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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포를란


세레소 오사카 No.10
디에고 마르틴 포를란 코라소
(Diego Martín Forlán Corazzo)
생년월일 1979년 5월 19일
국적 우루과이
출신지 몬테비데오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80cm / 75kg
유스팀 페냐롤 (1990~1991)
다누비오 FC (1991~1994)
CA 인데펜디엔테 (1994~1997)
소속팀 CA 인데펜디엔테 (1998~20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2~2004)
비야레알 CF (2004~2007)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7~2011)
인터밀란 (2011~2012)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12~2013)
세레소 오사카 (2014~ )
국가대표 112경기 36골

2010 FIFA 월드컵
골든 볼
디에고 포를란
실버 볼
웨슬리 스네이더
브론즈 볼
다비드 비야

Contents

1. 소개
2. 클럽
2.1. CA 인데펜디엔테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3. 야레알 CFL
2.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6.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7. 세레소 오사카
3. 국가대표
4. 플레이스타일
5. 여담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리그 기록
6.3. 개인 수상

1. 소개

라리가 피치치 2회, 2010 남아공 월드컵 골든볼에 빛나는 강력한 스트라이커, 그리고 세레소 오사카 팬들의 금지어

2. 클럽

2.1. CA 인데펜디엔테

아르헨티나 1부 리그 팀인 CA 인데펜디엔테에서 성인리그 데뷔를 했고, 팀의 주전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그러다가 2002년, 당시 포워드 자원을 찾고 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딱 내가 원하는 타입의 공격수!' 라고 하며 8m의 이적료를 들여 데리고 왔다. 지금의 트레이드 마크인 폭풍간지골도 가끔 넣어주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워낙 들쑥날쑥한 실력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고[1] 결국 03-04 시즌을 마지막으로 비야레알로 이적했다.

2.3. 야레알 CFL


그런데 프리메라 리가 첫 시즌부터 사무엘 에투, 호나우두, 히카르두 올리베이라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득점왕(피치치)을 차지(!!)[2] 자신이 본래 먹튀급 실력이 아니란 것을 톡톡히 증명한다. 그 뒤 2시즌을 더 뛰면서 비야레알의 주포로 활약한다.

2.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2006-2007시즌이 끝난 뒤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로 이적시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러브콜을 받아 이적, 07-08 시즌부터 10-11 시즌까지 활약했다. 08-09 시즌에 다시 한번 득점왕(32골)을 차지했다. 이 때 한국에서 붙은 별명은 불꽃남자, 표능란

2.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2011년 8월 30일 FC 안지로 떠난 사무엘 에투의 대체자로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적 후에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하면서 인테르 팬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사실 2010년 언저리에 국제대회에서 쩔어줘서 그렇지 국제대회 후유증인지 뭔지 몰라도 리그에서도 기복이 심했다. 아니, 반짝하는 기간에 비하면 침묵하는 기간이 지나치게 길었다. 다만 이 문서에서의 무분별한 찬양은 포를란에 대한 정보가 일천한 국내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걸로 보인다. 애시당초 그가 전성기를 보낸 비야레알과 ATM 시절은 25~30세로 선수로써 최전성기를 달릴때였고 남아공월드컵때는 이미 31세였으니 인테르로 이적한 시점엔 32이 넘어가는 노장 축이어서 큰 활약을 보여주긴 어려웠다.

2011-2012 시즌 성적은 18경기 2골. 그야말로 완벽한 먹튀로 낙인찍혔고, 시즌 후 인테르를 떠나게 된다.

2.6. SC 인테르나시오나우

2012년 7월에 브라질 리그의 인테르나시오나우로 이적했다. 두 시즌을 뛰면서 34경기 10골을 기록했다.

