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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반 갈

last modified: 2015-04-13 18:04:09 Contributors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
알로이시위스 파울뤼스 마리아 "루이" 반 갈
(Aloysius Paulus Maria "Louis" van Gaal)
[1]
생년월일 1951년 8월 8일
국적 네덜란드
출신지 암스테르담
신장 185cm
포지션 미드필더
소속팀 AFC 아약스 (1972~1973)
로열 앤트워프 FC (1973~1977)
텔스타 (1977~1978)
스파르타 로테르담 (1978~1986)
AZ 알크마르 (1986~1987)
지도자 AZ 알크마르 (1986~1988, 수석코치)
AFC 아약스 (1988~1991, 수석코치)
AFC 아약스 (1991~1997)
FC 바르셀로나 (1997~2000)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000~2002)
FC 바르셀로나 (2002~2003)
AFC 아약스 (2004, 기술고문)
AZ 알크마르 (2005~2009)
FC 바이에른 뮌헨 (2009~2011)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2012~201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4~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감독
프랑크 레이카르트
(1998~2000)
루이 반 갈
(2000~2002)
딕 아드보카트
(2002~2004)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
(2009)
루이 반 갈
(2012~2014)
거스 히딩크
(2014~ )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감독
유프 하인케스
(2009)
루이 반 갈
(2009~2011)
유프 하인케스
(2011~20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감독
라이언 긱스 (감독대행)
(2014)
루이 반 갈
(2014~ )

Contents

1. 소개
2. 선수경력
3. 지도자 경력
3.1. AFC 아약스 시절
3.2. FC 바르셀로나
3.3.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부임
3.4. 다시 바르셀로나로, 그리고 경질
3.5. AZ 알크마르, 판 할과 함께 비상하다
3.6. 바이에른 뮌헨으로
3.7. 다시 국가대표팀으로
3.8.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4. 이야깃거리
5. 우승 기록

1. 소개

네덜란드 출신 명 지도자로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르크 오베르마스, 데니스 베르캄프, 랑크 데 부르, 날드 데 부르, 에드가 다비즈,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윈 반 데 사르 등 유명 선수들을 지휘하며 AFC 아약스 시절 유에파 컵과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묘하게 대한민국에는 2000 - 2002년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면서 그 황금 멤버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괴팍하고 이상한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게다가 곧바로 FC 바르셀로나에 취임해 10위권 밖으로 성적을 추락시키는 바람에 그런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러나 AZ 알크마르FC 바이에른 뮌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재평가를 받게 되었고,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아 팀을 3위로 이끌면서 괴상하지만 실력은 인정받는 감독으로 여겨지고 있다.

유망주 발굴과 기량의 만개에 관해서는 현역 감독 중 독보적이라 할 정도로 눈썰미가 좋지만 반대로 고집이 심해 팀에 맞지 않는 전술을 사용한다던가[2],선수들을 생소한 포지션에 기용하는 등 이상한 기행을 선보이기도 한다(...).[3] 판 할이 발굴한 선수로는 대표적으로 토마스 뮐러, 거 바트슈트버, 사비 에르난데스, 카를레스 푸욜, 에드윈 반 데 사르, 데부르 형제,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등이 있다. 그리고 맨유에 와서는 맥네어라는 수준급의 수비수를 발굴했고, 방출후보였던 마루앙 펠라이니애슐리 영을 완전히 부활시켰다.

2. 선수경력

지역 아마추어 팀인 RKSV 더 메어에서 선수생활을 시작, 그 후 1972년 아약스에 입단하였으나 당시 판 할의 포지션에 요한 크루이프와 요한 네이스컨스같은 명 선수가 포진해 있는 바람에 1경기도 뛰지 못하고 벨기에 프로리그 팀인 엔트워프로 이적했다. 엔트워프에서 4시즌동안 활동했으나 총 43경기에 출전하는 등 제대로 주전멤버로 활약하지도 못하고 1977년 텔스타로 이적, 시즌 25경기에 출전하며 주전으로 도약한다. 텔스타로 판 할을 불러들인 스승 미르체아 페테스쿠감독이 스파르타 로테르담으로 팀을 옮기면서 판 할도 같이 스파르타 로테르담으로 이적하였고 7시즌동안 리그 248경기에 출전하며 좋은 활약을 한다. 그 이후 1986/87 시즌 AZ 알크마르로 선수 겸 수석코치로 이적하였고 86/87시즌 직후 선수에서 은퇴한다.

