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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

last modified: 2017-12-01 15:16:25 Contributors

역대 미국 대통령
39대 40대 41대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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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풀네임 Insane Anglo Warlord[1]Ronald Wilson Reagan
출신 정당 공화당
생몰년 1911년 2월 6일 ~ 2004년 6월 5일
재임기간 1981년 1월 20일 ~ 1989년 1월 20일
서명

< 1980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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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979 -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로널드 레이건 1981 - 레흐 바웬사

< 198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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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982 - 컴퓨터 로널드 레이건, 유리 안드로포프 1984 - 피터 위버로스

Contents

1. 개요
2. 바이오그래피
3. 정책과 성향
4. 은퇴 이후
5. 평가
5.1. 긍정적 평가
5.2. 부정적 평가
5.3. 네오콘
6. 한국과의 관계
7. 여담
8.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Mr. Gorbachev, open this gate! Mr. Gorbachev, Tear down this wall!"[2]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문을 여시오! 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장벽을 허무시오!)

1. 개요

우파에게는 80년대 오일쇼크로 인해 침체되어 있던 미국경제를 회복시키고 탈냉전기를 상징하는 대통령
좌파에게는 80년대 냉전에 미쳐 극우보수의 득세, 중동과 남미의 정치 불안정화 및 자유시장의 파괴를 불러온 대통령

"당신이 공화당원 이기를" - 1981년 존 힝클리 주니어의 암살 시도 후 병원으로 실려가던 도중 응급처치사에게...

미국에서는 일명 미국판 끝판왕 카우보이이자 진영논리에 병들어가는 미국을 만든 장본인으로 평가된다.

마거릿 대처와 함께 서방권 냉전기의 끝물을 끗발날리게 장식한 사람. 미국 역사상 패권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나타낸 대통령 중 한명. 미국에서는 우익성향을 아주 강하게 드러낸 대통령 치고 인기와 팬덤이 상당한 대통령. 대처가 호감도와 인기, 평가가 49.5대 49.5, 지역과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성향간, 좌우파간 평가가 너무너무너무 극명하고 극단적으로 갈리는데 비하면 레이건에 대한 평가는 갈리긴 하면서도 호감도와 인기는 자국내 대처를 뛰어넘는다. 다만 현재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극우주의의 민낯이 들어나게 되어 재평가 되어 부정적인 견해가 많이 늘었다.[3] 냉전미국 현대사를 얘기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가 없는 대통령.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라 한다. 아나그램은 퇴짜맞은 무식한 바보(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US President Ronald Reagan) = 퇴짜 맞은 무식한 바보(repulsed and ignorant arse))

2. 바이오그래피

영화배우시절. 과연 미남! 근데 웬 나치제복?
사실 비트부르크에 동지들이 묻혀있다

구두방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라디오 아나운서 일을 하다가[4] 그를 눈여겨 본 어느 기획사에 의해 영화배우가 되어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사실 그가 출연한 영화에서 레이건 본인은 비중이 없는 편이 많다. 유일한 예외라면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B급 영화 《전쟁 포로》. 이건 딱 반공물 수준이다. (...)[5] 그러나 명작영화 《카사블랑카》에서 험프리 보가트 대신 캐스팅 될 뻔도 했었다. 캐스팅되었더라면 대통령 레이건은 없었을 것이라는 게 중론.

오히려 그시절 레이건은 영화 배우 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정치활동에 집중했고 영화계 내 반공 운동의 선도주자를 달려 배우들의 사상을 FBI에게 일일이 보고할 정도였다. 그래서 성향도 점점 보수적으로 변해 민주당에서 탈당하여 공화당에 입당하였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지사까지 지낸 그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대권에 도전하려 했으며 결국 포드 - 카터로 이어지는 시기동안 미국이 내외적으로 혼란에 빠지자 레이건은 대통령 후보가 되어서 인기를 잃은 지미 카터를 쉽게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당선 당시 만 70세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령자이자 이혼 경력이 있던 최초의 대통령.

