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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로드먼

last modified: 2015-04-13 04:12:39 Contributors


내가 누구냐고? 그냥 무명 대학 나온 무명 선수다.
(1986년 드래프트. 소개를 해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름 데니스 키스 로드먼
Dennis Keith Rodman
생년월일 1961년 5월 13일
6-7(201cm)
체중 95kg
출신학교 사우스이스턴 오클라호마 대학
포지션 파워포워드
드래프트 1986년 드래프트 2라운드 27순위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지명
역대 소속팀 디트로이트 피스톤즈(1986~1993)
샌안토니오 스퍼스(1993~1995)
시카고 불스(1995~1998)
LA 레이커스(1999)
댈러스 매버릭스(2000)
등번호 10번(디트로이트/샌안토니오)
91번(시카고)
73번(LAL)
70번(댈러스)
수상내역 7년 연속 경기당 평균 리바운드 1위(1992~1998)
올해의 수비수상 2회
All-NBA Third team 2회
All-Defensive First team Team 7회
All-Defensive Second Team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영구결번
No.10

1990년 ~ 1991년 NBA 올해의 수비수상
마크 이튼 데니스 로드먼 데이비드 로빈슨

Contents

1. 개요
2. 상세
2.1. 데뷔 이전
2.2.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시절
2.3.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절
2.4. 시카고 불스 시절
2.4.1. 스퍼스와 시카고에서의 로드먼의 차이
2.5. 영구결번과 명예의 전당 헌액
2.6. 능력
2.7. 전술적 가치
3. 기행
4. 북한 방문
5. 저서


1. 개요

농구 선수. 그리고 NBA 아니 세계 농구 역사에서 찾기 힘든 개성의 아이콘, 농구계의 영원한 악동, 그리고 역대최강의 리바운더 이자 강백호의 실사판

신장 201cm, 몸무게 94kg(weight 220 lb (100 kg) 영문 위키 nba,com기준)라는 왜소한 체구의 파워 포워드. 그런데 이런 작은 키로 210cm이 넘치는 NBA의 골밑에서 리바운드를 장악했던 선수다. 물론 일반인에 비하면 거인이지만[1] 91-92시즌부터 97-98시즌까지 7년 연속 리바운드왕을 차지했고, 시즌 평균 리바운드수가 18.7[2]을 찍은 적이 있다는 걸로 이미 설명 끝. 시즌 평균 리바운드 15이상인 시즌만 6번이다. 거기에 수비도 매우 강해서 올해의 수비선수상 2회(90, 91), 디펜시브 퍼스트 팀 7회(89~93, 95~96), 세컨드 팀 1회(94)에 선정될 정도였다.한마디로 NBA 역사상 최강의 리바운더이다.출처

DennisRodman_01.jpg
[JPG image (Unknown)]

리바운드 왕.jpg 조던 : 한 골만 넣어봐라 슛막 시발아

2. 상세

2.1. 데뷔 이전

데니스 로드먼이 세 살 때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버렸다. 그는 네 명의 아내로부터 무려 27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한다. 로드먼은 27명의 형제 중 장자인 셈이다.

어렸을 적 로드먼은 덩치들에게 두들겨 맞기 일쑤인 약하고 왜소한 아이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정식으로 농구를 해 본 적이 없었다는 이력을 가지고 있다.[3] 이렇듯 어린 시절을 암울하게 보내던 로드먼에게 서광이 비추기 시작했으니, 일년 만에 키가 갑자기 자라 농구를 시작하게 된 것. 프로농구 역사상 가장 괴상하고 특별한 선수의 시작이었다.

졸업 후 잡다한 직업을 전전했으며 공항에서 알바하던 도중에 기프트숍에서 시계를 훔치다 체포되기도 했다.

2.2. 디트로이트 피스톤스 시절

때문에 대부분의 NBA 소속 선수와 달리 NCAA가 아닌 NAIA(전미국대학운동경기연합)이라는 듣보잡 리그에 소속된 사우스이스턴 오클라호마 대학 출신이고, 1986년 드래프트 2차 27순위라는 낮은 픽으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뽑혔다. 이때 이미 25세였다. [4]

당시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는 아이재이아 토마스, 에이드리언 덴틀리, 빌 레임비어, 비니 존슨, 릭 마혼 등의 멤버를 갖춘 팀이었다. 로드먼은 데뷔 첫 해에는 덴틀리의 백업으로 투입되다가 2년차 때 덴틀리가 부상 당하면서 스타팅 멤버로 출전하기 시작했고, 피스톤스가 로드먼이 스타팅으로 나온 첫 24경기에서 20승을 하면서 주전 자리를 굳히게 된다.
로드먼은 낮은 픽의 무명 선수라는 핸디캡을 안고 NBA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요하지만 남들이 하기 꺼리는 일', 즉 수비와 리바운드에 집중하였으며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피스톤스 감독 척 데일리가 그를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로드먼 또한 데일리를 '신(GOD)'이라고 부르며 절대적인 존경을 바쳤다. 참고로 스퍼스 시절 로드먼은 감독이었던 밥 힐을 '쪼다'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시기 피스톤스는 아이재이어 토머스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슈퍼스타가 없었지만 '배드 보이스'라고 불릴만큼 피지컬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하던 강팀이었으며, 래리 버드의 보스턴 셀틱스, 매직 존슨의 L.A.레이커스,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 전혀 뒤지지 않는 승부를 펼친 80년대 후반 파이널 무대의 단골 손님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1989년과 1990년 연속으로 NBA 우승을 차지했다. 이 두번의 우승 동안 디트로이트는 2번 연속으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를 물먹였다. 그러나 결국 1991년에는 조던의 시카고가 디트로이트를 스윕하고 파이널에 진출하면서 디트로이트의 전성기를 끝장내었고, 이때부터 조던의 첫번째 3연패가 시작된다.

