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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나달

last modified: 2015-02-03 02:28:35 Contributors

라파엘.jpg
[JPG image (Unknown)]


Contents

1. 프로필
1.1. 통산 커리어
2. 개요
2.1. 플레이 스타일
2.2. 커리어
2.3. 기타

1. 프로필

풀네임 라파엘 나달 파레라(Rafael Nadal Parera)
애칭 라파(Rafa)
직업 테니스선수
생년월일 1986년 6월 3일
국적 스페인
신장/체중 185cm, 85kg
프로데뷔
사용손 왼손잡이, 양손 백핸드
ATP 싱글랭킹 2위


1.1. 통산 커리어

(2014년 7월 기준)

  • 개인전 통산 성적 : 702승 137패 (83.72%)
  • 누적상금획득 : 70,704,129 달러(한화 약 714억)

    그랜드슬램 대회
  • 호주 오픈 : 우승 1회(2009) / 준우승 2회(2012,2014)
  • 롤랑가로스(프랑스 오픈) : 우승 9회(2005,2006,2007,2008,2010,2011,2012,2013,2014) 통산 66승 1패
  • 윔블던 : 우승 2회(2008,2010) / 준우승 3회(2006,2007,2011)
  • US 오픈 : 우승 2회(2010,2013) / 준우승 1회(2011)

    기타 대회
  • 2004 WTA 챔피언십 우승
  • 투어 파이널 2010 준우승
  • 국제테니스연맹(ITF) 월드 챔피언(2008,2010)
  • 2008 베이징 올림픽 남자단식 금메달
  • 마스터즈 시리즈 타이틀 26개 (2013년 9월 10일 기준)
  • 투어 타이틀 64개 (2014년 7월 기준)

2. 개요

스페인 출신의 테니스 선수. 2005년부터 투어급 경기에 참여하여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며, 현재는 남자 테니스계에서 손꼽히는 탑랭커 플레이어로 통한다.

특히 나달은 클레이코트의 제왕(King of Clay)으로 불리며 이쪽 부문에서는 살아있는 전설이자 넘사벽으로 통하고 있다. 국내 테니스팬들 사이에선 흙신, 흙달로 불리는중.

그리고 역대 남자 테니스 선수들중 두 명만이 달성한 단식부분 커리어 골든 슬래머로도 유명하다.[1]

2000년대 중반부터 로저 페더러, 노박 조코비치, 앤디 머레이와 함께 남자 테니스 싱글 부분을 주름잡던 통칭 빅4로 불리는중. 2010년도 이후부턴 은퇴가 얼마 안남은 노장 페더러와 부상으로 고생하는 머레이가 저조한 성적을 거두는터라 사실상 조코비치와 잠시 2강 체제를 형성했으나, 페더러가 회춘하는 동안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리면서 2014년 후반부터 1,2위와 제법 큰 격차가 있는 3위로 내려앉았다. 2015년 2월 기준 조코비치의 싱글랭킹 포인트는 13045점 / 페더러 9245점 / 나달 5745점이다. 메이저대회 우승 포인트가 2000점인걸 감안하면 꽤나 큰 격차인셈.

2.1. 플레이 스타일

리트리버 스타일로 무한한 체력과 근성으로 상대를 지쳐 쓰러지게 하는 스타일. 아무리 포인트가 끝난 것 같아도 끝까지 공을 개처럼 쫓아가서 어떻게든 상대편 코트에 넣는다. 그리고 슬슬 짜증난 상대방을 실책을 하고, 무너지는 패턴. 2008년 윔블던 결승에서의 장기 혈투는 그것을 증명해주는 경기였다.[2] 나달이 왜 페더러에게 강한가에 대한 분석글.