배우였던 시절에 유일한 히트작이《폭풍우의 청춘》이라는 영화였는데, 레이건 재임시절 이 영화를 반복시청하는 것이 레이건에 대한 충성심의 증표라는 우스개가 있다. 어느 정치인은 무려 60번을 봤다고 유머러스하게 주장했다. 그와 이혼한 첫 번째 아내는 이혼 사유를 묻자 "《폭풍우의 청춘》은 이제 질리도록 봤으니까"라고 했다고 한다[6]. 첫 번째 부인은 《이얼링스》 등에서 좋은 연기를 보여줬고 오스카상까지 탔던 터라 수준차이가 나서 이혼한 게 맞다. 직접적인 원인은 여자가 동료 배우와 바람을 피웠다는 게 정설. 사실 레이건도 둘째 부인인 낸시 레이건과 속도 위반으로 결혼했다. 사실 이혼 경력이 있고 속도위반을 한 사람이라 민주당 후보로 나왔으면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서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고 공화당에게 사생활로 공격받았을거다

2011년에는 두 번째 결혼 전에 잠깐 데이트했던 배우 파이퍼 로리(Piper Laurie)가 회고록을 썼는데, 레이건은 별로 잠자리에서 별로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로리는 18세였고, 레이건은 39세였으며 둘은 영화에서 부녀사이로 출연하다가 눈이 맞았다고. 40분이 넘게 거칠게만 힘을 쓰는 레이건에게 불평했더니 "너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이쯤했으면 오르가슴을 여러 번 느꼈어야지. 넌 병원에 가봐야해('There's something wrong with you. You should have had many orgasms by now—after all this time. You've got to see a doctor.')"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감은 넘치셨던 모양. http://gawker.com/5859493/reagan-to-bored-virgin-during-sex-you-should-have-had-many-orgasms-by-now

군생활을 1937년 아이오와 방위군 육군 제332기병연대 예비역 이병으로 시작, 같은 해에 예비역 육군 기병소위가 되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육군 항공대로 전속되어 1945년 12월 9일에 전역했다. 최종 계급은 육군 소령이다.

3. 정책과 성향

대통령이 된 후 그가 펼친 정책은 이거노믹스로 이야기되는데 미국과 적대하는 국가들에 대한 강경한 대외 정책과 감세를 통한 경제 안정화, 그리고 무시무시한 슈퍼무기 개발이 그 주요 골자이다. 레이건은 소련에 대해서 강경한 정책을 펼쳤고 그 결과물이 바로 스타워즈라고도 불리는 우주에서의 전쟁과 지금도 미국이 러시아 등을 견제하는 주요 수단인 미사일 디펜스이다. 또한 감세 정책은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경제 정책의 시작이 되었고 이 시기의 미국의 경제 정책은 기업에 대한 규제 약화와 복지 등 정부 지출의 축소, 그리고 세금의 감면이 주요 내용이였다.

레이건의 이러한 성향은 리버테리안 경향이 강한 미국인들의 성격에 가장 걸맞는 대통령이였다. 또한 레이건은 배우 출신답게 위트있는 말을 매우 잘해서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이 대단한 인간미로 승부할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그 덕에 레이건은 압도적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으며 재선 선거당시 민주당의 터 먼데일[7]을 상대로 무려 49개주에서 승리를 거두는 압승을 기록했다. 승리를 거두지 못한 곳은 먼데일의 고향미네소타와 골수 민주당인 워싱턴 D.C. 선거인단 수로 따지면 525 대 13이다.

1996년 공식석상에서 찍힌 마지막 사진.

한때는 그 인기를 이용해 다시 대통령직 3선을 제한하는 수정헌법 22조 개헌까지 시도하려고 했다. “이 조항은 국민들이 지지자에게 원하는 만큼 여러 차례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다”라면서.. 물론 그러한 개헌 시도는 시기적으로 무리라는 관측이 많아서 공화당 내에서 바로 박살났다.(...) 근데 이건 그만의 문제는 아니라서 빌 클린턴은 54세란 창창한 나이에 퇴임한 이후 “어떤 사람이 45세나 50세에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퇴임 20년 후 국가적으로 그 대통령이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문제에 부닥치게 될 경우 국민들은 그를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하기를 원할 수 있다.”라면서 22조 수정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빌 클린턴의 말년 지지도는 레이건보다 높았다(;;) 여하간, 애초에 공화당이 제2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막겠답시고 수정한 22조가 정작 공화당에게 더 손해가 되었다는 분석이 많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라든지...

여하간, 이런 인기 때문에 레이건에게는 가장 미국적인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4. 은퇴 이후

이후 레이건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각종 재단을 세워 후원활동을 하는 데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으며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을 앓다가 2004년 자택에서 만 93세 4개월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두 번째로 장수했고 사망 당시에는 최장수였다. 최장수는 간발의 차이로(...) 2006년 93세 5개월로 사망한 제럴드 포드.

