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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CF

last modified: 2021-02-27 16:08:47 Contributors

ECA(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창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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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나모 자그레브
(Dinamo Zagr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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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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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스
(Ran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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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옹
(Ly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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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유
(Man U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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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Mi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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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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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에른
(Bay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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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키르카라
(Birkirk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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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약스
(Aja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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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더레흐트
(Anderle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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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코스
(Olympia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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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벤투스
(Juven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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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Chel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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쾨벤하운
(Københa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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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
(Porto)

2014-15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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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Gr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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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포르티보
(Deporti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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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요
(Ra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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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테
(Lev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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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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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소시에다드
(Real Socie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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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
(Mála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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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
(Valen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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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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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레알
(Villarr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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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Sev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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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타 비고
(Celta V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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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Atlé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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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틱
(Athle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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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메리아
(Almerí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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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뇰
(Españ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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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르
(Ei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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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체
(El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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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도바
(Córdo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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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타페
(Getafe)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B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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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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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Liver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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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젤
(Ba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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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도고레츠
(Ludogorets)

2014-15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매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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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레티코
(Atlét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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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Real Madrid)


레알 마드리드 CF
Real Madrid C.F.
정식 명칭 Real Madrid Club de Fútbol
애칭 Los Blancos(하양)
Los Merengues(머랭)brLos Vikingos(바이킹)
La Casa Blanca(하얀 집)
창단 1902년 3월 6일[1]
구단 형태 시민구단[2]
소속 리그 라리가
연고지 마드리드(Madrid) 차마르틴 (Chamartín)
홈구장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Estadio Santiago Bernabeu, 81,044명 수용 가능)
스타디오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Estadio Alfredo di Stéfano, 6,000명 수용 가능)[3]
리저브 클럽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라이벌 FC 바르셀로나 (FC Barcelona) - 엘 클라시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Atlético de Madrid) - 데르비 마드릴레뇨
아틀레틱 클루브 (Atletic Club de Bilbao) - 엘 비에호 클라시코
FC 바이에른 뮌헨 (FC Bayern München) - 유러피언 클래식
회장[4] 플로렌티노 페레즈(Florentino Peréz)
부회장 이케르 카시야스(Iker Casillas)
감독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
주장 세르히오 라모스(Sergio Ramos)
부주장 마르셀루 비에이라(Marcelo Vieira)
3주장 카림 벤제마(Karim Benzema)
4주장 라파엘 바란(Raphaël Varane)
공식 웹 사이트 및 소셜 미디어 공식 웹 사이트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한국 팬 사이트 레알 매니아 네이버 카페 다음 카페 페이스북 네이버 밴드]
우승 기록
라리가
(34회 / 최다 우승)
1931-32, 1932-33, 1953-54, 1954-55, 1956-57, 1957-58, 1960-61, 1961-62, 1962-63, 1963-64 br 1964-65, 1966-67, 1967-68, 1968-69, 1971-72, 1974-75, 1975-76, 1977-78, 1978-79, 1979-80 br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4-95, 1996-97, 2000-01, 2002-03, 2006-07br 2007-08, 2011-12, 2016-17, 2019-20
코파 델 레이
(19회)
1904-05, 1905-06, 1906-07, 1907-08, 1916-17, 1933-34, 1935-36, 1945-46, 1946-47, 1961-62 br 1969-70, 1973-74, 1974-75, 1979-80, 1981-82, 1988-89, 1992-93, 2010-11, 2013-14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
(11회)
1988, 1989, 1990, 1993, 1997, 2001, 2003, 2008, 2012, 2017, 2020
코파 에바 두아르테[5]
(1회)
1947
코파 데 라리가[6]
(1회)
1984-85
UEFA 챔피언스 리그
(13회 / 최다 우승)
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1965-66, 1997-98, 1999-2000, 2001-02, 2013-14, 2015-16, 2016-17, 2017-18
UEFA 유로파 리그
(2회)
1984-85, 1985-86
UEFA 슈퍼컵
(4회)
2002, 2014, 2016, 2017
인터컨티넨탈컵
(3회 / 공동 최다 우승)
1960, 1998, 2002
FIFA 클럽 월드컵
(4회 / 최다 우승)
2014, 2016, 2017, 2018

유럽의_왕.jpg
[JPG image (Unknown)]
‘REYES DE EUROPA’[7]

I believe that not to coach Real leaves a void in a coach's career.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이 되지 않는 것은 감독 경력에 공허함을 남기는 것이다.

주제 무리뉴(José Mourinho), 첼시 FC 감독

레알 마드리드의 흰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는 팀의 가치를 대표한다.

호르헤 발다노(Jorge Valdano), 전 레알 마드리드 단장 겸 회장 보좌관

한 아이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으면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빛나는 9번이 되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시저스 킥을 할 거에요.[8]

우고 산체스(Hugo Sánchez), 현 CF 파추카 감독

레알 마드리드는 축구라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다.

크리스토퍼 클라리(Christopher Clarey), 뉴욕 타임스 기자

명실상부 지구상 최고 축구 명가이자, 수없이 많은 스타들이 모여드는 축구계의 로마 제국.

Contents

1. 개요
2. 평가
2.1.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제왕
3. 역사
4. 관련 기록
4.1. 우승/준우승 기록
4.2. 기타
5. 선수단
6. 인사진
7. 스폰서
8. 라이벌
8.1. FC 바르셀로나 (엘 클라시코)
8.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데르비 마드릴레뇨)
8.3. 그 외 라이벌
9. 레알 마드리드에 관한 흔한 오해
10. 여담


1. 개요

국제 축구 연맹(FIFA)과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클럽. UEFA 챔피언스 리그, 스페인 라리가, FIFA 월드컵 최다 우승 클럽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가 1928년 창설된 이후로 한 번도 강등당하지 않고 1부 리그에 잔류하고 있다. 20세기부터 스페인과 유럽에서 가장 성공적인 클럽으로, 자국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 함께 라리가를 양분하고 있고, 범위를 유럽 전역으로 넓혀도 가장 거대한 축구 클럽으로 첫 손에 꼽힌다.

유럽의 220개 축구 클럽을 대변하는 ECA[9]의 창립 회원 열여섯 클럽 중 하나이며, 구단의 규모와 인기에 따른 경제적 가치를 인정받아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가 선정하는 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스포츠 구단 순위에서도 항상 순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2013~15년에는 뉴욕 양키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FC 바르셀로나 등 각 종목별 세계 최고의 팀들을 제치고 3년 연속 1위를 달성했고, 이후 2016년 2위, 2017년 5위, 2018년 3위, 2019년 3위에 오르면서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가치를 자랑하는 중이다. 또한 2019년 기준 3대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트위터 팔로우 수에서 바르셀로나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축구계 대표 구단이라고 할 수 있으며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패 라는 기록을 달성한 최초의 구단이다.

'Blancos('흰색'의 복수)'라는 애칭에서 알 수 있듯 백색이 클럽의 상징색이고, 창단 때부터 단 한 번도 다른 색으로 바꾸지 않고 흰색 상하의 유니폼만을 입고 있다. 원정 유니폼으로는 전통적으로 보라색과 검은색을 사용했고, 드물게 파란색도 사용했다.

2. 평가

유럽 전역을 통틀어 리그 우승 30회를 넘긴 클럽은 극히 드문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는 34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4대 리그라 부르는 라리가, EPL, 세리에 A,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먼저 30회 우승을 돌파하였다. #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 13회 우승 역시 이 대회 최다 우승 기록. 2021년 기준, 1992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개편 전후로 모두 최다 우승 팀이다. 개편 이전 유러피언 컵 시대에 6회, 개편 이후 UEFA 챔피언스 리그 시대에 7회 우승을 기록했다. 게다가 우승 횟수뿐 아니라 통산 출전 횟수, 경기 수, 승, 승률, 승점, 득실 차, 8강 진출 횟수, 4강 진출 횟수, 결승 진출 횟수까지 모든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에 올라 있다.

