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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타 포스

last modified: 2015-07-30 02:00:52 Contributors

Contents

1. 미국의 특수부대
1.1. 개요
1.2. 역사
1.2.1. 델타 포스 창세기; 창설 과정
1.2.1.1. 이단아 베크위스
1.2.1.2. 프로젝트 델타; Detachment B-52 (B-52 분견대)
1.2.1.3. 델타 포스, 탄생.
1.2.2. 작전사례들
1.2.2.1. 1980년대의 특수작전
1.2.2.1.1. 쓰라린 첫 경험 : Operation Eagle Claw
1.2.2.1.2. Operation Urgent Fury : 그레나다 침공작전
1.2.2.1.3. 아킬레 라우로 호 구출작전
1.2.2.1.4. Operation Just Cause : 파나마 침공작전
1.2.2.1.5. Operation Nifty Package : 노리에가 체포작전
1.2.2.1.6. Operation Acid Gambit : 커트 뮤즈 구출작전
1.2.2.2. 1990년대의 특수작전
1.2.2.2.1. 걸프전과 스커드 사냥
1.2.2.2.2. Operation Gothic Serpent : 소말리아에서의 아이디드 체포작전.
1.2.2.2.3. 빈 라덴을 잡아라 : 90년대 말 ~ 2000년의 아프간 작전.
1.2.2.3. 2000년대 이후의 특수작전
1.3. 델타 포스 출신 인물
1.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출신 인물
2. 액션 영화 시리즈
3. 위와 무관한 영화 Operation Delta Force
4. FPS 게임 시리즈
5.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용어

1. 미국의 특수부대


가장 대중적인 '델타 포스'의 모습. 1993년 소말리아에서의 델타 포스 C스쿼드론 대원들. 맨 좌측이 바로 베크위스의 사위인 폴 하우이다.

Delta Force, 1st SFOD-D(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CAG(Combat Application Group, 과거 명칭),
ACE(Army Compartmented Elements, 현재 명칭).[1]

1.1. 개요

미군 SOCOM티어 1에 속하는 특수부대. 미국의 일반적인 특수부대가 각 군 소속인데 반해 델타 포스와 DEVGRUJSOC이라는 독자적 지휘체계 내에 소속되어 있으며 일반 미 육군 특전단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민감한 임무에 투입된다. 이런 임무 중에는 적국에 대한 군사공작이나, 적지에 민간인으로 위장해 들어가 군 첩보 수행, 대테러 작전및 테러리스트에 대한 방해 및 예방공작, 그 외에도 평범한 인간이 알려고 들었다가는 랭글리 호텔에 초대되어 코로 코카콜라를 마시는 진기한 경험을 할법한 임무들이 포함된다.'코'카콜라

수행하는 임무가 워낙 중요한 탓에 심지어는 부대명칭과 존재 자체도 극비사항이었지만, 1980년대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구출 작전당시 해군 헬리콥터들의 삽질로 인해 작전이 취소되면서 그 존재가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들의 (일단 알려져있는) 정식명칭은 '제1특전단 델타 작전 분견대(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 - Delta)' 이다. 이 때문에 흔히 '델타 포스'라고 불리는 것이다. 미 육군 특전단(간단하게 말해 그린베레)에는 크게 세가지의 분견대가 있다. A분견대는 실제로 작전을 나가는 작전부대이고(특전팀),[2] B분견대는 A분견대를 지원하는 지원부대이며(특전 지역대 본부), C분견대는 A와 B분견대를 지원한다.(특전 대대 본부) 그린베레의 편제에는 이 세 분견대만 있는데, 아주 가끔 'D분견대' 를 모집한다. (바로 이 D분견대가 델타 포스 대원들을 뽑는 창구역할을 한다.) 하지만 '델타 포스'는 사실 정식명칭이 아니며 그냥 별칭일뿐이다. 정식명칭은 CAG(Combat Application Group, 전투적용단)였지만 2010년 이후에는 ACE(Army Compartmented Elements, 육군구획요소)로 바뀌었다.[3]

인원 선발을 특수부대나 기타 정예부대의 지원자들에서 다시 걸러내는 작업을 거쳐서 하는지라 [4]세계적으로 한가닥하는 미군 특수부대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정예부대이다. 미군 내에서 이들과 맞먹는 특수부대는 해군의 DEVGRU를 제외하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다시 말해서 그냥 세계 최강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델타 포스는 육군임에도 미군 특수작전 사령부(USSOCOM) 산하의 육군 특수작전 사령부(USASOC) 소속(그린베레)이 아니라 아니라 합동 특수작전 사령부(JSOC) 소속으로 티어 1으로 구분되는 특수임무부대(SMU)이다. 이것은 날고 기는 미군 특수부대 중에서도 델타 포스가 최고의 부대 중 하나[5]라는 것을 나타내주는데, 왜냐하면 USSOCOM 산하에는 각 군의 특수전 사령부가 따로 있어서 예를 들자면 해군의 SEAL은 해군 특수전 사령부(NSWC)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령부에 소속된 부대 중 하나라고는 해도 델타 포스 자체가 거의 독립된 사령부 수준의 예산과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사복 작전을 위한 복장중 한 가지.
(가운데 부대 마크가 보인다. 7번 항목에는 정식 부대마크가 아니라고 서술 되어있는데 아시는 분은 내용 추가바람)

대원들의 신분을 철저하게 감추기위해 군의 보수적인 높으신 분들이 보면 "저 양아치같은 놈들은 뭐야?" 라고 할만한 짓은 다 하고 다닌다. 그리고 그런 행동들이 거의 허용된다. 머리를 기르거나 염색하는 것은 기본이며[6][7], 실제 작전을 나갈때 말고는 그냥 근무시간에도 대놓고 사복을 입고 다닌다.[8] 어쩔 수 없이 군복을 입을 때도 신분을 감추기위해 군복에 붙이는 패치를 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행동도 군인처럼 하고 다니지 않는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면 후트 (중사)가 레인저 소속 마이크 스틸 대위에게 기지 안에서 배식 도중 '총에 안전장치를 안 걸어놨다'고 혼나는데, 후트는 "제 손가락이 안전장치입니다"라고 대꾸하고 그냥 가버린다(...).[9] 하지만 평소에 이런 짓을 하고 다녀도[10] 실전에 투입되면 명색이 '미 육군 최고의 특수부대원'들인만큼 보여주는 실력은 대단하다고 한다.[11]

1.2. 역사


역사 항목 작성과정에서 김민수씨의 저서 '델타 포스'(전 2권)와 그림자 전사 특수부대(양욱 저)에서 많은 자료를 인용했음을 일러둔다.

1.2.1. 델타 포스 창세기; 창설 과정


'그린베레'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미 육군 특전단은 여러가지 특수작전을 수행 가능한 정예부대이지만, 이들의 주 임무이자 장기는 게릴라전이다. 적 후방에 침투해서, 현지의 불평불만 세력을 규합해 게릴라를 조직해 후방에서 적의 뒷통수를 강타하며, 효율적인 민사심리전을 통해 현지인들의 지지를 얻어내어 궁극적으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그린베레의 가장 큰 임무이다.[12] 베트남의 정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산악지대에 이르기까지 그린베레는 이런 게릴라전을 수행해왔으며, 그 성과가 매우 뛰어나다는 사실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그린베레가 지나치게 게릴라전 수행에만 집중한 나머지 다른 임무들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면이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었고, 후일 델타 포스의 아버지라 불리게 되는 전설적인 특수전 요원인 찰스 베크위스 역시 그 중 하나였다.

1.2.1.1. 이단아 베크위스


육군의 특수전 요원이었던 베크위스는 1962년부터 1963년까지 1년간, 영국 SAS에 교환장교로 파견되었다. 파견 보낸 그린베레나, 파견 가는 베크위스나 그들의 생각대로면 SAS에 미 육군 특전단의 앞선 기술들을 교육해줘야 정상이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SAS는 서방권 특수부대의 큰형님과도 같은 존재라 오히려 영국군의 앞선 특수전 분야를 배워가기 바쁜 처지가 되어버렸다.[13]

파견근무를 마치고 본국의 제7특전단에 배치된 베크위스는 꾸준히 상부에 영국의 SAS와도 같은 '정예 직접타격(Direct Action) 부대'의 창설을 상부에 건의하지만, [14] 상부에서는 베크위스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존의 특전단과 그 임무가 중첩되는 부대를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가 SAS보다 못난게 어디가 있어서 영국식 특수부대를 만들어야 하는가.' 같은 차가운 반응만이 돌아왔을 뿐이었다.

