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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테 만 해전

last modified: 2018-08-24 17:01:35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원인
3. 전투
3.1. 전초전
3.2. 전투 초기(시부얀 해전)
3.3. 오자와, 홀시를 낚다
3.4. 수리가오 해협 해전
3.4.1. 헬게이트로 들어가다
3.4.2. 사상 최후의 포격전
3.4.3. 시마의 도주
3.5. 사마르 해전
3.5.1. 아이고 맙소사 우린 이제 죽었어
3.5.2. 다윗 대 골리앗
3.5.3. 일본군은 왜 고전했는가?
3.5.4. 구리다 턴
3.5.5. 미군의 피해
3.6. 엔가노 곶 해전
3.7. 마무리
4. 결과
5. 기타 이야기


1. 개요

태평양 전쟁 기간인 1944년 10월 22일에서 27일까지 벌어진 수리가오 해전, 엔가노 곶 해전, 사마르 해전, 시부얀해 해전을 통틀어 말하는 독소전쟁쿠르스크 전투와 궤를 같이하는 인류 사상 최대의 해전. 양측 함대의 총배수량은 약 250만톤이었다. 절대 깨지지 않을 기록이란 소릴 듣기도 한다. 정작 레이테 만에서는 해전이 없었는데도 레이테 만 해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에 대해서는 따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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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원인

미국은 태평양 전쟁에서 전황이 유리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고 전쟁 초반에 잃었던 필리핀 탈환을 원하고 있었다. 만일 필리핀이 미군 손안에 들어갈 경우 일본이 아직 점유하고 있는 남방지역과 본토가 완전히 나누어지게 되므로 더 이상 일본은 전쟁수행에 필요한 물자를 얻을 수 없었다. 따라서 일본도 그에 대응해서 미군필리핀 탈환전을 저지하려 했다. 동시에 아직 남아있는 해군전력 전체를 동원해서 미국의 필리핀 상륙부대와 미해군에 심각한 타격을 줌으로서 더 이상의 침공을 막으려고 했다. 그에 따라 미군의 상륙지점인 레이테 만을 공격할 계획을 짜게 된다. 실사판 네이비필드

일본군은 병력을 둘로 나누어 구리다가 이끄는 부대는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통과해 사마르 섬을 돌아 레이테 만의 상륙 부대의 후방을 공격하고 니시무라가 이끄는 함대는 수리가오 해협 쪽을 통과해 후방을 치는, 이른바 과거 시대의 함포 위주의 해전을 떠올리게 하는 작전을 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일본 해군의 항공력은 필리핀 해 해전에서 탈탈 털렸고 육군 항공대도 연합군 항공력에 완전히 털리고 있던 상황이라 항공전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함대를 보내면 미군에게 걸려서 전멸할 게 분명하므로, 미군을 꾀어내기 위해 미끼로 항모전단을 던지기로 한다. 태평양 전쟁의 주역이 항모임을 감안하면 대단히 미련한 짓이지만, 이미 항모전단에 실을 항공병력은 괴멸되었으므로 일본의 항모는 단지 빈 깡통에 불과했기에 이런 작전을 세울 수 있었다. 이 미끼 함대의 지휘관은 오자와 지사부로가 맡는다.

또한, 일본군이 함대를 너무 잘게 나눈 것도 문제였는데, 이는 작전을 너무 세밀하게 나누는 일본군 특유의 뻘짓근성도 한몫했지만, 더 큰 이유는 사방에 흩어진 함대 세력을 한곳에 모을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본국에서 출격하는 함대 따로, 남방지역에 있는 함대 따로 식으로 개별적인 접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형식적으로는 통합된 작전이었지만 무선송신 일치등의 기본적인 조치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나중에 보면 알듯이 서로간의 통신에도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이놈들은 반성이라는 걸 모른다.

3. 전투

3.1. 전초전

구리다 제독 휘하의 중앙함대의 전력은 다음과 같다.
브루나이를 출발한 구리다 함대는 레이테 만으로 향하지만, 10월 23일 0시 16분에 미국 잠수함 다터(USS Darter)에게 발각되었다. 다터는 동행하던 잠수함 데이스(USS Dace)와 함께 일본 함대를 추적했고, 새벽 5시 24분에 구리다 함대의 기함 아타고에 4발의 어뢰를 명중시킨다. 이후 다터는 중순양함 다카오에 어뢰 2발을 명중시켰고, 데이스는 중순양함 마야에 4발의 어뢰를 먹인다. 아타고와 마야는 침몰했지만 다카오는 살아남았고, 다카오를 추적하던 다터는 실수로 좌초하는 바람에 추적에 실패하고 만다. 다카오는 싱가포르로 도망쳤고, 다터의 승무원들은 전원 데이스에 구조되어 오스트레일리아로 탈출한다. 정원초과로 다터의 승무원 2명은 데이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잠수함 위에 앉아서 가야 했다.

구리다 사령관은 물에 빠졌다가 구조되어 전함 야마토로 옮겼지만 숙련된 사령부 통신요원들은 옮겨타지 못했는데, 이게 엔가노 곶 해전에서 전황을 바꾸는 큰 문제를 일으켰다.

3.2. 전투 초기(시부얀 해전)

10월 24일 오전 8시에 구리다 함대는 미국 정찰기에 발견되었고, 이후 홀시는 제3함대를 동원해서 구리다 함대를 공습한다. 구리다 함대는 대비책으로 무사시를 탱커로 내세웠는데, 크고 아름다운 덩치를 자랑하는 데다 함체 도색을 기존의 일본 해군 함선보다 밝은 회색으로 조금 다르게 색칠했기에 미군 함재기들은 무사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무사시는 이에 대응하여 주포에 3식탄을 장전하고 일제사격을 하는데, 이 일제사격으로 무사시의 대공포가 개발살난다. 뭐라고요? 주포 발사의 충격이 너무 커서 대공포의 조준기가 맛이 가 버리고 대공포 사수들도 충격을 받아 맛이 갔다고(...) 덕분에 대공사격을 못하게 된 무사시는 수십 발의 폭탄과 어뢰와 기타등등을 얻어맞았다. 바보다! 바보들이 여기 있어! 그 다음 공습에서는 무사시의 주포가 가만히 있었기에 대공포가 제대로 작동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서 무사시는 결국 침몰하게 된다. 대공포 사수들은 주포 사수들을 엄청나게 욕했고, 주포 책임자는 나중에 함장 앞에서 잘못했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래도 무사시가 탱킹을 잘한 덕분에, 구리다 함대의 추가 피해는 중순양함 묘코가 큰 피해를 입은 걸 제외하면 없었다.

그러나 오니시 다키지로 일본 해군 중장이 이끄는 일본 해군기들이 미군 항모전단을 기습했고, 경항공모함 프린스턴(USS Princeton, CVL-23)은 폭탄에 맞고 침몰하게 된다. 경순양함 버밍햄(USS Birmingham, CL-62)도 폭발에 휘말려 피해를 입고 나중에 퇴역하게 된다.