레이건의 알츠하이머 치료를 위해 이제껏 낙태를 반대해온 공화당과 레이건 가족들이 냉큼 태아를 연구재료로 이용하는 것에 찬성했다.(...) 마이클 무어가 이것을 비꼰 바 있다[8].

5. 평가

5.1. 긍정적 평가

레이건의 군비 강화 정책은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불러일으켜 안 그래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침체되어가던 소련의 경제를 더욱 악화시키게 해 결국 동구권 붕괴를 불러왔으며 그의 감세 정책으로 인해 미국의 90년대 황금기가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카터가 임명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볼커를 끝까지 지켜준 것도 평가받는다. 볼커는 인플레이션 억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고금리정책을 유지하여 단기적으로 엄청난 불황을 초래했는데[9], 레이건은 온갖 공격과 위협을 받던(암살설까지 있었다) 볼커에 대한 신임을 유지하였다.

당시 연준은 금리를 21%(!!!) 까지 끌어올렸는데[10], 이로 인한 경기불황과 자산가치 저하로 많은 기업과 부동산들이 헐값에 매각되었고(당시 엄청난 버블경제를 구가하던 일본이 많이 매수했다), 당연히 레이건 정부에 대한 분노와 볼커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르듯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버블을 방지하고 경제를 구조조정하였으며,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에 대해서도 공세적 입장을 유지하며, 클린턴 대통령 시대 역대 최고의 경제호황을 누리게 된다.

이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업적은 분명 레이건의 가장 준수한 업적이지만, 민주당 지지층에서 가장 평가하지 않는 업적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레이건 시기 물가가 진정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여론조사도 있다.[11]

2005년에 공개된 기밀문서들에 의하면, 레이건은 잘 알려진 고르바초프와의 관계 외에도 그의 전임자들인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그리고 르넨코와의 개인적인 대화에 매우 신경을 많이 썼다. 이를 바탕으로 단순한 '냉전 전사'(Cold Warrior)가 아닌, 대화로 냉전을 풀어가려는 레이건의 모습을 재탐구하는 책들이 씌여졌다. 관심이 있다면 자세한것은 제임스 그레이엄 윌슨(James Graham Wilson)이 지은 《즉흥적인 대화의 승리》(The Triumph of Improvisation)와 제임스 맨(James Mann)이 지은 《로널드 레이건의 반란》(The Rebellion of Ronald Reagan)을 참조해보자. 해당 문서들은 National Security Archive에 온라인에 공개되어있다.

그리고 이 양반, 아이슬란드 레익캬빅에서 하마터면 소련르바쵸프와 함께 모든 핵무기들을 영구폐기시킬뻔했다. [12] 다만 레이건이 우주에서 대륙탄도미사일에 레이저빔(...)쏘는 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기술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고르바쵸프도 쉽사리 핵무기를 내려놓지 못했다.[13] 당시 대화내용을 보면 레이건이 관련 기술들을 소련에게 넘겨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고르비로서는 믿을수가 있나.

5.2. 부정적 평가

그러나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게 많다.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미국의 스타워즈 계획을 뚫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미국의 스타워즈(SDI) 계획에 들어가는 비용의 단 10분의 1이면 충분하다는 결론을 얻었을 정도로 미군의 군비 지출은 낭비적인 측면이 컸다. 즉 소련은 군비 때문에 무너진게 아니라 공산주의의 모순으로 무너진 것이라는 견해다. 다만 이것 말고도 냉전사학계에서 냉전의 붕괴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가 뜨겁게 오가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연구를 해보는걸 추천한다. 그리고 이런 레이건 시대의 군비 확장은 이미 지미 카터 때부터 시작되어 왔던 것으로 군비 예산 증가율은 두 대통령의 재임기간 거의 비슷했다. 레이건만 지적하는 것은 옳지않다. 이렇게 치솟던 군비 지출은 후임인 조지 H.W.부시대에 이르러 정리되기 시작한다.[14]

안 그래도 많이 들어가는 군비 지출은 당시 감세 정책을 펼치던 미국 정부의 재정에 크나큰 악화를 불러왔다. 이른바 미국 정부의 악명높은 "쌍둥이 적자"(무역 수지와 재정 수지 동시 적자)는 그의 정책에서 시작된 것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70%에서 무려 28%까지 떨어졌으나 경제적 효과는 미미하다 못해 부정적이었다. 그 덕택에 임기말 들면서 서서히 일본이 미국을 앞지른다는 얘기가 나올정도.

