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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교회

last modified: 2017-02-09 18:27:35 Contributors

Lutheran Church

Contents

1. 개요
2. 특징
2.1.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2.1.1. 공통점
2.1.2. 차이점
2.2. 루터교 국교회화의 정치적 이유
2.3. 성상에 대한 관점
3. 위상
3.1. 레스타디안주의(Laestadianism)
3.2. 대한민국의 루터교회
3.3. 기타 국가들

1. 개요

마르틴 루터종교개혁을 시발점으로 하여[1] 천주교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이므로 개신교의 원조라고 볼 수 있으나 장로교, 침례교 등의 개신교와는 상당히 다르고, 성공회처럼 가톨릭교회와 전례, 교리, 교회의 구조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루터교회 또는 루터회로 칭하고 있으나, 유럽에서는 나라에 따라서 부르는 명칭이 다르다. 독일핀란드에서는 한국처럼 루터교회라고 부르지만 핀란드를 제외한 북유럽에서는 보통 스웨덴 국교회(Church of Sweden)처럼 그냥 국교회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2] 아이슬란드의 경우 '국교회(Þjóðkirkjan)'와 '복음주의 루터회(Hin evangeliska lúterska kirkja)'란 명칭을 혼용하고 있다.

본래는 루터란(Lutheran)이라고 불렸다. 즉 '루터빠' 정도의 뜻이었고, 당연히 이는 가톨릭측에서 부르던 멸칭이다."너네는 루터의 말을 따르니까 그리스도 교도가 아니라 루터빠다!" 이런 느낌. 게다가 루터는 본래 자신의 주장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교'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가르침은 본래의 그리스도교로 돌아가자는 것이고 자신이 새로운 생각을 해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이름을 종파에 붙이는 것도 그리스도에게 매우 불경한 일이라 여겨 반대하였다.

하지만 루터교회 신도들은 계속 루터빠라는 욕을 먹자, 급기야 열받은 나머지 "그래, 우리 루터빠다! 어쩔래?"라는 식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루터교회(Lutheran Church)가 그대로 교파의 이름으로 완전히 굳어지고 말았다.(…)

참고로 위의 문장은 마르틴 루터의 문장으로, 루터교회들은 위 문장을 간략화하거나 약간 바꾸어서 교회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2. 특징


2.1. 가톨릭, 성공회, 정교회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2.1.1. 공통점

가장 오래된 개신교의 분파이자 장자 교단이라 할 수 있으며, 그래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예배의 전례적 특성이나 교회 제도 등은 가톨릭 쪽에 조금 가까운 편이긴 하다. 물론 성공회가 좀 더 가까울 수 있겠지만, 루터교회의 예배를 처음 본 사람은 좀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또한 가톨릭 신부들과 같이 목사[3]들이 로만 칼라를 착용하며, 주교의 빵모자[4] 등 가톨릭과 비슷한 제도가 많이 있다.


이러한 가톨릭적 양식은 북유럽의 루터회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스칸디나비아 루터교회의 경우 모두 국가 정책으로써 종교개혁을 받아들이고 그 교리를 교회에 녹여 교회를 교황청 휘하에서 탈피시킨 뒤 교회를 국가가 장악하는 전형적인 국교회적 특성에서 출발했다. 이런 점은 사실 개교회적 측면이 강조된 원래의 루터교회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성공회와 같은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즉, 교리적인 내용만 루터교회의 것을 받아들인 것이며 의식적, 제도적 측면에서는 훨씬 국교회 조직 유지측면에서 유리한 가톨릭적 요소들과 주교제가 유지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지금도 각 교회는 국교로써의 위상을 가지며 가톨릭교회 시절부터 이어져오던 교구체계와 주교직들을 그대로 전승받는다. 이렇게 가톨릭과 비슷한 면을 강조하는 루터교회의 경우 성공회의 분류법[5]처럼 고교회 루터파(High Church Lutheranism)라 불리기도 한다.

그래도 각 나라간에 미묘한 차이는 있는데, 스웨덴이 가장 가톨릭적인 요소가 많은 편이며 덴마크, 노르웨이는 평신도 경건주의 영향으로 좀 약한 편이다. 또한 덴마크의 경우 특이하게도 주름진 칼라를 성직자 복장으로 사용한다. 덴마크와 인접한 북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이나 함부르크 일부의 성직자들도 (드물지만) 주름진 칼라를 착용하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북유럽 루터교회들은 성모 마리아항목에서도 볼 수 있듯 성모공경도 인정한다.