어쨌든 구리다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보고, 함대를 반전시켜 도망치기 시작한다. 미군은 이걸 보고 구리다 함대를 성공적으로 격퇴했다고 간주했지만, 미군의 정찰기가 사라지자마자 구리다는 다시 함대를 반전시켜 목적지로 향한다.

3.3. 오자와, 홀시를 낚다

한편 오자와 지사부로는 항공모함까지 포함한 본대를 지휘하고 있었으나 사실 일본 해군의 항공전력이 부실한 상태에서 항공모함은 그저 장식 정도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간에 항공모함은 상당히 전략적인 요소였고, 진주만 공습 당시 참가해서 미국의 격침우선순위에 든 즈이카쿠도 있었다. 이걸 이용해 오자와는 미군의 기동부대를 유인하려 하였다. 전략적 가치가 없어진 아군 항모를 미끼로 미군의 항모를 꼬셔낸 뒤 전함을 주축으로 이루어진 주력부대간의 함대결전 한판 승부를 노렸던 것.

한편 미 해군을 지휘중이던 윌리엄 홀시는 구리다 함대가 격파당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구리다의 함대는 비록 피해를 보기는 했어도 무사시의 탱킹으로 인해 실제로 기타 함선들의 피해가 거의 없는 등 여전히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당시 미 해군 조종사들은 격침 보고를 과장해서 하는 편이었고 상관들도 대부분 눈을 감고 넘어가주었다. 이런사실을 잘 알고 있던 스프루언스 제독의 경우 전과보고를 대폭 깎아서 봤을 정도다. 게다가 구리다의 부대에 포함되어 있던 무사시같은 대형 전함은 더더욱 성과가 부풀려지는 효과를 만들었다. 의외로 이런 점에서는 무사시가 야마토보단 밥값을 한 걸지도...

여하튼 오자와는 홀시의 3함대 후방에서 계속 유인 작전을 벌였다. 사실 오자와 함대는 항공모함에 비행기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 큰 문제는 안됐지만 뒤통수에서 십몇대 정도 함재기를 날리면서 자꾸 위협적인 행위를 벌이자 3함대 입장에서도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또한 일본군의 함재기 세력이 이미 폭삭 망했다는 사실은 아직 미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 상황에서 해상전의 주력으로 떠오른 항공모함의 함재기가 깔짝거린다는 것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

사실상 이런 점이 위험한게 오자와 함대가 아웃레인지 전법, 즉 필리핀 제도의 루손섬이나 다른 섬에 있는 일본군 기지에 출격한 함재기들이 착륙해서 재보급을 받고 재폭격에 나선다면 미 항모전단은 사정거리 밖에서 양측으로의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필리핀 해 해전 당시 오자와는 이런 전술을 쓰다가 탈탈 털렸었다. 전술 자체가 삽질은 아니고 숙련된 조종사와 나름대로 우위를 가진 항공대가 있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지속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필리핀 내의 일본군 비행장은 아직 존재하는 상황이었으며, 앞서 말했듯이 일본 해군 함재기 세력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미국이 아직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하게도 북부의 오자와 함대는 반드시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리고 홀시의 대결전을 원하는 성향도 낚시의 성공에 기여했다.

결국 홀시는 더 이상 구리다가 이끄는 함대가 적수가 안되고 오자와의 함대가 위험하다고 판단, 휘하 부대를 이끌고 오자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3함대의 고속전함 기동부대를 이끌고 있던 윌리스 A. 중장전함들만이라도 남아서 호위를 계속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개진하였지만, 홀시는 오자와의 항공모함들을 완전히 격침시키기 위해서는 전함의 함포도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냥 씹어버렸다. 또한 마크 미처 제독은 전속력으로 북방부대를 전멸시킨 후 즉시 중앙부대를 막는 걸 제의했으나 무시되었다. 이렇게 반대를 묵살한 이유는 홀시는 야전을 벌이기도 껄끄러웠던 것도 있었다. 한편 상황을 정확하게 눈치챈 사람도 있었다. 일본 함재기의 지나치게 소소한 공격을 주목하고 이를 통해 일본군은 이미 아웃레인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자와 부대는 미끼라고 분석한 사람이 바로 알레이 버크 제독이다. 참고로 스프루언스는 이 소식을 듣고 자기라면 함대를 북상시키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을 거라고 했다고.

어쨌든간에 오자와를 끝장내기도 마음먹은 홀시는 3함대 전력을 몽땅 이끌고 추격에 나섰으며,[1]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나 제7함대 머스 킨케이드 제독 모두 3함대 전체가 추격에 나선 것을 알고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니미츠 제독이나 킨케이드 제독은 홀시 제독이 고속전함들은 산 베르난디노 해협에 놔두고 항공모함만 이끌고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여태까지의 항공모함 대 항공모함의 전투에서는 함재기들이 전투의 주축이 되고, 수상함들은 전투가 다 끝난 다음에 침몰 직전으로 표류하는 적함 몇 척을 정리하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에 굳이 전투에 필요하지 않고, 수상함으로 구성된 적의 다른 함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수상함 전력의 일부라도 해협에 놔두고 북상했으리라 추측하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긴 했다.

하지만 홀시의 입장에서는 이 참에 일본군 항공모함을 씨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수상함 세력도 반드시 필요했다. 원래 항공폭탄의 경우에는 위력은 강하지만 함선의 상부구조물만 파괴하므로 적함이 전투능력을 상실하지만 배 자체는 살아남으므로 추진력만 상실하지 않는다면 해전에서는 패배하더라도 살아서 돌아가서 다시 수리받고 전력을 재건하는 일이 많았다. 문제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확실하게 선체에 물구멍을 뚫어놓는 어뢰의 경우, 미국 어뢰는 개전 초반에 작동불능에 조기폭발, 제멋대로 항주 등 각종 사고와 문제점을 일으켰기 때문에 문제점이 해결되고 성능이 향상된 레이테 만 해전 시점에서도 여전히 불신의 대상이라 뇌격기철갑탄을 달고 적을 폭격하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불타는 적 항공모함을 적의 수상함의 방해를 뚫고 끝장을 내려면 반드시 고속전함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게다가 이때 서로가 날린 전문을 보면 서로 애매한 표현을 해대서 그냥 저쪽에서 알아서 하겠지 심정으로 넘어간 듯 하다. 근데 세상 일이라는게...결국 양측이 상황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않고 애매하게 넘어감에 따라 절묘한 타이밍에 산 베르난디노 해협이 텅빈 상태가 되었다.

