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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오레하 데 반 고흐

last modified: 2014-04-23 02:10:22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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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 푸엔테스하비 산 마르틴하리츠 가르테
파블로 베네하스레이레 마르티네스

스페인가수 그룹. 라틴팝의 세계에서는 전례에 없던 킹왕짱으로 먹어주는 초거물급 가수이다.

Contents

1. 멤버
2. 데뷔 과정
3. 상업적 성공
4. 위기
5. 스타 탄생
6. 레이레 마르티네스로서 두 번째 음반
7. 일화


1. 멤버


멤버
이름
생년월일 포지션
現 멤버
레이레 마르티네스1979.6.22현재(2대) 보컬
하비 산 마르틴1977.5.20키보드, 피아노, 작사, 작곡[1], 리더
알바로 푸엔테스1975.11.17베이스 기타
파블로 베네하스1976.6.21기타, 작사, 작곡
하리츠 가르테1976.1.23드럼
前 멤버
아마이아 몬테이로1976.8.261대 보컬[2]

2. 데뷔 과정

처음에는 하비 산 마르틴, 알바로 푸엔테스, 파블로 베네하스, 하리츠 가르테 이 네명의 대학생들이 모여서 그저 악기연주나 하던, 가수라고 부르기도 뭐한 딴따라무리들이였다. 그러다가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던 아마이아 몬테로를 발견하여 자기들 보컬의 가수가 되어달라고 했다. 이들은 이름도 없이 그냥 인디에서만 활동하고 다녔다. 그룹의 이름이 없어서 문제가 되자 아마이아 몬테로가 라 오레하 데 반 고흐(La Oreja De Van Gogh)라는 이름을 줬다.[3] 뜻은 반 고흐의 귀.

3. 상업적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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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보컬 아마이아 몬테이로.


화장품 CF 전문 노래

이후 Dile al Sol로 데뷔한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La Playa로 대박을 터뜨린지 얼마 되지 않아 Rosas로 엄청난 대박을 터뜨린다. 스페인과 남미 전지역 차트를 몽땅 정ㅋ벅ㅋ해버린 것도 모자라 활동 자체를 하지 않은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 이 노래를 무려 4위에 올려버리는 대기염을 토한다. 대한민국의 모 걸그룹이 한국 활동을 접어가면서까지 미국가서 죽을 힘을 다해 활동한 게 빌보드차트 70몇위에 오른 것을 감안한다면 좋은 퀄리티의 노래라 할 수 있다. 활동을 안하고 4등이니 상당한 성과다. 덕분에 한참 동안 남미의 모든 상점에서는 온통 이 노래를 틀어놔서 남미에 살던 사람들은 이 노래를 아예 외우는 수준이 되었다.


20 De Enero. 특이하게 뮤직비디오의 대부분을 애니매이션으로 처리했다.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이 Rosas의 열기가 식기도 전에 바로 20 De Enero를 내놓고 이 노래 역시 대히트를 친다.

Rosas가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입지를 마련해 준 노래라면 20 De Enero는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입지를 단단히 확보한 노래라 할 수 있으며 실제 이 두 노래가 이들의 상징이 되는 노래가 되었다. 그런데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세계적인 라틴팝의 거성으로 성장했다. 특히 20 De Enero는 샤키라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그 시기에 스페인 차트에서 샤키라를 가뿐히 무찔렀다.

참고로 20 De Enero는 두가지 버전이 있는데 원래 버전 이외에도 5분짜리 버전이 하나 더 있다.

물론 이런 웃긴 노래[4][5]를 발표하기도 했다.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이렇게 팬들의 정곡을 찌르기도 했다.

