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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last modified: 2019-11-21 01:24:54 Contributors

KBO 리그 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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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Samsung L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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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히어로즈
(Kiwoom 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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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다이노스
(NC Din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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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LG Tw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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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SK Wyver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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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Doosan B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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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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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KIA Ti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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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
(Hanwha Eag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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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위즈
(kt wiz)
과거에 참가했던 구단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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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팀 엠블럼[1]
롯데 자이언츠
Lotte Giants
창단 1975년 5월 6일[2]
구단 법인명 ㈜롯데자이언츠
영문명칭 Lotte Giants
업종명 스포츠 클럽 운영업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연고지 부산광역시
구단 연고지 변천 부산광역시 (1982~)
구단명 변천 롯데 자이언트 (1975~1981)
롯데 자이언츠 (1982~)
구단주 신격호[3]
사장 이창원
단장 이윤원
감독 이종운
홈 구장 사직 야구장
(28,500석)
울산 문수 야구장[4]
(12,059석)
2군 구장 상동 야구장
워드 마크
킷 스폰서 하드스포츠[5]
홈페이지, 공식 페이스북 공식 인스타그램
공식 모바일 앱(아이폰),공식 모바일 앱(안드로이드)

최종 우승
2회
1984, 1992[6]

1984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1983-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1985-삼성 라이온즈
1992년 한국시리즈 우승 팀
1991-해태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1993-해태 타이거즈

Contents

1. 상세
1.1. 역대 성적
1.2. 인기
1.3. But... 막장 프런트
1.3.1. 2012년 이후의 성과 : 투자 증가와 스카우팅 성공 사례
1.3.2. 프런트의 현장 개입철밥통 코치 문제
1.4. 홈 구장
1.5. 팀 컬러
1.6. 외국인 선수
2. 팀의 역사
2.1. 연표
2.2. 관련 기록
2.2.1. 역대 감독
2.2.2. 역대 성적
2.2.3. 역대 유니폼
2.3. 영구결번
2.4. 독특한 응원 문화
2.5. 선수단/등번호
3. 사건 사고
4. 지역 연고 학교
5. 관련 항목
6. 기타
7. 시민구단 전환 관련

롯데그룹 산하 스포츠단
롯데 자이언츠
(야구/KBO)
치바 롯데 마린즈
(야구/NPB)
롯데하이마트 골프단 롯데마트 골프단

1. 상세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부산광역시. 홈구장은 사직 야구장.

마스코트는 팀 이름에서 보듯 '거인'[7]이었지만 팀 분위기 쇄신차원과 일본의 자매 구단인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로고[8] 및 마스코트 통합으로 얼마 전부터 갈매기를 쓰고 있다[9]. 롯데 시걸스(Seagulls) 팀을 상징하는 노래는 그 유명한 부산 갈매기.

역대 정규리그 우승횟수:0 LG도 2번은 해봤는데[10]

역대 꼴찌 횟수: 8[11]

별명은 꼴데(롯데팬 왈 KBO의 주인공). 그래서 한국에서는 치바 롯데 마린즈는 일본꼴데로 불린다. 그리고 2013년 8월 1일 KBO 최초 통산 2,000패의 대위업(...)을 달성하여 그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꼴데는 정작 8888577 항목으로 연결된다

덕분에 자타공인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캐릭터'가 강한 팀. 꼴데로 별명이 끝나지 않고 성적에 따라 탑데부터 칠데까지 다양하다.

2005년도 봄에 한창 잘 나가다 여름에 꼴아박은 적이 있으며 그 덕에 봄에만 잘한다고 봄데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실 봄성적이 좋지만은 않았지만 2005년 쇼크, 그리고 봄만 되면 숨어있던 롯데팬들이 뛰쳐나와 설레발을 치기 때문에 봄데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봄데 상대로는 뉴욕 양키스도 못 이긴다는 말이 있는데, 봄데보다 더 무서운게 '시범데'다. 2011년 시즌 시범경기에서도 3년 연속 1위를 하며 V9을 달성했다! 물론 시범경기 V9.

  • 역대 시범경기 1위 횟수 : 10회[12]
  • 역대 시범경기 2위 횟수 : 4회[13]

그러나 2012년 시범경기는 꼴찌(...) 아마도 지구온난화이 사라진 것 같다고(...)

1.1. 역대 성적

인기에 비해 실제 성적은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원년부터 이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리그를 압도하는 강팀'이라는 모습을 보인 해는 그다지 없다. 그나마 1999년 2위를 차지했지만 1위 한화보다 투타에서 안정된 전력을 보였다는 것. 이 해가 그나마... 압도적인 전력이었다. 심지어는 우승한 년도조차도 드라마틱하기는 했지만 우승 전력이라 꼽히진 않았다. 1982년, 해태와의 개막전에서 14-2로 대승을 거두지만 이 해 0.388[14]의 승률로 5위에 그쳤고, 이듬해에는 아예 최하위를 차지하였다. 1984년에는 삼성의 져주기 논란으로 후기리그 우승을 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15], 1992년에는 정규시즌 3위로 마감하여 준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하여,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 빙그레의 다이나마이트 타선을 상대로 꽤나 드라마틱하게 우승을 차지했다.[16] 공교롭게도 우승할 때의 감독은 강병철이었으며, 두 번 다 안경잡이 신인 에이스 최동원염종석을 혹사시켜 우승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우승다툼에 참가한 것은 2번 뿐이다. 롯데가 한국 시리즈 우승하면 남북통일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점점 롯데로 말미암은 남북 통일이 가까워 지고 있다. 하지만 매미 야구가 지속되는 한....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 시즌에서는 프로야구가 생긴 이후에 단 한번도 정규시즌에서 1위를 차지한 적은 없고 2위도 2011년 창단 30년 만에 최초로 단일 리그 2위를 차지하기 전 까지는 삼성의 전후기 통합 우승으로 끝난 1985년과 양대리그 체제였던 1999년 단 2번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17] 그에 반해 꼴찌는 8번(1983, 1989, 1997, 1998, 2001, 2002, 2003, 2004) 뒤에서 2등을 4번(1982, 1990, 2006, 2007) 차지해 이 분야에서 대적할만한 팀은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 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저지른 4년 연속 꼴등해태(現 기아), 삼성4년 연속 우승(해태:1986~1989, 삼성:2011~2014)에 버금가는 대기록이다. OTL 여기서 꼴데라는 용어가 나왔다.[18]

참고로 시즌 최다패 타이기록도 가지고 있고(2002년 97패[19]) 통산 최다패팀(1843패) 현존 팀 최다연패 타이 기록(2002년 16연패)도 가지고 있다.[20] 개막 후 연패 2위[21](2003년, 12연패), 특정팀(삼성 라이온즈)에게 제일 많이 패한 기록도 있다. 특정팀 상대 연패 기록(KIA 타이거즈, 18연패)과 특정 투수 상대 연패(선동열. 20연패. 선동렬은 최동원이 선발로 나온 한경기를 제외하고 롯데를 상대로 져본 적이 없다)도(…). 간단히 2001년부터의 성적을 요약해 8888577이라는 비밀번호도 가지고 있다. 그외에도 삼성의 성준이라는 최대의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첫 2000패[22]를 달성하며 명문구단의 입지를 다졌다.(...)

