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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레드윙스

last modified: 2015-04-13 02:16:46 Contributors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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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레드윙스
Detroit Red 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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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926년 디트로이트 쿠거스[1]
연고지 미시건디트로이트
홈구장 조 루이스 아레나
스탠리 컵
(통합우승)
11회
1935–36, 1936–37, 1942–43, 1949–50, 1951–52, 1953–54,
1954–55, 1996–97, 1997–98, 2001–02, 2007–08
컨퍼런스 우승 6회
1994–95, 1996–97, 1997–98, 2001–02, 2007–08, 2008–09
프레지던트 컵 6회
1994–95, 1995–96, 2001–02, 2003–04, 2005–06, 2007–08
디비전 우승 19회
1933–34, 1935–36, 1936–37, 1987–88, 1988–89, 1991–92,
1993–94, 1994–95, 1995–96, 1998–99, 2000–01, 2001–02,
2002–03, 2003–04, 2005–06, 2006–07, 2007–08, 2008–09,
2010–11

Contents

1. 소개
2. 역사

1. 소개

NHL 동부지구 애틀랜틱 디비전 소속팀. 오리지널 식스의 일원인 팀이다.

미국 유이한 하키타운을 표방한 팀이다.[2] 레드윙스 팬들이 미는 별명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가장 아이스하키가 인기 좋은 지역 중 하나가 바로 레드윙스 홈인 디트로이트다[3]. 조 루이스 아레나 정중앙에 큼지막하게 HOCKEYTOWN이라고 써있다.

2. 역사

1926년 NHL의 경쟁리그 중 하나였던 WHL의 소속팀 빅토리아 쿠거스(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주도 빅토리아)가 여러 사정으로 WHL을 탈퇴할 상황이 되었다. 그 선수들을 유치하기 위해 신생팀 창단을 모색했는데, 당시 시장성이 있던 곳이 캐나다 국경과 맞닿아서 하키와 친숙한 미시간디트로이트였다. 그래서 WHL의 승인이래 빅토리아 쿠거스를 디트로이트의 투자자들이 인수한 뒤 소속 WHL선수들을 받아들여 디트로이트 쿠거스를 창단한다. 초창기에는 디트로이트에 하키 전용 구장이 없어서 다리 건너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 윈저에 있는 보더시티즈 아레나를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며 이후에는 디트로이트 올림피아를 홈구장으로 이전했다.

디트로이트 쿠거스는 중간에 팰콘스로 개명했다가 1932년 캐나다-미국 이중국적을 가진 사업가 제임스 E.노리스[4]가 인수한 뒤 팀을 레드윙스로 개명한다. 그리고 잭 애덤스 헤드코치 지도아래 마티 배리, 허비 루이스, 골리 노미 스미스 등을 활약으로 1935시즌 팀 역사상 최초의 스탠리컵 우승을 달성하고 36시즌 2연패를 달성한다.

1940년대 시드 하우, 골리 조니 마워스가 중심이 된 레드윙스는 1942년 3번째 스탠리컵을 들지만 40, 41, 44, 47, 48 5번 준우승에 머무는 등 스탠리컵 들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우승이 힘들던 시기 나타난 디트로이트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중 한명이 바로 1946년 입단한 라이트 고디 하우였다.