2.7. 세레소 오사카

2014년 1월에 J리그 세레소 오사카와 계약을 맺었다는 오피셜이 떴다. J리그로서는 오랜만에 월드스타급 네임드를 영입한 셈. 주목할만한 점은 포를란이 세레소 유니폼을 입고 뛰는 공식경기 데뷔전이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 2014 AFC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첫 경기를 세레소 출신 감독이 이끄는 포항 스틸러스와 갖게 되는데 이 경기는 포항의 홈경기장인 스틸야드에서 2월 25일 열렸다.

후반 18분 교체출전하여 30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는데 단 한번도 슈팅을 하지 못했다. 아직 팀에 적응이 덜 된 듯 하다. 그리고 세레소 안방에서 포항에게 0-2,산둥에게 1-3으로 참패할때 별다른 활약도 못하며 예상되었던 거랑 달리 그다지 큰 도움이 못되었다. 그나마 최약체라던 부리람 유나이티드와의 안방경기에서 드디어 첫 AFC 챔피언스리그 골을 기록하며 4-0 승리에 기여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고비인 산둥과 포항전에선 조깅만 했다.

하지만 마지막 6차전 산둥 원정에서 막판 역전골을 넣으면서 2-1 팀 승리에 기여, 아슬아슬하게 팀의 16강진출을 도우며 모처럼 이름값을 했다.

리그에선 7경기 출전해서 감바 오사카전에서 2골을 기록한 걸 비롯하여 3골, 아챔리그 골까지 2014년 4월 중순까지 4골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2014년 말에 들어서 팀은 최하위권으로 추락, 강등 위기에 처했다.


세레소 오사카 서포터들 최대 혐짤.jpg
이게 팀이 강등당하고 찍힌 표정이다.박주영?

결국 세레소 오사카는 강등. 연봉 6억엔을 받은 포를란의 최종성적은 26경기 7골. 그래도 계속 일본에서 뛰고싶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일본에서 꿀빨고 웰빙하는데 맛들인듯 하다. 그래서 그 소원대로 재계약을 했는데 6개월동안 27억원이다. 한달 월급이 4억 5천인셈인데 2부리그에서 쓰기에도 엄청난 돈이고 무엇보다 폼떨어진 벤치멤버한테 쓴다는게... 웰빙은 하는데 대신 세레소 오사카팬들에게 무지막지하게 까이고있다.

3. 국가대표


오오 자블라니 마스터의 위엄

국내에 처음 알려진 때는 2002 한일월드컵. 우루과이 국가 대표로 참가했는데 당시 우루과이의 간판 공격수는 바로 레코바, 리우 실바였기 때문에 그리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대신 세네갈 전에 출전하여 폭풍간지 만회골을 하나 넣었다. 간지가 안나면 넣지도 않는건 이때도 마찬가지

그리고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 파라과이에게 두골을 넣는 미친 활약을 펼치면서 우루과이의 코파 최다 우승을 이끌었다! 이번 시즌 부진 했다지만 역시 클래스는 어디 안 간다.

타겟형 스트라이커로서의 운명인 '주워만 먹는 선수'라는 비난들을 뒤로 하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우루과이의 주장이자 플레이 메이커로 활약.[3] 5골을 터트리는 기염을 보이며[4]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골든볼의 주인공에 등극했다. 준우승국도 아닌 4위 팀에서 골든볼 수상자가 나오기는 포를란이 역대 최초. 오오 찬양하라 오오. 잘 감기지 않고 반발력이 심하다고 온갖 욕을 다먹었던 자블라니를 누구보다 완벽하게 다뤄내며 팬들에게 자블라니 마스터라는 칭호도 얻었다. 5골 중 4골이 폭풍간지+순도100% 골.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활약에 감동한 우루과이 축구협회에서 그의 업적을 기려 앞으로 우루과이 리그 득점왕을 디에고 포를란으로 바꾸기로 했다고 한다. 오오!

2014 브라질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4. 플레이스타일

타겟형 스트라이커로 분류되며,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공격수 중 최고를 가리는 논쟁이 벌어지면 한켠에 아주 조그맣게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아무래도 팀의 리그 성적이 좋지 않은[5] 점이 포스를 좀 못 풍기게 하는 듯. 하지만 엄연히 세계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스트라이커로서의 역량만 놓고 본다면 메시나 호날두 급의 사기 유닛이 아닌 다음에야 포를란보다 낫다, 라고 분명하게 말할 만한 선수는 아무도 없다.