이와 같이 리그와 챔스 양쪽에서 압도적인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클럽은 레알 마드리드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4대 리그의 최다 우승 팀들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유벤투스 FC, FC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 횟수를 합해도 11회로 레알 마드리드보다 적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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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Unknown)]

'20세기 최고의 클럽' 트로피

이러한 대단한 우승 기록들 때문에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 축구 연맹(FIFA)과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IFFHS)에 의해 20세기 최고의 클럽으로 선정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선 투표 방식으로 선정한 FIFA의 순위에서는 2위를 포함한 다른 클럽들이 모두 한 자릿수 득표율을 넘기지 못한 가운데 혼자서만 42.35%를 쓸어 담았고, 좀 더 객관성을 고려하여 포인트 집계 방식을 채택한 IFFHS의 순위에서도 역시 2위를 1만 점이라는 큰 점수차로 누르고 1위에 선정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첫 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팀에 오르는 등 여전히 최강팀 중 하나로 군림했다. 이후 6년 연속으로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탈락하며 자존심을 구기기도 했지만, 주제 무리뉴 감독을 통해 징크스를 깬 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 체제하에서 다시 한 번 우승을 달성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샬케 원정 6-1, 바이에른 원정 4-0 대승을 거둬 독일 원정 경기에서 10년 넘게 승리가 없었던 징크스까지 극복해 위상을 완전히 되찾고 매년 챔피언스 리그에서 유력한 우승 후보로 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직전 5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매겨지는 UEFA 클럽 랭킹에서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한 팀이기도 하다. 랭킹 산정이 시작된 1979년부터 총 42시즌 중 15번 1위를 차지, 7번 1위에 오른 유벤투스와 바르셀로나를 상당히 큰 차이로 제치고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가지 흠이라면 그렇게 압도적인 리그, 챔스 우승 기록에도 불구하고 FC 바르셀로나,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터밀란, 아약스 심지어 셀틱조차 달성했던 트레블 기록이 없다. 그 수많은 챔스 우승 시즌동안 트레블을 단 한차례도 연을 맺지 못한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10]

상술한 근거들을 종합할 때, 세계 최고의 명문 축구 클럽단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레알 마드리드를 고르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2.1. UEFA 챔피언스 리그의 제왕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한 유일한 팀이자, UEFA 챔피언스 리그 3연패를 달성한 유일한 팀이다.[11] 유러피언 컵 초대 우승팀으로서 대회가 출범한 이래 아직까지 최다 우승팀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으며,[12] 1992년 UCL 개편 전 6회 우승, 개편 후 7회 우승으로 두 시기 모두 최다 우승팀이다.

우승 횟수뿐 아니라 통산 출전 횟수, 경기 수, 승, 승률, 승점, 8강 진출 횟수, 4강 진출 횟수, 결승 진출 횟수까지 거의 모든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에 올라 있다. 우승은 밀란보다 6회 많고, 4강 진출은 바이에른보다 9회 많으며, 승점 또한 바이에른보다 100점 이상 앞서는 등 2위 그룹과 상당한 차이를 내고 있다.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의 13회 우승 기록은 우승 횟수 2위(7회)와 3위 (6회)의 기록을 합친 것과 동률이며, 잉글랜드의 전체 우승 횟수와 같고,[13] 이탈리아와[14] 독일의[15] 전체 우승 횟수보다 많은 수치이다.

누적 기록 외에도 최다 연속 참가(23연속, 진행 중),[16] 최다 연속 우승과 최다 연속 결승 진출(5연속), 최다 연속 4강 진출(8연속), 결승전 최다 연승(7연승, 진행 중), 개편 이후 유일한 3연패(2015-16~2017-18) 등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2017-18 시즌 종료 시점 기준으로 가장 많은 선수들이 우승을 경험한 팀이고(152명, 2위 밀란 87명), 가장 많은 감독들이 우승을 경험한 팀이며(7명), 득점왕을 가장 많이 배출한 팀이다(12번).

참고로 레알 마드리드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은 넘버링을 하듯 '열 번째', '열한 번째' 같은 식으로 불린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가 9번째 우승에 성공해 사상 첫 두 자릿수 우승에 가까워지자, 스페인어로 '열 번째'를 뜻하는 ' 데시마'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하다 실제로 10번째 우승을 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경우. 특정 팀이 우승할 때마다 그 우승에 보통 명사가 이름으로 붙는 것 자체가 그 팀의 위상을 방증한다.

4. 관련 기록

4.1. 우승/준우승 기록

  • 프리메라 디비시온 데 에스파냐(Primera División de España)
    • 우승: 34회(최다)
      1931-32, 1932-33, 1953-54, 1954-55, 1956-57, 1957-58, 1960-61, 1961-62, 1962-63, 1963-64, 1964-65, 1966-67, 1967-68, 1968-69, 1971-72, 1974-75, 1975-76, 1977-78, 1978-79, 1979-80, 1985-86, 1986-87, 1987-88, 1988-89, 1989-90, 1994-95, 1996-97, 2000-01, 2002-03, 2006-07, 2007-08, 2011-12, 2016-17, 2019-20
    • 준우승: 23회
      1928-29, 1933-34, 1934-35, 1935-36, 1941-42, 1944-45, 1958-59, 1959-60, 1965-66, 1980-81, 1982-83, 1983-84, 1991-92, 1992-93, 1998-99, 2004-05, 2005-06, 2008-09, 2009-10, 2010-11, 2012-13, 2014-15, 2015-16

  • 코파 델 레이(Copa del Rey)
    • 우승: 19회
      1904-05, 1905-06, 1906-07, 1907-08, 1916-17, 1933-34, 1935-36, 1945-46, 1946-47, 1961-62, 1969-70, 1973-74, 1974-75, 1979-80, 1981-82, 1988-89, 1992-93, 2010-11, 2013-14
    • 준우승: 20회(최다)
      1902-03, 1915-16, 1917-18, 1923-24, 1928-29, 1929-30, 1932-33, 1939-40, 1942-43, 1957-58, 1959-60, 1960-61, 1967-68, 1978-79, 1982-83, 1989-90, 1991-92, 2001-02, 2003-04, 2012-13

  • 유러피언 컵/UEFA 챔피언스 리그(European Cup/UEFA Champions League)
    • 우승: 13회(최다)[17]
      1955-56, 1956-57, 1957-58, 1958-59, 1959-60, 1965-66, 1997-98, 1999-00, 2001-02, 2013-14, 2015-16, 2016-17, 2017-18[18]
    • 준우승: 3회
      1961-62, 1963-64, 19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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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La Décima)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트로피

  • UEFA 컵(UEFA Cup)
    • 우승: 2회
      1984-85, 1985-86

  • UEFA 컵 위너스컵(UEFA Cup Winners' Cup)
    • 준우승: 2회
      1970-71, 1982-83

  • UEFA 슈퍼컵(UEFA Super Cup)
    • 우승: 4회
      2002, 2014, 2016, 2017
    • 준우승: 3회
      1998, 2000, 2018

  • 코파 데 라리가(Copa de la Liga)
    • 우승: 1회
      1984-85
    • 준우승: 1회
      1982-83

  •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Supercopa de España)
    • 우승: 11회
      1988, 1989, 1990, 1993, 1997, 2001, 2003, 2008, 2012, 2017, 2019
    • 준우승: 5회
      1982, 1995, 2007, 2011, 2014