1.2.1.2. 프로젝트 델타; Detachment B-52 (B-52 분견대)



베트남에서의 베크위스의 모습 국제 전쟁사를 우화화한 Cat Shit One에서도 베크위스 소령으로 언급된다.


실제 베트남에서의 모습. M16을 끼고 있는 얼굴 보여주고 있는 아저씨가 바로 베크위스 소령이다.

1965년, 베트남에 파견된 제5특전단에 도착한 베크위스는 '프로젝트 델타'라는 이름의 특수 정찰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게 된다. 이들은 제5특전단의 직속 부대로서, 사/여단급 작전의 수행에 최소 1주일 이상 앞서서 작전 지역내의 선행 침투 및 정찰, 포격과 폭격 후 BDA, 남베트남군 특수부대와의 연합작전 등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후일 베트남에서 활약하게 되는 수많은 LRRP[15]의 기틀을 마련해준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평가받게 되며, 이런 대성공에 베크위스의 활약이 큰 영향을 주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프로젝트 델타의 주둔지에 처음 도착한 베크위스는 대원들의 군기불량을 문제로 첫 만남에서부터 30명의 전 대원중 7명을 제외한 전원을 프로젝트에서 퇴출시킨다.[16] 이후 베크위스는 과거 SAS 파견경험을 살린 선발과정을 통해 40명의 델타 부대원들을 확보하게 된다. 베크위스는 자신이 선발한 대원들과 함께 여러 임무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과거 SAS에서의 경험을 실험해보며 자신의 '미국판 SAS' 창설 계획의 설계도를 그려나가게 된다.[17]

프로젝트 델타에서 '돌격하는 찰리'(Charging Charlie)라는 별명을 얻게 된 베크위스는 안타깝게도 1966년에 임무수행 도중 부상을 입고[18] 후송되어 본토의 포트 베닝으로 후송되지만, 여기서 다시 한번의 기회를 잡게 된다. 1967년 당시 포트 베닝의 레인저 부대[19]의 지휘관이던 에드워즈 대령이 베크위스의 SAS 개념이 적용된 레인저 대대를 만들어 베트남에 파견하려 한 것이었다. 에드워즈 대령은 그와 같은 구상을 베트남에 가서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에게 직접 건의하지만,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이 대신에 LRRP(장거리 정찰대)를 밀어주면서 계획은 다시 수포로 돌아간다.

1.2.1.3. 델타 포스, 탄생.



70년대 델타 포스의 훈련사진. 티타늄 방탄모, 발터 MPK 기관단총 등등...

베크위스가 우리가 아는 델타 포스를 창설할 수 있었던 것은 1975년, 포트 브랙의 JFK 센터[20]에서 근무 도중, JFK 센터의 지휘관인 로버트 킹스턴 소장의 도움을 받게 되면서였다. 베크위스와 킹스턴 장군은 사이가 좋은 편이었던데다, 킹스턴 역시 영국군 공수부대에서의 교환근무 경험이 있던지라 베크위스의 '미국판 SAS' 창설계획에 대한 지지자였는데, 킹스턴은 자신과 친한 육군의 작전/계획 부참모총장(The Army's Deputy Chief Of Staff For Operations And Plans)인 에드워드 마이어 장군을 통해 국방성에 베크위스의 SAS 프로젝트를 소개해주면서 베크위스의 계획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이후 1976년 8월, 향후 델타 포스의 창설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사건이 벌어진다. 킹스턴 장군과 베크위스 대령이 보병학교에서 빌 뒤푸이 장군[21]에게 SAS의 우월함과 미국판 SAS의 필요성에 대해 소개하게 되었는데, 뒤푸이 장군 역시 육군 특전단이 지나치게 게릴라전에 쏠려있고, SAS와 같은 직접적인 특수전을 외면한다고 생각하던지라 베크위스의 계획에 찬성하여 후일 델타 포스라 불리게 될 '미국판 SAS'의 창설에 큰 도움을 주며 그 계획을 펜타곤까지 이끌어준다.

특히 뒤푸이 장군은 이 과정에서 베크위스에게 중요한 조언을 하나 해주는데, 이는 새로이 창설될 특수부대가 미군의 그 어느 특수부대도 수행하지 않는 새로운 능력, 즉 대테러작전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1977년 육군 참모총장을 앞에 모셔둔 프레젠테이션에서 SAS스러운 새로운 특수부대 창설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낸 베크위스에게 드디어 새로운 특수부대의 조직과 장비 편제, 그리고 필요 예산안을 준비하라는 요구가 들어오게 되자만, 하필 이때 베크위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JFK 특수전 센터장 킹스턴 장군이 제1특전단의 K분견대[22]로 전출을 나가고, 이후 특수전에 대해선 캄캄절벽인데다 베크위스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이해를 잘 못하고 있는 맥멀 장군이 새로운 센터장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맥멀 장군은 새로운 특수부대의 등장을 달갑잖게 여기는 기존의 특수부대 지휘관들의 말빨에 넘어가 베크위스와 기존 특수부대원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으며, 새로운 특수부대가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레인저나 그린베레의 견제를 받는데다, 육군 참모총장의 공식 부대창설 재가는 떨어지지 않는 불안불안한 상황이 계속되어 베크위스의 염통을 쫄깃쫄깃하게 만들었다. 특히 베크위스의 속을 박박 긁었던 것이 바로 블루 라이트라고 불리는 제5특전단 예하의 임시 대테러부대였는데,[23] 원래 창설 목적은 델타 포스가 대테러전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의 땜빵이었지만 맥멀 장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블루 라이트를 델타 포스를 대신하는 정식 대테러부대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지부진한 상황은 엉뚱하게도 독일에서의 도움(?)으로 해결이 되는데...

1977년 10월, GSG-9이 독일 적군파에 의해 납치되어 소말리아에 착륙한 루프트한자 여객기에 대한 인질구출작전을 수행해 성공시켰다는 소식이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다. 이 소식을 통해 군 상층부에서 대테러전 능력에 대한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면서 베크위스의 델타 포스 창설계획은 다시금 전폭적인 지지를 받게 되며, 이로 인해 1977년 11월 19일, 델타 포스의 본격적인 '가동'에 대해 군 수뇌부의 공식적인 허가가 떨어지게 된다. 베크위스의 15년간의 노력 끝에, '미국판 SAS'이자, 후일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로 명성을 드높이게 될 델타 포스가 드디어 탄생한 것이다.

1.2.2. 작전사례들


1.2.2.1. 1980년대의 특수작전




80년대 초반의 델타 포스 대원들, 흔치 않게 전원이 시원하게 얼굴을 공개한 모습이다. 묘하게 척 노리스 주연의 영화와 비슷한 분위기지만, 은 더 좋다!

아래 항목들에 소개된 몇 가지 작전 이외에도 수많은 작전들이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델타 포스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으며 또한 동맹국 대테러부대의 기량 향상을 위한 교관으로서의 파견 임무도 자주 다녔다. 한국 육군의 제707특수임무대대가 창설 초창기부터 델타 포스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다.

1.2.2.1.1. 쓰라린 첫 경험 : Operation Eagle Claw



구출작전을 준비하는 델타 포스 대원들.

1979년, 이란에서의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이 성공하면서 이란 미국 대사관이 이란 혁명수비대에 점거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대테러전 능력을 언론 플레이 강조하며 입지를 쌓아왔던 델타 포스에게 찾아온 첫번째 실전의 기회였다. 문제는 당시 미군과 정보기관이 좀 많이 개판이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CIA의 경우는 도덕외교를 추구하는 카터 행정부의 삽질로 수많은 인력들이 감축된 상황이라 이란 내에 있는 요원이 단 한명도 없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그 탓에 델타 포스의 초기 정보수집은 무려 TV 뉴스화면을 통해 이뤄져야 했다.

그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작전계획 수립단계에서 숟가락을 얹어보려는 각군의 이해관계가 뒤엉켜 점점 복잡해졌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나온 작전계획은 대충 이러하다.

1단계 : 4월 20일, 07시 30분 델타 포스가 현지에서 도움을 줄 이란인들과 합류한 뒤 수송기 편으로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다. 여기서 대사관 구출과 동시에 이란 외무성으로 분산 격리된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과 합류해 이집트로 이동한다.

