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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디에 드록바

last modified: 2018-12-31 14:25:31 Contributors

이 문서는 드록신으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1]


2014년 10월 26일 맨유전, 2년 7개월여만에 첼시 유니폼을 입고 리그에서 골을 넣은 직후

Blue till I Die.

첼시 F.C. No. 11
디디에 이브 드로그바 테빌리
(Didier Yves Drogba Tébily)
생년월일 1978년 3월 11일
국적 코트디부아르
출신지 아비장
포지션 스트라이커
신체조건 189cm, 84kg
등번호 11번[2]
유소년팀 아베빌 (1989~1991)
반 (1991~1993)
르발루아 SC (1993~1997)
르망 UC 72 (1997~1998)
소속팀 망 UC72 (1998~2002)
EA 갱강 (2002~2003)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3~2004)
첼시 FC (2004~2012)
상하이 선화 (2012~2013)
갈라타사라이 SK (2013~2014)
첼시 FC (2014~)
국가대표 104경기 / 65골
별명 드록신'''별명과는 다르다 별명과는, 뽀록바본격 신성모독

2007 FIFPro World XI
FW
호나우지뉴
FW
디디에 드록바
FW
리오넬 메시
MF
스티븐 제라드
MF
카카
MF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DF
카를레스 푸욜
DF
존 테리
DF
파비오 칸나바로
DF
알레산드로 네스타
GK
지안루이지 부폰

Contents

1. 소개
2. 시즌
2.1. 2010 - 2011 시즌
2.2. 2011 - 2012 시즌
2.3. 2012 - 2013 시즌
2.4. 2013 - 2014 시즌
2.5. 2014 - 2015 시즌
3. 국내 해축팬덤에 끼친 영향
3.1.
3.2. 선수이름+國
3.3. 드록복음
3.4. 그 외 유명 떡밥과 짤방

1. 소개

페트르 체흐, 존 테리, 맨전드 프랭크 램파드, 애슐리 콜과 함께 첼시의 황금기를 이끌고, 팀에게 첫 빅 이어를 안겨주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첼시의 레전드

2000년대 중후반기 프리미어 리그를 지배했던 최고의 스트라이커[3]

드록교의 절대자 세브첸코의 뒤를 잇는 무결점 스트라이커, 아프리카 3대 스트라이커[4], 자국의 전쟁을 멈춘 자, 검은 예수, 코트디부아르의 영웅 사실 예수가 흰 드록바라 카더라

웨인 루니처럼 미드필드까지 내려와서 치고 올라가는 스타일이 아니라 최전방에서 대기하다가 공이 오면 강력한 피지컬로 상대 수비를 초토화시키는 스타일이다.[5][6] 그야말로 아프리칸 피지컬 머신.[7] 강한 피지컬에 흑인 특유의 유연성도 갖추고 있는데다 헤딩도 최고급이며 프리킥도 잘 찬다. 게다가 축구지능도 좋아서 연계와 패싱능력또한 수준급이다.[8] 플레이를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쫄깃하다. 그리고 테크닉적인 부분도 훌륭하다.[9] 트레이드마크인 퍼스트 터치로 방향바꾸고 밀고나가기, 다리를 뒤로 쭉 뻗어서 뒷발로 공 잡아내기 등의 플레이를 보면 매우 간결하고 우아하다.

공격수인데도 불구하고 수비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압박에도 잘 가담하며 공을 뺏기면 열심히 쫓아가서 다시 뺏어오는 근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괴물같은 피지컬에 타고난 쫄깃쫄깃운동신경까지 결합되어 힘과 순발력 모두 밀리지 않는다는점이 전문적인 수비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수비능력의 원인일 것이다. 중앙, 측면 어디에 배치해놓아도 그 위치와 상황에 맞게 수비를 해내며 세트피스 수비에 가담할경우 거의 실점하지 않는다. 수비능력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감독들이 특정 경기에 한해서 그를 수비수로 출전시키려한 경우도 있으며[10] 아예 14-15시즌에는 팀이 이기고있는 상황에서 수비강화를 위해 교체투입되고있다.

사실 EPL 진출 초기의 드록바는 다이빙의 대명사(…)였다. 드록바의 다이빙을 비꼬는 맥주 CF[11]까지 등장할 정도로 드록바의 헐리우드 액션은 수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았다. 06/07 시즌 시작 전, 안드리 셰브첸코의 영입으로 다이버 드록바의 자리는 사라진다는 조롱섞인 기사들이 타블로이드지를 장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드록바는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다. "그 동안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어떻게든 골을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에 헐리우드 액션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제, 이런 플레이와는 결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한 드록바는 거짓말같이 달라졌다...는 아니고 그 후에도 한동안 다이빙이 이어졌으나 본인의 득점력이 살아나면서 그제서야 다이빙이 사라졌다. 맨체스터 시티와의 개막전에서 마수걸이 골을 성공시킨 이후, 리버풀/바르셀로나와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손쉽게 골을 뽑아내며,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역전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커리어 사상 최고의 시즌을 보내게 된 것이다. 리그 우승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2007년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에 올랐으며, 칼링컵과 FA컵 우승은 모두 드록바의 골로 이루어 진 것이다. 하지만 셰브첸코는...

이때의 활약으로 디시인사이드 해외축구 갤러리에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드록신이란 칭호를 얻게 된다.[12][13] 해충갤러들의 꿈은 드록신과 결혼하여 후장을 탐하는 것으로, 한 때 유일신의 지위에 올랐지만 현재는 아데바요르(속칭 갓데발)의 등장으로 지위가 흔들리는 상태. 하지만 09/10 시즌으로 들어오면서 EPL에서만 29골, 13어시스트의 눈부신 활약으로 인해 다시 드록신이 되었으며, EPL 09-10 시즌 득점왕까지 하게 된다. 어시스트도 시즌 3위. 29골 중 페널티로 얻은 득점은 마지막 위건전에서 1골 뿐이며 나머지가 전부 필드골인 점도 대단. 특유의 돌파력으로 골을 넣거나 하면 경기 중계 중 해설자들조차 드록신을 언급할 정도.

이러한 신에 빗댄 그의 별명으로 장난 반 진담 반을 섞은 "검은 예수"가 쓰이기도 할 정도로, 과거에 비하면 그 위상이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로 바뀌었다.

첼시의 런던 지역 라이벌아스날 FC 킬러로도 유명했으며, 그가 출전한 對 아스날 전에서의 첼시의 전적은 10승 1무라는 엽기적인 승률을 기록 했었다. 드록바 개인 기록은 13경기 13골 2도움. 그야말로 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아스날은 아르센 벵거 감독의 성향상, 피지컬 좋은 선수보다 패싱 능력이 좋고 공격가담이 좋은 수비수를 선호하는데, 드록바는 타고난 피지컬로 아스날 수비진을 초토화 시켜버리는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오죽하면 스카이 스포츠의 첼시 대 아스날전 예고 영상이 드록바 스페셜일까.(...) 현재는 15경기 15골. 재미있는 건 드록바의 아들은 열렬한 아스날 팬이라고 드록바 본인이 밝혔다.(...)

그러나 말라리아로 피지컬이 떨어진 이후로는 오히려 아스날의 센터백들과의 피지컬 싸움에서 우위를 전혀 점하지 못하고 밀리는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그 뒤로는 아스날 상대로 2연패 중.