180cm로 축구선수 치고 아주 크다고 할 수 없는 키지만, 실제로 보면 굉장히 균형잡힌 몸에 강인한 체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상대 팀이 피지컬로 내리누르기 쉽지 않다. 때문에 몸싸움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실제로 골 세레머니를 하면서 옷을 벗는 경우가 많은데, 그 때마다 근육이 우락부락한 몸이 드러난다.
다만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지 즐기는 건 아니다. 거기에 프리메라 리가와 달리 수비수가 거의 미식축구마냥 보디체크를 해도 휘슬을 불지 않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실패한 것이 그 이유가 될지도... 물론 그 시절의 부진을 이 이유 하나만으로 설명할 순 없겠지만 말이다.


타겟형 스트라이커 답게 화려한 개인기와 드리블보다는 뛰어난 위치선정, 그리고 엄청난 슈팅감각으로 득점을 하는 스타일. 특기는 발리슛으로, 상대방이 예측하는 것 보다 한 템포 빠르게 슈팅을 한다. 말을 들으면 쉬워 보이는데, 사실 대단한 능력이다. 다른 선수가 차면 어이없이 뜰 공중볼도 포를란 발에 맞으면 정확하게 골문을 향한다. 그것도 엄청난 빠르기로. 그만큼 신체 밸런스가 훌륭한 선수다. 그리고 양발잡이라는 것 또한 강점이다.

발리슛이 아니더라도 볼터치를 적게 하고 상대방보다 한 박자 빨리 슈팅을 날리는 솜씨는 세계 최고. 탁월한 위치 선정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애초에 타겟형 스트라이커에게 위치 선정 능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리고 주워먹기라고 욕을 먹는 것 또한 운명이다.

상대방의 타이밍을 읽는 능력, 그리고 그 타이밍에 어긋나게 자신의 슛을 쏘는 능력이 탁월한데 여기서 타이밍이란 시간은 물론이고 상대방 심리의 허점까지 읽는다.

그래서 동영상을 찾아보면, '설마 거기서 때리겠어' 라고 싶은 데서 슛을 쏴 골을 넣는 경우가 많다. 페널티 에어리어 좌측 사이드라든지, 하프라인 근처라든지. 자타가 공인하는 캐논슈터인지라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 또한 일품. 수비가 잠깐 틈을 열어준다던지, 골키퍼가 잠깐 앞으로 나온다던지 여하튼 조금만 틈을 보이기면 하면 골을 넣는다. 아니면 상대방이 아예 준비도 하기 전에 빠른 타이밍 발리 슛이나 원터치 슛으로 골을 넣는다.

이상하게 한국에선 과소평가 당하고 있다. 다비드 비야와 비교할 때 어떻냐는 질문을 하면 포를란 따위와 비교 당하다니 비야한테 모욕이다[6] 라는 얼토당토 않은 대답이 돌아오는가 하면 피치치를 두 번이나 수상했는데도 골 넣는 것 밖에 할 줄 모르는 놈을 메시랑 어떻게 비교해쟤는 친구들이랑 공부 열심히 하고 시험 점수 낮지만 너는 혼자공부하고 시험점수 높으니까 네가 진거라면서 까인다. 헨릭 라르손도 듣보잡 임대의 전설 쯤으로 취급할 정도로 인기팀 특정선수에 치우쳐 있는 대다수 한국 해축팬들의 낮은 수준탓도 있겠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적과 중위권 전력인 소속팀, 화려함과는 거리가 있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인듯 하다.