  • 코파 에바 두아르테(Copa Eva Duarte)[19]
    • 우승: 1회
      1947

  • 인터컨티넨탈컵(Intercontinental Cup)[20]
    • 우승: 3회(공동 최다)
      1960, 1998, 2002
    • 준우승: 2회
      1966, 2000

  • FIFA 클럽 월드컵(FIFA Club World Cup)
    • 우승: 4회(최다)
      2014, 2016, 2017, 2018

4.2. 기타

5. 선수단

Real Madrid CF 2014-2015 시즌 선수 명단
등 번호이름영문 이름[21]포지션국적생년월일
1이케르 카시야스(주장)Iker CasillasGK
ESP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1년 5월 20일
2라파엘 바란Raphaël VaraneDF
F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3년 4월 25일
3페페PepeDF
P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3년 2월 26일
4세르히오 라모스(부주장)Sergio RamosDF
ESP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6년 3월 30일
5파비오 코엔트랑Fábio CoentrãoDF
P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8년 3월 11일
6사미 케디라Sami KhediraMF
GE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4월 4일
7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FW
PO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5년 2월 5일
8토니 크로스Toni KroosMF
GER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0년 1월 4일
9카림 벤제마Karim BenzemaFW
FRA_Flag.jpg
[JPG image (Unknown)]
1987년 12월 19일
10하메스 로드리게스James RodríguezMF
COL_Flag.jpg
[JPG image (Unknown)]
1991년 7월 21일
11가레스 베일Gareth Bale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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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7월 16일
12마르셀루Marcelo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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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5월 12일
13케일러 나바스Keylor Navas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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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2월 15일
14치차리토[22]Chicharito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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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1일
15다니엘 카르바할Daniel Carvajal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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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11일
16카스 시우바Lucas Silva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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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16일
17알바로 아르벨로아Álvaro Arbeloa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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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월 17일
18나초 페르난데스Nacho Fernández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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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18일
19루카 모드리치Luka Modrić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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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9월 9일
20헤세 로드리게스Jesé Rodríguez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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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26일
21르틴 외데고르Martin Ødegaard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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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17일
23이스코Isco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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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4월 21일
24아시에르 이야라멘디Asier Illarramend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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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8일
25르난도 파체코Fernando Pacheco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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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5월 18일
26바로 메드란[23] Álvaro Medrán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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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3월 15일

6. 인사진

레알 마드리드 CF 인사진
기술진 경영진
감독 지네딘 지단(Zinedine Zidane)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즈(Florentino Pérez)
수석 코치 비드 베토니(David Bettoni) 제1 부회장 페르난도 페르난데스 타피아스(Fernando Fernández Tapias)
코치 하미두 므사이디(Hamidou Msaidie) 제2 부회장 에두아르도 페르난데스 데 블라스(Eduardo Fernández de Blas)
골키퍼 코치 로베르토 바스케스(Roberto Vazquez) 제3 부회장 페드로 로페즈 히메네스(Pedro López Jiménez)
체력 코치 그레고리 뒤퐁(Gregory Dupont) 경영진 비서 엔리케 산체스 곤살레스(Enrique Sánchez González)
체력 코치 하비에르 마요(Javier Mallo) 전무 이사 호세 앙헬 산체스(José Ángel Sánchez)
경기 고문 (Miguel Porlán Noguera "Chendo") 회장실장 마누엘 레돈도(Manuel Redondo)
감독 대행 없음 사회 지역 이사 호세 루이스 산체스(José Luis Sánchez)

7. 스폰서

8. 라이벌

8.1. FC 바르셀로나 (엘 클라시코)

  • 전적: 97승 52무 96패
시작은 조안 감페르와 스페인을 쿠데타로 장악했던 리베라의 대립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리베라가 딱히 레알을 지지한 것도 아니고, 감페르보다 리베라 정권이 빨리 무너졌기 때문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조안 감페르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 또한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인한 것이고 리베라와는 관계없었다.