2.1.2. 차이점

하지만 마르틴 루터는 엄연히 가톨릭의 부패상과 악습을 비판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차이점도 꽤 존재한다.

  • 가톨릭이 철저한 중앙집권제, 정교회와 성공회가 국가별 관구제인 것과 달리 루터교는 지역별 자치제의 성향을 띄고 있으며, 국교회 성향이 강한 북유럽 국가들도 생각보다 개교회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북유럽을 제외한 대다수 루터교회들은 국교회가 아니며, 성직 제도도 삼중직을 고수하는 교파보다는 타 개신교와 같은 형태(목사-집사)를 띄는 교파들이 더 많다.
  • 원래 루터교도 처음에는 개신교다운 면모가 더 강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마르틴 루터도 원래는 성모 마리아를 포함한 성인 공경에는 상당히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성상도 원하면 부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쯔빙글리나 칼뱅과 다르게 기존의 성상을 두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치울 것을 강조한 것에 가깝다.결국 못 치웠다

2.2. 루터교 국교회화의 정치적 이유

루터교회는 주로 신성로마제국의 형해화로 사실상 왕과 같은 권력을 지닌 독일의 대영주들과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군주들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북유럽의 군주들이 이탈리아에 있는 교황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속 군주의 왕력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을 보였던 영향도 크다.

당시 가톨릭 교황은 종교적 권위를 이용하여 정치에 개입할 수 있었고, 신성로마제국 황제(스페인->오스트리아) 역시 교황권을 후원하여 이와 함께 각국에 정치적 영향을 행사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대영주들과 북유럽 국가들은 루터교 신학을 받아들여서 자국의 국교회를 바꿈으로서 교황과 황제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했으며, 이는 30년 전쟁 끝에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인정되었다.

다른 개신교 종파가 아닌 루터교가 선택된 이유는, 일단 마르틴 루터가 독일 출신이라 독일 내에서 영향력이 강하고 독일인이나 주변국에 친숙하게 받아들여졌으며, 루터가 일농민전쟁에서 농민들이 아닌 영주들을 지지한 것을 알 수 있듯이 국가나 군주의 권위에 긍정적인 보수적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루터교 이외의 개신교 종파들도 많았지만, 당시 시점에서는 북유럽 국가들에게 루터교가 제일 정치적 문화적으로 합당했기 때문에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루터교는 국교 지위를 얻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현재까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독일 북부와 동부 전역에서 루터교회는 국교회 (國敎會, state church)로서, 인구의 왕과 왕족들, 그리고 인구의 90%가 국교회 루터교인들이다 (물론 요즘 유럽의 모든 교파들의 출석율은 인구의 10%를 밑돌지만…).

성공회도 영국에서의 '세속 군주의 교회 지배'를 목적으로 국가 주도하에 가톨릭 구조에 개신교적 교리를 도입하여 만들어졌다는 정치적 위치는 북유럽의 루터교와 비슷하다. 사실상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성공회나 다름이 없다는 이야기이다.다만 헨리 8세가 루터를 거하게 디스한 적이 있어서 루터교로 가기는 껄끄러웠을 뿐. 성공회와도 이런 공통점을 서로 감안해 '포르보 공동체'를 결성해 스칸디나비아의 국교회와 성공회 간의 성사교류를 결정함으로써 사실상 하나의 공동체로 합쳐진 것이나 다름이 없는 관계가 되었다.

여담으로 프랑스의 경우에는 이와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종교개혁이 오기 전인 중세 시기에 프랑스 왕이 아비뇽 유수 등의 활동으로 교황권을 압박하여 '프랑스 내 가톨릭 교회에 한정'하여 교황의 정치적 개입을 상당 부분 차단할 수 있는 배타적인 지배권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였다. 이런 상황을 '갈리아 교회주의' 라고 한다. 따라서 프랑스는 '이미'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왕권이 자국 내의 교회를 지배하는 정치적 독립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스 왕실은 다른 왕실과는 달리 종파를 바꾸면서 까지 로마 가톨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그리 절박하게 느끼지 않았다.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로 유지된 원인을 이런 관점에서 찾기도 한다.