또한 니카라과콘트라 반군 지원과 이 과정에서 이란과 커넥션이 있었다는 게 밝혀진[15] 이른바 이란-콘트라 사건으로 외교 정책에서 지나치게 강경하고 비인도적이다라는 욕을 들었으며 그 외 성과를 거둔 정부 정책(소련과의 군축 합의라든가)도 결국 카터 시절에 만들어진 거 레이건이 받아먹은 거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1985년 4월에 2차대전 유럽 전선 종결 40주년을 맞이해 서독을 순방하던 중 나치친위대 전사자들이 묻혀 있던 비트부르크의 묘지를 방문해 조의를 표한 것 때문에 엄청나게 까였다. 레이건은 '그들은 나치의 끄나풀이기는 했지만, 복잡한 정세 속에서 상황 판단을 못한 희생자에 속한다고 생각한다'고 변론하고 일정 중 베르겐-벨젠 강제수용소 방문을 추가하는 것으로 반발을 무마하려고 했지만, 미국 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은 물론이고 라몬즈프랭크 자파 같은 뮤지션들에게도 각각 'My Brain is Hanging Upside Down (Bonzo Goes to Bitburg)', 'Reagan at Bitburg'같은 노래들로 대놓고 디스당했을 정도.

부정부패 문제도 레이건 정부때 꽤 많았다. 레이건 자신은 법적으로 문제된 일이 없었지만, 레이건 정부에 참여한 여러 명의 고위 관료들이 후에 부패혐의로 재판정에 서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더구나 레이건 시절부터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본격적으로 미국 정치에 개입을 시작했기 때문에 건국 이후 엄격한 정교분리를 추구했던 미국적 관행이 이때부터 퇴색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 이전까지는 미국에 보혁갈등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으나 레이건을 거치면서 이것이 증폭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도 한국 못지 않게(...) 보혁갈등이 심각해졌다.

마지막으로, 레이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견해는 미국 내의 "welfare queen" 이미지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직역하자면 "복지 여왕"으로서, (보통 유색인종의) 여성이 일은 안하고 복지 혜택만 타간다는 비난을 했다. 하지만 미국 사회학계에 의하면 실제로는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정상적인 미국 가정", 즉 결혼하고 부부가 함께 일하는 가정을 "정상"의 이미지로 규정하고, 독신인 여성들을 탄압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복지혜택은 정말 콩알만한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며, 그러면서 일부러 복지혜택 자체는 없애지 않았는데,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들을 반면교사로 삼으려고 없애지 않은것. 그리고 레이건은 또한 파업하는 공항 노동자들을 한꺼번에 해고한 일로도 유명하다.

여기까지 보면 알겠지만, 정말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인물.

5.3. 네오콘

레이건의 당선은 공화당 내의 신보수주의자들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들은 훗날 네오콘이라는 이름으로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에서 안좋은 쪽으로 대활약을 펼친다.

떡밥으로 레이건(Reagan)이라는 이름이 원래는 '리건'으로 읽혔는데(특히 당선 이전의 한국 신문), 이름이 비슷한 유대인 재무장관 도널드 리건(Donald Regan)과 이름이 겹쳐서 고쳤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으나 전혀 사실이 아니며 레이건으로 읽어달라고 부탁한 것이 리건 임명보다 먼저다. #

6. 한국과의 관계

미국 대통령으로서 재임시절 여러번 방한한 적도 있었고 그 당시 대통령 전두환과도 정상회담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장 프로그램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시키면서 전두환은 취임 직후 한국 대통령 최초의 백악관 국빈방문을 성사해 냈고, 이후로도 찰떡같은 한미공조를 이뤄냈다. 일본나카소네 야스히로 수상과도 절친했던 레이건은 한미일 삼각공조를 성공적으로 이록해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전두환의 뒤를 무조건 봐준 것은 아니라서 김대중이 전두환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전두환 정권에게 압박을 가해 후일 대통령이 되는 김대중이 사형되는 걸 막고 미국으로 망명을 가게끔 도와주었으며(이건 카터의 부탁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6월 항쟁 때에도 전두환 정권에게 압박을 가해, 군 부대가 투입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면서,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걸 방지하여 한국이 민주화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인 최초의 미 국무성 통역가 통 김(Tong Kim, 한국명 김동현)씨의 증언에 따르면 퇴임 이후 알츠하이머 때문에 서서히 기억력이 떨어지고 있었던 레이건은 전두환과 만나는 4번째 회담임에도 불구하고 회담을 30분 남겨둔 브리핑자리에서 전두환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러자 다급해진 참모들이 레이건에게 전두환을 “서울에 방문했을 때 학생들을 매우 부정적으로 말하던 사람”이라 설명했다. 레이건은 그때야 비로소 “아, 학생들은 죄다 공산당이라고 했던 그 친구!”(...)라며 기억해냈다.

