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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last modified: 2015-04-15 22:41:25 Contributors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Central League) / 파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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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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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Yomiuri Gi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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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Yokohama DeNA Bay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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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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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타이거스
(Hanshin Tig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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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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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 마스코트 츠바쿠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Tokyo Yakult Swallows
東京ヤクルトスワローズ
구단 법인명 ㈜야쿠르트 구단
(株式会社ヤクルト球団)
창단 1950년
연고지 도쿄
구단 연고지 변천 도쿄 도 (1952~)
구단명 변천 코쿠테츠 스왈로즈 (1950~1965)
산케이 스왈로즈 (1965)
산케이 아톰즈 (1966~1968)
아톰즈 (1969)
야쿠르트 아톰즈 (1970~1973)
야쿠르트 스왈로즈 (1974~2005)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6~)
홈 구장 고라쿠엔 구장 (1950~1963)
메이지진구 야구장 (1964~)
2군 구장 야쿠르트 토다 구장 (1977~)
모기업 야쿠르트
감독 마나카 미쓰루 (真中満)
일본시리즈 우승
(5회)
1978, 1993, 1995, 1997, 2001
센트럴리그 우승
(6회)
1978, 1992, 1993, 1995, 1997, 2001
공식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홈구장 : 메이지진구 구장
3. 역사
3.1. 태동기(1950~1969, 코쿠테츠 시절)
3.2. 1970년대
3.3. 1980~1990년대
3.4. 2000년대
3.4.1. 2009년 시즌
3.5. 2010년대
3.5.1. 2010년 시즌
3.5.2. 2011년 시즌
3.5.3. 2012년 시즌
3.5.4. 2013년 시즌
3.5.5. 2014년 시즌
3.5.6. 2015년 시즌
4. 인기
5. 응원가 : 도쿄온도(東京音頭)
6. 한국인 선수
7. 이모저모
8. 선수 정보
8.1. 현역(2015년/등번호기준)
8.1.1. 감독
8.1.2. 투수
8.1.3. 포수
8.1.4. 내야수
8.1.5. 외야수
8.2. OB
8.2.1. 투수
8.2.2. 포수
8.2.3. 내야수
8.2.4. 외야수
8.2.5. 감독
8.3.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도쿄 도.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야쿠르트사에서 운영을 하고 있는 팀이다.

3. 역사

1950년에 코쿠테츠 스왈로스라는 팀명으로 창단하였으나 1965년의 산케이 스왈로스, 1966~1968년의 산케이 아톰스, 1969년의 아톰스, 1970~1973년의 야쿠르트 아톰스를 거쳐 1974년 야쿠르트 스왈로스로 바꿨다. 2006년부터 연고지 명을 구단의 공식명칭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도쿄 자이언츠는 틀린 표기고 도쿄 스왈로즈는 맞는 표기다

팀명의 스왈로스(Swallows)는 '제비'라는 뜻으로, 1950년대 일본국철이 메인스폰서였을 당시에 도카이도 본선 도쿄-오사카를 달리던 특급열차의 이름인 츠바메(=제비)에서 따 온 것이다. 참고로 저 열차 이름 "츠바메"는 아직도 큐슈 신칸센에서 쓰고 있다.

일본시리즈에서 5회, 센트럴리그에서 6회 우승하였다. 2012년까지 팀 통산전적은 3,803승 4,299패 288무, 승률 0.469이다.

3.1. 태동기(1950~1969, 코쿠테츠 시절)

1950년 일본국철이 노사단결 차원에서 고쿠테츠 스왈로즈로 창단하였으나, 프로 출신 선수가 한 명밖에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이후 전설적인 대투수인 카네다 마사이치가 입단하였으나 카네다 마사이치 원맨팀이라는 약팀 이미지가 강했다. 저 당시 A클래스에 들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 정부가 관리하는 영기업인 일본국철의 한계 때문에 선수영입이 원활하지 못했고, 결국 산케이신문·후지TV의 후지산케이 그룹에 1965년에 인수했지만 여전히 약체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3.2. 1970년대

하지만 긴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1970년 야쿠르트사로 인수된 이후 1978년 로오카 타츠로 감독의 관리야구로 일본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1] 에이스 마츠오카 히로무[2], 스왈로즈 사상 최고의 리드오프 카마츠 츠토무, 스왈로즈 역사에 길이 남을 핵타선 클린업 스기 카츠오-찰리 매뉴얼-기우라 토오루가 이 당시의 주요 선수였다.

3.3. 1980~1990년대

  • 순위
1980 1981 1982 1983 1984 1985 1986 1987 1988 1989
2 4 6 6 5 6 6 4 5 4
1990 1991 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5 3 1 1 4 1 4 1 4 4

1980년대에 저 황금세대가 대부분 은퇴하여 다시 약체가 되었으나, 이후 1990년대 노무라 카츠야 감독이 취임하고서 특유의 ID야구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코시엔 스타 출신 강속구 투수 라키 다이스케, 神算 후루타 아츠야, 좌우 에이스 시이 가즈히사와사키 겐지로, 비운의 에이스 이토 토모히토[3]와 마무리 투수 '미스터 제로' 타카츠 신고,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 케야마 타카히로와 강타자 1루수 히로사와 카츠미, 톰 오말리, 잭 하웰 등의 클린업이 가세하며 전력이 강해져 일본시리즈에서 3회나 우승(1993년, 1995년, 1997년)왠지 한국의 쌍둥이팀을 보는듯 하다.을 차지하며 스왈로즈 황금시대를 일궈냈다. 그리고 2001년에도 다시 통산 5번째로 우승하였다. 그러고 보니 첫 우승인 1978년을 제외하면 홀수해에만 우승한 게 특징인데 이걸 징크스로 봐야 하나(…).

