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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last modified: 2015-02-01 15:57:33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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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úblika Demokrátika Timór-Lorosa'e (테툼어)
República Democrática de Timor-Leste (포르투갈어)
Democratic Republic of East Timor (영어)

21세기에 독립한 최초의 나라.

면적 14,874 km²
인구 1,066,582명(2010)
수도 딜리
공용어 테툼어, 포르투갈어
국가원수 대통령(타우르 마탄 루아크)
정부수반 총리(샤나나 구스망)
1인당 GDP 명목 3,641$, PPP 9,467$(2012)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경제
4. 군사
5. 언어
6. 한국과의 관계
7. 동티모르 출신 인물
8. 한국인 감독과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

1. 개요

티모르 섬의 동쪽 부분에 자리잡은 공화국. 수도는 딜리. 국토면적은 15,000㎢. 인구 약 95만 명.

소순다 열도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티모르"라는 섬 이름은 말레이-인도네시아어로 동쪽이라는 뜻의 "timur"에서 유래하였다. 그렇다면 동티모르라는 나라 이름은 "동쪽 동쪽(한때 인도네시아에서는 Timor Timur라고 했다)"이라는 동어반복이 된다. 하지만 틀린 표현은 아니다. 포르투갈식 표현이자 공식 명칭인 Timor-Leste에서도 나타나듯, "티모르(동쪽)"에서도 동쪽에 있는 곳이라는 의미이기 때문.[1]

필리핀과 함께 동남아시아에 둘뿐인 가톨릭 국가이다.

2. 역사

사실 티모르 섬은, 서부 지역은 네덜란드, 동부 지역은 포르투갈의 식민 통치를 받으면서 동서로 분단된 불행한 역사를 지닌 섬이다. 본래 하나의 섬이지만, 이쪽 동네가 대개 그렇듯 언어도 문화도[2] 다르다. 게다가 수백 년간 분리되어 있었기에 그 차이는 더욱 심해졌을 뿐더러 정치적으로 완전히 별개의 곳이 되었다. 결국 동부 지역은 독립국이 되었다.

4만 년 전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이주해 왔으며[3] 이후 5000여 년 전 지금의 멜라네시아인이 이주해 왔다. 이후 프로토-말레이인이 이주해 왔으며, 따라서 지금 동티모르엔 뉴기니계 언어와 멜라네시아인들과 프로토-말레이인이 쓰는 말레이폴리네시아계 언어가 모두 쓰인다. 이들은 웨할리 같은 작은 왕국들을 세우긴 했으나 문자가 없었기에 동티모르의 고대사는 잘 밝혀져 있지 않다. 16세기 포르투갈이 티모르 섬 전체를 식민지이자 향료 무역의 거점으로 삼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이슬람교가 근근히 전파되기는 했지만.

그러다가 17세기 이후 포르투갈이 쇠퇴하고 네덜란드가 순다 제도의 패권을 잡으면서 포르투갈의 양도로 서(西)티모르는 네덜란드가 차지하고 동(東)티모르만 포르투갈 식민지로 남았다. 오랜 세월 동안 가톨릭이 깊숙히 전파되어 인도네시아와는 천지차이로[4] 철저한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이것도 티모르 분쟁의 중요한 요소였다.

포르투갈의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정권(1932~1968) 때 티모르를 포함해 모든 해외 식민지들의 독립을 억압했으나, 지겨운 전쟁에 염증을 낸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 1974년 이후 독립문제가 논의되었으나, 당시 동티모르 일대의 독립 운동의 주도권을 좌파가 장악했기 때문에, 미국-호주-인도네시아 모두 "태평양의 쿠바"가 태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 3국의 암묵적 합의 하에 1975년,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에 침공, 27번째 주로 일방적으로 합병했다.

이후 세계적인 무관심 속에 인도네시아의 식민통치와 군정(軍政)이 이어져,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통치 때 70만 인구 중 무려 20만(!)이 추방되거나 학살되는 등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그러다가 1990년대 냉전이 종식되면서 겨우 국제사회의 관심을 받아,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퇴진하면서 인도네시아가 IMF 크리로 휘청거리는 틈을 타 독립 열망이 고조되어 각국의 승인을 받고 주민투표를 거쳐 2002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독립에 반대하는 서티모르 출신의 친(親) 인도네시아민병대의 반란과 권력 분쟁으로 인한 2006년 쿠데타가 있었다. 인도네시아를 지지하던 군인들이 해고당하여 무직 상태가 되자 벌인 쿠데타로 결국 진압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주제 라무스 오르타(José Ramos-Horta)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같은 테러로 치안이 극도로 불안하다.

3. 경제

4. 군사

5. 언어

인도네시아어를 쓰는 서티모르와 달리,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를 공용어로 하고 있다. 한때 이 테툼어를 한글로 표기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구라로 판명.