1991년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피스톤스와 불스가 맞붙었을 때 스카티 피펜을 수비하던 로드먼은 피펜을 들이받아 턱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힌 적이 있다. 피펜의 턱에는 아직까지 이 흉터가 남아있다고. 후에 로드먼이 불스에 입단하기로 결정한 뒤 들은 첫번째 말이 '저기 부엌에 가서 스코티에게 사과하게'였다나..

92년 로드먼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척 데일리가 해임되고 황금기의 멤버들이 트레이드되면서 피스톤스의 성적은 갈수록 떨어지고 93년에는 플레이오프조차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이 시기 로드먼은 정신적으로 방황하기 시작하는데,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후 그는 샌앤토니오 스퍼스로 트레이드되어 2년 간 뛰게 된다.

2.3.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절

당시 스퍼스는 에이버리 존슨, 숀 엘리엇, 데이비드 로빈슨 등으로 구성된 강팀이었으며 로드먼이 가세하여 정규 시즌 1위 등을 하는 등 좋은 성적을 올린다. 그러나 1995년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켓츠에게 털려서 파이널 진출은 실패한다.

익히 알려진 바대로 샌안토니오에서 로드먼은 감독 및 타 선수들과의 불화로 엄청나게 잡음이 많았다. 샌안토니오에서는 데니스 로드먼이 규율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팀 케미스트리를 해치고 있다고 비난했고 로드먼은 적어도 자신은 게임을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구단이 별 쓰잘데기 없는 거에만 태클 걸고 헤드코치 밥 힐은 쪼다스러운 작전만 남발하고 있으며 데이비드 로빈슨은 팀을 이끌고 나갈 리더십이 없다고 깠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갈등이 표면화된건 95년 컨퍼런스 파이널에서의 패배 이후였다.

94년부터 단장(General Manager) 팀의 운영에 참여하게 된 그렉 포포비치는 팀의 문화를 쇄신하기 위해 로드먼을 헐값에 덤핑으로 팔아치운다. 당시 로드먼은 오토바이를 타다가 어께를 다친 것 때문에 포포비치와 충돌했으며, 이로 인해 그가 로드맨의 계약을 갱신해주길 꺼려했다고 한다.[5]

당시 로드먼의 트레이드 상대는 시카고 불스의 주전 센터인 윌 퍼듀였는데, 윌 퍼듀는 평범한 백인센터였고[6] 샌안토니오도 로드먼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 강화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4. 시카고 불스 시절

디트로이트 시절 불스를 꺾기 위해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연구했던 경험 덕에 그는 불스에 쉽게 적응했고,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펜과 함께 95-96 시즌부터 NBA 3연패를 이루어내며 '역대 최강팀'중 하나를 논하는 자리에 항상 거론되는 라인업인 '슈퍼맨 (조던) / 배트맨 (피펜) / 로드먼' 의 일원이 된다. 그 3연패 기간 파이널 상대팀인 95-96시즌 시애틀 슈퍼소닉스, 유타 재즈 모두 로드먼의 포지션인 파워포워드가 팀의 주축선수였는데 세번의 파이널에서 숀 켐프, 칼 말론을 매우 효과적으로 수비했다. 이 중 95-96 시즌은 82경기중 72승 10패를 기록하는 압도적인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2.4.1. 스퍼스와 시카고에서의 로드먼의 차이

95파이널 5차전에서 스퍼스 감독 밥 힐은 로드맨이 팀연습에 무단으로 지각한 벌로 그를 주전출장시키지 않았다. # 당시 두 팀은 시리즈 전적 2대2로 팽팽히 맞서고 있었는데, 스퍼스가 홈에서 열린 5차전을 20점이 넘는 점수차로 패배하면서 6차전 원정까지 패배. 시리즈를 그대로 내주게 된다. 팀 성적(플옵탈락) 때문에 로드맨과 스퍼스의 갈등이 심해진게 아니라, 그전부터 문제가 심했다는 증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또 2011년에 로드먼이 데이빗 알드리지와 한 인터뷰에서는 로빈슨과 자신이 "자주 충돌했다(bumped heads a lot)"고 말하면서, 사이가 최악이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은 로빈슨이 "하킴 올라주원이나 샤킬 오닐처럼 더 공격적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던 로빈슨은 로드맨에게 종종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자"면서 "이 도시(샌안토니오)는 교회가길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이야"라고 언급했는데, 로드맨은 "난 그딴 식으로 살 순 없어. 난 농구하러 왔지,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만들려고 온게 아니라고"라고 답했다#
그에 비해 시카고에서는 팬들의 우려와는 다르게 로드맨은 '생각보다는' 팀내에서 사고를 치지 않았다. 물론 연습에 지각하는 등 사소한 문제는 있었지만, 당시 불스는 조던의 보스 기질이 대단했기 때문에 로드맨은 아예 처음부터 조던에게 대들 생각 자체가 없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1. (자신의 생각에) 소프트한 로빈슨와 밥힐보다 승부사 조던과 필 잭슨을 훨씬 더 존중했다. 2. 사생활에 사사건건 태클을 건 로빈슨과 스퍼스 프런트와 달리 불스는 그가 농구만 잘하면 별 간섭을 하지 않았다. 3. 팀 성적 자체도 불스 시절이 더 좋았다, 등의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조던/피펜/로드맨과 필 잭슨은 코트 바깥의 사생활은 터치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불스 분위기를 설명해야 하는데, 당시 NBA에서 평균 나이가 가장 많은 팀중 하나이던 불스는 베테랑들이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각자 알아서 하는 분위기였으며, 성격이 좋기로 유명한 존 샐리나 조던과 예전부터 친했단 론 하퍼 정도를 제외하면 서로간의 친목 분위기는 별로 없었다. 심지어 조던과 피펜도 서로를 굉장히 존중하는 사이었지만, 예를 들어 르브론과 웨이드 처럼 사적으로 크게 친밀한 친구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나 사적으로 친하지 않았을 뿐이지 이들간의 갈등이 심했다고 볼 근거나 보도내용은 없다. 실제로 조던은 같은 팀의 빌 카트라이트와 호레이스 그랜트, 피펜은 훗날 로켓츠에서 찰스 바클리, 로드먼은 스퍼스/댈러스/레이커스의 동료들과 갈등을 빚었다고 보도되었으나 불스 시절에는 조던/피펜/로드맨간 마찰이 생겼다는 보도는 없었다. # 또한 구단에서도 로드먼의 머리 색으로 빌딩을 치장하는 등, 여러모로 보호 및 지지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로드맨은 당시 조던, 피펜과 진솔한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트 위에서는 세 명이 적극적으로 대화하거나, 로드맨의 싸움을 조던과 피펜이 말린 적도 있고 (대표적으로 샤크와 한판 붙으려는 로드맨을 조던/피펜이 태클걸어서 넘어뜨린 다음 셋이서 웃으면서 일어선 장면이 있다)#, 경기중에는 세 선수가 그야말로 환상의 팀웍을 보여주는 걸 볼 수 있다. 슛 욕심이 전혀 없던 로드맨은 몸을 던져가며 살린 공을 조던/피펜에게 패스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이때 세 사람의 관계는 "니가 할 거 알아서 하면 나는 상관 안한다"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조던은 열심히 안 하는 선수나 수준이하의 선수는 개갈궜지만, 로드맨은 밤새 클럽에서 술퍼마시고 놀고 여장을 하고 별 미친짓을 하더라도 코트 위에서는 몸을 날려가며 동료들을 살려주는 팀플레이어였으므로 조던이 터치할 이유도 없었다.
참고로 로드맨이 은퇴 후 로빈슨과 조던을 평가한 글을 보면, 조던을 훨씬 더 존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로드맨은 조던과 피펜이 최고의 원투펀치 중 하나라면서, 르브론보다 조던이 비교도 안되게 뛰어났다는 걸 여러번 강조했다. # 참고로 이 인터뷰는 조던 찬양보다는 르브론 까는게 주된 내용이다.