3.4. 2000년대

  • 순위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4 1 2 3 2 4 3 6 5 3
2000년대 들어서는 90년대 최강 포스는 많이 퇴색하여 01년 우승이후로는 많이 약해졌다. 그후 10년간은 대략 3위가 정위치라는게 대세. 00년대에 이미 인기팀 3강(요미우리, 주니치, 한신)중 한팀이 B클래스가 되면 남는 A클래스 자리를 채운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특이한건 00-10년의 10년간 1위부터 6위까지를 다 경험한 유일한팀. 다만 상위권 6번(1위 1회, 2위 2회, 3위 3회)하위권 4번(4위 3회, 5위 1회, 6위 1회)으로 항상 중박은 치는게 보통이였다.

때문에 전력분석관들에게는 맨날 다크호스 취급. 어차피 5, 6위 베이스를 맨날 깔아주는 히로시마 와 요코하마, 그리고 맨날 2위만 하는 주니치 이 세팀은 매년 그게 그거라 예상하기 쉽고 만년 최강전력인 요미우리, 분위기 타는 한신을 제외하면 가장 순위고 활약이고 점치기 힘든 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LG 트윈스에서 페느님으로 불리던 로베르토 페타지니가 황금기의 끝무렵이던 03년까지 이 팀에서 활약하였다. 그외에는 임창용이나 이혜천, 세스 그레이싱어등을 한국에서 영입하는등 한국과 관련있는 용병이 많아 한국에서 인지도가 많이 올라간 시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니엘 리오스는...

3.4.1. 2009년 시즌

2009년에는 다테야마 쇼헤이 등 선발진들이 활약하고, 임창용이 7월까지 0.00의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면서 잘 나가다가 임창용이 2군으로 내려간 후 한때 5위까지 미끄러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임창용이 다시 1군으로 승격한 이후 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다시 재역전하여 2009년 10월 9일에 있었던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임창용이 1.2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내며 승리, 센트럴리그 3위를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였다. 근데, 최종성적은 71승72패1무. 승률이 5할도 안된다. 흠좀무. 그리고 2위 주니치와 맞붙어 2패로 광탈하여 시즌을 끝냈다.

3.5. 2010년대

  • 순위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4 2 3 6 6

2000년 후반부터 부상자에 시달렸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부상 병동화가 옮아온 건지 매년 제 상태로 시즌을 진행하지 못했다.

이 시기의 스타선수라면 역시 아오키 노리치카. 그러나 2011년 시즌후 MLB로 건너가서 이후로는 특출난 스타선수는 나오고 있지 않다. 드래프트도 맨날 스타급을 뽑으려고 달려는 들지만 놓치고 있는 상황.

2012년까지 5년연속 꼴찌를 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를 대신하여 2013년부터 2년연속 꼴찌를 기록하고 있다.

3.5.1. 2010년 시즌

작년 3위의 흐름을 잇지 못하고 고질병 스러운 부상자 속출에 따른 분위기 다운으로 6월까지 승률 3할 때의 최하위를 달렸다. 결국 카다 시게루감독이 휴양이라고 쓰고 해임시켜 버리고 당시 2군 감독이던 가와 준지감독을 1군 감독 대행으로 올렸다.

많은 팬들은 6월밖에 안됐는데 성급한 거 아니냐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원래 스카우트 출신이라 선수 보는 안목이 있었고 2군 감독 경험이 길었던 오가와 감독이 정말 빠르게 팀을 수습하여, 안좋은 흐름을 끊었다. 아오키 노리치카를 다시 1번으로 돌리고, 만년 후보였던 타케야마 카즈히로를 과감히 4번에 기용하는등, 선수층을 제법 많이 물갈이 하여 이게 적중하였고 부상자 대신 2군에 있던 젋은선수들을 대거 기용해서 좋은 흐름을 잡았다.

결국 6월까지 거의 반시즌을 말아먹어 놓은 탓에 A클래스 진입은 실패했지만, 당시 3위던 한신 타이거스와 시즌 마지막까지 0.5게임차의 치열한 경쟁을 벌일정도의 저력을 발휘했다. 순수하게 오가와 감독이 지휘하던 시기의 성적만 뽑으면 승률 6할을 넘어 다음 해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3.5.2. 2011년 시즌

상술한 홀수해 징크스일 수도 있는 것이 2011년 한때는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으니 전년 후반기의 좋은 흐름을 이어가면서 초반부터 굉장히 오랜 시간을 선두권에서 보냈다. 특히 7월에는 2위 주니치 드래곤즈와 10게임차가 나는등 거의 승부가 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8월부터 선발진이 부상으로 대거 이탈, 그동안 잘 치던 클린업이 방사능을 먹었는지 급 선풍기 화 하면서 망했어요. 결국 9월말에 2위 주니치와 원정 4연전에서 1승 3패로 참패를 당해 1위를 내준후, 그대로 DTD하여 2위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요미우리에게 2승 1패로 힘겹게 이겨 올라갔지만, 클라이맥스 파이널 시리즈에서는 주니치에게 어드밴티지 포함 2승 4패로 패퇴했다.

그리고 2위면서 득점보다 실점이 많은 진기록을 세웠다(…).