3.4. 수리가오 해협 해전

3.4.1. 헬게이트로 들어가다

10월 24일, 본대인 구리타 함대보다 반나절 늦게 출항한, 후소급 전함 후소와 야마시로, 모가미급 중순양함 1번함 모가미, 그리고 4척의 구축함으로 구성된 니시무라 함대(제 3 전함대)가 남쪽에서 접근했다. 이들은 낮에 공습을 받았지만 그 피해는 대단치 않았기에 예정대로 수리가오 해협의 남쪽 입구로 진군했다. 이들의 계획은 레이테 만에 돌입, 수송선단을 공격한 뒤 구리다 함대와 합류하는 것이지만, 무선통신을 함부로 쓸 수 없었기에 구리다 함대나 시마 함대와의 협조체제가 결여되어 있었다. 구리타 제독이 왜 니시무라 함대를 분리, 출격시켰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으나 1) 야마시로, 후소의 속력이 도저히 본함대를 쫓아가기 어려운 정도였다는 점[2] 2) 노후 전함으로 구성된 니시무라 함대가 미끼[3] 역할을 수행하여 혹시라도 미군의 주력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순양함 나치(기함)와 아시가라, 경순양함 아부쿠마, 그리고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된 시마 함대도 니시무라 함대와는 별도로 진격해왔지만, 이들은 니시무라 함대와는 별도로 행동했기에 아직 수리가오 해협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마 함대는 원래 레이테 섬에 미군이 상륙할 경우 이에 대해 역상륙을 지원할 목적으로 마닐라로 향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었으나 중간에 명령이 변경되어 구리타 함대와 같이 레이테만에 돌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단 이 명령에 대해 구리타와 니시무라는 출항시에는 모르고 있었다.

3.4.2. 사상 최후의 포격전

수리가오 해협을 방어중이던 올덴도로프 함대는 니시무라 함대의 접근을 알고 즉각 단종진으로 T자 대형을 치고 해협을 넘어가려는 일본 해군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에 들어갔다. 우선 미군의 어뢰정들이 후방에서 어뢰를 쏘고 도망치며 게릴라전을 벌였지만, 성과는 없었고 일본군의 자신감만 드높였다. 그래도 어뢰정들이 전해준 정보는 미군에 전해졌다.

어뢰정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나자, 곧바로 미군 구축함 부대가 어뢰를 날렸다. 이 어뢰는 니시무라 함대의 구축함 2척을 침몰시켰고, 아마시로에 약간의 피해를 입혔으며, 전함 후소를 침몰시켰다. 니시무라는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전진했으나, 방어진의 후방에서 순양함과 현대화 개수를 받은 14인치 및 16인치급 구형전함 6척으로 구성된 단종진이 엄청난 포탄을 레이더 관제사격으로 날렸다. 한마디로 말해서 제대로 된 매복에 걸린 셈이다. 야마시로와 모가미도 응전했지만 화력의 차이가 너무 컸고, 결국 야마시로는 불덩어리가 되어 침몰했으며 모가미 역시 불바다가 된 채로 후퇴했다. 그 외에 탈출에 성공한 건 구축함 시구레 한 척뿐이었다.

여담으로 이 해전은 세계 해전사에서 수상함들로만 이루어진 마지막 해전이자, 전함들끼리 포탄을 교환한 마지막 해전이며, 여기서 가라앉은 일본 전함 야마시로는 전함 주포에 가라앉은 최후의 전함으로 기록된다(같이 활동한 전함 후소는 구축함이 발사한 어뢰로 인해 화약고 유폭으로 침몰했다). 그리고 올덴도로프의 전함 6척 중 USS 미시시피를 제외한 USS 펜실베이니아, USS 테네시, USS 캘리포니아, USS 메릴랜드, USS 웨스트버지니아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때 침몰 내지 피격되었던 전함들로, 진주만의 복수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그러나 제대로 사격한 것은 최신 사격통제장치를 갖춘 웨스트버지니아, 캘리포니아, 테네시 3척 뿐이며, 나머지 세 척은 구식 사격통제장치의 저성능 때문에 제대로 포격하지 못했다. 메릴랜드는 남들의 포격으로 일어나는 물보라를 보고 대충 포격이라도 했고, 미시시피는 마지막 순간에 적을 발견하고 일제사격이라도 한 번 해봤지만 펜실베이니아는 대상을 찾지 못했고 사격 선상에 아군 함정이 있어서 결국 제대로 쏘지도 못했다.

결국 일본군의 함대는 올덴도로프 함대의 견고한 방어진을 뚫지는 못했다. 시마와 니시무라의 협력이 전혀 없어서 니시무라 함대가 먼저 돌입해서 개박살 난 후 시마 함대가 돌입한 것도 패인이었다. 다만 일본 해군의 전력 대부분, 특히 전함 두 척이 니시무라 함대에 집중되어 있었고 미 해군 전함열의 화력이 워낙 압도적인 상황이어서 시마함대가 협력해서 같이 진입했다고 한들 돌파의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3.4.3. 시마의 도주

늦게서야 도착한 시마 함대는 니시무라 함대의 전멸을 알고 후퇴하기로 결정하지만, 미군 어뢰정의 공격으로 경순양함 야부쿠마가 손상을 입고 행동불능이 된다. 게다가 불바다가 된 채 후퇴하던 모가미를 중순양함 나치가 들이받는 충돌사고까지 일어났다. 모가미가 움직이지 못한다고 착각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충돌해버렸다고(...) 결국 모가미는 이후 행동불능이 되어 침몰했고, 니시무라 함대의 생존자는 구축함 시구레 하나였다.

사실 시마 함대가 살아남은 건 올덴도로프가 수비적인 자세를 고수하였고 사마르 해전이 시작되는 바람에 시마 함대를 추격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일본 해군은 전멸을 면할 수 있었다.

3.5. 사마르 해전

10월 25일 오전에 벌어진, 레이테 만 해전의 백미. 영문 위키 사마르 해전 참조.

3.5.1. 아이고 맙소사 우린 이제 죽었어

산 베르난디노 해협의 감시가 약화...된 게 아니라 완전히 없어지면서 잔존해 있던 구리다 함대는 무사히 해협을 통과, 남하하던 중에 미 항공모함 함대와 마주치게 되었다.

구리다 제독은 이 함대를 홀시가 이끄는 3함대라고 판단하고 함재기의 공격을 받아 불덩어리가 되기 전에 항공모함을 벌집으로 만들어 수장시키기 위해서 즉각 교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구리다 제독의 판단과는 달리 이 함대는 C.A. 스프레이그 소장이 지휘하는, USS 갬비어 베이호 등 호위항공모함 6척, 구축함 3척, 호위 구축함 4척 등으로 이뤄진 일명 '태피3'라는 소규모 함대였다. 당시 구리다 함대와 태피3의 전력은...야마토와 공고를 비롯한 전함만 4척에다가 중/경순양함과 구축함을 합치면 27척. 사실 태피3의 모든 함정의 배수량이 야마토 한 척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구리다 제독의 함대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갑작스럽게 적과 조우했기에 포격전에 적합한 진형을 만들지 못하고 무질서하게 돌격한 것이다.