특히 나달의 포핸드는 나달의 타고난 괴물같은 신체능력을 보여준다. 나달의 포핸드는 다른 프로들과 비교해도 스핀량이 월등히 높고 그로인해 바운드가 높아진다. 게다가 왼손으로 포핸드를 치는 덕분에 공이 상대의 백핸드로 향한다. 이게 페더러의 낮은 곳에서부터 쓸어 올리는 한손 백핸드에는 특히 쥐약이어서 나달이 페더러에게 우위를 잡을 수 있는 한가지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나달의 포핸드는 팔에 부담이 심해서 테니스 코치들이 추천하지 않는 타법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흔히들 왼손잡이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오른손잡이이다. 자신을 코치하던 삼촌이 어렸을 때부터 일부러 왼손으로 포어핸드를 쓰고, 오른쪽에서는 양손으로 백핸드[3] 를 쓰게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선수가 백핸드가 포어핸드에 비해 빈약한 데 반해 나달은 백핸드도 강한 편이다.

상대적으로 공의 반발력이 세서 리턴이 쉽고 슬라이딩 테크닉의 사용이 가능한 등의 특성을 가지는 클레이 코트에서는 수비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유리하다 보니 로저 페더러노박 조코비치 등 탑랭커의 선수들이 나달에게 힘을 못쓴다. 그나마 조코비치는 특유의 유연성과 파워로 슬슬 클레이 코트에서도 나달을 이기고 있는 중. 나달은 특히 롤랑 가로스(프랑스 오픈)에서는 탑랭커들을 자주 떡실신시키며 우승을 밥먹듯이 하면서, 2000년도 중반부터 넘사벽의 기록을 쌓아 가는 중이다. 2005년부터 2014년 까지 10년동안 9번을 우승하며, 롤랑 가로스 최다 우승 기록[4]을 보유하고 있다. 황제라 불리는 페더러조차 롤랑 가로스에서는 나달에게 번번히 패배하여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못하다가 2009년에 나달이 난데없이 16강에서 발목 잡혀[5] 탈락한 틈을 타서 겨우 우승하였을 뿐이다.

경기 중 심판에게 어필을 잘하지 않는 편이며, 코트 체인지나 휴식시간 때 상대방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이동하는 버릇이 있다. 또 한 물통들을 항상 발앞에 가지런히 줄세워 놓는 걸로도 유명하며, 서비스 하기 전에 머리를 가다듬고 코 한번 만지는건 덤.

2000년대 후반부터 나이 때문인지 예전 같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는 테니스의 황제 로저 페더러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인정받는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평가되며 수없이 큼지막한 대회에서 맞붙었는데, 통산 전적에서도 앞서는 중. 2010년 이후부턴 페더러보단 노박 조코비치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중이다.

2.2. 커리어

스페인 마요르카 섬의 마나코르(Manacor)란 곳에서 아버지 세바스티안 나달(Sebastián Nadal)과 어머니 아나 마리아 파레라(Ana María Parera) 사이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세 살즈음부터 프로 테니스 선수 출신인 삼촌 토니 나달(Toni Nadal)에게 테니스를 배웠다. 이즈음의 나달은 준수한 실력을 보여주던 유소년 축구 선수로도 유명했는데 테니스와 축구를 병행하던 모습을 본 나달의 아버지가 한 가지 분야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고, 어린 나달은 쿨하게 테니스 선수의 길을 선택했다.

이후부터 나달은 삼촌 토니 나달의 맹훈련을 받았고 스페인 및 유럽에서 열리던 유소년 테니스 대회를 제패하며 주목받는 루키로 불리기 시작했다. 나달의 나이 16세 시점인 2003년에는 윔블던 3회전에 진출하며 세계 랭킹 50위권에 진입했고, 2004년엔 플로리다에서 열린 나스닥 오픈에서 처음으로 당시 세계 랭킹 1위이던 로저 페더러를 무실세트로 꺾는 이변을 보여준다. 그러나 직후 왼쪽 발목의 피로 골절로 인해 프랑스 오픈을 포함한 대부분의 클레이 코트 시즌 대회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부상치료를 마치고 나서는 데이비스컵 스페인 국가대표로 출전하여 미국과의 결승에서 당시 세계 랭킹 2위였던 앤디 로딕[6]을 꺾어 스페인이 미국에 3-2 승리를 거두며 우승하는 데에 기여했다.