또한 자신을 억누르려고만 하는 밥 힐에 비해 척 데일리나 필 잭슨을 높이 평가한 면도 있었다. 예전에 로드먼은 척 데일리 외에는 자신을 통제한 사람이 없다고 평가했다. 데일리는 로드먼에게는 사실상 은사였으며 단순히 감독-선수 간의 관계 이상이었다. 데일리만큼은 아니더라도 로드맨과 필 잭슨과의 관계 역시 단순히 비지니스적인 관계가 아니라 은사에 가까웠다. 로드먼은 2011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면서 자기를 소개할 인물[7]로 필 잭슨을 선택했다. 이 때 로드맨은 잭슨을 "나를 위해 울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하면서 잭슨이 그의 아버지와 같은 인물(father figure) 중 하나라며 "존경할 수 있고, 언제든지 전화해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somebody you can look up to and call any time of day)"이라고 말했다. 또한 자기가 무슨 얼간이 같은 짓을 하더라도 항상 곁에 있어주는 인물 중 하나라면서 감사의 뜻을 표했다.

2.5. 영구결번과 명예의 전당 헌액

2011년 4월 2일(한국시간),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 하프타임때 영구결번식이 치뤄졌다. 로드먼은 "내 번호 10번이 영구결번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면 팬들이 원하는 플레이를 보여줬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감격해했다.

2011년 2월 19일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으며 2011년 4월 4일(미국시간). 드디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물론, 여기서도 기행은 멈추지 않아 청바지에 풀어헤친 흰색 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입성 소감에 대해서는 "믿기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자신의 행보를 돌이켜 봤을 때, 명전 입성은 힘들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입성 이유에 대해, "선정 위원들이 나의 과거 부정적인 면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오, 그래도 꽤 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신을 "좋은 득점 능력도 없었고, 훌륭한 운동선수도 아니었지만, 팀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라고 평했다.


명예의 전당 헌액 연설을 하는 눈시울이 붉어진 데니스 로드먼. 옆에 있는 사람은 필 잭슨.

youtube(uwbI15Ucl8s)
그리고 같은 달 4월 14일. 명예의 전당 입성 행사에 참여해 연설을 했다. 이때 로드맨의 헌액 연설은 횡설수설도 많았지만, 여러번이나 눈물을 쏟고 감정에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본인의 솔직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낸 모습이어서 감동적이라는 평을 많이 받는다. 이때도 그 뛰어난 패션센스는 여전했다(...). 로드먼은 이날 연설에서 "나는 돈이나 유명세를 위해 뛰지 않았다. 죽을 뻔한적도 많았고 마약 거래를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실제 노숙 생활도 해봤지만, 노숙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오랜 기간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냈다" 라고 했다.

가정사에 대해서는 "아버지인 필랜더는 많은 돈을 벌었지만 우리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우리들을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어머니를 미워했고 나도 비뚤어지고 이기적인 아들로 자랐다. 하지만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제 그런 얘기들은 웃으면서 얘기할수 있게 되었다." 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에 "현역시절 가장 후회되는게 뭐냐고 남들이 물어본다면 난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것을 가장 후회한다라고 대답하겠다. 지금이라도 좋은 아빠가 되겠다." 라고 했다. 그는 첫 번째 부인에게서 딸 하나와 현재 세 번째 부인에게서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두고있다.

2.6.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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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 image (Unknown)]

리바운드 왕의 능욕, 능욕당하는 사람은 찰스 바클리

강백호의 모델이 된 선수다. 로드먼의 리바운드 스타일을 간접적으로 보려면, 슬램덩크 산왕공고전 후반전 강백호의 각성모드를 보면 된다. 빠르고 짧은 점프와 끈질긴 몸싸움을 통해 짧게짧게 공을 쳐올려서 잡아내는 스타일.