7. 여담


배우 출신답게 인간미로 승부한 정치인이다.

1980년 대선 유세 중 그의 반대자들이 야유를 부리는 통에 연설 진행을 못하자 일갈하는 장면. "Oh, Shut up."

테쿰세의 저주를 처음으로 깬 대통령인데 재임 중인 1981년 3월 30일 정신병자 존 힝클리 주니어[16]가 쏜 총에 맞았지만 심장을 빗나가서 큰 부상없이 겨우 살았다. 사실 범인의 총알은 단 한 발도 레이건을 맞추지 못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방탄차에 튕긴 총알을 맞았다. (하지만 레이건과 달리 백악관 대변인인 제임스 브래디(James Brady)는 총알에 맞고 하반신 마비로 평생을 훨체어 신세로 살다가 2014년 8월 4일 74살 생일을 얼마 안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압권인 것은 생사를 다투는 상황에서도 꽤 위트있는 농담을 했다는건데, 들것에 실려나갈 때는 자신의 상처 부위에 응급처치를 하던 간호사들에게 내 아내 낸시에게 허락은 받고 만지는 건가?라는 말을 했고, 수술실에 도착했을 때는 의사들에게 당신이 제발 공화당 지지자이기를...이라는 말을 했다.[17] 그리고 그 때문인지, 살았다.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자마자 아내 낸시 레이건에게 "여보, 피하는 것을 까먹었어(Honey, I forgot to duck)."라고 너스레를 떨었다고. 이 말은 뎀프시롤로 알려진 미국의 유명한 복서 잭 뎀프시가 1926년 진 터니에게 패한 후 자신의 아내에게 한 유머로 유명한데 적절하게 리바이벌한 것.

병원으로 이송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사건 발생 몇 주 후 일기에 "총을 맞는 것은 아프다"살살 맞으면 안아프다며 "나를 쏜 젊은이에 대해 증오심을 느꼈으나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고 썼다. 그는 또 "나는 낸시가 그곳에 있는지 찾으려고 눈을 떴다. 그녀가 그곳에 없는 날을 맞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며 낸시 여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드러냈다.

하지만 이렇게 담대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는 달리, 고령인 몸에 중상을 입고 가까스로 살아난 탓에 이 사건 이후에 급격히 쇠약해졌다고 한다. 한동안 소통을 백악관에 상비할 정도였고 집무 중에 피를 토한 적도 있다.

퇴임 후인 1992년에 연설 중에 반핵주의자의 습격을 받기도 했다.

그가 대통령이던 시절에 그의 부통령이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였다.

배우 출신답게 말을 굉장히 비유, 묘사적이면서도 맛깔나게 했다고 한다. 실제 인기 비결 중 하나는 바로 저 어투였다는 말도 있을 정도. 실제로 기자에게 했던 명대사들을 들어보면 그가 다른 대통령들과는 많이 다름을 알수 있다. 조지 부시가 저 말투를 어설프게 배운 것은 중요치 않다

  • "불경기란 당신의 이웃이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 불황이란 당신이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 경기회복이란 지미 카터가 실직할 때를 말합니다."[18]

  • "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날 깨워도 좋소이다. 국무회의 중이라도 얼른 나를 깨워주시오" - 레이건은 국무회의 중에 자주 졸았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본인이 자학개그를 한 것.

  • "경제학자란 현실에서 발생하는 뭔가를 보고 그게 이론적으로 성립할지 여부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다."

  • "제가 보청기를 착용한다는 건 비밀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에 갑자기 작동이 잘 안 됐습니다. 알고 보니 KGB가 제 보청기에 도청장치를 했더라고요."

