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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피구

last modified: 2015-03-26 16:25:26 Contributors

이름 루이스 피구(Luís Figo) 피구왕
풀 네임 루이스 필리페 마데이라 카에이루 피구
(Luís Filipe Madeira Caeiro Figo)
생년월일 1972년 11월 4일
국적 포르투갈
출신지 리스본
신체 조건 180cm, 75kg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프로 입단 1989년, 스포르팅 리스본
소속 팀 스포르팅 리스본(1989~1995)
FC 바르셀로나(1995~2000)
레알 마드리드 C.F.(2000~200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005~2009)
국가대표 127경기 32득점

2000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지네딘 지단
2위
루이스 피구
3위
히바우두
2001 FIFA 올해의 선수상
수상
루이스 피구
2위
데이비드 베컴
3위
라울 곤살레스
2000 Ballond'or
수상
루이스 피구
2위
지네딘 지단
3위
안드리 셰브첸코

포르투갈의 2000년대 황금 시대를 연 비운의 주역

그러나 축빠(이를 FC 바르셀로나 팬들로 바꾸어 읽어도 무관하다)들에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통수
피구가 은퇴한 후 먼 훗날 독일에서 한 클럽에서만 후계자2명이나 생겼다

Contents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레알 마드리드 이적 비화
4.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발생한 후폭풍
5. 인테르나치오날레 이적 이후
6. FIFA 회장 선거 출마
7. 기타 얘깃거리

1. 개요

풀 네임은 루이스 필리프 마데이라 카에이루 피구(포르투갈어: Luís Filipe Madeira Caeiro Figo). 1972년 11월 4일 출생. 포르투갈의 전 피구축구 선수이다. 포르투갈이 낳은 최고의 포워드 중 한 명이자[1] 90년대를 풍미했던 S급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포르투갈 리스본 출신으로 어릴 적에는 육상을 배웠지만, 축구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종목을 바꾸었다. 호날두가 뛰기도 했던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축구 생활을 시작하였고,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우승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한편 유스시절 스포르팅에 입단할 때도 벤피카와 이중 계약을 한 것이 들켜 45일간 출전 금지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세계 청소년 축구 대회 우승 이후, 4시즌 동안 스포르팅 리스본에서 뛰게 되는데 세계의 내로라하는 빅 클럽들이 노릴 정도의 활약을 보여주게 된다. 원래 당시 최고의 리그로 자타가 인정했던 세리에 A로 진출을 모색했지만, 선수와 에이전트가 각각 유벤투스, 파르마와 이중 계약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2년간 세리에 진출 금지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이후 피구는 다른 리그의 빅 클럽의 러브 콜을 받아들였고, 1995년에 그에게는 애증의 팀이라고 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로 이적하게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피구의 활약은 눈부셨다. 히바우두-호나우두(와 파트릭 클루이베르트)와 함께 3톱에 서서 프리 롤과 윙어 포지션을 모두 소화하며 팀이 2시즌 연속 리그 우승을 하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호날두처럼 괴물 같은 득점력을 보여주는 타입이 아니라,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다비드 실바처럼 공격진에 활기와 파괴력을 불어넣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피구의 인기는 바르셀로나에서 최고를 자랑했다. 그때 바르셀로나 팬 클럽들 중 하나가 이름이 '피구'였고 당시 칸테라에서 올라와서 바르셀로나의 상징이라고 떠받들어진 과르디올라의 부재시 주장 완장은 늘 피구가 차고 다녔을 정도.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에 올리게 되지만, 이후 바르셀로나와 보드진과의 불화설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사실 피구는 활약에 비해 많은 주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피구의 에이전트는 그것에 불만이 많았고, 결국 유로 대회가 끝난 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2. 플레이 스타일