3. 지도자 경력

3.1. AFC 아약스 시절


1988/89시즌 아약스의 수석코치로 임명. 프로 데뷔 팀으로 복귀하고 3시즌 동안 수석코치로 당시 아약스 감독 베인하커르를 보좌한다. 1991/92시즌 아약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었고 1996/97시즌 까지 6시즌 동안 파트릭 클루이베르트, 마르크 오베르마스, 데니스 베르캄프, 프랑크 데 부르, 로날드 데 부르, 에드가 다비즈, 클라렌스 세도르프, 에드윈 반 데 사르 같은 당시 네덜란드와 아약스를 이끌던 황금 멤버를 이끌고, 3차례의 에레디비지 우승, 1번의 KNVB컵 우승을 차지했다. 1991/92 시즌에는 토리노를 상대로 유에파 컵 우승을, 1994/95시즌에는 파비오 카펠로감독이 이끌던 AC밀란을 상대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 다음 시즌 1995/96시즌에도 2년 연속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이끈 유벤투스 FC에게 승부차기 패를 당해 준우승에 머물게 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빅리그와 중소리그의 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이런 판 할의 성공은 네덜란드 에레디비지가 유럽 대항전에서 거둔 거의 최후의 성공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4] 그가 아약스 시절 이끌었던 선수들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은 물론이고 각종 빅리그 클럽에서 맹활약하게 된다.

3.2. FC 바르셀로나


[5]
네덜란드의 성공을 뒤로 하고 1997/98시즌 바비 롭슨의 후임으로 FC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임명된다. 2차례의 라 리가 우승과 1차례의 코파 델레이 우승을 차지하며 성공적인 감독직을 수행하지만, 시시 때때로 바르셀로나 지역 미디어와 설전을 벌이고 선수들과 불화를 겪으며(특히 히바우두) 아약스 시절과는 달리 자신만의 축구 철학을 펼치기 어려웠다. 게다가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원하는 바르셀로나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비판에 시달리기도 하며 결국 1999/00시즌을 끝으로 바르셀로나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그렇지만 이때 꾸레들에게 욕을 얻어먹으면서도 1군으로 출전시켜 경험을 쌓게 해주며 1군에 자리 잡게 해준 유망주들이 있었는데 그 선수들이 바로 푸욜과 사비. 비록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하지 못하고 당시 고참 선수들과 불화를 겪긴 했지만 판 할은 어떻게 보면 바르셀로나에게 큰 선물을 한 셈이다.

3.3.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부임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잊고싶은 기억인 월드컵 최종예선 아일랜드전

유로 2000이 끝난 직후, 프랑크 레이카르트의 후임으로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되며 2002월드컵 지역 예선을 치룬다. 당시 지역예선에 포르투갈,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키프로스, 안도라와 같은 조에 편성되었는데 유로 2000 이후 승승 장구 하던 포르투갈은 어려운 상대일지는 몰라도 네덜란드가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실패한다는건 거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정작 포르투갈은 물론이고 아일랜드에게 까지 밀리며 조 3위로 지역예선 플레이오프에 진출도 못하며 탈락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앞서 설명한 아약스의 황금 멤버는 물론이고 1998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던 대표팀 멤버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6] 그런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조차 조 3위를 기록한 판 할에게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고,[7] 마침 유로 2000 부터 유럽 축구를 안방에서 즐기게 되던 국내 축구팬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심어주며(...) 판 할은 능력없고 자기 고집 강한 감독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지게 된다.