4. 위기


가수로서 대박이 난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이후 GUAPA라는 음반을 발표하면서 Muñeca De TrapoDolce Locura를 발표했다. 결과는 이것도 대박이였다. 특히 Dolce Locura는 여자의 입장에서 극단적으로 남자를 사랑하는 매우 눈물겹고 애절한 마음을 담은 관계로 레즈비언들과여자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많았다. 여기까지의 맹활약으로 인하여 파블로 베네하스와 하비 산 마르틴은 라틴팝 최고의 작곡가라는 명성까지 얻었다. 이에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미국에서의 인지도도 의식해서 Manhattan을 만들었다.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드는 매우 산뜻한 노래이다.

그러나 아마이아 몬테로는 무려 10년간이나 몸담았던 그룹을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솔로로 독립한다고 한다. 그 결과 아마이아 몬테로는 En Mi Lado Del Sofa를 남기고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를 떠났다. 졸지에 보컬이 없어진 세계 최고의 라틴팝 그룹은 와해 위기에 몰렸다. 불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아마이아 몬테로의 새로운 도전에 수긍하는 것이였으므로 아마이아 몬테로와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아직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아마이아 몬테로와 현재의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보컬인 레이레 마르티네스도 매우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탈퇴하고 솔로로 독립한 아마이아 몬테로는 자신의 노래를 발표하며 활동하고는 있으나 솔로가 된 이후에 아마이아 몬테로가 부르는 노래들은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음악 스타일과는 전혀 동떨어진 노래들이기에 아마이아 몬테로는 솔로가 됨과 동시에 가수로서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물론 아마이아 몬테로의 기본 가창력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어느 정도의 인기는 누리고 있긴 하지만 그게 라 오레하 데 반 고흐 시절의 인기만 못한 데다가 데뷔한 지 얼마 안 되는 레이레 마르티네스보다도 인기가 못하다는 게 문제다.[6]

5. 스타 탄생


El Ultimo Vals, 레이레 마르티네스를 가수로 만들어준 노래.

보컬이 없는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유명가수들 중 한 명을 보컬로 삼기로 하고 여러명의 솔로 가수들에게 물밑작업을 실시했다. 하비 산 마르틴과 파블로 베네하스는 그들의 데뷔곡을을 가수의 특징에 맞게 모든 후보들마다 한곡씩 다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던 도중에 Factor-X에 게스트로서 초대되었다. 그것이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운명을 결정지어 버렸다.

Factor-X에 출연한 일반인들 중에 유난히 튀는 레이레 마르티네스(Factor-X에서 준우승)는 키도 168cm라서 여자 치고는 훤칠하고 미모도 굉장했다. 더군다나 결정적으로 전에 보컬로 있다가 탈퇴한 아마이아 몬테로와 음색이 80% 이상 닮아 있었다. 하비 산 마르틴은 단지 아마이아 몬테로와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존에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차기보컬후보들을 싸그리 보이콧하고 레이레 마르티네스를 보컬로 하자고 했다. 여기에 망설이고[7] 있던 다른 멤버들에게 알바로 푸엔테스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찬성해줬다. 결국 레이레 마르티네스가 보컬로 확정되었다.

뭣모르는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그 엄청난 그룹에 초짜를 보컬로 내세운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논리로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비 산 마르틴은 레이레 마르티네스를 위해 El Ultimo Vals라는 노래도 만들어 주는 등 혼신의 힘을 다해 레이레 마르티네스를 제대로 된 가수로 만들어줬다.

그런데 이 El Ultimo Vals도 스페인과 남미를 휩쓸었다. 초짜가수가 각종 차트를 싹쓸이했다. 레이레 마르티네스는 이 노래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가수로 활동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뒤이어 여자의 입장에서 귀엽고 깜찍하게 프로포즈를 하는 내용의 노래인 Inmortal를 발표하였는데 이 노래 역시 흥행압승을 거두었다. 특히 이 노래는 오타쿠들과로리매니아들에게 크게 인기를 끌었다.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발표하는 노래마다 크게 히트쳤다. 그런데도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자신의 팬들에게 뭘 발표할 것인지 물어봤다. 팬들은 Europa VII를 발표하라고 아우성이였고 결국 Europa VII가 정식으로 발표되었다.