문제는 스페인 내전 시기이다.[24] 이 시기 축구계의 대표적인 인물이 주젭 수뇰(Josep Sunyol I Garriga)이다. 본래부터 카탈루냐 독립파이면서 강성 좌파였고, 태생적으로 정치가의 아들이면서 카탈루냐 좌익 정파였던 ERC(Esquerra Republicana de Catalunya)의 당원이기도 했으며, 좌익 신문 라 람블랴의 창립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수뇰이 1935년 카탈루냐 축구 협회장이자 바르셀로나 회장이 된다. FC 바르셀로나에 카탈루냐 민족성에 더해서 반 정부 성향이 강해진 것이 이 시기였다. 그리고 1년 후인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터졌고, 수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추종 세력으로 추정되는 세력에게 총살을 당해서 암매장 되었다. 일단은 프랑코 세력이라고 추정하긴 하는데, 스페인 내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라서 누가 죽였는지가 확실하지 않다. 일단은 프랑코 세력이라는 것이 정설이긴 하다. 참고로 수뇰의 시체가 발견되는 데는 50년 세월과 '수뇰의 친구들'이라는 카탈루냐 민족주의 단체의 꾸준한 노력이 필요했다. 아무튼, 이 사건으로 인해서 FC 바르셀로나와 수뇰은 탈루냐 독립운동과 반프랑코 투쟁의 상징이 된다.[25] FC 바르셀로나의 강경한 분리주의와 반프랑코 성향이 본격화된 것은 이 시기부터이다. 이 이전의 FC 바르셀로나는 에스파뇰을 포함한 이 지역 축구 협회에 모두 관여하기도 하는 등 딱히 민족 분리나 독립 성향이 강하지 않았다. 단적으로 바르셀로나의 2대 회장이자 최초의 카탈루냐인 회장인 바르톨로메우 테라다스는 카탈루냐 축구 협회장도 겸임하면서 사재를 동원해서 RCD 에스파뇰의 창단에 재정적 지원을 했다. 다만 이 시기의 바르셀로나는 좀 많이 골 때린다. 애초에 스페인 내전 자체가 골 때리지만, 특히 카탈루냐는 바르셀로나 내전까지 겪으면서 난리를 쳤다. 때문에 이 시기를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발로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무리이다. 진짜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던 바스크 지역은 대놓고 왕따를 자처해서 남부와는 아무런 연대도 하지 않다가 각개격파되었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조지 오웰카탈로니아 찬가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이합집산의 극한을 보여줬다.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의 승리로 끝나면서 총통의 자리에 오른 프란시스코 프랑코는 스페인 국가주의를 주장했다. 모든 지역에서 지역색을 빼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중에서 가장 강한 타격의 대상이 된 것이 좌익이면서 카탈루냐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스페인 내전 시기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카탈루냐 지역이었다.[26] 프랑코는 모든 축구 팀의 명칭은 스페인어로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서 영어식으로 'Football Club'의 약자인 'FC'를 사용하던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어 문법에 따른 명칭인 'Club de Futbol'의 약자인 'CF'로 바꾸어야 했다.[27] 그리고 스페인 외 민족적이고 지역적인 상징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카탈루냐 기를 사용했던 바르셀로나의 엠블럼 역시 교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28] 또한 1940년 프랑코 지지자였던 엔리케 피녜이로[29]가 바르셀로나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바르셀로나 경기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물의 취임이었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바르셀로나를 정치 압력에서 보호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엔리케 피녜이로 회장 재임 시기인 1943년 6월 코파 델 레이 준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는 노골적인 경기 조작이 있었다. 1차전 홈 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3 대 0으로 승리한 이후, 차마르틴 경기장에서 벌어진 레알 마드리드의 홈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가 11 대 1로 승리했던 것이다. 이 경기에서 보안부장이 전반전 시작하기 전에 바르셀로나에 대해 "너희들이 경기를 할 수 있는 건 위에서 눈감아주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협박을 했다는 것이 밝혀졌고, 피녜이로는 이에 대해서 항의하고 사임했다. 이후 바르셀로나 회장직은 프랑코 체제 임명 시기를 짧게 거치다가 오히려 강경한 대응이 더 문제를 야기한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카탈루냐 출신 임명을 거쳐서 자체 선임으로까지 변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스페인 축구 협회는 해당 경기를 무효로 처리했고, 이후에 레알 마드리드 회장으로 취임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후 1978년까지 이어진 프랑코 치세에서 바르셀로나는 리그 우승 8번, 코파 델 레이 우승 10번을 차지했고, 오히려 레알 마드리드는 21년간 무관 세월을 보내야 했다는 점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대한 프랑코의 실질적인 지원이 있기는 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프랑코 정권의 비호를 전면 부인하는 것은 어려우나, 실제로 21년 무관까지 겪은 레알 마드리드가 잘나가기 시작한 것은 프랑코보다는 회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 발발 시기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었던 라파엘 산체스 게라는 대표적인 공화주의자라서 프랑코의 정적이었고 내전 이후 감옥살이를 했다.[30] 부회장과 재무 담당자도 같이 죽었고, 후임인 후안 호세 바예호와 안토니오 오르테가 역시 레알 마드리드 역사에 이름도 올리지 못했다. 특히 안토니오 오르테가는 공화군 소령으로서, 바르셀로나의 수뇰 같은 공화주의 좌파라서 내전 이후 군사 재판에 넘겨져 처형당했다. 프랑코 독재가 가장 심했던 초기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는 런던으로 도망쳐서 변호사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프랑코의 우파 국가주의와 바르셀로나의 카탈루냐 민족주의&좌익 성향의 대립에, 앞서 언급된 레알 마드리드와 관련된 승부조작 사건의 임팩트가 더해져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카탈루냐와 카스티야라는 해묵은 민족 간 대립이 오히려 격화되었다. 그런데 이게 진짜로 이 시기에도 심각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는 것이, 이 시기를 대표한 바르셀로나 선수라고 한다면 바르셀로나 골수 팬들 중에서 일부는 요한 크루이프보다도 사랑한다는 슬로 쿠발라를 들어야 할 것인데, 쿠발라는 말년을 왕년의 라이벌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와 함께 에스파뇰에서 보냈다. 그리고 쿠발라는 에스파뇰에서 선수 말년을 보낸 것과 별 상관없이 바르셀로나의 감독직을 지내기도 했다. 이 시기 레알과의 라이벌 의식이 진짜로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민족주의 의식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전의 패권을 쥐고 있던 바르셀로나가 이 시기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권을 넘겨준 영향인지는 좀 심각하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 고려를 해야 할 것은, 바르셀로나와 에스파뇰의 관계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관계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카탈루냐의 카스티야에 대한 감정은 역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쿠발라의 일화로만 이를 유추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여지가 있다. 반대의 예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의 경우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로 남았으나 그의 영입 과정에서부터 레알 마드리드와의 대립이 있었다. 바르셀로나가 먼저 접근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의 개입으로 공유(?)를 하게 되었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바르셀로나 측이 이를 포기하면서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 때문에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레알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로 선수 이적은 불가능에 가까웠는데,[31] 드물게 있었던 두 팀 간 이적에서 루이스 피구 사건만큼 두 팀의 갈등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는 드물 것이다. 피구는 바르셀로나에서 부주장의 위치까지 오르며[32] 바르셀로나 팬(꾸레)들에게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 피구 본인도 레알 마드리드를 신나게 디스하면서 바르셀로나의 심장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러나 2000년에는 무시무시한 계약 파동 끝에 바르셀로나 최대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피구와 에이전트가 주급 인상을 요구하며 레알과 바르셀로나 사이를 오가다가 강제 이적 협상 허가 조항(바이아웃)을 발동한 레알 마드리드와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결국 시즌이 지나고 바르셀로나의 홈구장인 누 캄프에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엘 클라시코가 열린 날, 10만 꾸레들에게 FUXX수전노 등 야유를 한 몸에 받으며[33] 경기를 망쳤다. 그 후 약간의 정신병을 앓았다는 설도 있다.

이렇듯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간의 더비 매치, 즉 엘 클라시코는 그 명성답게 화려하면서도 두 지역 간의 엄청난 반감정 때문에 누구 하나 작살이 날 것 같은 무서운 분위기로 진행되곤 했으나,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주요 선수들로 이루어진 스페인 대표팀이 08 유로, 10 월드컵, 12 유로에서 3연속 메이저 대회 우승을 거두고 두 팀 선수들 사이에 스페인 국가대표라는 유대감이 생기면서 꽤 훈훈한 분위기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10년도에 레알 마드리드가 대패했을 당시 라모스가 돌아버려 메시와 푸욜, 차비 에르난데스를 차고 때렸던 것처럼 승부에서 지면 난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 지역감정이나 팀 간의 적개심과는 별개로 레알 마드리드의 곤살로 이과인은 엘 클라시코가 벌어지면 맨 처음 하는 행동이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를 찾아가서 껴안고 뽀뽀하고 별 짓을 다하는 것이었다. 메시 역시 이렇게 행동하는 이과인을 흔쾌히 받아들였었다. 엘 클라시코이기 이전에 같은 국적의 동질감 때문에 메시와 이과인은 엘 클라시코 라이벌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분이 깊다. 카스티야와 카탈루냐 출신들이 아닌 데다 같은 국대 선수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거니 팬들 역시 오히려 보기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8.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데르비 마드릴레뇨)

  • 전적: 112승 58무 56패

스페인의 더비 중에서는 엘 클라시코 다음으로 유명한 더비라고 할 수 있다.

라 리가 우승 횟수 1위 팀과 3위 팀의 경기. 특히 레알 마드리드는 시내 중심가 부유층과 카스티야인을 대표하고[34], 아틀레티코는 남부 지역 외곽의 서민층, 마드리드에 거주하는 카탈루냐인과 바스크인을 대표하기 때문에 더욱 경쟁 구도가 부각된다. 레알의 상징물은 시청 앞 시벨레스 분수대의 시벨레스 여신상이고, AT의 상징은 프라도 박물관 앞 넵튠 동상인데 두 사이의 거리는 500미터 밖에 안되고, 둘 다 마드리드 중앙 기차역인 아토차역과 콜론 광장을 잇는, 우리나라로 치면 종로급 메이저한 도로에 있다. 데르비를 하는 날은 당연히 소란 사태 예측하여 진압경찰들도 쫙 깔리고, 여기 저기서 술취한 훌리건들이 서로 맥주병 던져가며 쌈박질이나 난동 부릴수 있으니 혹시 마드리드 관광이나 체류 중 데르비가 겹치면 약간 길거리 안전에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더비들에 비해 주목도는 낮은 편이다. 굳이 꼽으라면 이 둘이 마드리드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클럽들이긴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의 격차는 분명하다. 지역 대회와 코파 델 레이만 있었던 스페인 축구 초창기부터 이미 레알 마드리드는 중부 지방 대회를 지배하고 스페인 최고로 꼽히던 팀이었기 때문에, 같은 지역의 아틀레티코보다는 다른 지역의 패자였던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틱 클루브과의 스페인 3강 구도가 더 부각되었다. 또한, 아틀레티코는 레알 마드리드를 매우 적대시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입장에서는 주적이 따로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반응이 적은 편. 상대 전적도 레알 마드리드가 압도하고 있고, 특히 아시아에 유럽 축구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2000년대 들어 아틀레티코가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양상이 10여 년간 지속된 탓도 있다.