3.4. 다시 바르셀로나로, 그리고 경질


판 할 커리어의 흑역사

월드컵 지역예선 이후 2002/03시즌 다시 바르셀로나로 복귀한다. 그 전에 바르셀로나 감독직을 수행하던 당시 판 할과 불화를 겪었던 히바우두는 판 할의 복귀 소식에 바르셀로나와 재계약 하지 않고 AC 밀란으로 자유계약신분으로 팀을 옮겼으며 역시 판 할을 좋아하지 않았던 좌측 윙백인 세르히도 AT마드리드로 팀을 옮긴다. 히바우두의 이적은 바르셀로나가 큰 기대를 하고 데려온 리켈메의 영입으로 공백을 메꿀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 세르히의 이적은 판 할에게도 타격이었는데 2000/01시즌 바르셀로나의 왼쪽 윙백 자리는 세르히와 AC 밀란에서 임대영입한 프란체스코 코코 이 2명이었지만 코코가 임대복귀하고 세르히는 판 할이 온다는 소식에 재빨리 자유계약으로 AT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왼쪽 윙백 자리를 맡을수 있는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라 리가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지만 당시 20살도 안됐던 페르난도 나바로를 1군으로 승격시켰지만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코쿠 같은 선수가 땜빵으로 왼쪽 윙백을 수행하거나 아니면 변칙 스리백을 가동하는 등 어려움을 겪게 했다. 2002/03 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 본선에서 6경기 전승을 거두며 승승 장구한것과는 달리 리그에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나는 막장 행태를 보이면서도 제대로 해법조차 내놓지 못하는 안습한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히바우두 때와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가 야심차게 영입한 리켈메를 본 포지션이 아닌 좌측 미드필더로 활용하면서 제대로 활약도 못한다고 출전조차 시키지 않기도 했다. 결국 시즌 중반 경질 통지를 받았다.

3.5. AZ 알크마르, 판 할과 함께 비상하다


경질 이후, 휴식을 취하며 아약스의 기술고문으로 자격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판 할은 2005/06시즌 AZ 알크마르에 감독으로 복귀한다. 전임 감독인 코 아드리안세는 중위권에 머물던 AZ 알크마르를 2003/04 시즌 5위, 2004/05 시즌 3위에 올려 놓고 2004/05 시즌 유로파리그 4강에 이름을 올리는 등 에레디비지의 강호 수준으로 키워냈고, 판 할은 그렇게 코 아드리안세가 잘 다져놓은 기반을 물려받으며 AZ를 이끌기 시작했다.

부임한 첫 해인 2005/06 시즌 준우승을 달성했지만 아약스와의 유럽대항전 플레이오프에 패하며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듬해인 2006/07시즌에는 골득실은 앞섰으나 승점 3점 차이로 3위에 머물러야 했던 판 할은 그 다음 시즌 AZ 알크마르가 11위로 추락하며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선수들과 서포터들의 강력한 반발로 사임 의사를 접은 판 할은 2008/09 시즌을 2연패로 시작했지만 곧 질주를 시작해 이듬해 4월까지 리그 무패 행진을 달리는 등 강력한 면모를 보이며 극적인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이는 AZ 알크마르의 통산 2번째 우승으로, AFC 아약스, PSV 아인트호벤, 페예노르트라는 빅 3 클럽이 우승을 독차지하던 에레디비지에 새로운 바람을 이끌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이 결과를 통해 판 할은 네덜란드 국가대표팀에서의 실패와 FC 바르셀로나에서의 경질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

3.6. 바이에른 뮌헨으로


요염한 할선생님 리베리 표정봐 ㅋㅋㅋㅋ

2009/10시즌 유프 하인케스의 후임으로 FC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리그 초반엔 4경기중 1승 밖에 거두지 못하는 안습한 모습을 보이면서 다시 빅리그에서의 실패를 맛보는가 했는데 그 이후 성적이 급상승하며 2009/10시즌 분데스리가우승과 DFB 포칼우승을 차지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하며 트레블을 눈 앞에 둔다. 당시 상대는 주제 무리뉴감독이 이끌던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인테르 역시 2009/10시즌에 세리에 A코파 이탈리아를 우승하며 2009/10시즌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며 무리뉴 역시 트레블을 눈 앞에 두었다. 2009/10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은 말 그대로 트레블 대결. 결국 무리뉴가 이끌던 인테르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2:0으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 대결은 무리뉴의 승으로 끝났다.