한편 스프레이그 호위항공모함부대는 이런 예측하지 못한 사태를 맞게되자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생각하지도 못한 기습을 받은데다가 실제 전력상으로도 일본 전함은 항공모함 코 앞에 있는데 남아있는 미군 전함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수리가오 해협에 있었던 상태라 킨케이드 휘하의 다른 호위항공모함 부대의 항공 지원을 제외하고는 우세라는 게 없었다.

최초로 접촉사실을 보고한 스프레이그 제독의 호위항모부대는 킨케이드 제독에게 7함대가 있는 곳으로 철수를 허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렇게 되면 강력한 적을 상륙지로 끌고 들어오는 셈이라 상륙부대의 안전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결국 인근의 다른 호위항모부대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고,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호위항모부대와 일본함대 간의 전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스프레이그 제독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우선 함대를 원형진으로 재편성하며 구축함과 호위구축함은 연막을 쳐서 항모를 가리고, 항모는 전 함재기를 긴급발진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호위항공모함에도 일본 함대에 유효한 대함용 철갑탄이나 어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무장을 탑재하거나 교체할 시간이 없으니[4] 무장이 있든 없든 일단 전부 띄우고 보자는 것. 스프레이그의 빠른 상황판단 덕분에 단시간 내에 함재기들은 한 기의 피해도 없이 전부 무사히 발함에 성공했다. 그리고 호위항모가 보유하고 있는 함재기용 무장은 유폭의 위험이 있으니 전부 바다에 버리라는 과감한 명령을 내렸다.[5]

그렇다곤 해도 실제적인 전력 차는 너무나 확연했다. 구리다 함대는 스프레이그의 호위항공부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고, 스프레이그는 훗날 "그 때는 30분 버티면 잘 버틴 거라고 생각했다."라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그리고 이 함대가 돌파하면 마닐라 만의 상륙 부대는 그대로 구리다 함대에게 무방비로 노출되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태피3 소속 구축함 7척 중 호위 구축함 USS 사무엘 B. 로버츠와 플래처급 구축함 USS 존스턴 및 USS 히어만, USS 호엘로 구성된 구축함 전대가 구리다 함대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문자 그대로 다윗 대 골리앗의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3.5.2. 다윗 대 골리앗

급히 요격에 나선 함재기들도 무장을 탑재한 기체는 소수에 불과했고, 그나마 탑재한 무장도 함정에 유효타를 먹일 수 없는 육상공격용 폭탄이나 폭뢰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기총 탄약조차 없는 기체가 상당수였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호위항모의 함재기들은 결사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무장이 탑재된 기체는 폭뢰든 고폭탄이든 일단 최대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 폭격을 개시했고, 그 와중에 중순양함 스즈야가 육상공격용 폭탄을 지근탄으로 얻어맞고 기관에 손상을 입었다. 무장이 없는 기체는 기총사격을[6] 가하거나 텅 빈 무장창을 연 채로 마치 뇌격을 하려는 것처럼 접근해 일본 함대가 회피기동을 펼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초반에 성급하게 접근하느라 제대로 대열을 짜지 못했던 일본 함대는 이런 속임수 공격에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함재기들은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이런 공격과 거짓 공격을 반복한 다음 육상기지로 향했다[7]. 착륙 과정에서 손상된 기체는 몇 있었지만 태피 3의 파일럿들은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무사히 대피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태피1, 태피2에서도 함재기들이 지원에 나섰다.

한편 태피3의 존스턴(DD-557), 호엘(DD-533), 히어만(DD-532)과 데니스(DD-535), 사무엘 B. 로버츠(DE-413)[8]가 돌진, 일본 순양함들의 주포 부앙각이 못미치는 거리까지 접근해 5인치(13cm) 함포로 그나마 피해를 줄 수 있는 구조물들을 공격하고 어뢰를 쏴대는 무용을 펼쳤다.

어니스트 에반스 함장이 이끄는 구축함 존스턴은 우선 지그재그로 접근,[9] 포격을 가하여 모가미급 중순양함 4번함 쿠마노의 함교를 날려버리고, 뒤이어 발사한 어뢰로 쿠마노의 함수를 날려버렸다. 뒤를 따르던 모가미급 3번함 스즈야는 쿠마노를 피하려고 속도를 줄이며 선회하다가 태피3 함재기들의 공습을 당해 폭탄 2발을 맞고 전열에서 이탈한다[10]. 그러나 존스턴도 전함 공고의 14인치 주포 3발, 야마토의 6인치 부포(경순양함의 주포라는 설도 있다) 3발을 맞고 큰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이때 존스턴의 뒤를 이어서 싸움판에 끼어든 배가 바로 사무엘 B. 로버츠(DE-413). 사무엘 B.로버츠는 처음에는 타카오급 중순양함 4번함 초카이를 향해 돌진했는데, 초카이가 반격을 가했으나 역시 부앙각의 사각으로 들어간 덕분에 포격은 모두 빗나갔다. 그렇게 접근하여 초카이에게 뇌격을 가한 후에[11], 곧바로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에 접근, 포격전에 들어간다. 치열한 근접전 끝에 치쿠마의 8인치 포탄 6발에 5인치 포탑 중 2기를 잃었지만 나머지 5인치 포 1문으로 반격을 가하여 치쿠마의 3번 포탑과 함교를 날려버렸다. 그 뒤,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의 14인치 포에 치명타를 입었고 결국 침몰한다. 하지만 이 활약상으로 전함처럼 싸운 호위구축함이라는 칭호를 얻었다.[12]

구축함 USS 히어만(DD-532)은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에게 포격을 가하며 묘코급 중순양함 하구로와 공고급 순양전함 공고를 향해 어뢰를 날렸고, 곧바로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에 접근해서 어뢰를 발사한다. 이 어뢰들은 전부 빗나갔지만, 그 중 2발이 바로 뒤에 있던 일본 함대 기함 야마토를 향해 돌진했다. 야마토는 이 어뢰를 피하려다가 방향을 잘못 잡는 바람에 진행하는 어뢰들 사이에 끼어버렸다. 어쩔 수 없이 회피기동을 취하다보니 그만 전장에서 벗어나버렸고, 이는 구리다가 정확한 전황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 히어만은 토네급 중순양함 치쿠마와 맞붙어, 포탑 하나가 날아가고 이물이 침수되는 등 큰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태피2의 함재기 4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계속 포격했고, 함재기의 어뢰 1발이 치쿠마의 고물을 파괴한다. 대파되어 조종불능이 된 치쿠마는 뒤이은 공습으로 침몰했고, 토네가 히어만을 잡으려고 달려들었지만 역시 공습을 당해 쫓겨난다. 이로써 히어만은 자살적인 돌격을 감행한 4척의 미군 군함 중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대통령 부대 표창도 받았다.

히어만과 함께 돌격한 호엘(DD-533)은 공고를 정면에서 틀어막고 하구로에게 어뢰를 날리며 분전했지만, 일본군에 포위당해 40발이 넘는 포탄을 얻어맞고 8시 55분, 돌격을 감행한 4척의 미군 군함 중 첫번째로 침몰했다.

