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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last modified: 2015-04-06 23:53:43 Contributors

2, 3, 4번 항목의 로마 제국 5번 항목의 로마 제국

Contents

1. 개요
2. 고대 로마: B.C. 753(27) ~ A.D. 476
3. 서로마 제국 A.D.395 ~ A.D.476
4.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 중세 로마): A.D. 330 ~ 1453
5. 신성 로마 제국: A.D. 800(962) ~ 1806
6. 관련 항목

1. 개요

무려 2200년을 존속한, 보편제국의 아이콘.

보통 국가는 2000년은 커녕, 1000년도 넘기는게 힘들다. 그나마 한반도의 신라, 베네치아 공화국 등 1000년에 근접한 사례는 종종 찾아볼 수 있으나, 2000여년을, 그것도 이 정도의 영토와 인구를 가지고 버틴 사례는 로마가 유일하다. 초창기의 듣보잡 시절과 말기의 안습 시절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것을 다 제외하더라도, 로마의 존속년도는 굉장히 독보적이다.

로마를 수도로 하여 성립한 국가. 로마 제국(IMPERIVM ROMANVM)이라고 많이 불리지만 한때 공화정 체제인 적도 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은 건국부터 멸망까지 존속한 국가의 정식 명칭은 아니다. 다만 보통 '로마제국의 흥망성쇠 어쩌구' 할때는 왕정-공화정 로마도 포함한다. 또한 이 나라를 편의상 '고대 로마'라고 뭉뚱그려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이 나라는 고대중세에 걸쳐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복잡한데, 중세 서유럽에서 교황청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종교적 권위로 부활시킨 다른 짝퉁 '로마 제국'이 있고, 이 제국은 흥망성쇠를 거치며 근대 19세기까지 존속된다.

2. 고대 로마: B.C. 753(27) ~ A.D. 476

주로 아우구스투스(이르게는 카이사르) 이후의 고대 로마를 '로마 제국'이라 부르지만, 그 이전 공화정시대의 로마 또한 '로마 제국'이라 하는 경우도 많다. '공화정인데 웬 제국?' 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실제로 이 항목의 이전 버전에서도 '오류' 라고 단정지었지만, 사전적 의미로 '제국' 은 '황제국' 과 '다른 민족을 통치, 통제하는 정치체계' 라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1]. '로마 제국' 역시 이 경우로 보아야 하며, 분명한 공화정이었던 고대 아테네의 전성기 역시 '아테네 제국' 이라 불리기도 한다. 많은 경우 A.D. 476년 서로마 멸망 이전까지의 역사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처럼 로마의 멸망을 5세기로 보는 것은 15세기까지 존속한 중세 로마를 무시한 철저한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이며, 따라서 '고대 로마'만을 로마 제국으로 보는 인식은 엄밀히 따지면 잘못되었다.

3. 서로마 제국 A.D.395 ~ A.D.476

서기 395년 테오도시우스 1세의 두 아들이 일으킨 이른바 '동서 분할'로 인해 세워진 고대 로마 제국. 395년부터 476년까지 80여년 동안 존속했다. 시작부터 시궁창이라 서로마 제국은 동로마에 비해 허약한 경제와 내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군대를 가지고 동로마보다 더 넓은 국경을 방위해야만 했다. 높으신 분들이 막장이었던 건 두 제국이 다 같았지만 국력이 건실했던 동로마 제국은 윗대가리가 병맛이라도 버틸 수 있었으나 서로마는...

초대(?) 황제인 호노리우스의 재위 동안(395~423) 전반 13년은 최고사령관(마기스테르 우트리우스크 밀리타이) 스틸리코가 전권을 쥐었고, 408년 스틸리코가 숙청된 뒤에는 그 뒤를 이어 차례대로 최고사령관의 직위를 가졌던 스탄티우스, 아이티우스, 리키메르, 그리고 마지막 사령관이었던 오레스테스가 전권을 쥐고 황제를 막후에서 조종하였다.[2][3] 410년 서고트족에게 첫 번째 '로마 약탈[4]을 당했는데, 기원전 390년의 그것에서 무려 800년만의 재앙이었다.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가 죽은 뒤 425년에 조카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즉위했다. 이 황제는 455년 살해될 때까지 30년 동안 재위했으며, 그가 살해당한 455년에는 반달족이 두번째 '로마 약탈'을 자행했다. 이 직전인 451~452년에는 유명한 훈 족의 아틸라가 침공해 갈리아와 북이탈리아를 휘젓기도 했으나 이 공격은 아이티우스가 여러 게르만 부족과 연합해 저지했다.