  • 언젠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 공화국데즈먼드 투투 주교의 방문을 받았는데, 투투 주교는 레이건의 면전에서 미국과 레이건의 강경정책을 비판했다. 투투 주교가 돌아간 후 누군가가 "투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자, 투투라는 이름의 운율(TuTu)에 맞춰 "So-So(그저 그랬어요)"라고 말해서 좌중이 뒤집어졌다고. 이 일화는 레이건의 장례식날 한 번 더 언급되었는데, 이 때도 폭소가 터졌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사람들을 웃긴 셈.(...)뼛속까지 개그맨

  • 대통령 후보 시절 카터와 TV토론을 벌였는데, 토론이 끝난 후 참모들이 "처음 토론에 나선 것 치고는 꽤 훌륭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덤덤하게 "무슨 소리! 나는 존 웨인과 같이 촬영한 적이 있는데!"라고 받아쳤다고 한다. 무명배우인 자신이 존 웨인 같은 대배우와 같이 촬영 할때도 안 떨었는데 카터와 맞서서 덜덜 떨 까닭이 있겠느냐는 농담. 역시 자신이 무명배우였다는 걸 강조한 자학개그.

  • 카터와의 TV토론 때 카터가 자신을 비판할 때 씨익 웃으면서 "There you go again(또 시작이네요)"라고 받아넘기는 행동이 유명세를 탔다. 당시의 실제 동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다. 레이건의 이 행동은 카터에 비해 레이건을 상당히 위트 있는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레이건의 뛰어난 이미지 활용을 보여주는 사례.

  • ABC뉴스의 샘 도널드슨의 최근 지속 경기침체에 대해 연준의 실수와 국회탓을 하는데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내가 꽤 오랫동안 민주당원이었기 때문임이라고 받아쳤다(...). 원본

  • 재선에 도전 중이던 1984년 8월 11일에는 대국민 주례연설 직전 국민 여러분. 저는 방금 소련을 멸망시킬 명령을 승인했습니다. 5분 후에 우리 군의 폭격이 시작될 것입니다라는 흠좀무한 멘트를 남겼다. 사실은 방송 직전에 입을 풀기 위한 조크였고, 실제 방송에도 나오지 않았지만 소련군에서 이 내용을 인지하고 약 30분간 긴급대기 태세에 돌입했다는 후문. 원본

  • 이 위트 있는 레이건도 멕시코에서 어리버리를 탄 적이 있는데, 멕시코 국민들을 상대로 연설을 했는데 그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레이건이 연설을 마친 후 한 멕시코 고위관리가 일어나 스페인어로 연단에서 연설을 했는데 그의 연설에 멕시코 국민들은 박장대소했으며 연설이 끝나자 열화와 같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머쓱했지만 당황한 기색을 감추기 위해 레이건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는데 옆에 있던 멕시코 주재 미국 대사가 이렇게 귀띔했다. "저 사람은 대통령님 연설을 통역한 것 뿐입니다."(...) 멕시코인들의 반응이 무덤덤한 이유는 영어를 몰랐기 때문인가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제법 좋은 편이지만 정치학자나 역사학자 같은 전문가들의 평가는 조금 미묘. 혹평하는 쪽에서는 부도덕한 스캔들교양 없는 면모, 지나친 군비 확장, 사회보장제도의 축소, 그에 따른 기독교 근본주의 확산 등으로 최악의 대통령으로 비판하고, 높이 평가하는 쪽에서는 냉전 종식의 주역이라는 것과 지금의 강력한 미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옹호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사실은 전문가들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대통령이다. 당장 저 위의 동영상 링크의 댓글들을 보면 치열한 병림픽설전이 벌어짐을 알 수 있다.

위에 링크된 카터와 레이건의 토론 동영상의 리플들을 요약하면 대략 이렇다.

레이건 때처럼 세금 감면하면 경제가 활성화됨 → 빚만 늘었거든연? 그래서 뭔 꼴이 났는진 부시 보면 모름? → 레이건 때 예산 법안은 민주당이 통과시킨겁니다만?[19] 현 정부는 잘하는게 있긴함? → 그래서 중동에 무기 팔아먹고 깽판쳐놔서 미국 욕먹임? → 카터같이 무능한 대통령보단 낫습니다만? → 수꼴 티내지 말고 공부나 더 하시젼 → 님 난 이 토론 직접 갔었음 깝 ㄴㄴ
이런 식(...)어디서 많이 본거같지만 그냥 넘어가자

정말 미국의 모든 현안에 관한 활발한 키배가 벌어지고 있다. 보수 진보 대립이 확연한 것은 천조도 마찬가지인듯.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임상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을 공부하다 보면 거의 반드시 언급되는 대통령. 이유는 다름 아닌 알츠하이머의 대표적인 예로 소개된다. 2011년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딸이 타임지에 기고한 수기엔 그의 말년의 생활상이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다. 주위 사람들이 대통령임을 알아보고 인사를 해도 딸에게 '저 사람이 어떻게 날 아냐?'라고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차남 론은 자신의 부친이 재임기간에 알츠하이머 조짐이 보였다는 회고록을 출판했고 그로 인해 다른 남매들에게 사실 왜곡이라고 까였다. 왜냐면 론은 아버지와 달리 이라크전을 반대하고 오바마를 지지하는 등 진보주의자이다.