성공적이었던 2009/10시즌 과는 달리 그 다음 시즌에는 리그에서의 성적 부진이 계속 되며 리그 3위로 밀리자 전 시즌 더블을 이루는 등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임됐다. 후임 감독은 유프 하인케스. 판 할 본인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트레블에 실패했지만 후임 감독인 유프 하인케스는 트레블을 달성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토마스 뮐러, 홀거 바드스투버 같은 유망주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윙어 자리에서 어정쩡하던 슈바인슈타이거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변경시키며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등 바이에른 뮌헨 뿐만 아니라 독일 대표팀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다.

3.7. 다시 국가대표팀으로


곱사춤의 대가 할선생님

이후 리버풀 FC의 기술고문 자리에 취임할거란 말이 있었으나, 자신의 감독 권한이 침해 받을 것을 우려한 브렌던 로저스의 반대로 결국 취임하지 못했으며, 친정팀 아약스의 사장[8] 자리에 추대 되었으나, 팀내 파벌 갈등[9]으로 인해 취임하지 못했다.

1년간의 휴식을 취하던 판 할은 언론과 여론, 축구인들의 만장일치 추대로 2012년 네덜란드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다시 임명되며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 광탈로 불명예스럽게 종료한 국가대표팀 커리어를 재개했다. 12년 전의 악몽이 재현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긴 했지만, 어수선한 팀 분위기로 최악의 졸전을 치룬 유로 2012를 극복하고 성공적으로 세대교체를 이뤄내며 일단 2014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조 1위로서 수월하게 진출은 했지만 벨기에, 우루과이, 스위스에게 밀려 톱시드에서 탈락했다.

데이비드 모예스가 경질된 뒤 차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감독으로 강력하게 후보에 올랐다가 결국 2014년 5월 19일 맨유 감독으로 공식 선임되었으며, 월드컵이 끝난 이후 감독으로 공식 부임하게 되었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조별리그에서 디펜딩 챔피언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이케르 카시야스를 기어다니게 만들며 스페인5:1로 캐관광보내면서 전세계 축구팬들에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기묘한 용병술은 월드컵에서도 이어져, 8강전에선 대회 최고의 돌풍을 이어가던 코스타리카를 맞이하여 연장 후반 15분 골키퍼를 팀 크룰로 교체한 끝에 승부차기에서 케일러 나바스를 꺾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와의 승부에서 탈락해 브라질과 3/4위전을 치르게 됐다.

그리고 그렇지 않아도 미네이랑의 비극으로 벌집을 쑤셔 놓았던 분위기의 브라질을 맞아 3:0으로 다시 한 번 관광을 보내며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또 골키퍼를 교체하는 기행을 선보이면서 23인 엔트리 전원을 출전시킨 기록을 썼다.[10]

비록 우승은 실패했지만 이렇게 유종의 미를 거두었고, 더불어 12년 전의 흑역사도 만회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3.8.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몰락한 명가의 부활을 이뤄낼 것인가
맨유 팬들은 요즘 이 사람 때문에...
명장이 될 것인가, 괴장이 될 것인가
그놈의 똥고집만 버려준다면!!!