존스턴은 때마침 드리운 스콜에 숨어서 기관부와 포탑 2개를 복구하는데 성공했는데, 이때 아가노급 경순양함 야하기가 구축함 4척을 이끌고 호위항모에 공격을 가하려고 접근하자 다시한번 이들을 단신으로 가로막고 나섰다. 여기에 당황한 일본 함대는 급히 93식 어뢰를 발사했지만 제대로 조준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부 빗나간다.[13] 이어진 포격전 끝에 존스턴은 52번 포탑과 엔진이 파괴되었고, 오전 9시 40분에 전원 퇴함, 10시 10분에 침몰하고 말았다.이 와중에 데니스는 토네에게 대파[14]


호위항공모함들도 도망치면서도 포격을 가했다. 1문밖에 없는 5인치 포로 세인트 로가 구축함에 1발, 칼리닌 베이가 묘코급 중순양함에 2발을 명중시켰으며, 화이트 플레인스(CVE-66)는 5인치 포의 최대 사거리에 가까운 거리에서 초카이에 6발을 명중시킨다. 물론 중순양함 상대로 5인치 포를 명중시켜봤자 포탑을 부수는 정도였겠지만, 이 일격은 초카이의 산소어뢰를 유폭시켜서 엔진과 방향타를 날려버린다! 결국 초카이는 키트쿤 베이(CVE-71)의 어벤저 뇌격기가 투하한 철갑탄에 맞고 행동불능이 되어 뇌격처분당했다.

그러나 이런 분전에도 불구하고 USS 갬비어 베이는 격침당하고 말았다. 갬비어 베이는 태평양 전쟁에서 전함의 포격에 격침당한 항공모함이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되었다(다만 갬비어 베이를 끝장낸 건 야마토나 공고가 아니라 치쿠마나 초카이 등, 순양함들이라는 말도 있다). 단 1940년 노르웨이에서 영국 항모 HMS 글로리어스가 독일 해군의 순양전함 샤른호르스트와 그나이제나우에게 격침당했기 때문에 '최초로' 전함에게 격침당한 항모는 아니다.

3.5.3. 일본군은 왜 고전했는가?

상식적으로 봐서, 스프레이그 제독의 함대는 구리다 함대의 적수가 안 된다.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가 주포 몇 방만 제대로 쏴도 몽땅 침몰할 수준이다. 주포가 맞는다는 가정 하에 말이지[15]

다만 스프레이그 제독 휘하의 호위항공모함부대가 미친듯이 연막을 뿌려대고, 어뢰를 난사하고, 긴급출격한 전투기들이 폭탄을 장착하지 않았지만[16] 폭격을 가하는 척 훼이크성 움직임을 보이고 기관총이라도 난사하고, 총알이 다 떨어져도 계속 주변을 맴도는 등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바람에 효과적으로 제압하지 못했다.

여기에 구리다의 함대가 철갑탄을 장착한 상태로 포격을 가했기 때문에 장갑판이 상대적으로 얆았던 호위항모 입장에서는 명중한 포탄이 아예 관통해 버렸는데 심지어는 포탄이 신관작동으로 폭발하기도 전에 갑판과 선체를 동시에 뚫고 지나가서 그냥 바람구멍만 뚫리는 일이 발생했으므로 결정적인 손상을 입지도 않았다. 더욱이 당시 구리다 제독 역시 홀시 제독과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오판을 하고 있었는데, 항공모함을 보고서는 스프레이그 함대를 홀시의 3함대로 착각하고 말았다. 이런 오판 때문에 '빨리 못 잡으면 함재기가 날아와서 우릴 고깃밥으로 만들거다!'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 전투 대형을 짜지도 않고(못하고) 항해하던 대형 그대로 전투를 시작했기에 압도적인 화력을 충분히 살릴 수도 없었다. 여기엔 스프레이그 함대의 분전도 영향을 끼쳤다. 빈약한 전투력에도 불구하고 있는 힘을 다해서 교전에 임하다 보니, 구리다 입장에선 상대를 과대평가하게 된 것이다.

이때 일본 해군은 모든 상황을 눈으로 직접 관측하는 상황이다 보니 스프레이그 함대의 이동속도를 실제 이동속도보다 훨신 더 빠른 30노트 이상의 속도로 추정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스프레이그 제독은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내가 그때 겁먹긴 했지만 그정도로 급하진 않았음."이라고 회고했다.

게다가 여기에서도 한 가지 절묘한 상황이 있었는데, 원래 오자와 함대가 홀시를 낚으면 무전으로 이 사실을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오자와 제독은 구리다 제독에게 낚시성공 사실을 무전으로 몇 번이나 날렸는데, 이 무전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이걸 수신한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게다가 위에 언급된 것처럼 시부얀 해전 당시 구리다 제독의 좌승함 아타고가 격침되면서 구리다 제독과 고위 참모진들만 야마토로 옮겨 탔고 숙련된 사령부 통신요원들은 야마토에 타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전황 파악이 쉽지가 않았다. 그 때문에 구리다 제독은 미 3함대가 거기에 없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단순히 현재 전개된 상황을 바탕으로 추론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구리다 함대에 '함대의 후방에서 적함대를 발견했다'는 무선이 날아든다. 오자와 함대에게서 연락을 받지 못한 구리다는 홀시 함대가 자신들의 후방에 있다고 판단. 즉 '오자와 함대의 미끼 작전은 실패했고, 자신들은 지금 미군세력의 한복판에 고립돼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기묘한 점은 구리다 함대가 받은 이 '후방에 적이 있다'는 무선은 당시 일본군의 그 어떤 발신기록에도 남아있지 않고, 무선을 받은 구리다 함대의 수신기록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극도로 피로한 상태였던 구리다가 착란에 빠졌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지만, 당시 이러한 무선을 수신한 것은 구리다 함대뿐만이 아니라 인근 섬에 주군하고 있던 일본군 항공대는 물론 도쿄에 있는 해군사령부에까지 구리다 함대의 후방에 적이 있다는 무선을 캐치한 상황이었다.[17]

3.5.4. 구리다 턴

결국 구리다 함대는 진행경로를 180도로 바꿔 철수하기 시작. 하지만 홀시 함대는 오자와 함대에 낚인 상황이었고, 당시 구리다 함대의 후방에는 그 어떤 미군의 함대도 존재하지 않았다.

까닥하다간 요단강 익스프레스 탈 위기에 처했던 미 해군은 뜻밖의 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본 스프레이그 제독은 "저 망할 놈들이 도망간다!"고 외쳤다.

