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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킹스

last modified: 2015-04-10 20:41:31 Contributors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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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킹스
Los Angeles K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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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967년
연고지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홈구장 스테이플스 센터
스탠리 컵
(통합우승)
2회
2011–12, 2013-14
컨퍼런스 우승 3회
1992–93, 2011–12, 2013–14
프레지던트 컵 0회
-
디비전 우승 1회
1990–91

Contents

1. 소개
2. 역사
2.1. 초창기
2.2. 웨인 그레츠키 시대
2.3. 충격과 공포의 첫 우승
2.4. 근황
3. 기타

1. 소개

NHL 서부지구 퍼시픽 디비전의 팀. 웨인 그레츠키 남벌의 상징.

2. 역사

2.1. 초창기

미네소타 노스 스타즈와 함께 68년 리그 확장과 함께 창단했다. 창단 사유는 간단했다. LA니까.

NHL이 추운 북부를 중심으로 성장했지만, 미국 제2의 대도시이자 무려 천만이 넘는 거대 시장인 LA를 NHL이 그냥 보고만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미 PCHL이나 WHL등의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LA지역의 아이스하키팀이 있었으며 이를 베이스로 캐나다의 사업가 잭 켄트 쿡이 투자해 팀을 창단한다.

신생팀으로 창단한 초기 빌 플렛,에디 조얄,에디 섁,레얼 르뮤등이 팀의 초기를 받쳤다면 팀이 처음으로 배출한 프랜차이즈 스타는 1975년 트레이드로 영입한 마르셀 디온이었다.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서 트레이드로 영입한 디온은 13시즌동안 킹스에서 뛰면서 킹스를 이끌었다. 하지만 디온의 활약에도 팀 전력은 쉽게 올라가지 않았고 디온이 뉴욕 레인저스로 이적한 80년대 중반부터 팀은 처지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한 팀 역사상 최고의 도박이 시작되었다.

2.2. 웨인 그레츠키 시대


명예의 전당급 선수가 바글바글 몰려있던 에드먼턴 오일러스의 연봉폭발을 주시하던 킹스는 이 슈퍼스타를 위해 과감하게 1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베팅해 오일러스를 유혹했고, 결국 오일러스는 그레츠키를 트레이드를 통해 킹스로 내준다. NHL 전체에 충격을 가져다준 이 트레이드는 킹스의 모험인 동시에, NHL이 지속적으로 노리던 미국 남부지역의 새로운 아이스하키 시장 개척이라는 의미까지 같이 담고 있다. 그 시작이 바로 NHL 당대 최고 스타의 이적.

그레츠키는 킹스로 이적한 첫해에도 변함없는 실력으로 포인트 1위를 차지했고, 80년대 중반 하위권을 전전하는 동안 얻어낸 킹스 통산 최다골 기록을 가진 레프트윙 루크 로비타유와 수비수 롭 블레이크등의 성장에 기폭제가 되었고 오일러스 시절 동료인 야리 쿠리와 폴 커피가 합류한 킹스는 전력을 쭉쭉 키워올려 드디어 1992~93시즌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한다. 전부 신생팀만 모은 상태에서 시작했던 서부지구의 세인트루이스 블루스가 3회연속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한 이래 처음으로 미국에서도 남부에 속하는 북위 34도선에 위치한 LA의 팀이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한 것이다. 스탠리컵 파이널은 NHL 전통의 명가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가 상대였고 결과는 1-4의 패배였지만 이것이 그레츠키의 킹스가 낸 성과이다.

92~93시즌 파이널 진출 이후 킹스는 이때의 지름으로 인해 너무 많은 돈을 써서 구단주 브루스 맥닐이 파산하는 충격으로 팀의 주축선수들을 정리할 수 밖에 없었다. 킹스는 플레이오프에 다시 진출하지 못하는 침체기를 겪었고, 그레츠키가 뉴욕 레인저스로 트레이드 되고, 팀의 에이스 루크 로비타유가 피츠버그 펭귄스로 떠나는등 팀 전력 재편이 이루어졌다. 로비타유는 다시 킹스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레츠키가 떠난뒤 팀은 플옵진출에 실패하거나 1라운드에서 떨어지는 정도의 팀이 되었고, 파업직전에는 로비타유,블레이크 둘다 팀을 떠나면서 비밀번호를 찍는 상황이 되었다.

2.3. 충격과 공포의 첫 우승

이를 바꾸게된 계기는 2008~09시즌부터.