월드컵이 끝나고 예정된대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정식부임 하였고 곧바로 프리시즌 미국투어에 돌입하였다. 미국투어 훈련에서의 모습을 보면 독불장군 같은 모습을 많이 누그러뜨리고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주면서 선수단과 잘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반 할은 모예스 명장설의 가장 유력한 근거인듯 보였다.
8월 16일 8시 30분에 킥-오프 한 2014-15 리미어리그 개막전인 스완지 시티와의 안방경기에서 기성용에게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첫 아시아 선수 리그 개막골을 넘기며 1-2로 패했다. 프리시즌은 프리시즌일뿐 맨유가 안방 개막전에서 패한 것은 42년만이며 더불어 스완지 시티 역사상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를 이긴 경기였기에 판 할의 첫 올드 트래포드 데뷔 경기는 패배와 함께 좋지않은 기록까지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경기 선덜랜드와 비기고 리그컵에서는 3부리그 팀에 0-4로 대패를 당했다.(...)
하지만 바이에른 시절에도 반 할은 초반에 부진을 겪었으나 이를 이겨내고 더블을 달성했었고, 모예스 때와는 달리 맨유가 어마어마한 선수영입현질을 했기에 팬들은 벌써부터 낙담할 필요가 없어보인다. (또 원래부터 반 할의 커리어가 안정감이 없고 롤코의 연속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프리미어개막 후 1달이 지났는데 리그 5경기에서 1승 2무 2패로 매우 부진하며 평가가 매우 나빠졌다. 물론 스쿼드가 크게 개편되어 서로 손발을 맞추는 과정이라는 변명도 가능하겠지만, 상대한 5팀이 모두 반드시 승리를 챙겨야할 양민팀이라는게 문제... 스완지 시티-선덜랜드-번리-QPR-레스터 시티...로 이어지는 맨유의 죽음의 5연전

공격진에는 세계 최고의 3톱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로빈 반 페르시, 웨인 루니, 라다멜 팔카오를 보유한데다가 공격을 전개할 미드필더진도 앙헬 디 마리아, 안데르 에레라, 후안 마타로 리그 최고 수준이다. 다만 갈락티코 시절 레알만큼이나 이들이 공격을 마음껏 펼치게끔 해줄 수비형 미드필더 자원과 수비진의 두께가 심하게 부족하고 맨유 이번시즌 스쿼드가 앞쪽은 람보르기니 인데 뒤쪽이 리어카라 카더라 위의 선수들이 모두 상당한 이적료와 주급으로 영입된지라 주전으로 안쓰기도 애매해서 이 공격에 특화된 6명을 전부 스쿼드에 넣어 공격력이 리그 최강 수준으로 돌아가는 만큼 안그래도 스쿼드 약점인 수비와 수미에서 상당한 약점을 보이는 중이다.
결국 뇌관이 터지고 말았다. 리그 5라운드에서 이번 시즌 승격팀인 레스터 시티 FC에게 3대 1로 앞서다가 후반전 20분정도의 시간동안 무려 4골을 실점하며 우려했던 수비에서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났다.


데이비드 모예스와 반 할의 비교
반 할이 월드컵에서 보여준게 있었기에 팬들은 기대를 많이 했지만.. 리그 10라운드까지 맨유는 3승 4무 3패로 10위에 머물러 있었다. 승률이 반할도 안된다. 1억 5천만 파운드라는 어마무지한 이적료를 투자했음에도 목표로 잡은 4위권 진입은 어림도 없어보인다, 이래선 유로파라도 가겠냐며 언론에게 대차게 까였었다. 리그컵은 일찌감치 탈락했고 챔스도 없이 널널한 일정을 소화중인데도 졸전을 거듭하고 있기에 더더욱 까였다. 모예스는 돈이라도 안썼지
하지만 자그마치 10명의 선수가 부상중인 어이없는 상황에서 홈경기인 크리스탈 팰리스전에게 진땀승을 거뒀고, 오심에 힘입어 아스날을 원정에서 잡으며 4위권은 지켰다.