더 간단히 요약하자면 팀 통산 승률이 역대 팀 중 뒤에서 3등인[23] 0.465로 같은 원년팀인 삼성의 통산 팀 승률이 0.560이라는 것과 대비되는 성적을 나타낸다.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이후 일어난 일들.

1. 케이블 TV 방송이 시작되어 스포츠 전문 TV가 등장했다.[24] 그리고 PC 통신의 시대가 끝나고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25]되었으며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어 롯데 자이언츠의 모든 경기를 TV 앞에서 컴퓨터 앞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 외환위기가 일어나 쌍방울 레이더스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되고 해태 타이거즈는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넘어가 KIA 타이거즈가 됐다. 그리고 네 개의 새로운 프로야구팀이 탄생했다.
3.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와 최초의 프리미어리거가 탄생했고 국내 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는 투수타자가 나왔다.
4. 군인 출신 대통령이 물러나고 네 명의 대통령을 거친 뒤 군인 출신 대통령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다.
5. 김일성이 사망하고 김정일을 거쳐 김정은에게 권력이 넘어갔다. 미국에서는 이 기간 사이에 부자 대통령이 탄생했다.
6.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났다.
7. 도희(타이니지)가 태어나 본인이 태어난 그 해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찍었다.
8. 한국 최초의 100만명 돌파 영화 서편제가 나오고[26] 최초의 1,000만명 영화인 실미도가 나왔으며, 천만명이 못 되던 한국영화 관객수가 2012년 1억명을 돌파했다. 2015년 현재 천만명 돌파 한국영화 11개가 나왔다.
9. 서울 지하철 3호선4호선이 확장되고 서울 2기 지하철(5호선~8호선)과 서울 지하철 9호선이 개통되었다. 부산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부산 도시철도 2호선, 3호선, 4호선, 부산김해경전철이 개통되었다. 거기에 KTX 경부선이 완공되어 원정팀 응원단이 당일치기 응원을 오기 시작했다.
10.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작되었다.
11. 야후!가 설립되었으나[27] 10년만에 구글에게 주도권을 넘겨줬고 한국에서는 다음네이버에게 주도권을 넘겨줬으며 프리챌나우누리가 서비스를 중단했다.
2년 차이인 다른 팀도 몇몇 항목이 겹치지만 넘어가자 [28]

1.2. 인기

연고지는 부산광역시 일대이며 부산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인기와 지지를 받고 있다. 구도(球都) 부산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관중 동원 경쟁을 벌이는 두산과 LG가 타 팀 원정 팬의 덕을 보는데 비해, 롯데는 동원한 관중의 95% 이상이 롯데의 팬이니 말 다했다. 부산 3호선 종합운동장역사직역은 사실상 롯데 자이언츠 역이다. 아예 역 내부가 롯데로 장식되어 있고, 강민호가 안내방송을 하기도 했었다. 심지어 2009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사직구장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갑자기 부산광역시 지역 GDP가 급증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이 현상을 롯데 자이언츠 효과라고 명명하기까지 했다.

KBO 최고 인기팀으로서 KBO, K리그, KBL, e스포츠 등을 합쳐서 충성심 높은 열성팬들이 가장 많은 한국 내에서 최고 인기의 프로 스포츠팀이다. NC 다이노스가 생기기 전까지는 경남 지역 대부분에 롯데 팬들이 깔린 상황이었다. 부산 지역에서 롯데의 위상은 종교나 다름없다는 말이 서슴없이 나온다. 그리고 실제로 그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KNN 라디오에서 롯데 자이언츠 전경기 생중계를 한다.[29] 촛불집회때 야구장에서 쏟아져나온 시민들이 거리에 주저앉아 부산 갈매기를 부르거나, 전경들에게 "마!!!"를 외쳤다는 얘기도 있다.[30] 2010년 월드컵중계를 해운대 바닷가에서 했는데, 당시 응원단장이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틀어주지 않겠다고 하자, 마!를 외치는 등 활용범위가 매우 다양하다...

부산에서 롯데를 욕하면 그대로 다진 육회꼴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카더라.[31] 물론 요새는 시절이 매~~우 좋아져서 원정팬 유니폼을 입고 사직에 앉아 있다고 해서 바로 큰 일이 나지는 않는다[32][33] 단, 롯데가 이기기만을 빌어야 할지도(…).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4][35]

2010년까지는 한 시즌 홈경기 중 6경기는 사직 야구장이 아닌 창원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치렀었다. 그리고 그 경기 열리던 날이면 부산 시민들이 아예 창원까지 원정와서 롯데 응원했고, 경기 끝나고 나면 그날 마산시외터미널 출발 부산(사상, 노포동, 해운대)행 시외버스는 막차까지 가축수송 할 정도였었다(…). 물론 마산/창원에서 밤샘 음주를 하기도 했었고. 물론 마산아재나 부산아재나 전투종족 성향이 극도로 높아서 마산 야구장에서 롯데의 상대팀을 감히 응원하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러나 창원지역에 NC 다이노스가 새로 창설되면서, 경남권의 팬들은 상당수 NC 팬으로 갈아탔다. 두 지역 팬들의 성향상 치열한 경쟁이 될 것 같았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사고는 일어난 적이 없다. 2010년대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스포츠 뉴스가 아니라 9시 뉴스 범죄꼭지에 나올 것이다.

2014년부터는 울산지역에 새로 만들어질 구장을 롯데 자이언츠의 제 2홈구장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롯데, 2014년부터 울산구장 '제 2홈구장'으로

골수팬들은 대구 원정은 기본이며, KTX가 뚫리게 되어 경부선 라인 원정경기가 열리면 대전이나 서울도 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36] 자기 차가 있는 골수팬이나 창원으로 가는 것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사실,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에도 팬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서울에서 경기를 하면 매번 잠실야구장 절반을 채우는 위엄을 자랑하며 목동 야구장에서는 넥센팬보다 오히려 롯데팬이 많을 정도. 명실상부한 전국구 구단이다.

게다가 몇몇 유명인사들도 롯데 자이언츠 팬이라고 대놓고 밝히기도 했다. 배구선수 한선수는 트위터에 롯데 팬이라고 밝혔으며, SBS의 아나운서 박찬민은 "로또가 거액으로 당첨되면 당첨금 전액을 부산광역시에 돔 야구장 건설비로 내놓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롯데 자이언츠를 좋아한다고 한다.