이 때문에 국내 비야빠 중심으로 강팀 상대로는 바닥을 기고 약팀 상대로 학살을 하는 선수라는 터무니없는 욕을 듣고 있는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비야빠들이 포를란을 증오하는 이유는 피치치 수상 때문. 피치치는 라리가 득점왕을 일컫는데, 포를란은 두 번이나 비야를 제치고 피치치를 수상했다.[7] 그 때문에 비야빠들은 포를란 이야기만 나오면 게거품을 물며 양민 학살 선수로 몰아붙이고 그를 까내린다.

하지만 인테르 시절의 18경기 출전 2골, 인테르나시오날에선 32경기 출전 10골, 현재 세레오 오사카에서는 4개월동안 리그 득점이 없는 반면에 비교대상이었던 비야는 바르셀로나 시절 준수한 활약으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도 꾸준한 활약을 펼친 뒤 뉴욕시티 FC로 화려하게 이적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야와의 비교를 한다면 비야에게 미안한 수준.

우리나라에서는 세리에 A가 제대로 방송이 되지 않는 덕에 인테르 시절 부진한 활약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리에 A 축구 팬 사이트인 세리에매니아만 가봐도 포를란에 대한 세리에 팬들의 인식은 썩 좋지 않다.


그나마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계기로 어느정도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모양새. 꾸준한 득점은 물론이고 비가 내리는 수상전에서 자블라니를 완벽하게 다루고 발리 슈팅까지 때리는 흠좀무한 모습까지 보여줬다.

베스트 동영상을 모아서 만든 게 없진 않은데...메시처럼 화려한 개인기나 호날두처럼 시원한 드리블, 절묘한 프리킥등이 아닌 그냥 공을 존나 쎄게 차서 골문에 꼴아박는 장면들밖에 없어서 보면 재미가 없는 것도 사실...하지만 보다 보면 포를란의 플레이의 정수를 볼 수 있다.

한 템포 빠른 타이밍 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심리를 잘 읽고 허를 찌르는 게 능숙하다. 그래서 칩 킥등도 자주 구사한다. 킥 자체도 굉장히 정확하다.

무섭도록 차분한 멘탈도 강점. 리그에서나 월드컵에서나 승부차기까지 가는 승부에는 항상 첫 키커를 맏는다. 무표정하게 나가서 무표정하게 골을 넣고 들어온다. 페널티 킥을 찰 때에는 골키퍼와 심리전을 일절 안 하는 스타일. '그래 넌 너 대로 해라 난 나대로 구석에 존나 세게 차넣을 테니'하는 식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남아공 골키퍼가 페널티 킥 직전 도발을 했지만 신경도 쓰지 않으며 골대 상단에 전력으로 공을 차 꽂아 넣었다.[8]

덧붙여 축구 웹툰 작가 칼카나마가 사랑하는 선수로 사실상 웹툰의 마스코트. 예명은 표능란(...). 비야보다도 많이 출현하는 듯 하다. 사실 개그 캐릭터 된 이유는 얼마 전 까지 과거 보여주던 골 넣는 머신 급의 활약에서 벗어나 똥볼이 나오며 팀을 패배의 나락으로 이끌던 경기가 종종 있었기 때문. 칼카나마 웹툰에서도 '내가 부진하니까 작가가 계속 나를 개그 캐릭터로 내보내지' 라는 식으로 말했다. 최근 활약과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보면 이제 지금처럼 개그 캐릭터 화 될일은 적을 지도. 그런데 이미 마스코트가 되어 버려서

우루과이에서는 한국의 박지성보다도 더한 존재. 포를란의 일거수 일투족이 신문기사화된다.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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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 image (Unknown)]

1게임 1골이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가 오면서 뜬금없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인간계 마지막 득점왕

참고로 바스크계 선수로 알려져 있다.

뱀발로 누가 축구선수 아니랄까봐 10살 아래 약혼녀(88년생. 이게 무슨 소리야)가 엄청 예쁘다. 그런데 포를란을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의부증도 엄청 강하고 질투도 엄청 세며, 포를란에 대한 독점욕이 강해서 떨어져서는 못산다고 산다. 얀데레로 봐도 틀리진 않을지도. 뭐 이쁘면 다 괜찮음 포를란도 약혼녀의 이런 행동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금껏 스캔들 한 번 없었다.