작은 나라지만 수십 개의 언어가 사용된다! 크게는 오스트로네시아계 언어나 뉴기니계 언어가 쓰이며 세세하겐 국어인 테툼어나 맘바이어, 토코데데어 같은 오스트로네시아 계열 언어와 마카사이어, 파탈루쿠어 같은 뉴기니계 언어들, 그리고 카와이미마어처럼 뉴기니계인지 오스트로네시아계인지 불분명한 언어들이 쓰인다.

그러나 90%의 사람들이 테툼어를 할 줄 알고 밖에서 쓴다고 한다. 영어를 아는 인구는 31.4%이며, 포르투갈어를 아는 인구는 5%에 불과하나 테툼어와 함께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다. 인도네시아어를 아는 인구의 비중 또한 35%로 높은 편으로 영어와 함께 실무 언어(working languages)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포르투갈어 공용어 지정으로 인한 내부 갈등이 있다.

테툼어는 구어(입말)만 존재하며 정부 수립과 행정, 학술 등에서 필요한 전문용어가 발달하지 못해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양언어현상이 발생했다. 교통어이자 학술언어로 쓰일 수 있는 언어로는 인도네시아어도 있으나 식민지배의 반감 때문인지 실무언어로만 쓰이며 소수의 엘리트만 쓰는 포르투갈어가 공식어이다. 포르투갈어엔 식민지배의 반감 없는 거지? 이는 독재시절 포르투갈에 대항해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이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점령한 뒤에 오히려 민주화된 포르투갈에 도움을 요청해 유럽연합이 동티모르를 독립시키도록 인도네시아에 압력을 가해 완전 독립하는데 도움을 줬기에 큰 반감이 없고, 포르투갈 입장에서도 전쟁을 펼쳤다지만 어차피 현 포르투갈 헌정 자체가 당시 식민지를 업악했던 2공화국 정부를 뒤엎고 수립되었기도 하고 거기에다가 옛 식민지들을 자기편으로 두는게 어떻게든 이익이다보니 동티모르 및 구 아프리카 식민지 국적자는 포르투갈 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도록 해본격 구 식민지 특례입학전형 독립후에도 엘리트 계층은 옛 종주국인 포르투갈에 우호적인 상황이다.

6. 한국과의 관계

2002년 독립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과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그 해 수도 딜리에 한국대사관이 설치되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동티모르에 평화유지군을 파병[5][6]했다.
2003년 10월에 한국군 상록수부대는 4년간의 파병활동을 마치고 철수를 했다.장교 66명, 준사관 1명, 부사관 189명, 병사 163명이 참여하여 국위선양과 동티모르의 안전 및 평화유지에 힘을 썼다.

동티모르 하면 주로 상록수부대를 떠올리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어도 2006년에 한국경찰 5명이 파병되어서 PRT및 치안활동을 전개한바 있다.


당시 UN에서는 1개 경찰중대 규모를 요구했으나 한국경찰의 인력부재 문제로 5명을 파병하였고 PRT임무와 치안유지임무에 힘을 썼다. 따라서 동티모르는 한국 경찰 창설이래로 최초의 해외파견 사례가 되어있다.

7. 동티모르 출신 인물

초대 대통령 샤나나 구스망과 노벨상 수상자인 2대 대통령 주제 하무스 오르타가 그나마 알려져 있다.

8. 한국인 감독과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

한국인으로 여기에서 유명한 사람이라면 단연코 유소년 대표팀 감독으로 8년째 이끄는 김신환 감독이다. 동티모르에선 거스 히딩크라 할 수 있는 인물. 실업팀 선수로 활약하던 그는 사업에서 실패하고 빚으로 인한 구속(6달 수감), 이혼과 여러 가지로 파멸하여 삶을 포기하려다가 동티모르로 가서 사업으로 재기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유소년 축구팀을 맡게 되었다. 이 과정에 자비로 수천만 원을 써가며(동티모르 정부에겐 1푼도 보상은 커녕, 선수들 밥먹일 돈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했다고 한다.)유소년 팀을 맡으면서 여러가 지 고생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단 1년만에 일본 히로시마 리베리노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다. 비록 일본에서 열린 유소년 친선대회이지만, 인프라와 체력적으로 압도적인 일본 유소년 클럽들을 상대로 7전 전승 26득점 2실점이라는 가공할 점수차로 우승했다. 동티모르 독립 이후 처음으로 가진 국제대회 참가이자 우승이었다. (동티모르는 2006년부터서야 국대팀이 국제대회에 참가했으나 2011년까지 국제전적이 1무 11패이다. 참고로 김신환 감독의 유소년팀과 성인 클럽팀이 친선전을 가졌는데 평균연령 14살인 유소년팀이 평균연령 25살인 이 클럽을 무려 9:1로 뭉개버렸다.) 참고로 이 대회에 나갈 때 동티모르 축구협회는 일절 도와주지 않고 아시아나항공이 지원해서 겨우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대회 우승당시, 동티모르 반응은 월드컵에서 우승한 분위기였다.