2005년 호주 오픈에서 나달은 4회전 진출을 시작으로 가능성을 보이더니 이후 시작된 봄 클레이 코트 시즌의 대부분의 대회를 말그대로 독식한다. 그리고 프랑스 오픈 준결승전에서 페더러와 맞붙어 승리한 후[7] 결승전에서 마리아노 푸에르타를 꺾으면서 프랑스 오픈 첫 출전에서 우승을 거둔 역대 세 번째 선수가 되었다. 이외에도 2005년도에는 로저 페더러와 함께 ATP마스터스 시리즈를 4개씩 나눠갖는 등 무려 10개의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만 20세가 되는 2006년 여름까지 무려 16개의 타이틀을 따낸다. [8]

이후 나달은 프랑스 오픈 남자단식에서 우승을 거의 독식하며 웬만한 네임드급 선수들의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사실상 막아버리는 수준에 도달한다. 그러나 2009년 프랑스 오픈은 예외였는데, 부상에 시달려 제컨티션이 아니였던 관계로 16강에서 스웨덴의 로빈 쇠델링(Robin Söderling)에게 패배를 당하면서 5년 연속 우승에 실패했다.[9]

그러나 2010년부터 다시 프랑스 오픈 우승을 독점하기 시작! 2013년 결승에서는 세계랭킹 5위인 스페인의 다비드 페레르를 3-0(6-3 6-2 6-3)으로 완파하며 롤랑 가로스 통산우승 8번 겸 통신전적 59승 1패의 대기록을 만들었다. 8회 우승은 단일 메이저 대회 최다 우승횟수이다.[10]

프랑스 오픈 3주 뒤에 열리는 윔블던의 경우 나달이 유일하게 참가하는 잔디코트 대회인데[11], 클레이코트와는 정반대로 반발력이 약한 특성 탓에 나달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페더러 같은 유명한 선수들에게 자주 패배했다.

2008년 이후[12]에는 페더러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13] 밀리는 모습. 2010년에도 페더러가 탈락하면서 나달이 무난하게 우승을 가져갔다.[14] 그러나 2011년도부터는 윔블던에서 큰 재미를 못보고 있는데, 2013년 대회 때는 1라운드에서 랭킹 135위의 다르시에게 패배하며 광탈, 난생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1라운드 탈락을 기록하고 말았다.

US오픈에서는 우승이 없었는데, 페더러가 잠시 주춤한 2010년에 우승!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2013년 US오픈 결승에 순조롭게 올라가 노박 조코비치를 3-1(6-2 3-6 6-4 6-1)로 제압하며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림과 동시에 호주오픈을 제외한 그랜드슬램 3개 대회에서 2번이상 우승이라는 커리어도 갖게 되었다.

2011년 부상으로 나달이 약간 침체기[15]를 겪는 사이 조코비치가 신흥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상대전적상 클레이 코트 대회에서는 나달이 엄청나게 강한데, 非클레이 코트 대회에서는 조코비치가 말 그대로 나달의 천적. 나 떨고있니? 非클레이 코트 대회에서는 자신보다 랭킹이 한참 낮은 비네임드급 선수들에게 패배를 당하는 경우도 제법 된다. 특히 2013년에 복귀전 첫 대회에서 호라시오 제발로스에게, 2013년 윔블던에서 135위의 다르시스에게 패했다.