엄청난 인기 덕분에, 2008 7월 10일 국내 야구 구단중 최초로 Dcinside에 단독 갤러리인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가 개설되었다.[37] 단 5일만에 글수가 45,000개를 돌파했으며. 2012년 8월기준 약 76만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만약에 롯데가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는 날[38]이라면, 우승한 날 밤은 부산시 기능이 완전히 마비될 가능성이 농후할 정도로, 롯데의 우승은 모든 부산 시민들의 염원이다(…). 특히, 만에 하나 사직구장에서 롯데가 우승컵을 거머쥐기라도 하면... 헬게이트 오픈 상상도 아마 천조국의 팀이럴듯.....시카고 컵스 39년만에 우승처럼...........시카고 컵스나 롯데나 우승하면 이렇게 될 게 분명하다. 광고긴 하지만...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롯데 자이언츠의 지역 경제에 미친 파급 효과는 2,313억원에 달한다고 하며, 이는 같은 해 한국프로농구 전체가 전국에 미친 경제적 파급 효과인 1,970억 원을 뛰어넘는 수치이다.##

1.3. But... 막장 프런트

한 단체가 FC 바르셀로나를 모티브로 한 "부산 자이언츠"를 표방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인수하려 하는 이유.[39]

그러나 롯데의 가장 큰 마이너스 요인이 있으니, 구단 외부적으로는 꼴리건, 구단 내적으로는 바로 KBO 최악 수준의 막장 프런트. 팬들은 다른 팬들과 싸우는 횟수보다 프런트와 싸우는 횟수가 더 많다고 할 정도로 롯데 프런트의 막장력은 알아주는 편이다.

비밀번호 8888577 찍던 시절에는 KBO 총재 박용오로부터 "관중이 찾지 않는데도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일부 구단이 바로 프로야구 부흥의 걸림돌이다. 내년 시즌부터 수준 이하의 경기 내용으로 관중 동원력을 상실한 프로야구단의 경우 구단주 총회의 의견을 모아 강제 퇴출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는 야구판 전무후무한 비공식 경고를 받았을 정도로 바닥 Of 바닥 운영 실력을 보여주었다.기사 나중에는 9,10번째 구단 창단을 앞장서서 반대하는 등의 사건으로 몇십 년이 지났어도 그닥 이미지는 나아진 게 없다.[40] 그런데 알고 보면 삼성 구단도 만만찮게 반대의 소리가 컸지만 롯데 프런트의 까임 수준에 묻혔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이미지가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구단 최고의 레전드 최동원을 푸대접한 것, 故 임수혁 선수가 쓰러졌을때도 '재판까지 가서' 등 떠밀리듯 보상금을 지급한 것, 2010년 시즌 '7관왕 타자' 이대호에게 기어이 7,000만원의 의견차이로 연봉조정신청까지 간 사건 등 선수 대우면에서는 당연 말할 것도 없다. 연봉 문제로 선수들과 대립하는 것은 거의 연례 행사 수준. 이런 프런트에게 매년 협상에서 승리를 거둔 김주찬에게 경의를... 2008년 야구판 황금기 이전에는 시설이나 환경면에서도 덜 떨어진 수준으로 방치, 임재철은 한화를 떠나면서 '롯데보다 X같은 곳은 처음 봤다.' 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한화는 얼마나 안좋았길래 그리고 임재철은 2015년부터 다시 X같은 팀으로 돌아왔다

야구팬들은 '롯데라는 기업 자체도 쓰레기인데 야구단도 그에 지지 않는다.' 며 마구마구 까고 있는 실정. 구구절절 옳다!

여담으로 지바 롯데 마린스프런트가 최악인 구단중 하나인데 지바 롯데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나루세 요시히사가 2014년 시즌 종료후 FA 계약조건으로 "구단의 개혁"을 뽑기도 했다.그리고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1.3.1. 2012년 이후의 성과 : 투자 증가와 스카우팅 성공 사례

하지만... 2012년을 기점으로 프런트가 완전히 달라졌다. 시즌 전에는 이승호, 정대현 등 외부수혈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20년 동안 우승 못하면 프로구단으로의 존재 이유가 없다.' 등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결국 해체하게 됐... 시즌 후에는 김주찬, 홍성흔FA 계약에서 섭섭치 않는 대우를 약속하여 결과적으로 두 명다 놓쳤음에도 오히려 팬들에게 할만큼 했다며 칭찬을 받았고, 보상선수를 다각도로 분석하여 두 구단의 뒷통수를 쌔려버리는 신의 한 수를 세번이나 보여주며 '이게 정말 롯데 프런트가 맞냐?' 며 야구팬들을 감탄시켰다. 그리고 양승호가 입시비리로 감옥에 가면서 이것 역시 신의 한수로 보는 시각이 있으나 이건 그냥 얻어 걸린 거다(...).

이 모든 것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장병수 대표가 2010년 부임하면서 구단의 우승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앞서 말한 '존재의미' 드립을 포함해 '20년동안 우승 못하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등의 직설적인 말들이 그 증거이다. 그런데 결국 20년 채웠어ㅠㅠ

결국 2012년 12월, 프런트진은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로 부터 감사와 격려의 의미가 담긴 떡 조공까지 받는 초유의 사태 일이 일어났다. 중간에 보이는 모 갤러가 쓴 멘트처럼 보내는 쪽도 받는 쪽도 감개가 무량했을듯...

하지만 김주찬,홍성흔 등 스타급 선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나가버리자 관객수가 급감하게 되었고, 또한 김시진 감독의 삽질, 돈독 오른 프런트의 모습들에 2013년 시즌 들어서 이런 반응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때까지 병신짓으로 선수들 못잡는다고 까이던 롯데가 다시 한 번 달라졌다. 강민호를 심정수의 60억을 아득히 뛰어넘는 75억+α[41]라는 KBO 역대 최고 금액으로 강민호를 팀에 눌러 앉힌 것. 롯데팬들은 막장 꼴런트 강민호 몸값이 카더라로 80이라는 추측이 나돌던 시절 그냥 그 돈 2군에 써서 장성우, 용덕한을 키우자는 입장과 그래도 강민호인데 잡아야 하지 않겠냐며 싸우던 롯데팬들도 강민호를 잡자마자 꼴렐루야 한마음으로 롯데에게 감사인사를 남겼다. 만일 여기서 FA라도 잡는다면 다시 갱생했다며 용서받을 분위기. 롯데팬들은 내심 정근우가 고향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상황에서 SK와 정근우의 계약 난항 소식이 전해질때마다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카더라 그런데 정근우는 한화로 가버렸다 그래서 까이긴 까였으나....

여기에 강영식마저 우선협상 마지막날에 4년 17억에 계약을 완료했으며 유먼, 옥스프링마저 재계약 성공, 또한 FA로 풀린 최준석을 34억원으로 영입함으로써 7년 만에 친정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용병타자 히메네스도 영입하였다. 꼴빠 롯데팬들은 일제히 "우리 꼴런트가 달라졌어요"를 외치고 있다.
알고보니 스토브리그에서만 제정신이라 카더라

이후 연봉계약에 난항을 겪는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또 다시 이대호 연봉조정사건이 재현되는듯 했으나 손아섭에게 첫 협상자리에서 1억 9천만원을 인상한 연봉 4억을 제시, 손아섭이 수용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다시한번 칭찬받는 중. 배스트 댓글이 드콘 많이 먹고 있다. 이 와중에 댓글은 자일리톨을 시작으로 롯데호텔, 롯데아파트까지 나오고 있다

최하진 사장 취임 이후 적극적인 투자 외에도 다면적으로 야구단에 신경쓰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다.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1.3.2. 프런트의 현장 개입철밥통 코치 문제


2000년대 초반의 문제가 투자 부족과 관심 결여였다면, 2008년 이후에는 프런트의 지나친 현장 개입으로 인한 선수단 및 코치진의 분열이 나타나고 있다. 제리 로이스터 감독을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이 직접 데려왔을 때는 이런 논란이 없었으나 2009년부터 구단주 대행체제로 다시 회귀하면서 이런저런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고, 양승호 감독 부임 당시 권두조 수석코치를 프런트에서 꽂으면서 불거졌다. 권두조 코치가 양승호 감독보다 나이도 많고 야구관도 다르면서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생겼다.