배우 시절엔 역시 훈남이었다. 그러니까 배우를 하지.


뱀발로 축구선수 호날두의 이름도 이 대통령에서 유래하였다.

이름의 정확한 발음은 '로널드'보단 '롸널드'에 좀 더 가깝다. 뉴스같은데서 들어보면서 한번 해보자.

별명이 레일건이라고 한다.

8.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왠지 SCP 재단에선 취급이 좋질 않다. 암살 미수 사건 등 그의 정치 여정을 소재로 한 예언서 만화시리즈가 SCP로 등록되어있지 않나, 심지어 자기 연설을 완전히 고인드립 수준으로 능욕한 고어 괴영상이 나오질 않나... 덤으로 세계도 한 번 멸망시킬뻔 했다.

카이저라이히:대전의 유산에서는 무명 배우가 아니라 그럭저럭 유명한 배우로 성공하지만 미국 내전 통에 의문사당한다. 지못미...
근데 태평양 정부(켈리포니아 공화국)의 장관으로 등장한다. 어라?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데이터 이스트사에서 개발한 드래곤닌자라는 격투게임에서는 악의 닌자단에 의해 납치당한 레이건 대통령을 구출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막상 구출된 레이건 대통령은 포상이랍시고 준게 겨우 햄버거 1개였다.

스티븐 킹의 11/22/63에서는 케네디 암살 미수 사건[20] 이후 망해가는 미국에서 험프리 다음으로 취임한다. 취임시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이 더 큰 스케일로 벌어지고 이란에 군사적 개입을 하는 바람에[21] 인질 전원이 참수되는 것으로 마무리.

버틀러-대통령의 집사라는 영화에서 알란 릭맨이 레이건으로 나오는데 상당히 인간적인 미를 선보인다. 주인공 세실 게인즈 부부를 만찬에 초대하기도 하였고 백악관 내 흑인과 백인 직원의 임금, 승진 기회를 평등하게 했다. 세실이 은퇴하자 역대 대통령을 대표해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세실이 은퇴 후 주미 남아공 대사관에서의 항의 시위[22]에 참가한 것을 보면 그가 남아공의 경제제재를 반대한 것이 주인공의 신념을 흔든 계기 중 하나로 보인다. 비록 미국 내의 인종차별은 아니지만 작중에서 인종 차별에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 유일한 대통령으로 아이젠하워 이래 세실이 갖고 있던 '대통령이 우리를 위해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흔든 것으로 보인다.