4월 21일, 이집트에서 최종 리허설과 작전 정보를 갱신한뒤, 24일 오만 근처의 마시라 섬으로 이동, 18시에 작전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3대의 MC-130과 헬기 연료를 탑재한 3대의 EC-130기로 이란을 향해 출발한다.

2단계 : MC-130 1번기는 다른 수송기들보다 먼저 이란 영공에 도착해 수송기의 착륙지점인 LZ '데저트 원' 상공에 도달해 미리 정찰팀이 준비해둔 비컨을 원격 조종으로 작동시켜 위치를 확보하고, FLIR로 주위를 살펴본 뒤 데저트 원에 착륙, 이후 다른 수송기 5대도 착륙해서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지원을 담당한 레인저 대원들을 내려 LZ를 확보. 이어 항공모함에서 작전수행에 필요한 8대의 RH-53D 헬리콥터들까지 도착하면 연료를 실어온 EC-130기들이 RH-53S에 대한 재급유를 시작하는데, 이 때, 헬리콥터가 6대 이하라면 작전은 취소함. 필요한만큼의 헬리콥터가 확보된다면 최소한의 작전요원들을 탑승시킨 뒤 일출 한시간 전까지 새로운 은거지점 '데저트 투'로 이동하고, 수송기들은 레인저들을 탑승시킨 뒤 다시 마시라 섬으로 복귀한다.

데저트 투에 도착한 헬리콥터들은 요원들을 내려주고 다른 은거지점 '피그바'에 가서 헬기를 위장시켜 숨긴 뒤 대기. 델타 포스는 이미 현지에 침투해 정보수집 및 은거지 구축을 하고 있던 델타 포스 선발대와 접선한뒤 테헤란 근처의 와디에 도착해 낮 동안 대기.

3단계 : 선발대원 2명이 동이 트기 전에 테헤란으로 돌아갔다가 밤이 되면 1대의 픽업 트럭과 1대의 버스를 타고 델타 대기지점으로 합류. 두 차량중 하나는 6명의 운전수와 6명의 통역을 태우고 작전 기간중 델타 포스를 테헤란으로 수송할 트럭들을 숨겨둔 창고로 이동하며 다른 한 대는 베크위스와 다른 12명의 델타 포스 대원들을 태우고 테헤란 시내에 잠입해 대사관 주변을 정찰.

베크위스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뒤 20시 30분, 델타 포스는 6대의 트럭에 분승해서 테헤란 시내로 강습. 외무성에 억류된 다른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은 버스에 탑승해서 델타 포스와 따로 이동.

4단계 : 미 대사관에 도착한 델타 포스는 3개 팀으로 나뉘어 각 팀의 구역에서 위치를 잡고 작전을 수행. 화력이 취약한 구출부대를 위해 상공에는 AC130 건쉽의 지원이 준비됨. 대사관이 장악되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헬리콥터들이 인질과 구출대원들을 퇴출시킴.

5단계 : 구출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프와 오프로드 오토바이를 장비한 75명의 레인저 중대를 태운 MC-130 2대가 건쉽의 호위를 받아 이란군의 버려진 활주로를 강습. 활주로가 확보되면 사우디에서 대기중이던 C-141 수송기가 도착해 구출부대의 도착을 기다림.

구출부대와 인질들이 레인저가 확보한 비행장에 도착하면 C-141기에 탑승해 F-14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탈출. 레인저는 구출부대가 타고 온 헬리콥터들을 파괴시킨 뒤 타고 왔던 MC-130편으로 귀환.



작전에 동원된 해군의 RH-53D 소해 헬리콥터.

... 보다시피 엄청나게 복잡한 작전이다. 거기다 특별한 당위성없이 단순히 각 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전 규모가 커진 부분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앞으로 작전을 대차게 말아먹을 헬리콥터에 관련된 사항들이다. 작전에 사용되기로 한 해군의 RH-53D 헬리콥터는 본격적인 특수전용이 아닌 단순한 기뢰 제거용 소해 헬리콥터들이었다. 물론 델타 포스측에서는 이 부분을 걱정했고, 구출작전을 총괄하는 JTF의 공군 특수전력 핵임자였던 제임스 카일 대령은 해군의 소해 헬리콥터 대신 공군 CSAR 비행대의 HH-53 헬리콥터와 파일럿들을 동원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글 클로 작전중 데저트 원에 내린 레인저 대원. 구출작전이라 그런지 레인저답지않은 흑복차림에 눈에는 야간투시 고글까지 끼고 있다.

그리고 운명의 작전 개시일. 데저트 원에 무사히 전개한 레인저와 인질구출부대인 델타 포스는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민간 차량들을 정지시키고 인질구출부대인데도 차량 안의 민간인들을 억류시키며 LZ에서 대기하게 된다. 중간에 지나가던 유조트럭 1대가 불타오르고 트럭 운전사는 도망쳐버리는 난장판이 벌어졌지만 그래도 작전은 그럭저럭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윽고 다른 수송기 5대도 꾸역꾸역 착륙해서 헬리콥터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헬리콥터가 안 온다.

한참을 기다리자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1대씩 서로 다른 방향에서 털레털레 날아온 헬리콥터는 총 6대. 알고보니 날아오는 도중 모래폭풍을 만났고, 작전을 위해 훈련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야간비행, 그것도 특수전 비행에는 익숙치 못했던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기체 고장문제까지 겹쳐서 제대로 LZ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6대가 모였으니 작전을 어떻게든 진행하려는 찰나, 지상에서 1대의 헬리콥터가 추가로 고장나버려 헬리콥터가 부족하게 되었고, 결국 작전은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취소되어 다시 복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헬리콥터 1대가 급유를 해주던 C-130기를 들이받아 수송기 승무원 5명과 헬리콥터 승무원 3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진다.


복귀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야 헬리콥터들의 상태가 그렇게 개판이었던 이유가 밝혀졌다. 헬리콥터들을 정비한 정비사들은 훈련때부터 함께 해온 이들이 아니라서 이 헬리콥터들이 무슨 일을 하러 가는지도 모르고 통상적인 수준의 정비만 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불안불안한 헬리콥터들이었는데 거기에 결정타를 날린 셈이었다.

결국 델타 포스는 현지의 정보망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에서도 자체 정찰팀을 침투시켜 구출작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차량과 은거지까지 구축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보여줬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부대'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했으나, 이런 뼈아픈 실패는 곧 미군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겨주었다.

이글 클로의 대실패를 통해서 얻어진 교훈들을 통해 카터 행정부 들어서 거의 씨가 말라가던 특수전 부대의 재정비, 전문적인 특수전 비행대[24]의 창설, 원활한 합동 특수작전의 수행을 위한 통합 특수전 사령부SOCOM와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창설 등이 이뤄지게 되었으며, 델타 포스는 이후 계속되는 작전들을 통해 억울하게 뒤집어 쓴 오명을 만회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델타 포스뿐만 아니라 미군 전체가 단단히 벼르고 있던 2차 구출작전은 인질 석방으로 인해 시도조차 못하고 취소되지만...[25]

1.2.2.1.2. Operation Urgent Fury : 그레나다 침공작전

1983년 10월 25일에 벌어진 그레나다 침공작전에는 당연히 델타 포스도 동원되었다. A 스쿼드론은 섬의 세인트 조지 시 시내에 위치한 포트 조지와 정치범이 억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던 포트 루퍼트, 그리고 시내의 전화국과 무선 중계국을 강습하기로 되어 있었으며, B 스쿼드론은 리치몬드 힐 교도소를 강습해서 정치범들을 구출하고 포인트 살라니스 공항에 강습하는 레인저를 엄호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 중 A스쿼드론의 작전은 레인저가 공항을 점령한 뒤 공항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는 TF-160의 헬리콥터들의 지원이 필요했기에 B스쿼드론의 작전이 먼저 시작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도소 주변의 대공화기의 존재 여부를 모르고 갔다가 대공포화에 정통으로 걸려들어서 1대가 추락하고 2대가 대파되는 등의 피해를 입으며 강습은 취소되고, 결국 B 스쿼드론은 교도소 강습을 포기하고 두번째 임무였던 공항 강습작전 지원과 추락한 기체의 생존자 구조에 투입된다.

