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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렁큰 타이거

last modified: 2015-03-29 20:47:32 Contributors


본명 : 서정권
생년월일 : 1974년 6월 11일
키/몸무게 : 180cm, 65kg
가족 : 윤미래, 아들 서조단, 父 음악평론가 故서병후

한국 오버그라운드 힙합의 제왕.

Contents

1. 데뷔
2. 사건 / 사고
2.1. 표절&무단샘플링
2.2. 마약 파문
2.3. DJ샤인 탈퇴
2.4. 척수염
2.5. 뮤직비디오 표절
2.6.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내한 생일파티
3. 기타

1. 데뷔

LA 폭동으로 혼란스럽던 1992년 미국의 래퍼 아이스큐브[1]는 흑인을 상대로 장사하면서 흑인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는 한국인들을 비하하는 내용의 Black Korea란 곡을 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JK는 역시 1992년 LA의 한 힙합클럽에서 한국인들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내용의 'Call Me Tiger'라는 곡을 열창하며 주목을 받고, 같은 한국인인 DJ 샤인[2]을 만나 드렁큰 타이거를 결성하게 된다.

1995년 JK는 흑인 친구 한 명과 힘을 합쳐 만든 EP격 앨범 'Enter The Tiger'[3]를 만들어 한국에 들어왔으나, 아직 힙합에 대한 한국의 인식수준은 너무나도 얕았던지라 사람들의 반응은 미미했으며 방송국 등지에서도 "검둥이하고 뭐하는 짓이냐", "춤이 없어서 안 된다", "한국말도 못 하면서 뭘 할 셈이냐[4]" 등의 말만 듣고 문전박대당했다. 한마디로 당시 한국인들은 힙합 패션과 힙합 춤은 알아도 힙합 음악은 몰랐다.[5] 이 당시의 이야기는 7집 수록곡인 '매일밤 01'에도 언급되어있다.

이에 좌절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에 입학한 뒤 공부에 매진하던 JK는 1997년 가벼운 초대에 응하여 다시 한국으로 향한 뒤 길거리 공연 및 각종 행사로 서서히 이름을 알려나가기 시작했다.[6][7] 그리고 2년 뒤 DJ 샤인과 함께 드렁큰 타이거로서 1집을 발매, '난 널 원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8] 등의 곡으로 대중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된다.

이당시 두 멤버의 한국어 랩 실력은 거의 바닥에 가까웠던지라[9] 1집 때의 가사는 김진표가 대필해주었으며, 2집부터는 스스로 한국어 가사를 쓰기 시작했지만 타이틀곡인 위대한 탄생에서 굴욕[10]을 당하는 등 아직 불완전한 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후 피나는 노력을 통해 실력은 차츰 발전, 현재는 능수능란한 한국어 가사를 선보이고 있다.

2. 사건 / 사고


2.1. 표절&무단샘플링

표절과 무단샘플링 및 컨셉차용 그리고 아래에 따로 서술된 뮤직비디오 표절까지 힙합계의 대부라 불리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출처가 지저분한 곡이 많다. 드렁큰타이거 데뷰이전, 데뷰앨범이었던 타이거JK 1집을 포함한 드렁큰타이거의 초창기 앨범 수록곡 중 대부분이 표절 및 무단샘플링이고, 무한도전가요제에서 발표를 했던 퓨처라이거의 곡 역시 외국곡과 거의 흡사하다. 인터뷰를 보면 무단샘플링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 한없이 자신에게 관대하고 범법행위란 것을 인지하지 않다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이 부분에 대해서 반성을 하거나 사죄하기는 커녕 최근에는 아예 언급 자체를 안하고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듀스시절 대부분의 곡이 현재 표절 및 인용으로 밝혀져서 욕을 먹고 있는 이현도나 무단샘플링 자체를 아름다운 미화로 바꿔 인터뷰를 하고 다닌 이하늘과 더불어 한국 힙합계의 조상이라 할 수 있는 3인방 모두 과거가 지저분하다는 점은 굉장히 아쉬운 점