중요한 경기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활약을 하는 선수이다. 드록바는 9번의 결승전 경기에 출전해서 9골을 기록했고, 7번의 경기에서 승리하였다. 그가 유일하게 골을 넣지 못한 결승전은 07-08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뿐. 비단 결승전 뿐만 아니라 토너먼트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다. 기적과도 같은 11-12 나폴리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전 2차전에서 포문을 여는 첫골을 기록하였고, 홈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와의 4강 1차전에서도 단 한번의 기회를 골로 연결시키며 팀을 결승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드록바는 결승전에서...첼시에게 그토록 바라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선물한다.동양에서 온 어떤 한 선수의 항목과 비슷해 보이는건 여러분의 착각입니다

2005년 10월, 드록국코트디부아르는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에서 난적 카메룬도하의 기적처럼 가까스로 제치고 본선 진출을 확정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도하의 기적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9차전 안방에서 카메룬한테 2:3으로 깨지는 바람에 자력진출은 불가능한 상황에 놓였는데 코트디부아르에게는 설상가상으로 그 다음은 카메룬이 홈이고 카메룬의 상대는 이미 탈락이 확정된 이집트라 아무래도 카메룬이 올라가지 않겠냐고 점쳐졌다. 그리고 운명의 마지막 10차전에서 코트디부아르는 수단 원정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는데도 카메룬이 이집트를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라 코트디부아르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암울했는데 카메룬 대 이집트 경기에서 후반 34분 모하메드 샤키가 동점골을 넣으며 코트디부아르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코트디부아르는 후반 44분 하이삼 탐발에게 만회골을 내주었으나 더 이상의 추가실점 없이 3:1 승리로 경기를 끝냈고 카메룬 대 이집트의 경기는 1:1로 종료되기 직전 카메룬이 페널티킥을 얻으며 본선 진출의 주인공이 순식간에 코트디부아르에서 카메룬으로 바뀔 위기가 닥쳤다. 이걸 넣으면 카메룬이 본선 나가고 못 넣으면 코트디부아르가 본선에 나가는 상황. 그리고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키커로 나선 피에르 워메가 실축하면서 바로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코트디부아르 선수들과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될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드록바는 TV 생중계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은 뒤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우리 적어도 1주일 동안 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 내전의 당사자인 두 집단의 대표가 나란히 경기장을 찾아 월드컵 진출 장면을 함께 목도한 그 날, 드록바의 호소는 효과를 거두었고 이후 1주일 동안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총성이 울리지 않았다(코트디부아르 내전은 2007년에 종결됐다. 관련기사). 그야말로 드록신의 위엄. 이 일은 2014년 현대자동차가 월드컵 시즌을 겨냥해 만든 광고인 "월드컵은 우리를 통하게 한다"라는 광고에서도 쓰였다(다만 초상권 문제 때문인지 드록바의 얼굴이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6월 29일에 신비한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Surprise Secret에서 이 부분을 다루었다.

런던에서 서형욱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자신을 섬기는 추종자들이 많다 있다는 것역시 신앙심 깊은 동방예의지국을 듣고 이거 칭찬 맞는건가? 라는 의문을 가지긴 했지만 무척 흡족해 하셨다. 링크

여담이지만 위닝일레븐에서 자신의 능력치가 안 좋게 나오자, 코나미에 전화해 항의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유니폼 레플리카 판매 순위를 올리기 위해서 자비로 40벌 정도를 몰래 구매했다가 들킨 적도 있다고 한다(…).(카드를 쓰는 바람에 구매내역이 모두 고스란히 나왔다.)[14]

한일전에서 진 일본축구기자들이 절망에 빠진 일본의 자존심이라도 나름대로 회복할 마음으로 드록신에게 인터뷰를 영접하여 립서비스를 구하였으나 안될거야 아마라는 솔직한 평가와 함께 되려 망신만 샀다고 한다.

그러나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내에서는 투레 형제(콜로, 야야)를 중심으로 한 파벌과 드록바의 파벌이 첨예한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뚜레 형제가 신에게 대항하는 것인가 신이 불완전한 것인가 당연히 전자지파벌에 속하지 않은 선수는 클럽이고 국대고 공식 개그맨인 에부에 정도. 그나마도 아스날에서 뚜레와 함께 뛰어서 콜로 뚜레와 더 친할 듯?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각각 수비와 미드필드의 핵심인 뚜레 형제와 공격의 핵심인 드록바는 심각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2010년 코트디부아르의 실망스러운 월드컵 성적에는 불운한 조 편성도 있지만 뚜레 형제와 드록바의 감정싸움도 한 몫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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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 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온 2010년 6월 4일. 일본과의 평가전에서 전반 15분경 신을 몰라본 무뢰배 갓 슬레이어 타나카 마르쿠스 툴리오의 점핑 니킥(…)에 맞고 척골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로인해 드록바의 두번째 월드컵 출전은 좌절될 뻔 했으나... 인터뷰 복수치곤 너무 세다 이거슨 신성모독이다

하지만 부상 3일 만에 부러진 뼈가 다시 붙고 드록바는 부상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이젠 빼도박도 못하게 신 인정.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16]
그리고 4년 뒤 일본은 드록국을 만나 1:0으로 이기고 있었고 이에 분노한 드록신은... 어? 잠시 카톡 보고나니 1:1이네? 잠깐 전화받고 오니 1:2이네?

2010 FIFA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는 마지막 경기에서 MOM에 선정되는 등의 영광을 누렸으나 팀이 하필 죽음의 조라는 G조(브라질, 포르투갈, 코트디부아르, 북한)에 걸려드는 바람에 탈락했다. 안돼요 드록신 포르투갈전에서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포르투갈을 밀어붙였으나 드록바는 골절로 인한 통증이 매우 심한 상태였고 이 때문에 포르투갈을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었다.

전쟁을 멈춘 능력을 보여주신(?) 후 이번에는 에이즈와의 싸움을 들고 나왔다.

여담으로, 네이버에 드록신을 치면 드록바의 인물정보가 나온 적도 있었다. 오오 드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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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근처에는 드록바라는 바(Bar)가 있었으나...지금은 없어졌다...가 다시 생겼다! 오오 부활의 드록신이시여...거기다 바 이름도 드록Bar에서 드록Ba로 변경. 경희대학교 근처에도 동명의 바가 있다. 뭐야 이거 프렌차이즈냐

정대세는 월드컵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드록바와 접신 만난 사진을 올렸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 은퇴를 결심하였으나 대통령이 나서서 면담을 하였고 다시 대표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신전을 찾아가 신을 영접한 대통령

그리고 2011년 다시 터진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뒷수습을 위한 국가 위원회의 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또다시 발휘되는 드록신의 권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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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을 잘 때린다

2. 시즌

2.1. 2010 - 2011 시즌

프리미어 리그 7라운드(10월 21일 기준 6골 7어시스트로) 득점 공동1위, 어시스트 공동1위 중. 10-11시즌에서도 초반부터 드록신 모드 발동 중. 10월 3일 아스날 전에서는 멋진 어시를 받아 골포스트를 맞고 들어가는 골을 넣는 활약으로 아스날 킬러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초반의 미친 활약에 비해 중반으로 접어들수록 부진하다. 해서 붙은 별명이 드록인간.(…) 부진의 계기는 말라리아. 역시 신도 모기는 어쩔 수 없는 걸까

하지만 그를 드록인이라고 부르면 선수비방으로 1994329413 강퇴사유가 된다고 한다. 덤으로 토트넘 vs 첼시 경기가 있던 이날, 저 글이 쓰인 후 5분만에 드록바는 12경기 만에 골을 넣으며 드록인은 신성모독이라는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경기 막판 pk를 놓치면서 드레기가 되었다.