이후 김시진 감독이 권영호 영남대학교 감독을 수석코치로 발탁하자 권두조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보직 이동했다. 그러나 한 시즌 만에 다시 권영호 1군 수석코치와 보직을 맞바꾸어 다시 1군 수석코치로 돌아왔고, 권영호 수석코치를 2군 감독으로 내린 뒤 1주일만에 경질(…)하는 막장 운영을 보여줬다. 이것은 김시진 감독에 대한 경고 차원이었다는 것이 중론.= #

이후 2014년 5월 27일 항명사태가 일어나 권두조 코치가 사임하였다. 여기서 이후 보도에 따르면 권두조 코치가 프런트의 입장을 들먹이면서 감독과 선수단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했다고 하며,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사임한 코치가 이후 스카우팅 팀으로 이동하는 회전문 인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루이스 히메네스의 대체용병을 찾는 일이 꼬여버리는 등 프런트에서 특정 코치진을 두둔하는 문제는 상당했다. 상세한 부분은 권두조 항목 참조.

이후 김시진 감독을 해임하려 했으나 최하진 사장의 의중을 무시하고 프런트에서 감독경질을 단행하려다 사장과의 충돌로 무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김시진 사퇴미수사건.

이 일로 최하진 사장과 배재후 단장과 이문한 부장을 축으로 한 프런트의 마찰, 최소한 소통부재가 표면화되었다. 팬들은 김시진 감독 경질 소문에 호응하는 분위기였으나, 이후 공필성 감독대행 체제로 가려고 했다는 것에 경악했다.

결국 시즌이 끝나고 김시진 감독이 물러난 이후 후임 감독을 두고 프런트 내부에서 충돌이 있은 뒤, 선수단과 코치진, 프런트 간의 심각한 갈등의 골이 표면화되었고, 봉합되기는커녕 너 고소까지 나오는 등,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프런트는 이 갈등을 해결할 생각도 없이 이종운 감독을 내정함으로써 1인 시위에 나선 팬들의 분노까지 더 가중시키고 있다.


해당 기사가 나온후 박동희가 대놓고 저격기사를 내놓았다. 충격과 공포의 롯데 CCTV 불법 사찰 이것이 사실이라면 범법행위를 구단 고위부가 지시를 한 셈이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 CCTV 사찰 사건 항목 참조.

1.4. 홈 구장

홈으로 쓰는 사직 야구장은 3만석 규모(이정도는 되야지 자리없으면 꼴빠들 문부수고 들어오는데)[44]로 되어 있으며, 펜스 높이가 국내 모든 야구장 중 제일 높다(담장 높이는 4.8m이고 철망에서 노란 선까지 길이가 1.5m이상 되는 것으로 추정됨). 국내 홈런왕 이승엽조차도 사직구장에서 친 홈런은 그리 많지 않았을 정도.[45]

오죽하면 외야담장이 높은 탓에 초반에는 담장에 장타성 타구를 맞아 다시 튕겨나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해 외야수가 펜스에 맞는 공을 미리 잡지 못하면 3루타를 내주는 사태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다행히 이를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었는데 '타구가 펜스에 맞을 곳 근처에 미리 대기해 있다가 펜스에 맞고 튕겨나오는 공을 그냥 잡아서 송구하는 방법'이 있어서 이 방법을 쓰면 2루타부터는 견제가 가능할 정도로 전략이 바뀌었다.

다만 구장 크기 자체는 좌우측 펜스까지 95m, 센터 펜스까지는 118m로 비교적 작은 편이다. 보조 홈으로 썼던 창원마산구장은 2만석으로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큰 구장이며 펜스 높이는 2M.

2군 경기장으로 구덕 야구장을 주로 썼다가, 2007년 말에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에 금송아지250억원을 들여 연습구장을 만들어, 2008년부터 2군 경기장으로 쓰고 있다. 김해 버스 상동공영2를 타면 구장 앞까지 갈 수 있다.

한편 부산역 인근의 부산 북항 재개발 계획에 야구장이 포함되면서 모기업인 롯데그룹과 부산시와의 협약을 야구장 신축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어진다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AT&T 파크와 비슷한 해안가 옆 야구장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1.5. 팀 컬러

원년부터 롯데는 타선은 약한 소총야구에 투수왕국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비밀번호를 찍고 그 분이 오시면서 2008년 시즌 이대호의 부진이 있었지만 조성환, 카림 가르시아, 강민호의 강타선과 손민한의 에이스를 내세워 포스트시즌에 진출, 2009년 시즌 이후에는 이대호, 홍성흔, 카림 가르시아의 존재로 인해 8개 구단 최강의 거포군단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졌다. 그 위와 아래에 위치하는 조성환강민호도 언제든 홈런을 쳐낼 수 있는 강타자. 이 막강한 타선은 2010년 이후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황금기에도 뚜렷한 약점이 있었으니, 너무 정공법적인 방법만 구사한다는 것. 자잘한 작전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팀 싸인도 못 알아 보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선구안 능력은 키우지 않았는지 팀 볼넷수는 4년 연속 7, 8위를 찍었다. 이 때문에 가을야구에서 번번히 고비를 마셨다.

2011년엔 제리 로이스터가 계약 만료되고 양승호가 왔는데, 올스타 브레이크 전까지 정말 안 되는팀의 모범답안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러나 장원준, 송승준의 선전과 뜻밖에 율판왕 임천사[46] 랜디영식의 대선전으로 2위까지 진입. 허나 플레이오프에서 아쉽게 탈락했다. 9회말 6:6 1아웃 만루 병살... 손아섭 개객기야

2012년엔 이대호의 일본 진출로 타선의 무게감은 줄었지만, 기존 선수들의 분발과 신인들과 만년 백업 선수들의 각성 그리고 양승호 감독의 끊임없는 성장 등으로 여전히 강팀 자리를 유지하였다. 홈런은 줄었지만 강력한 불방망이 타선은 여전하며, 약하다고 평가되던 계투진은 필승불펜 수혈기존 불펜투수들의 분투로 한층 더 탄탄해졌다. 전반기에는 필승불펜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골골하며 고생을 했지만, 후반기 이들 모두 복귀. 하지만 뒷심 부족으로 포스트시즌에서 SK에게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2012년 시즌 이후 홍성흔김주찬이 FA로 팀에서 나가며 타선의 무게감이 더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팀컬러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대학 감독 시절 저지른 비리가 드러나며 불명예를 떠안고 퇴진된[47] 양승호에 이어 김시진 감독이 부임, 과거의 투수왕국의 팀컬러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기대감이 높아졌다. 그리고 2013년 시범경기에서 팀 방어율 1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안정된 마운드와는 달리 과거의 롸끈하고 씐났던 빠따는 시범경기동안 5위의 팀 타율[48]을 기록하였다[49] 2012년에 이어서 2년연속 시범경기 꼴찌. 이러다 시범경기로 8888577찍는 거 아닌가