1930년대 말부터 1950년대 초까지는 아틀레티코가 레알보다 강팀이었고, 이 시기에 아틀레티코가 리그 누적 우승 횟수에서 4:2로 앞서기도 했으나, 레알이 전성기를 맞이한 1950년대 중반부터 두 팀의 격차는 압도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하며 마드리드 더비에서도 레알이 일방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흐름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2010년대에 아틀레티코가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부임 후 다시 유럽 최정상급 팀으로 성장하고, 2014년과 2016년 2번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마드리드 더비로 성사되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더비 매치다운 긴장감과 화제성을 되찾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9. 레알 마드리드에 관한 흔한 오해


  • 레알 마드리드는 왕가 구단이며 스페인 국가 지원과 더불어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는 구단이고 프랑코 독재 정권 당시에는 독재 정권의 비호를 받았던 클럽이다.[35]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알 마드리드는 왕실 구단이 아니라 FC 바르셀로나나 발렌시아와 같은 '시민 구단'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구단주가 없이 '소시오(Socio)', 즉 시민들을 기반으로 시작된 클럽 구성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구단으로 왕가 지원을 받았다는 팩트 자체는 전무하다.[36] 임원들을 비롯한 회장인 페레스나 칼데론은 구단주가 아니라 소시오들의 투표로 인해 뽑힌 전문 경영인의 맥락에서 해석해야 자연스러우며 시의 자금과 운영도 마드리드 클럽의 네임 밸류를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방송이나 굿즈, 테마 파크를 비롯한 건축 사업 등)을 통한 수익을 통해 구축한 것으로 스페인 정부의 지원이나 왕가 지원, 독재 정권의 지원 그런 거 없다.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 카탈루냐 지방에 대한 프랑코의 탄압 내지 저항 정신과 관련하여 카스티야 지방이었던 마드리드였기에 더더욱 이런 오해가 가속되어 '바르셀로나=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클럽', '레알 마드리드=왕가의 지원을 받는 부패한 클럽'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외부의 노력 때문에 지금까지도 오해가 계속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물증이랄 게 없다. 그리고 프랑코 정권에게 살살 기지 않으면 당장 철퇴를 맞고 쥐도 새도 모르게 대서양의 물고기 밥이 되는 건 마드리드고 바르샤고 다 필요 없이 당시 스페인 사회 전체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당장 바르셀로나도 프랑코에게 두 번이나 클럽 명예 회장 자리를 바쳤을 정도로 프랑코 독재 정권의 통제는 스페인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반면 마드리드 시 자체는 스페인 내전기 부터 지금까지 반프랑코 성향이 굉장히 강한 도시인데[37] 프랑코 정권과의 관계를 까 보면 프리메라 리가 전체에서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다.[38] 그러니 요지는 독재 정권과 관련된 의혹의 시선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나,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의 업적 자체를 깨끗하지 않고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라는 것이다. 독재 정권과 결부시키더라도 마드리드가 그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으로 수혜를 얻은 사례와 그 증거는 전무하므로, 클럽의 성공적인 과거 행보를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고 우승 기록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시도는 옳지 못하다. 물론 군부의 몰락 이후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 우리나라에서 6.25 전쟁 가지고 지역감정을 조장해서 특정 팀을 음해한다고 생각해 보라. 프랑코 정권의 악행이 스페인에서 얼마나 민감한 주제인지 고려하면,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역사적 상처를 축구판에 제대로 된 증거도 없이 정황상 대충 그리 보인다고 어거지로 들이대는 게 얼마나 저열한 일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39][40]

'왕가의 지원'은 아니더라도 '왕가의 지지'는 받고 있다.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레알 마드리드의 팬이다. 근데 아들인 왕세자와 며느리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팬[41] 애시당초 레알(Real)이라는 호칭 자체가 왕실을 상징하는 단어이긴 하나, 현 프리메라 리가에서 레알이라는 명칭을 달고 있는 구단은 레알 마드리드뿐 아니라 세군다 등 하부 리그를 포함해서 수많은 클럽들이 있으며, 클럽 창단 초창기에 클럽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당시 스페인 국왕에게 명예 구단주직을 위촉하는 사례가 종종 있었는데 이때 스페인 왕실로부터 레알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은 것이지, 자기들이 알아서 뇌물 갖다 바치고 달아 재낀 타이틀이 아니다.

레알이라는 타이틀이 귀족적인 이미지로써 레알 마드리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가 시민 구단으로서 세계 최고 구단이 되게끔 한 가장 주된 원동력인 마드리드 시민들의 업적을 폄하하기 위해 왕실 구단, 부패 구단의 이미지를 덧붙여서 깎아 내리려는 시도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즉, 매 이적 시장마다 레알 마드리드가 쏟아붓는 천문학적인 이적료나 클럽 운영 자금은 국가 돈 빼다 쓰는 것이 아니고 페레스 회장으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 전문 경영진들의 각종 수익 사업을 통해 구축한 것으로, 유럽 최고 수준의 관중 입장료 수입 및 TV 중계권료 수익, 혹은 레플리카나 패치 등 관련 상품 수익이나 건축 사업, 건물 임대와 같은 부수적인 2차 수익, 다수의 다국적 기업과의 스폰서 계약[42] 등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이득이 바탕이 된 것.

레알 마드리드의 수익 창출은 그 어느 구단보다도 효율적이고[43] 많은 이익을 창출해 내고 있어서 수많은 클럽들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 괜히 레알 마드리드 구단 운영의 사례가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재로 쓰이는 것이 아니다(링크).

지금 UEFA에서 FFP 룰을 적용하는 것을 가지고 세계 각국 리그의 클럽마다 계속 말이 많은 가운데, 레알 마드리드의 경우 그렇게 엄청난 이적 자금을 쓰는데도 아직까지 별다른 잡음이 안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훌륭한 클럽 운영 체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애초에 많이 버는 클럽은 많이 쓰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

  • 갈락티코스는 지나친 공격 자원 위주의 영입, 특히 베컴 영입과 마켈렐레 방출이 결정적 계기로 공수 밸런스가 엉망이 되는 바람에 무너졌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떡밥. 베컴의 영입과 마켈렐레의 방출이 원체 대조적으로 극적인 대비를 비뤄냈기에 저런 오해가 생긴 듯하나, 정작 2002/03 시즌과 2003/04 시즌의 전반기 실점률은 동일했다.

    애시당초 갈락티코스 자체를 돈만 많이 들이고 실패한 체제로 오해하는 경우도 많지만 갈락티코스가 결성되기 시작한 2000년에서 2003년까지, 좀 더 길게 잡자면 1999/2000 시즌부터의 레알 마드리드(소위 말하는 라울 마드리드에서 갈락티코스 1기로 넘어가는 시점)는 델 보스케 체제 하에서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 리가 2회 우승이라는, 유럽 최고 명문의 이름값에 걸맞는 성적을 기록했다.[44] 당시 마드리드의 전술 자체가 새로운 스타를 영입함으로써 선수 한 명 때문에 전술적인 틀을 완전히 뜯어 고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니만큼 전술 이해도나 기존 선수들간의 유기적인 플레이 및 팀 전술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났기에 기존의 틀을 유지한 채 새로 영입한 선수들의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조금씩 전술에 수정을 주는 방식을 취했고 이러한 델 보스케의 실용적인 전술과 맞물려 저런 업적을 이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2003년까지는.