사마르 해전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가장 중요한 교전이었으며, 이 기회를 놓친 일본군은 승리할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미국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근성을 보여준 한판이었다. 당장 스프레이그 제독부터 던질 수 있는 것은 문고리까지 던질 지경이라고 회상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미군 참전자들의 회상에 따르면 진짜 이제는 죽는구나 싶은 순간 갑자기 일본 해군이 퇴각하는 걸 보고 어안이 벙벙했지만 "쟤들이 갑자기 왜 후퇴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살았다!"라는 안도감이 들었다고 한다. 수병중 일부는 포 사정거리안에 있을때 그냥 보내지 말고 쏴서 격침시키자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구리다의 철수 명령은 후세에 구리다 턴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3.5.5. 미군의 피해

용감하게 돌격했던 미군 구축함들은 단 한 척을 제외하고는 죄다 대파당하거나 격침당해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일본군의 카미카제하고도 대비되는 게 이건 전적으로 아군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아예 첫 개돌을 감행한 어니스트 에반스 함장의 존스턴은 명령도 받지 않고 돌진했다. 이 행동은 일본군이 평소 강조하던 근성과 정신력을 강조하는 것과 일치했으며, 그걸 빼더라도 어찌나 용감해 보였는지 USS 존스턴 같은 경우 침몰해서 수병들이 바다에서 표류할 때는 일본 수병들이 찾아와서 경례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구출은 해주지 않았다 일본군의 포로 대접을 생각해보면 놔두고 가는게 그들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경의였을지도? [18]

오자와 함대가 퇴각한 뒤, 태피3은 역사상 최초의 카미카제 공격을 받아 호위항공모함 USS 세인트 로[19]가 격침당했다.

3.6. 엔가노 곶 해전

1944년 10월 25일, 오자와 중장의 북방함대에 소속되어 미끼로 쓰이다가
결국 미 함재기의 공격을 받고 기울어진 즈이카쿠 위에서 마지막 경례를 하고 있는 즈이카쿠의 승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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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반자이를 외치는 즈이카쿠의 승무원들

10월 24일 오후 4시 40분에야 오자와 함대의 위치를 알아낸 홀시 제독의 제3함대는 25일 아침, 대대적으로 오자와 함대를 개발살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25일 아침이 되자, 구리다 함대가 사마르 해협에 출몰하여 전투가 벌어졌고 니미츠 제독과 킨케이드 제독이 길길이 날뛰면서 홀시에게 무전을 때려댔다. 게다가 무선 자체도 뒤죽박죽인 경우가 많았고 직접 보내거나 혹은 직접 보낼수 있어도 마누스 섬을 경유해서 가느라고 늦게 도착하는 경우도 많았었다. 무선의 혼란성은 일본군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이유로 인해 홀시는 킨케이드가 보내는 무전에는 그냥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다가, 무전이 계속되자 조금은 난감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어쨌든, 추격에 나선 홀시의 3함대는 엔가노 곶에서 오자와 함대와 교전에 들어가 큰 피해없이 항공모함 4척(즈이카쿠, 즈이호, 치토세, 치요다)을 격침시키는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 때 진주만 공습에 참가한 6척의 일본군 주력 항모들중 미드웨이 해전 때 가라앉은 아카기, 카가, 히류, 소류, 이후 필리핀 해 해전 때 가라앉은 쇼카쿠를 제외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척이자 엔터프라이즈의 숙적 즈이카쿠가 가라앉음으로써 일본 항공전대는 실질적으로 궤멸되었다. 야마토급 3번함인 시나노를 부랴부랴 개조했지만 그건 논외로 하자[20]

그러나 오자와 함대를 완전히 전멸시키지는 못했다. 사마르 해전으로 니미츠까지 홀시에게 돌아오라고 독촉했고, 이때 그 유명한 "38기동부대는 어디 있나 반복한다 온 세상이 알고 싶어한다"라는 무전을 받은 후 함대를 되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때까지도 홀시는 여전히 구리다 함대의 전력을 오판하고 있었던 데다 그때쯤이면 돌아오기엔 너무 늦을 정도로 멀리 나가 있었기 때문에 귀환 요청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돌아오긴 했지만 그때는 이미 상황이 끝나 있었다.

어쨌든 홀시는 일부 함대를 추격을 위해 남겨두었고, 이들은 계속 일본군을 계속 추적하지만 추가적인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고 돌아온다.

3.7. 마무리

한편 홀시는 사마르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긴급 무전을 받았지만 이미 오자와의 유인에 너무 깊이 따라와서 사실 돌아온다고 해도 할 수 있는게 없었고 실제로 홀시가 다시 돌아왔을땐 상황이 거의 종료되어 있었다. 여하튼 홀시가 복귀하라는 무전을 받고 다시 돌아오자 남아있는 일본 해군 함대는 더 이상 미군을 공격할 수 없었다.

결국 오자와, 시마, 구리다 등은 휘하 함대를 이끌고 미군 함대의 추격을 피해 필리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홀시는 산 베르난디노 해협을 빠져나가는 구리다를 막는답시고 체급도 가볍고 빠른 소수의 함선들을 먼저 보내는 삽질을 저질렀으나 다행히도(?) 구리다가 매우 빨리 해협을 벗어나서 함대가 도착하기 전에 다 빠져나가 해협에는 구조 작업중인 노와키만 남아있었다. 미군은 그 노와키를 다구리놓고 침몰시키는 것으로 현장 상황을 마무리지었는데, 사실상 천운이 따랐던 셈.

이후로도 일본 함대는 미군의 추격으로 피해를 입었으나 여하튼 대부분의 함선은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상황은 종료되었다.

4. 결과

일본군은 이 해전에서 동원할 수 있는 함선이란 함선은 다 동원해서 미군을 공격했으나 미군은 이미 쇼미더머니 파워로 인해 더이상 일본군이 상대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어있었다. 특히 항공전력에 있어서 미군은 압도적인 항공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일본군은 그렇지 못해서 구시대적인 함포사격시대의 함대함 결전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도박도 실패했고 이제 일본군은 미군을 막을 여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일본군의 도박이 성공해서 구리다 함대가 레이테 만을 성공적으로 공격했더라도 일본 해군이 모든 것을 날려먹는다는 결과에는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 해전에서 일본군의 공격 목표는 미 해군이 아니라 레이테 만의 상륙부대였고, 해상에서의 교전 역시 미 해군 함대를 격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군의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미 일본 연합함대는 모든 가용 전력을 동원해도 미 해군을 격멸하는 것은 고사하고 미군 상륙부대에 포격 한 번 하기에도 모자란 상태였던 것이다. 홀시 자체도 이런 점을 생각해서 해협 방비를 7함대에 맡겨도 된다고 봤었다. 물론 이것은 니미츠가 내린 기본 명령에 위반된다. 이 일로 평생까임권을 당하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인명경시사상을 상징하는 카미카제도 이 전투에서 처음 등장했다. 사실 이건 그 정도로 일본군의 항공전력이 미군보다 열세였기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었던 셈이지만, 도덕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합리적인 정책이라고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 태평양 전선에서는 이런 광경을 자주 보게 된다.