고디 하우는 1946년 데뷔해 무려 24년동안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소속으로 뛰면서 5번의 득점왕, 6번의 공격포인트(골+어시스트) 1위, 6번의 MVP를 비롯해 통산 801골로 웨인 그레츠키 다음으로 통산 골 2위, 통산 공격포인트 3위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웨인 그레츠키가 등장하기 전까지 NHL 역사상 최고의 스타. 중요한건 이양반 42세의 나이에 손목부상을 이유로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에서 은퇴한 뒤 프런트로 활동했지만, 은퇴 후 레드윙스의 대접이 다소 박한데다 본인이 하키를 완전히 버린게 아니라서 45세의 나이인 1973시즌에 NHL의 경쟁리그였던 WHA의 하트포드 웨일러스에 입단해 하키선수 커리어를 연장했다. 그냥 연장한게 아니라 45세의 나이에 2년동안 NHL을 떠나있었음에도 70경기에 출전해 31골 69어시스트 100포인트라는 전혀 녹슬지 않은 기량을 보여주며 웨일러스의 주공격수로 활동하다가 WHA가 NHL가 통합되면서 NHL 하트포드 웨일러스 소속으로 51세의 나이에 NHL에 컴백해 80경기를 풀시즌으로 소화한 뒤 은퇴한 아이스하키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활동했다. NHL의 사첼 페이지이자 마이클 조던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5] 고디 하우가 중심에 딱 버틴 디트로이트 레드윙스는 49, 51, 53, 54시즌 4번의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했다.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토론토 메이플리프스라는 NHL 전통의 캐나다 강호들이 전성기를 맞은 50~70년대에 미국 팀으로 이들에 맞서는 강팀이었다.

고디 하우가 커리어 연장을 위해 WHA로 떠난뒤 레드윙스는 침체기를 오랫동안 겪는다. 고디 하우가 WHA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동안 1965년 스탠리컵 준우승을 마지막으로 플레이오프에 실패한 뒤 스타플레이어 부재를 겪으며 밑바닥을 전전한 레드윙스는 70년대에 딱 한번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정도로 안습했다 [6]. 오늘날 야구와 아이스하키 양쪽에서 최고의 대인배 구단주로 꼽히는 마이클 일리치가 구단을 인수한 1980년대 초까지 지속되었던 레드윙스의 암흑기에 한줄기 빛이 된 선수는


1983년 전체 4번으로 지명한 "Stevie Y" 스티브 아이저맨(Steve Yzerman)이다.

스티브 아이저맨은 실력도 뛰어났지만 대단한 리더쉽과 승부근성으로 70년대 하위권에 머물면서 생겨났던 레드윙스의 오래 지속된 루징팀 근성을 깨는데 크게 공헌했다. 특히 리더쉽과 친화력이 대단해서, 1990년대 시작된 동유럽선수들의 본격적인 NHL진출 러시 때 레드윙스에 영입된 세르게이 페도로프, 슬라바 코즐로프, 블라디미르 콘스탄티노프 등의 러시아 선수들이 NHL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7] 이런 스티브 아이저맨의 리더쉽 아래, 각주에 설명되어있는 러시안 파이브로 대표되는 공격진이 최전방에 서고, 후방에는 디트로이트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인 스웨덴의 니클라스 릿스트롬(Nicklas Lidström)이 수비를 책임졌다. 그리고 크리스 드레이퍼, 대런 맥카티, 커크 말트비라는 찰떡궁합 어깨트리오[8], 토마스 홀름스트롬등의 파워플레이 스페셜리스트를 추가한 레드윙스는 햅스를 이끈 명장 스카티 바우만이 들어와 새로 도입한 레프트윙 락 시스템으로 강력한 팀을 만들어낸다.


레프트 윙 락은 수비 시 레프트윙이 수비수들 라인까지 내려가 후방를 책임지고, 센터와 라이트윙이 적극적인 포어체킹으로 상대를 왼쪽 사이드로 몰아넣는 트랩형태의 수비다. 윙어 한 명이 수비에 가담하는 락 시스템은 70년대 체코에서 시작돼 동유럽하키, 특히 러시아에서 주로 사용한 수비전략이었다. 레드윙스는 러시아 출신 선수들이 많고, 레드윙스의 레프트윙들이 상대적으로 수비형이 많았기 때문에 세르게이 페도로프, 크리스 드레이퍼, 스티브 아이저맨 등 수비력이 뛰어난 센터들이 적극적으로 상대를 몰아붙여서 상대 공격을 막아내는 레프트 윙 락이 매우 잘 통했다.

이런 강력한 수비전술을 바탕으로 94~95시즌 스탠리컵 파이널에 오랜만에 진출했고, 스탠리컵 파이널에서는 악명 높은 뉴트럴존 트랩의 뉴저지 데블스를 만나 0-4로 스윕 완패를 당하지만, 절치부심한 97~98시즌에는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를 꺾고 1954시즌 이후 42년만에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한다.