3.5.3. 2012년 시즌

이제는 말하기도 지겨운 팀 전체의 스페랑카화가 절정에 달한 해였다. 임창용을 포함하여 주력급 부상 이탈자가 11명에 달하는 안습한 상황. 이중 절정은 주전포수 이카와 료지인데, 4월에 한번 약 1개월 반을 골절상으로 이탈한 걸로 부족했는지 8월에 또 한 번 골절(…). 2ch에서는 골밀도 드립까지 나올 정도로 개그를 자아냈다.

말이 부상이탈 11명이지 부상자로만 팀 하나가 나올 지경(…). 이 때문에 4월을 선두로 마쳤으나 교류전에서 무섭게 DTD를 시전하여 교류전 최하위로 한때 5위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다. 왜 DTD했는데 5위냐고? 에이, 꼴찌가 어딘지 알면서

그래도 이 와중에 각종 신인들과 2012년 NPB 최고 대박 외국인으로 투신타병투고타저속에서 1년차에 3할을 찍은 스팅스 밀렛지, 백업포수였던 카무라 유헤이의 분전,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여태까지 백업에만 그쳤던 카이 유헤이, 매년 구단 전통스럽게 존재하던 신인 좌완 2년차 캐망(…) 징크스를 그럭저럭 잘 극복한 카가와 카츠키, 어깨 빠지도록 애니콜로 등판한 우완 시모토 타케히코와 좌완 다카 료등등, 왠지 타팀에서 보면 듣보잡들이 하나 둘씩 갑툭튀하여 활약하였다.

그 결과 15년만에 B클래스 탈출을 꿈꾸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9월 초에 결국 끌어내려서, 시즌 종료시 68승 65패로 3위에 안착한다. 그리고 히로시마는 DTD를 체험하며 비밀번호 15자리를 기어이 찍고 만다.

재밌는 건 강팀에게 강하고 약팀에게 약했다는 점. 2위 주니치는 항상 중요할때 야쿠르트에 발목을 잡혀서 망했고, 요미우리 자이언츠도 12구단중 가장 분전한 편. 반면에 만인의 호구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는 10패나 퍼주는 인심을 보여줬다. 그리고 올해 요코하마의 첫 3연전 스윕이자 마지막 스윕도 한번 선물해줬고. 오오 의적 야쿨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상대전적 및 나고야돔 전적에서 앞서고 주력 이탈로 해볼만 하다고 평가되던 주니치와 맞붙었으나, 부상 복귀한 주력급들의 컨디션과 경기감 난조로 3시합동안 3점밖에 못내는 빈타에 허덕이다, 결국 3차전 8회말에 주니치 4번 블랑코에게 역전 만루홈런 한방 쳐맞고 격침. 1승 2패로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패퇴하며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3.5.4. 2013년 시즌

선발진을 보자면 4월초부터 에이스 다테야마 쇼헤이가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토미 존 수술을 받게 되며 시즌 아웃되었지만, 신인 오가와 야스히로가 두 자릿수 승리(8월 23일 기준 12승으로 다승 선두)와 2점대 자책점으로 선발진을 지탱해 주고 있다. 이시카와 마사노리가 방어율 3.45,리그 10위(8월 23일 기준)로 오가와의 뒤를 이어 분전하고 있지만 3승 7패, 승률 3할의 안습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더 안습한 것은 실점이 54점인데 자책점이 41점으로 13점이나 차이난다. 이게 다 타자들 때문이다 3선발이라 할 수 있는 신인(2011년 입단이지만 풀타임 선발은 올해가 처음) 야기 료스케도 방어율이 3.62로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5승 8패로 승률 5할이 안된다. 작년 그럭저럭 성적을 냈던 아카가와는 3년차가 되더니 탈탈 털렸고, 아카가와와 비슷한 성적을 냈던 무라나카 쿄헤이는 4승 7패, 방어율 4.53으로 애매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중계-마무리를 보자면 작년 33세이브와 1.82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임창용의 공백을 메꿨던 토니 바넷은 불놀이를 하며 7점대 자책점에 1승 7패로 충격과 공포의 성적을 올리며 마무리 자리를 뺏겼다. 부상 후 돌아온 셋업맨 마츠오카 켄이치도 마찬가지로 7점대 자책점(...). 작년 분전했던 오시모토도 5.70의 방어율로 망했고, 히다카 료는 2경기 16.20의 막장스러운 성적만을 기록한 채 사라졌다. 신인 이시야마 다이치가 21홀드포인트, 작년 1.21의 방어율로 갑툭튀한 야마모토 테츠야가 12홀드-11세이브로 팀의노예중심계투 역할을 맡고 있다.

타자진을 보자면 발렌틴과 여덟 난쟁이 수준이다. 오릭스냐 8월 23일 기준 규정타석에 들어와 있는 선수는 발렌틴, 하타케야마 가즈히로 세 명밖에 없다. 발렌틴이 0.332(3위)/0.452(1위)/0.786(1위) 44홈런(1위,8월 22일 45,46호를 쳤지만 공식 사이트에 반영이 되지 않음) 96타점으로 리그를 씹어먹고, 30경기가 남은 상황에서 일본 신기록 갱신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밀렛지(0.251/0.329/0.436 16홈런 49타점)와 하타케야마(0.221/0.282/0.376 12홈런 51타점)는 잉여롭기 그지없다. 기준을 200타수로 낮춰도 선수들 중에서도 3할은 여전히 발렌틴 혼자며, 2할7푼대 선수도 세 명, 발렌틴을 제외하면 두 명밖에 없다. 그나마 밀렛지는 중간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

야쿠르트의 2013 시즌은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 있다. 팀 평균자책점/타율 모두 센트럴 리그 5위에 위치해 있는 것이 이를 나타낸다. 시즌 초반에는 4할 중반대의 성적으로 혼전의 중위권 싸움을 하고 있었으나 교류전에서 3할(7승 16패,0.304)의 승률을 거두며 12개 구단 중 11위[4]를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DTD를 시전 중. 그나마 이번 시즌 센트럴 리그 자체가 2강 4중4약이라서 3위 히로시마와의 경기차가 6경기밖에 안나는 것이 그나마 희망이라면 희망이라 할 수 있었으나...