1.6. 외국인 선수


초기에는 펠릭스 호세라는 사기급 외국인 선수의 존재가 워낙 컸다. KBO에 뛴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1999년, 2001년 시즌 단일 시즌의 임팩트는 KBO 역대 최고의 타자 중 1명이었다. 같은 시기 호세의 소개로 영입된 에밀리아노 기론도 평작 정도의 투수는 되었다. 그러나 이후 흉작에 흉작을 거듭. 매니 아이바, 숀 헤어와 함께 KBO 막장 용병의 한축을 당당히 꿰차고 있는 존 갈과, 희대의 대수비 용병으로 존갈에 버금가는 명성을 날렸던 에두아르도 리오스가 바로 롯데에서 뽑은 선수.

2008년 이후로는 카림 가르시아, 존 애킨스, 라이언 사도스키 등 준수한 외국인 선수를 선발해 외국인 선수 선발에 대해서는 별 말 없는 상태.[50]

2012년에는 라이언 사도스키쉐인 유먼이 외국인 투수로 뛰었다. 사도스키는 그리하여 한국말을 마스터하고 특히 유먼은 2012년 들어 2% 부족한 롯데 선발진에서 에이스 대접을 받았다. 워낙 성적이 좋아 류먼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2년 시즌 후 좋은 모습을 보여준 쉐인 유먼과는 당연히 재계약을 했고, 부진했던 사도스키가 고향으로 떠나게 되었다. 사도스키의 자리에는 스캇 리치먼드가 왔는데, 스프링캠프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퇴출되었다. 대신 크리스 옥스프링이 롯데와 계약하였다. 그리고 옥스프링도 2013년 시즌에 13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한국 복귀시즌을 치루었다.

2014년에는 쉐인 유먼과 크리스 옥스프링과 다시 재계약 하였고, 외국인 선수의 추가 영입이 가능해짐에 따라 베네수엘라산 거포 루이스 히메네스를 영입하게 되었다. 이로써 2012, 2013년 시즌에 치명적인 단점으로 손꼽혔던 타선 공격력을 확보하게 된다... 였으나 그 히메네스가 후반기들어 타자 카리대 2호기가 되어버리며 폭망해버렸고 결국 암흑기 탈출이후 최초로 망한 용병이 되어버렸다. 유먼과 옥스프링도 영 좋지 않은데, 유먼은 방어율이 폭등했고 옥스프링은 타자들의 지원을 못 받는 상태이다.

한줄로 요약하면 암흑기를 빠져나간 이후로 부터 투수 용병 농사의 폭망은 없는 상황. 타자는 히메네스 때문에...

2. 팀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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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984년 우승 당시 모습 1992년 우승 당시 모습

2.2. 관련 기록

2.2.1. 역대 감독

역대 이름 재임기간 성적
초대 박영길 1982 ~ 1983 130전 53승 76패 1무
감독대행 강병철 1983년 50전 21승 29패 0무
2대 강병철 1984 ~ 1986 318전 159승 151패 8무
3대 성기영 1987 108전 54승 49패 5무
4대 어우홍 1988 ~ 1989 228전 105승 116패 7무
5대 김진영 1990 96전 36승 56패 4무
감독대행 도위창 1990 24전 8승 15패 1무
6대 강병철 1991 ~ 1993 378전 194승 180패 4무
7대 김용희 1994 ~ 1998 559전 249승 292패 12무
감독대행 김명성 1998
8대 김명성 1999 ~ 2001
감독대행 우용득 2001
9대 우용득 2001 ~ 2002
10대 백인천 2002 ~ 2003 163전 41승 119패 3무
감독대행 김용철 2003
11대 양상문 2004 ~ 2005 259전 108승 139패 12무
12대 강병철 2006 ~ 2007 252전 105승 141패 6무
13대 제리 로이스터 2008 ~ 2010 392경기 204승 185패 3무
14대 양 모씨 2011 ~ 2012 266전 137승 118패 11무
15대 김시진 2013 ~ 2014 256전 124승 127패 5무
16대 이종운 2015 144전 66승 77패 1무
17대 조원우 2016~ -

<역대 감독 통산 성적-2011년 6월 24일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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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승률이 0.600을 넘는 감독은커녕 0.550도 없다!

양승호 감독은 2011-2012 2년간 정규시즌 266전 137승 118패 8무로 승률 0.5310을, 포스트 시즌 포함 275전 142승 122패 8무로 0.5318을 기록했다.

2.2.2. 역대 성적

­ 우승
­ 준우승
­ 포스트시즌 진출 시즌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페넌트레이스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82 5위/6팀[51] 5위 롯데 자이언츠 80314900.388
1983 6위/6팀[52] 6위 100435610.434
1984 4위/6팀[53] 우승 100504820.510
1985 2위/6팀[54] 2위 110595100.536
1986 5위/7팀[55] 5위 108505260.490
1987 3위/7팀[56] 3위 108544950.523
1988 3위/7팀[57] 3위 108574920.537
1989 7위/7팀 7위 120486750.421
1990 6위/7팀 6위 120447150.388
1991 4위/8팀 4위 126616230.496
1992 3위/8팀 우승 126715500.563
1993 6위/8팀 6위 126626310.496
1994 6위/8팀 6위 126566730.456
1995 3위/8팀 2위 126685350.560
1996 5위/8팀 5위 126576360.476
1997 8위/8팀 8위[58] 126487710.385
1998 8위/8팀 8위 126507240.410
1999 드림2위/4팀 2위 132755250.591
2000 매직2위/4팀 4위 133656440.504
2001 8/8팀 8위 133597040.457
2002 8/8팀 8위 133359710.265[59]
2003 8/8팀 8위 133399130.300
2004 8/8팀 8위 1335072110.410
2005 5/8팀 5위 126586710.464
2006 7/8팀 7위 126507330.407
2007 7/8팀 7위 126556830.447
2008 3위/8팀 3위 126695700.548
2009 4위/8팀 4위 133666700.496
2010 4위/8팀 4위 133696130.519
2011 2위/8팀 3위[60] 133725650.563
2012 4위/8팀 4위[61] 133656260.512
2013 5위/9팀 5위 128665840.532
2014 7위/9팀 7위 128586910.457
2015 8위/10팀 8위 144 667710.462
2016 8위/10팀 8위 144 667800.458
2017 3위/10팀 3위 144 806220.563
2018 7위/10팀 7위 144 687420.479
2019 10위/10팀 10위 144 489330.340
2020 -위/10팀 -위 144 ----
KBO 통산 V2 4771218824721110.469

같은 원년팀인데 삼성 라이온즈와 정 반대의 성적이다.
심각한 것은 스탯을 보면 알겠지만 역대 리그에서 원년팀임에도 단 한 번도 6할을 넘기는 승률이 없다. 더욱 심각한 건 창단 당시 프로팀이긴 하냐고 깔보았던 넥센은 창단 8년만인 지난해 승률 0.619를 찍었다. 또한 정규리그 우승이 원년팀들 중(계승 팀 포함) 유일하게 "전무"하다.(이러다가 "후무"까지 될 듯하다. 지구 멸망 특집: 롯데는 왜 지구 멸망 전까지 우승을 못 했나) 팬심이라도 단결되면 모를까, 심지어 반대하던 신구단 NC는 창단 2년에 포스트시즌을 가고, 프런트 내부에서 터지는 온갖 병크가 팬심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쇄신이 절실하지만 프런트가 할 리가...롯데 팬들: 이제 됐어. 꿈도 희망도 없어.