하지만 1월 2일 아스톤빌라 전에서 귀중한 동점골을 터뜨리며 팀의 분위기를 전환, 곧이어 터진 테리의 역전골에도 기여하며 드록신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경기 결과가 이렇게 팀의 승리를 견인하며 더불어 4위도 탈환할 뻔 했는데…추가시간에 터진 아스톤빌라의 동점골로 아 망했어요.

1월 25일 볼턴 원더러스 전에서 패스미스로 흘러나온 공을 받자마자 거의 하프라인 가까운 지점에서 중거리 슈팅, 그대로 선제골.[17] 이 슛이 ㅎㄷㄷ 한것이 공이 무회전이 걸려 뚝 떨어지면서도 좌우 지그재그로 흔들리는 궤도를 탔다. 워낙 먼거리에서 쏜 슛이라 키퍼가 막지 못한게 의아했던 해설의원은 "이건 공의 궤적을 봐야겠는데요?" 리플레이 감상 이후 "아 공이 춤을 추네요" 인터넷에서는 도깨비슈팅, UFO 슈팅이라며 찬양. 본격 드록신 부활.

이후 4월 1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10/11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2차전에서 하프타임에서 토레기와 교체출장. 0:1로 뒤진 후반 하미레스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한 상황에서 추격에 불을 지피는 동점골을 집어넣으며 오랜만에 드록신으로 재림하나 싶었으나, 곧바로 드록국을 두 번이나 물먹였던 동방의 어느 나라에서 건너온 세 개의 폐를 가진 윙어에게 1분 만에 결승골을 먹으면서 결국 이 날의 활약은 없던 것이 되어버렸다. 지못미.

어쨋든 시즌 총합 11골 15어시로 시즌을 마쳤다. 아무리 드록인 소리 들어도 제 역할은 다 해준 셈.

2.2. 2011 - 2012 시즌

11/12 시즌 3라운드 노리치 전에서 후반 골키퍼와 경합 도중 골키퍼의 펀칭을 그대로 얻어맞아 공중에서 기절하고 떨어졌다.신을 기절시키다니 후덜덜 옆동네빨강팀주장님이 노리치한테 쫄은것도 무리는 아닌듯 떨어진 뒤 움직이지 않아 첼시 팬들은 단숨에 경악과 공포에 휩싸였으며, 분위기 역시 최악으로 돌변했다. 심지어는 최악의 부상이라는 경추골절이라는 말까지 나왔으나...다행히도 첼시 공홈에서 경미한 뇌진탕이라고 발표가 나왔다. 10경기에 나와 2골을 기록중이며 이전보다 많이 떨어지네 소리가 나와 방출되는가 했더니만 2012년 1월부로 첼시에서 이적시킬 예정이다.

그렇긴 해도 12월 7일에 벌어진 챔피언스리그 조예선 6차전 발렌시아전 보아스 감독의 명줄과 EPL의 존심이 걸린 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첼시의 3:0. 마타와 함께 승리의 일등공'신'신 신(神)자라카더라이 됐다. 그리고 드록복음에 한줄이 추가

리그 경기에서도 상승세인 뉴캐슬에게 선제골을 집어넣으며 3:0 승리를 만드는 물꼬를 틀었다. 노쇠화니 어쩌니 해도 토레스와는 달리 스트라이커 역할은 해주고 있다. 발렌시아전까지 합하면 종합 3골. 확실히 분위기를 탔다.

2012년 1월 20일, 계약기간 3년에 주급 27만 파운드란 조건으로 중국 프로축구 슈퍼리그 팀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는 뉴스가 전해졌으나, 드록바 본인은 여름까지 첼시를 떠날 일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일단 여름 이후의 행보는 미정인 상태.

2012년 1월 23일,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참가하여 조예선 1차전 수단 전에서 골을 기록하여 1:0 승리에 기여했다. 이후로 결승까지 무실점으로 무난히 참가하여 메이저대회 첫 우승을 차지하는가 했더니만 잠비아에게 결승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해 준우승, 그것도 전승준으로 차지하고 만다. 더더욱 비극은 바로 그가 후반 24분 패널티킥을 얻고도 실축하면서 이길 수 있던 절호의 기회를 날린 것이다. 2006년 대회 결승에서 이집트에게 패하여 준우승할 당시 기자들의 인터뷰에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망연자실하게 아쉬워하던 패배를 또 겪고 만 셈이다.

그러던 와중에 안드레 빌라스 보아스 감독의 경질에 기여한 노장무리의 한명으로 판명나서 첼시 팬들의 신임을 잃고 있다. 물론 보아스 감독이 기존 선수들의 재활용하고 재정비하며 팀을 추스리는 역량이 모자라다는 것이 입증된 지금에 와서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다.[18]

2012년 3월 15일, 나폴리와의 홈경기에서는 선제골을 넣었다. 뛰어난 연기력도 선보였다 이것이 진정한 연기력

2012년 4월 19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펼쳐진복수혈전첼시와 바르샤의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전반 추가시간에 하미레스의 패스를 받아 그대로 골로 연결시켰다. 참고로 이 경기 때 첼시의 유효슈팅 개수는 1개였다. 그야말로 원샷원킬. 드록복음은 한 줄이 또 추가되었고, 메시가 외계인이라지만 그것을 초월한 신에게는 범접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신 경기였다. 물론 믿으면 골룸.

2012년 5월 5일 리버풀과의 FA컵 결승에서 1:0으로 앞서고 있던 후반 6분에 추가골을 넣었고, 최종 스코어 2:1로 드록바의 골이 결승골이 되었다. 시즌 막판 들어서 전성기급의 활약을 보여주는 중.

2012년 5월 19일 열린 챔피언스리그 바이에른 뮌헨전에서 극적인 동점골을 넣어 승부차기까지 경기를 끌고 갔다. 그리고 승부차기에서도 골을 넣어 4:3으로 첼시의 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우승이자 자신의 클럽 축구인생 최대우승의 영광을 맛보았다. 사실 이 경기 첼시 하이라이트는 곧 드록바의 하이라이트가 전부라고 해도 좋을만큼 눈부신 활약을 보였다.[19] 그리고 드록복음이 또 다시 추가되었다.

2012년 5월 22일, 새로운 도전을 위해 첼시 FC를 떠나는게 확정됐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의 골과 첼시 우승 확정 승부차기 골이 마지막 골이 된 셈. 이로써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런던을 호령하던 검은 예수 드록바를 이제는 첼시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다만 향후 거취에 관해서는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만큼 다양한 설레발 추측이 나오고 있다. K리그 팬들은 수원 삼성으로 강림한 그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하는 중. 유니폼이 비슷하잖아

2012년 6월 20일, 상하이 선화 이적을 공식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14년 6월까지.
드록신을 영접한 중국인들
그런데 2012년 9월 2일, 상하이 선화와의 계악을 해지했다는 기사가 떴다. 기사
하지만 드록바의 대변인은 이를 부인했으며, 이후 9월 15일 경기에 출전해 찌라시의 낚시였음이 밝혀졌다.