윙어로서 킥능력이 대단히 뛰어났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즉 킥능력이 뛰어나면 수비수의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킥을 저지할 수 있도록 밀착수비를 해야하는 범위가 늘어나는 등 상당히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피구는 이걸 잘 알고 잘 써먹었다. 다시 말하면 이는 축구지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된다. 이를 바탕으로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며 활동범위를 폭넓게 가져감으로 플레이의 유연함을 살렸고 크로스, 패스, 슈팅을 잘 선택했으며 쉽게쉽게 돌파를 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중앙에서든 측면에서든 뛰어난 스킬과 트릭을 통한 드리블 돌파에 능했다.거기에 180이란 좋은 체구에서 나오는 몸빵이 상당한 수준이라 상대 수비수와의 경합에서 쉽게 밀리지 않았다. 이는 포르투갈 선수들, 특히 플레이메이킹을 해 줘야 되는 루이 코스타의 신체 조건이 좋지 않았던 것을 상당히 커버해 줬다.

무엇보다 피구는 꾸준했는데, 은퇴하기 직전까지 기복도 없이 리그 최정상급 플레이를 보여줬다. 10년이 훌쩍 넘도록 꾸준한 출장수를 보여주면서도 리그 탑급의 플레이를 유지했다는 측면에서, 이만한 선수를 찾기 어렵다.[2]

3. 레알 마드리드 이적 비화

피구의 에이전트가 멋대로 일을 진행시켰다는 말도 있다.[3] 어떻게 상식적으로 구단이 절대 불허할 이적을 에이전트 멋대로 진행할 수 있었을까? 답은 FM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바이아웃 제도 때문이다. 프리메라 리가는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해 A 팀 계약시 일정 금액을 현금 지불하면 즉시 계약을 무효화 할 수 있는 바이아웃 제도가 있다. 이는 계약 갱신시 새로 지정이 가능하며 금액 자체는 어떻게 써도 문제가 없다. 피구의 경우 바르셀로나 입단 시절부터 헐값의 장기 계약에 묶여 있었고, 이 때문에 바이아웃도 실력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있었다. 이적료 기록에 나온 3700만 파운드가 그 바이아웃 금액. 애초에 바이아웃 제도가 구단 간 신사 협정 차원(약팀 보호의 기능도 있다.)에서 거의 시행되지 않던 제도여서 바르셀로나는 피구를 최대한 오래 쓰는 데 신경썼지 바이아웃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으나 레알 마드리드가 갈락티코스 정책의 시작으로 피구의 바이아웃 금액을 덜컥 현금으로 내놓자 상황이 달라진 것. 그래서 피구 이후로 프리메라 리가 선수들의 바이아웃 금액이 비정상적으로 상향되어 사실상 사문화되다시피 했다. 이를테면 리오넬 메시의 경우 바이아웃을 행사하려면 3억 유로(약 5200억원)를 일시불 현금으로 질러야 한다.[4] 상식적으로 바이아웃이 가능할 수가 없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 회장 선거에서 밀리고 있던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당시 회장 겸 경쟁 후보였던 산즈를 앞서고자 내세웠던 공약이 피구의 영입. 2008년 피구와의 인터뷰 겸 보스먼 조항 특집 기사를 낸 포포투 영국판에 따르면(월호 아시는 분 추가바람), 피구 자신도 바이아웃 조항을 주급 인상에 미온적이었던 바르셀로나를 압박하려는 용도로 사용하려고 했지 마드리드로의 이적은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 당시 마드리드의 회장이었던 산즈는 전 해 챔스 우승을 해서 지지 기반이 탄탄한 터였기도 하고 플로렌티노 페레스의 당선 가능성은 낮게 점춰졌던 것이 사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데...페레스 측은 피구에게 페레스 당선시 마드리드에 무조건적인 이적을 하는 내용의 계약을 제시했고 선금으로 100만 달러를 건넨다. 페레스가 낙마하더라도 피구가 선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조건과 함께. 페레스 낙선을 기정사실로 보던 피구 측은 당연히 얼씨구나 하고 그 계약을 받아들였고...실제로 1999-2000 시즌 우승을 차지한 FC 바르셀로나가 도심 퍼레이드를 나갔을 때 피구는 도청 테라스에서 카탈루냐와 포르투갈 국기를 몸에 두르고선 마드리드를 까는 구호까지 외쳤을 정도.