그외 사항은 KBO 리그/역대 팀 스탯 항목 참조.

2.2.3. 역대 유니폼

2.3. 영구결번

롯데 자이언츠 영구결번
No.11 최동원

프로 참가 30년만에야 겨우 첫 영구결번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당연히 84년 롯데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 최동원(No.11). 84년 한국시리즈 4승 1패라는 거짓말같은 역투를 앞세워 팀의 우승을 이끄는 등 롯데에서 6시즌간 96승 67패 25세이브를 거둔 최동원은 2011년 9월 14일 지병인 암으로 타계한 후 9월 30일 공식적으로 영구결번되었다. 생전 고향팀의 감독으로 돌아오고자 의지를 불태웠던 그였지만, 결국 친정팀과의 화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롯데가 얼마나 레전드 대접에 소홀했는가를 보여주는 한 예.

아직까지 추가 영구결번을 진행할 조짐은 보이지 않지만 팬들은 대부분 윤학길, 염종석, 박정태 등이 적절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2.4. 독특한 응원 문화

롯데 자이언츠는 다른 구단과 달리 매우 독특한 응원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한번이라도 사직구장이나 잠실구장에 가면 이 독특하고 재미있는 응원문화에 매료되어 또 야구장에 가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 게임만 이겨주면 더 재미있을 텐데

  • 신문지를 갈기갈기 찢어서 술처럼 만들어 응원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팬들이 막대 풍선을 가지고 응원하는 것과 다르다.[62] 준비해오거나 입장할때 파는 신문지를 사거나. 이렇게 응원하다가 끝부분을 뜯어내서 바람불 때 날려주면 꽃가루(!!!) (조선일보같은 큰 일간지 사이즈는 잘 안찢어지고 잡기도 불편하다. 중앙일보나 교차로같은 타블로이드 사이즈가 쓰기 좋다.)
  • 대략 7~8회 이후에 나누어주는 주황색 쓰레기봉지비닐봉투[63]를 머리에 써서 응원을 한다.[64][65] 2005년 이후에 이 문화가 정착된것으로 사실 현대 유니콘스가 먼저 한 것이었다. 2004 한국시리즈 때 이미 현대가 노란 봉투로 응원하는 짤들이 있다. 물론 경기가 끝나면 풀어서 차곡차곡 쓰레기를 채운다.
  • 상대팀 투수가 견제구를 던질때마다 "!" 라고 야유를 보낸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공이 파울지역으로 날아왔을때 "아주라!"(아이에게 주어라) 라고 외치면서 부근의 유아나 어린이들에게 공을 뺏기는 주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근처에 애가 없다면? 저멀리서 애 아빠가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달려온다.애 있는게 벼슬인가...
  • 롯데 수비시 투수가 탈삼진을 잡거나 야수들이 허슬플레이를 연출하면 위치스의 '떳다 그녀!!'의 전주곡이 나오는데, 전주곡이 끝나면 노래의 시작부분인 "어느날-!!!"까지만 부르고 딱 끊는 응원이 있다.[66] 2013년부터는 이 응원이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명대사인 "살아있네~"로 바뀌었다.
  • 응원가로 부산 갈매기 &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는데 이 모습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하기도 한다. 흔히 이 두 곡의 경우, 승리가 유력해 질 때에 부르는 응원가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팀의 패배가 확실해질 때나 9회 마지막 공격때도 부른다. 무엇보다 '경기에는 지더라도 응원만은 지지 않겠다'라는 자이언츠팬의 응원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물론 홈구장인 사직이나 대구, 11시 멀티 잠실, 목동 같은 경우라면 이루어지지만 그 이외의 지방 구장은 롯데팬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므로 그냥 묻혀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 문화(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는 바다 건너 자매 구단인 지바 롯데 마린즈에 영향을 주었는데, 지금의 지바 롯데 응원단장인 진 토시오[67] 씨가 2000년대 초 한국 유학 시절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에서 일했고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롯데 자이언츠, 넓게는 한국 프로야구의 응원 문화를 받아들여 일본에 이식한 것. 지바 롯데의 응원가들 중 한국 노래가 있는 건 그 때문이다.