2012년 11월 FIFA는 드록바의 첼시 단기 임대 요청을 기각했다. 드록바는 겨울철 중국 리그가 비시즌인만큼 1월 아프리카네이션스컵을 대비해 몸 상태와 실전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잠시 첼시에서 뛰려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이때문인지 2013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코트디부아르는 우승은 커녕 8강에서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혀 탈락했고 드록바는 다시 한번 아프리카네이션스컵 우승을 구경해야했다.

2.3. 2012 - 2013 시즌

갈라타사이로 이적했다. 계약기간은 2014년 6월까지. 챔스진출을 할 수 있어서 맘에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하이 선화가 반발하고 나서면서 FIFA에게 제소했다. 상하이 측은 2015년까지 상하이에서 뛰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드록바는 4달이나 월급이 밀렸기에 계약은 해지된 셈이라고 맞서고 있다. 상하이 측은 돈이 밀리지 않았다며 영수증을 주장으로 하고 있지만...포털에선 영수증도 대륙의 가짜라고 비아냥거리는 중

어찌됐든 터키 이적은 확실시되었는데 터키 쉬페르리그 데뷔전 첫 경기에서 1골을 기록하며 2:1 승리에 기여했다. 골 장면.

3월 24일 열릴 잠비아와의 브라질 월드컵 아프리카 예선에서 대표팀 소집명단에 들지 못했다. 대표팀 감독인 사브리 라모치와 사이가 안좋아서 안 뽑혔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라모치 감독은 드록바가 최근 8개월 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넘나들며 3개 구단에서 뛰어 경기력이 떨어졌다고, 현재 갈라타사라이에서 경기력을 회복 중이기에 뽑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에 다시 뽑힐 수 있다고 한다.

챔피언스리그 8강 1, 2차전 레알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비록 팀은 탈락했으나 클래스 인증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1차전 원정에서 레알한테 0:3으로 완패했지만 그래도 사이드로 빠져서라도 활로를 찾으려는 모습을 보여주며 갈라타사라이 선수들중 제일 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2차전 홈에서는 감각적인 판타스틱한 스피닝힐킥골로써 팀의 추격의 불씨를 활활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드록교 신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특유의 간지나는 세레모니는 덤.[20]

2.4. 2013 - 2014 시즌

2013년 프리시즌 에미레이츠 컵에서 아스날을 상대로 2득점에 성공, 아스날전 15경기 15골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겨야만 16강으로 올라갈 수 있던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리그 마지막 라운드 유벤투스전 홈경기에서 기가막힌 헤딩 떨구기로 웨슬리 스네이더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해 그 클래스 어디 안 간다는걸 증명했다.

그런데 16강 추첨에서 운명의 장난인지 친정팀 첼시를 만나게 되었다. 추첨 전 주제 무리뉴가 "16강에서는 드록바가 있는 갈라타사라이랑 만났으면 좋겠다. 드록바는 이곳 스탬포드 브릿지로 돌아올 자격이 있다. 그는 여기서 내가 컴백경기때 받았던것보다 두세배 더 큰 환영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을 드록바가 느꼈으면 한다."라며 드록바와의 재회를 기대했는데 그게 실제로 이뤄졌다. 드록바 본인도 대진이 결정되고 나서 "나는 이 대회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다. 16강 두경기를 모두 홈에서 뛰게 되니까!"라며 재회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홈구장은 두곳만 쓰시는 겸손한 드록신의 위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16강 2차전에서 갈라타사라이는 비록 0:2로 패배하였으나 블루스들은 드록바에게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테리와 드록바가 포옹하는 모습을 보이며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13-14 시즌 종료 후 갈라타사라이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다음 행선지가 어디일지 여러 언론에서 관심을 가지는 중.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 팀이 1:0으로 밀리고 있던 후반에 투입되어 직접적인 공격 포인트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피지컬과 돌파력으로 일본 수비진을 붕괴시켰으며 여유롭게 경기를 리드하고 있던 일본은 5분 만에 2실점을 허용하는 충격패를 당했다. 이에 축구팬들은 "역시 드록신"이라며 찬양 중.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트디부아르는 이후 같은 조의 콜롬비아, 그리스에게 패하면서 또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2.5. 2014 - 2015 시즌

신은 폼도 영원하고 클래스도 영원하다.

2년만에 다시 1년 계약으로 첼시에 재강림하셨다복귀했다. 2014년 기준으로 만 36이라 이번 계약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가능성이 높다. 2년전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기위해 알차게 보강한 첼시의 올시즌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등번호는 첼시생활 초기에 달았던 15번을 달기로 했다가, 11번을 달고있던 오스카프랭크 램파드가 달았던 8번을 달기로 하면서 다시 11번을 달 수 있게 되었다.

레알 소시에다드와의 프리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부상을 당했으나, 6개월 부상설은 마르카 등 스페인 언론이 주장하는 일방적인 추측이다. 무리뉴 감독이 번리와의 1라운드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밝힌 데 따르면 경기에 뛸 수도 있는 상태라고 한다.

실제로 1라운드 원정 경기와 2라운드 홈 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팀의 승리를 지켰다.

그러나 샬케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드록바도 인간이었다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다 마리보르전에서 PK골을 넣어 오랜만에 스탬포드 브릿지의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그리고 지난시즌 제대로 말아먹은 옆동네 빨강팀과의 경기에서 부상입은 코스타를 대신하여 출전하였으나, 상대 수비와의 제공권 싸움에서 밀리고, 역습 때 스피드가 딸려 제대로 침투도 하지 못하는 등 영 좋지 못한 경기력을 선보이던 중에 후반 초반 고별전이었던 챔스 결승인 바이에른 뮌헨 전의 골을 생각나게 하는 헤딩골을 집어넣었다. 참고로 이 골은 주제 무리뉴가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자신이 지휘한 리그 경기에서 터진 1000호 골이라고 한다.

이어 이틀 뒤 루즈버리 타운과의 캐피탈 원 컵에서도 모하메드 살라의 띄우기 패스를 받아 필드골(!)을 집어넣으셨다. 이 전에 살라에게 가던 패스가 상대 선수를 맞고 굴절되어 살라가 급히 역동작으로 차내느라 정확한 패스라고는 보기 힘들었는데 이걸 전성기적 포스로 달려들어 골을 뽑아내셨다. 오오 드록신 오오...

11월26일 챔피언스리그 샬케04와의 경기에서 후반65분 교체 투입 1골1어시를 기록하셨다 드멘...

12월 4일 토트넘 핫스퍼 전에서 아자르의 골을 원터치 패스로 어시스트하시고 오스카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으며 1골 1어시를 기록하셨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다음 경기인 뉴캐슬 원정 경기에서도 교체 출장이었지만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첼시는 이 경기에서 졌지만 드록바의 나이를 잊은 맹활약에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3. 국내 해축팬덤에 끼친 영향

언급한대로 흑인 특유의 탄력과 유럽축구 스타일에 완벽 적응하여 이 두가지를 접목시킨, 그야말로 스트라이커로서는 완벽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 전까지는 '흑인은 피지컬 위주의 지극히 개인적인 플레이를 추구하고 우악스러운 스타일의 축구를 구사한다'라는 국내의 아프리칸에 대한 선입견을 깨 준 선수로 그가 신급 플레이어로 추앙받는 가장 본연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기 외적으로 국내 해축팬덤 문화에 끼친 영향도 상당하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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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미 밝힌대로 펠레, 마라도나 등 넘사벽 급의 플레이어 외에는 감히 함부로 붙이지 않는 '신'이라는 칭호를 좀더 친근하고 대중적으로(?) 사용 가능하게 물꼬를 튼 장본인이다.