    많은 이들이 보았듯이 2003/04 시즌 이후 갈락티코스의 몰락 원인은 단순히 마켈렐레의 방출로 치부해 버릴 만한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당시 주전과 서브 간의 기량 차이와 연관지어서 보는 편이 더 합당하다.[45]

    물론 마켈렐레와 콘세이상의 이적은 큰 문제로 다가왔지만 이점은 단순히 공격적인 성향의 선수를 대신 그 자리에 채웠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닌 전체적인 스쿼드의 뎁스 자체가 얇아졌다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2003/04 시즌 마드리드의 전반기 기세는 뛰어났지만 전 시즌부터 베스트 11을 지속해서 돌린 것에 대해 체력 방전 문제가 계속 지적되어 왔었고 이것이 나중에 중요한 일전들이 겹치는 후반기에 들어서 연이어 터지게 되었다.[46]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델 보스케마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마드리드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선수단에 혼란이 일어났고 이후 익히 아는 갈락티코스의 몰락이 도래했다.

    당장에 피구의 땜빵은 누네스이고, 호돈과 라울의 땜빵은 포르티요, 센터백 자원은 엘게라, 파본, 라울 브라보(그나마도 본업은 왼쪽 윙백)인 상황에서 베스트 11의 기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차에 유스 써 보겠다고 올린 수비수들이 필드에서 똥을 싸질렀으니 마드리드의 수비력이 개판이 되는 것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애꿎은 카시야스만 열심히 구르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전반기에 날아 다니다가 베스트 11이 방전되는 패턴이 반복되고 그것이 2003년 이후 2006/07 시즌에 리가 우승을 되찾아 오기까지 이른바 탈락티코의 오명을 남기게 된 것.[47]

    그리고 수비수에 딱히 투자를 안 한 것도 아닌 것이, 기존의 카를루스나 노쇠한 이에로, 엘게라 등의 자원으로도 충분히 마드리드 수비진은 안정적으로 작용했고 그 이후에 솔라리나 캄비아소 등의 영입도 있었다. 하지만 마드리드가 요구하는 수준에 합당하지는 못했으며 이름값만 보고 영입한 우드게이트 같은 희대의 먹튀들 때문에 괜히 수비에 투자하지 않는 구단의 이미지가 박혀 버린 것.

    사실 레알 마드리드는 수비 자원에 대한 영입 투자도 꾸준히 감행해 왔고 페레스 복귀 이후 무리뉴 체제로 개편된 이후에는 수비수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투자가 감행되었다.[48] 2009/10 시즌부터 지금까지 영입돼서 계속 스쿼드상에 존재하는 수비 자원만 봐도 수비형 미드필더인 사비 알론소사미 케디라, 수비수인 히카르두 카르발류, 라울 알비올, 알바로 아르벨로아, 라파엘 바란, 파비오 코엔트랑 등이 있으며 코엔트랑의 경우 35m이라는, 역대 수비수 이적료 수위에 들 만한 비용을 기꺼이 지출하는 등 수비수에 대한 투자 역시 적지 않다.

  • 레알 마드리드의 유스 정책은 문제가 있으며 그것은 클럽 차원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 역시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데에서 나오는 오해. 특히나 과르디올라 체제 이후 승승장구를 달리고 있는 바르셀로나의 케이스를 보고 '왜 우리는 유스 안쓰나요?'라고 성토하는 이들이 많은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못해서 안 올리는 거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2군이나 유소년 팀에서 잘해서 1군으로 콜업해서 올려봤더니 1군만 올라오면 매번 삽질을 하는터라 도저히 쓸래야 쓸수가 없는 상황. 물론 레알이란 팀 수준에서는 못한다고 평가받을 뿐 사실 레알 유스들의 실력들은 다른팀에서 주전 먹을 만하다. 괜히 믿고 쓰는 레알산 이라는 말이 있는게 아니다 다만 구단에서 유스들을 선수를 키워내는 능력 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레알 마드리드 역시 바르셀로나와 걸맞을 만큼 훌륭한 유스 정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축덕들에게는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49]

    1965/66 시즌에 6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 이후로 30여 년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던 레알 마드리드에 혜성처럼 등장하여 1997/08 시즌부터 2001/02 시즌까지 5시즌 동안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이끌었던 마드리드의 레전드 라울 곤살레스와 구티, 그리고 99년부터 1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드리드의 골문을 지켜온 현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 과거 유스 팀의 주장을 맡았던 알바로 아르벨로아, 나폴리의 호세 카예혼 등 많은 선수들이 마드리드에서 활약했으며 카스티야에서 배출한 선수들은 라 리가를 포함한 전 세계로 뻗어나가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소년 가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는 EPL No. 1 공미인 후안 마타를 포함, 맨체스터 시티하비 가르시아,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스테반 그라네로, 토트넘 핫스퍼의 특급 골잡이인 로베르토 솔다도, 유로 2012에서도 활약한 발렌시아 C.F.의 공격수 알바로 네그레도 등등 카스티야가 배출해 낸 선수들의 활약상은 눈이 부시지만(소위 믿고 쓰는 레알산) 문제는 정작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활약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물론 레알 마드리드 구단 자체의 문제점도 분명히 이에 한몫했다. FC 바르셀로나처럼 유스를 키워서 바로 바로 올리는 시스템이 아닌 왕년의 슈퍼 스타들을 영입함으로써 스쿼드를 짜 맞추는 식의 구단 운영 방침 때문에 유스들이 쉽게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유스 선수 스스로가 레알 마드리드 1군 스쿼드에 올라가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유스 정책의 일환으로 파본 등을 썼다가 이미 한 번 크게 데인 적이 있었고, 그 이외에도 B 팀에서는 잘 하다가도 유독 1군에 올라오면 죽을 쑤는 케이스가 비일비재했다. 이같은 점을 보면 온전히 구단 탓으로만 돌리기도 힘든 것이 당장 보여지는 기량에서 수준 미달이니 선수 개인의 심리적인 요인 때문인지는 몰라도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에서 유스가 주전 자리에 발탁되고 싶으면 기존의 포지션을 밀어낼 만한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든지(라울 곤살레스나 이케르 카시야스 등) 아니면 다양한 포지션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하든지(구티) 해야 하는데 구단이 요구하는 수준을 어느 부분도 충족하지 못하게 되니 결국 타 클럽에서 정착하게 된 것.[50] 그렇다고 이러한 유스들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보장하는 것은 터질지 어쩔지 확실치 않은 도박이고[51] 무엇보다 스타들을 영입하는 것은 마드리드의 성적하고만 연관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마케팅 및 구단 운영에 관하여서도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문제이다. 때문에 지금 같은 스타 선수 위주로 영입하는 체제를 유스의 적극적인 기용을 위해 쉽사리 바꿀 수가 없는 것이다.[52]

물론 이 같은 형태에 대해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며 과거 라 파브리카 출신 레전드인 구티는 자신이 라 파브리카의 시스템을 개편해 보겠다며 유소년 코치직을 지원한 상태이니 향후 클럽의 유스 시스템이 변경될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이 3가지 오해의 발단은 세계 최고의 선수를 모은다는 공격적인 투자, 속된 말로 돈질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 왕가의 전폭적 지원을 바탕으로 많은 돈을 사용할 수 있다는 루머에, 스페인이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것을 두고 '축구에 돈 쓰다 이 꼴이 났다'라는 어이없는 추론마저도 있었다.
  • 돈질의 사례 혹은 실패 사례.
  • 비교 대상인 FC 바르셀로나와 달리 돈질로 이곳 저곳에서 사오다 보니[53] 올라오는 유망주가 없다는 것. 그러나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라 파브리카에서 나온 선수들도 적지 않으며, 마침 라이벌인 FC 바르셀로나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유스 포텐이 연이어 터지는 바람에 괜히 비교당해서 까이는 감도 없잖아 있다.
왜인지 이 항목 전반에 FC 바르셀로나 이야기가 껴있는 느낌은 기분탓이다.