2.2. 마약 파문

1집 활동을 마친 뒤 2000년 4월 2집인 '위대한 탄생'[11]을 발표했으나 불과 앨범을 발표한지 1개월만에 JK가 마약복용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는 당시 마약복용 사실이 적발된 타운의 멤버가 JK와 함께 에서 같이 몇번씩 히로뽕을 흡입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었다. JK는 그 당시 한국에 없었고 실제 소변검사 등에서도 모두 음성판정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이 마약파문은 해외 인터넷 방송이나 라디오 전파, 힙합 잡지 등에서 이슈가 되었고 JK의 아버지이자 음악평론가 서병후[12] 씨와 팬들은 항의집회를 가졌다. 같은 무브먼트 크루였던 미키 아이즈는 캐패도나와 합심하여 Free JK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13]

아무튼 이후 JK는 36일 정도를 복역한 뒤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업타운의 그 멤버가 거짓증언을 했다는 내용을 직접 녹취, 앨범에 실으려고 했으나 무죄가 입증되어 공개하지 않았다.

드렁큰 타이거는 불미스러운 마약파동을 딛고 다음해 2001년 3집 'The Legend of...'를 발표했으며, 타이틀곡 'Good Life'가 대중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끌면서 각종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성공적인 복귀를 보여줬다.

2.3. DJ샤인 탈퇴

2003년에는 4집인 '뿌리', 2004년에는 5집인 '하나하면 너와 나'를 발표하는 등 음악적 행보는 계속 됐으나 5집이 발매된 후 갑자기 DJ 샤인이 돌연 타이거 클랜을 탈퇴한다. 이유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아서 불화설을 비롯한 각종 소문이 나돌았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DJ 샤인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그냥 추구하는 음악적 노선의 차이가 있어서였으며 타이거 JK에 대한 나쁜 감정 같은 건 없다고.

DJ 샤인은 탈퇴 후 힙합도 고급스러운 문화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클럽 등을 빌려 하이클래스 힙합 이벤트를 열어왔으며, 이태원에 라운지바를 열고 공연을 주선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왔다. 2006년 영화 신데렐라의 OST에 참여하면서 음악활동에 복귀할지도 모른다는 떡밥을 던진 뒤 2007년 허니 패밀리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복귀설에 쐐기를 박았고, 2009년 플로라이다의 Right Round[14]를 리메이크한 싱글로 국내 활동을 재개했지만 반응은 썩...

아무튼 샤인이 빠진 6집부터는 JK 혼자서 드렁큰 타이거의 이름으로 작업을 하게 됐으며 샤인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인지 5집을 기반으로 피처링의 비중이 부쩍 늘어나게 된다.

현재는 홍대쪽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1#2

2.4. 척수염

2004년 척수염 진단을 받고 약 없이 살 수 없는 몸이 되는 악재까지 겹쳐버린다.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 했던 말에 따르면 만지는 건 차가운 물인데 신경이 뜨겁다고 반응해 화상을 입거나 일어나서 눈은 떠 있는데 몸은 전혀 움직이지도 않는 등 신체가 자의와는 다른 이상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뇌로 신경전달을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관에 이상이 생겼으니...하지만 지금은 거의 완치된 상태라고 하고, 무릎팍 도사에서 말하길 이정도로 완쾌된 사례가 없어 학계에 보고된 상태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음악적인 행보를 보여줌은 물론 2006년 2월에는 음악 전문 레이블인 정글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여 비지, 팔로알토, 테비, 앤 등 후배들이 자라날 자리를 마련해주는 모습을 보여줬고 2007년 7집 'Sky is The Limit'를 정글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아티스트로서 내게 되었다.

2.5. 뮤직비디오 표절

2005 Mnet KM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에 뽑힌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발 앞으로'의 뮤직 비디오가 마이클 잭슨의 Stranger in Moscow의 뮤직비디오의 구도, 구성 등을 그대로 가져와 쓴 것이 알려지면서 표절 시비가 있었다.