시즌 최종 성적은 144전 57승 83패 4무(승률 0.407)로 1위 요미우리와 28.5게임, 3위 히로시마와 11.5게임차 꼴지를 차지하며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6년 연속 꼴찌를 막아줬다. 고마워요 야쿠르트
시즌 후 남은 것은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아시아 최초 60홈런 달성[5]과 대졸 신인 오가와 야스히로의 단독 다승왕과 승률왕, 그리고 신인왕 .[6] 시즌 중반기부터 털리긴 했어도 새롭게 발견한 선발 야기 료스케와 이시야마 다이치, 야마모토 테츠야의 발견정도가 희망이라 할 수 있다. 19년 동안 뛰며 내야의 철벽수비를 책임진 레전드 야모토 신야까지 은퇴하며 2013년의 야쿠르트는 정말 안습한 모습을 보였다.

3.5.5. 2014년 시즌

팀의 레전드인 타카츠 신고가 투수코치로 팀에 복귀했다.그러나 투수진은...

4월 22일 기준으로 팀 ERA가 5.95라는 초월적인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순위는 밑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가 깔아주고 있는 덕에 꼴찌는 아니지만 서로 겨우 1경기 차이며, 4위인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경기차가 꽤 나고있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팀의 승수의 반절을 책임지고 있던 소년가장 오가와 야스히로가 18일 선발등판 도중 3회에 오른손에 강습타구를 맞고 골절상을 입어 완치에만 최소 6주가 걸린다는 정밀진단이 나왔다.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
결국 걱정은 현실이되서 교류전에서 한신,카프와 함께 리그 만년 꼴찌라기엔 오히려 야쿠르트보다 잘하고 있는 베이스보다 낮은 성적을 남기며 시원하게 망했다.

원래 칠때 시원하게 치고, 못칠땐 더럽게 못치던 불량다이너마이트 타선이 8월 들어서면서 말그대로 폭발. 연속시합 2자릿수 안타, 8월 팀평균 타율이 4할대에 근접하는등 미친듯한 공격성을 보여주고있다.
투수진을 제물로 삼아 공격을 얻었다는 말이 나오는 수준의 시합들을 벌이고 있는데, 8월 5일 한신전에서는 패배했지만 한신의 메신저를 상대로 20-11(...)[7],그 후 8월 7일에는 13-4, 지금까지는 은행 취급 당하면서 털리던 요코하마를 8 월8일 12-3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도대체 이런팀이 왜 리그 꼴찌인거냐는 한탄이 팬들사이에서 터져나오게 만들었다.왜긴 왜야 투수진이 노답이니까 그런거지

하지만 여전히 투수진은 답이 없었고 9월 29일 히로시마 원정경기에서 패하며 2년 연속 꼴찌 확정. 1위 요미우리와는 21게임차, 5위 요코하마와는 6.5게임차로 2년 연속 꼴찌확정. 타선은 타출장 0.279(1)/0.339(1)/0.412(2)로 리그 최상위의 성적이고 규정 타석 채운 3할 타자가 5명에 20홈런 이상도 3명으로 리그 톱의 성적을 달렸다. 2루수 주전자리를 차지한 야마다 테츠토는 타출장 0.324(3)/0.403(4)/0.539(3)의 비율스탯과 29홈런 89타점 106득점 15도루을 기록하며 포텐을 터트렸다.[8] 수비만 믿고 본다던 외야수 유헤이[9]도 3할-20홈런을 치는 대활약으로 베스트나인에 선정. 다만 지난 시즌에 대활약을 했던 블라디미르 발렌틴이 112경기동안 31홈런 69타점이라는 해괴한 성적으로 기대에 못미친것이 흠.

문제는 투수진. 문자 그대로 붕괴수준이다. ERA 4.67로 혼자서 다른 세계서 놀고 있다.[10]선발진에선 에이스 오가와는 시즌 중 부상을 당하고나서 롤러코스터 피칭, 한때 에이스던 이시카와는 선발 로테이션을 유일하게 지키긴 했지만 커리어 로우, 작년에 발견했던 선수들도 폭망. 그래도 아키요시 료[11] 라는 신인이 불펜을 지탱하며 또 한줄기 희망을 발견했다. 다음년에 퍼지지 마라... 결국 오가와 감독이 사의를 표명하며 쓸쓸하게 시즌을 마무리 하게 됐다.

3.5.6. 2015년 시즌

오가와 감독의 뒤를 이어 수석 타격코치던 마나카 미쓰루를 감독으로 선임했다.

FA시장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의 에이스였던 루세 요시히사를 3년 6억엔에 영입했다. 과거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답이 없는 투수진에 한줄기 빛이 될 수 있겠지만, 13,14시즌을 말아먹은 전력에서 보면 또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아 보이기도. 애초에 원소속팀이던 지바에서도 1년계약을 제의했을 정도니. 또한 니혼햄에서 유격수 오비키 케이지 를 3년 3억엔에 영입했다. 나카무라 유헤이에게 주전 포수를 내준 아이카와 료지가 FA선언, 요미우리로 이적.