한편 홀시는 오자와에게 낚인 것 때문에 두고두고 씹혔다. 킨케이드와 니미츠는 홀시의 예상치 못한 전장 이탈에 당황했고 특히 3, 4함대가 뚫릴 경우 상륙병력을 지원하느라 무방비상태인 7함대의 지휘관 킨케이드 제독이 몇 번이고 무전을 보내면서 홀시를 닥달했고 니미츠도 홀시에게 여러 차례 돌아오라고 종용해서 다시 원위치로 돌아왔지만 그때는 이미 상황 종료였으므로(...) 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이 전투 후에 홀시는 태풍이 휘몰아치는 해역에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가 비전투 손실로 배와 비행기를 좀 깨먹어서 더더욱 씹혔다(…). 전후, 홀시는 여생을 이에 대해 합리화와 반론으로 보내게 된다.

더불어 구리다 역시 오판으로 일찌감치 철수한 것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그 때 너님이 상륙부대 있는 곳까치 처들어갔으면 더글러스 맥아더를 고기밥으로 만들 수 있었을 거임!"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두고두고 씹혔다. 물론 제공권이 미국에 있는데다가 맥아더도 그런 상황이 되면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결사적으로 싸울 것이니 적어도 레이테만 내에서 일본 함대는 전멸하고 맥아더도 물에 빠지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구리다의 오판은 일본군의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군은 지휘관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할 뿐 정작 그러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는데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본영은 내게 무당이 되라 하네. 레이테 만 해전에서 구리다는 일본군의 다른 함대와의 통신도 두절되었고 미군의 상황을 정찰할 수단도 없었으므로 신내림이라도 받지 않는 한 올바른 판단만을 내리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무리한 요구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전투의 의의는 홀시가 낚였느냐, 구리다가 오판을 했느냐 정도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이 전투로 인해서 사실상 일본군의 해상전력이 거의 와해가 될 정도로 큰 손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입은 손실은 아래와 같다.

  • 정규항공모함 즈이카쿠 1척.
  • 경항공모함 즈이호, 치요다, 치토세 3척.
  • 전함 무사시, 후소급 전함 후소, 후소급 전함 야마시로 3척.
  • 중순양함 아타고, 모가미급 중순양함 모가미 & 스즈야, 초카이, 치쿠마, 마야 6척.
  • 경순양함 노시로, 아부쿠마, 타마, 키누 4척.
  • 구축함 와카바, 미치시오, 아사구모, 야마구모, 아키즈키, 하츠즈키, 하야시모, 노와키, 우라나미 9척.
  • 항공기 500대 이상.

반면 미군은 호위항공모함 3척, 구축함 3척이라는 비교적 경미한 손상을 입는데 그쳤다.

그 동안 피해가 누적된 것과 함께 이 해전으로 인해 치명적일 정도의 큰 손상을 입은 일본해군은 이 전투에서의 손실을 결코 극복하지 못했고, 이 후 제대로 된 해상 작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물론 전함 6척, 경/중순양함 10척을 포함한 일본의 일부 수상함들은 미군 지휘관 홀시의 오판에 힘입어 격침되지 않고 퇴각하는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의 수상함 전력이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는것은 당시 일본 연합함대 사령장관이었던 도요다 소에무 제독이 전후 미군 조사관에게 한 다음의 진술에서 드러난다.

만일 일본이 필리핀을 상실하게 되면, 일본 본토와 남방의 자원지대는 완전히 분리될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함대가 본국에 있는 경우 연료를 공급받을 수 없고, 남방 해역에 있을 경우 본토로부터 탄약 및 기타 보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필리핀을 상실하면서 함대를 보존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이 전투 이후 살아남은 일본 함정 대다수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상태에서 차례차례 미군의 공격으로 파괴된다. [21] 따라서 미군은 더 이상 해상에서 일본해군의 활동을 두려워할 필요없이 자유롭게 작전을 전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이 전투는 미군의 필리핀 상륙을 막지 못한데다,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니 전략적으로도 전술적으로도 일본군의 완전한 참패로 끝난셈이다.

그러나 연합함대는 (전투에 참가한 부대원들의 과장된 보고를 그대로 믿고) 자신들이 7척의 미군 정규항공모함을 격침시켰다고 발표했다. 레이테 섬에 병력을 증원하기 위해 수송작전을 개시하게 된다. 일명 오르독 만 전투(다호작전)으로, 이 작전에 참가한 함선들은 미군의 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피해자 1호인 아오바 항목 참조.

5. 기타 이야기

  • 홀시는 이 일로 평생까임권을 받았다. 그의 회고록은 이 사건에 대해서 분노 그 자체를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회고록에서 책임은 킹케이드에게 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바람에 킹케이드가 격노, 절친이었던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서서 서로 제대로 말도 섞지 않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 서정주의 대표적인 친일시 <마쓰이 오장 송가>에서 레이테 만이 자주 언급된다. 아니, 주제 자체다. '레이테 만 그 곳에서 영미귀축 항공모함을 깨부수고 장렬히 산화했는가 아아 마쓰이 오장이여 자랑스러운 그 이름이여...' 이런 식. 근데 정작 문제의 조선인 인재웅(마쓰이 히데오) 씨는 종전 후 미군 포로수송선을 타고 인천항을 통해 귀향했다#(...)

  • 1990년대 유명 미니시리즈인 전쟁과 추억 원작에서 이 해전을 아주 꼼꼼히 재현하고 있다. 극화판은 제작비의 문제로 그냥 넘어갔지만 안개낀 바다에서의 풍경은 CG 없이 잘 재현했다. 주인공은 홀시의 전함군을 이끌고 있으며 홀시가 안 들을거 같아서 넘어가지만 홀시의 선택을 아주 비판하고 있다. 역시 원작 대사에서도 그러고 보니 오늘은 경기병대의 돌격일이군이라는 말이 나온다.

  • 톰 클랜시의 잭 라이언이 홀시 제독의 전기를 쓴 걸로 붉은 10월에서 묘사된다. 여기서 홀시 지지파, 나중에 라미우스 함장이 붉은 10월호에서 나도 당신의 책을 읽었소. 하지만 홀시의 선택은 잘못 된거요라고 평한다. 잠깐이지만 이 대사가 영화에도 나온다...[22]

  • 통신을 보낼 때는 도청 방지를 위해 아무 문구나 집어넣어서 보내게 된다. 이는 문장 전체의 길이를 일정하게 맞춤으로써 문장의 길이로 내용을 추측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문제는 하와이에서 체스터 니미츠 총사령관이 홀시에게 보내는 킨케이드를 구원하라는 전문에 온 세상이 알고 싶어한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 문구는 발라클라바 전투의 경기병대의 돌격을 다룬 테니슨 경의 시구이며, 마침 그 날이 경기병대의 돌격 기념일이라 해당 문구를 골랐는데... 통신장교가 그 문장이 디코이가 아닌 줄 알고 그대로 올려서 홀시가 노발대발 했다. 그러니까 홀시가 들은 해석은 <홀시 니 함대 어딨음? 온 세상이 다 궁금해하는데...>라.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궁금해하는데 너 지금 어디에서 삽질하고 있냐? 라는 뜻이 되겠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담당 장교는 짤렸다(…). 이게 상당히 심각했던게, 본래 니미츠는 부하 지휘관들의 행동은 크게 존중해 주었고 전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위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니미츠가 이런 과격한 통신을 한 격이니 홀시가 황당해했을 수밖에 없다.