A 스쿼드론은 레인저가 점령한 공항에 수송기편으로 착륙해서 헬리콥터 강습을 시도하지만 이곳들 역시 격렬한 대공사격 탓에 제대로 된 구출작전을 수행하지 못하였으며, 결국 델타 포스와 브랜드 X[26]의 공습유도를 통해 파괴된다.

이렇게 보면 델타 포스가 삽질을 많이 한 것 같고, 실제로도 사실이다. 다만 그레나다 침공작전은 정규군이고 특수작전이고 구분할 것 없이 제대로 일이 풀린 경우가 거의 없었고, 델타 포스 역시 이런 총체적 난국탓에 고생을 한 것이지만... 이 자리에 있었던 슈워츠코프 장군은 베트남에서부터 생각해왔던 특수부대에 대한 불신이 더더욱 커져갔고, 이는 7년 뒤 여러 특수부대에게 부메랑처럼 날아오게 된다.

1.2.2.1.3. 아킬레 라우로 호 구출작전

4명의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게 이탈리아의 여객선 아킬레 라우로 호가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지자, JSOC에서는 델타 포스와 SEAL 6팀의 합동 구출부대를 편성해 구출작전을 준비했고, 바다에서의 구출작전이라는 임무 특성상 구출작전은 SEAL 6팀을 중심으로 델타 포스가 지원을 하는 식으로 준비되었다.[27] 그러나 문제는 구출작전 준비가 제대로 되기도 전에 테러범들이 이집트에 자수해버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출작전은 취소되고 구출부대는 그대로 짐싸서 본국으로 귀환하는가 싶었는데... 이들에게 새로운 명령이 떨어진다.[28]

보잉 737기 편으로 이집트 밖으로 추방되기로 결정됐다는 납치범이 탑승한 여객기를 항공모함 CV-60 사라토가에서 발진한 F-14 톰캣을 이용해 이탈리아의 시고넬라 공군기지에 착륙, 이미 미국인 인질들을 살해한 테러리스트들을 SEAL 제6팀과 함께 체포한다는 새로운 작전이 준비되었다. 한편 튀니지로 날아가던 여객기는 난데없이 F-14 톰캣 전투기에 둘러쌓였다. 당황해서 본국으로 교신을 시도하지만 이미 여객기는 미 해군의 EA-6에 의해 F-14를 제외한 어디와도 통신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결국 여객기는 미군의 유도 아래 이탈리아의 시고넬라에 소재한 미군과 이탈리아군이 같이 쓰는 활주로에 착륙했고, 구출부대원들을 태운 수송기 역시 미리 기지에 도착해서 테러리스트들을 체포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그러나 여객기 안에 이집트 외교관이 탑승하고 있던 바람에 체포작전이 지체되는 사이, 자국 영토에서 벌어지는 갑작스런 미군의 대규모 주권침해 상황[29]에 빡친 이탈리아 군/경병력이 나타나 난데없이 이탈리아측과의 대치가 벌어지고, 결국 망나니 마친코를 대신해 새로이 SEAL 6팀의 팀장이 된 현장 지휘관 로버트 곰리 대령[30]은 이탈리아측과 협상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이탈리아 측에서 체포해 이탈리아 사법당국에 넘기기로 결정하면서 사건은 일단 마무리되었다.[31]마친코였으면 이탈리아군과 교전이 벌어졌을 기세 다만 이들중 PLO의 핵심 간부 아부 아바스는 다른 1명과 이탈리아에서 빠져나와 이라크로 도피해 미군을 심히 빡치게 만들었지만, 결국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이 아부 아바스를 체포하며 마무리되었다.

1.2.2.1.4. Operation Just Cause : 파나마 침공작전



파나마 침공작전당시 촬영된 델타 포스 대원들의 모습.

파나마 침공당시 델타 포스가 맡은 임무는 두 가지로, 첫째는 노리에가의 체포였고, 둘째는 파나마에서 반정부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파나마군에게 억류된 미국인 인질 커트 뮤즈를 구출하는 임무였다.

1.2.2.1.5. Operation Nifty Package : 노리에가 체포작전

노리에가 체포작전. 다만 델타 포스가 노리에가의 은신처를 덮쳤을때 노리에가는 이미 도주한 뒤였다.메이슨과 우즈가 데려갔다 나중에야 파나마 시티 안의 바티칸 대사관으로 도주했음이 확인되었고, 미군들은 헬리콥터에 앰프를 싣고 대사관 상공에서 시끄러운 락 음악을 틀어놓으며 노리에가를 압박했다. 결국 노리에가가 다음 해인 1990년 1월 3일에 투항하면서 작전은 종결되었다.

여담이지만, 해군의 SEAL팀도 이 작전에서 두 가지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노리에가의 국외 탈출을 막기 위해 발을 묶는 작전들이었는데, SEAL 2팀은 노리에가의 전용 선박 'Presidente Porras'를 파괴하는 임무를, SEAL 4팀은 푼타 파이틸라 공항을 접수, 노리에가의 전용기인 걸프스트림을 파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SEAL 2팀은 해군 특수부대의 기본기인 수중침투능력을 발휘해 팀원들의 사상자 없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했지만 SEAL 4팀의 경우는 활주로 한가운데에서 파나마군의 매복에 제대로 걸려 4명이 전사(1명은 과다출혈로 전사했다.)하는 대 참사가 벌어졌다. 이 사건 이전에도 그랬지만, 파이틸라 공항 전투 이후로 M4 카빈에 M203을 장착시켜서 사용하는 대원들이 많아졌다.

1.2.2.1.6. Operation Acid Gambit : 커트 뮤즈 구출작전





구출작전을 수행중인 델타 포스 대원들을 재현한 포트 브랙에 소재한 특수부대 박물관의 디오라마 마네킹들. 우리네 전쟁기념관이 초라해지도록 고증이 쩔어준다. 미니미 가지고 데스머신 놀이하는 양반은 누구요

커트 뮤즈[32]가 수감된 모델로 교도소의 코앞에는 파나마군 사령부가 있었기 때문에 구출작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판단되었으며, 특히 파나마군이 커트 뮤즈의 구출을 시도할 경우 뮤즈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었다. 파나마군의 눈을 돌리기 위해 TF-160의 AH-6 무장 헬리콥터 2대와 공군의 AC-130이 파나마군 사령부를 공격하여 시선을 끄는 가운데, 델타 포스 구출팀 16명을 태운 4대의 MH-6 리틀버드가 교도소를 강습했다. 교도소 내부와 인접한 파나마군 사령부 건물에서의 산발적인 저항이 있었지만 이를 간단히 제압하며 인질 구출에 성공한 델타 포스는 뮤즈에게 방탄모와 방탄복을 입힌뒤 타고 왔던 MH-6에 함께 타고 퇴출하지만, 퇴출 도중 뮤즈와 다른 4명의 델타 포스 대원들이 타고 있던 MH-6가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33]


그러나 기적적으로 헬리콥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무사했고, 이들은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는 인접 건물에 숨어 파나마군과의 교전에 들어갔다. 이윽고 근처에서 임무를 수행중이던 미 보병사단의 장갑차가 이들을 구출하며 작전은 성공리에 끝났다.


델타 포스를 픽업한 육군의 M113 장갑차.[34]

1.2.2.2. 1990년대의 특수작전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의 델타 포스 대원들.

소련도 무너지고 테러와의 전쟁도 없던 시절이라 지금보다는 많이 평화롭던 시대이지만, 델타 포스는 그럼에도 여기저기서 굴렀다.(...)

80년대 특수작전 항목처럼, 여기서도 서술되지 않은 많은 작전들이 있다. 페루 일본 대사관 인질극과 같은 제3국에서 벌어진 테러에 대한 군사고문이라든가, 유고 슬라비아에서의 특수작전 등등...

1.2.2.2.1. 걸프전과 스커드 사냥


특수전용으로 개조된 험비에 몸을 싣고 있는 델타 포스 대원들. 특수전용 차량을 이용한 사막에서의 장거리 기동은 후일 2003년 이라크전때 빛을 발하게 된다.