드록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지 않았다면 'OOO가 대단하긴 하지만 신이라는 칭호를 받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느냐'라는 진지빠는 반응이 나왔겠지만, '드록신'이라는 칭호는 국내 팬덤에서 그저 '드록바+신'의 합성어가 아닌 그냥 그 자체로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많이 사용되어온 단어였고, 그로 인해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유난히 더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주는 선수들에게도 자동적으로 '신'이라는 칭호가 붙기 시작했다. 현재는 개나소나 한번쯤 붙여주는 흔한 별명이 되었을 정도. 게다가 다른 스포츠 팬덤에도 이에 영향을 받아서 신은 물론이고 '갓' 등의 바리에이션도 유행이 되기 시작했다. 요즘은 스포츠가 아닌 가상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에도 손을 뻗었다. 심지어 경전까지...

다만, 여기서 뒤늦게 해축빠의 길에 들어선 팬들은 잘 모르는 사실인데, 원래 드록신은 까는 별명이었다. 드록바가 갓 첼시에 입단했을때는 '(EPL보다 한수 아래인 프랑스 리그)마르세유에서 공 좀 찬 선수' 정도 밖에 안됐기 때문에, 저런 검증도 되지 않는 선수가 최대한 빨리 유럽 정상을 노려야 하는 첼시에 어울리는 선수인가 의문을 품은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흑인선수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 탑급의 공격수였던 에르난 크레스포가 드록바의 경쟁상대였다. 그런데 무리뉴 감독이 드록바를 중히 기용해서 크레스포가 주전경쟁에서 밀리는, 당시로선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졌다. 곧 해외축구 갤러리에서는 '드록바에게는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 '드록바의 그곳이 쫄깃해서 무리뉴가 기용하는 것이다' 등의 농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쫄깃한 드록바'라는 유행어가 퍼지기 시작했고 이 컨셉이 더 발전한 것이 '김태희(다른 여자연예인도 무방)랑 그거하기 vs 쫄깃한 드록바랑 그거하기' 더 발전해서 '김태희랑 그거하기 vs 록바님과 악수하기' '~~ vs 드록신 뒷모습 쳐다보기" 등등을 거쳐 드록신이란 호칭이 정착한 것이다.

그리고 드록바는 무리뉴가 자신을 기용한 이유를 보여주기 시작했고 까기 위한 별명이었던 드록신은 찬사로 바뀌어갔다. 그러나 '드록신'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미 '드록'은 신을 의미하는 단어이거든요.

3.2. 선수이름+國

그의 조국인 코트디부아르(영어권 표기:아이보리 코스트)는 길고 어려운 발음때문에 실생활에서 대화나 키보드 타이핑에서 상당히 귀차니즘을 유발하기가 쉬운 것이 현실이었다. 이 때문에 해축빠들은 아주 간단하게 그들에겐 코트디부아르 그 자체인 드록바와 '나라 국(國)'자의 합성어 '드록국'을 코트디부아르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유행하면서 여러 바리에이션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라탄', '날두'이라든가.[21] 대체로 나라 이름이 어렵고 길거나, 한 나라에서 군계일학, 넘사벽급으로 인지도를 갖고 있는 선수가 있는 경우에 사용한다.

3.3. 드록복음

신(종교)과 그 추종자들에게는 당연히 경전이 있어야 하는 법. 이하는 반 우스개소리로 만든 드록복음이다.뭐라? 시방 우리 드록신님을 모독하는 것이여? 근데 이제는 우스갯소리가 아닌듯 하다. 몇몇만 소개.

  • 어느 날 드록신께서 라커룸에 앉아 수양하시며 가라사대 "물은 셀프요 신은 드록신이라" 하시니 그의 제자 애술리 골이 다가와 "오 신이여 제게 가르침을 주소서"라고 간청하였더라. 그러자 드록신께서 "오오 골이 아니냐 그래 무슨 일이더냐" 하시매 골이 하소연하길 "혼왈두를 막고 싶습니다 제게 혼왈두를 막게 할 힘을 주소서"라 하였다. 그러자 드록신께서 미소를 머금으시며 "믿어라 믿는 만큼 실현될 것이다"라고 하사 그의 제자에게 믿음을 주셨다. 전반 혼왈두의 개인기에 골이 농락을 당하며 "신이시여 당신을 찬미합니다. 제게 당신의 힘을 보여주십시오"라 간청하니 사제 무린요가 드록신을 투입시키더라. 드록신께서 투입되는 순간 노두래보는 광명을 보며 박수를 치고 찬양하니 이는 드록신의 은덕이더라. 혼왈두가 감히 드록신께 다가가 발재간을 부리자 드록신께서 가라사대 "이놈 혼왈두야 너의 요망한 발재간에 나의 제자들이 어려움을 겪었으매 이제 너의 그 발재간을 나의 제자 골이 상대해주겠다" 하시며 성스러운 하얀 이빨에서 광채를 띄우시니 요망한 혼왈두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재간을 부리던 발이 꼬이더라. 결국 혼왈두는 애술리골의 태클로 부상을 당하니 이는 드록신을 향한 믿음이 가져온 결과이니라. 결국 혼왈두는 드록신의 힘에 감복하여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아 신이시여 이 죄인의 죄를 사해주십시오 저의 유일한 신은 드록신 뿐이며 전지전능한 드록신님을 영원히 찬양하겠나이다"하며 무릎을 꿇으니 드록신께서 말씀하시길 "무릇 그 요망한 발재간에 죄가 있을 뿐 본래 인간의 본성에는 죄가 없느니 너의 죄를 사해주겠노라" 하더라. 어찌 드록신을 찬양하지 않으랴.[22]

  • 태초에 드록신이 계시니 이 땅에 축구라는 걸 내려보내시고 마침내 이땅에 강림하시어 드록력 1년서기 2004년에 영길리에 들어오시니 푸른사자 군단이 마침내 영길리 제1축구 대회의 우두머리가 되더라. (드록기 1장 1-2절)

  • 무린요가 드록신께 고하되 신께서 드록국 내이선수겁에 가신다니 이제 저의 군단은 어찌합니까 하니 드록신께서 이르시되 걱정말라 어린 감독이여, 내가 너를 위해 계획을 준비해 두었으니 하자 무린요가 다시 묻길 그 계획이 무엇입니까 드록신 가라사대 3일 후에 저절로 알게 될 것임이라 하니 3일 후에 혼왈두가 부상당했다 하더라. (드록수와 3장 4-7절)

  • 드록신께서 선두에서 공격진을 이끌고 어느새 하프라인에 다다르니 간악한 부거순의 수하들이 길을 막아서더라. 이에 공을 가지고 뒤따르던 람배두가 이를 어찌합니까 하니 이에 드록신께서 미소짓고 그라운드를 발로 치며 갈라져라 하고 외치니 수비진이 좌우로 갈라지더라. 그러자 람배두가 드록신께 마치 한줄기 섬광과도 같이 스루패스하니 드록신께서 반대살을 농락하며 역전승을 가져다 주시더라. (드록굽기 3장 11-15절)