이것은 로드먼 자신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특기인데,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리바운드 하나를 위해 세 번, 네 번 점프한다는 것이다. 나는 볼에 손을 밀착시킨다. 그러면 손가락으로 건드릴 때마다 볼이 내 손 쪽으로 당겨와 결국 확실히 두 손으로 붙잡을 수 있게 된다. 내 점프는 NBA에서도 가장 빠르다. 신속히 점프한 후에 일단 바닥에 착지하고 나서 스카이콩콩에 올라탄 것보다 더 재빠르고 탄력 있게 다시 공중으로 뛰어오를 수 있다. 대개의 선수들은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서 무조건 높이 점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재빨리 여러 번 점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점프하여 볼을 가볍게 치고, 점프하여 치고, 또 점프하여 가볍게 친다. 이렇게 다른 선수들이 한 번 뛰어오르는 동안 나는 세 번이나 뛰어오를 수 있다. 내가 세 번, 네 번 점프를 하는 동안 다른 녀석들은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을 못차린다.
라고 한 바 있다.

게다가 의외로 연구파라서 어떤 선수의 슛이 어느 방향으로 많이 튄다거나 하는 연구도 많이 했다고. 상대팀은 물론이고 같은 팀 선수들의 슛패턴 또한 비디오로 연구했다고 한다. 덕분에 공격 리바운드를 많이 잡아준 선수. 결승전에서 11개의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내는 기록을 갖고 있기도 하다(공격 리바운드만의 숫자다).

대신 공격은 거의 포기(통산 평균 득점 7.3점). 한때는 필드골 성공률 시즌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90년대 초반 이후 공격은 포기하고 골밑 노마크 찬스가 아닌 이상에는 거의 팀원에게 돌렸다. 실제로 그의 시합을 보면 드리블이나 슛은 프로의 그것이라고 봐주기 매우 힘들다...그런데 역으로 이 점이 마이클 조던과 불스에는 매우 플러스로 작용하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슛시도 자체를 아예 하지 않고, 올리는 득점은 골밑에서의 이지 찬스 또는 풋백 덩크, 팁인 정도가 전부이다. 단 이런 슛은 거의 놓치지 않았다. 다만 한 번은 전반에 3점을 던졌다가 어쩌다 들어갔는데(...) 그걸 기억하고 후반에 다시 시도했다가 에어볼이 된 일이 있다(......) 그 슛 후 자신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모습을 기억하는 팬도 있을 듯. 어쨌건 트리플 더블의 가장 큰 장벽이 득점인 대단히 특이한 선수. 트리플 더블을 로드맨은 딱 한 번만 기록했다. (1996/01/16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상대로 기록했다. 그런데 이 때 기록이 딱 10득점/21리바운드/10어시스트) 시야가 넓고 게임 흐름을 읽는 능력도 좋아서 공을 가지고 있는 시간이 매우 짧음에도 시즌 평균 3어시스트 정도를 기록하기도 헀다.

보기하고 다르게 BQ(농구 IQ)가 좋았던 선수로 정평이 나있다. 실제로 그가 시카고로 이적한 후 첫 연습에서 그 어렵다는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하루만에 마스터했다는 얘기는 이미 정설. 잭슨의 인터뷰를 봐도 '매우 영리하고 팀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선수'라고 평가받고 있다.
  • 사실은 잭슨이 그를 데려온 이유가 상기한 대로 그가 배드보이스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배드보이스 출신들은 시카고와 피터지게 싸웠기에 박살내기 위해서라도 트라이앵글 오펜스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니, 수행하기도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오자마자 쉽사리 적응했다고 한다. 당시 배드보이스 출신인 존 샐리도 비슷한 맥락에서 영입된 선수였다.

역대 최고의 수비수 중 하나이기도 한데, 힘과 순발력이 좋아서 가드부터 센터까지 마크할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 시절에는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마이클 조던 등을 전담으로 마크하던 에이스 수비수였고 시카고 시절에는 샤킬 오닐까지 수비하기도 했다. 특히 오닐은 로드먼이 수비하기 전에는 시카고의(그외 모든 구단도) 페인트존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는데, 로드먼이 수비하자마자 득점이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당시 샤킬오닐을 막던 수비 위주 센터인[8] 룩 롱리(2.18m, 120kg)에 비해 좀 더 잘 막고 공격도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줬다. 마치 슬램덩크에서 신현필을 수비하던 강백호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youtube(wg3BiOw4TWo)
시카고에서 뛰던 시기 시카고가 파이널에서 만난 상대팀인 시애틀 슈퍼소닉스유타 재즈숀 켐프칼 말론이라는 걸출한 파워포워드들이 팀의 핵심이던 팀이었는데 이 팀들을 세번이나 꺾을 수 있었던데에는 로드맨의 공도 결코 작지 않다.
특히 마이클 조던이 시애틀 백코트에 막힌[9] 96년 파이널의 진짜 MVP라는 얘기도 들었다. 시리즈 내내 숀 켐프를 효과적으로 막았고, 2차전에서는 3점차로 쫓기고 있던 상황에서 자유투를 성공시켜 게임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다. .[10]
한편 1차전에서 로드먼은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당했는데, 이때 시애틀에서 로드먼을 자극시켜서 테크니컬 파울 1개를 더 끌어내어 퇴장시키기 위해 브릭코우스키라는 선수를 투입시켰다.
youtube(wPejpJOJJjU)
로드먼은 조금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브릭코우스키에게서 테크니컬 파울 2개와 플래그런트 파울을 끌어내 퇴장시켰다(...). 퇴장당하는 브릭코우스키 등 뒤에 대고 "Bang!"하는 마무리까지.

기록 측면에서는 92년부터 98년까지 7년 연속 NBA 리바운드 1위를 기록했고 커리어 하이는 92년의 평균 18.7개. 90년, 91년 DPOY(Defensive Player Of the Year, 올해의 수비 선수상)를 차지하였으며, 89년부터 96년까지 10년 연속 NBA All-Defensive에 뽑힌 바 있다(1st 7회, 2nd 1회, 3rd 2회).