2.5. 선수단/등번호

3. 사건 사고

6. 기타

7. 시민구단 전환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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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건사고에 기재된 문제점으로 인해 롯데 자이언츠를 부산 시민구단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정확하게는 지자체의 예산을 타서 운영하는 K리그의 시민구단 모델이 아닌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와 같은 협동조합 방식의 시민구단이라고 한다. 일단 2015년 2월 6일 첫 공청회를 열 예정. 부산, 울산, 경남 주민들을 대상으로 조합원을 받을 예정이며, 향토기업이나 다른 조합의 참여도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 2015년 안으로 법인 설립과 조합원 모집을 마치면 2016년 초께 구단 인수를 본격 추진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롯데 자이언츠 구단측은 "팬들의 질책으로 받아들이겠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다만, 현실적으로 시민구단으로 전환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70] 시민구단으로 전환한다면 바다 건너 모 구단마냥 40년간 자팀 FA는 꿈도 못 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시민구단 추진 움직임이 구체적인 운영 계획도 없고 정치적으로 이용될 움직임이 보이며, 기존 롯데 자이언츠 팬들과 전혀 교감조차 없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먹튀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 부산자이언츠 협동조합 설립안의 실체가 나오면서 그나마 호의적이었던 일부 야구 팬들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2월 6일 열린 1차 공청회는 썰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으며 원론적인 반응만 보였을 뿐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했다. 여기에 시민구단 추진 세력은롯데가 구단을 안 팔겠다면 팔도록 만들겠다, 조합원이 아니면 야구장 입장권을 사기 힘들 것이다 등등의 태도를 보이면서 이들 역시 막장임을 사실상 인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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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2018년 시즌부터 팀의 엠블럼이 변경되었다.
  • [2] 실업구단으로서의 창단일. 프로 전환은 1982년 2월 12일.
  • [3] 현재 신동인이 구단주 대행. 신동인은 롯데제과 사장을 지낸 인물로 신격호의 5촌 조카다.
  • [4] 2014년부터 제2구장으로 사용
  • [5] 부산에 본사가 있는 스포츠 용품 생산 업체.
  • [6] 여담이지만 타 구단의 우승 챔피언 로고가 등록된 것과 달리 롯데의 경우 존재하지 않는데, 이는 애초에 구단이 챔피언 로고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 [7] 여기서 '거인'은 바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따왔다는 카더라 통신이 전해지고 있다(물론 롯데 구단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롯데 자이언츠는 실업시절에는 무시무시한 강팀이었고, 프로 출범 전에 일본의 수도인 도쿄가 연고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처럼 서울을 연고로 삼으려고 했다. 그리고 최훈 카툰에서는 한화 이글스와 새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에 푸르딩딩한 거인으로 나온다. 그 거인이 처음 나왔을 때에는 비누라던가(...),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놀림도 받았다. 여담으로 당시 한화는 병아리나 닭으로 놀림받았고(...) 현재 치킨이라는 멸칭별명의 기원(또는 확산계기)이 된다.
  • [8] 그 덕분에 로고에 지역명이 들어간 최초 프로야구팀이 되었다. 다른 종목은 다 지역명 맨 앞에 오고 일본야구도 지역명 넣는 추세인데 한국야구만 너무 인색한듯. 이어서 넥센, 두산, NC도 엠블렘에 적용.
  • [9] 마스코트 이름은 누리 & 아라 & 피니. 참고로 누리와 아라는 국토해양부의 마스코트와 이름이 같다. 그런데 일본 구단과 같은 마스코트와 로고를 쓴다고 까는 안티도 있다. 갈매기보다는 오리에 가깝다고 '오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10] 놀랍게도 우승을 2번 했지만 정규리그 우승 횟수는 0이다! 왜! 나! 자이언츠는 정규리그 우승을 할 수가 업서! 원년팀 중 유일하다. 1984년에 전/후기 통합승률은 전기리그 우승팀인 삼성에 밀리지만, 후기리그 우승+코리안시리즈 우승을 하기는 했다. 1992년의 우승은 일명 '미친 롯데'로 설명 끝.
  • [11] 1983, 89, 97, 98, 2001, 02, 03, 04년. 그러나 그 이후 10년간 꼴찌를 한 적이 없기는 하다. 2014년 기준으로 롯데가 마지막 꼴찌(2004년)를 한 후 꼴찌를 한 구단들은 KIA(05, 07), LG(06, 08), 한화(09, 10, 12, 13, 14), 넥센(11).
  • [12] 86,90,92,95,97,00,05,09,10,11
  • [13] 88,96,99,07
  • [14] 삼미만 아니였으면 최하위였다. 2005년 기아의 승률이 0.389였던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 [15] 게다가 1984년 시즌 리그 통산 성적은 4위에 불과하다
  • [16]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92 롯데와 01 두산에서만 나온 기록이며, 일본의 경우도 10 지바롯데에서 사상 최초로 나온 기록이다.
  • [17] 84년은 4위로 우승, 92년은 3위로 우승, 그리고 99년에는 4위 한화에 밀려서 준우승. 2011년 시즌은 정규시즌 2위를 차지했으나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는 바람에 최종 순위는 3위.
  • [18] 이 임팩트로 인해서, 최근 9년간 꼴찌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롯데는 여전히 "꼴데"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 [19] 그 안습의 1999 쌍방울과 타이기록.
  • [20] 역대 팀별 성적으로 따져도 공동 3위. 1위는 1985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 2위는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의 17연패. 그나마 기아와 공동 타이 기록을 작성
  • [21] 안습의 13한화가 13연패로 그 기록을 10년만에 깨주었다.
  • [22] 2013년 8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달성.기사.
  • [23] 팀 승률 꼴찌는 쌍방울(0.410), 2위가 히어로즈(0.418).
  • [24] 1995년
  • [25] 실질적으로 1994년
  • [26] 1993년
  • [27] 1994년
  • [28] 이 항목은 시카고 컵스 항목을 참조했다.
  • [29] 이성득 해설위원의 엔하 정보를 보면 알겠지만 이 중계가 정말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 이성득 항목 참조바람.
  • [30] 여기엔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2008년 촛불시위 기간 중 가장 위험했던 시기가 바로 롯데가 졌는데 마침 시위대가 그 주변을 지나가는 바람에 시민들이 합류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ㅎㄷㄷ. 게다가 심지어 롯데 경기가 있는 날에 촛불시위가 일어났을때, 전투경찰과 대치중이던 시민의 분위기가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맨 앞줄에서 라디오를 듣던 한 시민이 "아이 씨X!!"하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동대 중대장이 와서 "경기 어떻게 됐습니꺼?"라고 하자 그 시민은 "졌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의욕을 잃은 시민들이 모두 귀가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대로 롯데가 이겼을때 경찰과 시민이 하나되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중대장과 시민의 대화는 들은 사람이 많아 사실이지만 직접적 해산사유는 아니다. 애초에 화끈하게 관중동원(?)을 할 줄 알았던 서울쪽과 달리 1987년 이후 대규모 시위가 없던 부산은 집회 내도록 시위대가 길거리를 왔다갔다만 하다가 제풀에 지쳐서 집에 간 게 크다.응원단장들이 전부 사직에 있으니...