10. 여담

  • 호날두나 카카 등 잘 생기고 몸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여성 팬 유입률이 높은 팀 중 하나다. 그만큼 부녀자 유입률도 높다[54]

  • 전통적으로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왕실의 클럽, 명문 클럽이라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고결한 서포팅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실제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현지 팬들을 보면 관전 태도도 비교적 질서 있고 차분한 편.[55] 그런 데에 기인하여 한국 서포터들도 대체로 자기네 서포팅 기믹에 대해서 '황족'이라고 한다.[56]

  • 상대 팀, 심지어는 라이벌 FC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라고 하더라도 자기네를 상대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면 기립 박수를 쳐주기도 한다.[57] 미첼 살가도에 따르면 '훌륭하다 훌륭하다 꾸레놈들'이 아니라 '털릴 상대가 없어서 꾸레한테 털리냐?'라고 자기네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까는 의미라고. 다만, 크게 패하면 그런 것도 없다. 2008/2009 시즌에 바르셀로나한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6-2로 털리자, 관중들 전부 화가 나서 경기 끝나기 전부터 다들 우르르 나가 버렸다.

  • 스페인 왕실이 레알 마드리드의 팬으로 유명하다. 레알 마드리드가 한창 잘 나갔던 1950년대에는 라커룸에 왕세자가 아무 때나 출입이 가능할 정도였다고. 이 외에도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58] F1 선수 페르난도 알론소, 영화 배우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 세계 3대 테너 중 한 사람인 플라시도 도밍고[59] 역시 레알 마드리드 팬으로 유명한 인물들이다.
    엘 클라시코의 파생어로 엘 꼴라시코가 있다(...)

  • 공식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트로피를 들고 마드리드의 시벨레스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벌이는데, 팀의 주장이 광장을 꽉 채운 선수들과 서포터들 앞에서 중심부 분수의 시벨레스 여신상에 키스를 하는 전통이 있다. 이 미신의식으로 스스로가 여신의 가호를 받는 클럽,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는 자부심을 고취하는 듯. 이 때문에 우승을 많이 이끌었던 라울 곤살레스는 '여신의 남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라모스는 여기서 우승컵을 박살내기도