당시 영상(스페인어 영상이다.).

문제는 페레스가 피구와의 비밀 계약을 흘리면서 결국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으로 당선이 되어 버렸다는 것.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겠지만 마드리드에서 계약 확인 기자 회견을 한 피구의 얼굴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한편 피구는 인터뷰에서 FC 바르셀로나 측이 피구에게 그다지 애정을 보이지 않았기에 이적을 결심했다고 말하고 있다.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

사람에게는 변화가 필요한 법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5년 동안, 팀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어요.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열린 유로 2000 대회 당시에 포르투갈 대표팀은 4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클럽으로 이적할 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런 기회에 대해 바르셀로나에게 이야기를 했죠. 바르셀로나에 책임을 다하고 싶었으니까요. 그 당시 이야기에 대해 많은 소문이 있었죠. 제가 최고액의 계약을 원했다고요. 많은 돈을 원했다는 거죠.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난 바르셀로나에 남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바르셀로나에서 뭘 해줄 수 있는지, 뭘 원하는지 듣고 싶었죠. 그런데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좋아. 떠나도 좋아. 이적료만 많이 남겨주고 넌 가도 좋아.” 난 클럽이 날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이적을 결정했죠. 계약 조건도 더 좋았죠. 레알 마드리드의 멤버로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팀의 명성을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 행운을 잡은 겁니다.

4. 레알 마드리드 이적 후 발생한 후폭풍


어쨌든 간에 이적을 한 그가 비난을 피할 수는 없었던 일.

바르셀로나에서 바로 레알 마드리드로 가는 것은 전례가 거의 없는 이적 코스(반대의 사례는 루이스 엔리케가 있다)였기 때문에 축구계는 물론 전 세계 스포츠계가 충격에 빠졌다.[5]

바르셀로나 서포터들이 느낀 배신감은 엄청났다. 바르셀로나에서 그것도주장을 했던 선수가 최대의 라이벌팀인 레알 마드리드로 가버렸으니 말이다. 지금으로 치면 메시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버린 상황이라고보면 된다. 당연히 바르셀로나 팬들은 가만히 있을리가 없었는데 거리 곳곳에서 피구의 사진이 불태워진건 물론이요, 피구가 엘 클라시코 날이 되어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으로 오면 피구에게 온갖 쓰레기와 욕설이 날아들었다. 코너킥 차러가던 피구에게 양주병을 던질 정도. 유명한 바르샤 팬의 돼지 머리 투척 사건 그 욕설로 인해 피구가 제대로 뛰지를 못할 지경이었다. 오죽했으면, 피구는 엘 클라시코가 열리기 전 시합에서 일부러 레드 카드를 받아, 엘 클라시코 더비를 고의적으로 결장하기도 했다.

어차피 계약의 세부 상황이 일반에 알려질 일은 없겠지만 배신감으로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날뛴 바르셀로나의 울트라들에 비해 피구 자신은 조용히 처신했다. 바르셀로나에 대한 적의감을 나타내지도 않았고 그나마 비난을 했던 것은 자신의 가치를 정당히 평가해주지 않았던 당시의 보드진과 회장인 호안 가스파르트.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도 바르셀로나에 대한 호감은 그대로 드러냈던 모양. 실제로 2003년 당시로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보다 더 먹어주는 특급 유망주였던 리카르도 콰레스마(콰밥만훈의 그 '콰'가 맞다.)가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후 기자 회견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피구가 자신에게 갈 수 있다면 바르셀로나를 가라고 추천해줬다는 발언을 한 일도 있다. 계획대로 그리고 바르셀로나가 피구의 이적시 선수 본인과 상호 동의하에 내걸었던 바이아웃 조항에 적혀 있는, 당시로선 천문학적인 금액을 어찌 됐건 받게 됐다.

