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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

last modified: 2015-04-07 20:23:28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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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ublic of Liberia

면적 111,369km²
인구 378만 6764명(2011)
민족구성 크펠레족 20%, 바사족 13%, 그레보족 10%, 미국계 2.5%
국가원수 엘런 존슨 설리프 대통령
수도 먼로비아
1인당 GDP 297$(2011)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건국과 근대
2.2. 현대
2.3. 찰스 테일러의 집권 과정과 몰락
3. 경제
4. 문화
4.1. 스포츠
5. 외교 관계
5.1. 한국과의 관계
5.2. 사생아 문제
6. 여행 정보

1. 개요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 있는 공화국. 수도는 몬로비아. 공용어는 영어. 단 워낙 오랫동안 미국 본국과 떨어져있어서 그런지, 이곳에서 통용되는 영어는 주변 토착언어들의 영향을 받아 사실상 피진 잉글리시 수준이 되었다. 아무런 배경지식도 없는 영어사용자가 이 나라에 가면 정말로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고. 그래도 미국 이주 흑인들의 후손이나 상류층은 현대 미국식 영어 혹은 미국 흑인 영어와 별 차이없는 발음으로 말한다. 인접국가로는 시에라리온, 기니, 코트디부아르가 있다.

미국이 해방노예를 식민(植民)시켜서 건국하였던 영향 때문에 국기도 미국성조기와 비슷한데 특이하게도 별이 50개가 아닌 단 하나의 별로 되어있고 공식명칭은 '외로운 별' 이라고 불리는데 독립 당시 최초의 아프리카 독립국이었음을 상징한다.

2. 역사

2.1. 건국과 근대

원주민 역사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으나,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과 접촉하면서 '후추 해안', '곡물 해안' 따위의 이름이 붙여진 지역 인근이다. 이 나라가 세워지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아무래도 19세기 미국의 영향이 매우 강하다.

후에 남북전쟁을 불러 일으킨 흑인 노예 문제가 심각해지는 와중에 1822년 미국에서 일부 노예들이 해방되었고, 이들이 미국의 도움을 받아 1847년까지 아프리카에서 이주한 후 1847년에 건국한 해방노예의 나라가 바로 라이베리아였다.

이 때문에 흔히 에티오피아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식민지 시대를 겪지 않은 둘뿐인 나라'로 소개되기도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라이베리아 지방에 식민지 구조가 성립되지 않았다 뿐이지 애초에 이스라엘처럼 '식민(植民)'이란 개념에서는 전형적, 태생적인 식민국가였다.[1]

라이베리아라는 이름부터가 Liberia, 즉 해방(Liber, 라틴어)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가졌으나, 미국계 해방노예(Americo-Liberian)들은 영어를 사용하고 개신교를 믿는 자신들이 야만스런 토착 원주민들 보다 우월하다고 착각하고는 신분제도를 도입했으며, 이 땅에 살던 다른 흑인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았다.

사실 흑인들이 단일 집단도 아니었고, 라이베리아는 대다수 흑인 해방노예들에게 연고지도 아닌 생판 처음 보는 땅이었다. 노예 무역으로 인한 노예 수의 증가에 본래 흑인들이 참여했다는 점도 학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 그리고 19세기 노예 무역의 쇠퇴에도 아프리카 내부에서 장기간 확산되어 온 노예 제도는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부 발전을 위해 활용하기도 했다. 게다가 19세기 중엽은 아프리카의 농산물 플랜테이션 사업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노예 노동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라이베리아만이 돌출된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본국이었던 미국도 아직 흑인 노예 제도가 폐지되지 않은 상황인데 사고의 전면적 변화를 요구할 수도 없기도 했고... 물론 잘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 및 미국과의 커넥션을 통해 라이베리아는 아프리카 중에서는 무역이나 교육 등의 면에서 유리한 점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내부의 마찰은 결국 10여 년 간의 내전을 부르게 된다. 독립을 하긴 했으나 말이 좋아 독립국이지, 미국의 괴뢰국이나 마찬가지. 덕분에 독립 이후 미군이 주둔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미국을 등에 업고 유럽 국가들을 무시하는 라이베리아에 대해 안 그래도 고깝게 여기던 유럽 열강들은 내전이 터지자 얼씨구나 하며 반군쪽에 무기를 지원하며 친미 아메리코 라이베리아인 정권 타도에 열을 올렸다. 심지어 하사쿠데타를 일으킨 사례도 있을 정도. 후술하겠지만 이 사람이 바로 라이베리아의 21대 대통령 새뮤얼 도(Samuel K. Doe)이다. 그럼에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전쟁 발발 일주일만에 미국보다 먼저(1917년 선전포고) 독일에 선전포고를 날렸다.

2.2. 현대

1940년대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자유경제정책을 펴서 경제와 정치가 상당히 안정되었으나, 1970년대 중반부터 고무광석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정치적으로도 갈등이 심화되었다.