  •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선수들, 감독, 코치들과 모든 관련 직원들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모르면 스페인어를 의무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 2016년 한국타이어와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경기 도중에 한국타이어를 홍보하는 배너를 볼 수 있으며 하프 타임에는 국내 TV에서 나오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모델로 나온 CF 영상이 그대로 경기장의 대형 스크린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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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Madrid Football Club으로 창단.
  • [2] 시민구단이기 때문에 구단주는 없고, 소시오 중에서 회장이 선출되는 방식이다.
  • [3] 레알 마드리드의 제 2구장으로 원래는 리저브팀의 구장이다. 19-20 시즌부터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증축공사로 인해 이 곳에서 홈경기를 치른다.
  • [4] 시민 구단이기 때문에 구단주는 없고, 소시오 중에서 회장이 선출되는 방식이다.
  • [5]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전신.
  • [6] 스페인의 리그컵. 대회 포화 등 클럽들의 반발로 4년 하고 바로 폐지되었다.
  • [7] 2013/2014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1차전 킥오프를 앞두고 선보여진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카드 섹션으로, '유럽의 왕'이라는 뜻이다. 해당 경기에서는 레알 마드리드가 유럽 대항전 라이벌 FC 바이에른 뮌헨을 맞아 1-0으로 승리했다.
  • [8] 아마 본인의 어린시절을 추억하면서 얘기한 말인듯하다, 우고산체스는 레알마드리드에서 9번이었고 시저스 킥의 달인이었다
  • [9] European Club Association, 유럽 클럽 협회
  • [10] 비슷한 사례로는 세리에를 꾸준히 지배해오면서도 챔스 우승과 영 인연이 없는 유벤투스. 이쪽은 챔스 준우승 전문이다.
  • [11] 1992년 유러피언컵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로 개편되고부터 3연패를 이뤄낸 팀은 레알 마드리드 뿐이며 2연패또한 찾아볼 수 없다.
  • [12] AC 밀란이 1994년에 5회 우승을 달성하여 당시 6회 우승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와 역사상 처음으로 동률을 이룰 기회를 잡았으나, 이후 격차가 다시 벌어졌다.
  • [13] 리버풀 6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회, 노팅엄 포레스트 2회, 애스턴 빌라 1회, 첼시 1회.
  • [14] 밀란 7회, 인테르 3회, 유벤투스 2회.
  • [15] 바이에른 6회, 함부르크 1회, 도르트문트 1회.
  • [16] 유러피언 컵 시기에는 디펜딩 챔피언 또는 자국 리그 우승팀만 참가 가능했는데도 원년부터 1969-70 시즌까지 무려 15시즌 연속으로 참가해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 [17] 참고: 알 마드리드 CF/UEFA 챔피언스 리그
  • [18] 챔피언스 리그로 개편된 후 첫 3연패.
  • [19]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전신.
  • [20] FIFA 클럽 월드컵의 전신.
  • [21] 굵은 글씨는 유니폼에 표기된 이름
  •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임대
  • [23] 참고로 파체코와 같은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 출신. 공식홈페이지에는 나와있지 않다. 하지만 출전 명단에 오르고 골도 넣었으니 인정해주자.
  • [24] 단, 스페인 내전 기간 동안에 프리메라 리가는 당연히 진행이 중단되었다. 나라 전체가 전쟁 중인데 축구 리그를 진행할 정신이 있을 리가 없다.
  • [25] 원래는 여기에 좌익 성향도 더해져야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공산주의의 패배가 확실해진 이후로 그런 성향을 띤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 [26] 바스크를 제외한 것은 프랑코 이전에도 바스크는 저항 세력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프랑코가 무너지게 된 것은 ETA를 비롯한 바스크 세력의 저항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있다. FC 바르셀로나는 그에 비하면 영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 [27] CF가 레알 마드리드의 그 CF이기 때문에 레알 따라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CF는 평범한 스페인어일 뿐이고, 사용하는 팀도 정말 많다.
  • [28] 다만 엠블럼 변천을 보면 잘만 들어 있어서 신빙성이 떨어진다.
  • [29] 라메사데아스타 후작
  • [30] 원래는 사형이었으나 내전 중에 공화국 지역의 우익들을 숨겨줘서 사형은 면하고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훗날 프랑스로 탈출했다가 다시 59년도에 돌아와서 64년도에 사망했다.
  • [31]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사건 이전이긴 하지만 젭 사미티에르 같은 인물은 선수와 코칭 스태프, 그리고 프런트 생활을 모두 레알과 바르셀로나를 오가면서 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 선수, 레알 선수, 바르셀로나 코치, 레알 코치, 바르셀로나 이사 이런 식으로 살았다. 그래서 별명이 왕복 비행기였다.
  • [32] 당시 주장은 전 바르셀로나 감독이자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이고, 현 맨체스터 시티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였다.
  • [33] 일명 '돼지 머리 폭격' 사건이다.
  • [34] 때문에 스페인에서 "마드리드"라고 하면 백이면 백 레알 마드리드라고 이해한다. 마드리드는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도시이기 때문.
  • [35] 이 주장으로 인해 AT 마드리드의 팬들이 다음 응원가를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마드리드 만세, 마드리드 만세, 정부의 팀, 국가의 수치(Hala Madrid, hala Madrid, el equipo del gobierno, la vergüenza del país)"
  • [36] 프랑코 독재 시절 프랑코가 레알 마드리드를 비호한 것은 사실이라고 하나 프랑코는 기본적으로 축구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레알 마드리드가 유러피언 컵 5연패를 달성하며 전 유럽의 자랑거리가 되자 이 점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축구에 관심 있는 척 레알 마드리드 팬 코스프레를 했을 뿐이다.
  • [37] 카탈루냐인들이 바르셀로나만 프랑코에게 핍박받았을 거라 생각한다면 굉장한 오산이다. 당장 스페인 내전 직후부터 프랑코 정권 내내 프랑코가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사람 처죽이고 때려 잡은 곳이 바예카스, 라바피에스, 라티나, 푸엔카랄 등의 마드리드 남부와 교외의 블루 컬러 구역들이다. 마드리드가 수도이고 가장 큰 도시니까 당연히 희생자도 마드리드에서 많이 나오는 게 아니냐고? 인구 수에서 마드리드가 바르셀로나를 추월한 건 1950년대나 돼서야 생긴 일이다.
  • [38] 이전 버전에는 없다고 되어 있었지만, 딱 하나 있다. 아슬레틱 클럽. 이 팀과 바스크의 저항 역사는 레알 마드리드건, FC 바르셀로나건 다 눈 아래로 내려놓고 시작한다.
  • [39] 프랑코 정권이 레알 마드리드를 특별히 지원했다기보다는, 그들이 바르셀로나를 탄압하면서 레알 마드리드가 가장 큰 반사 이익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예를 들면 1943년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오늘날의 코파 델 레이 준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가 맞붙자, 프랑코 측에서 바르셀로나를 협박해서 11:1로 레알 마드리드가 결승에 올랐는데 정작 우승은 AT 마드리드가 한 것을 들 수 있다. 즉 군사 정권 측에서는 바르셀로나만 아니면 어디든 큰 상관은 없었던 셈.
  • [40] 단, 목적이야 어쨌건 결과적으로 프랑코 정권이 레알 마드리드를 지원한 것은 사실이다. 프랑코 정권과의 관계를 까 보면 프리메라 리가 전체에서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팀이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레알 마드리드가 그 거의 없는 팀 중 하나는 아니다. 그들에게 직접적인 지원으로 수혜를 얻은 사례와 증거는 전무하지 않으므로.
  • [41] 이것 또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왕세자 부부가 두 눈 멀쩡히 뜨고 아틀레티코를 응원하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왕가 차원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원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 [42] bwin, 아디다스, 코카콜라, 아우디 등.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과 스폰서십 계약 체결 중.
  • [43] 선수 이적 시장에서야 매번 적자를 내지만 스타급 선수 영입을 기반으로 한 각종 사업을 벌임으로써 이적 시장을 포함한 클럽 운영 자체는 매년 흑자를 기록 중이다.
  • [44] 다만 1999/2000 시즌은 로렌소 산스가 회장이던 시기로 갈락티코스 시기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전반기를 존 토샥 감독이 완전히 말아먹은 것을 델 보스케가 되살려 결국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뤘으나 리가에서는 최종 성적 5위에 그쳐 1996/1997 시즌 리그 우승 이후 3년간 무관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 뒤 회장 선거에서 플로렌티노 페레스가 피구 영입을 공약으로 내세워 새로운 회장으로 선출되고 이 때부터 갈락티코스 정책 시작.
  • [45] 당장 마켈렐레뿐만이 아니라 임대 혹은 이적으로 모리엔테스, 맥마나만, 콘세이상, 셀라데스까지 02/03 시즌 로테이션 멤버로 기용하던 선수들을 03/04 시즌에 죄다 내보냈다. 아무리 세계 최고급 유스 팀을 보유한 마드리드라지만 경험 부족한 어린 선수들로 너댓 명의 로테이션급 선수들의 공백을 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46] 03/04 시즌 후반기, 2004년 3월부터의 리그 마지막 12경기의 성적이 3승 2무 7패다. 이 시즌에 레알 마드리드는 최종적으로 10패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중 7패가 시즌 막판에 나온 것. 특히 마지막 5경기는 전패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 [47] 페레스 임기 말기 무렵과 2006년 이후 칼데론이 부임했던 시기는 갈락티코스가 완전히 와해된 때라고 보는 것이 맞으므로 논외.
  • [48] 단, 무리뉴 체제는 선수 수급 자체가 철저히 무리뉴 의도대로 이루어지고 선수 이름값보다는 무리뉴의 팀에 필요한 선수 위주로 영입되었기 때문에 갈락티코스라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무리뉴 본인부터 부임하자마자 갈락티코스는 끝났다고 선언했고.
  • [49] 바르셀로나의 경우, 유스에서 1군까지 일관된 전술, 즉 티키타카에 기반한 시스템을 사용하므로, 아무래도 유스선수들이 1군에서 적응하는 데 유리한 면이 있다. 반면 이는 플랜 B에 대한 적응력은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바르셀로나의 방식 역시 장단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50] 그러나 이는 구단의 책임이 맞다. 선수가 부진한 요인이 기술적인 문제이든 심리적인 문제이든, 그리고 그것이 유스의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든 선발 시스템의 문제이든간에 그것은 유스 시스템의 일부이고 구단의 책임이다.
  • [51] 바르셀로나도 구단 역사를 통틀어 이 정도로 유스 자원이 한꺼번에 빛을 발했던 적은 없었다. 또한 바르셀로나는 주전과 비주전 간 기량 차이에 대해 꾸준히 지적받을 만큼 아직은 유스 출신 후배들이 선배들과의 수준 차이를 빠르게 좁히지 못하고 있으며, 주전 노쇠화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공수의 핵 사비와 푸욜의 확실한 대체자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즉 유스가 단체로 포텐이 만개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는 운도 따라 줘야 한다는 것.
  • [52] 이것이 아마도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는 레알 마드리드 뿐 아니라 세계 정상급 수준의 팀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로, 21세기에 접어들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나 유럽의 주요 리그 경기들이 국제적으로 중계되고, 이로 인해 이러한 팀들의 선수 수준 혹은 요구사항이 올라가면서 커지고 있는 문제이다. 심지어 독보적인 유스시스템을 가진다는 평가를 받는 바르셀로나 FC의 경우에도, 87~8년생들을 배출한 이후에는 유스 출신 주전 선수의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 [53] 사실 바르셀로나도 마드리드 부럽지 않게 돈을 쓰긴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그를 아득히 뛰어넘는 네이마르.
  • [54] 근데 여성 팬 비율이 높은 팬 사이트는 레알매니아가 아니고, 오히려 꾸레코리아이다. 어째서?
  • [55] 그런데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많이 보러 오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도 있다. 팬들 중에는 보다 정열적인 응원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고. 실제로 2010/11 리가 32라운드 엘 클라시코를 보면 북도 치고 응원가도 크게 부른다.
  • [56] 그런데 스페인의 원수는 '황제'가 아닌 '왕'으로 칭하므로 제대로 된 말이라면 '왕족'이다.
  • [57] 요한 크루이프, 마라도나, 호나우지뉴,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기립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유벤투스 소속이었기 때문에 프리메라리가에서 활약하지 않는 선수로서는 유일하다.
  • [58]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삼촌 미겔 앙헬 나달은 바르셀로나에서 8년간 뛴 축구 선수였다.
  • [59] 마찬가지로 3대 테너 중 한 명인, 호세 카레라스는 바르셀로나의 팬이다. 사이가 안 좋아서 절교까지 했던 두 사람이지만,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화해하고 우정을 쌓게 된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