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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모예스

last modified: 2015-04-13 19:55:03 Contributors


축구 감독.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에버튼 FC의 감독을 맡았고, 2013-2014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9개월만에 짤림
프리미어 리그에서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다음으로 오랫동안 리그에서 한 팀의 감독직을 수행한 감독이었다. 이기록은 맨유로 부임하면서 깨졌다.
그리고 벵거와 함께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짠돌이[1]
에버튼에서는 어려운 팀을 중상위권으로 올려준 고마운 감독

이제는 레알 소시에다드라는 새로운 리그, 새로운 클럽에서 명예회복을 위한 도전을 시작하였다

Contents

1. 프로필
2. 선수 시절의 모예스
3. 감독 시절
3.1. 프레스턴
3.2. 에버튼
3.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3.1. 2013-14 시즌 감동의 스토리
3.3.2. 모예스 명장설?
3.4. 레알 소시에다드
4. 여담

1. 프로필

레알 소시에다드 감독
데이비드 모예스(David William Moyes)[2]
생년월일 1963년 4월 23일
국적 스코틀랜드
출신지 글래스고
소속팀 셀틱 FC(1980~1983)
케임브릿지 유나이티드 (1983~1985)
브리스톨 시티 (1985~1987)
슈르즈베리 타운 (1987~1990)
던펌릭 애슬래틱 (1990~1993)
해밀턴 아카데미컬 (1993)
프레스턴 노스 엔드 (1993~1999)
코치 프레스턴 노스 엔드 (1998)
감독 프레스턴 노스 엔드 (1998~2002)
에버튼 FC (2002~2013)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2013~2014)[3]
레알 소시에다드 (2014~현재)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역대 감독
알렉스 퍼거슨
(1986~2013)
데이비드 모예스
(2013~2014)
라이언 긱스 (감독대행)
(2014 잔여시즌)
루이 반 갈
(2014~)

2. 선수 시절의 모예스

지금은 감독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모예스도 선수로선 평범한 커리어를 보유했다. 셀틱에서 중앙 수비수로 프로에 데뷔한 그는 1981-82 시즌 우승에 공헌했지만 3년간 불과 24경기 출전에 그친 로테이션 멤버였고 케임브릿지 유나이티드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그나마 프레스턴 팬들과 일부의 팬들에게 알려진 프레스턴으로의 이적 전까지 10년간 무려 5팀을 전전하는 저니맨 생활을 하게 된다.

1995-96 시즌 프레스턴의 4부 리그 우승에 공헌한 모예스는 1998년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바로 프레스턴의 수석 코치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1998년 2월 프레스턴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축구 감독으로서의 경력이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흥미진진한 파트

3. 감독 시절

3.1. 프레스턴

불과 34살의 나이로 감독직을 잡은 모예스는 우려와 달리 리더쉽으로 팀을 이끌며 하부리그에서 머물던 프레스턴을 끌어올리는데 성공한다. 1999-2000시즌 3부리그 우승으로 챔피언쉽 까지 승격시킨 그는 2001년에도 팀을 프리미어 리그 승격 직전까지 올려놓았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볼턴 원더러스에게 패해 아깝게 2년 연속 리그 승격에는 실패한다. [4]

그리고 2001-2002 시즌 좋은 모습을 이끌던 와중, 당시 강등 위기에 빠진 에버튼으로부터 감독 제의를 받게 된다. 에버튼의 이적 제의에 모예스를 뺏기지 않으려고 했던 프레스턴도 결국 이적을 결정한 감독의 뜻을 막지는 않았다. 참고로 프레스턴은 모예스가 나간 시즌 이후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이 될듯 말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점점 추락하더니 2010-2011시즌 2부리그에서 21위를 기록하며 3부로 추락. 제 자리로 왔어요 3부리그에도 썩 좋지는 않은 상황이다.

3.2. 에버튼


2015년현재 에버튼의 기반을만들고 떠난감독.

갑작스럽게 강등 위기에 처한 에버튼의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모예스는 2002년 3월 14일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나는 리버풀과는 다른 느낌의 글래스고에서 왔습니다. 저는 막 사람들의 클럽(People's Club)에 들어오게 되었죠. 길거리에서 당신이 만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버튼 팬일 것입니다. 자신이 꿈꿔오던 것이 주어진다면 환상적인 기회라고 할 수 있죠. 이렇게 큰 구단에서 온 제안에는 바로 Yes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멋진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부임하자마자 2부리그로 내려가서 프레스턴을 만날 위기에 처한 팀을 강등 위기에서 구해내는 것이 모예스의 급선무였다.

당시 에버튼은 성적과 구단 운영, 두 분야에서 모두 막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이전 감독이던 월터 스미스가 몇 시즌 연속으로 팀을 하위권에 갖다놓은 뒤, 2002 시즌 중반 18위까지 떨어뜨린 뒤 해고되었다.

구단 운영에서는 1990년대 중반 에버튼 구단주로 부임한 피터 존슨이라는 천하의 개쌍놈이 팀의 재정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상태였다. 다른 말 덧붙일 것 없이 리버풀 FC의 서포터였던 그는 "그래도 공과 사는 가리겠지..."라는 팬들의 생각과 달리 대량의 먹튀 생산과 빚 늘리기 신공으로 팀 상태가 최악에 빠지는데 일조하다가 팬들의 저주를 받으며 현재 구단주인 빌 켄라이트 회장에게 막 구단을 판 상태였다.[5]

그럼에도 에버튼 감독 데뷔전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팀을 15위까지 올려놓아 강등에서 탈출시켰고 켄라이트 구단주의 지원 아래 감독 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2003-2004 시즌 17위를 기록하며 팀이 강등 위험권에서 머물자, 저렴한 선수 영입을 통해 팀에 변화를 주게 되는데 그 선수들은 팀의 핵심이 된 팀 이힐, 미켈 아르테타, 임스 비티였다. 이와 함께 스트라이커 자리에 수퍼 루키를 중용하게 되는데 그는 바로 웨인 루니. 등장과 함께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팀의 영웅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루니는 얼마 못가 땡깡부리고 맨유로 떠나긴 했다.

이러한 영향때문인지 단 1년만에 모든 전문가들과 팬들의 예상을 깨고 에버튼은 2004-2005 시즌을 4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 3라운드에 진출했다. 근데 챔피언스리그 예선 3라운드에서 만난게 하필 당시에 사기포스를 뿜던 비야레알...당시 3차예선에서 떨어지며 조별 예선은 가지 못하고 UEFA 유로파 리그에 출전했다. 이 시즌, 에버튼은 유럽대회와 리그를 병행하게 되는데, 유럽대회를 노리고 야심차게 영입한 반 더 메이데 등이 실패하고, 얇은 스쿼드 문제 등으로 에버튼은 17위로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