1990년, 우여곡절 끝에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후세인과 미국의 기나긴 악연이 본격화되고, 곧이어 다국적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증파되면서 걸프만은 점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다국적군의 총사령관이 우리 모두가 이름을 들어봤을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이다. 다만 슈워츠코프는 베트남과 그레나다에서 특수부대의 삽질을 똑똑히 목격했던지라 특수부대에 깊은 불신과 혐오감을 갖고 있던 탓에 기껏 사우디에 집결한 각국의 특수부대는 적 후방에서의 소규모 정찰작전이나 화력 유도 등 평범한(?) 임무만을 수행했을뿐,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이스라엘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이스라엘에 스커드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다 싸다구를 한대 얻어맞은 꼴이 된 이스라엘은 당장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에 나서겠다며 별렀지만, 이는 미국으로서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기껏 이번 전쟁을 종교 문제에서 분리시키려고 아랍 국가들까지 모아서 다국적군을 만들었는데, 이스라엘이 끼어버리면 다국적군에서 아랍 국가의 대규모 이탈과 종교 전쟁의 성향이 부각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은 이라크도 이를 노리고 저지른 나름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이스라엘을 달래기 위해 이스라엘에 패트리엇 미사일 포대들을 전개하는 한편, 다국적군으로 전개되어 있던 델타 포스와 영국의 SAS에게 스커드 사냥 임무를 맡기게 된다.[35]


스커드 사냥 임무중. 맨 우측의 아저씨가 요즘 전술사격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기 강사, 래리 빅커스 되시겠다.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작전팀에 배속된 CCT 요원들은 이윽고 각 팀의 수색범위 내에서 발견되는 스커드 미사일 발사차량들에 대해 항공폭격 유도는 물론,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타고 있던 차량의 중화기나 대전차 로켓, 유탄발사기, 대물 저격총, 심지어 망치까지 사용하여 가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이용해서 때려부수는데 앞장섰다.

물론 이라크군의 더미에 낚인다거나, 스커드 미사일 발사 준비단계를 대폭 생략하고 냅다 발사하고 도망치는 등의 대응[36] 탓에 SAS와 델타 포스의 스커드 사냥은 전술적으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이스라엘의 걸프전 참전을 억제하는 등 전략적/정치적으로는 목표 달성을 이뤄냈다고 할 수 있다.

1.2.2.2.2. Operation Gothic Serpent : 소말리아에서의 아이디드 체포작전.


오늘 저녁반찬은 맷돼지 바베큐다[37]

모가디슈 전투 항목 참조.

1.2.2.2.3. 빈 라덴을 잡아라 : 90년대 말 ~ 2000년의 아프간 작전.

빈 라덴알 카에다는 이미 1990년대부터 미국을 상대로 각종 테러를 저지르며거기다 클린턴 사진에다 AK 소총을 난사하는 어그로까지 끌면서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고, 이 탓에 90년대 말경부터 이미 아프간에서는 CIA가 마수드의 군벌과 회합을 가지는 등 빈 라덴을 제거하기 위한 공작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실무자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델타 포스를 비롯한 병력을 투입해서 빈 라덴을 체포 또는 사살하려는 계획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는데, 이는 아프간 내부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여러가지 문제는 물론, 93년의 아이디드 체포작전의 유혈극이 아직도 생생한 까닭에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대신 해군이 아프간의 알 카에다를 향해 토마호크를 발사했지만, 빈 라덴의 숨통을 끊지는 못하고 오히려 빈 라덴의 화를 더욱 돋구고 말았다.

결국 2000년에 다시 빈 라덴 체포작전을 계획한다. 60여명의 델타 포스(일설에는 델타 포스와 DEVGRU의 합동부대라는 이야기도 있다...) 대원들을 동원해 아프간에 침투시켜 빈 라덴을 잡아온다는 작전으로, 2000년 즈음엔 1998년과 달리 군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던데다 CIA 역시 이라크 내에 상당한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던 탓에 작전 성공 가능성도 상당했다.

하지만, 클린턴 행정부는 결국 이 계획도 포기하고, 후임 부시 행정부는 아프간 문제에 대해 클린턴만큼의 개념도 없었다. 어느 정도였는지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2001년 1월 들어선 부시 행정부는 알 카에다와 같은 비 국가 활동세력을 상대하는 대신 마치 냉전시대의 외교에 더 어울릴 것 같은 정책을 실행하며 다른 국가들의 위협에만 치중했다. 그들은 탄도 미사일 방어를 비롯해 기타 일류 방어체계에 역점을 두고 불쾌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테러 분야는 소홀히 했다. 공작원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클린턴 행정부와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어떤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백악관 진영이 알 카에다에 훨씬 더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새 행정부는 알 카에다를 상대하는 우리의 전략을 수정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다른 많은 문제에 비해 우선순위가 낮은 것 같았다. 무엇을 새로운 전략으로 삼아야 하는지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다. 알 카에다에 대해 백악관이 특정해서 제기한 것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질문은 알 카에다와 이라크의 동맹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대테러센터의 한 분석가가 2001년 여름에 내게 말해서 알게 된 것이었다.
"부통령실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사담 후세인의 동맹에 대해 알고 싶어합니다." 그녀는 그렇게 운을 땠다.
"무슨 동맹이라고?" 내가 물었다.
"부통령께서 알 카에다와 이라크 사이의 동맹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들이 서로 협력하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방식인지를 물었습니다."
"이번 주에 내가 들은 것 중 가장 멍청한 질문이군."
"부통령께 그렇게 말하기를 바라세요?" 분석가가 물었다.
"어… 그렇지는 않아."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후략)[38]

그리고 그 결과믿기 힘든 참혹한 현실이 되어 21세기의 시작을 알렸다.

1.2.2.3. 2000년대 이후의 특수작전


간단히 요약하자면 테러와의 전쟁. 오늘도 델타 포스는 아프간과 이라크는 물론 중동 여기저기, 필리핀 등 세계 각지에서 이슬람 테러단체를 때려잡느라 여념이 없다.

여담이지만, 결국 빈 라덴을 직접 제거한 것은 델타 포스가 아니라 DEVGRU였다. 죽쒀서 물개줬다[39]

2013년 10월 5일에는 1998년 케냐/탄자니아 미 대사관 동시 폭파 테러를 지휘한 알 카에다 상급 지휘관 아부 아나스 알 리비를 리비아 트리폴리의 은거지에서 납치하는데 성공#, 미 본토로 끌고 와 재판에 회부했다. 여담이지만 같은 시각 해군의 DEVGRU는 케냐 나이로비 동시다발 테러를 저지른 소말리아 알 샤바브 지휘부 체포를 위해 모가디슈로 강습했으나 함정에 걸려드는 바람에 임무에 실패하고 철수하기도 했으며, 이것 때문에 미국의 몇몇 밀리터리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서는 델타 포스와 DEVGRU 중 누가 더 세냐는 키보드 배틀이 또 벌어지기도 했다.

IS가 미국인 기자 제임스 폴리를 납치하자 2014년 7월 4일 구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인질은 이미 IS가 다른 곳으로 옮긴 뒤였고, 이윽고 델타 포스 대원들과 IS간의 전투가 벌어졌다. 델타 포스는 IS 대원 5명을 사살했으나, 델타 포스 대원 1명 및 요르단인 1명이 부상당하고 작전은 실패했다.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40822000412&md=20140825004007_BK 그리고 결국 제임스 폴리는 참수되었다.http://www.ajunews.com/view/20140820132821394

해군의 DEVGRU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대원들 사진이 공개돼서(물론 얼굴은 가리지만) 대한민국의 군장 매니아들도 2013년 현재 DEVGRU 대원들의 개인장비를 완벽하게 모으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을 정도인데 반해, 델타 포스는 2000년대 들어서는 정말 사진 한 장 나오지 않는다. 인터넷상에 델타 포스 사진이라고 나오는 것의 대다수는 그린베레 사진으로 발표된 사진을 오인한 것이다. 그래서 군장 매니아들도 웬만해서 2010년대 델타 포스 재현은 꺼리는 편이다.

1.3. 델타 포스 출신 인물

  • 찰스 베크위스 - 위에서 자주 언급했기 때문에 생략.