테디 루스벨트 전기로 유명한 에드 모리스의 레이건 전기가 꽤 유명하다. 가상의 사람들을 통한 레이건의 이미지 구현으로 논란이 심했는데 의외로 객관적이라는게 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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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Ronald Wilson Reagan의 아나그램이다.
  • [2] 1987년 6월, 레이건이 베를린에서 한 유명한 연설. 문은 브란덴부르크 문, 장벽은 베를린 장벽을 의미한다. 이 말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물론 동유럽 공산권의 '철의 장막' 붕괴를 상징하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 [3] 사실 이건 당연할수밖에 없는게 영국은 상원 선거를 따로 치르지 않고, 하원의 권한이 위낙에 막강하다보니 마가렛 대처가 별다른 견제를 받지않고 업무를 수행했던데 반해 당시 레이건 정권 당시에 상원은 공화당이 장악했긴했지만(86년 중간선거에선 뒤집혀짐) 하원은 그래도 민주당이 우세였기에 정책수행에 있어서 일정수준의 견제를 받아서 마가렛 대처보다 온건할수밖에 없긴 했다. 물론 스타일의 차이도 크긴 했지만...
  • [4] Timeline191 시리즈에 잠시 언급이 나온다
  • [5]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과거로 간 마티 맥플라이가 브라운 박사에게 자기가 살고 있는 미래 세계의 대통령이 레이건이라고 말해자 박사가 '그 듣보잡 3류 영화배우가 대통령이 됐다고? 구라 좀 작작 쳐라'라고 말했을 정도. 듣보잡 배우 이름도 외워주는 상냥한 박사님
  • [6] 무명배우 나부랭이와는 더 이상 못살겠다는 유머
  • [7] 카터의 부통령 출신. 먼데일은 최초의 여성부통령 후보까지 앞세웠으나, 여러모로 불리했다. 이 압도적인 패배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 [8] 무어 왈, "태아고 나발이고가 문제냐? 기퍼(레이건의 별명)가 죽게 생겼는데!"
  • [9] 물론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고질적인 불경기와 카터 시기 일어난 1979년의 제2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이다. 볼커가 정말로 배짱이 있다고 평가되는 부분은, 제2차 석유파동에 따른 엄청난 고물가+경기침체의 상황에서 더욱 더 심한 경기침체를 감수하고 물가안정에 올인하였고, 결국 인플레를 잡았다는 데 있다.
  • [10] 참고로 이때 베네수엘라와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등 라틴 아메리카국가들도 엄청 피봤다. 안 그래도 원자재값이 한창 떨어지는 바람에 재정에 여유가 없어진 상태에서 고금리 버프까지 겹치니 도저히 버틸수가 없어지게 된 것. 거기에다가 그 이후의 신자유주의 정책까지 펼쳐지면서 결국 21세기들어 중남미정권이 대거 좌파로 넘어가계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이러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파산자체야 당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대다수가 기초체력이 나빠서 나자빠진점도 있지만 그 이후의 처방과정이...
  • [11] 이것은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도가 사실이 아닌 정보를 받아들이는 경향과 얼마나 연동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물론 공화당 지지층은 아예 지구온난화(...)나 대량살상무기의 허구성 같은 걸 부정한다는 설문조사도 있으니(...)
  • [12] 기록에 따르면 대화가 대략 이렇게 오갔다. "핵무기 50% 감축 어때요?" "아니 그거 그냥 100% 해버리죠?" "오 좋아요!"
  • [13] 미국이 그런 기술을 갖게된다면 소련의 핵무기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다.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은 한 쪽이 선공을 하면 반대쪽이 반격을 하며 상호파괴가 확신된다는 점에서 전쟁억제력이 있는데, 만약 한쪽이 반격을 못하게 된다면? 전쟁억제력은 없어지는것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우리가 오늘날 은하 반대편으로 워프 포탈을 만들 가능성만큼 그 기술에 닿지 못하였다. 고르바쵸프는 물론 이 사실을 몰랐다.
  • [14] 특히 더이상 필요가 없게 된 급속전략타격자산들을 중심으로 육군이 많이 잘려나갔다. 해군은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낮았던 프로젝트 몇 개 날아간 것 빼고는 타격이 없었다.
  • [15] 당시 이란은 대사관 납치 사건을 벌였었던 경력이 있는 적성 국가였다는 점을 생각하자. 레이건은 이 사건으로 의회에서 탄핵까지 당할 뻔했다.
  • [16] 대망상증 환자였는데 대통령을 저격하면 자신이 동경한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가 자기에게 고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 [17] 그 드립에 수석 의사가 "지금 이 순간은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 대통령님."이라고 받아쳐줬다고 한다.
  • [18] 80년 선거전 당시로, 카터의 경우 재선 도전이었다. 그리고 결국 카터는 실직했다. 다만 이 말은 레이건의 오리지널은 아니고 원래는 33대 대통령인 트루먼이 한 말이다. 그 뒤에 카터를 까는 표현을 추가한 것.
  • [19] 이란 콘트라 사건 등의 악재까지 겹쳤지만, 원래 1930년대 이래 민주당은 거의 항상 하원 다수당이었다. (해리 트루먼 시대 일부 빼고) 대표적인 인물이 팁 오닐(Tip O'Neill, 본명은 토머스 오닐 주니어) 하원 의장으로 1977년 카터 정권교체기부터 1987년 까지 의장직을 수행했다. 임기말인 1987년부터는 상원도 민주당이 장악했다. (Robert Byrd 상원 민주당 대표)
  • [20] 그러니까 리 하비 오즈월드댈러스에서 저격했던 사건을 주인공이 타임슬립해서 막았던 사건.
  • [21] 다만 이때의 레이건을 변명하자면 군 병력 증원없이 돈만 퍼부었던 베트남이 케네디 2기 정권 시절에 망했고(...) 하노이에 핵을 투하한 터라 핵을 동원한 위협은 소용이 없어서 군사개입을 했었다.
  • [22] 흑인 인권 운동을 벌이던 아들이 주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