12경기를 치운 4월 10일 기준으로 7승 5패로 2위를 차지하고 있다.1위가 긴장감 없는 팀이란건 함정 놀랍게도, 팀방어율 1.50으로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즌 초반임을 감안한다면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는 선발진과 불펜진 모두 순조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타선도 작년의 폭발감만큼은 아니지만 타격 3위를 차지하며 평균은 해주는 중. 단, 주전 우익수인 밀렛지는 어깨 이상으로, 발렌틴은 수술로 인해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4. 인기

같은 연고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비해 팬수가 적은 것으로 유명하며 대부분의 경우 원정온 구단의 팬들이 더 많다고 한다. 인기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더불어 센트럴리그 구단중에선 인기가 없는 편에 속한다. 특히 한신 타이거스전에서는 아예 그냥 한신 홈구장처럼 되어 버린다. 비슷한 예로 요코하마 스타디움과 오릭스 버팔로즈의 홈구장 오사카 교세라돔도 한신전이 있는 날에는 한신 팬들의 숫자가 더 많아서 한신 홈구장이 되어 버린다. 오사카가 괜히 한신국이 아녀. 인기가 많았지만 홈구장이 작았던 브라질 축구클럽 코린티안스도 비슷한 처지였으나 2014년 새 구장이 생기면서 같은 처지 탈출하였다.

전국구까지는 아니어도 지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주니치 드래곤즈히로시마 도요 카프와는 달리 야쿠르트나 요코하마는 공룡 구단 교진이 먹다 남긴 것이나 다름 없는 도쿄와 그 인근의 팬베이스를 갖고 있으니 불리한 상황. 하지만 과거 도쿄돔에 있을때 닛폰햄 파이터즈 보다야 훨신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다만 진구구장에 한신 굿즈샵이 먼저 들어왔다는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정확히는 진구구장 내에는 어느 구단의 굿즈 샵도 없었다. 이는 진구구장 자체가 야쿠르트 구단 소유의 구장이 아닌 아마추어 야구 목적으로 만들어진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게 하기 위해 특정 구단의 굿즈샵 입점을 금지시켜놓았기 때문. 한신 굿즈삽 얘기가 와전된 것은 진구구장 길목에 한신 팬클럽 소유의 점포가 있는데 이게 진구구장에서 제일 가깝고, 처음에 코쿠테츠 시절에는 공식 굿즈샵을 운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이야기.

그래서 야쿠르트 구단에서 구단 공식 굿즈를 시합 시작 4시간전부터 종료후 1시간까지 임시 천막을 세워서 팔았으나, 2014년 5월 25일 야쿠르트 공식 굿즈샵이 오픈했다! 명칭은 야쿠르트 공식 굿즈샵 1호점인 스타디움거리점으로 가이엔마에역에서 진구구장으로 가는길 도중 오른쪽을 보면 계단을 조금 내려가 반지하식으로 굿즈샵이 있는 것을 볼수 있다. 그리고 7월 21일에는 2호점인 츠바쿠로점이 오픈했다. 진구구장 뒤쪽으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조금 올라가다보면 입구 간판이 보이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굿즈샵이 보인다. 츠바쿠로점의 특징은 이름에 걸맞게 굿즈샵 가운데에 떡하니 서있는 마스코트 츠바쿠로의 등신대 장식물. 홈경기가 있는 날 굿즈샵에선 이 등신대를 보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수 있다.

참고로 진구구장은 수도권 구장중에서는 표값이 가장 싼편으로, 요미우리, 한신이 원정왔을때만 지정석을 살짝 올려받긴 하지만 그 올려받은 게 다른 구장이랑 비슷한 수준의 저렴함을 자랑한다. 티켓 가격에 있어서는 굉장히 양심적인 운영을 하는편. 게다가 거인/한신 올려받는것도 귀여운 수준인게,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정작 한신전인 경우는 가장 싼 지정석이 아예 없어진다. 그리고 도쿄돔은 어린이 요금도 없어서 가족끼리 가도 짤없이 성인요금 다 내고 봐야 하기 때문에 난민마냥 제대로 보기도 힘은 입석을 논외로 치면 일본내에서 가장 비싸게 받는 수준이며, 한신의 경우도 요미우리 원정에 한해서 특별요금이 적용되는 등, 인기 카드 특별요금이 있다고 해서 진구구장이 비싸다는건 그야말로 사실왜곡수준.

참고로 그 올려받는다는 지정석도 올린 가격으로 1, 3루 불펜 바로 옆자리가 4천엔으로, 구장마다 특색이 있으니 1:1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보통 다른 구단이면 기본 5-6천엔 하는 자리를 저정도 가격에 제공한다.

득점을 하거나 7회 럭키세븐 응원을 할 때는 팬들이 비닐우산을 펴서 응원한다. 아래 항목에서 민요노래에 맞춰서 우산을 흔드는 식으로. 여기에는 수가 적은 홈팀 관중 수를 많아 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설과, 비싼 응원도구를 살 필요 없이 누구나 쉽게 응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어느 쪽이건 아래에서 설명할 오카다 마사야스 씨와 관계가 있다.

5. 응원가 : 도쿄온도(東京音頭)[12]

응원가는 도쿄온도(東京音頭). 특이하게 타령조 민요를 응원가로 쓰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 응원가로 제작된 것은 아니고 원래 니시조 야소(西條八十:1892~1970)가 1933년 작곡한 유행가였는데, 야쿠르트가 처음으로 우승한 1978년부터 스왈로즈의 응원가로 쓰였다. 당시 한 사설 응원단의 단장이었던 오카다 마사야스(岡田正泰)[13]라는 사람의 제안으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이전 롯데 오리온즈가 1960년대 도쿄를 홈구장으로 쓸때는 롯데의 응원가였다. 그리고 현재 J리그에서도 도쿄를 본거지로 쓰는 FC 도쿄의 응원가이기도 한다.