  • 드록신이 다나가 투리우에게 말씀하길 어찌하여 니가 내 프리킥을 걷느냐 그러자 투리우 대답하되 제가 골을 대신 넣겠나이다 하더라. (드록복음 3장 4절 말씀)

  • 드록신이 필드를 그윽히 돌아보시며 '이들 중 누군가가 나를 병원에 보낼 것이다'라고 하시니 오직 투리오 만이 드록신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더라. (드록복음 12장 3절)

  • 신께서 수술 후 사흘 만에 부상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으니 필드에 오르사 상대팀 골키퍼 앞으로 뛰시다가 앞길을 가로막을 자들을 심판하러 오시리라. (드록신경)

  • 신께서 가라사대 믿음이 부족한 자들아 너희들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전세계의 전쟁을 멈추고 에이즈를 없앨 수 있느니라. (드록복음 17장 20절)

  • 사악한 거인 도마 뮬러가 신의 오래된 친우이자 푸른사자의 수호자 채후를 농락하여 채후가 실의에 빠지자 드록신께서 가라사대 "실망하지 말라.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하고 헤딩으로 흥한자 헤딩으로 망한다 하지 않았느냐"라고 하시니 드록신께서 곧바로 헤딩으로 채후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시더라.
    오만한 리배리가 더러운 인상을 찌부리며 첼시의 수비진을 혼란스럽게 하니 채후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묻자 드록신께서 답하시길 "내가 알아서 할 것이되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시니 채후가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하더라. 이에 드록신께서는 친히 리배리를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시고 채후에게 '자, 이제 pk를 막거라' 하니 제후가 pk를 막더라.
    승부가 나지 않아 승부차기 도중에 마타가 첫 골을 실축하매 마타가 "어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자 신께서 빙긋 웃으시며 말하시길 "너는 채후를 믿고 나를 믿어라"라고 하시고는 친히 골을 성공시켜 푸른사자 군단에 대이배(大耳盃)를 안겨주시더라. (드록복음 5장 20절)

  • 드록신의 은혜로 대이배를 든 푸른 사자 군단이 대이배를 들어올려 전 세계에 드록신의 거룩함을 알리려는 순간 간악한 보진아축협배를 수탈해가려다 신께 저지당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방해를 하여 푸른 사자 군단이 대이배를 들 기회를 빼앗아가더라. 이에 푸른 사자들과 사자들의 도우미들이 전 세계에서 신께 분노를 한탄하였으나 드록신께서는 자비를 베풀어 보진아의 죄를 사해주시더라. 이에 보진와는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푸른 사자 군단을 떠나게 되었더라. (드록복음 5장 21절)

  • 아부라모비지디 마대오가 "신이시여 저희가 신의 사자를 이끈지 오래 되었으나 큰 귀의 상패가 없습니다. 어찌 해야 합니까"라고 드록신께 여쭈니 드록신께서 이르사 "어리석은 자여, 민헌으로 가자"라 하셨다.
    사자들과 드록신께서 민헌 땅에 발걸음을 내딛으사 붉은 옷을 입은 자들의 떼가 몹시 거세었다. 신의 사자들 중 가장 단단한 애술리 골이 "드록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하며 호기롭게 나서니 붉은 자들이 맥을 추지 못하더라. 그러던 중 붉은 자들 중에 간사한 도마 물러가 요행수로 골을 얻으니 드록신께서 가라사대 "코너킥이 있으라" 하시매 코너킥이 생기었고, "내가 넣으리라" 하시니 금세 골을 넣으셨다. 불란서국 태생의 한량 리배리가 설치매 신께서 친히 철퇴를 내리시나 호루라기가 불리어 위험이 엄습하였다. 이에 사자들 중 검은 복면을 눌러쓴 제후가 나서 "신이시여 제가 막겠습니다" 하고 과연 막아내더라.
    시간이 다하고 나니 오로지 하나의 골이 남으매 드록신께서 친히 나오사, "딱하고 가여운 자들아. 내가 이 싸움을 끝내러 왔다. 너희는 모두 이를 보아 너희의 아들들에게 이르라" 하시며 신께서 발을 뻗으시니, 푸른 돌풍이 몰아치어 붉은 자들이 모두 힘없이 쓰러지고 온 구라파가 신께 조아리며 드렐루야, 드렐루야, 드렐루야 삼창하니 천지가 드록신의 이름으로 가득 찼도다. (드록참결복음 5:20)

  • 드록신께서 "다 이루었도다"라 말씀하시니 그의 제자들과 수천의 신도들이 머리를 조아려 신에게 경배를 올리고 장엄한 경배소리가 온 구라파에 울려 퍼졌도다. 제사장 마대오가 먼저 고개를 들어 신을 올려다 보았으나, 신은 온데 간데 없고 그곳에는 푸른 태양의 한 줄기 빛이 반사되어 비추는 '큰 귀'만이 놓여있을 뿐이더라. 그러자 수천 신도들이 통곡을 하니 그 통곡소리가 사자의 울부짖음과 같았으며, 그 눈물이 흘러 강을 이루었으니 후에 이를 템즈라 하더라.(드록복음 최종장 5절)