그러나 2013년 토론토 마스터스부터 US오픈까지 북미 하드 시리즈를 싹쓸이함으로서 하드 코트 전적 22승 무패를 기록한다. 그 중엔 현재 자신의 맞수로 불리는 하드코트 최강자 조코비치를 상대로 한 2승이 포함되어 있는데, 두사람의 통산 전적을 보면 - 클레이 : 38승 2패 / 하드 22승 / 잔디 1패로 클레이 코트보다 하드코트의 승률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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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T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나달의 왼손)

2013년에 무릎 부상으로 아쉽게 출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딛고 2014년 호주 오픈에 출전. 8강전에서 마리아 샤라포바의 연인으로 유명한 그리고르 디미트로프[16]를 3-1(3-6, 7-6, 7-6, 6-2)로, 4강전에서 로저 페더러를 3-0(7-6, 6-3, 6-3)로 이기고 결승에 올랐다. 상대는 통산전적 12번 대결하여 한번도 진적없는 스위스의 스타니슬라스 바브린카(싱글랭킹 8위). 그러나 8강전에서 입은 손바닥 물집부상 + 결승경기중 갑자기 발생한 등부상 때문에 제실력을 드러내지 못하고 3-1(6-3, 6-2, 3-6, 6-3)으로 패배하며 커리어 더블 그랜드슬램에 실패했다.[17]

2014 프랑스 오픈에선 무난하게 결승에 진출하여 현재 최고의 맞수로 불리는 노박 조코비치와 붙게 되었는데, 프랑스 오픈 직전에 열리는 로마 대회를 포함한 유럽쪽 클레이 코트 대회에서 조코비치에게 연패를 당하고 있는 상태라 올해만큼은 질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그러나 과거의 전적은 상관없다듯이 결승전에서 실수를 연발하는 조코비치를 엄청난 운동량과 리턴으로 질리게 만들면서 3:1 로 승리! 롤랑 가로스 통산 9회 우승 & 5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달성한다. 또한 역대 테니스 선수 통산 그랜드슬램 타이틀 커리어에서도 14번으로 공동 2위에 랭크 - 17회 우승의 로저 페더러의 기록경신 가능성을 드높히고 있다.

2014 윔블던 16강전에선 19세의 신인급 선수인 닉 키리오스(ATP 랭킹 144위)에게 1-3(6-7, 7-5, 6-7, 3-6)로 패하며 3년 연속 8강진출에 실패했다. 이 경기에서 나달의 수비 테니스는 잔디코트에서 빠른 서브를 주무기로 하는 공격 테니스에게 통하지 않는 다는 걸 노출했다. 나달이 4라운드(16강)까지 올라오기는 했으나, 그 동안 이긴 상대가 마틴 크리잔[18], 루카스 로솔[19], 미하일 쿠쿠쉬킨 등 강한 서브와 공격적인 플레이보다 클레이 코트와 베이스 라인 랠리를 선호하는 선수들이였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 하다. 게다가 노박 조코비치가 윔블던 우승을 차지하며 ATP 싱글랭킹도 2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2014 US 오픈은 손목 부상이 심해져 불참을 선언했다. 때문에 전해 우승으로 벌어두었던 랭킹 포인트 2천점을 고스란히 까먹으면서 랭킹에서도 조코비치-페더러에 이어 3위로 한계단 내려앉았다.

2015 호주 오픈에선 컨디션 난조를 보이며 힘겨운 경기를 보여주더니 8강에서 체코의 토마스 베르디흐에게 0-3(2-6 0-6 6<5>-7)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베르디흐와의 통산전적은 대뷔초기에 당한 3패를 제외하곤 17연승을 거두고 있어서 승리 가능성이 높았지만, 작년 중순부터 악화된 부상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한게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

참고로 현재 남자 테니스계 역사상 두 번째 커리어 더블 그랜드슬램의 달성이 가능한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게 나달이다.[20][21]