2.7. 전술적 가치


레전드로써 로드먼의 평범하다 못해 평균선수보다 약간 못미치는 득점력을 가지고 로드먼의 가치를 폄하하는 일부 의견이 많지만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로드먼이 지닌 리바운더로써의 능력과 수비력은 부족한 득점력을 메꾸고도 남았다. 사실 로드먼의 등장이전 각팀의 에이스나 A급기량의 척도는 득점력과 어시스트였고 파워포워드나 센터의 리바운드에 대한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처지는 편이었으나 로드먼의 등장이후 이러한 편견은 잘못된 것임이 드러났다.

사실 조던의 첫번째 은퇴후 복귀이후에 시카고불스가 역대최강의 팀중 하나가 될수 있었던 것은 로드먼의 강력한 인사이드 플레이와 수비력덕분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91~93년까지 첫번째 파이널 3연패를 했던 시카고불스보다 95~97년당시의 불스를 역대 최강의 끝판왕으로 꼽는것에는 아무도 이견을 달지않는데 이를 보더라도 로드먼의 전술적가치는 농구팬들의 생각보다 엄청난것임을 알수 있다.

한팀에 강력한 리바운더가 있다는것은 그만큼 공격기회가 늘어난다는것이고 이는 전체적인 팀의 득점력을 엄청나게 끌어올릴수 있다는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위대한 슈터라도 필드골 성공률이 60퍼센트를 넘길수 없다는것은 10번던지면 4번은 실패하고 2번던지면 1번은 실패한다는 소리이다. 이때 만약 그팀에 로드먼같은 강력한 리바운더가 있다면 4번중 2번은 다시 공격기회로 돌릴수 있을것이고 그만큼 팀전체의 득점력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사실 마이클 조던이 신체적 전성기인 30대 초중반을 지나고서도 압도적인 득점력으로 리그를 학살할수 있었던것에는 로드먼의 역할도 컸다는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11]

로드먼의 전술적가치는 리바운드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상기에 서술된것처럼 80년대 후반부터 리그정상급 수비로 이름을 떨치는 로드먼이 있었기 때문에 시카고불스의 파이널 상대인 시애틀이나 유타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경기를 펼칠수밖에 없었다.(두팀다 팀의 주득점원이 파워포워드다.) 실제도 97년도 파이널 경기를 보면 로드먼의 악착같은 수비에 페이스가 흐트러지는 칼말론을 볼수 있다. 사실 아무리 강팀이라도 팀의 주득점원이 2명이 되는경우는 별로 없다. 시카고만 하더라도 팀의 주득점원은 조던이었고 조던이 막히는 날엔 시카고도 닶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피펜도 득점에 능력이있고 스티브커와 같은 리그정상급의 슈터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마사장의 폭발적인 득점력엔 못미친다.) 따라서 로드먼같이 수비에 스페셜리스트가 상대팀의 에이스를 득점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악착같이 막는다면 상대팀의 입장에서는 그만큼 지옥이 따로없다.(위에 링크된 샤킬오닐 디펜스 영상을 보라. 그전까지 시카고 인사이드를 초토화시키던 오닐이 로드먼이 붙고나서는 득점은 커녕 슛을 쏘는것에도 상당히 애를 먹는다.)농구라는 스포츠에서 사실 자신의 득점이나 어시스트같은 눈에 잘띄는 지표를 포기하고 수비에만 매달리는것은 쉽지않은 일이다. 그러나 로드먼은 샌안토니오 시절부터 자신이 잘할수 있는 리바운드와 수비를 특화하다 못해 그방면만 갈고닦은 선수이기때문에 감독으로써는 로드먼만큼 디펜스에서 매력적인 선수를 찾는것은 쉽자 않은 일 일것이다.

결국 시카고불스왕조의 건설에는 피펜과 조던 못지 않게 로드먼의 공이 컸다는것을 알수있다.무엇보다 한경기에 리바운드를 30개씩 잡아내고 오펜스리바운드를 10개넘게 잡아내며 상대팀 인사이드를 초토화 시키고 에이스의 득점력을 반이하로 무력화시키는 선수는 지금에선 찾을수도 없고 앞으로도 보기 힘들것이다. 그만큼 80~90년대 NBA팬들은 로드먼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타일의 선수를 볼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할수있다.

3. 기행

기행으로도 굉장히 유명했던 선수이다.

일단 머리카락을 가만 놔두지를 않았고 계속 희한한 빛깔이나 문양으로 염색을 하기도.[12] 어느 정도였냐면 현역시절에 시카고에는 큰 건물 벽면에 로드먼의 사진을 붙이고 머리카락 모양의 구조물을 단 다음, 그날 로드먼의 헤어스타일에 맞춰 바꾼다라고 했는데, 거의 매일 바꾸는 색깔을 보려고 교통정체가 일어나서 시에서 폐기하게끔 했다고...

마돈나와 염문을 뿌리거나,[13] 장클로드 반담과 영화에 출연하는가 하면[14], 헐크 호건과 팀을 짜 프로레슬링에 출전하는 등 많은 기행을 벌였다. 그래서 기행에 비례해서 팬과 안티팬이 비슷하게 존재하기도.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젊은 시절 첫번째 결혼이 실패로 돌아간 후 그 충격으로 이렇게 됐다는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디트로이트 시절에는 문신도 없고, 머리염색도 하지 않은 그야말로 깨끗한 몸(??)이었는데, 은사인 척 데일리의 사임으로 변했다는 얘기도 있다.


이고시 그 증거사진! 누구세요?

기행이 여러가지 있는데, 샌안토니오 시절 경기도중에 없어져버린 일도 있었다.(...)

1996년에 토크쇼 출연해 '나 내일 결혼함 ㅇㅇ'이라고 떡밥을 던져 언론과 팬들을 흥분케 했지만


다음날 가서 보니 웨딩드레스를 입은 본인이 떡 하니 있었다.(...) 알고보니 자신의 자서전 홍보를 위한 낚시였던 것. 웨딩드레스 복장 덕분에 그는 한 패션잡지가 선정한 '가장 옷 못입는 여성 '에 뽑히기도 했다.(...)