결국에는 1980년 하사관들의 쿠데타가 벌어져 토착 원주민계인 크란족 출신의 새뮤얼 도가 대통령으로 집권한 뒤 미국 출신의 흑인들과 덤으로 기타 부족들까지 학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당연히 이에 반발한 미국계 흑인들인 '아메리코 라이베리안'들은 크란족 정권의 박해를 받던 기오족, 마노족까지 총규합해 찰스 테일러를 중심으로 1989년부터 라이베리아 민족애국전선(NPFL)을 조직하고 저항했다.

그러다가 1990년 도 대통령이 집권 10년 만에 암살당하고 그 뒤를 이어 아모스 소여의 임시정부가 출범하였지만 내전상황은 정부군과 테일러 측의 갈등으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칠여년간의 내전끝에 간신히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찰스 테일러는 대통령에 집권했으나, 이 양반도 독재자가 되어 독재자답게 막장스런 행보를 자랑하였다.

2.3. 찰스 테일러의 집권 과정과 몰락


"그는 우리 엄마를 죽였지.
그는 우리 아빠를 죽였지.
하지만 우리는 그에게 투표할거야."
- 찰스 테일러가 97년 대통령 선거에 내건 구호출처가디언 기사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새뮤얼 도의 군사 반란에 끼어들어 권력을 차지하는 듯 싶더니, 이후 횡령혐의로 요직에서 해임되자 골때리게도 리비아로 달아나서 카다피에게 아부하여 군사적 지원을 받은 인물이다. (개신교인이라며 자랑하던 사람이!). 당연히 카다피는 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으나, 라이베리아가 안정되면 또다시 미국이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너그럽게(?) 지원을 해준다.

리비아의 막대한 지원에 힘입은 테일러는 라이베리아로 돌아와 새뮤얼 도를 축출하였지만 이는 오히려 정치적 분열을 일으켰고 폭력적인 당파싸움이 계속되었다. 7년 가까이 내전이 지속되며 많은 사망자와 함께 라이베리아의 치안과 경제는 시궁창에 빠져들게 된다. 그야말로 카다피가 원하던 계산이 딱 들어맞았던 셈. 결국 테일러는 내전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사이에 유엔의 관리 하에 치뤄진 선거에서 이겨 1997년 합법적인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비극은 도리어 이때부터 시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는 반대파를 쓸어버리고 권력을 독점하는 전형적인 루트를 탄다. 그러나 그의 독재는 꽤 짧은 편이었는데, 바로 이웃 시에라리온에 가득한 다이아몬드를 욕심내며 시에라리온 내전에 한발 걸쳤던 것. 그것도 스스로 미친놈 인증한 RUF를 지원했다가 혼자 다 뒤집어썼다.

그는 시에라리온 반란군으로 위장한 라이베리아군(NPFL)을 보내서 RUF의 수법을 그대로 배껴 현지인들의 두 팔을 자르거나 아이들을 납치하여 강제로 마약을 먹여 소년병으로 만들고, 중독 상태에서 전투와 살인을 강요하며 시에라리온을 더욱 막장으로 빠트렸다. 이런 그의 막장 행보에 반테일러 세력인 '화해와 민주를 위한 라이베리아 연합(LURD)'과 '라이베리아 민주운동(MODEL)'이 결성되어 1999년 또다시 내전이 일어나게 된다.

게다가 무슬림의 비중이 높은 시에라리온에 슬쩍 손을 댄 것이 하필이면 이슬람 국가인 리비아와 카다피의 심기를 거스르고 말았다. 리비아의 지원을 받은 기독교 국가의 독재자가 감히 이슬람 국가의 혼란을 부채질하는 데다 그것도 국제사회가 직접 미친놈, 제노사이드 집단 인증한 RUF를 지원하는 꼴을 보고는 자신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던[2] 카다피가 그대로 지원을 끊어버리고, 되려 시에라리온군을 지원하기 시작한 것.

또한 테일러의 막장행보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2003년에는 조지고 부시는 대통령도 그를 까며 테일러를 체포해 재판을 받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2003년 10월, 2천여명의 반대파가 진격해 테일러 정권을 6년만에 엎어버렸다. 물론 실은 여기에 미국이 깊숙히 개입했다는 의혹이 꼬리를 물었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정권이 엎어지고 몰락한 테일러는 나이지리아로 망명해 잠적했으나, 2006년 계속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한 나이지리아 정부가 그를 체포해 넘기면서 찰스 테일러는 국제재판소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 때 테일러는 '내가 없으면 라이베리아에 혼란이 찾아올 것' 이라는 뻔뻔한 개드립을 날렸지만 실상은 테일러가 있어서 라이베리아의 혼란이 더 가중되었다는건 말할 것도 없다.