위 설명이 다소 가혹한 평가인것이 모예스는 선수단 장악에 완전히 실패하여 뒤숭숭한 라커룸 분위기를 만들었고, 감독의 부족한 선수 이해도 때문에 전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여 이것이 경기력에서 드러났었다. 아 정말 생각하기 싫은 지난시즌 반면 반 갈은 뮌헨에서처럼 시작이 좋지 않았으나, FM 부상모드도 아니고 소멸된 수비진에다가(...) 끊임없이 부상선수가 나왔음에도 (12월 기준) 팀을 3위에 안착시켰다. 그리고 강팀과의 경기에서 모예스 감독처럼 완전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맨유가 시즌 초반 고행길을 걸을 때, 반 할 감독은 "새로운 팀을 만드는 데는 3개월이 필요하다"고 단언했었는데, 이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3개월이 지난 11월, 거짓말처럼 맨유는 되살아났고 리버풀전까지 6연승을 이어갔다. 헐 시티전은 에이스 디 마리아, 스토크 시티전은 루니와 디 마리아가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하였다. 이는 맨유가 더이상 한명의 선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돌아가며 활약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반 할 감독에 대한 의심의 시선은 점점 걷히는듯 하다. 하지만 이어지는 선수들의 부상과 (쓰리백·포백을 번갈아 쓰는 등) 전술 실험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반 할의 베스트 11을 보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러니까 잠자코 응원이나 하자.

18라운드 까지 치룬 시점에서는 상당히 좋은 모습이다. 툭하면 부상당하는 이 안습적인 상황에서도 꾸역꾸역 승점을 따내고, 3위를 유지하고 있기때문. 그리고 애슐리영과 펠라이니를 살려내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 전반적인 선수단의 분위기도 좋은편.

그러나 21라운드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서 패한 후 저번 시즌 모예스가 21라운드까지 딴 승점과 반 할이 이번 시즌 21라운드까지 딴 승점이 37점으로 같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욕을 먹고 있다.바로 위에 10라운드까지 비교에서 모예스가 더 많은 승점을 쌓았다고 까였던 건 사람들이 잊은 모양
무엇보다 반 할은 모예스 때보다 더 많은 영입을 했고 챔스도 안 나가고 리그컵에서도 탈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점이 같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모예스의 재평가는 계속 된다

그런데 약 2539억을 들여 선수들을 영입했는데도 불구하고 더 높은 수준의 선수를 영입하겠단다.(...)그럼 지금까지 영입한 선수들은 B급인가봐요?
2015년 1월 24일에 열린 잉글랜드 4부리그[11] 클럽 캠브리지와의 FA컵 4라운드 경기에서 주전을 기용함에도 불구하고 졸전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3백 전술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반 할은 전술적 문제가 아니며 선수들의 부진한 경기력이 문제라는 식의 발언을 했다.기사

그 후 강등권 팀인 퀸즈파크 레인저스와 레스터 시티를 상대로 손쉽게 승점을 쌓았으나, 2015년 2월 9일 열린 웨스트햄과의 원정경기에서 1:1로 무승부를 하며 4위로 내려앉았다. 이제 챔피언스리그 진출도 장담 못 하는 상황.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반 할은 또 까였다

경기 후 웨스트햄 감독인 샘 알라다이스가 "맨유의 롱볼축구를 막지 못한게 동점골을 준 원인이다"라고 놀렸는데 그게 상처가 되었는지 다음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에게 아예 인쇄해온 A4 자료까지 배포하며 롱볼축구를 하지 않았다고 강변했고 다들 어리둥절해 하고있다.##

3월10일, 아스날과의 FA컵 경기에서 아스날로 이적한 맨유 유스 웰백에게 결승골을 허락하며 패배하고 말았다.

그 후 3월 16일 리그 29라운드 토트넘전은 챔스권 사수를 위해서라도 엄청나게 중요한 경기였는데 33분만에 3골을 넣고 3-0으로 이기면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이전처럼 존못(...)에 데헤아 하드캐리가 아닌, 미드필더진부터 완전히 압도했고, 시즌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이겼기 때문에 맨유팬들은 다시 기대하는중.