6. 레이레 마르티네스로서 두 번째 음반

2011년 10월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신보를 발표했다. 레이레 마르티네스의 가창력은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새로운 앨범에는 이런 노래들이 포진되어 있다. 퍼포먼스가 일절 없고 가창력으로 일관하는 가수 답다.

7. 일화

  • 2005년에 칠레에서 자선콘서트를 할 때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도 참가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자마자 팬들이 다음 가수의 노래를 무려 25분 동안이나 훼방을 놔서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무대위로 올라가서 한참동안 공연을 해줘야 했다.
  • 그들은 처음 가수로 활동할 당시 아파트를 하나 빌려다 다같이 살았는데 자기들끼리는 그 아파트를 동굴이라 부른다.
  •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유럽과 남미 이외에도 일본 호주, 미국(2007년 이후) 등을 돌아다니며 600회가 넘는 콘서트를 했다. 가장 콘서트를 많이 한 국가는 아르헨티나이다.한국에는 절대 안온다.
  •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멤버들이 1970년대 중후반 출생자들로서 가수 치고는 제법 연령이 있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팬들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음악적 재능을 크게 인정한 심즈 개발팀에서는 그들을 영입하여 심즈의 배경음악을 작곡하도록 했다. 심즈 개발팀 측에서는 거금을 들여 영입하는 등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를 굉장히 귀하게 모셔왔다고 한다.
  • 라 오레하 데 반 고흐는 아마이아 몬테로가 보컬인 시절이나 레이레 마르티네스가 보컬인 현재나 변함없이 오직 가창력 하나에만 집중하는 가수로 유명하다. 그들의 노래에 댄스풍의 노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콘서트때 추는 춤은 기껏해야 줄넘기춤(그냥 제자리에서 뛰는 것.) 정도에 불과하며 춤을 거의 추지 않는다.
  •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노래가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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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특이하게 아마이아 몬테로가 직접 작사 작곡한 이런 노래도 있었다.
  • [2] 현재는 솔로로 활동 중
  • [3] 긴 이름 때문에 외우기도 쉽고 간단한, 더군다나 그룹의 이미지와 최대한 비슷한 LOVE와 비스므리한 단어인 LOVG 라고도 부른다. 이런 상황을 아마이아 몬테로가 알고(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약자가 영어로 사랑을 뜻하는 'Love'와 흡사하다는 것) 의도적으로 이 이름을 지어준 것인지 그냥 지어준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 [4] 몬데그린으로 하면 노력 해줄께 라면박사... 이런 식이 된다.
  • [5] 이 노래야말로 아마이아 몬테로와 레이레 마르티네스의 깊은 친분을 상징한다. 이 노래는 아마이아 몬테로가 작사 작곡한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레이레 마르티네스도 이 노래를 불렀다. 두 사람의 친분이 없다면 레이레 마르티네스가 이 노래를 함부로 부를 경우 아마이아 몬테로가 저작권 문제로 걸고 넘어질 수 있다. 실제로 O-Zone의 멤버인 단 벌란이 작사작곡한 Dragostea Din Tei이라는 노래를 이두치가 함부로 불러서 둘이 진짜 법정싸움까지 했다.
  • [6] 음반 판매량이나 각국의 차트 순위로 본다면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가수로서는 도저히 이루지 못하는 성과물들이 계속 달성되고는 있으나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에서 탈퇴하기 전보다 그 성과물이 작다는 것이 문제. 탈퇴 전에는 항상 남미에서 1~2위를 다투는 수준이였음에도 탈퇴 후에는 15위권에 머무르는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저 1~2위 순위는 10여년간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와 함께하면서 이루어 낸 업적이고 애초에 그녀가 그룹에서 솔로로 전향하겠다는 의사 또한 저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새롭게 시도를 해보보겠다는 도전과도 같기에 계속 성장해 갈 것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 [7] 망설이는 유일한 이유는 아마이아 몬테로와의 옛 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