  • 폴 하우 -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샌더슨 중사가 폴 하우를 모델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 요즘은 전술사격 강사로도 활동하는듯 한데, 누가 총에 옵션을 달고 다니는 것을 가능한 최소화하는 8090 특수부대 출신 아니랄까봐 광학장비를 부착한 총을 쏘는 것을 보기 힘들다.(...) 찰스 베크위스의 사위이기도 하며, 딸 역시 특수부대는 아니지만 공군에 입대해서 AC-130 건쉽의 승무원이 되어 복무중이라고 한다. 특수부대와 굉장히 친한 비행기임을 생각해보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 래리 빅커스 - 델타 포스 출신의 전술사격 강사. 업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강사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의 애시드 갬빗 작전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 마이클 페논 - 델타 포스 출신의 전술사격 강사. 미 해병대 포스 리콘 출신으로 훗날 육군으로 소속을 옮겨, 육군 특전단을 거쳐 델타 포스 대원이 되었다. 플래툰 지에서 이 사람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이 사람의 놀라운 점은 다른 사람들은 멀쩡한 몸으로도 하기 힘든 델타 포스 대원 생활을 작전중에 큰 부상을 입고 심지어 한쪽 눈을 잃은 외눈 상태로 다시 자격 시험을 다 치루어 패스하고 계속 했다는 것이다.

1.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 출신 인물

델타 포스는 극비에 가까운 부대인 관계로, 알려진 실존인물이 드물다. 델타 포스 지휘관을 거쳐 장군으로 진급(그것도 원스타 정도로는 안되고 쓰리스타 정도는 되어야...)해야 델타 포스 출신이라고 알려지는게 가능할 정도. 단, 가공의 작품에서는 상당히 많이 나오는데, 미국 최고의 특수부대중 하나이기 때문에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픽션에서는 델타 포스도 굴욕이 많은데 이런 최강 특수부대인 델타 포스가 투입되도 발렸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해냈다! 따위의 기믹에 희생되는 패턴.

2. 액션 영화 시리즈

1의 부대를 소재로 하여 1986년 이래로 만들어진 액션 영화 시리즈.

그 중 유명한 것은 단연 척 노리스가 주연으로 활약한 <델타 포스>(1986)와 <델타 포스 2 - Operation Stranglehold>(1990)다. 이후로도 시리즈가 이어지긴 했으나 갈수록 엉망이라 결국 3편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쏘라는 은 안쏘고 돌려차기테러리스트 두목을 제압하는 척 노리스의 활약이 인상깊다. 이외에 미사일이 나가는 오토바이도 눈에 띈다.

1편은 이스라엘에서 촬영하였고, 제작사인 캐논 그룹이 유태인 업체라서 노골적인 반아랍인 정서가 가득했다. 감독부터가 유태인인 메나헴 골란.영화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이란인들은 역시 유태인들이다. 하긴 캐논 그룹을 가리켜 미국 수꼴 영화사라는 비아냥이 가득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캐논 그룹 사장이자 제작자이자 감독인 메나헴 골란이 직접 감독했다. 실제 있었던 TWA Flight 847 여객기 납치 사건[44] 자료를 가지고 와서 만일 그때 델타 포스가 참가해서 활약했다면... 하는 식으로 그려서 이 사건때 델타 포스가 활약한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일종의 대체역사물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이 사건 당시 스튜어디스 울리 데릭슨이 쓴 회고록을 영화화한 TV 영화 위기의 847 (The Taking of Flight 847: The Uli Derickson Story- 1988년작으로 비디오 제목은 위기의 847, 토요명화 방영(1990년 1월 방영)제목은 SOS 베이루트행 847)이 있는데 여기에서는 델타 포스는 당연히 아예 나오지 않고 속수무책인 미국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이런 영화의 테러리스트 두목치고는 상당히 카리스마가 없다. 별달리 대결도 못하고 척 노리스에게 말 그대로 쳐맞다가[45] 비겁하게 뒤에서 총을 겨누다가 미사일에 산화하는 보스의 모습이 안습이다.

그래도 더티 대즌으로 유명한 원로배우인 리 마빈이 델타 포스 리더로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이거 찍은 다음에 병사하는 통에 이게 유작이 되어버렸다. 더불어 이란 대사관 구출사건이 나오는 등, 나름대로 신경쓴 작품이다. 다만 흥행은 본전치기 수준. 9백만달러로 만들어져 177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1990년에 나온 2편은 남미 마약상을 척결하는 척 노리스의 활약인데 필리핀에서 촬영하다가, 헬리콥터 추락사고로 엄청난 보상금을 물어주고 같이 엄청난 욕다발을 쳐먹어야 했다. 사고가 난 장면은 기껏해야 영화상에서 장군이 헬리콥터를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고난이도 액션이 들어가지도 않던 촬영임에도 갑자기 추락해버렸다. 그 덕분에 척 노리스나 주요 배우진은 일절 타지 않아 무사했지만 조연급 배역(테일러 장군 역)이던 존 P.라이언은 큰 부상을 당했고 헬리콥터 조종사 및 스턴트맨을 비롯한 4명이 죽었다.

당시 이 헬리콥터 액션씬에 리쎌 웨폰 등 여러 영화에 나온 베테랑 조종사가 촬영현장을 보고 안전장비가 개판이라 놀라면서 헬리콥터 조종을 포기하고 즉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결국 대타로 온 헬리콥터 조종사 조조 임페리얼이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그만큼 안전장비도 엉망인데다가 비상사태에 대비한 현지병원 정보도 일절 없어서 추락사고로 다친 사람들을 싣고 필리핀 산악에서 찍다보니 가까운 병원으로 갔더니 혈액형부터 틀리게 진단하는 돌팔이 병원이라서 다른 병원에 가야했다. 이 와중에 제대로 응급조치를 받았더라면 더 살 수 있던 이들이 추가로 죽었기에 비난과 같이 더 많은 보상금을 물어줘야 했다. 이 2편은 척 노리스의 동생인 아론 노리스가 감독했는데 1편에 비해서 많이 B급스런 이미지와 저예산티가 팍팍 났기 때문에 척 노리스의 광팬이 아니면 권할만한 작품은 아니다. 8백만 달러로 만들어져 654만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그쳐 망했다. 이로서 3편은 더 제작비가 팍 깎이게 된다.

1,2편 모두 국내 공중파로 방영되었다. KBS-2 토요명화로 방영한 1편에선 척 노리스 성우는 한상덕. 캐논 영화사와 독점계약한 세경문화영상에 2편 모두 VHS 비디오로 출시.


시리즈를 끝장낸 3편은 1991년에 밑에 소개한 오퍼레이션 델타 포스 감독이자 바로 그 영화 아메리칸 닌자를 감독한 샘 퍼스텐버그가 감독한 막장 저예산 액션물. 제목은 Delta Force 3: The Killing Game로 1991년 캐논 영화사가 제작했으며 척 노리스의 아들인 마이크 노리스가 나온 영화이며 1992년 SK그룹 계열이던 SKC 비디오에서 출시했다. 다음 영화에 올라온 정보는 오류가 있는데 2편에 나온 배우 존 P.라이언(1936~2007)은 이 3편에 나오지 않는데 존 S.라이언이라는 다른 배우(러시아군 장교 세르게이)를 헷갈렸다.

미/러시아 연합 특수부대가 아랍 불량 독재자를 처단하고 그 국가가 가진 바이러스성 생물학 병기를 무력화시켜 감염된 시민들을 구하는 내용인데, 배우들의 심각한 국어책 연기와 긴장감이 전혀 없는 연출, 저예산 세트 등으로 인해서 확실한 까임거리가 가득하다. IMDB나 해외 사이트에서도 엄청난 악평을 듣고 있으며 이렇게 델타 포스 시리즈는 사라졌다.

참고로 다음 영화에 올라온 델타포스 4는 존재하지 않으며 밑에 나온 특명 델타 포스 4(Operation Delta Force 4: Deep Fault/ 1999) 정보를 뒤섞은 엉터리이다.

3. 위와 무관한 영화 Operation Delta Force

1997년 TV 영화로 한국에서는 비디오 제목이 특명 델타 포스란 제목으로 나와있다. 델타 포스 3를 감독한 샘 퍼스텐버그가 감독하고 역시 저예산 액션물 감독으로도 많이 활동하고 촬영을 많이 맡은 요시 웨인이 촬영을 담당했다. 참고로 이 2,5편은 요시 웨인이 감독했다. 더불어 샘 퍼스텐버그나 요시 웨인 또한 메나헴 골란처럼 유태인이다. 델타 포스가 나오는 저예산 액션물이지만 적어도 위에 델타 포스 3보다 훨씬 낫긴 하다.

4. FPS 게임 시리즈

마찬가지로 1의 부대를 소재로 하여 노바 로직에서 제작 중인 FPS 게임 시리즈.