30라운드 리버풀전에는 퇴장징계에서 복귀한 디마리아를 벤치에 두고 마타를 오른쪽 윙어로 선발출전시키는 모험아닌 모험을 걸었는데, 제대로 먹혔다. 마타가 두골을 넣으며 2-1승리에 크게 공헌한것. 안필드 원정이라는 어려운 길에서 리버풀을 압도하면서 승리하면서 다시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후 31라운드 아스톤빌라전은 무난하게 3-1로 이겼고, 32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맨체스터 더비에서는 8분만에 골을 먹었지만 4-2로 역전승하며 맨체스터 더비 4연패에서 벗어났고, 리그 6연승을 달리고있다. 그리고 반할은 찬양받고있다.

4. 이야깃거리

비행기에서 게임 풋볼 매니저를 즐긴 것이 목격되었다.

5.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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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네덜란드어 표기법으로는 판 할이 맞으나 본인이 반 갈로 불러주기를 요청하였으므로 반 갈로 표기한다. 또한 루이스가 아닌 루이가 맞는 표기. 기자회견 중에도 본인을 "루이" 라고 지칭한 적이 있다.
  • [2] 현재 진행형으로 큰 기대를 하지 않던 네덜란드의 월드컵 성공에 고무되었는지 3백 가용이 가능한 재능이 거의 없는 맨유에서 현실과의 타협은 커녕 고집을 부리는 중. 참고로 3백은 윙백과 중앙 수비수들이 매우 중요하다. 맨유의 수비상태는 자생.
  • [3] 예를 들면 2015년 1월 현재 디 마리아를 투톱의 한자리에 배치시킨것. 디마리아는 중앙미드필더에서 포텐이 터졌는데!
  • [4] 다름없다고 쓴 이유는 월드컵 이후 에인트호번에 부임한 히딩크가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에인트호번을 올려놓은 기록 때문에...
  • [5] 여담이지만 저 사진에 찍힌 인물 세 명이 모두 바르사의 주장을 역임한 인물들이다. 시대 순으로 펩 과르디올라(1997~2001), 루이스 엔리케(2002~2004), 카를레스 푸욜(2004~2014). 그리고 저 중 둘은 바르사의 감독을 지냈거나 지내는 중이며, 가장 최근에 은퇴한 푸욜은 바르사에서 코칭 스태프 커리어를 갓 시작했다.
  • [6] 데니스 베르캄프의 대표팀 은퇴, 에드가 다비즈랑케 데 보어의 도핑 적발로 인한 출장 정지로 인해 약간의 전력 누수가 있긴 했었다. 그래도 월드컵 우승을 노려볼만큼 강력한 스쿼드였긴 했다.
  • [7] 아일랜드와의 마지막 경기서 경기 막판의 5포워드 투입으로 인해 특히 미친듯이 까였지만, 한 골을 못 넣으면 탈락이 확정되는 사면초가의 위기 상황에서 그런식의 교체가 전혀 터무니 없는건 아니다. 당장 2002년 월드컵의 이탈리아전에서 히딩크가 사용한 교체 카드를 생각해 보자.
  • [8] 제너럴 디렉터
  • [9] 당시 아약스는 요한 크루이프를 지지하는 파벌과 크루이프를 반대하는 파벌로 나뉘어서 팀내 알력 다툼이 있었고, 크루이프를 반대하는 파벌에서 크루이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판 할을 기술고문 자리에 옹립한 것이었다. 이후 법정다툼 까지 벌인 끝에 크루이프파가 결국 법정싸움에서 승리하여 반대파를 숙청하였고, 판 할의 사장 취임도 없던 일이 되고 만것이다.
  • [10] 사실 이 경우는 기행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아니다. 3~4위전은 보너스 경기적인 성격이 강하며, 판 할 감독 자신도 이 경기의 불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게다가 승리가 확정적인 경기에서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경우는 비교적 흔한 편이다. 예를 들어 홍명보 감독도 런던 올림픽 3~4위전에서 이러한 교체를 한 바 있다.
  • [11] 풋볼리그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