발렌티니아누스 3세가 살해된 뒤 마지막 20년은 스틸리코나 아이티우스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어떻게든 지탱해나가던 이전 시대와는 달리 사실상 게르만의 입김을 받는 9명의 황제가 연달아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무력하게 몰락해 가는 시절이었다. 이 무렵을 전후해 서로마 제국은 갈리아,[5] 브리타니아[6], 스파니아[7], 북아프리카의 '변경'에 프랑크족, 부르군트족, 앵글로색슨족, 서고트족, 수에비족, 반달족 등이 잇따라 침공해 정착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이탈리아 일대만 다스리는 미약한 정권으로 몰락했다.

결국 서기 476년, 게르만 족 용병 대장인 오도아케르와 제국의 실권자인 오레스테스가 분쟁을 일으킨 끝에 오레스테스가 오도아케르의 물리력에 제거되고, 최후의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가 퇴위당하면서 멸망했다. 로마 국가 및 제정 로마의 건국자 & 창시자들과 최후의 황제가 이름이 같았다는 것은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8] 건국 1229년 만[9], 제국을 선포한 지 482년의 멸망이었다.

일반적으로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면서 고대는 막을 내리고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 1453년까지 1000년 동안 중세가 지속되었다는 인식이 강한 데, 여기에 대해서 서양 학계에서는 이론 제기와 지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그 자리에는 여러 게르만 국가들이 세워져 군웅할거 시대가 지속된다.

4.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 중세 로마): A.D. 330 ~ 1453

비잔티움 제국 = 동로마 제국 = 중세 로마 (제국)
근대에 이르러 서유럽의 역사가들이 중세 로마를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고대 로마와 구분지으려 하지만 사실 당시의 동로마는 "로마 제국" 그 자체로 여겨지고 있었다. 국가의 공식 명칭도 "Imperium Romanum" 즉, 로마 제국이다. 사실 고대 로마 때부터 제국 내 문화적 상업적 중심지는 서유럽 일대가 아닌 그리스지역이었다.[10]

또한 초기 그리스도교는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를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로마를 제외한 나머지 4곳이 모조리 제국의 동부에 몰려있었다. 콘스탄티누스 1세가 비잔티움으로 천도한 것도 이미 로마를 비롯한 서유럽 지역이 쇠퇴함에 따라 보다 번성한 지역으로 중심지를 옮긴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따라서 현대인들이 '동로마 제국'이라 부르는 국가는 로마 제국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오히려 A.D. 800년 로마 교황과 카롤루스 대제의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격으로 세워진 신성 로마 제국이야 말로 설정놀음에 불과하며, 로마 제국의 본체를 계승한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현재 비잔티움 제국이라 부르는 그 나라가 맞다. 애초에 동로마 제국은 말기에 맛이 제대로 갔지만 엄연히 유럽권에서 가장 앞선 경제적, 문화적, 학문적, 군사적 힘을 가진 나라였고, 그 위상은 '로마 제국'이라는 간판에 부족함이 없었다. 중간중간에 프랑크족, 훈족, 불가르족 같은 세력들에게 군사적 도전을 받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는 일시적인 경우일 뿐이며 이들은 곧 분열, 쇠퇴 등을 겪었다. 하물며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 문화, 학문 분야로 넘어가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뱀발이지만 제국 멸망 후 콘스탄티노폴리스(현 이스탄불)를 차지한 오스만 제국술탄들조차 스스로를 '룸 카이세리'(로마의 황제)라고 지칭하여 로마의 후계자임을 자부하였고, 동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정교회 국가 중 가장 강한 나라로 남게 된 러시아 제국 역시 동로마 황녀의 핏줄이 러시아 황가에 이어지는 것을 근거로 칭제하고 모스크바제3의 로마로 자칭하였다.[11]