또한 스페인 합스부르크는 왕실이 가톨릭을 옹호하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지위와 함께 가톨릭 세력의 수장과 같은 지위가 되어 타국에 영향을 미치는 입장이었으므로 가톨릭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이점은 오스트리아도 마찬가지.

덧붙여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루터회 수위 주교들은 다음과 같다.북유럽 국교회라는 이름이어야 할 것 같다 [6]

  • 웁살라의 대주교(스웨덴 교회)
  • 니다로스[7]의 의장주교(노르웨이 교회)
  • 코펜하겐의 주교(덴마크 교회)
  • 투르쿠의 대주교(핀란드 복음주의 루터회)
  • 아이슬란드(레이캬비크)의 주교(아이슬란드 교회)
  • 페로 제도의 주교 (페로 제도 교회)

2.3. 성상에 대한 관점

원칙적으로는 성상[8]을 인정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의 성상을 철거할 수도 있다는 식이었지만 성만찬에 대한 입장처럼 루터와 칼뱅/츠빙글리와 달리 온건한 개혁을 펼치려 했으므로 이미 있던 성상이나 십자고상을 갑작스럽게 파괴한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놓아도 되고, 안 놓아도 된다.라 볼 수 있다. 가톨릭이 반드시 놓아야 한다.이고 장로교가 반드시 놓지 말아야 한다.인것과는 대조적. 그래서 종교개혁 뒤 한참 지나서 지어진 건물들 중에는 단순한 십자가에다 촛불이랑 꽃장식 정도로 간소하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3. 위상

발상지인 독일과 루터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국교로 삼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북유럽 지역에서 교세가 강성하다. 독일계 이민자를 중심으로 전파되어 미국에도 적지 않은 신도가 있다. 과거 독일 영토였던 폴란드 서부지역에도 극소수의 신자들이 존재하는데, 역사적으로 독일과 스웨덴이라는 두 신교국가와 대립하던 폴란드였기 때문에 루터교이고 칼뱅교이고 개신교도들은 숲 속에서 몰래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실 아일랜드에서처럼 폴란드에서도 민족적, 역사적 이유 때문에 개신교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긴 하지만 루터교도들 중에는 오히려 나치에 대항해서 폴란드편을 들다가 수용소에서 순교한 목사도 있었다. 체코의 구 주데텐란트 지역에 있는 교회들도 2차대전 이후 체코 개신교단이 그대로 접수해서(...) 현재까지도 잘 남아있다(예시)

3.1. 레스타디안주의(Laestadianism)


북유럽과 미국 일부 지역에는 레스타디안(Laestadians)이라는 근본주의에 가까운 분파도 존재한다. 19세기 식물학자였던 라스 레비 레스타디우스가 북극권 라플란드 지방에서 동족 사미인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금주와 부흥운동을 벌인것이 기원으로 현대문명을 완전히 거부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TV도 보지 않고 록음악도 듣지 않는 등(...) 나름 금욕적이고 엄격한 생활방식을 실천하는 편이다. 그리고 매년 여름마다 부흥집회 비슷하게 모임(suviseurat)을 갖는것이 특징이다.(위 사진) 저 부흥집회는 금요일서 월요일까지 4일간 진행되는데 특이하게도 토요일에 성만찬이 행해진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인근 교회에서 정식 예배를 본 뒤 월요일에 마지막 설교를 듣고 해산하는 식이다. 참고로 일요예배를 제외하면 대부분 변경예배 비슷하게 진행된다(...) 애초에 이들은 일반적인 루터교와 달리 하드웨어적으로도 개신교 색채가 분명해서 성공회식 분류로 치면 '저교회파'라 볼 수 있는 포지션에 속한다. 핀란드의 경우 지방에 따라 다르지만 이들이 평상시에 모이는 '예배당(seurakuntatalo)'은 대체로 한국에서 생각하는 예배당과 비슷한 편이며 간혹 교회/예배당과 멀리 떨어진 시골같은 경우 집에 목사를 초청해서 심방 겸 예배를 보기도 한다.