  • [31] 만일 부산 지역의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 타지역 구단을 응원할 경우(주로 전학생들이 겁도 없이 이런 경우가 많다.) 동급생들은 물론 교사들에게까지 갈굼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 [32] 1980~90년대에는 사직에서 원정팀 응원 자체를 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특히, 롯데 측 응원석에 상대팀 유니폼을 입고 앉아있으면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이는 마산구장도 마찬가지, 아니 마산이 더 심하면 더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 [33] 단 1980년대에는 예외가 있었다. 상대가 해태 타이거즈일 경우 3루쪽 원정응원석은 해태 팬들이 대부분 점령하고 있었는데, 이때까지는 부산이 현재와는 다르게 공업도시의 모습이 상당했고, 그로 인해 시골에서 올라와 돈을 버는 노동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당시 부산의 인구 중 전라도 출신 비율이 상당한 편이었고, 그들의 단결력으로 홈팬들의 핍박 속에서도 세력과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해태와의 경기가 있는 날에는 롯데 팬들도 3루쪽 접근은 피하는 편이었는데, 롯데가 이기든 해태가 이기든 투기장이 열릴 확률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1990년대 초 신발산업의 사양화 기타 공업지구의 이전 등으로 부산이 관광상업도시로 변모하면서 현재와 같이 관중석 전체를 롯데팬들이 점령하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 [34] 그러나 지역 특성인지, 성적이 바닥을 칠 때와 잘 나갈 때의 편차가 대단히 심하다. 아래 잃어버린 세월 관련 내용을 읽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묘하게도 부산 대우 로얄즈 시절 프로축구도 그랬다.
  • [35] 이상하게 롯데 관중수 하면 편차가 심하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 글을 보면 그건 거짓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롯데 역대 관중
  • [36] 삼성 라이온즈 홈구장은 대구역이 지척에 있으며, 대구 가는 기차는 부산/구포역에 많이 있다. 버스타면 동대구역 근처에 내리게 되기 때문에 거리가 좀 있다. 대전이나 서울행 기차는 부산역에서 상시 대기중. 특히 주말에는 정도가 더하다. 열차 증편이 상당히 많은데다가 주말 경기는 17시 시작이라서 잠실이나 목동에서 봐도 다 보고 여유있게 부산행 KTX를 탈 수 있으니까!(부산행 KTX 막차는 매일 밤 11시에 서울역에서 출발한다.) 경기가 빨리 끝나거나 자신이 최대한 서두르면 평일 잠실/목동 원정도 가능하다. 다만 문학구장과 광주구장은 거리가 애매해서 주말에만 가는 경우가 많은 듯. 광주는 기차보다 고속버스가 더 빠르다.
  • [37] 롯데팬이 만들어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 야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저놈들 제발 내쫓아주세요... 라고 만들어진게 롯데갤러리. 물론 아직도 야갤의 지분 중 상당수는 롯데팬들이 가지고 있다.
  • [38] 여담으로 이 걸그룹 멤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보게 된다.
  • [39] 그러나 하단의 설명과 각종 관련 기사에도 나오듯이 이 단체도 문제가 상당히 많다.
  • [40] 그런데 이게 롯데 프런트의 이미지때문에 '밥통 줄어들까봐 그러는거 아냐?' 라고 마냥 까대는 타팬들이 많은데, 장병수 사장의 명분을 들어보면 맞는 말도 상당히 있다. 설명한 대로 롯데 프런트라서 안 믿는 것일뿐 결국 NC는 창단된지 1년도 안된 2012년 1월경 신구장 건설을 놓고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고래싸움에 골머리를 썩혀야 했다.
  • [41] 마이너스 옵션은 아예 없다!
  • [42] 제2홈구장으로 2014년 시즌부터 사용
  • [43] 사직 야구장 이전에 사용했던 홈구장. 2007년 상동 야구장이 생기기 전까지 2군 홈구장으로도 사용 되었다.
  • [44] 나중에 개수해서 2만8750석으로 축소.
  • [45] 통산 324홈런 중 18개인데, 대구구장(193개)의 기록을 제외하면 잠실(30개), 광주(23개)에 이어 대전구장과 함께 세번째로 홈런을 많이 친 구장이며, 거기다 잠실은 원정경기 횟수가 2배로 많으므로 사실상 두번째이다. 이승엽의 홈런은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보다는 큰 포물선을 그리는 타구가 많기 때문에 펜스 높이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이승엽 전성기때 꼴데 투수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겠지.
  • [46] 임작가 시절때 욕(...)먹어도 천사같이 웃는다고 붙은 별명.
  • [47] 다만 양승호의 비리가 언론에 드러난 것은 자진사퇴한 이후다. 당시 자세한 경황을 몰랐던 팬들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한 줄 알고 아쉬워하기도 했지만, 내막이 밝혀진 후로는 구단 내부에서 낌새를 눈치채고 기민하게 뒷처리를 한 것이리고 보고 있다. 신의 한 수
  • [48] 0.239
  • [49] 이 와중에 팀 득점은 24점으로, 9개 구단중 아예 꼴찌를 찍었다(...).
  • [50] 하지만 2008년 이후 외국인 선수 선발은 로이스터 감독의 인맥이고, 제리 로이스터 해임 이후 2011년 코리는 대책없는 가르시아 방출 이후에 치바 롯데 마린스에서 보내 준 경우. 2008년 이후 롯데 스카우터진은 그야말로 숨쉬고 돈받아 먹었다.
  • [51] 전기 5위, 후기 5위
  • [52] 전기 4위, 후기 6위
  • [53] 전기 4위, 후기 1위
  • [54] 알다시피 85삼성의 통합우승 덕분에 한국 시리즈를 치르지 못했다. 그것때문에 준우승이라 인정은 못받는중. 종합 준우승 트로피가 사직구장 내 박물관에 있긴 하지만..
  • [55] 전기 3위, 후기 5위
  • [56] 전기 3위, 후기 3위
  • [57] 전기 4위, 후기 공동 3위
  • [58] 응답하라 1997에서 이 팀 감독인 시원의 아버지가 시원의 성적이 바닥이라며 다그칠때 시원이 자기도 꼴지하면서 왜 뭐라고 하냐고 언급하기도 한다.
  • [59] 팀 사상 최저승률 기록. 월드컵 붐과 맞물려 관중동원도 폭망했다.
  • [60] 정규시즌은 2위지만, 플레이오프에서 2승 3패로 정규시즌 3위 SK에 밀려 최종순위는 3위가 된 것이다.
  • [61] 준플레이오프에서 두산에 승리했으므로 최종 순위는 3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4위가 맞다. 최종 순위는 한국시리즈 진출팀을 제외하곤 시즌 순위를 기준으로 결정한다. 2008년 롯데가 준플레이오프에서 4위인 삼성에 패배했음에도 시즌 순위는 3위로 유지된 것도 같은 이유.
  • [62] 특이하게도 많은 롯데팬들은 막대풍선 응원을 시끄럽다고(...) 싫어한다.
  • [63] 최근에는 '응원도구'화 되면서 5회만 지나도 나눠주는 경우가 많다. 주황색 봉투에도 스폰서기업의 광고가 붙어있는 것은 덤.
  • [64] 그리고 주황색 봉투를 가지고 단순히 풍선처럼 부풀게 만드는 스타일 부터 시작하여 '꽃 머리띠'형태의 스타일을 만들거나 봉투 2개를 가지고 양갈래 머리 형태로 만드는 스타일 등 갖가지 바리에이션들이 존재한다.
  • [65] 같은 연고 농구팀 부산 KT 소닉붐도 KTF 매직윙스 시절에 이런 응원문화가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다.
  • [66] 상대팀이 득점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 병살타를 쳐 만회할 경우에도 전주곡이 재생되는데, 만일 더블플레이나 병살주자를 아웃시키고 뜻밖의 기회로 인해 진루 주자를 아웃시킬 경우 2번 연속으로 틀어준다.
  • [67] 이지본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기도 했다.
  • [68] 神はなぜ釜山に最高のファンと最悪のチームを同時にもたらしたのか
  • [69] 번역문: "(プレイオフが行われる)秋にも野球をしよう". 괄호 안에 있는 'プレイオフが行われる'는 '플레이오프가 행해지는'이라는 뜻.
  • [70] 롯데 그룹에서 수십년간 야구단을 운영해 왔던 데다 오너 일가가 야구단 매각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일본프로야구치바 롯데 마린스가 2013, 2014년 시즌을 지나오면서 한심한 구단 운영으로 "이따위로 운영할거면 구단 매각해라."라는 반응이 나왔다. 오죽하면 자팀 프랜차이즈 스타루세 요시히사가 "내 fa조건은 구단 프런트의 개혁"이라고 일침을 가할정도.(물론 롯데 구단측에서 쌩까는 바람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롯데그룹 오너 일가가 "구단 매각은 없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냈다는 카더라가 기사로 실린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