2006년 이후 평화를 되찾고 최초의 여성대통령인 엘런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 Sirleaf,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하다)가 선출되면서 그럭저럭 민주주의가 굴러가고 있지만, GDP는 여전히 세계 최하위에 워낙 장기간에 걸친 내전의 결과로 국가가 피폐해지고 사회적 손실이 막대한데다 부룬디처럼 무장해제를 거부한 채 버티는 일부 집단들이 다시 들고일어날 가능성도 있어 아직 갈길이 멀다. 그리고 국제재판소에 기소된 찰스 테일러는 유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 그리고 앨런 존슨 설리프 본인도 2011년 재집권한 뒤부터는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교훈에 걸맞게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부패 정치인 중 하나로 전락하여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을 야기한 장본인 중 하나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참고로 로드 오브 워에서 부하 장교를 총기 시험으로 쏴버린 잔혹한 라이베리아 대통령 앙드레 바티스트는 이 인간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3. 경제

오랫동안 내전의 아픔에 시달려 피폐해진 나라지만 세계 제2위의 선박보유국[3]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미국, 미얀마와 함께 미터법을 쓰지 않는 나라다. 오죽하면 이 문제로 미터법 좀 쓰라고 해외에서 봉사까지 오겠나….

라이베리아는 전세계 실업률의 하드캐리(...)를 담당하는 곳이며, 실업률 통계가 보통 실제 실업 문제를 축소화해서 나타내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액면적인 실업률 자체가 70%에 인접하는 곳이었다. 2008년발 경제위기로 아프리카까지 영향을 받게 되자 라이베리아의 실업률이 곧 70%의 장막을 뛰어넘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는데...

결국 2011년에 CIA에서는 라이베리아의 실업률이 70%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했다.[4]

4. 문화

4.1. 스포츠

AC 밀란첼시 FC에서 뛰었던 전설적인 축구선수 조지 웨아(George Weah)가 이 나라 출신이다. 그 또한 누구보다 테일러 독재에 항거하였던 인물이며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한 적이 있다. 자신이 사비까지 들여가며 라이베리아 국대팀을 이끌고 월드컵에도 도전했으나 2002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나이지리아에게 승점 단 1점 차이로 밀려 탈락했던 적도 있다. 자세한 건 라이베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조.

5. 외교 관계

5.1.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64년 수교하여 주한(駐韓) 코트디부아르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으며 북한과는 1973년에 수교하였으나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이 터지면서 1988년 단교하였다.

5.2. 사생아 문제

현지에서 일하는 한국인들에 의한 성매매 및 성폭행 등에 의한 사생아 문제도 있다. 시사IN의 기사에 따르면 라이베리아에도 한국인 생부를 둔 혼혈인들이 있다. 문제는 미국계나 독일계, 레바논계 혼혈인들과 달리 한국 혼혈인들은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 미국계나 독일계의 경우 생부가 책임을 지려고 하는 한편, 한국인 생부들은 생모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한국으로 도망가서 연락을 끊는다고. 어떤 여인은 생부를 찾으러 딸아이를 데리고 한국을 찾기까지 했다.
기사 참조: 검은 대륙에 버려진 한국의 핏줄

더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이유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도, 이 기사의 혼혈아들의 사진들을 퍼나르며 그들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한국 네티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미성숙한 행동들이 자칫 반한 내지는 혐한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겠나 하는 우려도 있다.

6. 여행 정보

2014년 기준 전 지역이 "철수권고" 등급이다. 외교부의 등급 중 두번째로 위험한 등급. 긴급 용무가 아니면 귀국 /가급적 여행취소하라는 뜻이다.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국경이 폐쇄되어 있다. 2014 서아프리카 에볼라 유행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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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첨언하자면 이런 노력과 관계 없이 미국 내의 흑인 노예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고, 흑인의 라이베리아 이주안도 일시기를 제외하고는 어영부영 무위로 돌아갔으며, 남북 대립을 막는데는 어떠한 효과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흑인들의 나라를 세우게 하면 노예문제는 해결된다'는 흑백분리기도로 만들어졌다는 자체가 병크인 거지만. 거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세워졌던 미승인국들과 같은 아이디어였다.
  • [2] 물론 그 자신도 차드 내전을 부추기고 있었지만
  • [3] 단, 이 중 외국 소유 선박이 90%가 넘는다. 외국 소유 선박이 라이베리아 선적으로 등록하는 이유는 세금이 싸니까. 참고로 선박 보유 1위는 파나마이며 역시 같은 이유로 외국 선박이 잔뜩 등록했다.
  • [4] 이 정도 단계에서는 실업률 통계가 실질적 의미를 거의 상실할 정도가 된다. 고용창출을 논하기 이전에 이미 모든 정책이 마비된 지 오래고 암시장의 활성화 등으로 완벽한 헬게이트가 열리기 때문. 따라서 이 정도 단계에선 정확한 수치를 내는 것을 사실상 포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