그래도 다른 근본주의적 종교집단(아미시, 하레디 등)과 비교하면 굉장히 유연하며 사회적 기여도도 생각보다 높은 편이다.[9] 단지 술, 담배, TV, 메탈(...)등 자기네들 기준으로 옳지 않다고 느끼는것만 하지 않을 뿐. 이 때문에 주류 미디어(YLE라던가...)에서도 딱히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며 일반 세속사회와도 충돌이 적은 편이다. 라디오랑 인터넷, 스마트폰과 같은 통신수단들은 허용되며 TV나 서브컬처를 금하는 점만 빼면 전반적인 생활 수준은 타 북유럽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되려 야외활동이 일반인들보다 잦은 편인지라 캠핑카는 거의 필수품이란 인식이 있다.

이 분파는 또 여러 소분파로 다시 나뉘는데 가장 큰 소분파는 핀란드의 SRK[10]이며 2010년 기준으로 약 10만명 정도의 신자가 있다고 하는데 (출처) 핀란드 전체 인구가 500만 남짓하다는걸 감안하면 주변국들과 달리 비중이 의외로 꽤 되는 편. 또한 이들은 타 핀란드인들과 달리 출산율이 높은 편이다. 주로 아북극권 소도시 교외지역에 신자가 몰려있는 편.

이들은 한국이나 미국식 근본주의자들과 달리 자기네 신앙을 강요하거나 하는 병크짓은 없지만 신앙에 따른 삶의 방식을 두고 부모자식간의 갈등이 간혹 일어나는 편이다. 부모의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에서 이탈하는 젊은이들도 꽤 되며 때문에 2010년대 이후로 서서히 내부 금기를 풀어가는 쪽으로 가고 있다.

2011년에는 이걸 소재로 삼은 금지된 젊음(Kielletty hedelmä)이라는 핀란드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3.2. 대한민국의 루터교회

대한민국기독교한국루터회에는 5천여 명의 신도가 있는데, 처음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처음된다고 개화기에 일찍 들어온 영미식 개신교와 달리 루터교는 1950년대에 제일 늦게 들어왔다. 그러나 그 덕택에 한국 루터교회는 다른 개신교와는 달리 '신사참배 경력 논쟁'에 휘말릴 염려는 없다. 게다가 개교회중심주의적인 특징을 가진 장로교가 강한 한국의 특성상 루터교회의 세는 그리 큰편은 아니다. 총회는 서울특별시 송파구 신천동에 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는 루터대학교가 있다. 다만 루터대학교는 재정난으로 교과부의 대학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는 안습한 일이 일어나기도.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자 첫 주자이며 장자임에도 불구하고 우습게도 한국 기독교 교파의 기득권층에서는 마르틴 루터를 기독교 영웅으로 받아들이는 거와 대조적으로 루터교는 다른 종파보듯이 하는 경향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루터의 신앙이 어떤지, 루터가 만든 교파는 어떤 교파인지'에 대한 설명 자체가 부족하다. 아니, 한국의 개신교인들 대다수는 루터는 그냥 스타트만 끊었을 뿐 아무것도 한 게 없으며 실질적인 종교개혁은 다 츠빙글리칼뱅이 해놓았다라고 착각하는 경향까지 있다. 이는 아무래도 루터교가 다른 기독교들에 비해서 지성적인 면과 가톨릭적 성격이 강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큰 걸로 보인다.

특히 한국 개신교들이 그토록 꺼려해마지 않는 가톨릭적인 모습이 루터교회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전술했다시피 해당 지역 가톨릭교회 역사가 루터교 교리만을 받아들여 옷만 바꿔서 그대로 전래되었기 때문에 당장에 예배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물론 한국 루터교회 신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집전되는 예배보다[11] 훨씬 가톨릭적이라 이질감은 분명히 존재한다.[12][13] 또한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성상에 비교적 관대하다는 점도 한국 개신교인들에게는 굉장히 껄끄러울수밖에 없다. 다만 임동진같은 루터교 유명인이 타 교단 교회에 나와서 설교해도 별로 뭐라고 안하는걸 보면 일단 개신교 교파로 인정은 해주는듯 하다. 사실 임동진은 루터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장로교회 신자였다.

사실 루터교회에서 "루터교회를 빛낸 10인"을 선정했는데 그중에 든 사람이 헤겔(...)과 키에르케고르다.[14].