장클로드 반담과 함께 출연한 영화 《더블팀》 출연 이유가 걸작인데, 카지노에서 쓸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카더라.(...) 그리고 영화 《사이먼 세즈》에도 출연, 두 영화 다 Nostalgia Critic한테 잘근잘근 씹혔다(...) 연기 실력을 논하기 전에 스토리부터 개판...까지는 아니고 그냥 시간 죽이기 용 양산형 액션영화인지라...

그래도 딸을 위해 불스와 연봉계약을 맺을 때 혹시 자기가 파산할 경우를 대비해서 10년 후에 일정부분을 분할해서 받는다는 계약을 맺는 등 나름대로 개념인. 팀메이트였던 피펜이 비행기 사업으로 홀랑 말아먹은 걸 생각한다면 정말이지 현명한 선택.

별명은 '벌레(Worm)'. 어렸을 때 핀볼을 할 때 지렁이처럼 꿈틀댔대서 붙은 별명. 나중에 상대와 같은 편 동시에 환장하게 하는 플레이를 생각하면 나름대로 어울리는 별명?

성우 경력도 있는데, Dead or Alive 익스트림 비치발리볼에서 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출연 자체는 오프닝이랑 엔딩뿐이지만.

마카오에서 열린 '미국 프로농구(NBA) 레전드 아시아 투어 2011'에서도 얼굴에 독특한 분장을 하고 나와서 여전한 끼를 발산했다. 50살 영감님의 재롱

그러나 그 기행 중에서도 최고는 바로 아래에 있다

4. 북한 방문

한국 시각으로 2013년 2월 26일, 북한을 전격 방문했다. 미국의 묘기 농구단인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선수들과 함께 왔는데 농구 클리닉을 위해 방북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데니스 로드먼의 팬이여서 그를 초청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김정은은 로드먼의 팬이다.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은 북한 강석주 내각 부총리가 계획 했다고 한다. 방북 후 북한측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도 로드먼과 김정은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장면을 지속적으로 방영하기도 했다. 그래서 로드먼은 '인간 김정은'에게 감화되었는지 귀국 후 "김정은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며, "김정은은 독재자가 아니라 '좋은 사람(Good Man)'"이라고 주장하고 돌아다니고 있다. 그 유명한 아돌프 히틀러도 '사적'으로는 매우 근면성실하고 다정다감하며 동물 애호가였고, 츠지 마사노부도 모범적인 사람이었겠지.

한번은 호텔에서도 김정은을 찬양하는 목소리를 높이다 호텔바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물론 쫓겨난 것은 김정은을 찬양해서가 아니고 그냥 단지 시끄러워서. #관련기사 여하튼 원래도 각종 기행 때문에 로드먼을 향한 언론이 그렇게 좋다고 보긴 힘든 상황이였으나, 김정은 찬양질(……)을 시작한 이후로는 더더욱 로드먼을 향한 언론의 태도가 냉소적으로 변했다.

게다가 2013년 4월 북한이 북한에서 반북 운동을 전개했다는 혐의로 북한 관광사에서 일하던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배준호)를 구금한 뒤 15년의 노동형을 선고했는데, 로드먼은 트위터를 통해 버락 오바마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나서면서 '친구' 김정은에게 자신을 돕는 셈 치고 그를 석방하라는 트윗을 날려 언론의 웃음거리가 되기에 이르렀다.

2013년 9월에 북한을 또 방문했다. 이번에는 친구인 김정은을 만나러 간 것이며 외교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케네스 배 석방 문제를 협의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정계에서는 심각하게 불편한 기색인데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의 방북이 좌절된 이래 민간인인 로드먼이 북한을 가서 김정은을 만나면 사적으로라도 배의 이야기를 꺼낼 가능성이 높고, 북한이 이를 수락해 배를 석방한다면 외교적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로드먼이 방문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미 정치권의 우려와는 달리 케네스 배가 석방되지는 않았다. 자신이 김정은과 리설주의 딸인 김주애를 안아보았다고 한다. 아기 : 이 흑인 뭐야 무서워 로드먼은 자신은 북한 사람과 미국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노벨평화상 달라고 할 기세

10월 17일 영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김정은에게서 초대받았을 당시 경험을 말하면서 "김정은은 세계의 어느 갑부들도 놀랄 만큼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증언은 로드먼의 의도와는 반대로 김정은을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 핵개발과 사치에만 열을 올리는 위험한 독재자"로 인식하는 국제사회의 부정적인 이미지만 강화시킬 소지가 크다.

2013년 12월 19일 북한을 3번째로 방문했다. 장성택이 숙청된 이후 첫 방문이라 누가 누굴 숙청하느니 하며 인터넷상에 드립이 넘쳐나고, 3번째 방문이면 "정말 북한에 뭔가 좋은 거라도 있나보다"(예를 들면 이런 거)라는 드립이 나왔다.# 후지모토 겐지의 상위호환[15]

2014년 돼지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 다시 농구팀과 방문했다.

현재 미국인중에선 가장 북한의 동향을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CIA, NSA 등을 제치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며 유일하게 북한의 통수권자인 김정은을 4번이나 만난 인물이다. 이 때문에 미 행정부는 현재 미국에서 로드먼보다 못한 정보기관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 그래서 자존심이 상했는지 미 행정부는 로드먼의 앞으로 예정된 북한행에 관심을 기울이고 집중적으로 감시 및 제재를 할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북한을 자주가는 이유는 HBO가 로드먼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을 방문한 NBA 농구스타라는 이슈만으로도 엄청난 시청률을 예고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첫 번째 방북 분량은 이미 지난 6월에 방영되었다. 미국인들에게 상당한 관심을 끌기는 한 모양이다.