  • 신께서 축복을 주시고 떠남에도 푸른사자의 전사 도래수의 무기력한 모습에 측은함을 느끼신 신께서 신성의 수호자였던 담배배에게 계시를 내리시니, "담배배는 듣거라, 본래 쫄깃쫄깃한 공격수가 있어야 할 곳은 마땅히 푸른사자의 군단일지어니 너는 나의 은총을 믿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도록 하라. 나의 가호가 함께 하는 한 너의 무릎이 다시는 너를 괴롭게 하지 않을지니 너는 나의 뒤를 이어 스담보도 다리의 구세주이자 진정한 신의 사자가 될 것이며 심지어 이 세계에서 가장 간교한 부거순도 너를 막지 못 할 것이니라."라 하시더라. 신의 계시를 받은 담배배는 아쉬움과 눈물의 환호 속에서 신성을 떠나 푸른사자 군단의 수도 수탄보교에 다다랐더라. 신의 신도들과 전사들은 모두 그의 범상치 않은 풍채와 용모에서 그 분의 향기를 느끼는 듯 하더라. 허나 담배배가 수탄보교에 다다르기 무섭게 푸른 사자 군단은 그들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신도들을 이끌고 남함둔으로 원정을 떠나야만 했으니, 오랜 전란으로 지쳐 있던 전사들을 기세등등한 남쪽 함둔의 전사들이 몰아 부치자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함둔의 기습적인 공격이 골대를 가르더라. 안타까움과 탄식으로 바라보던 신도들이 울부짖는 가운데, 군단의 작전 참모인 소년장수 마타와, 돌격 대장 아찰이 담배배에게 간청하길, "그대가 정녕 신을 대신해 우릴 구원할 수 있는 자라면 부디 능력을 보여주시오"라 하더라. 그러자 담배배가 덤덤하게 답하길 "안타깝도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움직이며 평소처럼 나를 그 분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공을 전달해 주도록 하면 될 것이니. 드록신의 가호는 이제부터 시작이니라." 하더라. 이에 힘을 얻은 푸른사자의 전사들이 숨가쁘게 몰아부치자 남함둔의 중원을 책임지던 장수들이 일설 허둥지둥 움직이며 대열을 갖추지 못하더라, 바로 그때 빈틈을 노린 아찰이 마타에게 공을 줌과 동시에, 마타가 공을 한번 가볍게 띄어 주니 어디선가 담배배가 한마리 푸른 사자가 돌진하듯 맹렬하게 뛰어가 냅다 발을 갈기니 남함둔이 자랑하던 수비대장과 문지기는 그의 위세에 저항 한번 못해보고 그들의 골문을 내주더라. 이를 지켜보던 신도들을 벌떡 일어나 환호하며 드렐루야를 외치더라. 이를 지켜보던 남함둔의 한량이 말하길, "그대는 오직 그대의 오만한 힘과 빠른 발만 믿고 우리를 유린한다고 생각하는구나, 우리의 단단한 수비는 다시는 그대의 투박한 몸놀림에 능욕당하지 않으리라" 허나 담배배는 빙긋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다가, 곧이어 아찰이 찬 빠르게 대지를 가로질러 오던 공을 단 한번에 부드러운 발놀림으로 맞받아 치니, 문지기가 몸을 날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적의 골문을 향해 빨려들어가더라. 이를 지켜보던 남함둔의 적장들은 전율을 느끼며 주저앉더니 더이상 푸른 사자 군단의 진로를 차단하지 못하고 간신히 막아내기에만 급급하더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던 그 한량에게 담배배가 말하길 "무릇 신께서 승천하시기 전 부드러움이 없이는 강함도 없다는 것을 그의 몸으로 직접 보여주셨으니 나는 신의 축복을 받아 그것을 그대로 실행하였을 뿐. 어찌 그대들은 믿음이 부족하여 받아들이지 못하느뇨" 이에 감복한 남함둔의 전사들이 모두 "드렐루야"를 외치더니, 그들을 지켜보던 적의 우두머리가 얼굴을 떨구고 말을 잃더라. 마침내 또 다시 찰시사기에 기록될 역사적인 승리가 이루어지니, 전사들을 푸른 잔디에서 마음껏 포효하고 신도들을 두팔 벌려 신께서 보내신 새로운 신의 사자를 향해 경배를 올렸다. 담배배는 손을 들어 그들을 마주함과 동시에 하늘을 바라보니, 흐릿흐릿 했던 창공에 구름이 하나 둘 사라지며 한줄기 광명이 그에게 내리더니 그 위에서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내리다보시는 드록신이 있더라. 이에 담배배가 "드멘"을 외치더라.(드록묵시록 제 3장 14절)

  • 사도 야야 두래가 사탄 혼다 게이스케를 맞아 신께 기도를 올리자 드록신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나의 아들들이니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음을 잊지 말라." 하며 친히 강림하시니 사도 보니제루비누가 축복을 받아 간악한 열도 원숭이의 무리를 물리치더라. (드록복음 13장 22절 말씀)

  • 푸른사자 군단이 우승에 근접하지 못하자 무린요가 한탄하였다. 신이시어 어찌하여야 하옵니까? 이에 그분께서 "어리석은 자야, 너의 믿음이 부족하니라" 하시매 그분께서 떠나신지 2년만에 중원과 돌궐을 거쳐 수탄보교에서 부활하셨더라. 그리고 이르시길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성령을 받아 온 영길리와 구라파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하시니라. 신도들이 "드멘, 드멘" 소리높여 찬양하니 찰시의 공격수들이 그분의 성령을 받더라. (드록복음 39장 13~19절)[23]

  • 드록신의 충실한 심복 무린요가 푸른 사자 군단으로 돌아와 큰귀의 상패를 노리매 드록신의 나이든 신자 람배두와 애술리 골을 떠나보내고 고심하고 있으매 신께서 푸른광명을 띄우시며 수탄보교에 다시오르시니 어른 아이 할것 없이 모두가 노래를 부르며 그 분을 반기지 않는 이 없었느니 (드록복음 42장 3절)

  • [24]신과 그의 사도들이 노도래보로 이교도를 응징하러 떠나니 마침 적사탄교들의 수장 혼왈두부거순은 노도래보를 떠난지 오래인지라, 충직한 푸른사자 군단은 이를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푸른사자 군단의 젊은 선봉대장 고수태가 마침 부상으로 신음하니 모두가 걱정하매 "나의 제자들이여, 걱정하지 말거라" 하고 신께서 몸소 이교도를 응징하러 선봉에 서셨다. 그러나 애속한지라, 신께서 이전만큼 힘을 못 내시니 모두가 신의 힘을 의심하더라. 아찰이 묻기를 "신이시여, 저는 당신의 명성을 듣고 푸른사자 군단에 합류했건만 어찌 저를 의심과 번뇌에 빠지게 하시나이까" 하니 신께선 그저 빙긋 웃으시며 "어린 아찰이여, 그대는 다만 조금만 더 기다리라. 무른 내가 나서야 할 때가 있고 아닌 때가 있는것이니." 하셨다. 붉은 이교도들에게 매수당한 탐관오리 심판관의 부정한 판결에 푸른사자 군단은 초기에 고전하나, 전쟁이 시작된지 절반이 지날 무렵 마침 신께 기회가 왔으니 한때 사이비교로 악명을 떨쳤으나 지금은 멸문지화를 당한견가(犬家)의 우두머리였다가 깨달음을 얻고자 서반아로 갔다가 마침내 신의 가르침에 귀화하고자 푸른사자로 합류한 탕자 새숙이 공을 창공으로 띄우니 신께서 "아찰이여, 바로 내가 지금이 때일지어니!" 하시고 하늘로 높이 뜨시니 이는 두 해 하고도 6달 전 덕국 남부에서 타국의 이교도를 격파하고 푸른사자에 대이배를 안긴 몸짓을 다시 보는듯 하였다. 그때 신과 함께하던 이들은 모두 푸른사자를 떠났으나 [25] 한때 신의 충직한 사자였고 푸른사자의 소년장수였으나, 신의 가르침을 어기고 적사탄교로 타락한 마타만이 신의 모습을 보며 후회의 눈물을 흘릴 따름이니라[26][27]. 아아, 하지만 후회한들 때는 늦었으리. 노도래보의 수문장 대 혜아는 신의 거동에 완전히 압도당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오직 화란국의 한량이자 한때 탕자 새숙과 함께 견가의 우두머리였던, 그러나 새숙과 달리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더 그른 길로 빠진, 반 폐로시 역시 어떻게든 신에게 저항하려 발악을 해보았으나 그의 헛된 머리짓은 외려 신의 공격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적사탄 교도들은 승리를 위해 판관을 매수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젊은 푸른사자들을 곤경에 빠뜨리는 등 여러 악행을 거듭했으나 역시 사필귀정이며 신 앞에선 잔망스러운 묘수에 불과했다. 다만, 거듭된 판관의 부정으로 푸른사자의 충직한 이반호비치의 퇴장과 이 때 기회를 잡은 반 폐로시의 기습으로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한채 푸른사자는 노도래보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무린요는 이를 슬퍼하였으나 신께선 그런 무린요에게 다가가 다음과 같이 말하신다. "분명 오늘 일은 슬픈 결과지만, 적사탄교가 자신들의 본거지에서 우리 푸른사자에 승리하지 못하는 것, 이는 아무리 부정한 방법을 쓴다 하더라도 모든 것은 본좌 뜻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니 통렬해하고, 안타까워하지 말거라. 이듬해 이교도가 성지 수탄보교를 찾아올 때 부상에서 복귀할 고수태와 함께 징벌할 것을 기약하며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하며 더욱 수련하여라." (드록계시록 10장 26절).