  • 카미카제 첫 격침 전과인 세인트 로를 격침시킨 사람은 일본 해군에서도 굴지의 에이스로 이름높았던 세키 유키오 대위였다. 그러니까 에이스라서 가능했던 전과인데, 여기에 감명을 먹은 대본영조국을 위하여 산화한 구국의 영웅 세키 대위의 행적을 따라간다 따위의 기획 기사를 신문에 싣으면서 카미카제 대원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게 된다.
    정작 유키오 대위는 상부의 특공 제의(=명령)를 듣고, 하루 정도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에 특공을 한다고 했지만. 이런걸 남기고 특공을 했다. 글의 내용을 요약하면 "댁들이 특공을 하라니까 하긴 하는데, 그건 댁들같은 머저리를 위한 게 아니고 사랑하는 내 가족을 위한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 구리다 함대가 사마르 해전에서 행한 요인불명의 반전은 후세에 구리다 턴이라는 단어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사용되는 곳은 주로 태평양전쟁 관련 게임. 특히 후자의 경우, 나침반땜에 보스한테 못가거나 보스 바로 앞에서 나침반 장난으로 반대방향으로 간다거나, 맵에 따라서는 실제의 구리다 함대의 반전 마냥 180도 회전해서 이동하는 경로까지 있기에 엄청난 빈도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나침반은 돌리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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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그리나 전문은 그래도 몇 척은 남기겠다는 투로 보냈다(...).
  • [2] 훈련시 24노트로 항해하고 있던 순양함들을 나가토는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으나 야마시로는 이마저 따라잡기 어려워 뒤쳐졌다는 기록이 있다
  • [3] 사실 후소급 전함은 이미 일본해군에서도 버려도 되는 자산 취급을 받고 있었다. 얼마 전 사이판 전투시에도 야마시로에 육군 지원병력을 탑승시켜 사이판에 상륙시킨 뒤 좌초시켜 고정포대(...) 로 사용하자는 계획이 진지하게 논의되어 실행 전까지 갔다. 다만 마리아나 해전의 대패로 나가리...
  • [4] 미드웨이를 생각해보면 정확한 판단이었다.
  • [5] 이것이 후의 포격전에서 호위항모가 피해를 입으면서도 한 척만 격침당하는 데 그치는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
  • [6] 출격한 파일럿들은 적함에 최대한 손상을 입히기 위해 어뢰발사관이나 기총 사수, 기총 총좌를 노렸다고 한다.
  • [7] 가라앉을 게 뻔한(것처럼 보이는)호위항모로 돌아올 수는 없으니…
  • [8] 존 C.버틀러급 호위구축함. 미 해군은 수송선단 호위용으로 대량의 호위구축함을 건조했다. 대잠임무가 주목적이었기에 존 C.버틀러급을 비롯한 호위구축함은 만재배수량이 2,000톤도 안되어 '깡통 구축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 [9] 적함에서 발사된 포탄이 만든 물기둥을 향해서 접근했다.
  • [10] 하지만 태피2 함재기들의 공습을 피하지 못하고 격침당한다.
  • [11] 초카이의 대파 원인은 밑에서도 설명하겠지만 포격이 확실하기 때문에, 이 뇌격은 빗나갔고 후에 기술할 유폭을 어뢰의 명중으로 착각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물론 당시 수병들은 이 어뢰가 명중한 것으로 여겨서 환호했고...
  • [12] 그 뒤 기어링급 구축함 DD-823,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호위함 FFG-58이 그 이름을 계승한다.
  • [13] 당시 일본 함대는 처음부터 적 함대를 정규 항공모함군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속도와 거리 모두 터무니없이 잘못된 수치를 상정하고 있었다.
  • [14] 사실 구축함이 중순양함에게 포격전에서 지는건 당연한데 딴놈들이 너무 잘해서....
  • [15] 실제로 야마토의 주포의 명중률은 엄청 낮았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 [16] 중후반때에 구축함들이 필사적으로 옆에 붙어서 폭뢰를 떨구긴 했다.
  • [17] 다만 미함대의 적확한 위치를 가리키는 좌표는 제각각 모두 달랐다.
  • [18] 이 일화는 일본 위키의 유키카제 항목에 언급돼 있으며, 출처는 유키카제 전우회에서 출간한 서적에 소개된 구축함 존스턴의 생존자 회고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출처로 교차검증이 되지 않아 신빙성은 낮다. 오히려 당시 일본 해군은 포격전 중임에도 함재기들과 교전하느라 단장기총에 배치된 수병들이 표류 중인 미군 생존자들에게 수시로 발포했으며, 경순양함 야하기와 구축함 유키카제 등 몇몇 함선에서 사관들이 기총사수를 만류했다는 기록이 각 함 전우회 출간 서적 및 당시 구리다 함대에서 취합한 각 함정 전투상보에서 확인된다. 특히 유키카제에서는 보트로 표류 중인 미군 생존자들을 향해 대공사격 중이던 수병들이 25mm 단장기총으로 탄착을 관측해 가면서 조준사격하는 것을 억지로 중지시켰다는 이야기가 전술한 전우회 출간 서적에 공개적으로 실릴 정도였다.
  • [19] 원래는 '미드웨이'였는데 이번 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그 이름을 신형 항공모함에 붙이기 위해 배 이름이 갑자기 바뀌었다. 열받은 수병들은 "배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는 무식한 놈들이 어디 있어! 그러면 마가 낀단 말이야! 배는 분명히 2주안에 침몰할거야, 내가 장담한다!"라면서 분노했었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된건지, 진짜로 마가 낀건지 그 말은 현실로 나타났다. 다만 같은 카사블랑카급의 CVE-57은 원래 이름이 산호 해였는데, 이것도 그 이름을 신형 항공모함에 붙이기 위해서 세인트 로 보다 먼저 함명을 안지오로 바꿨었다. 이 배는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살아남았다.
  • [20] 참고로 이때 급조된 항공모함인 시나노는 항모로 개장한 후 17시간만에 격침되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
  • [21] 예를 들면 이 해전에서 겨우 살아돌아간 묘코급 묘코와 타카오급 타카오는 싱가포르까지 견인받았지만 수리하러 본토로 귀환할수가 없어서 부양방공포대업무만 하다가 종전을 맞았다.
  • [22] 국내 번역된 모 출판사 판 붉은 10월에서는 일본어판 중역 때문에 하루제 제독으로 나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