1월 7일엔 친선 농구경기를 하기 위한 방북 후 CNN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New Day에 출연했다가 돼지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며 포로인 케네스 배 씨에게 잘못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욕설을 퍼붓는 등 앵커와 설전을 벌였고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그간의 비난이 본인은 상당히 억울(?)했던지 "나의 방북은 세계를 위한 위대한 생각인데 사람들은 항상 내가 하는 것을 무시한다. 마이클 조던르브론 제임스 같은 이들도 세계를 위해 멋진 일을 하는데 왜 나한테만 이러느냐"며 징징거렸다(…). 근데 솔직히 저기서 김정은 욕하면 모가지잖아. 생각해보니 앵커가 잘못했네. 문제의 CNN 인터뷰 영상

앵커가 케네스 배의 석방에 대해 말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자 로드먼은 화를 내고 욕설을 섞어가며 "케네스 배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느냐. [16] 안전한 마이크 뒤에 숨어 있는 당신과 달리 우리야말로 위험한 평양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미X놈아 여기 북한이라고"라고 밝혔고 더불어 김정은에 대해 로드먼은 "그는 나의 친구이며, 나는 그를 사랑한다(I love my friend)"고 밝혔고 커밍아웃 마침내 앵커 역시 빡돌아서 지금 고모부를 죽이고 미국인을 인질 삼은 패륜아를 사랑한다는 거냐며 화를 내어 양측간에 고성이 오갔다.

결국 같이 딸려간 선수 찰스 스미스가 이 정도로 세계 여론이 우릴 비난할 줄은 몰랐다고 하며, 자신들은 평화를 바랄 뿐이고 로드먼이 김정은을 친구라 부르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마라며 쉴드를 시도해봤지만, 로드먼이 말 자르고 끼어들어서는 "앵커 당신은 지금 마이크 뒤에 앉아있지만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직접 북한에 왔고, 언젠가는 우리 덕분에 북한의 문이 열릴 것" 이라며 근자감을 표출하여 폭풍 욕세례를 당하는 중이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하지.

이후 로드먼은 이 건에 대해 자신이 술에 취해있었다며 사과했다. 변호사 : 그냥 음주 방송을 인정하는게 낫겠소.

2014년 1월 8일에는 김정은의 앞에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마릴린 로드먼 당연히 국내 네티즌들에게는 폭풍으로 까이고 있다. 김정은의 내연남.

여러모로 장성택 처형건 이후 김정은에 대해 악화된 국제 여론덕에 로드먼의 방북 기행 역시 더더욱 안좋은 평판을 얻고 있음은 분명하다. 정작 본인은 장성택 처형건과 자신과 김정은의 친분은 무관하며 관심없다는 반응(…). 미국의 모 하원의원은 로드먼을 일컫어 "히틀러와 점심식사 같이할 양반" 이라고 비난했고,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도 출마했던 거물급 상원의원 존 매케인도 로드먼을 멍청이'백치'(idiot)라고 부르며 비난에 합세했다.

한편 로드먼의 방북을 지원하던 도박업체가 인권단체들의 압박에 지원을 끊겠다고 하며, 앞으로 로드먼 일행의 방북 비용은 북한이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도움이 안 되는 흑형 친구.

결국 폭풍같이 까이고는 방북을 중단한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밝혔다.

그런데 2014년 5월 5일, 한 패션문화잡지에서 지난 1월 방북 때 장성택을 봤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한 글이 실렸다. 물론 장성택 숙청이 정부 기관의 카더라 수준이 아닌, 아예 북한 정부 자체가 숙청을 대놓고 공표하는 상황인지라 데니스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11월 8일 케네스 배가 석방됐다 데니스 로드먼은 자신이 선처를 호소해 석방됐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이런 로드먼의 방북이 모티브가 되어 디 인터뷰라는 영화가 제작되었다. 토크쇼 진행자가 김정은을 암살한다는 내용인데 영화 중간에 농구하는 장면만 봐도 누구를 모티브로 했는지 잘 알수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기치 않는 엄청난 폭풍을 몰고온다.자세한건 디 인터뷰 항목 참조