이게 좀 웃기는게 전주랑 간주 부분에 "くたばれ読売~ くたばれ読売~ (죽어라[14] 요미우리)"라는 추임새를 넣는다. 당연히 정식 응원가 가사도 아니고 공식 응원단에서는 저거 넣지 말아달라고 하는데 그래도 부를 사람들은 꿋꿋히 부른다.[15] 하지만 이와는 상관없이 요미우리 외의 다른 팀(특히 한신)과의 진구구장 경기에서 7회말에 이 노래가 나오게 되면 저 부분만은 양팀 팬들이 일제히 합창을 한다. 한신 팬들이 더 크게 부르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런데 진구 구장에서 요미우리와 야쿠르트가 격돌하면, 요미우리 팬들은 도쿄온도에 맞춰 "죽어라 한신"을 외친다고 한다(...)

참고로 유튜브에서 관련된 동영상을 보면 심지어 리그가 다른 세이부롯데의 팬들이 저 추임새를 따라 부르는 장면도 볼 수 있다. [16] 사실상 야쿠르트의 준 공식 구단가로 여겨지고 있다.


가사

くたばれ読売~ くたばれ読売
죽어라 요미우리 죽어라 요미우리

ハァ 踊り踊るなら チョイト
하아 춤을 추려면 살짝쿵

東京音頭 ヨイヨイ
도쿄 타령 좋다 좋아

花の都の 花の都の真中で サテ
꽃의 도시 꽃의 도시 한가운데서 그러면

ヤットナ ソレ ヨイヨイヨイ
얼씨구 절씨구 좋다 좋아 좋아

ヤットナ ソレ ヨイヨイヨイ
얼씨구 절씨구 좋다 좋아 좋아

くたばれ読売~ くたばれ読売
죽어라 요미우리 죽어라 요미우리

센트럴 리그 올스타전 때는 5 들이 대동단결하여 합창으로 くたばれ読売 죽어버려 요미우리 를 외친다! [17] 위 아 더 월드

천조국에 Yankees Suck이 있다면 열도에는 くたばれ読売가 있다.

6. 한국인 선수

우리나라 선수인 임창용, 이혜천이 00년대 후반에 활약하였다. 임창용은 08년부터 11년까지 마무리 투수로 활약 하였다. 이혜천은 좌완 중계로 2년간 활약하다 귀국. 임창용은 11년까지 부동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였으나 12년 시즌 팔꿈치 통증이 재발하여 몇경기 못던지고 시즌 아웃. 2013년까지 계약이였지만 결국 퇴단,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

임창용만 등판하면 2ch 야쿠르트 스레드는 '임'으로 도배가 된다. 다른 팀 팬들이 스레드에 들어와보고 놀라기도 한다. 대단한 활약 때문에 일본내 별명은 부처님인데 '임'의 일어인 イム를 붙이면 佛의 약자가 나오기 때문.

그 외에도 한국 출신 용병들을 뽑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성공사례도 많은편. 대표적으로 세스 그레이싱어가 있다. 하지만 다니엘 리오스는...

7. 이모저모


2013년부터 사용한 현재의 유니폼.(좌:원정, 우:홈)

  • 유니폼의 경우 홈은 2000년대 중반의 히로시마처럼 빨간색 줄무늬를 위주로 한 유니폼, 원정은 하늘색(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 혹은 감청색(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과 빨강색이 중심이 된 유니폼을 썼다가 2009시즌부터는 40주년 유니폼을 선보였는데 유니폼에 제비 이미지를 살리면서도 여러모로 완벽하게 좋다. 단 유니폼의 윗 단추 버튼에 빨강색이라서 일장기와 흡사하단 평이 있다. 그래서 임창용과 이혜천은 애국심이 있었는지 몰라도 일부러 빨강 단추를 안 꿰고 있는 것. 2013 시즌부터는 다시 2000년대 초반에 입었던 것과 유사한 줄무늬 유니폼으로 회귀하였다.


40주년 유니폼.(좌:홈, 우:원정)


  •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유니폼에 TOKYO를 넣자 지역 라이벌이라는 것을 부각하기 위해서 도쿄 야쿠르트도 '도쿄'를 팀명으로 쓰는건 자기네들이니까 TOKYO를 전면에 박은 유니폼을 출시했다. 다만 원정 유니폼은 아니고 보조 유니폼이다.




  • 마스코트는 펭귄 닮은제비인 츠바쿠로[18], 츠바미[19]가 있다. 사진의 오른쪽의 슬림한 제비인 엔타로[20]가 있었으나 2013년 시즌 종료 후 은퇴하여 '한 마리 평범한 제비'가 되었다고 한다.(...) 산케이 아톰즈일때는 데즈카 오사무아톰을 마스코트로 쓰기도 했다.

  • 여담으로 츠바쿠로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도아라와 쌍벽을 이루는 4차원 캐릭터로 인기가 높다.# 연봉은 야쿠르트 터프맨 무제한 제공, 1만엔 + 성과급. 2012년 시즌 종료 후엔 구단 마스코트 주제에 FA를 선언하기도 했다...가 철회했다. 2012년 연봉협상 장면(...) 2014년 시즌 후 스왈로즈에서 나루세 요시히사를 영입했는데,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보상선수, 아니 보상조(鳥)로 츠바쿠로를 요구했다. [21] 당연히 스왈로즈에서는 팀 전력의 핵심(!)이라는 이유로 거부.