3.3. 기타 국가들

에리트레아에서 기독교를 탄압할때 예외로 둔 게 바로 루터교회였다.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벌일 당시 미국과 서구권, 이스라엘이 노골적으로 에티오피아를 지원할 때 북유럽 나라들은 중립을 지키면서도 미국과 서구권의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였기에, 이에 대한 작은 감사로 극소수이긴 해도 에리트레아에 있던 루터교회는 탄압하지 않았다.

아시아에서 가장 루터교 비율이 높은 나라는 의외로 인도네시아다. 당연히 주류 민족인 자바인보다는 비교적 소수인 바탁족(Batak)들이 많이 믿고 있긴 하다.(인도네시아 바탁 루터교회)

아프리카에서 신자 비율이 높은 나라는 나미비아이다. 독일과의 역사적 악연[15]을 생각하면 심히 아이러니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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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마르틴 루터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루터 자신은 원래 새로운 종파를 만들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가 원한 것은 '종교개혁'이지 '종교분열'이 아니었다.
  • [2] 아이슬란드를 제외하면 국교회 명칭을 쓰는 나라들은 모두 왕실이 존재하는 나라들이다. 이유는 후술
  • [3] 한국, 독일, 북미 일부 루터교회의 성직자 호칭, 그 외의 유럽에서는 엄격히 삼중성직제도를 지켜서 부제, 사제, 주교가 있고, 사제들은 신부님이라 호칭한다.
  • [4] 주케토라고 한다.
  • [5] 성공회도 종교개혁적인 면을 강조할 경우 저교회파(Low Church), 가톨릭적이고 예전적인 면을 강조하는 분파는 고교회파(High Church)로 나뉜다.
  • [6] 상술했듯이 북유럽 각 국가에서의 루터교는 여러모로 국교회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많다.
  • [7] 현 트론헤임(Trondheim)
  • [8] 이는 사실 성공회도 마찬가지로 영국 성공회 39개조 신조에서 제 22조에 따르면 "연옥, 면죄, 성상 및 유물에 대한 예배와 숭배, 그리고 성인을 통한 기도에 관한 로마 교회의 교리는 어리석은 것이며 헛되게 발명된 것이고 성서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적대하는 것이다."라고 되어있다.
  • [9] 실제로 이들 중에는 베이뇌 하바스처럼 그 유명한 겨울전쟁, 계속전쟁때 자원입대해서 싸우다 전사한 사람도 있었을 정도. 참전하기 전까지는 강도사(목사는 아니지만 설교를 할 수 있는 사람)와 찬송가 작사를 했다고 한다.
  • [10] 해석하면 '핀란드 평화협회'(...)이다.
  • [11] 사실 한국에서 집전되는 예배도 꽤 예전적이고 이 때문에 루터교회에서는 성경과 찬송가 외에 '예배의식문'이란 소책자를 따로 구비해놓고 있다.
  • [12] 한국의 경우 미국을 통해서 전래되었기 때문에 국교회적이며 가톨릭적인 루터교회의 특성은 많이 없다. 그래도 목사가 신부처럼 장백의에 띠를 두르고 영대를 매는 동네는 여기밖에 없다. 그러나 목사가 장백의에 띠를 두르고 영대를 매는 동네는 의외로 흔하다. 당장 한국 개신교단 가운데 교세 2위인 통합측 장로교회에서는 교회 규모가 어느 정도 되면 목사 가운을 갖춰 입고 스툴을 두른다. 3위인 감리교회도 마찬가지.
  • [13] 어느쪽이든 찬송과 설교 위주로 하는 약식예배만이 개신교답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다른 개신교도 입장에서는 가톨릭이나 정교회미사성공회의 감사 성찬 예배를 떠올릴수밖에 없는것도 사실이다. 실제로도 자비송, 아뉴스 데이등 예전적인 기도문을 문체만 조금씩 바꿔서 서로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개신교인으로 알려진 바흐의 곡들 중 미사곡이 나올 수 있었던 것.
  • [14] 사실 키에르케고르는 신학자이기도 했으므로 그렇게 이상하게 볼 것은 없긴 하다. 참고로 쇠렌 키르케고르의 형인 페테르는 신학자로서 루터교 주교를 지냈다. 재미있는 것은, 키르케고르는 앞의 헤겔 철학을 비판하는 저작을 발표하면서 유명해진 인물이라는 것(...).
  • [15] 헤레로족을 학살하고도 유대인과 달리 전혀 사과하지 않는 등 배째라는식의 태도를 현재까지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