2.3. 기타

FC 바르셀로나의 레전드이자 스페인 대표팀 수비수로 활약했던 미겔 앙헬 나달[22]이 나달의 삼촌이다. 조카가 축빠이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팬으로도 유명하다는 점은 꽤나 아이러니한 점.[23]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있는데 나달의 메인스폰서가 바로 기아자동차이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2004년 만 18세였던 나달은 플로리다에서 열린 나스닥 오픈에서 메이저대회 2회 우승자였던 페더러를 무실세트로 잡아버렸지만 경기 직후 발목골절로 결승에도 가지 못하고 그 해 클레이시즌을 날려버렸다. 허나 기아 글로벌 마케팅부서의 높으신 분이 페더러와의 경기를 보고 당시 세계랭킹이 50위권밖에 안된 나달의 가능성을 엿보곤 메인 스폰서 & 스페인 모델 계약을 제의하여 체결했다. 당시 메이저대회 4회전도 진출해보지 못한 풋내기였던 나달에게 투자하는건 위험한 도박이란 평가가 많았는데, 1년 뒤인 2005년에 나들은 처음으로 출전한 롤랑 가로스(프랑스 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이에 화답, 현재는 세계적인 탑랭커로 성장하며 스포츠 마케팅의 신화적 사례를 탄생시켰다. 나달의 성격상 기아가 섭섭하게 대우하지만 않으면 메인스폰서 계약은 은퇴할 때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24]

기아 쏘렌토 광고를 찍었는데 꽤 웃기다. 쏘렌토 항목 참조.

나달시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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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달이 경기 중에 착용하는 시계가 약 6억의 초고가라 유명하다. 프랑스 시계회사인 리샤르 밀레(Richard Mille)에서 나달을 위해 특별하게 제작한 물건으로 제품명은 RM 027 Rafael Nadal Tourbillon. 나달에게 준 것을 포함하여 총 50개를 한정판으로 판매했다고 알려져 있다. 시계의 무게는 20g도 안된다고 한다.[25][26]

나달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 스네이크 버키 윕샷 영상이 은근 많다 # 카이도 카오루??