'로마가 수도가 아닌데, 어째서 로마제국이냐?'라고 반론하는 경우도 있지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정식명칭 자체가 '새로운 로마'(노바 로마)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는 어디까지나 별칭. 다만 콘스탄티노폴리스고 부르는 사례가 훨씬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5. 신성 로마 제국: A.D. 800(962) ~ 1806

서유럽 지역에서는 로마 교황청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해당 지역의 게르만 왕국에게 대관식을 통해 명목상 서로마 제국 황위를 부여하는 일이 있었으며, 이러한 관습이 결국 중세 서유럽 제국인 신성 로마 제국의 탄생을 낳았다. 처음부터 이 나라의 이름이 '신성 로마 제국'이었던 것은 아니었고, 당시에는 '제국' 정도로만 불리다가 훗날 '독일 민족의 신성 로마 제국'이라는 국명이 정해지게 된다. 처음에 강한 황제권을 바탕으로 수립된 제국은 이후 제국이라는 말이 무색해보일 정도의 '대공위시대'를 겪기도 하고 합스부르크 가에 의해 다시금 부흥하기도 하지만,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 사실상 오스트리아의 전신이 되는 독일 민족국가화되며, 나폴레옹에 의해 실질적인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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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못 믿겠다면, 당장 인터넷 검색엔진에 '제국' 이라고 검색해보라.
  • [2] 그 동안 반달, 프랑크, 알레만니 등 게르만 부족들은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 제국 영내로 이주하였고, 이것이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그리고 북아프리카의 상실로 이어지면서 제국에 치명타가 되었다.
  • [3] 라인강 방어선이 허무하게 돌파당한 이유는 스틸리코가 이탈리아 방위를 위해 라인강에 주둔하고 있던 제국군을 빼냈기 때문이다. 그러다 스틸리코의 숙청과 게르만족 병사에 대한 학살, 그리고 고트족의 침입으로 제국 중심부가 혼란에 빠지면서 갈리아의 제국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이것이 파국으로 이어진다.
  • [4] 옛 서적이나 외국 서적에서는 로마 '겁탈'이라고도 한다.ang?
  • [5] 일단 408년에 라인강이 돌파당한 이후, 프랑크, 알레만니, 부르군트족이 갈리아에 정착했고, 이후 로마를 약탈한 서고트족이 아퀴타니아 지방에 정착한다. 노비오드넘(수와송)을 중심으로 한 북서부 갈리아는 여전히 로마의 통제 하에 있었고, 서로마가 멸망한 후인 486년에 프랑크족에게 멸망당할 때까지 존속하였다.
  • [6] 383년부터 현재의 웨일즈 지역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있었다. 407년 마지막 로마군이 반역자 콘스탄티누스 3세와 함께 갈리아로 떠나고, 호노리우스 황제가 브리타니아에 대한 사실상 포기 선언을 내리면서 브리타니아는 로마 제국에서 반강제로 독립하게 된다.
  • [7] 수에비족이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에 정착하였고, 반달족이 한때 이 지역에 정착하였으나 아퀴타니아 지방에서 밀고 들어온 서고트족에게 쫓겨나고 아프리카로 다시 이주한다.
  • [8] 동로마 역시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이름이 같은 콘스탄티누스 11세 때 멸망한다.
  • [9] 사실 이 건국년도에는 논란이 있지만(...)
  • [10] 로마제국의 문헌 중 가장 유명한 문헌인 <신약성경>만 하더라도 이민족들을 위해 그리스어로 쓰였다. 라틴어가 아니라.
  • [11] 이 주장에서 제1의 로마는 물론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 시를, 제2의 로마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말한다. 여담으로 몇백 년 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적백내전이 일어나자 황제파 잔당군 일부가 러시아 극동으로 쫓겨가면서 블라디보스토크제4의 로마로 선포한 적도 있었다.
  • [12] 유럽 문화권에서 '황제'라는 칭호는 로마 황제로부터 정통성을 내려받거나 인정받았다는 최소한의 족보가 있어야 했었다. 따라서 유럽 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 황제를 칭했던 모든 나라들은 그 근거가 비록 억지에 가깝더라도 일단은 로마 제국의 후신임을 명목상 내세워야만 했다. 그 강대했던 대영제국조차도 유럽 세계 바깥 인도 제국의 황위를 겸하기 전까지는 감히 황제 칭호를 공식적으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