  • 이 구단의 대표적인 팬으로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다. 산케이 아톰즈 시절부터 팀을 응원했고, 이 팀 소속 외국인 타자였던 데이브 힐튼이 2루타를 치는 순간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으며, 그의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진구구장 외야석에서 반년 동안 썼다고 하니 대단한 열성팬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등단한 해(1978년)에 야쿠르트는 구단 사상 첫 리그 우승과 일본시리즈 우승을 했다. "선수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후일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 당시 쓴 짧은 수필인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대해'에는 약팀을 응원하는 팬의 심정이 절절히 드러나있다.(...) 2013년에는 야쿠르트 스왈로즈 팬클럽 명예회원에 위촉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글을 한 편 남기기도 했다.'구장에 가서 홈 팀을 응원하자'


  • 또한 H2로 유명한 아다치 미츠루도 스왈로즈의 열성 팬.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아다치 미츠루의 그림을 종종 볼 수 있으며, 야쿠르트 팬클럽 모집 일러스트##나 팬 클럽 카드의 일러스트#를 그리기도 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도 야쿠르트의 선수들을 모티브로 한 듯한 캐릭터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H2에서 히로의 친구이자 포수로 나온 노다 아츠시는 야쿠르트의 전설적인 포수인 후루타 아츠야를 모티브로 했으며, 크로스게임에서는 아예 특정 선수가 작품의 주된 모티브로서 언급된다. 그 선수의 이름은 이가라시 료타. 일본인 최초로 당시 최고구속인 158Km를 찍은 강속구 투수이자 작중에서 언급되는 '시속 160km를 던질 수 있는 남자'. 재미있는 것은 이가라시 료타가 2008년 부상으로 빠지면서 마무리 투수의 공백을 임창용선수가 메우게 되었다는 것. 언젠가는 아다치 미츠루 만화에서 뱀직구를 던지는 사이드암 강속구 투수가 등장할지도? 이가라시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실패한 뒤 현재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활약중이다.

  • 반대로 정작 구단의 오너가 거인팬임을 공언해서 빈축을 산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단을 산케이에서 인수한 야쿠르트 사장 마쓰조노 히사미가 "거인에게는 져도 된다" 등의 발언을 남긴 것.

  • 최근 주목받는 야구만화인 그라제니의 주인공 본다 나츠노스케가 소속된 진구 스파이더스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를 모티브로 한 팀이다. 감독, 코칭스태프, 주요 선수들,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중에서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그것들과 유사한 점들이 발견되기도. 드래프트 1차지명 흑역사라든가

  • 일본 성우인 카와스미 아야코 또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팬이다. 스케쥴이 없는 날은 꼬박꼬박 챙겨보러 다닌다고 한다.

  • 영구결번은 없지만, 1번과 27번을 명예번호로 사용한다.

    카마츠 츠토무의 등번호인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예정이었으나, 그 상징성을 높이 사서 팀을 짊어지는 선수들에게만 물러주는 식으로 사용하도록 바꾸었다. 와카마츠 이후 야쿠르트의 1번 계보는 다음과 같다.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로 꼽히는 케야마 타카히로가 91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하다가 반납, 이후 와무라 아키노리에게 1번을 물려 받고 계속 사용하다가 메이저리그로 진출, 3년 간 결번 상태였다가 다시 2010년부터 아오키 노리치카가 이 1번을 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오키가 메이저리그로 간 이후 누가 1번을 차지할 것인가?

    27번의 역시 후루타 아츠야의 은퇴와 함께 명예번호로 처리됐다. 1번과 마찬가지로 팀을 짊어질 정도로 뛰어난 선수가 나올 때까지는 계속 결번이 되는 번호이다. 본래 2009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FA로 이적해 온 아이카와 료지에게 이 등번호를 물려 줄 예정이었으나 부담감 때문인지 본인이 거절하는 바람에 현재는 결번 상태. 더불어 27번은 89년 용병 투수가 사용했던 해를 제외하고는 야 아키히코 등 역대 야쿠르트 스왈로즈 주전 포수들이 쭉 착용했던 번호이기도 하다.

8. 선수 정보

8.1. 현역(2015년/등번호기준)

8.1.1. 감독

  • 80. 나카 미츠루

8.1.2. 투수

8.1.3. 포수

8.1.4. 내야수

  • 2. 비키 케이지
  • 3. 시우라 나오미치
  • 5. 와바타 신고
  • 7. 나카 히로야스
  • 8. 케우치 신이치
  • 10. 리오카 료스케
  • 23. 마다 테츠토
  • 24. 라키 타카히로
  • 33. 타케야마 카즈히로
  • 59. 마나미 타카히로