그런데 2011년 6월 16일, 결혼식이 취소되면서 스캔들이 튀어 나왔다. 포를란의 약혼녀가 포를란이 바람피는 현장을 목격했는데, 상대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것. 한마디로, 포를란 게이설이 우루과이에서 대두되고 있다. 찌라시 언론들은 거의 확신하고 있는 상태. 이에 대해서 약혼녀는 '결혼 안한게 천만 다행이다' 라고 말하고 있으며 포를란은 '우리 사이의 일이다.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니 헤어진 것' 이라 말하니 게이설은 확실치 않아도 헤어진 것은 분명한 상태.

동성애라는 게 해외에서도 차별적인 시선으로 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지라 이 일로 우루과이에서의 독보적인 지위도 조금 타격을 받고 있다. 반면 포를란을 지지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사실은 결혼 취소에 분노한 약혼녀가 포를란에게 3억원을 요구하며 돈을 주지 않으면 게이설을 퍼트리겠다고 협박한 것이라고 한다. 포를란은 그저 내버려 두었고 찌라시 잡지사에서 덥석 떡밥을 물어 포를란 게이설을 만들어낸 것으로 최종 확인되었다.

여담으로 前 아르헨티나 감독인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인연이 있는데, 그의 아버지인 파블로 포를란은 마라도나와 친구 사이였다. 디에고 포를란은 어릴 적 테니스 유망주였는데, 그의 누나 알레한드라 포를란이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되자 거액의 수술비를 그의 가족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친구였던 마라도나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기금을 모은 끝에 그의 누나는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길로 그는 축구선수로 전향했고, 인데펜디엔테에 있던 그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하는데 도움을 준 사람도 마라도나였다.

사실 테니스만 하다가 축구선수로 전향한 것은 아니고, 우사인 볼트가 육상과 축구를 병행했던 것처럼 축구와 테니스를 병행하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테니스로 조금씩 쏠리고 있을 때 마라도나의 도움이 결정적으로 그를 감동시켜 축구로 전향했다. 그래도 여전히 테니스를 좋아해서 친해지는 사람들마다 붙들고 테니스를 가르치려 드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맨유에서 뛰던 시절 골을 성공시키고 상의를 벗는 세레모니를 했는데 경기가 재개 될때까지 유니폼을 착용하지 못해 그냥 손에 쥔채로 잠시 뛴 에피소드가 있다.[9]

6. 기록

6.1. 대회 기록


6.2. 리그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경기득점도움
1998/99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 0 - - 0 0
1999/00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24 7 - - 0 0
2000/01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36 18 - - 6 2
2001/02 인디펜디엔테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18 12 - - 5 1
2001/0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3 0 0 0 5 0
2002/0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5 6 2+5[11] 0+2 13 1
2003/0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24 4 2+1 1+1 4 2
2004/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1 0 0 0 1 0
2004/05 비야레알 CF 스페인 라 리가 38 25 1 0 1 0
2005/06 비야레알 CF 스페인 라 리가 32 10 2 0 13 3
2006/07 비야레알 CF 스페인 라 리가 36 19 4 1 2 1
2007/08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6 16 6 1 11 6
2008/09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3 32 3 1 9 2
2009/1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3 18 6 3 17 7
2010/1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스페인 라 리가 32 8 3 1 6 1
2011/12 인터 밀란 이탈리아 세리에 A 18 2 0 0 2 0
2012 인테르나시오나우 브라질 세리에 A 19 5 0 0 0 0
2013 인테르나시오나우 브라질 세리에 A 15 5 4 3 0 0
2014 세레소 오사카 일본 J 리그 26 7 1 0 6 2
2015 세레소 오사카 일본 J 리그 디비전2 3 1 0 0 - -