이때가 바로 지금도 NHL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전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콜로라도 애벌랜치와의 치열한 라이벌 관계의 정점이었다. 실제로 두 팀은 90년대 후반부 서부 지구의 최상위 두 팀이었고, 96년에는 애벌랜치가 승리, 97년과 98년에는 레드윙스가 승리하며 스탠리컵을 주고 받은 관계지만, 그보단 두팀의 하키가 워낙 피지컬한데다 라이벌 의식이 강해 경기 뿐만이 아니라 주먹을 주고 받는 일이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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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디트로이트에서 일어난 "하키타운에서의 패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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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다음 해 일어난 2차전
4분 4초경 해설자 "come on let's go~ come on let's go!!!"

97년의 패싸움은 거의 1년 전에 아발란치의 싸움꾼이자 피지컬한 선수로 유명했던 클로드 르뮤가 디트로이트의 크리스 드레이퍼를 부상 입힌 일로 본격적으로 악감정이 쌓인 게 폭발한 것이었다.[9] 97년 동영상에서 기습적으로 맞은 후 웅크려 잠자코 두들겨맞는 애벌랜치 선수가 르뮤, 그리고 패는 사람은 대런 맥카티. 후에 레드윙스 선수들은 그 패싸움 이후로 팀의 응집력이 강해져 스탠리컵까지 갈 수 있었다고 회자했다. 그리고 애벌랜치의 전설적인 골키퍼 패트릭 롸는 2년 연속 레드윙스의 골키퍼들과 싸웠고, 몇 년 후에는 세 번째 골키퍼와 싸울 뻔했지만 애석하게도 성사되지 않았다. [10]

1997년 우승 직후 페티소프와 콘스탄티노프가 타고 있던 리무진이 심각한 사고를 당했고, 페티소프는 경미한 부상으로 끝났지만 콘스탄티노프는 중상을 입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다. 레드윙스는 그에게 97-98 시즌을 바쳤고, 결국 스탠리컵 2연패에 성공하며 휠체어 신세를 진 콘스탄티노프는 동료들과 함께 우승을 자축할 수 있었다. 실제로 콘스탄티노프 이후로 레드윙스에서 등번호 16번을 사용한 선수는 없다.

이렇게 스티브 아이저맨의 리더쉽을 바탕으로 러시아 선수를 적극적으로 영입해 성과를 거둔 레드윙스는 과감한 투자를 통해 베테랑 슈퍼스타들인 브랜던 섀너핸, 크리스 첼리오스, 뤽 로비타유, 브렛 헐[11], '도미네이터' 도미니크 하섹 등 NHL의 올스타급 선수를 영입해 강호의 자리를 유지했고, 파벨 다축과 헨릭 제테베리 등의 신예들까지 가세하여 90년대 후반과 2001~02 시즌에 다시 우승을 이뤄냈다.

아이저맨은 05-06 시즌 후 은퇴를 선언했고, 그 뒤를 이어 앞서 언급한 릿스트롬이 주장이 되었다. 이후 레드윙스는 07-08시즌에 스탠리컵을 차지했고, 릿스트롬은 스탠리컵을 들어올린 첫 유럽 출신의 주장이 되었다. 08-09에는 다시 피츠버그와 스탠리컵 결승에서 붙었지만, 이번에는 시드니 크로스비를 앞세운 피츠버그에게 분패하며 2연패의 꿈을 접어야 했다.

릿스트롬은 2012년에 은퇴했고, 이에 따라 제터버그가 주장이 되면서 한때 신예들이었던 파벨 다축, 헨릭 제테버그, 요한 프란즌, 니클라스 크론월과 골키퍼 지미 하워드 등이 베테랑이 되어 저스틴 압델케이더, 구스타프 나이퀴스트 등의 신예들을 이끌게 되었다.

여담으로 니콜라스 크론월은 NHL에서 최고로 폭발적인 체킹으로 유명하다. 아래 동영상을 참조하자.