2.6.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내한 생일파티

2013년 4월 4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3 내한 + 생일 파티에서 초대 가수로 등장했는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오히려 뒷전으로 물러난 것 같은 모습에 논란이 좀 생겼다. 트위터로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 날린 멘션 때문에 사태가 커진 상황.[15][16][17]

정작 당사자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기분 좋게 행사를 즐겼다고 하며 팬들이 지적하는 점 또한 원래 그렇게 계획 됐던것이고 당사자 본인이 아이를 좋아하여 조단이 무대 위로 올라온 것. 오히려 이런 순간포착 때문에 일이 커져 논란이 당황스럽다 카더라. 기사[18]

행사 중간에 엉뚱한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넘어가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팬들은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다. 이 날의 행사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3 내한 + 생일 파티이다. 이 행사의 주인공은 엄연히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고, 당연히 팬들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보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것이지 타이거 jk와 가족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다.[19]

타이거 jk와 기획사[20]의 기획과 행동이 부적절한 점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네티즌들의 인신공격적 발언은 정당한 것이 아니고 정당화 될 수도 없다. 어린 아이인 조단에게까지 책임을 지워 지나친 막말을 해댄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 사건 이후, 타이거 jk는 윤미래, 비지와 함께 결성한 그룹 'MFBTY'의 활동도 중단하고 의기소침해하다가 1개월 뒤 '2013 아카라카를 온누리에' 첫 번째 게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무대에서 걸쭉한 육두문자와 함께 모 신문사 인터넷 기사를 대차게 디스하고, "이 무대가 MFBTY의 공식적인 첫 무대"라고 말하는 등 4월 4일의 사건에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남편이 쌍욕하는 무대에 함께 오른 와이프 윤미래의 어색한 표정이 압권. 4월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인지 공연 무대에서 "공연이 있는줄도 얼마전에 알았고, 그래서 공연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라고 밝히면서 뒤이어 "그래서 오늘 받기로 한 공연료를 모두 연세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하겠다"라고 밝혔다. 오오 JK 오오...

3. 기타

2007년 6월 임종을 앞둔 JK의 할머니를 위해 업타운 출신의 윤미래(T)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고, 아들인 서조단을 가졌다는 사실은 앨범이 나온 후에서야 뒤늦게 밝혀졌다.

웃대인이기 때문인지[21] 러시아식 유머도 구사한다.[22]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지붕뚫고 하이킥의 등장인물 광수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짜로 지붕뚫고 하이킥에 카메오로 출연했다.[23] 평소의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 다른 코믹함을 발산했다. 그는 우연히 인나(유인나)의 오디션장 앞에서 광수와 마주쳐서, 야외 벤치에서 인생에 대한 조언을 한다. "포기하지마. 세상이 널 알아 주느냐 마냐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니 자신."이라며 랩을 하듯이 독특하면서도 코믹하게 대사를 쏟아냈다. "가수가 못 된다면 유인나의 매니져를 하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어떻겠냐?"라는 조언을 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광수와 헤어지면서 "그리고 이제 머리모양 좀 바꿔. 사람들이 헷갈려하잖아?"라고 의미있는 대사를 했다(...). 만남에서 조언까지 이어진 30초간의 짧은시간동안 자신의 캐릭터를 잘 살리면서 미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광수와 헤어지면서 오른손을 맞잡고 6번이나 포옹모션을 취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첫 연기 도전치고는 나름대로 자연스럽고 재미있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미국 국적이라 까이기도 한다. 팬들은 척수염때문에 어차피 병역은 면제를 받았을 거라고 실드를 치기도 하지만, 척수염에 걸린 2004년은 이미 30살이 넘었을 때이다.

경기도 의정부시에 거주한다고 한다. 장보기 및 아들 조단의 장난감을 사주러 홈플러스 의정부점에 가끔 출몰한다고.

카투사들 중 의정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에서 복무하는 인원들은 가끔 볼 수 있다. 정문이 아닌 후문으로 나오면 제법 큰 크기의 마트가 있는데, 여기에 윤미래와 JK 본인이 가끔 나타난다. 조단도 나타난다.