그래도 돈 보고 이적했다는 말은 듣기가 거북한지 상기 서술한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축구 선수의 커리어는 결코 길지 않다. 누구든지 선수가 자기 자신의 가치를 높게 쳐 주는 클럽으로 이적하는 것에 대해 딴죽을 걸어서는 안 된다'라고 발언했다.

루이스 피구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후 00-01 시즌에도 대활약을 펼치며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4강까지 올라갔지만 바이에른에게 아쉽게 패배. 2000년 말미엔 발롱도르를 수상하게 된다. 다음 시즌인 01-02 시즌엔 새로 들어온 지네딘 지단에게 사실상 에이스 자리를 내주게 된다. 2002년 월드컵에도 출장했지만, 잘 알다시피 미국대한민국에게 의외의 일격을 당해 16강 진출에 실패했다.[6]

5. 인테르나치오날레 이적 이후

자신의 포지션에 젊은 피들이 들어오고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자 2005년 이탈리아의 인테르나치오날레로 이적하여 2006년에는 마지막으로 월드컵에 출장했다.

이 대회에서 포르투갈은 유럽 강호의 모습을 보이며 4강까지 올라갔는데 당시 지네딘 지단이 이끌던 프랑스와 맞대결을 펼치며 결국 지단의 페널티킥 결승골을 맞고 패배, 4위를 차지했다. 이 경기는 국내외 축구 팬들에게 지단과 피구의 마지막 맞대결로 상당한 관심을 끌었으나 결과는 1:0으로 좀 싱겁게 끝났다.[7]

Luis_Figo_Al-Ittihad.jpg
[JPG image (Unknown)]


월드컵 이후 2006-07 시즌 도중 호나우두와 베컴 등 스타플레이어들이 연이어 이적을 확정지은 가운데 피구 또한 타팀으로의 이적을 기정사실화했는데, 놀랍게도 새로 입단하게 될 팀은 사우디아라비아알 이티하드. 당시 구단 유니폼 인증 사진까지 찍으면서 이적이 사실상 확정적인 상황이었으나, 이적 시장이 열리기 직전 피구 측에서 계약 불이행을 이유로 알 이티하드를 FIFA에 제소한 뒤 이적을 무효화했다. 그 이후 인테르나치오날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다가 2009년 은퇴했다. 2011년 현재는 인테르나치오날레의 홍보 대사를 맡고 있는 중.

2011년 말에 "바르샤를 떠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레알 마드리드는 고급스러운 구단이라서"라는 인터뷰를 하면서 또 바르셀로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을 했다. 그리고 2013-2014 챔피언스 리그 16강 추첨식에서 바르셀로나의 상대로 조별 리그 2위를 차지한 팀 중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맨체스터 시티를 뽑은 후 "나이스 매치"라는 발언을 해 수많은 꾸레들을 충공깽 상태로 빠뜨렸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상대로는 최고의 꿀이라는 샬케 04를...

2014년 10월 26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엘 클라시코 더비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승리하자 이런 멘션을 남겼다. 바르셀로나 나쁜 감정 없는거 맞아????

6. FIFA 회장 선거 출마

2015년 1월 27일 뜬금없이 FIFA 회장 선거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블라터의 부패와 스캔들을 강력히 비판하며 나섰다.

7. 기타 얘깃거리

팝 음악을 좋아하며 특히 음악을 엄청나게 좋아한다고 한다. 휴식 시간에는 자주 직접 기타 들고 퀸 노래들을 부르기도 한다고.

피파 2002 게임에서 능력치가 전부 만렙인 7이다. 이 당시에는 능력치가 세분화되지 않아서 항목도 적었고 최고치가 7이었다.