참고로 2013년 9월에 한국을 방문한적이 있는데, 이때 한국 남자 테니스계의 유망주로 불리는 이덕희 선수((서울 마포고)를 만나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약 8개월 뒤인 2014년 5월말에 프랑스 오픈 주니어 부분에 출전하는 이덕희 선수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테니스 아카데미인 BTT(Barcelona Total Tennis Academy)의 코치진으로부터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며 약속을 지켰다. 과거 나달을 훈련시켰으며, 현재도 자문역을 맡고있는 '프란시스 러츠'라는 전문가가 BBT의 총괄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데 이분이 롤랑 가로스 주니어 대회 동안 이덕희 선수를 전담으로 코치 + 대회종료뒤엔 아카데미생으로 받아들여 체계적으로 가르쳐줄 예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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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4대 메이저 대회(호주,롤랑 가로스,윔블던,US) 모두우승 + 올림픽 단식부분 금메달리스트를 가리킨다. 또한명의 달성자는 전설의 플레이어인 안드레 애거시.
  • [2] 그래도 많은 활동량 때문에 무릎부상이 계속되자 플레이스타일을 점점 공격적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3] 조코비치도 그렇고 나달고 그렇고 현 테니스계는 양손 백핸드가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데, 이건 한손 백핸드가 높은 탑스핀 포핸드를 못 당한다는 게 나달과 페더러의 관계로 증명이 되었기도 하고, 비록 예술적인 각도를 못 뽑더라도 안정적이고 상대방 서브를 확실히 리턴할수 있는 백핸드가 대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 [4] 1900년대 초반 막스 드퀴지(Max Decugis)라는 선수도 8회 우승을 하였지만, 당시 프랑스 오픈은 자국 선수들만이 출전 가능하였다. 테니스계에서 업적을 논할때 1969년부터 시작된 오픈시대를 강조하는 것이 종종 보이는데, 이는 오픈시대부터 프로화, 투어화가 되었고 제대로 세계랭킹 산정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 [5] 16강에서 로빈 소더링에게 1-3 (2-6 7-6<2> 4-6 6<2>-7)로 패배. 참고로 이때의 나달은 부상중이라 정상 컨디션이 아니였다.
  • [6] 안타깝지만 앤디 로딕은 테니스 아이큐도 떨어지고, 포핸드도 상위권 선수 치고 별볼일 없어서 10권 선수들 만나면 맨날 졌다.
  • [7] 하이라이트를 보자. http://youtu.be/Sgak8FGvNo0 나달의 개처럼 뛰어다니는 운동량에 페더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8] 에른 보리와 역대 타이기록이며, 나달이 2006년도 초의 클레이시즌에 좀더 집중했다면 충분히 경신도 가능했던 부분이지만 하드코트 대회들만을 다니며 죽을 쑤는 바람에..
  • [9] 이 때 나달이 떨어지는 바람에 페더러가 무난하게 우승을 차지하며 매번 목표로만 남았던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건 1년 뒤인 2010년 롤랑 가로스에서 페더러는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을 사실상 도와준 소더링과 8강에서 대결하여 탈락하고 말았는데, 이것이 소더링에게 패배한 유일한 기록 & 본인의 24연속 그랜드슬램 4강 진출기록을 막아버린 경기였다는 점이다.
  • [10] 1968년 '오픈 시대'가 열리기 전에 자국 아마추어 선수들만 출전하던 시절을 합하면 드퀴지 역시 8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횟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평가가 많이 낮아졌다.
  • [11] 관리가 힘들고 유지비용이 많이 드는 등의 단점 때문에 봄부터 초여름까지의 긴 기간 동안 열리는 다수의 클레이코트 대회에 비해 잔디코트 대회는 그 숫자도 적고 개최 기간도 짧은게 특징.
  • [12] 이때부터 윔블던 코트에 모래를 뿌리면서 잔디 스피드가 엄청나게 죽었다. 2000년대 고란 이바니셰비치, 패트릭 라프터 등이 뛰던 윔블던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 느려터지게 된 코트에서 이전의 강서브 어태커들은 힘이 살아나지 못하게 되었다.
  • [13] 정확히는 2008년부터 2009년 사이 라파엘 나달이 非클레이코트에서 우승하던 시기에, 페더러는 희귀병을 앓고 있었다. EB 바이러스로 유발되는 이 병은 겸상 적혈구 빈혈을 야기하며 만성고열과 무기력증을 동반한다. 이 병으로 인해 이언 소프 등 여러 스포츠스타들이 은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로저 페더러는 이 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테크닉만으로 결승전까지 오르는 괴물스러움을 보여주었고, 2011년에 치료를 완료하고 테니스 선수로 노장인 나이에 다시 훌륭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 [14] 한해에 롤랑 가로스와 윔블던을 모두 우승한 플레이어는 극소수로, 테니스계에서 대단하다고 인정받는다. 2008년 & 2010년 2번이나 이걸 달성한 나달은 ㅎㄷㄷ