"드멘."

이게 뭐하는 지거리야 고만해 미친놈들아
무슨 짓거리긴 신을 찬양하는 짓이지!!

2014년 6월 15일(브라질 현지날짜는 14일) 벌어진 일본과의 경기 직후 나온 드립들이 기사화되기까지 했다. 진짜 뭐하는 지거리야

3.4. 그 외 유명 떡밥과 짤방

드록바의 추종자들은 그를 찬양할때 하악이라는 신음소리를 낸다 카드라. 사진 속 송코와 에투는 무시하자


아이러브사커발 유행어로 '야 요즘 드록바 쩔지않냐?'가 있다. 유행이 된 이유는 소개팅 나갔을때 어떤 말을 해야란 질문에 회원들이 장난으로 꾸준히 저 멘트를 추천했기 때문. 실제로 '뽀록바 쩔지않냐'는 네이버 자동완성 검색어에도 있다.

주로 VS놀이로 꼽히는 상대로는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있다. 전성기 시절 둘다 화려한 테크니컬보다는 선천적인 압도적인 피지컬을 내세운 플레이로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28]

번역기 번역이 묘하게 맞아떨어진 짤방도 있다. 서부 아프리카 원주민의 쓰라린 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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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리그베다 위키는 기본적으로 항목명의 비공식 별명/이명 등의 리다이렉트를 허용하지 않으나, 이번 경우 다수의 언론에서 실제로 활용되는 등의 용례가 있어서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 [2] 기존의 11번인 오스카가 램파드가 떠나고 비어있는 8번을 달기로 했다.
  • [3] 다만 무리뉴가 극초반에 경질됬었던 2007-2008시즌과 스콜라리 체제였던 2008-2009 시즌 초반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 [4] 아프리카 3대 스트라이커는 드록바,사무엘 에투,에마뉘엘 아데바요르
  • [5] 첼시에서 이러한 스타일은 팀의 전술과 관련된 문제다. 강력한 피지컬로 최전방의 공간을 책임지며 상대편 수비를 견제함과 동시에, 공점유 및 공격수와 미드필드 사이의 공간은 램파드에게 전유시켜서 활동량 + 패스 + 중거리슛 + 공간 쇄도를 전담시키려는 전술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다. 이 전술은 무링요 때부터 내려온 전술이며, 드록바에게도 내려와서 공 받는 것을 삼가라고 계속 상기시킨다고 한다.
  • [6] 위의 아프리카 3대 스트라이커라 불린 선수들은 거의 모두 이런 플레이에 능했다. 사실 이런 플레이를 잘했던게 아프리칸 이라서 그런 별명으로 불렸는지도 모른다.
  • [7] 거친 태클을 당해도 엄살 피우는걸로 밖에 안 보인다. 그 때문인지 09/10 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는 에반스에게 까이고도 옐로 카드를 받은 적도 있다. 안습
  • [8] 경기를 보면 교착상태에 빠질 경우 감독들의 주문과는 상관 없이 미드필더 라인까지 스스럼없이 내려가며 또 공격형 미드필더로 변신해서 볼배급까지 주도한다. 과연 드록신
  • [9] 사람들이 드록바의 장점을 말할때 많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첼시 입단 초창기 바르샤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테크닉만으로 푸욜을 비롯한 바르샤 센터백 두명을 동시에 벗겨내기도 했다. 사실 간과할만한게 드록바는 메시, 호날두처럼 화려한 드리블을 구사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다. 약간만 속여도 피지컬로 밀고나갈 수 있기 때문.
  • [10] 다만 실제로 수비수 전환을 시도했는지 아니면 상대팀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연막작전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어린시절 수비수 출신이라 수비능력이 뛰어나며 무링요 감독이 그를 영입할 때 공격수로 대성하지 못하면 수비수로 전향시킬 생각이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11] 48초 쯤에 밀대에 걸려 넘어지는 척 하는 선수가 척 봐도 누군가와 닮았다.
  • [12] 네이버에 드록신을 검색하면 드록바가 바로 뜨던 시절도 있었다.
  • [13] 당시 해충갤에서는 vs놀이가 유행이었는데, 모 갤러가 항상 김태희와 xx하기 vs 드록바와 xx하기를 도배하기 일쑤였다. 아직 드록바의 이미지가 다이빙의 아이콘이던 시절 당연히 욕과 함께 김태희의 압승이었지만, 익숙해지다 보니 점점 드록바의 승률이 올라가다가, 실제의 활약이 겹쳐지며 원래 해충갤의 대세에서 유일신까지 승격한 것.
  • [14] 일본 대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를 중계하던 안정환이 이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 [15] 이후 2011년경 콜로 투레의 약물 스캔들이 벌어졌을때 드록바가 그를 변호해주면서 감정이 약간 풀린 듯하다.
  • [16] 하지만 월드컵 경기에서 드록신의 부상당했던 팔부분은 유니폼이 빵빵해져 있었던 걸로 보아 부상을 안고 뛴건 확실한듯 하다.
  • [17] 엄밀히 말해 하프라인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중거리 슈팅 보기
  • [18] 현재 첼시 팬들은 보아스 감독을 더 빨리 경질했어야 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
  • [19] 뮌헨의 하이라이트에도 등장한다. 뮌헨에게 PK까지 주었다.
  • [20] 당시 갈라타사라이는 원정에서 0:3 완패에 홈에서 호날두에게 선취골을 허용하며 4강 진출을 위해 5골이 필요한 절망적인 상황이 되었으나, 후반 50분 에부에의 골을 시작으로 웨슬리 스네이더의 골, 그리고 드록바의 골로 2골차까지 좁히며 희망고문에 들어갔다. 결국 더 이상 골을 넣지못했고 후반 추가시간에 호날두의 골을 허용하고 말았지만.
  • [21] 하지만 사실 스웨덴이나 포르투갈이 생소한 나라도 아니고(...) 나라명도 어렵지 않고 어감도 그닥이라 사실상 드록국 이외에는 잘 쓰이는 편은 아니다.
  • [22] 호날두가 맨유에서 뛰던 시절의 고전.
  • [23] 드록바는 2011-2012 시즌 이후 중국 상하이, 터키 갈라타사라이로 이적했는데, 2014-2015시즌에 다시 첼시로 돌아온다! 코치 겸 선수로 돌아온다고.
  • [24] 2014년 10월 26일(현지시각) 맨유첼시의 프리미어리그의 비유.
  • [25] 11-12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라인업 선수들은 대부분 첼시를 떠났다.
  • [26] 이 당시 마타는 맨유로 이적한 이후 커리어 최하라고 불릴 정도로 떨어진 폼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이때 주장 루니가 마지막으로 결장하는 경기라 차후 루니의 복귀이후 확고한 주전으로 뛰기 위해선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나...결과는 교체 안습
  • [27] 친정팀이자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였고, 전성기를 달리던 첼시를 상대로 임팩트를 보여야 했던 점이 정말 아이러니...
  • [28] 비에리쪽은 주로 압도적인 득점기록, 드록바쪽은 주로 한결같은 꾸준함을 내세운다. 잠깐 드록바가 꾸준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