5. 저서


  • 나쁜 녀석 : NBA 이단아 데니스 로드맨 자서전 (Bad As I Wanna Be) (1996(국내 정발:1997, 하늘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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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NBA는 80년대부터 평균 신장이 201~203cm를 오갔다. 즉, 로드맨은 딱 중간정도 되는 체격으로 자기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선수들을 제치고 리바운드를 쓸어담은 것.
  • [2] 91-92시즌 디트로이트 피스톤즈 시절.
  • [3] 고1때 로드먼의 키는 168cm.
  • [4] 여담이지만 로드맨은 배드보이즈의 막내란 이미지가 크고, 실제로 상당히 나중에 팀에 합류항 편이지만 나이로 따지면 리더 아이재아 토마스와 동갑이고(데뷔는 토마스가 5년이나 빠르다) 고참급인 빌 레임비어보다 두살차이밖에 안 난다. 훗날 시카고 불스에서도 사실상 조던-피펜-로드맨 트리오 중 나이는 가장 많으나(조던,피페보다 각각 두살,네살씩 많다) 막내포지션(...) 로드맨이 싸움하는데 조던이 뒤에서 허리에 손을 얹고 "그만해 데니스! 그만해!(That's enough, Dennis. That's enough)"하고 혼내는 영상도 있다. (That's enough는 보통 부모들이나 선생들이 아이들 따끔하게 혼낼 때 많이 쓰는 말이다) 개구장이 데니스 그러나 그를 잡아줄 성숙한 리더가 없던 99시즌 레이커스 시절엔 "정신 못 차리는 말썽꾸러기 형"으로 팀 분위기를 개판만드는 데 일조하다 짤렸다. 안타까운 것은 그 다음 시즌에 로드맨이 정신적으로 의지하는데다 그를 어느 정도 컨트롤할수 있는 필 잭슨 감독이 부임했는데, 이때 로드맨의 리바운드 실력 자체는 건재한 만큼 한 시즌만 버텼으면 팀에 큰 도움이 되고 커리어를 연장할수 있었을수도 있다. 정작 로드맨은 2000시즌에 댈러스에서 막강한 리바운드와 정신나간 행동을 동시에 보이다 또 잘렸다(...)
  • [5] "유일한 문제점은 나와 포포비치의 사이가 안 좋았다는 점이다. 왜냐면 나는 새 계약을 하길 원했는데, 그는 (새 계약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스퍼스)는 윌 퍼듀를 받고 날 트래이드했다" (The only thing that wasn’t right was me and Popovich didn’t get along, because I wanted a new contract and he wouldn’t give me one. So, they decided to trade me for Will Perdue.) 아래 로빈슨 관련 인터뷰 링크 참고.
  • [6] 득점력은 좋지 않았지만, 리바운드 능력은 나쁘지 않았다. 최소한 이후 불스의 주전 센터였던 룩 롱리보다는 득점과 리바운드 모두 나은 선수였다.
  • [7] 보통 자신의 농구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를 선택하는게 관례이다. 또한 소개자는 이미 명예의 전당 멤버여야 한다. 조던의 경우 어린 시절 우상인 데이빗 톰슨을 선택했고, 스카티 피펜은 마이클 조던을 선택했다.
  • [8] 룩 롱리는 수비위주 센터가 절대 아니다. Defensive win share(수비력으로 얼마만큼의 승을 공헌했는지 보여주는 수치)가 offensive win share에 비해 높게 나오는 것 때문에 이렇게 착각할 수 있는데, 롱리의 수비윈셰어는 불스 3연패 시절 급격히 올랐다가 나머지 시즌에 급격히 떨어진다. 이때 불스를 상대하던 빅맨들은 롱리의 수비가 아니라 론 하퍼-마이클 조던-스카티 피펜-데니스 로드맨의 지옥같은 헬프 수비에 애를 먹었다는 걸 생각하면 롱리의 수비성과는 수비최강팀 불스의 일원이란 것 때문에 과대평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도 엘리트급 센터들은 불스를 상대할때 평상시보다 활약을 더 하는 경우가 많았다. 롱리는 거대한 덩치로 인한 블록슛 (그나마 경기당 1.5개를 넘긴 적이 없다)과 강한 힘을 제외하면 수비에서 별볼일이 없었다. 그나마 버티는 힘도 덩치에 비하면 그리 센 편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너무 둔해서 별 쓸모가 없었다. 차라리 공격에서 의외로 높은 BQ, 평균 이상되는 중거리슛과 패스 능력으로 인해 쏠쏠히 도움이 된 편이다. 사실 야구와 달리 농구에서 통계로 뽑는 2차스탯은 부정확한 경우가 많으며 신빙성에도 의문부호가 붙는 편이다. 이는 농구는 야구와 달리 "기록되지 않는 공헌도"가 굉장히 많은 스포츠기 때문. 예를 들어 하킴 올라주원이 2년연속 올해의 수비수상을 탄 1993~94년에 수비 윈셰어 1위에 오른 선수는 패트릭 유잉이었는데, 유잉이 일급 수비수긴 해도 올라주원보다는 한끝 떨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그 신뢰도에 의문이 갈수밖에 없다. 또한 유잉은 1997년에도 1위를 차지했는데 이때 유잉은 만 35세로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확연히 떨어진 시점이었다.
  • [9] 근데 막혀서 평득 27.3....물론 마사장 파이널 기록 중 가장 떨어지는 기록이 맞긴 맞다. 야투율도 .415로 역대 마사장 파이널 기록 중 가장 낮았고.
  • [10] 그러나 진지하게 접근하자면 그래도 조던의 공헌도가 불스에서는 가장 높았다. 로드맨의 리바운드가 압도적으로 높은 만큼 조던의 득점이 압도적으로 가장 높았으며 (팀내 2위인 피펜과 평균 12점 차이가 났다) 선수의 전체적인 생산성을 평가하는 Gamescore로 보면 조던 18.5 vs 로드맨 10.2로 차이가 많이 났다. 물론 스탯만 갖고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비력같은 기록되지 않는 공헌도는 간과되는 면이 있지만, 수비공헌도가 높은 건 조던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이때 조던이 필드골 성공률이 낮은 편이었지만 조던같은 선수는 매 경기더블팀/트리플팀을 달고 다니며 상대팀 수비를 흐트러 놓기 때문에 단순히 드러난 스탯만 보고 판단하기 힘들다.
  • [11] 다만 2차3연패 시절 불스의 인사이드는 실제로 약한 편이었다. 로드맨을 제외하면 A급 빅맨이 없었으며 로드맨도 키가 작아 불스의 골밑위압감은 리그 바닥권에 가까웠다.
  • [12] 영화 《데몰리션 맨》의 웨슬리 스나이프스를 따라했다고 하는 소문이 있지만, 자서전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사람들이 자기 머리 염색을 보고 데몰리션 맨 같다고 해서 뒤늦게 영화를 봤다고 한다.
  • [13] 데니스 로드먼 본인이 밝힌바에 따르면 당시의 마돈나는 거친 매력의 운동선수를 선호했다고 한다. 그래서 둘이 굉장히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는데 갑자기 관계가 틀어지면서 후에는 그냥 친구로만 지낸다고. 카더라에 따르면 마돈나가 로드먼의 아이를 낳고 싶어했고 로드먼은 그걸 원치 않아서 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 [14] 이게 아래에도 있는 영화 《더블 팀》인데, 결과는? 골든 라즈베리에서 '최악의 신인상, '최악의 남자 조연상', '최악의 스크린 콤비상'의 3관왕을 영화에 선사했다. 이 영화는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다.
  • [15] 후지모토도 북한에서 최고급 차를 타면서 '일본에서 요리사로 있었으면 내가 이런 차 몰아볼수나 있었겠냐'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그가 손님으로 있었을 때고, 그가 김정일의 주변인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뒤에는....
  • [16] 여기에 앵커가 "그래서 무슨 일을 했는데요?"라고 묻자, 로드맨은 "당신이 말해봐라, 무슨 일을 했냐"고 하자 앵커는 "모르죠. 아직 그들(북한)이 혐의를 발표도 안했잖아요"라고 답했다. 결국 배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말 못했다. 이때 로드맨 상태를 생각하면 본인도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