일본 힙합계의 레전드 ZEEBRA와 절친이라 서로의 공연에 찬조출연하고 피쳐링, 곡작업도 같이 한다. MAMA에서는 갤럭시탭도 같이 광고했다. 간지작살


명가사로는 'Good Life'와 '주정'에서의 '한 잔 두 잔 비워내는 술잔 혀를 지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24]이 있고, 명곡으로는 Monster (Eng Ver.)가 있다. 이게 명곡인 이유는 Rakim, Roscoe Umali, Dilated People의 Rakka, 아내인 윤미래가 피쳐링으로 참여, 5명 다 비트를 신나게 조져버려 듣자마자 '힙합이다'는 느낌을 가장 강렬하게 주기 때문. 굳이 단체곡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정말 힙합이다!

한국 힙합계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그렇고 인상도 그렇고(...) 왠지 스눕 독을 닮았다.

14년 2월 1일 부친상을 당했다. 그 와중에 전 소속사에서는 JK의 동의도 없이 마음대로 드렁큰 타이거 best album을 내버렸다.#
정작 드렁큰 타이거가 낸 앨범, 살자는 없는데 본인 동의 없이 발매된 앨범은 버젓하게 명시되어 있다.

2004년에 발매했던 정규 5집에 실린 '가수지망생 1'의 스킷 가사가 '5천원으로 담배를 샀더니 가게 아줌마가 거스름돈으로 5백원만 줘서' 절망하는 내용인데 정확히 10년이 지난 2015년부터 한국의 담배값은 2천원이 올라 정말로 4500원이 되었다. 덕분에 타이거 JK 본인은 팔자에도 없던 예언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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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국의 전설적인 갱스터 힙합그룹인 NWA의 메인랩퍼, 영화배우로도 유명하다. 트리플X 2에 주인공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 [2] 샤인은 1996년부터 1997년까지 드렁큰 타이거 극초창기 시절 당시 댄스그룹이었던 C2K(aka Cost Cost)의 멤버를 겸했다.
  • [3] 이 앨범은 소수만 찍어냈던지라 현재는 말그대로 레어...아니, 유닉 수준의 취급을 받고 있는 앨범. 2012년 CD버전으로 재발매되었다. 참고로 이 앨범의 인트로는 2pac의 Me Against The World를 그대로 배껴왔다(...).
  • [4] 한국에서 활동할 거면서 한국말로 랩을 할 수 없다는 점은 당연히 문제가 될 일이다. 미국에서 한국말로 랩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
  • [5] 심지어 어떤 PD는 "힙합은 이런 것"이라면서 듀스도 아니고 서태지의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고.
  • [6] 당시 지누션, 이현도 등에 의해 힙합이 대중들에게 서서히 알려지고 있었으며 하이텔 흑인음악 동호회인 BLEX나 클럽 MP 등을 통해서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알려지기 시작하는 등 힙합에 대한 인식이 1995년보다는 꽤 나아진 상황이었다. 1999년부터는 힙합이 번성하면서 홍대 거리가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 [7] 1996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힙합 음악을 거의 몰랐다. 당시 미국에서는 총격전으로 인해 사망하면서 래퍼들이 여럿이 사라지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미국 힙합계의 양대산맥으로 유명했던 2pacNotorious B.I.G.가 총에 맞아서 죽었고, 그리고 힙합계의 이단아 에미넴이 등장했다.
  • [8]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 노래는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출판사는 추가바람)에서 '힙합같은 거? 그냥 있는 척하는 거잖아?'라는 식의 내용의 소문단으로 등장한다. JK가 어떤 심정으로 제목을 붙였는지 안다면 아 씨바 할말을 잊었습니다.
  • [9] 한국어 자체는 구사할 수 있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 있다. 다만 그때까지 영어로 가사를 써서 랩을 해왔기에 한국어로 가사를 쓰기는 어색했을것. 애초에 가사를 쓴다는게 한국인에게도 쉬운일이 아니다.
  • [10] 가나다순서로 라임을 썼지만 '타오르는 열망으로 취한 나의 타령 카마카마카마카마 Make a million'에서 카와 타의 순서가 바뀌었다. 이후 '기성체제에 대한 반발의 의미'라고 변명했지만 먹힐리가 만무했다.