위의 부대 마크는 노바 로직에서 게임에 사용하기위해 임의로 만든 것으로, 마크의 저작권도 게임 제작사인 노바 로직에 있다. 하지만 위키피디아조차 오랫동안 올려져있을만큼 대중적으로 델타 포스 마크라고 알려졌기에 게임속의 창작물인 것을 모르고 액티비전이 모던 워페어 3에서 무단으로 사용했다가 노바 로직에게 고소당했다. 스페셜포스 2에서도 캐릭터 소개에 사용했다가 수정했다. 그런데 수정해놓은 앰블렘은 그린베레... 사실 위키에서도 그린베레 마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델타 포스의 부대마크는 존재하지 않으며 정복, 전투복 등에는 상급부대인 미 육군 특수전사령부의 부대마크를 사용한다. 하지만 영내에서까지 사복차림이고 대부분의 작전이 비정규전인 부대라 부대 마크를 달고 작전을 나갈 이유가 없다.

1998년 1편을 시작으로 2, 랜드 워리어, 태스크 포스 대거, 블랙 호크 다운, 블랙호크 다운 팀 세이버, 익스트림, 익스트림 2 등의 시리즈가 줄줄이 발매되었다.

한때는 레인보우 식스 뺨치는 인기를 자랑했지만 시대에 떨어지는 그래픽(초기에는 복셀엔진을 이용한 야외환경 묘사가 호평받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그래픽면에서 동시대 게임들에 뒤처지게 되었다), 전혀 긴장감없는 멀티 플레이 등으로 인해 점차 외면을 받으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싱글 미션은 그냥 광활한 작전지대에 던져지면 알아서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웨이포인트도 있긴 하나 무시하고 플레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 지점에 위치한 적들을 쓸어버리고 B 지점으로 이동하여 목표물을 파괴하는 임무라면 먼 거리를 우회하여 냅다 B 지점으로 이동한 뒤 최종 목표물을 제가하는 식의 플레이가 가능. 이렇게 플레이할 경우 플레이어가 특정 웨이포인트에 근접하면 움직이게끔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거치지 않아서 그냥 멍때리며 떼거지로 대기 중인 적군들을 수류탄이나 AT4 등을 이용해 학살해버릴 수도 있다. 그냥 정해진 흐름대로 따라가는, 이른바 롤러코스터 스타일의 싱글 플레이를 보여주는 지금의 FPS 게임들에 비교하면 꽤나 신선한 재미가 있다.

싱글 미션은 플레이어의 맷집이 가히 레인보우 식스급에 최신작인 익스트림 2를 제외하고는 자동 회복 따위는 없다. 적들의 난사질을 비웃다가 눈먼 흉탄 한 방에 즉사하는 경우가 빈번하므로 어느 정도는 신중한 플레이가 필요하다. 단, 대부분의 적들이 자기들의 사정거리 밖에서 M82나 M24 등의 저격총에 공격당하면 같이 진형을 짰던 동료가 하나하나 지워져나가는 와중에도 멍청하게 제자리에 멈춰 경계태세를 취하는 어처구니 없는 인공지능을 보여주기에 스코프가 달린 총을 들면 난이도가 급하락하는 경향이 크다. 특히 1과 익스트림에서 두드러지는 부분. 그나마 블랙호크 다운과 익스트림 2의 난이도가 좀 극악한 편이다. 저격 만능주의에 일침을 놓기위해 블랙 호크 다운부터 가늠쇠 시스템을 채용하기도 했지만 리얼리티 면에서는 어설픈 수준. 익스트림 2에서는 저격용 라이플에 각각 성능차를 두며[46] 총기간의 밸런스를 맞춰나가는 중이다.

블랙호크 다운의 멀티 플레이의 경우 발매 초창기에는 동시접속자가 1만명을 넘는 등 영광을 누렸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그 수가 감소하여 요즘엔 동시접속자가 많으면 300명, 적으면 30명 정도 수준이다(...). 그것도 전부 다 델타 포스 1부터 해오던 게임 매니아들이다.

시리즈 최신작은 2009년 5월에 발매된 익스트림 2이지만, 2005년작인 익스트림과 비교했을때 오십보백보인 그래픽 수준(그나마 세부옵션 조정조차도 불가능[47])과 싱글 캠페인수 10개라는 놀라운 볼륨으로 혹평만 듣고 있다.

2009년 7월 엔젤 펄스가 발매예정이었으나 발매일 미정으로 변경된 뒤, 그대로 베이퍼웨어화되었다.