빈곤 퇴치 활동을 위한 피구 재단을 만들어서, 매년 자선 경기를 벌이고 있다. 피구경기? 유니세프와 연동하여 경기를 하기도 하고, 벤피카와 붙기도 하고, 7대 7로 풋살에 가까운 형태의 경기를 하는 등 다양하다. 피구의 인맥에 자선 경기라는 것도 엮여서 은퇴한 선수건 현역 선수건 꽤나 유명한 선수들이 출장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TV 중계를 하기도 한다. 친선 경기이므로 피구와의 친분 관계를 바탕으로 미하엘 슈마허가 참가한 경우도 있다.


유재석과 같은 나이신데 벌써 염색 광고 찍으셨다.

2013-14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대진 추첨식에 홍보 대사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레알 마드리드는 16강부터 4강까지 모두 독일 팀이 뽑혔다(...). 후계자 다듬기 그리고 바르셀로나는 16강부터 맨시티를 만나더니 8강에서 또 다른 마드리드 팀에게 팀 킬당했지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에서는 주로 송종국이 그를 상대로 수비했는데, 그래서인지 송종국 관련검색어로 피구가 뜬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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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델 보스케식 4-2-3-1에서 3의 오른쪽에 주로 서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윙 포워드에 가까웠다. 지금의 리오넬 메시와 같은 포지션. 즉 미드필더가 아니다. 미드필더로 섰던 갈락티코 시절 오히려 수비에 문제를 드러내 바르셀로나 때보다 좋지 못한 경기력을 보였다.
  • [2] 동시대 선수 중 긱스, 사네티, 토티 정도를 제외하면 저만큼 오랜기간 동안 클래스를 유지한 선수가 없다.
  • [3] 하지만 이 설이 바르셀로나의 팬들 입장에서는 만일 피구가 바르샤에 남고 싶었다면 그냥 에이전트가 멋대로 진행할 때 그냥 분노하여 해고시키면 그만인거를 변명하고 있다고 피구를 비난한다.
  • [4] 스위스 축구 조사 기관 CIES에서 측정한 메시의 시장 가치는 약 3800억 원으로 라이벌 호날두의 2배를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 [5] 사실 잘 찾아보면 두 팀 간의 이적은 생각보다 많이 있는데, 이는 두 팀의 라이벌 관계를 이용해 어느 한 팀에서 뛰다가 갈등이 생기면 엿 먹으란 뜻에서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위의 예의 루이스 엔리케 역시 그런 경우이며, 바르샤에서 마드리드로 이적한 경우는 하비에르 사비올라와 마드리드의 전 감독이었던 베른트 슈스터, 그리고 감독인 요한 크루이프와의 갈등으로 이적한 미카엘 라우드럽이 있는데, 라우드럽을 대체한 선수가 바로 피구였다.
  • [6] 당시 피구가 송종국에게 관광당한 모습은 2002 한일 월드컵을 본 세대들에게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 [7] 이 이전에도 유로 2000에서 지단이 이끄는 프랑스와 붙었으나 그 경기에서도 지단의 페널티킥 골든 골 때문에 4강에서 멈춰야 했다. 지단 개객기 해 봐.
  • [8] 사실 송종국만이 피구를 막은 것은 아니다. 피구가 양쪽에서 다 뛸 수 있기 때문에 송종국에게 계속 막히자 오른쪽으로 위치를 바꿨는데, 문제는 거기에 이영표가 또 피구를 끈질기게 막고 있었다. 왼쪽으로 가면 송종국, 오른쪽으로 가면 이영표가 피구를 끈덕지게 막으니 피구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피구를 검색하면 송종국이 연관검색어로 뜨는데 이영표는 뜨지 않는다. 단, 네이버에서 이영표를 치고 ㅍ을 누르려고 하면 자동검색어로 이영표 피구가 뜨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