12-13 시즌에는 릿스트롬의 부재에 따라 험난한 시즌을 보낼 거라는 전망이 많았고, 실제로 예전의 레드윙스에게는 한참 못미치는 모습이었지만 시즌 마지막에 연승에 성공하며 2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포스트시즌 1라운드 상대는 애너하임 덕스. 2시드 대 7시드였지만 레드윙스는 끈끈한 결속력과 끈기를 보이며 7경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덕스를 제압했다.

다음 상대는 정규시즌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시카고 블랙호크스와의 라이벌전. 정규시즌 상대성적에서도 월등히 앞서던 시카고였던만큼 대다수는 시카고의 압승을 예상했으나, 디트로이트는 골키퍼 지미 하워드의 신들린 선방을 앞세워 3승 1패로 앞서나갔다. 그러나 결국 시카고는 저력을 발휘했고, 7차전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전 끝에 시카고는 숙적 디트로이트를 제압, 디트로이트의 시즌은 끝이 났다. 그래도 NHL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이 은퇴하고, 전체적으로 신예 및 검증이 안 된 선수들이 많았던 시즌 치고는 기대 이상의 활약이었다는 게 총평.

2013-14 시즌부터는 동부 지구로 옮긴다[12]. 이에 따라 시카고와의 라이벌 시리즈는 두 팀이 스탠리컵 결승에서 만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게 되었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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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32년부터 현재 팀명 사용
  • [2] 다른 한 곳은 트윈 시티. 이 동네를 연고로 하는 팀의 별명이 STATE OF HOCKEY(하키의 주)다.
  • [3] 아무래도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 여겨지는데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가 바로 코앞에 위치를 하고있는 때문일 것이다.
  • [4] NHL 시즌 최우수 수비수에게 주는 상 이름이 제임스 노리스 메모리얼 트로피이다.
  • [5] WHA기록까지 합산하면 고디 하우의 기록은 통산 2186경기 985골 1383포인트로 그레츠키를 압도한다.
  • [6] 이 때의 별명이 레드윙스를 슬쩍 비틀어 놓은 "데드 윙스 (Dead Wings)."
  • [7] 페도로프, 코즐로프, 이고르 라리오노프, 콘스탄티노프, 그리고 슬라바 페티소프 다섯 명이 함께 뛰는 라인은 지금도 회자되는 러시안 파이브(Russian Five) 라인이다. 디트로이트의 90년대 후반 성공에 지대한 기여를 한 조합. 애석하게도 1997년 우승컵을 들어올린지 며칠도 안 돼서 교통사고로 인해 콘스탄티노프가 선수 생활을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어 러시안 파이브 라인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 [8] 이 셋이 같이 출전하는 라인의 명칭은 "그라인드 라인(Grind Line)"이다. 상대의 스코어링 라인이 나올 때 등장해 거친 피지컬 하키로 견제해 상대의 득점찬스나 파워플레이를 무너뜨리는 라인으로 아이저맨이 이끄는 1선이나 페도로프가 주축이 된 러시안 파이브 라인과 대조적인 조합이자, 당시 레드윙스 하키가 지향하던 투웨이 하키의 상징.
  • [9] 결국 그 경기에선 애벌랜치가 승리했고, 당시 레드윙스의 공격수였던 디노 시차렐리는 "내가 저 개자식과 악수했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군."이라고 내뱉었다.
  • [10] 97년에는 마찬가지로 명예의 전당 소속인 마이크 버논, 98년에는 나중에 디트로이트로 돌아와 스탠리컵 우승의 주역이 된 크리스 오즈굿과 싸웠다. 02에는 상대가 마찬가지로 명골키퍼인 도미닉 하셱이었지만, 어이없게도 하셱이 싸우러 오다 미끄러지는 바람에 제대로 된 싸움이 일어나질 않았다.
  • [11] NHL의 레전드 바비 헐의 아들. 브렛 본인도 NHL 통산 득점 3위를 기록한 NHL의 전설 중 한 명이다.
  • [12] 같은 중부지구 소속이던 콜럼버스 블루재키츠도 함께 옮긴다.
  • [13]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게 정규시즌에도 서부지역 팀과 경기를 갖기 때문에 불가능한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