8.1.5. 외야수

8.2. OB

8.2.1. 투수

  • 카네다 마사이치 (1950 - 1964)
  • 츠오카 히로무 (1968 - 1985)
  • 스다 타케시 (1972 - 1987)
  • 바나 타카오 (1978 - 1991)
  • 라키 다이스케 (1983 - 1995)
    원조 고시엔 아이돌. 오 사다하루의 모교이기도 한 와세다실업고를 고시엔 우승으로 이끌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의 인기는 후에 나올 후배들인 PL학원의 구와타 마스미-기요하라 가즈히로, 마쓰이 히데키, 마쓰자카 다이스케, 손수건 왕자로 유명한 사이토 유키, 그 라이벌 이었던 다나카 마사히로 등의 고교시절 인기 따위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시절 아들을 가진 부모들의 상당수가 자기 자식의 이름을 다이스케라고 짓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였으며 마쓰자카 다이스케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당연히 고등학교 졸업할 때 프로의 주목을 받았으며 추첨 끝에 야쿠르트가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하여 입단시켰다. 그러나 인기가 가져온 중압감에 못 이겨서인지 프로에서는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면서 평범한 성적을 올리는 데 그쳤다. 통산 성적 39승 49패 2세이브, 방어율 4.80.
  • 토 아키미츠 (1986 -1998)
  • 와사키 겐지로 (1989 - 2000)
  • 카바야시 요이치 (1991 - 2000)
  • 타카츠 신고 (1991 - 2003, 2006 - 2007)
  • 시이 카즈히사 (1992 - 2001, 2006 - 2007)
  • 토 토모히토 (1993 - 2003)
  • 요시이 마사토 (1995 - 1997)
  • 바타 카즈야 (1996 - 1999)
  • 시이 히로토시 (1996 -2011)
  • 릭 구톰슨 (2005 - 2006)
  • 세스 그레이싱어 (2007)
  • 임창용 (2008 - 2012)
  • 이혜천 (2009 - 2010)

8.2.2. 포수

8.2.3. 내야수

8.2.4. 외야수

8.2.5.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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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만년 꼴지였던 스왈로즈의 우승은 그 밖에도 여러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 중 소설가 에비사와 야스히사의 대표 소설인 '야구감독'은 스왈로즈의 우승을 소설화 했다.
  • [2] 여담으로 구단가 'とびだせヤクルトスワローズ' 를 직접 불렀다. 현재도 간간히 구장에서 불려진다.
  • [3] 변화가 크고 빠른 고속 슬라이더로 야쿠르트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나, 혹사로 인하여 33살의 나이로 2003년도에 은퇴를 하였다. H2에서 쿠니미 히로가 후반부에 고속 슬라이더를 마스터 하는 장면은 이 선수의 오마쥬로 추정된다.
  • [4] 꼴지는 명불허전요코하마. 그런데 시즌 성적에선 그 요코하마에게 밀리고 있다.
  • [5] 시즌 최종성적 130경기 439타수 145안타 60홈런(1위) 131타점(2위) 94득점(1위) 0.330(2위)/0.455(1위)/0.779(1위). 잉여로운 야쿠르트 타선만 아니었다면 블랑코를 제치고 타점 1위도 먹을 수 있었으나...답이 없는 야쿠르트의 타선때문에...규정타석을 채운 선수가 발렌틴밖에 없다.
  • [6] 시즌 최종전에서 공동 다승왕을 노리던 히로시마 에이스 마에다 겐타를 상대로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패전을 먹였다.
  • [7] 그 날 메신저는 2안타 4타점을 적립했다.
  • [8] 안타, 득점, 2루타, 총루타 1위. 안타의 경우 193개를 쳤는데 일본인 우타자 안타 시즌기록을 세웠다.
  • [9]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케이스다.
  • [10] 1위 요미우리부터 5위 한신까지 모두 3점대. 5위 한신도 3.88로 야쿠르트랑 1점 가까이 차이난다.
  • [11] 무슨 이유에선지 다음 일본야구 기록실이나 국내 야구기사등에서는 아키요시 아키라고 쓰고있다. 야쿠르트 공홈과 일본 위키백과에서는 아키요시 료라고 표시.
  • [12] 온도(音頭)는 일본 전통민요로서 2/2 박자를 가진다. 한국의 "타령"정도로 생각하면 될듯 하다.
  • [13] 전설적인 야쿠르트 팬으로서, 고쿠테츠가 세리그의 밑바닥을 책임지던 시절부터 숨을 거두는 2002년까지 근 50년 간(...) 열광적으로 스왈로즈를 응원했다. 도쿄온도나 비닐우산 등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특징적인 응원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http://cafe.daum.net/kia46/Blgd/569?docid=BIPLBlgd56920020810154707, http://tokyoswallows.com/2010/07/30/remembering-masayasu-okada/ 참고.
  • [14] 좋게 번역해서 '죽어라'이지 실제 어감을 살려서 번역하면 '뒈X라', 'X먹어라'에 가깝다. 영어의 F*** YOU를 일본의 영어사전에서는 뜻풀이를 이 말로 할 정도이다. 특히 위 도쿄온도 작곡, 작사자의 후손(저작권자라는 말도 있다)이 저 추임새를 넣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고. '공식' 응원단에서 넣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 [15] 응원단에서는 저 부분에 東京ヤクルト, 즉 '도쿄 야쿠르트'를 넣어 부를 것을 권장한다
  • [16] 일본어 위키백과의 설명을 보면 같은 노래를 응원곡으로 쓰는 J리그 축구팀 FC도쿄의 팬들도 저 추임새를 따라한다고 한다. 물론 이 때의 요미우리의 의미는 요미우리 산하 축구팀인 도쿄 베르디를 의미한다고. 하지만 NPB에서 요미우리의 위치에 비해 J리그에서의 도쿄 베르디의 위치가 약하므로 큰 반향은 없단다.
  • [17] 영상 1:20부터 짤막하게 나온다.
  • [18]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96.
  • [19] 등번호는 이름에서 따온 283.
  • [20] 등번호는 야쿠르트에서 따온 8960.
  • [21] 심지어 보상선수에 츠바쿠로가 없다는 것을 확인까지 했다고(...)
  • [22] 일본계 브라질인이었으나 2004년 일본 국적을 획득하였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브라질 국가대표로 출전하였다.
  • [23] 선수등록명은 "유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