2005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지명한 미국인 골리 조나단 퀵맨퀵(Jonathan Quick)과 같은해 1라운드에서 지명한 슬로베니아라는 무명 국가의 에이스 안제 코피타(Anže Kopitar)라는 젊은 두명의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하고, 기존의 2003년 1라운더 더스틴 브라운과 저스틴 윌리엄스,마이크 리처즈,드류 다우티,잭 존슨등의 선수들이 콤비를 맞추면서 조금씩 살아나던 킹스는 결국 2011~12시즌 초대형 사고를 친다.

시즌 초반 부진으로 헤드코치 테리 머레이가 경질되고, 대행이 4경기를 맡다가 다시 대릴 수터가 들어와 한해에 헤드코치를 두번이나 바꾸는 내홍을 겪으면서 겨우 8번시드로 들어갔지만, 그런 와중에도 팀이 8번시드를 지킬수 있었던 원동력인 조나단 퀵의 미친 퀵맨 모드 발동으로 1.96의 방어율을 기록한 수비력이 플레이오프에서 제대로 폭발한 것. 이때문에 1번시드로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지난해 스탠리컵 파이널의 수모를 되갚기위해 절치부심했던 밴쿠버 커넉스는 1라운드 시작하자마자 퀵의 퀵맨모드에 업셋당해 짐을 싸버렸고,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와 피닉스 카이오츠 역시 퀵의 미칠듯한 철벽수비에 가로막혔고 블루스와 카이오츠를 물리친 킹스는 팀 창단 2번째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해 전통의 강호 뉴저지 데블스까지 4대 2로 박살내며 팀 창단 최초의 스탠리컵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다.


킹스의 사상 첫 스탠리컵 우승


당연히 이 팀의 에이스인 퀵은 저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지는 콘 스마이스 트로피의 주인공이 되었다[1]. 그리고 2012~13년에도 강력한 수비력으로 팀을 플레이오프에 이끌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2.4. 근황

12-13 시즌은 간단히 말하자면, 쉬어가는 시즌이었다.

2013-14 시즌에는 PO에 진출한 후, 1라운드에서 산호세 샤크스 상대로 0:3까지 몰렸다가 4경기를 내리 잡고 역스윕에 성공한 후, 매 라운드 7차전까지 가는 처절한 접전 끝에 스탠리컵에 진출했다. 그리고 스탠리컵에서는 뉴욕 레인저스를 4:1로 잡고, 2년 만에 2번째 우승에 성공했다. 5차전은 홈에서 최종 우승을 확정짓는 역전 골든 골이라는 그야말로 하키에서 가장 뜨거운 승리를 얻었다. 한편, 이 시즌에 동부에서만 하던 야외경기를 서부지역 사상 최초로 다저 스타디움애너하임 덕스를 불러서 거행했지만, 골리 조나단 퀵이 3실점으로 털리면서 0-3 셧아웃 패를 당했다.

14-15 시즌에는 초반에 하위권에 처져 있다 와일드카드 가시권까지 순위를 끌어는 올렸으나, 다른 팀도 아니고 캘거리 플레임스에 덜미를 잡히며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한편, 그 LA를 이긴 캘거리는 4시즌 말에 플레이오프 복귀에 성공. 전년도 스탠리 컵 우승팀이 플레이오프에 못 나간 건 8년만의 일이라고.

3. 기타

  • 홈구장은 잉글우드 포럼과 스테이플스 센터. 즉 LA 레이커스LA 클리퍼스, 그리고 WNBA LA 스파크와 홈구장을 겸용한다. 때문에 스테이플스 센터는 같은 시즌을 소화하는 4개 구단의 일정을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는 중.
    2012~13시즌에는 이 3팀이 전부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여름에도 경기를 치르는 초 하드코어한 일정으로 구장 직원들이 쉬지못하고 야근을 해야했다. 그래서 2012년 NBA 플레이오프 2라운드 원정경기를 치르던 오클라호마시티 썬더러셀 웨스트브룩이 4차전 98:98 경기 종료 47초를 남겨둔 상황에서 미처 정비가 덜된 코트위에서 미끄러지는 실수로 역전패할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런 절호의 찬스에서 파우 가솔이 성급하게 속공을 시도하다가 패스미스로 케빈 듀란트에게 공을 뺏기고 듀란트의 결정적 3점 슛을 얻어맞으며 레이커스는 다잡은 4차전을 내주고 말았다. 이날 경기 내내 코트에 물기가 많이 남아 선수들이 미끄러졌는데 레이커스 입장에선 뼈아픈 실책으로 남았다.

  • 1984년 드래프트에서 톰 글래빈을 4라운드에 지명하였다. 하지만 톰 글래빈은 야구를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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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아울러 그는 1994년 브라이언 리치, 2011년 패트릭 케인과 더불어 세 번째로 미국인 수상자로 이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