  • [15] 사실 침체기도 아니다. 2011년을 침체기라고 하기엔 69승 15패로 승률이 82%(....)
  • [16] 매우 뛰어난 유망주로 페더러와 플레이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 한 손 백핸드는 양손 백핸드가 대세인 요즘 소수파이기는 하나, 그래도 챌린지 투어 이상 프로에서는 극단적으로 희귀종은 아니다. 오히려 젊은 신예 선수들중에서 주목받고 있는 선수들 중에서 한 손 백핸드가 좀 있다. 디미트로브를 필두로 두산 라조빅, 도미닉 팀등. 근데 이런 얘들 한 트럭으로 와도, 라오니치, 니시코리같은 양손 백핸드 한테는 못 당한다 문제는 맨탈과 체력이 부족해서 아직까지는 그랜드 슬램이나 마스터즈 시리즈에서 성적이 별로 신통지 않다.
  • [17] 참고로 이결승전에서 보여준 행동덕에 나달은 엄청나게 까였다. 발단은 결승전 2세트중에 발생했는데, 등쪽이 아프다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치료를 위하여 라커룸으로 불쑥 들어가 버렸다. 본래 경기중에 부상이 발생하면 메디컬 타임을 주심에게 정식으로 신청하여 정해진 3분간만 치료를 받는게 규칙인데, 나달이 이걸 신청안하고 들어가 버린것. 당연히 상대인 바브린카는 사실을 파악하곤 매디컬 타임 신청 안하고 나달이 들어갔다며 아주 강력하게 항의했다. 게다가 주심이 이상황을 빠르게 수습이라도 했으면 욕을 덜먹었을건데 자기도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수 분 동안 방송을 탔다. 결국 뒷북 때리는식으로 아주 늦게 매디컬 타임이 정식으로 선언 되었고, 나달은 6분이 넘는 시간동안 치료를 받다가 나와서 경기를 치렀다. 매너와 규칙을 중시하는 테니스의 성향상 나달이 기권을 선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무거웠던건 덤.
  • [18] 2014 ATP 250 뮌핸 오픈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실력은 좋은 선수. 다만 원래 클레이 코트 위주로 챌린저 투어를 전전하던 선수라...
  • [19] 2012년에 윔블던 2라운드에서 에서 나달을 이겼다. 2014년에 나달이 복수한 셈
  • [20] 남자 선수들중에서 이기록을 가진 선수는 전설적인 호주출신 테니스 선수 로드 레이버가 1962년, 1969년에 두 번 달성한 게 유일. 여자 선수들중에는 세레나 윌리엄스가 단식&복식 통합으로 달성했다.
  • [21] 사실 페더러도 롤랑 가로스(프랑스 오픈)에서 1번만 더 우승하면 가능하긴 한데, 클레이코트의 패왕 나달이 버티고 있는 데다 테니스 선수로선 은퇴가 얼마 안남은 노장인지라 매우매우 어렵다는 게 중론.
  • [22] 94 미국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와의 경기에서 퇴장당한 그 선수다. 2002년에도 월드컵 대표로 한국에 오기도 했다. 91-99 바르샤 전성기에 뛰던 선수로 마요르카에서의 활약상으로 바르샤에 갔다가 99년 당시 꾸레 감독 루이스 반 할 때문에 다시 마요르카로 돌아갔다. 66년생인데 2005년 40살까지 현역활동했으며 스페인 국대로는 91년부터 02년까지 뛰었고 62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다. 이에로의 파트너로 맹활약. 발이 느리지만 압도적인 피지컬로 비스트란 별명이 있었다고 한다.
  • [23] 나달의 축구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2006년 윔블던 때는 스페인 축구 대표팀의 월드컵 경기일정과 본인의 윔블던 경기일정이 겹쳐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 [24] 실제로 인터뷰 SNS 등에서 나달은 기아자동차에 대한 고마움을 자주 표시하기로 유명하다.
  • [25] 본래 테니스 선수들은 목걸이 같은 가벼운 장신구를 제외하고는 경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액세서리를 잘 착용하지 않는다. 특히 팔과 손목을 자주 사용하는지라 손목시계를 착용하는 테니스 선수는 드문데, 나달은 자신만을 위해 이러한 시계를 만들어준 데에 대한 보답으로 시계를 매우 소중히 여기며 경기 중에 항상 착용한다.
  • [26] 이 시계를 도둑맞을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는데, 한 번은 롤랑 가로스 오픈 기간 중 나달이 묵고 있던 호텔 직원이 우승 다음 날 훔쳐간 것이었다. 호텔 측은 나달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몰라했는데, 나달은 괜찮다며 쿨하게 넘어갔을 뿐 아니라 롤랑 가로스 시즌마다 투숙하던 이 호텔의 서비스가 아주 만족스러우니 앞으로도 계속 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대인배 나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