이 비교가 되었다. 나이는 물론 생일까지 같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 후자는 그야말로 초천재의 엘리트 길을 걸어온 반면 전자는 말그대로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인생여정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클루이베르트는 에레디비시의 명문 중의 명문 아약스 유스 출신으로 18살의 나이에 데뷔해 25게임 출장 18골이라는 괴물같은 활약을 한 반면, 판 니스텔로이는 그 때 FC 덴 보쉬라는 듣보잡팀 출신으로 18살에 2부리그 팀을 상대로 15게임 출장 3골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참고로 덴 보쉬는 60년 가까운 클럽 역사상 1부리그에 올라온게 겨우 6번. 어쩌다 올라와도 광탈당하는 팀. 판 니스텔로이가 있던 4년간 한 번도 승격한 적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곳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뭐, 나이를 감안하면 판 니스텔로이도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알다시피 네덜란드 2부리그는 그야말로 듣보잡 리그라는 거. 게다가 클루이베르트는 다음 해에도 15골을 넣었지만, 판 니스텔로이는 역시 2부리그 상대로 21게임 출장 고작 2골… 아마 이 때 클라위버르트보다 판 니스텔로이가 더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때만 해도 클루이베르트는 22살의 나이에 벌써 네덜란드 국대의 주전 골잡이였지만, 판 니스텔로이는 그냥 집에서 TV로 보아야만 했다. 이후 클루이베르트는 아약스에서 AC 밀란[3]FC 바르셀로나라는 그야말로 명문클럽들만 차근차근 밟아갔지만, 판 니스텔로이는 SC 헤이렌베인과 PSV 에인트호번를 거치고서야 맨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루이베르트는 그 기량이 너무 빨리 시들었다. FC 바르셀로나에서 리그에서만 90골을 넣은 선수를 실패했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클루이베르트도 전성기 때는 분명 월드클래스 소리를 들을만한 선수였다. 그러나 바르샤 시절 끝물이던 03-04 시즌부터 갤갤대다 결국 04-05시즌 사무엘 에투의 영입으로 뉴캐슬 유나이티드로 이적후 빠르게 좆망한것과 대조적으로, 판 니스텔로이는 07-08까지도 날아다녔다.

같은 날 태어난 천재가 있었지만, 오히려 성공은 판 니스텔로이가 한 것.하늘은 어찌하여 클루이베르트를 낳고, 또 판 니스텔로이를 낳았단 말인가! 출장/골로 본 최종 커리어는, 클라위버르트는 리그 343경기 149골, 국제대회 79경기 40골, 판 니스텔로이는 리그 449경기 249골, 국제대회 70경기 35골. 보다시피 리그 커리어에서 100골이나 차이가 난다.

2. 은퇴 이후

은퇴 이후 PSV 아인트호벤 유소년팀 (네덜란드) 어시스턴트 매니저로 일하다가 신임 히딩크 감독의 지명에 따라 반 니스텔루이가 네덜란드 국가대표 코치로 선임되며 처음 국가대표 코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인 한정 까방 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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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3년 시점에서 팔리는 반니는 초콜릿이 들어간 캐러멜이지만, 초기에는 반투명 캔디였다.
  • [2] 클루이베르트의 전성기 시절 당시 반 니, 마카이를 포함해 EPL득점왕 출신인 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등 기라성의 스트라이커들은 클루이베르트 한명에게 전부 묻혔다. 그 중 클라이막스는 유로 2000의 득점왕. 하지만 20대 중반부터 빠르게 좆망해서야(...)
  • [3] AC밀란에서는 26경기 7골을 기록한다. 반바스텐의 후계자로 영입한놈이 이래서야(...) 결국 조지 웨아, 로베르토 바지오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리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