  • [11] 수록곡인 The Movement를 통해 무브먼트 크루가 본격적으로 출범하게 됐다.
  • [12] 대한민국 최초의 팝 칼럼니스트이다. 1942~2014.
  • [13] 캐패도나 등 우탱 클랜과 친하게 지내며 같이 작업하는 뮤지션이나 팬 등등을 우팸이라 일컬었던 것을 국내 몇몇 이들이 설레발치면서 우탱 클랜으로 와전, Free JK가 우탱 클랜의 곡이라고 와전되기도 했다. 더 문제인 건 이게 위키에도 떡하니 사실인 것처럼 기재되어 있다는 것.
  • [14] 물론 이 곡 자체도 리메이크에 가까우며 원곡은 Dead Or Alive의 익히 알려진 그 곡이 맞다.
  • [15] 덧붙여 타이거 jk의 아버지인 서병후도 트위터를 통해 항의하는 상대들을 마귀라고 표현한 덕분에 지나친 발언이 아니냐는 반응도 나왔다. 하지만 알고보면 트위터에서 가족에게 검둥이 등의 인종차별 발언까지 퍼부어지고 있었으니 화가 안날리가 없다. 현재 트위터 계정#에는 당시의 관련글을 삭제했다. 다만 문제점을 지적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팬의 글까지 리트윗하여 그의 팬에게 악성멘션을 받는 등 상황이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 [16] 사실 돌아다니는 캡쳐는 다소 악의적이라 보일 정도로 편집이 되어있어 영상을 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영상을 보고나면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데 팬과 일반인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타이거 jk의 입장에서 22분중 약 3:50초 간에 엠씨와의 대화동안 미취학 5살 아들의 행동이 아주 철없는 아이로 포장하여 그렇게 문제가 되어 비난을 받을 정도라고 한다면 어이가 없을 수도 있다. 영상을 보고 판단을 하자.
  • [17] 타이거 jk는 그룹 MFBTY로서 그리고 아들 서조단과 초청되어 주최측에 허락으로 올라간 것으로서 무대에 올라온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사실 주최측도 상당히 문제가 있음에도 묻힌 상황...그렇기에 사람들이 대부분 지적하는 것은 무대위에서 아이를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에 집중되어 있다.
  • [18] 다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기자의 직접적 대화는 아니다. 기사의 내용 또한 언플의 성격이 의심된다.
  • [19] 그리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해명한 사실이 진짜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말하면 기분이 나쁘지만 그냥 좋게 넘어갔을 수도 있는 것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영화 홍보를 겸해서 한국에 온 것인데 그 행사에서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해서 홍보하는 나라의 가수에게 불만을 쉽게 표출할 것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저런 경우 어지간하면 립서비스로 좋게 좋게 넘어가지 '정말 기분 나빴어요.'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다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자주 있고 이런 것은 단정지을 수 없는 추측의 영역일 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기분이 어땠는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다.
  • [20] 어찌보면 이미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때도 전적이 있던 기획사측이 제일 문제라도 봐도 무방한데 타이거 jk가 졸지에 기획사몫까지 과도하게 욕을 얻어먹은 감이 있다.
  • [21] 디시에서는 농담식으로 "더러운 웃대종자"라고 부른다.
  • [22] "무당들린 신처럼 난 작두를 태워'", Jet Pack 가사 中.
  • [23] 당시 이광수의 역할은 가수 지망생이었고 유인나와 같이 오디션을 보러갔지만, 유인나만 합격을 하고 이광수는 떨어져서 의기소침해있어서 힙합하는 선배 타이거JK에게 조언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 [24] Good Life에서는 DJ 샤인이 풀어냈고 주정에서 타이거 JK가 풀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