5.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의 용어

작중 등장인물인 카미조 토우마, 츠치미카도 모토하루, 파란머리 피어스의 세 명을 통칭하는 용어. 반의 세 바보들. 위 항목의 현실의 지구방위대 최강 정예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바보짓을 전투력으로 환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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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런 명칭들조차 논란이 없지 않다. 대외적으로는 일단 델타라고 홍보는 하는데 실제 명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ACE일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뿐이지 실제 명칭이 공식적으로는 뭐라고 알려진 바는 없다. 알려지면 그 즉시 코렁탕 배달...
  • [2] 미드 A특공대의 제목 A-Team이 바로 이 A분견대를 뜻한다.
  • [3] 왜 이런 애매한 이름이 되었는가하면 ACE를 만들기 위한 말장난일 따름이다. 특수전사령부의 심볼이 스페이드이기도 하다.
  • [4] 델타 포스가 창설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 한 델타 포스 대원이 "저는 82공수사단(특수부대를 제외한 정규 미 육군부대 중에서는 최고의 부대 중 하나)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최고였죠. 하지만 여기서는 항상 다른 친구들 따라가느라 바쁩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 [5] 당연한(?) 얘기이지만 JSOC에는 델타 포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델타 포스와 유사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 해군 특수전 연구개발단(US Special Warfare Development Group 약칭 DEVGRU)이나 공군의 24특수전술대대 등의 최정예부대도 이곳 소속이다. 즉 JSOC에는 델타 포스 대원들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다른 부대 대원들도 우글거린다는 얘기다.
  • [6] 사실 이건 필요하면 민간인으로 위장하려는 작전상의 이유도 있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 초반에 델타 포스 소속 노만 '후트' 깁슨 중사(에릭 바나 紛)가 신문기자로 위장해 모가디슈 한복판에서 본부에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쉽다. 위에서 언급된 The Unit에서도 대원들이 민간인으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다.
  • [7] 심지어는 수염이 덥수룩한 경우도 있다. 미군은 콧수염외에는 얼굴의 어떤 모발도 기를수 없게 돼있다.
  • [8] 물론 작전에 나갈때도 사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 1980년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구출작전 당시 델타 포스 대원들의 복장은 검게 물들인 야전상의에 리바이스 청바지였다. 그 외의 경우는 앞서 언급한 드라마 The Unit을 참고할 것.
  • [9] 이것은 물론 영화적 연출이다. 제대로 훈련을 받은 전투원들은 이러지 않는다.
  • [10] 단, 1980년대에 델타 포스와 비슷한 목적으로 창설된 해군의 SEAL 6팀(現 해군 특수전 연구개발단(DEVGRU))이 하는 짓에 비하면 델타 포스 대원들은 모범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두 부대 모두 임무가 임무인만큼 두발과 복장의 자유가 인정되지만, 행정상 상위부대인 각군 특수전 그룹으로부터 '두발과 복장이 지나치게 개판' 이라고 욕을 먹은 부대는 DEVGRU뿐이었다고 한다. SEAL 대원들이 특수부대 중에 사고를 가장 자주 치는 것과 얼추 비슷한듯 하다
  • [11] 이에 관해서는 영국 특수부대인 SAS의 영향도 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을 참조.
  • [12] 이런 성격은 작전지역의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어 미국의 우방국 특수전 부대에 대한 군사고문의 역할 등을 수행하기도 하며, 한국 육군의 특수부대인 특전사가 제1공수특전단 창설시부터 미 육군 특전단에게 많은 것을 배워왔고, 지금도 정기적인 교류가 이뤄지는 것 역시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다. 혹자는 전두환을 비롯한 특전사 초기 멤버들이 레인저 스쿨 위탁교육을 받았다는 이유로 특전사는 미국으로 치면 그린베레보다도 제75 레인저 연대와 더 비슷한 부대라고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 미 육군 레인저 스쿨 과정은 그린베레, SEAL, 해병대 포스리컨, MARSOC, 공군 특수부대 등 각군 특수부대들의 핵심 간부들과 심지어 육군 보병 간부들까지도 두루 위탁교육을 받을 정도로 보편화된 엘리트 군사교육일 뿐이지, 제75레인저 연대라는 특정 부대의 성격과 관련있는 교육이 아니다. 한국의 특전사는 창설시부터 현재까지 쭉 미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왔고, 양 부대간 위탁교육과 연합훈련을 꾸준히 해오고 있으며, 초창기부터 특전사의 각 여단마다 그린베레 간부들이 연락관으로 파견되어 항시 근무하고 있고, 그밖에 편제, 임무 등도 판박이일 정도로 한국 특전사는 미군으로 치면 정확히 그린베레에 해당하는 부대다.
  • [13] 미 육군 특전단의 장기라는 게릴라전조차도 실은 50년대에 SAS가 말레이시아에서 성공적으로 수행하였고, 이후 70년대에 오만에서도 교과서적인 대게릴라전을 수행한 바 있다.
  • [14] 흔히들 델타 포스를 '미 육군의 대테러부대'라고 오해하고 있지만, 대테러전은 델타 포스가 수행하는 임무들 중 하나일뿐이다. 참고로 영국의 SAS가 대테러전 능력을 구축하게 된 계기는 1960년대 말엽에 북아일랜드에서 IRA와 투닥거리게 되면서부터이다. 60년대 초에 영국을 다녀온 베크위스는 대테러전에 대해 뭘 배울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 [15] Long Range Recon Patrol. 장거리 정찰대.
  • [16] 여담이지만, 흔히들 델타 포스가 굉장히 '빠진'부대로 묘사되곤 하지만, 팀장까지 같이 망나니짓을 하던 SEAL 6팀이 나중에 윗 사람들의 분노를 사서 탈탈탈 털릴때도 별 탈없이 지냈던 것을 생각하면 의외로 지킬 것은 지키는 분위기일지도...? SEAL 6팀과 마친코가 두들겨 맞은 것은 군기불량문제가 제일 컸지만, SEAL 6팀 창설과정에서 그 괄괄한 성격 탓에 상관들과 자주 마찰을 빚은 마친코에 대한 괘씸죄도 큰 작용을 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델타 포스의 창설과정에서 역시 상관들과 크고 작은 마찰이 있었던 베크위스 역시 굉장히 자유로운 델타 포스의 분위기로 SEAL 6팀과 같은 공격을 받을 여지가 충분했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에서 큰 잡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그런 부대 풍조는 프로젝트 델타 시절의 이 일화에서 엿볼 수 있는 창설자인 베크위스의 영향 탓이 아닐런지.
  • [17] 프로젝트 델타는 팀 구성조차도 SAS의 팀 구성과 같은 4인 1조의 작전팀을 기본 작전단위로 삼았다.
  • [18] 이게 그냥 부상이 아니라, 소총탄에 복부관통상을 입고 군 병원에 후송되어 부상을 입은 내장 일부를 비롯한 부분을 수술받았다. 이 때 물을 마시고 싶어도 얼음으로 물을 마셔야 할 수준이었다고...참고로 베트남 군 병원 입원기록이 가장 긴 사람중 하나다.'델타 포스 창세기(월간 플래툰 2003년 3월호)'
  • [19] 베트남전때까지만 해도 레인저 부대는 지금의 제75레인저 연대처럼 하나로 통합된 단일 부대였던 게 아니라, 여러 야전부대들에서 필요에 따라 소규모의 레인저 부대를 자체 조직해서 운용해왔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제75 레인저 연대'라는 단일 부대는 1974년에 비로소 탄생하게 된다.
  • [20] 특수전 센터.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재임기간 당시 특수부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아 케네디의 이름을 딴 것이다.
  • [21] 공지전의 시초가 된 단기화력전 개념을 정립한 뒤푸이 개혁을 주도한 인물.
  • [22]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주한미군의 그린베레 분견대
  • [23] 다이하드 2에 나오는 육군 대테러부대가 바로 이들이다. 실제로는 델타 포스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리고 애초에 사라진 부대지만...
  • [24] 후일 TF-160으로 개칭되며, 이들은 90년대에 다시 160 특수작전항공연대로 개편된다.
  • [25] 후일 160 특수작전항공연대로 개편되는 특수전 비행단, TF-160의 전신인 TF-158과, 해군판 델타 포스랄 수 있는 SEAL 제6팀이 창설된 계기 역시 2차 구출작전을 준비하면서였다.
  • [26] 공군의 항공 통제반을 특수부대로 개편되는 과정에 있었던 과도기적인 공군 특수부대. 브랜드 X가 발전해서 현재의 CCT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 [27] 물론 선박의 기국이었던 이탈리아도 카니비니에리 예하의 GIS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 [28] 이것때문에 작전 취소 소식을 듣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을 푹 자려고 수면제를 먹었던 특수전 대원들이 다시 약을 토하고 난리가 났었다고 한다.(...)
  • [29]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엄연히 이탈리아 땅에서 벌어지는 대테러 작전인데 미국이 테러범을 잡느냐는 이유였다
  • [30] 곰리 역시 미군 특수전계에서 마친코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레전드이다. 여담이지만 마친코는 개인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중령으로 강등되면서 SEAL 6팀 사령관에서 쫓겨나던 마친코는 곰리가 자기 대신 팀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인수인계도 안 해주고 갔다고
  • [31] 당시 미군 특수부대는 테러범들이 이송되는 비행기와 호송차까지 추적해가면서 감시했다
  • [32] 당시 파나마에서 미술상을 운영했지만 실제로는 반 노리에가 세력을 돕는 인물이었다. 특히 노리에가의 연두교서 방송에 맞춰 해적방송을 전파했는데, 분노한 노리에가에 의해 구금당했다.
  • [33] 이때 한 대원은 헬리콥터의 로터 블레이드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그림자 전사, 세계의 특수부대)
  • [34] 파나마 침공당시에는 M1 에이브럼스나 M2 브래들리같은 크고 무겁고 튼튼하고 강한 차량들이 못 오고, M551 셰리던이나 M113, 해병대의 LAV-25 같은 '가벼운' AFV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 [35] 다만 이스라엘은 결국 자체적인 특수전 팀을 비공식적으로 이라크에 파견했다고 전해진다. '브라보 투 제로'에서 생포당한 SAS 정찰팀원들을 이스라엘군이라고 의심하던 이라크군의 태도가 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 [36] 하지만 이 바람에 스커드의 명중률은 이론치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 [37] 사진의 주인공은 대니얼 부시 하사. 슈퍼 61의 추락 당시 추락 헬리콥터에서 기어나와 부상당한 상태에서 응전했던 사람으로, 결국 후송된 뒤 부상악화로 사망한다.
  • [38] 헨리 A. 크럼프턴 저, '첩보의 기술' (The Art of Intelligence)
  • [39] 그렇다고 DEVGRU가 날로 먹은 것은 아니다. DEVGRU 역시 넵튠 스피어 작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전에서 많은 희생을 치루었기 때문이다
  • [40] 댄 브라운의 소설인 디셉션 포인트에서 높으신 분의 사주로 주인공 일행을 암살하고, 증거를 은닉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한다.
  • [41]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베크위스의 밑에서 계속 복무했다면 델타 포스에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42] 델타 포스 출신은 아니고, 델타 포스의 훈련을 받았다.
  • [43] 실종된 미군 33기계화보병대대와 민간인 생존자의 행방을 찾기위해 두바이에 파견된 델타 포스 대원들
  • [44] 1985년 6월 14일 미국 TWA 항공사 소속 보잉 727기가 이란인 납치범들에게 공중납치당한 사건이다. 이에 이스라엘은 마지못해 7백명이 넘는 시아파 재소자를 풀어줘야 했으며 여객기 승객 139명, 승무원 8명 가운데 딱 1명, 로버트 스테뎀(당시 24살)이 미군이란 이유로 사살당했다.
  • [45] 이야기는 다르지만 척 노리스의 다른 영화 <미씽 인 액션> 2편의 최종 보스인 오순택은 나름대로 저항이라도 했다.
  • [46] 드라고노프는 화력이 약하고 M24는 탄창이 5발에 볼트 액션식이라 재장전이 길며, M82는 반동이 엄청나게 크다.
  • [47] 게임이 설치된 폴더내의 cfg 폴더를 메모장으로 불러와서 수치를 바꿔주면 조정이 가능하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