6.3. 개인 수상


  • FIFA 월드컵 아디다스 골든볼 : 2010
  • FIFA 월드컵 베스트 팀 : 2010
  • 2010년 FIFA 월드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프랑스, vs. 남아공 (이상 조별리그), vs. 가나 (8강전)
  • 2011년 코파 아메리카 맨 오브 더 매치 : vs. 멕시코 (조별리그)
  • 2013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맨 오브 더 매치 : vs. 나이지리아 (조별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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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동국(...), 토마스 브롤린과 함께 더 선에서 선정한 역대 EPL 최악의 공격수로 뽑혔다. 사실 더 못한 선수가 많았는데다(보슈코 발라반이나 세르게이 레브로프 라든지...) 맨유에서 그렇게 말아먹지는 않았는데 포를란이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포를란에 대한 기대가 컸었던 것.
  • [2] 25골. 2위인 에투와의 차이는 1골. 이 시즌은 원래 날렸던 선수들과 B급 취급당했던 선수들까지 득점러쉬를 보여주는 등 골게터 풍년이 있었던 시즌이라 그 의미가 크다.
  • [3] 그런데 당시 포를란을 잘 아는 팬들은 경악할 만한 것이 월드컵에서 포를란은 플레이메이커로 뛰었는데, 그 전까지만 해도 포를란은 전혀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월드컵 예선전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월드컵에서 플레이메이커로, 그것도 세계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니 이건 뭐...
  • [4] 마지막 독일과의 3,4위전 결정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얻어낸 프리킥이 골대에 맞는 바람에 아쉽게 득점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당시의 대활약상 때문에 국내에서 포를란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는데 이 프리킥이 골대에 맞자마자 전 축구커뮤니티에서 탄식이 게시판을 뒤덮었다고(...)
  • [5] 리그에선 중위권에 09/10 UEFA컵 우승팀이지만 포를란과 아게로를 데리고 이룰 성적은 아니다.
  • [6] 지금이야 다비드 비야가 국내 축빠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고 있긴 하지만 비야도 국가대표에 뽑혀 메이저 대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레알 사라고사, 발렌시아에서 날라다니고 있었음에도 듣보잡 취급을 받았다. EURO2008에서 첫 경기부터 헤트트릭을 기록한 비야에게 모 사이트에서 나온 유명한 말로는 "갑자기 비야 왜 이렇게 잘해요?"(...) 이 발언이나 저 발언이나 EPL 중심의 팬문화가 빚어낸 무지의 극치.
  • [7]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억울한 쪽은 포를란이 득점왕을 차지한 두 시즌에서 모두 득점 2위를 차지한 에투다. 그것도 1~2골차로...(비야는 04-05에는 15골, 08-09 28골로 차이가 좀 난다.) 그렇다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발렌시아에 비해서 팀 버프가 큰 것도 아니다. 또 비야가 최고의 실력을 가진건 사실이지만 시즌 중에 꼭 한번은 슬럼프를 겪는 편이다. 다만 비야가 발렌시아로 간 05/06 시즌 이후로 전체 골 수로 따지면 비야가 포를란보다 약간 더 많이 넣긴 했다.
  • [8] 스티븐 피에나르에 따르면 골키퍼가 자기에게 말하길 포를란의 페널티킥은 남아공 리그에서의 페널티킥과는 차원이 달랐다고...
  • [9] 당시 나이키 선수용 유니폼은 언더셔츠가 심하게 유연하여 착용이 굉장히 어려웠다. 2002 한일월드컵에선 이비차 올리치가 골을 성공시키고 역시 상의를 벗었는데 1분이 넘도록 착용을 못해 결국 가위로 언더셔츠를 자르고(...) 착용했을 정도. 물론 선수들도 언더셔츠에 대한 불만이 폭증했고, 바로 다음해 킷부터 언더셔츠를 없앴다. 맨유같은 경우는 동일 디자인인데 언더셔츠가 있는 버젼이 있고 없는 버젼이 있게 되었다.
  • [10] 브라질 지역리그
  • [11] FA컵 + 리그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