곧이어 다음 해에 열린 이 대회에서 또 6승 1무로 우승하였다. 그러자 싱가포르에서 김신환 감독에게 유소년 대표팀 감독제의가 왔는데 월급은 4천 달러에(동티모르에선 무상으로 여태 일하고 있다! 2010년까지 동티모르 정부가 해준 일이라곤 그나마 땅을 제공한 게 전부이며 이마저도 한국 측의 지원으로 유소년 경기장 및 시설을 갖췄다.)온갖 혜택으로 유혹했지만 거부했다. 3번째 대회 일본 히로시마 리베리노컵 대회는 불참했는데 아시아나항공 측의 사정으로 항공기 지원을 받지 못했고 불참할 수 밖에 없었고 2006년 벌어진 내전 때문에 김신환 감독도 한국으로 대피해야 했기 때문이다.(유소년 대표팀 선수 부모가 이 내전에서 살해당하기도 했다.)내전이 진정되자 김신환 감독은 동티모르로 돌아가서 다시 감독을 맡았다.

곧이어 동티모르 유소년 대표팀은 2007년 중국 쿤밍에서 열린 유소년 대회 우승, 2008년 말레이시아 유소년 대회에서도 8전 전승으로 우승하였다. 2008년에는 포르투갈어권 친선 17살 이하 유소년 대회에서도 참가했으나 여기선 14살 정도 선수들로만 데려갔고 결국 브라질 17살 이하 대표팀(피파 U-17 우승후보)에게 7-1, 포르투갈에게 5:2,앙골라에게 3:1로 완패했다. 그래도 상대들이 체력과 여러 모로 압도적인 팀들(모두 유소년 대회 세계적 강호들)이며 브라질에서 열렸던 대회인 걸 생각하면 선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2009년 AFC 16살이하 아시아 대회 예선에 나가 중국과 0:0,싱가포르와 홍콩,을 3:0, 마카오를 13:0으로 크게 이기면서 본선에 진출하기도 하여 아시아 유소년 정상급 실력을 보여주는가 했지만, 본선에선 일본에게 0:1 아쉬운 패배를 당하고 호주와 베트남에게 패하며 8강 탈락했다.

2011년 같은 대회 예선에선 중국에게 0:2,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에게 0:3,북한에게 2:11로 대패하면서 조 꼴지로 일찌감치 탈락했다. 이전 대회를 생각하면 아쉽겠지만 자국에선 돈 한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자비 및 한국 측 지원으로 겨우 이끌어가는 사정을 생각하면 여태껏 잘 이끌고 있다.

2011년 8월에 열린 전남지사컵 유소년 국제대회에 참가하여 전남 드래곤즈 유소년 팀과 0:0으로 비겼고 중국 항저우 그린타운 유소년팀을 6:0으로 뭉개며 6강에 진출했다. 이것도 예상을 뒤엎었는데 그린타운 유소년 감독이 이 패배로 경질될 정도로 중국에선 충격이 컸다. 그리고 6강에서 전년 대회 우승을 거둔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A팀과 격돌하여 5:1로 대패했다.(참고로 대회 우승은 전남 유소년 팀이 바르셀로나 팀을 이기고 우승) 그래도 역시 이 정도도 선전한 것이기에 2012년 지금까지도 김신환 감독이 유소년 팀을 맡고 있다.

2010년 한국 영화 맨발의 꿈이 바로 이 동티모르 유소년 팀과 김신환 감독을 모델로 만들었던 영화이다.

김신환 감독은 아쉬운 게 유소년에서 잘해도 성인 클럽, 프로리그가 워낙 열악한 동티모르 사정으로 유소년에서 빛을 보인 선수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축구를 그만둔 채로 다른 일로 벌어먹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한다.

2013년 8월에 경주에서 열린 경주컵 U-12 유소년 대회에서도 김신환 감독이 이끄는 동티모르 유소년팀은 충무 유소년 팀이나 나고야 그람퍼스 유소년 팀을 비롯한 팀을 차례로 이겼고 결승에선 스포르팅 리스본 유소년 팀까지 제치고 우승했다.

그리고 2014년 1월, 맨발의 꿈의 주인공인 알베스와 마리아누스가 챌린저스 리그의 전주 시민 축구단에 입단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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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말레이폴리네시아어 계열에선 이런 표현이 자주 있다. 좋은 예로 일랑일랑(Ylang-Ylang, 꽃중의 꽃).
  • [2] 식민지배로 인해 달라졌다는 착각이 있는데 원래 다르다! 동티모르 안에서도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한다. 참고로 다른 인도네시아 섬도 여러 언어와 인종, 문화 모든 게 다른 이들이 살던 곳으로 따로 살다가 네덜란드가 식민지배하면서 합쳐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 [3] 뉴기니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 관련있다.
  • [4] 단, 역시 한 때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서티모르도 인구의 91%가 기독교를 믿는다. 다만 개신교 비중이 40% 정도로 동티모르보단 많이 높은 편.
  • [5]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 동티모르가 출전하자 이 파병부대 장병들이 동티므로 응원단을 구성하여 응원했다.
  • [6] 2003년 3월 6일 시간당 100mm의 폭우가 쏟아져 작전 중이던 상록수 부대 장병 5명이 급류에 휩슬려 사망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